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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6:42:09

쿠룩셰트라 전쟁

쿠룩셰트라 전쟁
기간
드와파라 유가 말기, 정확한 연대는 불명, 18일간 지속됨.
장소
인도 쿠룩셰트라 평원[1]
교전세력 1 교전세력 2
교전세력 판다바 5형제군 카우라바 100형제군
지휘관 군주
유디슈티라
총사령관[2]
드리스타드윰나[3]†(1일~18일)
군단장
드루파다[4]
비라타[5]
시크한디[6][7]
체키타나
사티야키
비마
장수
아르주나
나쿨라
사하데바
우파판다바들[8]
아비만유[9]
가토트카챠[10]
이라반[11]
+ 기타 다수
군주
두료다나
총사령관
비슈마[12]†(1일~10일)
드로나[13]†(11일~15일)
카르나[14][스포일러]†(16일~17일)
샬리야[16]†(18일)
아스와따마[17](18일(밤))
군단장
크리파[18]
드로나
샬리야
자야드라타[19]
수다크시나[20]
바가다타[21]
크리타바르마
아스와따마
부리스라바스[22]
샤쿠니[23]
바흘리카[24]
장수
두샤사나[25]
비카르나[26]
유유추[27]
알람부샤[28]
수사르마[29]
+ 기타 다수
병력 7개 악샤우히니
최소 1,530,900명[30]
11개 악샤우히니
최소 2,405,700명
사상자 판다바 5형제 등 8명[31]전멸 아스와따마 등 4명[32]전멸
결과와 영향
판다바의 승리, 카우라바의 멸족
칼리 유가의 시작
1. 개요2. 배경
2.1. 판다바 5형제의 추방과 귀환2.2.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
2.2.1. 판다바 측2.2.2. 카우라바 측
2.2.2.1. 카르나의 비밀
3. 전력의 모집과 편성
3.1. 전력의 모집3.2. 전력의 편성
3.2.1. 시크한디에 얽힌 이야기
4. 전개
4.1. 전투의 규칙4.2. 바가바드 기타4.3. 1일차4.4. 2일차4.5. 3일차4.6. 4일차4.7. 5일차4.8. 6일차4.9. 7일차4.10. 8일차4.11. 9일차4.12. 10일차4.13. 11일차4.14. 12일차4.15. 13일차4.16. 14일차4.17. 15일차4.18. 16일차4.19. 17일차4.20. 18일차
4.20.1. 철퇴 대결
4.21. 18일의 밤과 그 후
5. 뒷이야기6. 참고자료

1. 개요

직역하면 '쿠루 뜰의 전쟁'을 의미하는 쿠룩셰트라 전쟁(힌디어: कुरुक्षेत्र युद्ध, 영어: Kurukshetra War)은 인도 신화의 옛 서사시 중 하나인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핵심 사건이다.

최소 400만, 판본에 따라서는 최대 800만이 넘어가는[33]대병력이 18일간 싸워 양군 모두 전멸했다고 하는, 가히 신화, 그것도 인도 신화니까 가능할 법한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유명한 가공의 전투였다.[34][35]판다바 5형제만 해도 정규 군단 하나를 지휘한 비마를 제외한 나머지 왕자들은 직속 친위대를 이끌고 싸웠으며, 그 외에도 유력한 영웅들은 군단을 지휘하기보단 자기 친위대(하나하나의 규모가 1만에서 10만까지 나온다)를 이끌고 싸우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런 영웅들이 100명 이상 나오고, 18일간 죄다 죽는다. 인류 역사의 무수한 창작물들 중에서도 이 정도 규모의 전쟁이 등장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될 정도. 전근대의 작품으로 한정하자면, 발미키의 라마야나에 나오는 바나라(원숭이) 군단과 락샤사 군단의 전투[36]와, 실낙원에서의 미카엘 천사군과 사탄 천사군의 전투[37] 정도가 이에 견줄 만한데, 실낙원의 경우 세부적인 전투 묘사는 마하바라타에 미치지 못한다.

동시에 이 신화는 마치 실제로 있었던 전쟁을 묘사한 것 같은 상세한 묘사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이를 연구자들 중 일부는 고대[38]에 있었던 어떤 전쟁이 모티브가 되었을 것이라고 보곤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이건 신화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쪽이 더 많다. 힌두교 신앙인들은 칼리 유가가 시작됨을 근거로 기원전 3102년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고고학적으로는 말이 안된다(...). 고고학적으로는 기원전 10세기 즈음으로 추측한다.

마하바라타를 구성하는 18개 파르바(parva) 중 6, 7, 8, 9, 10 파르바를 차지하며, 총 100장에 달하는 하위 파르바 중 60부터 80까지를 차지한다. 다만 이는 본격적인 전투 장면만의 분량이며 전쟁 결정과 전투 준비 과정까지 따지면 큰 파르바는 2개, 하위 파르바는 15장이 더 추가되며 다 합치면 마하바라타 전체의 1/3 정도의 분량을 차지한다 볼 수 있다.

2. 배경

2.1. 판다바 5형제의 추방과 귀환

고대 인도의 하스티나푸라 왕국의 판두 왕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사슴의 형상을 취한 채 관계(...) 중이던 브라만 칸다마를 몰라보고 죽여, 그로부터 "여자와 동침하는 순간 너도 죽을 것"이라는 저주를 받아 자식을 남길 수 없게 되었다. 그렇기에 판두 왕은 아내인 쿤티가 현자 두르바사에게서 받은 축복, 즉 천상의 신들을 불러내 그 자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만트라(주문)를 통해 자신의 후계자를 낳고자 하였다.

