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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포항제철에서 넘어옴

파일:한시적 넘겨주기 아이콘.svg   2024년 11월 10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화재에 대한 내용은 2024년 포항제철소 화재사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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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968년 4월 1일[구]
2022년 3월 2일[신]
설립 1968년 3월 1일[구]
2022년 1월 28일[신]
설립자 박태준
대표이사 이시우
업종명 제강업
기업 규모 대기업
그룹 포스코그룹
상장 여부 비상장 기업
법인 형태 일반 법인
주소
본사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안로 6261 (괴동동)
서울사무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440 (대치동)
포항제철소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안로 6262 일원 (괴동동)
광양제철소
전라남도 광양시 폭포사랑길 20-26 (금호동)[5]
송도 R&D 센터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과학로 100 (송도동)
자본금 4,824억 300만 원(2020)
매출액 26조 5,000억 원(2020)
영업 이익 1조 1,351억 원(2020)
당기 순이익 9,658억 6,000만 원(2020)
직원 17,553명(202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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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노동조합[교섭대표]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1. 개요2. 역사
2.1. 창업 및 포항제철소 건설2.2. 광양제철소 건설2.3. 이후 부진2.4. 2018년 이후 수익이 호전되다2.5. 광양제철소 폭발 사고2.6. 리튬 호수 매입2.7. 지주회사 전환 공식화2.8. 물적분할
3. 역대 슬로건4. 역대 임원
4.1. 구 법인4.2. 신 법인
5. 특징 및 여담
5.1. 오너가 없는 기업5.2. 조직 문화5.3. 연봉5.4. 교육5.5. 직원 복지5.6. 노동조합
6. 광고
6.1. 축구
7. 비판 및 논란8. 기타
8.1. 사가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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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스코그룹의 모태가 되는 철강업체이자 포스코홀딩스의 자회사로 과거 명칭은 포항종합제철(약칭 포철)이다. 1960년대까지 경공업 국가였던 대한민국이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1970년대부터 중공업을 본격적으로 양성하기 위해서 기반을 다진 것이 바로 포항제철소의 완공이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도 그럴 것이 중공업은 바로 많은 양의 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2. 역사

2.1. 창업 및 포항제철소 건설

포스코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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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시부터 2002년 공식적인 회사명을 포스코로 바꾸기 전까지 사용했는데 Pohang Iron & Steel Company에서 P, I, S를 조합한 로고다. 다만 워드마크는 1994년 이후 것이다.

파일:포항제철소 1970년대.png
1973년에 건설된 포항제철소

포항종합제철공장 착공식

포항종합제철 제2기 설비공사 준공식 및 화입식

포항종합제철, 제 3기 설비확장공사 준공식

포항종합제철, 제 4기 설비 준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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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공화국: 박정희 정부 제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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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준비하고 있던 중 기초 산업으로 철강 산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경제사정으로 볼 때 국내 자금만으로 종합제철소를 짓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제철소 건설을 위해 주식을 공모했지만, 목표액 33억 원의 0.4%인 1,300만 원만 모였을 뿐이었다. 종합제철소 건설 계획은 다들 무모한 일이라며 반대를 했고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과 국제 단체에서는 이를 두고 과시용 사업이라고 보았다.

종합제철소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1965년이었다. 그 해 5월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 피츠버그 철강단지를 방문해 제철소 건립에 대한 의지를 더욱 더 다지게 되었고 미국의 제철소 건설 기술 용역회사인 코퍼스(Koppers Co. Inc)의 포이(F. Foy) 회장을 만나 이 의견을 피력하였다. 포이 회장은 국제제철차관단을 만들어 종합제철소 건설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부지 선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다. 당시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장이었던 황병태[7] 등의 이야기에 의하면 당시 대한중석 사장이던 박태준이 종합제철추진단장으로 사업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제철소 후보지는 충남 서천(비인)[8], 경남 울산[9][10], 삼천포[11] 등 3곳이었고, 포항은 후보에도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고향 챙기기는 여전해서 충남 출신인 공화당 김종필 의장과 김용태 원내총무(현재의 원내대표격)가 서천을 밀고,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이 울산을 밀고, 박정희의 대구사범학교 동창 서정귀[12]가 삼천포를 밀고 있었다.[13] 큰 돈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박정희는 세 부지를 둘러보고 신중히 결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황병태만 있는 자리에서 슬쩍 물어보고 포항에 대한 설명[14]을 들은 뒤 연극을 하자고 했다고 한다. 이후 열흘쯤 뒤 경제동향 보고회 자리에서 뜬금없이 황병태를 찾은 뒤 제철소 부지 설명을 요구하고 포항 이야기를 하게 하더니 즉석에서 포항으로 낙점했다고 한다.[15]

종합제철소 건설은 시작부터 장애물이 많은 상황이었다. 세계은행은 채산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국내외의 많은 기관이나 회사들도 마찬가지로 제철소 건설을 회의적이라 보았다. 그러나 산업화 초입에 들어선 입장에서 철강의 자체생산은 필수불가결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제철소 건설을 성사시켜야 했었다고 한다.

1969년 1월 하순 하와이. 박태준은 와이키키 해변을 걷고 있었다. 종합제철소 건설에 쓸 자금 조달을 위해 미국 워싱턴까지 날아갔지만 믿었던 국제제철차관단(KISA)의 프레드 포이 대표에게 퇴짜를 맞았다. 세계 철강업계와 금융기관들은 이름조차 낯선 후진국 대한민국에다 종합제철소를 짓는 것이 성공할 수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박태준은 쏜살같이 콘도로 돌아와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를 올렸다.
미국에서 협상은 실패했지만 마지막 방법이 있습니다. 대일 청구권 자금을 전용(轉用)하는 것입니다.

농수산 지원 용도 등으로 사용하기로 한 자금을 제철소 건설로 돌려서 활용하자는 이야기였다. 이 말을 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기막힌 아이디어군. 대일 청구권 자금이 1억달러는 남아 있을 거야. 일본 정부는 임자가 설득해.

일본 정부를 설득하라는 언급에는 다음과 같은 연유가 있다. 대일 청구권 자금은 현금으로 지급된 게 아니라, '동등한 가치를 가지는 일본국의 생산물 및 일본인의 용역'을 10년에 걸쳐 지급한 것이다. 그렇기에 자금을 운용하여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일본 기업을 반드시 거쳐야 했고, 일본은 한국 내에서의 영향력 확대와 시장 확보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상으로 지급된 차관은 갚아야 할 부채였다.