첫 번째로 불러낸 것은 정의의 신 다르마[39]였고, 그에게서 지혜롭고 선량한 맏이 유디슈티라가 태어났다. 두 번째로 불러낸 것은 바람의 신 바유였으며, 그 사이에서는 최고의 괴력을 지닌 장사 비마가 태어난다. 그리고 신들의 왕, 인드라를 불러내 가장 특별하고 위대하며 강한 영웅, 아르주나가 태어난다. 이후 쿤티는 더 이상 남을 상대할 수는 없다며 다음 자식을 가지길 거부했으며 대신 다른 아내인 마드리에게 이 만트라를 가르처 줬고, 마드리는 쌍둥이 신[40] 아슈윈을 불러내 나쿨라사하데바라는 쌍둥이를 낳게 된다.

한편, 판두 왕에게는 이복형인 드리타라스트라가 있었다. 드리타라스트라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으며, 이 때문에 왕위를 물려받지 못했었다. 드리타라스트라에게는 시바 신의 축복을 받은 아내 간다리[41]가 있었는데, 이 아내는 현자 비야사에게서 남편만큼 강한 자식 100명을 낳으리라는 축복을 받았었다. 그러나 쿤티가 유디슈티라를 낳았을 때 간다리는 2년 동안이나 임신 상태에서 출산을 하지 못한 상태였고, 쿤티에게서 유디슈티라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자 자신의 배를 세차게 때렸다. 그러자 몸에서 쇠로 만든 듯한 딱딱한 살덩이가 튀어나왔고, 이를 101개로 잘라 항아리에 우유를 붓고 뚜껑을 닫은 후 1년이 지나자 그 살덩이에서 카우라바 100형제와 딸 하나가 태어났다.

그러나 판두가 결국 판단력이 흐려졌는지 마드리가 거부하는데도 그녀와 검열삭제를 벌이다 당연히 즉사해버리고(...) 마드리도 죄책감에 사티를 행하여 자결하자, 첫째 부인 쿤티는 어린 아들 다섯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숲을 떠나 하스티나푸라의 궁정으로 돌아와 몸을 의탁한다. 이전 왕의 다섯 아들과 현재 왕의 100명의 아들이 한 장소에 있게 되었으니 복잡한 왕위계승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내심 드리타라스트라 왕도 쿤티와 판다바들을 불편하게 여겼다. 이 때문에 판다바 5형제와 카우라바 100형제는 어렸을 적부터 서로 대립하였다. 특히 괴력을 지닌 비마가 카우라바 100형제를 수시로 괴롭히고 엽신여겼으며, 카우라바 100형제의 장남이자 유일하게 판다바 5형제와 겨룰 정도의 힘이 있었던 두료다나는 판다바 형제, 특히 비마를 적대하면서 그들을 증오하게 되어 죽이기 위해 각종 음모를 꾸며냈으나 모두 실패했다.

양쪽 형제는 먼저 크리파, 그리고 나중에는 드로나에게서 가르침을 배웠는데 그중 아르주나두료다나, 그리고 드로나의 자식인 아스와따마의 실력이 가장 뛰어났다. 양편의 경쟁이 극심해지던 즈음 카르나가 나타나 아르주나와 겨룰 실력을 과시하여 판다바 5형제의 적개심을 사고, 두료다나의 호감을 사서 왕이 되며 그와 친구이자 신하가 되게 된다.

이 대립은 결국 주사위 노름에서 사기도박까지 불사한 두료다나가 샤쿠니를 앞세워 판다바 5형제의 모든 것을 빼앗고 13년간 추방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두료다나, 두샤사나, 카르나가 이 과정에서 판다바들의 아내 드라우파디를 판다바와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 희롱하고, 심지어 두샤사나는 공개적으로 드라우파디의 옷을 벗기려 하며 두료다나, 카르나 등은 이를 부추기까지 하는 등의 행태는 양측의 대립을 말 그대로 극한까지 치닫게 했다. 13년의 유배 기간이 끝나자 판다바 5형제는 자신의 권리, 즉 정당한 왕위 계승권을 요구하며 두료다나에게 도전했고 당연히 강한 반발에 직면하게 되었다.

2.2.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

양측의 깊은 감정의 골과 그로 인한 대전이 임박하자, 양측 인물들은 어떻게든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판다바 5형제와 카우라바 100형제 및 카르나의 관계는 극히 나빴으나 그 외의 인물들은 대체로 다들 서로가 서로의 가족, 친인척, 친구, 스승/제자, 동맹 등이었고 실질적으로 관계가 좋았기 때문이었다[42]. 또한 정당성은 대체로 판다바 형제 쪽에 있었으나, 발라라마가 말했듯 이미 한번 주사위 도박에 모든 것을 잃었다가 돌려받고도 다시 한번 똑같은 짓을 반복해 다 잃어버린 유디슈타라에게도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43][44] 양측 형제들의 주변 인물들, 왕실의 원로들과 맹우들은 어떻게든 화친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하게 된다.

마하바라타에서 이 파트를 '우드요가 파르바'라고 하는데, '우드요가' 라는 이름은 '노력' 이라는 뜻을 지닌다. 즉 우드요가 파르바는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을 나타내는 파트이다.

2.2.1. 판다바 측

13년의 유배기한이 끝나자 크리슈나는 여러 왕들을 소집했고, 이 모임에서 유디슈타라에게 하스티나푸라 왕국에 대한 정당한 권리가 있음을 선언했고, 사기 주사위 도박으로 왕국을 강탈한 두료다나에게는 합당한 응보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또한 크리슈나는 먼저 협상을 하여 평화롭게 왕국을 돌려받기를 시도할 것이며, 이에 응하지 않으면 그때 비로소 전쟁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크리슈마의 형이자 비마와 두료다나의 철퇴술 스승이었던 발라라마 또한 이에 동의하여 평화를 바라는 카우라바 측의 원로들과 함께 협상으로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판다바 5형제는 망명기간 동안 크리슈나를 믿고 의지하였으며 크리슈나가 평화를 주장하면 가장 분노하여 모든 카우라바 형제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맹세한 비마조차도 맹세를 포기하고 크리슈나의 말에 따를 것이었다. 그러나 드루파다를 위시한 다른 왕들은 두료다나는 절대 평화롭게 권리를 넘겨주지 않을 것이며 결국은 양군이 싸우게 될 것이라고 여기고 각자 군대를 모아 협상이 실패하면 판다바 5형제를 돕고자 움직이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한다.

2.2.2. 카우라바 측

이러한 분위기는 카우라바 측도 마찬가지였다. 판두 왕 이전 시절부터 왕국을 지켜온 원로 비슈마, 양측 형제 모두의 대스승인 드로나와 다른 스승인 크리파, 드리타라스트라와 판두의 이복동생이자 드리타라스트라의 집사이고, 지혜의 축복을 받은 비두라[45] 모두 판다바 측에 정당성이 있음을 인정했고 또한 그 강대한 크리슈나가 돕는 판다바 5형제의 힘은 자신들보다 강하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드리타라스트라 왕과 왕국의 실권자인 두료다나에게 양보하고 판다바 형제들의 권리를 돌려주라고 조언하였다. 드리타라스트라 왕 역시 이에 동의해 자신의 시종인 산자야를 밀사로 파견, 타협을 시도한다. 이에 유디슈티라는 추방 이전 자신들이 지배하던 인드라프라스타를 내놓던가 전쟁을 선택하라고 답한다. [46]

그러나 왕과 원로들이 아무리 간청해도 실권은 두료다나에게 있었다. 판다바 형제들의 요구가 공개되었을 때 두료다나는 절대 물러날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타협책으로 다섯 형제들에게 각자 마을 하나씩만 나눠달라는 최소한의 요구마저도 바늘 하나 꽂을 구멍도 줄 수 없다고 거부하였다. 아르주나에게 강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카르나, 주사위 도박의 주연이였던 샤쿠니 역시 두료다나의 편에 섰다. 마지막 평화 사절로 크리슈나가 직접 왔을 때 두료다나는 이를 거부하였고 크리슈나를 납치하거나 죽이려는 시도까지 한다. 물론 크리슈나는 이를 간단히 제압하고 돌아갔지만.

결국 평화를 위한 노력은 모두 실패하고 양측은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2.2.2.1. 카르나의 비밀
전운이 갈수록 짙어지자, 판다바들의 어머니 쿤티는 단신으로 몰래 카우라바 측의 영웅 카르나를 방문하여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실 그는 일개 마부의 자식이 아니라, 태양의 신 수리야와 쿤티 사이의 자식이라는 것. 쿤티는, 자신이 판두와 결혼하기 훨씬 이전에 신을 불러내어 자식을 얻는 만트라를 알게 되어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만트라를 멋모르고 사용했다가 얻은 자식이 바로 카르나이고, 그 증거로 카르나가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었다는 태양처럼 빛나는 갑옷과 귀걸이[47]를 들었다. 그러나 뒷감당을 질 자신이 없었던 쿤티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카르나를 강물에 떠내려 보냈다는 것이었다. 떠내려온 카르나를 아디라타라는 마부와 그 아내인 라다가 주워 키웠고 지금에 이른 것이었다.

진실을 밝힌 쿤티는 카르나에게 '이제라도 판다바 편으로 전향하여 그들을 위해 싸워 승리와 영광을 얻지 않겠느냐.'고 간곡히 부탁했다. 카르나는 그의 말이 사실임을 느낄 수 있었고 잠시나마 유혹을 느꼈으나 결국 마음을 굳게 먹고 '내가 어떻게 지금껏 나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준 두료다나와 카우라바들을 배신할 수 있느냐.'고 단호히 회답했다. 그러나 이 충격적인 폭로는 카르나의 판다바들에 대한 증오가 어느 정도 풀어지게 하였으며, 결국 카르나는 친어머니의 호소를 무시할 수 없어 '아르주나를 제외한 다른 판다바들은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어머니에게는 전쟁이 끝나도 여전히 아들이 다섯은 남을 것[48]"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판본에 따라 크리슈나가 카르나를 찾아 같은 내용의 설득을 반복하기도 하는데, 카르나 본인도 판다바의 정당성과 우세함, 그리고 카우라바 측의 열세를 인정하고 그들의 파멸을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마음을 돌리지는 않았다.