그러나 당시 정치권은 농수산 지원 용도로 쓰일 자금을 전용하는 데 반대했다. 많은 국회의원이 농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회장은 농수산업 진흥 대신 국내 최초의 제철소 건설을 선택했다. [영남일보를 통해 본 현대사] <7> 구미공단·포항제철 건설
1969년은 일본의 기업과 정부에 의한 태도변화로 한국철강공업에서 결정적인 전환이 있었던 해이었다. 이러한 전환의 원인으로 기존에 크게 3가지 주장과 증언이 인용되고 있으나 본 고는 보다 객관적인 사회경제적 이유를 찾아보았다. 그 결과 일본이 한국의 종합제철공장 건설에 협조적 자세로 전환한 배경으로 3가지를 찾아내었다. 첫째는 미국이 주도권을 잡았던 KISA 협약이 붕괴됨으로써 종합제철 건설에서 일본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이 시기 철강공업 등 산업공해문제는 일본의 중요한 이슈의 하나로 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일본은 향후 철강공업 재구성, 자본재생산설비 과잉문제 처리를 위해서는 철강공업설비를 판매할 크고 안정적이며 중장기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셋째는 장기간 준비하고 기술을 축적해 온 한국의 능력과 의지, 점점 표준화되고 있는 세계 철강공업의 노하우를 고려할 때 어차피 한국의 종합철강공장은 포기되는 것이 아니라 건설이 시작된다는 판단이 분명히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국의 대응이 중요하였다.
한국 종합제철 건설과 일본, 박영구, 2013.5.#

그리하여 야와타제철과 후지제철, 일본강관(JFE 홀딩스) 3사의 기술지원을 받게 되었다.#

1970년부터 제철소 건설에 착수했다. 박태준 회장은 첫 삽을 뜰 때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때는 우리 모두 우향우 해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할 것이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예정보다 일정을 한 달 앞당긴 1973년 6월 9일 마침내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흘러나왔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에 해당하는 1,205억원의 혈세와 조상들의 피와 땀, 눈물값을 쏟아부은 결과물이었다. 조업 첫해인 1973년 포항제철은 매출액 1억달러, 순이익 1,200만달러(약 46억원)를 달성했다. 이로써 포항제철은 세계 철강 역사에서 제철소를 가동한 첫해부터 이익을 낸 유일한 기업이 됐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아직 세계적인 외국 경쟁사들에 비해 규모가 크게 밀려 확장이 절실했다. 제철소 4기가 완공될 때까지 총 1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1978년, 중국의 최고실세로 떠오른 덩샤오핑(鄧小平)이 신일본제철을 방문해 중국에 포항제철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이나야마 신일본제철 회장은 “제철소는 돈과 기술로만 짓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짓습니다. 박태준 같은 사람이 없으면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는 지을 수 없습니다. 포항제철은 기적입니다.”라고 정중하게 거절한 일화가 있다.

2.2. 광양제철소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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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광양제철소 1기 준공식


1988년 광양제철소 2기 준공 (박태준 사장과 노태우 대통령)


1990년 광양제철소 3기 준공


1992년 광양제철소 4기 준공

현대그룹 계열사였던 인천제철과의[16] 치열한 경합 끝에 포항제철 측이 제2제철소 사업권을 갖게 되었고[17], 지리적인 영향을 다각도로 종합해서 전두환 정권 때 광양만에 있는 금호도가 제2제철소 부지로 결정되었다. 다른 후보지[18]울진은 너무 북쪽에 있어 안보 위협이 문제가 되고, 서산시·태안군의 아산만은 수심이 얕고 조수 간만의 차가 크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반면 광양만은 수심이 깊고 조수간만의 차도 그다지 크지 않았을 뿐더러 전라도에 있다는 점에서 균형발전에도 들어맞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실제로는 광양만이 최적의 입지인데도 아산으로 하라는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부지가 광양만으로 정해진 이후에도 포철 고위직들이 난색을 표하면서 광양만에서도 하동군에 짓자고 하였으나, 박태준 회장의 직권으로 광양으로 결정했고 전두환이 이를 승인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보여주듯이 박태준이라는 친 호남적 사고를 갖춘 유력자가 없었다면, 광양제철소는 세워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19] 부지조성작업을 거쳐 1985년 시작된 광양제철소 건설은 1992년 4기 공사가 완결됨으로써 포스코는 조강생산 2,080만 톤(연간)을 달성하게 되었다.

파일:external/monthly.chosun.com/0906_034_4.jpg

제철소 부지가 굉장히 크다. 대지 넓이가 무려 2,080만㎡(630만평)[20]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제철소[21]이며 대한민국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생산공장 중 단일부지로는 제일 넓다.[22] 1992년 제철소가 세워진 이후에도 잦은 간척 사업이 이뤄지면서 넓이가 더 넓어졌다. 여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며 기초자치단체서울 성동구의 경우 면적이 1,684만㎡ 정도인 것을 볼 때 일개 제철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철소 견학을 가 보면 공장 안내를 해주는 간부직원이 "포항제철소는 주조부터 압연까지의 공정이 U자 형태로 돌아나오게 배치되어 있지만, 광양제철소는 그보다 뒤에 지은지라 신기술이 적용되었고 부지도 훨씬 넓어서 용광로 주물부터 압연까지 전체 공정이 일자형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해 주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 U자-I자 형태는 의외로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 역사에서 중요한 지점인데, 일자형 설계를 통한 일관제철 공정만으로도 약 8%의 손실이 줄어든다. 제조업에서 8% 로스면 얼마 아닐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제철 같은 대형산업에서 8%면 엄청난 금액이 된다.[23] 즉 포철 공장은 U자 형태라 쇳물과 슬래브를 일일이 옮겨야 하지만 I자 형태에서는 그냥 일관공정으로 쭉 밀 수 있다는 이야기다.[24] 그리고 포철은 포항제철소 준공 15년 후 광양에 제2제철소를 일관공정으로 마련하게 되어, 더욱 진일보한 생산거점을 갖추게 되었다.

제철소 뒤에 있는 금호동 사원 주택단지까지 합치면 조그마한 신도시라 불릴 정도며 실제 제철소와 광양 시내는 교량으로 연결된 또 다른 도시처럼 구성되어 있다.

여담으로 이 광양제철소가 들어선 광양만 지역은 본래 어업, 특히 김 양식이 대단히 발달한 지역이었다. 마침 김(金)과 철을 뜻하는 한자가 같아서 호사가들이 이에 대한 말을 많이 하는 편. 광양제철소 한켠에 이를 기념하는 비석이 남아 있으며 현지 어민들은 이주 보상금 및 제철소 취업의 우선권 등의 보상을 받고 광영동 등에 이주했다.

2.3. 이후 부진

이후 포스코는 1993년 문민정부의 세무조사로 박태준 회장이 일본으로 떠나는 등[25] 체제가 흔들리면서 부진을 겪을 뻔 했으나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다. 박태준 회장은 1997년 재보궐선거로 복귀했고, DJP연합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어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업은 다시 안정되었다. 그 사이 1994년에는 뉴욕증권거래소, 1995년에는 런던증권거래소에 각각 상장되는 등 기업가치를 높였으며, 외환위기 이후 2000년에는 정부지분을 완전 매각함으로써 민영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2002년 3월 15일에 공식 회사명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에서 "포스코"로 변경[26]하였고, 덩달아 CI도 변경했다.[27]

파일:포스코_NYSE상장(2).jpg 파일:포스코_NYSE상장.jpg

2007년에는 차세대 제선 공법인 파이넥스 상용화 설비를 준공하여 운영 중이며, 인도베트남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진행 중이다.