3. 전력의 모집과 편성

3.1. 전력의 모집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양측은 결렬을 대비하여 뒤로는 은밀히 전력을 결집시켰고, 마침내 판다바 측은 7개 악샤우히니(군단)를, 카우라바 측은 11개 악샤우히니를 끌어모았다. 이것은 오랜 유배 생활로 인해 판다바 측은 세력 기반이 전무하여 동맹국의 원조에 의존해야 했던 반면 카우라바 측은 고대 인도의 지배자라 할 만큼 강대한 세력이였던 하스티나푸라 왕국을 전적으로 수중에 넣고 있었던 탓도 있고, 두료다나가 속임수[49]를 써서 판다바 측의 지원군 일부를 가로채거나 한 탓도 있었다.

또한 두료다나는 크리슈나로부터 지원을 얻기 위하여 크리슈나의 일족인 야다바들의 수도 드와르카를 몸소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는 크리슈나가 잠을 자고 있던 도중 드와르카에 도착하여 윗사람처럼 크리슈나의 머리맡 옆에서 앉아 있었는데, 마침 같은 목적으로 드와르카를 찾은 아르주나도 뒤늦게 도착하여 공손하게 크리슈나의 발자락 옆에 서서 기다렸다. 잠에서 깬 크리슈나는 아르주나를 먼저 본 뒤 곧 고개를 돌려 두료다나를 보았고, 둘의 말을 들은 뒤 "비록 두료다나가 먼저 왔지만 내가 아르주나를 먼저 보았으니 두 명 다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으며, 따라서 잘 훈련된 백만 대군무장하지 않은 크리슈나 자신 하나 중에서 하나씩을 고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일단 선택의 우선권은 관례에 따라 연소자인 아르주나에게 돌아갔는데,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크리슈나를 선택하여 그를 얻었다. 그리고 아르주나는 크리슈나에게 자신의 전차를 몰아달라고 부탁했으며, 크리슈나도 기꺼이 동의하였다. 그러자 두료다나도 기꺼이 야다바의 대군을 선택하여 역시 이를 얻었으며 흡족해 마지않았다[50].

그리고 크리슈나의 형 발라라마는 앞서 보았듯이 두료다나에게 비교적 우호적이었지만, 사랑하는 동생이 비전투원일지언정 어쨌든 판다바 측으로 참전하기로 하자 결국 두료다나의 지원 요청에도 불구하고 중립을 선언해버린 뒤 성지 순례를 떠나버렸다. 또한 크리슈나의 처남인 루크미는 본래 크리슈나와 사이가 좋지 못했지만[51], 판다바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한 개 악샤우히니를 이끌고 허세(...)[52]를 부리면서 판다바 측에 참전을 제안했으나 "그러든지 말든지... 어차피 우리의 승리는 너 말고 크리슈나가 가져다 줄 테니까..." 정도의 미적지근한 대답만을 받으며 사실상 무시당했다. 루크미는 화를 내며 뛰쳐나와 카우라바 측에 다시 참전을 제안했으나, 두료다나로부터도 "우리가 판다바들도 거절한 놈을 받아들일 만큼 급해 보이냐?" 수준의 폭언을 듣고 시무룩해져서 싸움이 시작되기 전 초라하게 전쟁터에서 빠져나왔다.[53] 그 외에 드리타라스트라의 집사 비두라와 시종 산자야[54] 정도 등을 제외하면, 전 인도가 완전히 판다바와 카우라바의 두 편으로 나뉘어 총력전에 돌입했다. 가히 인도 신화계의 세계대전이랄까.

그런데 판본에 따라 발라라마와 루크미 외에도 마니푸르 왕국의 공주 치트랑가다와 아르주나의 아들 바브루바하나[55] 그리고 그 밖에 참전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 왕들도 많았다고 언급되며, 참전한 왕들 역시 세력 중의 일부만을 이끌고 왔다고도 한다. 뭔가 인도 전체의 총력전 같은 규모임에도 실제로는 총력전이 아닌 게 더 무섭다.

3.2. 전력의 편성

한 개 악샤우히니는 전차 2만 1870대, 전투 코끼리 2만 1870마리, 기병 6만 5610명, 보병 10만 9350명이라고 상세한 숫자로 나온다. 이는 전차 1 : 코끼리 1 : 기병 3 : 보병 5라는 최소 구성을 3^7한 값이다.

판다바 측의 악샤우히니들은 각각 드루파다, 비라타, 드리스타드윰나, 시크한디, 체키타나, 사티야키, 그리고 비마가 하나씩 맡아 지휘했으며 총사령관은 드리스타드윰나가 맡았다. 카우라바 측의 악샤우히니들은 크리파, 드로나, 샬리야, 자야드라타, 수다크시나, 바가다따, 크리타바르마, 아스와따마, 부리스라바스, 샤쿠니, 바흘리카가 맡았으며 총사령관은 비슈마가 맡았다. 단, 비슈마는 "비록 최선을 다하겠으나, 내가 사랑하는 판다바 형제들을 직접 죽이지는 않을 것이며, 또 여자로 태어난 시크한디와는 싸우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내걸어 못을 박았고 두료다나도 어쩔 수 없이 이를 수용했다. 다만 두료다나의 기대를 잔뜩 받던 카르나는 전투 개시 직전 비슈마와 심한 다툼[57]을 벌인 끝에 삐져서 두료다나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일선에 나가기를 거부했다. 또한 이외에도 각각의 왕자들, 주요 영웅들은 각 군단에 소속되지 않고 개별 친위대를 이끌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렇게 자신의 친위대를 이끌고 돌아다니는 영웅들이 거진 100명 이상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가토트카챠와 알람부샤라는 두 락샤사(악귀)의 지도자는 서로 락샤사 대군을 편성해 각각 판다바와 카우라바를 지원하며, 아르주나의 아들이자 나가(뱀) 왕자 이라반은 나가 기병대를 거느리고 판다바들을 따라 참전했다. 하여간 결과적으로 양군 전력의 편제는 다음과 같았다:

판다바 측(7개 악샤우히니)
카우라바 측(11개 악샤우히니)
다만 전체적인 군세는 카우라바 측이 더 우세했지만, 양측 영웅들의 실력 면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비슈마는, 양측의 영웅들의 실력을 가늠하여 그들을 5천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라티(rathi), 6만 명(라티들12명)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아티라티(atirathi), 72만 명(또는 아트라티들 12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마하라티(maharathi)의 세 가지 등급으로 분류하고, 카우라바 편에서는 수다크시다, 샤쿠니, 자야드라타, 그리고 두료다나를 제외한 카우라바 99명은 라티(두료다나는 라티 8명에 해당), 크리타바르마, 샬리야, 부리스라바스, 크리파가 아티라티, 알람부샤, 바가다따, 드로나, 아스와따마가 마하라티(카르나[61]와 비슈마 본인은 마하라티 2명에 해당)에 속하며, 판다바 측에서는 유디슈티라, 나쿨라, 사하데바, 시크한디가 라티, 사티야키, 드리스타드윰나, 가토트카챠가 아티라티, 비라타, 드루파다, 드리슈타케투, 비마, 아비만유가 마하라티(아르주나는 마하라티 2명에 해당)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전개 부분을 보면 차차 알게 되겠지만, 이 분류가 비례식처럼 항상 딱딱 들어맞은 것은 아니고 오히려 유동적이고 변칙적으로 작용되었다.

3.2.1. 시크한디에 얽힌 이야기

한편, 비슈마는 두료다나에게 적장 시크한디의 기구한 사연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쿠룩쉐트라 전투로부터 아주 오래전에, 비슈마는 이복동생 위찌트라위리야의 아내로 삼아 주기 위하여 카시 국왕의 세 딸인 암바, 암비카, 암발리카를 납치한 적이 있었다. 암비카(훗날 드리타라스트라의 어머니)와 암발리카(훗날 판두의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위찌트라위리야와 결혼하였으나, 그들의 언니 암바는 자신과 약혼한 사우발라의 국왕 살와[62]에게 보내 달라는 요구를 굽히지 않았다. 비슈마는 결국 암바를 살와에게 보내 주었지만 정작 살와는 암바를 소박놓았고(...), 암바는 다시 위찌트라위리야에게 가보았지만 거절당했고, 비슈마에게도 청혼해보았지만 그는 독신을 맹세한 몸이였던지라 퇴짜 맞았기에 마침내 오도가도 못 하는 불쌍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자 암바는 비슈마의 스승이기도 한 브라만 파라슈라마에게 도움을 청하여 사제 간의 대결이 벌어졌다. 그러나 치열한 싸움 끝에 파라슈라마도 지고 말았는데, 천하의 파라슈라마도 비슈마를 이기지 못하니 이대로는 살아서 자기 원한을 갚을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암바는 목숨을 건 고행을 하였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시바가 나타나 다음 생에서 복수를 할 수 있으리라는 축복을 내려주자, 그녀는 비로소 기뻐하며 다음 생에 비슈마를 죽이겠다고 벼르면서 불 속에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암바는 판찰라의 국왕 드루파다의 딸로 다시 태어났고, 바야흐로 원수를 갚기 위하여 판다바들과 함께하게 된 것이었다.

4. 전개

4.1. 전투의 규칙

당시 크샤트리아간의 전투는 막싸움(...)이 아닌, 다르마유다(dharma-yuddha)라고 하는 엄격하고도 복잡한 규율들이 적용되는 중요한 의례였고, 이 규율을 어기는 자는 심한 지탄을 피할 수 없었으며 본인도 이를 수치스러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양군의 수뇌부도 당연히 이 규칙에 입각하여 전쟁을 수행하기로 엄숙히 합의했는데, 그 규칙이란,

...등등이었다.

다만, 이 모든 규칙들은 전쟁이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하나하나 전부 깨져나가게 된다. 이는 세상이 전대의 법도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 칼리 유가로 들어섰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특히 상당수의 규칙은 세계를 유지하는 비슈누의 아바타라인 크리슈나의 직간접적인 개입으로 깨졌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점.

4.2. 바가바드 기타

양군이 대치를 끝내고 전투가 개시되기 바로 전날 밤, 적진을 바라보던 아르주나는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친족들과 스승, 친구들과의 유혈사태를 피할 수 없게 된 현실을 한탄하며 크리슈나에게 공포와 고통, 죄책감, 망설임 등을 하소연했고 그러자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두려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본분과 의무에 충실할 것을 주문하는 설법을 하여 아르주나의 마음을 다잡았다. 한마디로 압축해서 표현하면, "겁먹거나 죄책감에 빠지지 말고, 너 본연의 의무를 다하라!".