포스코의 경우 외부에서 그룹 회장이 온 경우는 단 한 번, 문민정부 시절 박태준 사단을 퇴출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만제 전 회장 뿐이다.[28] 이외에는 모두 포스코 내부 인사가 임명되었는데, 특히 이구택 전 회장은 포스코 공채 1기이다. 하지만 공기업에서 출발한 기업이니만큼, 여전히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편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박태준 사단은 대거 복귀하였는데 김대중 정부 시기 5대 유상부 회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6대 이구택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이구택 회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7대 정준양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회장 교체 과정에서 모두 정치권 개입이 있었다는 잡음이 있었다. 그리고 정준양 회장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사퇴했고 후임으로 권오준 회장이 취임했다. 그리고 권오준 역시 문재인 정부 성립 11달 만에 사임하며 그 전통을 이어갔다.

2.4. 2018년 이후 수익이 호전되다

7년만에 최고 수익을 갱신했다. 오랜 적자 속에서 나온 흑자로 포항시, 광양시의 경제가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새로 취임한 회장의 현장경영의 원칙 따라 중요 부서가 광양과 포항으로 이동된다. 서울로 가지고 갔던 전 회장과는 다른 행보이다.

철강업계 '10일 조업중지'에 "사실상 운영중단 처분" 초비상(종합2보)
철강업계, '10일 조업중지'에 강력 반발
철강업계, 지자체 조업정지 10일 처분에 "문 닫으라는 얘기냐"
'10일 조업정지' 선고한 지자체…논란 확산

2019년에는 충청남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등 여러 지자체에서 포스코와 경쟁사인 현대제철의 제철소 핵심 설비인 고로(용광로)에 대해 10일 조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에 업계는 철강산업 전반적으로 천문학적인 손실이 날 위기에 처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경쟁사인 현대제철은 이번 조치로 보수 비용을 제외하고도 8000억원의 손실을 예상했다. 환경단체들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제철과정에서 생긴 오염물질을 저감시설 없이 블리더[29]를 통해 공기 중에 배출해왔다"며 민원을 제기했고, 지자체는 대기환경보전법을 적용해 행정처분을 결정했다.

하지만, 블리더 말고는 대체제가 없기 때문에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한국철강협회는 "고로 안전밸브 개방은 전 세계 제철소가 지난 100년 이상 적용해온 안전 프로세스"라며 "조업정지 이후 고로를 재가동한다 해도 현재로선 기술적 대안이 없다"고 했다. 협회는 세계철강협회(WSA)에 문의한 결과, "안전밸브를 열어 배출되는 소량의 잔여가스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 환경단체와 지자체는 법령 위반의 근거로 대기환경보전법 제31조 2항을 들었는데, 여기서는 방지 시설을 거치지 않고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공기조절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다만 ‘화재나 폭발 등의 사고를 예방할 필요가 있어 시·도지사가 인정하는 경우’라는 예외조항이 있는데 블리더는 화재나 폭발 등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로, 정확히 이 예외조항에 해당한다.

그리고 10일 조업정지 처분이 실질적으로는 10일 동안 공장을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연간 400만 톤의 쇳물을 생산하는 고로가 멈추면 쇳물이 굳어져 복구 작업에만 3개월 이상이 걸린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의 스테인리스강 제조업체 칭산(靑山)철강이 한국에 대규모 냉연공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 이번 조치가 궁극적으로 중국에 국내 철강 시장을 내어 주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한대정 민주노총 포스코 지회장도 해당 조치에 대해 "블리더는 노내 압력을 정상상태인 2.3~2.7 Bar(기압 단위)로 조절하는 안전밸브로, 노내 압력이 급격히 올라갈 경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자동 또는 주기적으로 열어 철광석과 코크스를 녹일 때 사용하는 석탄에서 나오는 일부 일산화탄소와 압력을 맞추기 위해 주입하는 수증기를 배출한다. 고로에서 배출되는 이들 물질은 평소에는 회수해 발전소의 전력 생산 자원으로 보내지고 있어 고의로 오염물질을 대기에 내보낼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밸브가 자동으로 열리면 의도하지 않는 상태에서 오염물질이 대기로 배출되는 문제는 있지만,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밝히고 이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지 말고 노사정 대화를 통해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조업정지 처분에 대해 경쟁사인 현대제철은 2019년 6월 7일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집행정지와 행정심판을 청구하였으며, 이후 조업정지 처분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지자체 및 지역 환경 단체들과 소통이 부족했다"고 사과하면서도 "철강 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며 자동차, 조선, 건설 등 경제 중심 산업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제철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가운데 우리가 미흡한 점을 보완해 나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 결과 6월 10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현대제철의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7월 15일부터 10일간 내려질 예정이었던 고로 조업정지 행정처분은 보류됐다. 또한 향후 3~5개월 뒤에 열릴 행정심판도 현대제철의 손을 들어준다면, 조업정지 10일 행정처분은 없던 일이 된다. 포스코 역시 같은 행정처분을 받았으므로 동일한 혜택을 볼 가능성이 있다.

2.5. 광양제철소 폭발 사고

2019년 12월 24일, 전라남도 광양시에 소재한 포스코 광양제철소 내부의 폐열 자가발전시설의 가동을 시험하던 중 돌연 폭발하여, 5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 등 인명피해가 발생하였으며, 폐열 자가발전시설 전체가 형체를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될 만큼의 엄청난 폭발이 발생했다. 이 폭발음은 무려 직선거리로만 10km 넘게 떨어진 전라남도 여수시에서도 확인될 만큼 엄청나게 컸으며, 광양시 일대에 매우 짙은 연기가 퍼져 나갔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하여 광양소방서 측에서 소방대응 제 4단계로 격상하여 진화 작업을 서둘렀으며, 사고로부터 20여분 뒤, 큰불이 진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 여파로 1m 크기의 쇳조각이 이순신대교로 날아와 다리 난간이 찌그러지고 40분 가량 대교 출입이 통제되기도 했다. #1 #2 #3



2020년 11월 24일 16시 2분경 또 다시 폭발 사고가 일어나 근로자 3명이 사망했다.[30] 20여분 만에 자체 진화를 완료 했으나 2명은 현장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고 나머지 1명은 출동한 소방관들의 수색으로 2시간 만에 발견되었다. #1 #2 #3 #4

정확한 사고 원인은 규명중에 있지만 광양제철소 측은 당시 1고로 부대설비인 산소 배관 설비에서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배관을 여는 작업을 하는중 균열로 고압 산소가 강하게 새면서 화재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한다. 완진 이후에도 추가 폭발 위험을 우려해 현장을 통제했으며 신고 시각이 16시 45분경으로 40분 정도의 공백이 존재하여 이에 대해서도 조사중이다.