이 부분은 자체로도 아주 심오하고 분량도 많으니, 자세한 것은 바가바드 기타 참조.

4.3. 1일차

드디어 양쪽 군대가 진형을 펼치고 전투에 돌입하기 직전, 판다바 측의 군주 유디슈티라는 비무장 상태로 문득 카우라바 진영으로 공손히 걸어들어갔다. 이 행동은 카우라바 측을 당황하게 하였지만, 유디슈티라는 그대로 적진으로 들어가 일족의 최연장자인 비슈마, 스승인 드로나와 크리파, 그리고 외삼촌 샬리야에게 마지막으로 공경의 예를 표했고 이들도 흡족해하며 그의 인사를 받아들였다. 유디슈티라가 다시 자기 진영으로 돌아간 후, 바야흐로 희대의 대격돌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전투 1일째가 되던 날, 판다바 군대는 심한 열세에 놓였다. 비슈마가 앞장서서 판다바 군대에 돌진하자, 판다바 진영이 아비만유가 그를 막아섰으나 결국 비슈마를 당해낼 수는 없었고 목숨만 건진 채 길을 내주었다. 비라타의 아들인 우따라[64]는 샬리야에게, 다른 아들인 스웨따는 비슈마에게 목숨을 잃어 결과적으로 판다바 진영의 사기가 꺾이고 말았다.

4.4. 2일차

전투 2일째가 되던 날, 카우라바 군대는 전날의 승기를 이어 판다바 진영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아르주나는 카우라바 군의 저항을 뚫고 비슈마에게 당도하여 그와 대결을 벌였는데 둘의 무력은 막상막하여서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한편 드로나와 드리스타드윰나도 치열한 결투를 벌였는데, 드리스타드윰나가 밀리기 시작하자 비마가 구원에 나섰고 두료다나도 칼링가의 군대를 맞서 보내는 등 전장은 큰 혼돈에 빠져들었다. 그 와중에 사티야키가 비슈마의 전차몰이꾼을 쏘아 죽여 비슈마의 전차가 통제를 잃고 전장을 이탈하자, 판다바 군대는 반격을 감행하면서 카우라바 군을 격파하여 첫날의 패배를 만회하였다.

4.5. 3일차

전투 3일째가 되던 날, 카우라바 군은 비슈마가 선봉에 선 독수리 형상의 진형을, 판다바 군은 비마와 아르주나를 양끝에 배치한 초승달 형상의 진형을 갖추었다. 카우라바 측은 아르주나를 향해 집중 공격을 가했으나 아르주나는 이를 성공적으로 격퇴하였고, 샤쿠니도 아비만유와 사티야키를 공격했으나 역시 격퇴되었다. 비마와 그 아들 가토트카챠는 두료다나를 공격하여 적진을 와해시켰다.

무너지는 카우라바 군을 간신히 수습한 것은 비슈마였지만, 두료다나는 되려 그가 판다바들에게 너무 관대하다며 불평을 쏟아내었다. 이 비난에 대답이라도 하듯 비슈마는 전열을 가다듬고 판다바 진영으로 돌격하여 수많은 적병들을 쓸어버렸다. 아르주나가 나서서 큰할아버지를 막아 보려 시도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아르주나는 도저히 비슈마를 쏠 수 없었고, 그런 아르주나에게 분통이 터진 크리슈나가 "당신이 할 수 없다면 내가 대신 비슈마를 죽여 드리겠다"며 수레바퀴를 빼어 들고 비슈마에게 달려드는 것을 겨우 말려서 데려와야 했다(...). 크리슈나는 전쟁 전에 본인이 무기를 들고 직접 싸우지는 않는다는 맹세를 했기 때문에 아르주나가 기겁하고 그를 말린 것이다. 한편으로 비슈마는 크리슈나가 비슈누의 화신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맹세를 깨면서까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에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고자 했으나 아르주나가 끼여드는 바람에 생존하고 말았다.

4.6. 4일차

전투 4일째가 되던 날, 비슈마는 여전히 위력적이였다. 카우라바의 영웅들이 아비만유를 둘러싸고 포위 공격을 가하자 분노한 아르주나와 드리스타드윰나가 그를 구원하러 당도하였고, 여기에 두료다나와 그 형제들, 그리고 비마까지 가세하였다. 두료다나는 많은 코끼리들을 내보내 비마를 상대하게 하였지만, 오히려 비마가 철퇴를 들어 코끼리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자 이에 놀란 코끼리들이 아군까지 짓밟으며 도망치는 바람에 카우라바 진영은 더욱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두료다나가 재차 총공격을 명했지만 역으로 비마에게 카우라바 형제를 상당히 잃고 말았다.

전투가 끝난 후 두료다나는 비슈마를 찾아 하소연을 늘어놓았지만, 들을 수 있었던 말은 오직 지금이라도 화평을 구하라는 충고뿐이였다.

4.7. 5일차

전투 5일째가 되던 날, 비슈마, 드로나, 사티야키, 아르주나, 비마 등등이 전장 곳곳에서 활약하며 수천 명의 적병들을 죽이고 다니는 등 해가 질 때까지 떼죽음이 계속되었다. 이 날 사티야키는 부리스라바스에게 자식을 10명이나 잃었다.