연이은 사고로, 2021년 2월 22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에서 최정우 회장이 국회의원들에게 크게 질타를 받았다.#

2.6. 리튬 호수 매입

포스코가 2018년 8월 3,119억원에 인수한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리튬 염호에서 채굴 가능한 리튬의 추정 누적 매출이 35조원에 달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구입 당시 예상 리튬 매장량은 220만톤이었지만, 2020년 말 최종 확인된 매장량은 예상치의 6배인 1,350만톤이라는 것이다.[31]

신한금융투자 리포트에 따르면, 예상 연간 매출액은 2023년 3,400~5,100억원에서 2030년 1.1~3.7조원이다. 당기순이익은 2023년 680~1,020억원에서 2030년 2,275~7,380억원이다. #

2018년 8월에 3,119억원에 인수한 것을 감안한다면 큰 수익이 기대되지만, 35조원이라는 숫자에 대해 큰 기대감을 갖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2.7. 지주회사 전환 공식화

2021년 12월 10일 포스코는 이사회에서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의결했으며 2022년 1월 주주총회에서 승인받을 예정이다. 지주회사로의 전환 사유는 “지속성장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왔으며 가장 성공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룹의 미래 신사업을 발굴하고, 사업 및 투자 관리를 전담하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 판단”이며 존속 지주회사 포스코홀딩스(가칭)를 상장사로 유지하고, 신설 철강 사업회사 포스코(가칭)로 물적 분할할 계획이다. 포스코홀딩스가 사업회사 포스코 지분을 100% 보유하되, 사업회사 포스코는 비상장사로 두는 구조다. 그런데 포스코홀딩스 본사 소재지를 포항이 아닌 서울로 삼자 포항시 지역 사회에서는 포스코홀딩스 본사 포항 이전을 요구했고 결국 포항 이전이 확정되었다.

포항시 외에도 일방적인 물적분할 결정으로 인해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상당히 거센 상황이다. 네이버 포스코 종목게시판 #토론방이나, 포스코 소액주주 카페 #네이버 링크 등에서는 몇천명 이상의 주주들의 반대표 인증과 성토가 이어지고 있으며, 대다수 소액주주들이 물적분할과 국민연금의 물적분할 찬성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증권거래소, 포스코 본사, 국민연금 앞에서 시위까지 하면서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후폭풍이 일어나고 있다.

2022년 1월 28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철강 사업부 분할 및 지주회사 전환 안건이 통과됐다. 기존 포스코는 3월 2일부로 상장 지주회사 포스코홀딩스로 다시 출범한다. 포스코홀딩스는 포스코그룹 계열사를 지배 및 관리하며 수소·전기차 배터리 등 신사업 투자와 발굴 등의 업무를 할 예정이다.

문제는 그날 주주총회 참석자들을 고의로 다른 장소로 안내하거나 용역을 동원해 사옥 입구를 봉쇄해 출입을 완전히 막고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주주들은 반발했지만 직원들은 주총이 끝날때까지 버티다 주주들을 하동관으로 안내하며 밥이라도 드시라는 등 과거 주먹구구식 주총의 틀을 벗지 못한 후진적인 행보를 보였다. #

2.8. 물적분할

2022년 포스코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위해 기존 포스코를 지주회사인 포스코홀딩스(존속법인)와 사업회사인 포스코(신설법인)로 물적분할하는 안이 추진되었고 주주총회를 통해 3월 2일부로 분할이 확정되었다. 분할이 완료되면 포스코홀딩스가 포스코 및 포스코케미칼, 포스코이앤씨 등 기존 자회사들을 지배하며 그룹의 사업 발굴 및 투자를 주도하고, 분할 설립된 (신)포스코는 본업인 철강사업에만 집중하게 된다.

한편, 포스코홀딩스의 법적 본사를 서울에 두기로 한 주총 결정에 포항시 지역사회가 크게 반발하며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된 상태다. 2019년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다.

2022년 2월 25일, 포스코가 지주사 포스코홀딩스와 미래기술연구원 포항 설립으로 입장을 급선회했다. 서울 설립 결정을 백지화하기로 한 것이다. #

3. 역대 슬로건

4. 역대 임원

4.1. 구 법인

포스코홀딩스 항목 참고.

4.2. 신 법인

5. 특징 및 여담

5.1. 오너가 없는 기업

다른 대기업들과는 달리 공적자금으로 설립된 기업이라서 초대 회장인 박태준은 자신의 후계구도로 경영자가 이어지지 않았으며 사원 출신들에게 회장직을 넘겼다. 이는 포스코가 공기업으로 시작되어 박태준에게 회장직을 승계할 수 있을 정도의 의결권이 없었던 점도 이러한 역사를 만들게 된 이유였다. 비슷한 방식을 취하는 대기업으로는 KT, 일본의 NTTNEC 등이 있으며, 중견기업까지 보면 유일한 박사로 유명한 유한양행이 있다.

2021년 1월 25일 기준 포스코의 주요 주주는 자사주 12.81%, 국민연금공단 11.75%, BlackRock Fund Advisors 5.23% 등이다. 그리고 포항공과대학교를 설립하면서 학교재단에 335만주를 기부하였다.

5.2. 조직 문화

수직적인 문화를 가진 기업이다. 일단 박태준 명예 회장을 위시한 창립 멤버 대부분이 군인 출신이고, 제조업 중에서도 건설업과 더불어 현장이 가장 위험한 철강산업이기 때문에 수직적이고 일사불란한 문화가 강한 편에 속한다. 한마디로 군대 분위기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부사관, 장교 출신들을 그래도 조금 더 좋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회사 자체로는 이러한 분위기를 타파하겠다고 많은 노력을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33]

그리고 포스코 부지 내에서 속도위반이나 안전보호구 미착용 등 안전수칙 위반으로 적발된다면 협력사의 경우에는 협력사의 대표이사가 출근시간에 출근길에 나와서 전 직원들을 상대로 사과와 안전 다짐을 하기도 하고 부지 내에서 흡연이 3번 적발될 경우[34] 이유 불문하고 포스코 출입문을 영구적으로 통과하지 못하는 등 상당히 강도가 강한 통제가 많다.

이렇게 포스코 내부적으로는 안전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상황에 따라선 고압적으로 보일 정도로 강조를 하고 있지만 경쟁사인 현대제철과 함께 매년 중대 산업재해가 끊이질 않는 것을 보면 제철소 현장이 얼마나 위험하고 왜이렇게 안전에 대해서는 이러한 태도로 나오는지 간접적으로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5.3. 연봉

포스코의 대졸 신입사원 연봉은 세전 5,200만원 정도(2016)이며, 다른 계열사도 비슷하다. 포스코 생산기술직 사원(2021)의 경우 상주근무와 교대근무로 나눠지는데 정비직이나 공장 상주 근무자는 초봉이 6,000만원 수준이고, 교대근무자는 6,000만원 중반 정도가 된다. 그리고 저기에 보통은 잔업(O.T)이 있어서 이보다는 조금 더 많이 받는다. 굴뚝산업, 캐시카우인 제철산업 특성상 성장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회사 자체는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기도 했고 고근속 근로자들의 대량 퇴직 시기가 몇년 남지 않아 가만히 놔둬도 자연 감소가 이뤄지기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다면 구조조정이 일어나진 않는다.

초봉은 비교적 높지만, 근 10년간 직원평균임금 상승률이 2% 대로 임금 상승률이 대기업치고는 많이 낮은 편이다. 또한, 입사초 4년동안 자기설계지원금이라는 것이 월급과 함께 지급되는데 이것이 4년동안 총 1400만원이다. 1년차에 약 700만원을 주기에 실질적인 초봉 뻥튀기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것에 속지말길... 참고로 1년차와 10년차 연봉이 천만원도 차이안나는 경우도 있다. [생산기술직 기준]

2020년 3분기 전자공시 기준으로 평균 근속연수 19.1년[35], 평균연봉은 7,700만원 수준이다.[36] 현재 빠른 속도로 세대 교체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높아지거나 할 가능성은 적다. 물론 저 액수에 다른 대기업들도 매한가지겠지만 복지포인트, 자녀 대학 등록금을 포함한 학자금 전액이 지원 등 회사 차원에서 복지혜택이 있기 때문에 실질 평균 소득은 이보다 높다. (자녀대학등록금은 사내복지기금 운영으로 비과세. 즉, 연봉에 포함되지 않는다.)

경쟁사인 현대제철지회에 따르면 생산직 교대 기준 근속연수 3년차가 연봉 7,000만원 중반대이다. 현대제철은 현대차그룹답게 강성노조라 현장직의 목소리가 포스코에 비해 힘이 있고 상여금 성과금 복지가 현대차를 따라가다보니 압도적인 수준이고 대기업 중에서 유일하게 그로스[37] 상여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는 연봉이 월등하게 높은 이유가 되는데 이 때문에 포스코 출신들이 현대제철로 많이 넘어갔고 포스코에서도 상당한 골칫거리였다.[38] 두 회사 모두 장단점은 있다. 두 회사는 서로 인재 이탈을 우려하여 제재를 가하고 있고 요즘은 과거에 비해 환승이 많이 줄어든 편이다.

5.4. 교육

포스코의 교육지원은 포스코교육재단을 중심으로 한 초·중·고등학교 교육과 포항공과대학교·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포항가속기연구소 등 고등교육·연구로 나뉠 수 있으며, 이 역시 상당히 혁신적인 역할을 하였다.

포스코교육재단은 산하에 4개 고등학교, 2개 중학교, 4개 초등학교와 몇 개의 유치원 및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자녀 교육에 신경쓰지 않고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설립했다는 특징이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특별활동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해 왔으며 많은 분야의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있으며, 중학교 역시 이의 연장선상에 운영되고 있다. 포항제철고광양제철고자율형 사립고로 운영되며[39]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는 전문계 고등학교 중에는 매우 잘나가는 학교이다. 지금은 마이스터고등학교로 지정되었다. 여기 졸업하면 어떻게든 포스코 관련된 회사는 보내준다고 보면 된다.[40] 학생들의 소질을 최대한 계발해 주자는 것이 이 교육재단의 목표였는데, 7~80년대에 이런 목표를 세웠다는 사실이 특기할 만하다.

포항제철고나 포철공고 모두 경북권에서는 알아주는 일반계/전문계 고등학교이고, 광양제철고 역시 90년대 초반부터 매년 서울대 진학생을 5명 안팎으로 배출하는 학교였다.[41] 광양제철고는 현재 매년 10명 안팎의 서울대 진학생을 배출하는 학교로 거듭났다. 문제는 포항이나 광양이나 학구열을 비롯한 치맛바람이 쎄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외[42]를 비롯한 각종 선행학습이 지나친 편이다. 이는 부모들 간의 경쟁의식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이다. 각 학교가 위치한 직원주택단지는 부모간의 학력이나 소득, 지위의 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자녀들의 학교 성적이 부모들의 자존심에 정말 큰 영향을 미쳤다.

2015년에는 송도국제도시인천포스코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43]

포항공과대학교(POSTECH)는 박태준의 이공계 연구중심대학 구상 계획에 따라 설립된 학교로, 2010년 영국 THE 선정 세계 28위 대학[44]으로 선정되는 등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포항공과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방사광가속기는 1990년대에 국내 최초로 지어진 가속기 시설이며, 국내 과학 기술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포항공대와 가속기의 건설에 관한 박태준과 김호길 포항공과대학교 초대 총장의 일화를 찾아보면 상당한 대인배스러움에 흠좀무할 것이다. 또한 포항공과대학교 캠퍼스 내에 위치한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은 포스코, 포스텍과의 산학연 협동을 위해 포스코가 전액 출연하여 설립한 민간연구기관이다.

5.5. 직원 복지

지금에 와서야 기업들이 직원 복지에 신경을 많이 써서 과거와는 달리 그리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수준이 되었지만 과거 포스코는 직원 복지 면에서 상당한 편이었다. 다른 회사들과는 차별화된 복지 정책이 주택 정책인데, 회사가 주택을 공급하여 분양함으로써 직원들이 주택 걱정을 하지 않도록 힘쓴 바 있다. 포항제철 건립 초창기인 1960년대 직원주택과 학교 건설을 시작함으로써 쓸데 없는데 돈 쓴다고 욕을 엄청나게 먹었으나, 지금 와서 보면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참고로 이 당시는 아직 제철소 공장 삽도 안뜬 시기였다. 공장보다 주택과 학교부터 지어 인재를 모으겠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울산 현대그룹 계열사들과 함께 몇 안되는 성공적인 포드주의의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포항과 광양 양쪽 모두에 주택단지를 대규모로 조성하면서 당시 기준으로 주변 주민들이 질투할 정도로 괜찮은 주거단지를 마련하였다. 포항이나 광양의 주택단지를 보면 동시기에 지어진 다른 주택단지들에 비해 엄청난 녹지비율과 체육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포항 효곡동 주택단지의 경우 경상북도 지곡시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포항 시가지와는 차원이 다른 주거환경을 보여준다. 심지어 미관상 좋지 않은 전선을 모두 매립해서 전봇대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주택 관리의 경우에도 직원들에게 매각한 이후로도 포스코 O&M 등 시설관리 계열사 측에서 주택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다만 그렇게 모여사는 탓인지, 기묘한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단지 내의 사람들은 밖의 사람들보다 준법 의식이 높고, 아이들은 밖과는 달리 비행 청소년이 적다는 것 등이 있다.[45] 광양의 경우 건물의 노후화, 구조 문제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단지가 공장 지역 바로 옆에 있는데다가 저 바다 건너에는 국내 최대 규모 여수화학단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 공기가 매우 나쁘다. 자녀 교육 문제만 아니라면 그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직원이 굉장히 많은데, 자녀들을 포스코교육재단 산하 학교에 보내려면 포스코에서 조성한 주거 단지에 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46]만 있고 그 이후로는 다들 금호동에서 탈출하려고 한다.[47]