4.8. 6일차

전투 6일째가 되던 날, 판다바 군은 물고기 형상의 진형으로, 카우라바 군은 왜가리 형상의 진형으로 군대를 배치하였다. 수많은 학살이 벌어졌고 특히 드로나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쏘다니며 판다바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다. 비마는 카우라바 형제들을 상대하며 진격하다가 역으로 포위당해 위기에 빠졌으나, 드리스타드윰나와 아비만유 등의 구원을 받아 살아났다. 두료다나도 비마를 잠시 상대했지만 결국 패퇴하고 말았다.

4.9. 7일차

전투 7일째가 되던 날, 이날도 양 군은 혼전을 벌였다. 판다바 진영에서는 비라타의 아들 샹카가 드로나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아슈와타마는 시크한디를 제압했고, 샬리야는 나쿨라와 사하데바와 싸우다가 패퇴했다.

4.10. 8일차

전투 8일째가 되던 날, 카우라바 군은 거북 형상의 진형을, 판다바 군은 삼지창 형상의 진형을 펼쳐서 격돌하였다.

이날, 비마에 의해 카우라바 형제들 중 17명이 전사했고, 또 카우라바 진영의 알람부샤에 의해 아르주나의 아들 이라반이 전사했다. 이라반의 죽음을 목도하고 분노한 가토트카챠가 카우라바 측에 많은 피해를 입혔고, 또 투창을 던져 두료다나를 거의 죽일 뻔했으나, 방가의 국왕이 코끼리를 몰아 투창을 가로막은 덕에 살아날 수 있었다.

전쟁이 갈수록 지지부진해지고 참혹해지자, 염증이 난 두료다나는 큰할아버지 비슈마를 찾아가 "제발 위력을 발휘해서 판다바들을 몰살시키고 우리들을 살려 달라"고 떼를 썼다. 결국 비슈마는 판다바들에 대한 사랑을 접고 두료다나에게 다섯 개의 화살을 내어주면서 "내가 가진 모든 기력을 이 화살들에 불어넣었으며, 이 화살들로 내일 판다바 다섯 명을 전부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두료다나는 화살들을 받아들고 의기양양해서 자신의 막사로 돌아왔으나, 어느새 모든 것을 간파한 크리슈나의 사주를 받은 아르주나가 그를 방문하여 예전의 은혜[65]를 상기시키며 화살들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자, 어쩔 수 없이 화살들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4.11. 9일차

전투 9일째가 되던 날, 아비만유는 선봉에서 알람부샤의 대군을 박살냈다.

한편 크리슈나의 격려를 받은 아르주나는 재차 적장 비슈마를 상대하러 나아갔다. 두 전사가 서로를 향해 쏘아 댄 화살들이 장막을 이룰 정도였지만, 아르주나가 여전히 결심을 내리지 못하였음을 눈치챈 크리슈나가 또다시 전차 바퀴를 뽑아 비슈마에게 달려드는 것을 아르주나가 무기를 들지 않겠다고 한 맹세를 거듭 상기시키며 사정을 해서 전차로 데려와야 했다(...). 결국 비슈마를 정정당당한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겠다고 결론지은 판다바 측은 마침내 졸렬한 꼼수(?)를 도모하기에 이르렀다.

4.12. 10일차

전투 10일째가 되던 날, 판다바 군은 드디어 비슈마의 약점인 시크한디를 앞세워 비슈마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시크한디가 쏘아대는 화살을 맞으면서도 비슈마는 끝내 여성의 몸으로 태어난 시크한디와 대적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은 채 일체 반격을 하지 않았다. 아르주나도 시크한디의 뒤에 숨어 비슈마에게 많은 화살을 날렸고[66], 끝내 비슈마는 온몸에 화살이 박힌 채 쓰러졌는데, 어찌나 촘촘하게 박혔던지 비슈마를 꿰뚫은 화살들이 그 몸을 지탱해서 땅에 닿지 않게 할 지경이였다고 전해진다.

일족의 웃어른이 쓰러지자, 판다바와 카우라바 양 군은 잠시 적대행위를 멈춘 채 비슈마 주위로 모여들었다. 비슈마가 자신의 목을 받추어 줄 무언가를 부탁하자 아르주나는 화살 세 대를 비슈마의 머리맡에 쏘아 '베개'를 만들어주었고, 또 목을 축일 무언가를 부탁하자 다시 아르주나가 화살을 땅에 쏘았는데 그곳에서 샘물이 솟아나와 비슈마의 갈증을 해소해주었다. 비슈마는 주위에 모인 양 군에게 지금이라도 평화를 맺을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양 군 모두 비슈마를 대단히 존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비슈마는 전투가 끝난 뒤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아, 훗날 유디슈티라와 판다바들에게 왕도와 다르마에 대한 기나긴 가르침을 주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을 떴다고 전해진다.

4.13. 11일차

비슈마가 쓰러지자, 두료다나와 카르나, 두샤사나 등은 브라만 드로나를 자신들의 새로운 사령관으로 옹립하기로 결정하였고, 카우라바 측의 모든 장수들과 장병들도 이 결정을 지지하였으며 드로나 본인도 자신의 의무를 엄숙히 받아들여 카우라바에게 승리를 안겨주겠노라고 맹세했다. 또한 이날부터는 비슈마와의 반목으로 그동안은 후방에 머물렀던 대영웅 카르나가 비로소 일선에 나서게 되어, 카우라바 진영의 크나큰 기대를 받았다.