그리고 난방비가 상당히 싸게 먹히는 편인데, 제철소에서 냉각수로 사용된 중온수를 이용하여 온돌식 난방을 하기 때문에 한겨울에 펑펑 난방을 하고 온수를 사용해도 난방비가 비교적 적게 들고, 단지 내에서의 전화는 회사 내선처럼 연결되어 있어 무료이기 때문에 전화비도 적게 든다. 포항 지역 주택 단지와 광양 지역 주택 단지 간의 전화도 내선으로 취급되긴 하지만, 요즘처럼 집전화를 거의 쓰지 않는 시기에는 큰 의미가 없는 부분이긴 하다. 다만 생활비 자체는 물가가 비싸서 다소 많이 나오는 편이다.


그리고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직원들에게 출산 장려 정책을 펼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포스코 사내 부부가 국내 최초로 네쌍둥이 자연 분만에 성공하자,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직접 직원 자택에 찾아가서 아기들에게 절을 하고, 9인승 풀옵션 승합차와 출산장려금, 육아 지원금까지 합쳐 1억 원 상당의 지원을 했다. 그리고 직원이 아니어도 지원을 해 주는데, 다섯쌍둥이를 낳은 군인 부부한테도 9인승 승합차를 선물했다.

포스코는 '육아기 재택근무제'를 시행중이기도 하다. 포스코가 2020년 7월 국내 기업 최초로 도입한 이 제도는 만 8세(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가 있는 직원이라면 최대 4년까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

2024년 1월에 격주 주4일제 근무를 도입하였다.

5.6. 노동조합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영향 덕에 1988년 처음으로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 노조가 결성돼 조합원만 18,000여 명을 자랑했으나, 사측은 안기부 등 공권력을 동원해 이를 탄압했다. 1991년 노조 간부의 금품수수 비리 혐의로 사실상 와해돼 힘을 잃어 조합원이 10여 명으로 줄었고, 이로써 한국노총에서 제명당한 채 휴면노조화되어 노경위원회가 노사 교섭기구 노릇을 했다.[48] 그러나 2011년 6월 복수노조제가 통과돼도 실제 설립까지는 7년을 기다려야 했다.

이곳도 제철회사인지라 위험한 현장이 매우 많고 실제로 사망사고, 영구 상해 사고도 빈번히 발생하는 등 근무 환경이 가혹하기로 유명했으며, 1997년 삼미종합특수강 일부 공장 인수 후 신설법인 포스코특수강을 세웠음에도 일부 구 삼미 시절 노동자들을 고용승계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2003년 대법원으로부터 고용 승계의무가 없다고 최종 판결받았다.

언론의 지탄을 받고 노조를 설립하게 된 삼성에 비하면 무노조 문제가 그닥 조명을 받지 못해서 포스코의 노조 설립은 여전히 요원해 보였으나, 2018년에야 금속노조 포스코지부가 창설되었다. 뒤이어 기존 휴면노조도 한국노총 금속노련에 재가입해 정식 출범했다.

2006년 당시 포항건설노조에게 본사가 점거된 초유의 사태도 겪은터라, 노조에 대한 인식이 좋을 리가 없었던 이유도 있다.

2018년 12월 12일 포스코에서는 노조위원장과 간부 2명을 해고하고 간부 2명에게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내리는 처분을 하였다. 민주노총노조에서는 포스코의 노조 와해 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서 갈등이 예상되지만 설립된지 얼마 안된 곳인지라 결속력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이로써 민주노총은 교섭권을 잃게 되었고 한국노총이 단독으로 교섭권을 얻게 되면서 사측과 임금, 단체협상을 주도하게 되었다.

2021년 6월 24일 포스코의 민주노총 노조 간부해고는 부당하다는 서울고법 판결이 내려졌고,# 2022년 1월 부당 해고를 당한 이들은 전원 복직하였다.

2023년 6월 13일부로 민주노총에 가입했던 포스코 노조가 5년만에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탈퇴를 선언했다. 탈퇴 이유로는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포스코 노조가 1/10수준으로 쪼글어드는 동안 상납금은 받을대로 받고 시위 도움은 1도 주지 않은 것에 대하여 불만이 쌓여온데다가 힌남노 태풍당시 금속노조서 지원조차 해주지 않은 것이 발단이 되었다고 밝혔다. 다만 이후 탈퇴가 무효로 법원서 판단되어 금속노조 산하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 노조인 포스코노동조합(1노조)이 2024년 현재 조합원 약 8,800여명으로 교섭대표 노동조합에 해당한다. 2024년 11월 파업이 가결됐으며 출정식을 가졌다.

6. 광고

포스코는 주력 업종이 'B2B(기업간 거래)' 성격을 가진 기업으로서, 일반 소비자와 직접 거래할 일이 거의 없다. 때문에 기업 이미지 광고에 주력하고 있는데, 좀처럼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 높은 광고를 여러차례 선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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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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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 미르 | 응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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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스틸러스, 전남 드래곤즈이라는 프로 축구단 두 곳을 거느리고 있다. 단일 동성 프로 종목의 1사 2구단은 포스코가 유일하다. 전북 현대 모터스, 울산 HD, 부산 아이파크는 각각 현대자동차, HD현대중공업, HDC가 맡고 있으며 셋을 잇는 지주회사가 없기에 1사 3구단이 아니다.[49] 또한 야구나 배구 등지에서는 메이저 리그가 신디케이트와 위성 구단에 데인 것을 본받아 한 회사가 한 구단의 지분을 갖고 있으면 같은 리그 소속 타 구단의 지분을 소유하는 것[50]을 사실상 금지한다.

하지만 해당 구단 팬 사이에선 치가 떨릴 정도로 악명이 매우 높은 모기업이다. 스타 군단이었던 시절도 있지만 다 옛날 얘기다. 기업이 구단을 짐짝 취급한다는 건 팬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소리고 어떤 결과를 만들던지 최소한의 금전적 지원 이상을 기대할 수 없어 양 구단 모두 셀링 클럽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2부로 강등 당한 후 몇 년째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전남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그러니 포스코 축구단의 팬들은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포스코에 매우 부정적이며 그저 다음에 선출되는 회장이 축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고만 있다.

포스코의 축구단 푸대접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2021년에 포항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모기업 관계자는 결승전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전남은 강등 직후 수십억 원 삭감, 매년 1년 단기 자유 계약 선수만 긁어모아 꾸역꾸역 어떻게든 리그에서 버티고 있다. 심지어 2021년에 FA컵을 제패했는데도 별다른 예산 증액이 없어 여러 선수를 타 구단, 특히 포항에 떠나보낸 채 ACL에 나섰고 결국 조별 리그 탈락은 물론, 리그를 꼴찌로 마쳤다.

결론적으로 최악의 지원과 지나친 푸대접으로 인해 오히려 포스코 본인의 얼굴에 먹칠 하는 등 나쁜 결말을 맞이 하고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팬들의 원성이 아주 크다.

그러나 장인화 회장 취임의 이후, 자체적으로 축구에 관심이 많다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포항 스틸러스의 지원금이 더 늘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포항 스틸러스 구단 관계자가, 세르지오 파라이스 감독 이후 처음으로 여름 이적 시장에서 영입을 시도 해본다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이다.# 이로 인해, 포항 스틸러스 팬들은 현재, 장인화 회장님에 대해 무한 찬양 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포스코 설립자 박태준 문서로.

7. 비판 및 논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포스코/비판 및 논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8. 기타

8.1. 사가


포스코 (포항종합제철) 사가
(1절)
끓어라 용광로여, 조국 근대화
줄기차게 밀어가는, 장엄한 심장
겨례의 슬기와 의지를 모아
통일중흥의 원동력 되자
내일의 풍요한 조국건설의
내일의 풍요한 조국건설의
기적을 이륙하는 우리의 포스코[59]
(2절)
녹아라 쇳물이여, 조국산업의,
성장을 다짐하는 뜨거운 동맥
고도로 닦아낸 기술과 역량
우리의 자랑을 세계에 심자
예지의 굳센 날개 힘차게 펴고
예지의 굳센 날개 힘차게 펴고
육대주로 비약하는 우리의 포스코
(3절)
보아라 해돋이를, 푸른 영일만
쇠와 땀의 성지에 소망의 태양
철강인의 긍지와 사명감으로
불타는 정열을 함께 사루자
국민의 신뢰와 축복을 받아
국민의 신뢰와 축복을 받아
무궁하게 발전하는 우리의 포스코

파일:포스코 CI.svg

9. 관련 문서


[구] 구법인 창립, 설립일[신] 신법인 창립, 설립일[구] [신] [5] 본부소[교섭대표] 1노조[7] 경북 예천 출신으로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 한국외대 총장, 주 중국 대사, 통일민주당 부총재 등을 지냈으며 노태우 정권기에 서울 강남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김영삼 정권 말기 문경·예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8] 서해안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으므로 종합제철소 건립에 따른 파급효과가 전국적으로 골고루 미칠 것을 내세웠다고 한다. 반면, 약점으로는 바다의 수심이 얕아 화물선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지적되었다.[9] 이미 다른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었으므로 제철소가 추가로 들어선다면 경제적인 상승효과를 낼 것이라는 장점을 어필하였다고 한다. 약점으로 이미 다른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상태여서 대단위 부지를 필요로 하는 종합제철 사업에서는 터를 잡기가 곤란하고 정유, 비료공장과 같은 기간산업체들과 한데 있어야 한다는 위험부담도 존재했다고 한다.[10] 당시는 광역시가 아니라 경상남도 울산시였다.[11] 현재의 사천시로 기존의 항만 시설을 확장하는 식으로 제철공장 부지를 마련할 경우 개발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것을 앞세웠다고 한다. 약점으로 연관공장이나 야적장을 마련할 만한 배후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지적되었다.[12] 1958년에서 1961년까지 통영 지역구 민의원으로 활동했고, 재무부 정무차관도 역임했다.[13] 사실 이렇게 따지면 TK출신 박정희와 황병태가 TK챙기기를 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14] 6·25 당시 미8군 사령관으로 작전을 지휘했던 밴플리트 장군이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뒤 웨스팅하우스의 고문을 맡으면서 미국 기업 대표들로 방한 투자단을 구성해 종합제철소 예비조사를 실시한 뒤 포항을 추천했다고 한다. 또한, 포항 바다가 깊어 추가로 준설을 하지 않아도 10만 톤급의 화물선이 드나들 수 있었던 데다 배후지도 넓었다는 장점을 들었다.[15] 예정에 없던 이야기라 김종필 의장은 다른 일정으로 참석하지 않았고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박충훈 상공부 장관, 구태회 공화당 정책의장도 당황했다고 한다.[16] 현대와 포철이 제2제철소 사업권 경쟁을 벌이던 시절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해상, 현대상선 등 범현대가 기업이 현대그룹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 한데 모여 있었다. 현재의 형태처럼 각 업종별 기업이 각각 분리된 것은 정주영 창업주의 타계 직전인 2000년부터의 일이다. 아울러 현대그룹의 철강 계열사가 오늘날의 현대제철로 이름을 바꾼 것은 현대자동차그룹 출범 이후인 2006년의 일이다.[17] 현대는 이후 당진제철소를 보유한 한보철강을 인수한 뒤 기존의 INI스틸(인천제철의 후신)과 합병한 후 통합 철강회사인 현대제철을 출범시킴으로써 일관제철소를 갖게 된다.[18] 추가적으로 삼천포도 있었다.[19] 이 부지선정을 두고, 포항제철소 설립시부터 포스코 측과 합작관계를 맺어 온 일본 기업인 도멘(동양면화: 원래 미쓰이물산의 레이온 사업부 였다가 훗날 종합상사로 독립) 서울지사장이었던 모모세 타다시는 자서전에서 "하동 쪽으로 붙여 지으려는 것에 대해 내가 반대 의견을 낸 적 있다"라고 써놓기도 했다.[20] 서울 도봉구의 면적과 비슷하며, 광양 도심 보다 더 크다.[21] 광양제철소 이전까지 해당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곳은 영국 랭커셔에 위치한 Barrow-Hematite 제철소로, 이곳은 산업혁명 시절인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무려 100년 넘게 세계 최대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곳이다.[22] 포항 포스코 부지 넓이는 약 1,200만㎡, 울산 현대중공업 공장 넓이는 약 500만㎡다.[23] 1억 어치의 핫코일을 팔 때 거의 800만 달러의 로스가 일어나는 것이다.[24] 참고로 이 포철의 U자 설계는 당시 협업했던 일부 일본 쪽 기업들이 강력하게 주장해서 그렇게 된 거란 증언들이 있다. 이게 뭐가 문제냐면 이 일본 종합상사들은 협력사 주제에 포철이 나중에 일본 제철기업들의 라이벌이 될 것임을 미리 인지하고 확장성을 애초부터 차단하는 설계를 그 당시부터 심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포철은 저 U자형 설계를 위해 매립한 송도 연안을 도로 파내는 짓거리까지 해야 했는데 이는 지금도 위성지도에 그대로 나온다. 당시에는 한국이 정부도 포철도 진짜 맨주먹만으로 맨땅에 헤딩하느라 저런 꼼꼼하고 치밀한 태클을 몰랐던 것뿐이다.[25] 심지어 박태준 명예회장 라인인 황경로 회장을 대신하여 새로 선임된 정명식 회장과 조말수 사장은 나름의 개혁을 시도했고 박태준 색채 지우기를 시도했으나 결과적으로 자기들끼리 내분을 일으키며 1994년 초에 동반 경질되었다.[26] 이전에도 대내외적으로 POSCO라는 명칭은 사용되긴 했다. 참고로 처음 포스코라는 이니셜이 CI에 도입된 건 1990년의 일이었다.[27] 단, CI는 2001년 9월 28일에 먼저 변경됐다.[28] 1994~1998년 재임. 전두환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냈다.[29] 고로/용광로 최상부에 설치하는 안전 밸브로,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갈 때 가스를 배출해 설비 가동을 안정시키고 작업자의 안전을 보호한다. 제철, 제강 산업에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설비로 분류된다.[30] 포스코 직원 A씨(40) 협력업체 직원 B씨 (32) C씨 (53)[31] 매장량이 리튬 광산 및 관광지로 유명한 우유니 사막의 무려 2.5배에 달한다![32] 정탁 포스코 대표이사 사장은 포스코인터내셔널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이동하였다.[33] 포스코가 주거, 자녀교육 등 직원들의 생활에까지 밀접하게 관여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데다가, 업계의 과점기업이라 이직이 쉽지 않다는 점이 조직문화 혁신을 힘들게 하는 요소이다.[34] 제철소의 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들 중 하나인 코크스의 주성분은 탄소다. 숯이나 다름없는 걸 잔뜩 쌓아놓고 제조 공정에 쓰는데 그곳에 불꽃 하나라도 튀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35] 남자 근로자만 본다면 20.0년이다.[36] 다만 2019년 결산 공시 기준으로는 9,700만원으로 나와있으니 평균 연봉에 대해서는 취사선택 바람[37] 두 달마다 상여금이 8번 추가로 또 입금되는데 이는 월급x100% 기준이기에 현대제철을 제외한 모든 대기업과 달리 현대제철은 상여금을 받고싶은만큼 자유롭게 받을 수 있다[38] 재테크를 하는 직장인들이라면 당연히 초봉부터 높은 현대제철이 유리하다. 또한 현대제철이 임금상승률이 낮은데 이는 이미 연봉이 너무 높아서 더이상 오를 임금이 없기 때문이다.[39] 이 두 학교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를 신청한 이유 중 하나는 직원 자녀들을 확실하게 받아주기 위해서이다.포항은 60%를, 광양은 70%를 포스코 및 계열사, 협력사 자녀로 뽑는 전형이 따로 있다.[40] 그리고 이것도 옛말인 게, 2010년 이후부터는 포스코에서 군대 때문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은 잘 안뽑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탑클래스 그룹을 제외하면 추천서는 구경도 못한다.[41] 당시 광양의 경우 워낙 촌이었기 때문에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모두 순천고·순천여고로 유학가는 형편이었다.[42] 포항의 경우 포항제철고를 비롯한 지곡단지가 포항공과대학교 바로 옆에 위치하여 과외교사 공급이 매우 용이하다. 아예 포스텍 수학과 졸업하고 눌러앉아 학원교사하는 경우도 있다.[43] 포스코이앤씨, 포스코인터내셔널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포스코 계열사들의 자녀들이 많이 재학 중이다. 학교 부지가 포항-광양 두 제철고교보다 많이 협소하다.[44] 영국 타임'지'가 아닌 The Times Higher Education 이라는 영국의 고등교육전문지다.[45] 사실 일부 고위 임원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생산직 직원들 역시 일반 시민들과 다를 바 없는 성장 배경과 학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연봉이 도시 서비스 산업의 기반이 되는 탓에 이러한 우월 의식이 존재한다. 여튼 이 때문에 지역의 일반 주민들은 단지 주민들을 질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질투가 아니다. '아이들이 비행 청소년이 적다'는 21세기에 이르기 전까진 반 즈음 맞는 말이었다. 외부와 단절 되어 있고 사립학교에서 부모 환경이 사실상 같다시피 한 아이들만 모여있다 보니 문제가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구성원 대부분이 포스코 임직원 및 그 가족으로 이뤄져있기 때문에 사고를 칠 수 없는 점도 컸다. 사고를 치거나 비행을 저지르면 지역사회에 삽시간에 소문이 나기 때문에 조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터넷의 보급 및 단지 외 광양 지역과의 교류가 쉬워지면서 지금은 다 똑같다.[46] 자녀가 공부를 굉장히 잘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상위 60%에도 못 들어서 못가는 경우는 그보다 일찍 나간다.[47] 광양 지역의 경우 원래 현재와 같이 공장 바로 옆에 단지를 조성하지 않고 현 광양읍 근처에 조성할 계획이었다고 하지만, 그놈의 보상 문제 때문에 엎어졌다.[48] 2000년 '포항제철노동조합정상화추진위원회' 결성 후 2003년 및 2004년에 포항과 광양제철소에서 각각 노조 정상화 시도를 했으나 강제해산 또는 참여율 저조로 인한 자진해산을 겪었다. 반면 하청업체의 경우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2006년에 '금속노조 광양지역지회(현 포스코 사내하청지회)'를 결성했으나, 사측은 계약해지, 한국노총 가입 유도 등으로 거듭 탄압했다.[49] 다만 이들은 범현대가라 하여 서로 인척 관계의 기업이긴 하다.[50] 같은 종목이라도 성별이 다르면 허용된다. 일례로 현대자동차그룹V-리그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양 구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서로 리그에서 대결할 리 없는 남녀 배구단이라 문제 삼지 않는다.[51] 소변 검사, 혈액 검사, 회사 근처 흡연자 촬영 등이 있다.[52] 다만 외부에서 피고 온 것까지 잡지 않을 뿐이지 제철소 부지와 건물 내부에서 흡연을 하다 적발되면 당연히 징계다.[53] 다만 포스코의 생산기술직 지원자격이 고졸 이상의 학력만 요구하기 때문에 허수가 많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54] 다만 군부대처럼 온통 숲칠을 하지는 않고 일부 민감시설을 적당히 블러 처리한 정도. 참고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경우 보다 북쪽에 있어서 그런지 부지 면적이 그리 넓진 않아서 그런진 몰라도 대부분의 시설이 숲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리고 카카오맵의 경우 일정 비율 이상 확대하면 숲으로 바뀐다.[55] 만일 포스코 인사담당팀에서 제시한 서류나 양식이 아닐 시에는 제철소에 배치 되기 전에 진행하는 신입 연수 기간에 집요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최악의 경우 채용 취소가 될 수도 있으니 제대로 확인 후에 제출하도록 하자.[56] 이미 25주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57] 포스코의 주거래처인 우리은행 지점이나 교대시간에 손님이 많은 식당에서도 자주 보이며 출퇴근 시간에도 시내버스 안과 거리에서 심심찮게 보인다.[58] 일용직 아저씨들도 지인에게 얻어서 입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59] 포항제철때는 포항종합제철 이라고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