이때 두료다나는 드로나에게 "나는 유디슈티라가 목숨을 잃는 것을 원치 않고, 다만 드로나 스승님께서 그를 생포하여 주시기만 한다면 그대로 전쟁을 끝낼 생각이다. 해주실 수 있겠는가?"는 요청을 하였고, 안 그래도 판다바와 카우라바간의 화해와 평화를 바라던 드로나는 기꺼이 제자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약속하고 말았다. 드로나는 두료다나가 유디슈티라를 굴복시켜 일단 승리를 이룩한 뒤, 판다바들에게 다시 어느 정도의 왕권을 나눠주어 돌려보내려 한다고 덥썩 믿어버린 것이었으나, 사실 두료다나는 판다바들과 다시 사이좋게 지내려는 생각은 당연히 없었고(...), 더 적은 희생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나름의 계획을 세운 것에 불과했다. 두료다나는, 포로가 된 유디슈티라는 크샤트리아 다르마에 입각하여 패배를 인정하고 판다바 군을 순순히 해산시킬 터였지만, 혹여 그가 죽는다면 오히려 분기탱천한 남은 판다바들이 카우라바 측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계산한 것이다. 하여간 두료다나의 속마음이 어쨌든 간에[67], 드로나가 그의 부탁을 들어주겠노라고 한 사실은 빠른 속도로 양 군 사이에 퍼져나갔다.

그리하여 전투 11일째가 되던 날, 드로나는 오직 유디슈티라 한 사람만을 사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그런데 드로나가 유디슈티라의 활을 부수고 그를 거의 사로잡으려 한 그 순간, 아르주나가 등장해서 굉음과 함께 화살비를 쏟아내어 드로나를 물러나게 하고 유디슈티라를 지켜내었다.

4.14. 12일차

전장에서 돌아온 드로나는 두료다나에게, 아르주나가 유디슈티라를 경호하는 한 유디슈티라를 생포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그로부터 아르주나를 떼어놓을 데에 대한 방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말을 들은 트리가르타의 국왕 수사르마는 그의 다섯 동생들과 휘하의 삼사프타카[68] 대군과 함께 "아르주나를 죽이든지, 아니면 아르주나에게 죽겠다"는 맹약을 하고 아르주나와 결사적으로 싸워 그를 유인하기로 하였다. 수사르마와 그의 삼사프타카 대군은, 풀로 짠 옷을 입고 불 앞에서 자신들의 장례식을 미리 치른 뒤, 아르주나를 찾아 전장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전투 12일째가 되던 날, 수사르마와 삼사프타카들은 전장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으로 아르주나를 도발하여 유인하였다. 아르주나는 이것이 자신을 유디슈티라로부터 멀리 떼어 놓으려는 술책임을 간파하였지만, 그렇다고 자신에게 도전하는 삼사프타카들을 무시할 수도 없어서 일단 그들을 상대하러 나아갔다. 아르주나가 삼사프타카들과 혈전을 벌이면서 계획했던 대로 유디슈티라와 멀리 떨어지자, 드로나는 유디슈티라를 생포하기 위해 그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드리스타드윰나를 비롯해서 다른 판다바 장수들과 병사들이 드로나를 막아섰고, 드로나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내기는 했지만 결국 유디슈티라를 생포할 수는 없었다.

한편 이날 카우라바 진영에서 프라그죠티샤의 국왕인 바가다따와 그 전투 코끼리 수프라티카가 크게 활약했는데, 바가다따는 먼저 비마를 공격하여 그의 전차를 부수고 그를 거의 깔아뭉개 죽일 뻔 했다. 다사르나의 국왕이 코끼리를 몰고 와 간신히 비마를 구출했지만, 바가다따와 수프라티카는 곧바로 다사르나의 국왕의 코끼리를 죽인 후 사티야키, 아비만유 등을 상대하며 판다바 군대에 대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오후 즈음에야 간신히 수사르마와 삼사프타카들을 따돌린 아르주나가 바가다따를 상대하게 되었고 곧 그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바가다따는 급히 코끼리를 모는 데 쓰는 막대에 바이슈나바아스트라를 담아 아르주나에게 날렸으나, 이것은 원래 비슈누가 바가다따의 아버지인 나라카에게 준 것이었기에, 결국 원래 주인의 아바타라인 크리슈나가 몸을 날려 막자 그를 해치지 못하고 목에 감겨서 화환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자 아르주나는 화살을 쏘아 먼저 수프라티카의, 그리고 곧이어 바가다따의 목숨을 끊고 말았다.

4.15. 13일차

전투 13일째가 되던 날, 이날도 수사르마와 삼사프타카들은 아르주나를 남쪽으로 유인해서 유디슈티라로부터 멀리 떼어 놓는데 성공했다. 그 사이, 드로나를 포함한 카우라바측의 주력은 연꽃 형상의 진형, 즉 연화진을 펼치며 유디슈티라 진영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이 진형은 상대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이를 완전히 격파하는 방법을 아는 것은 아르주나와 크리슈나밖에 없었고 그 둘은 수사르마를 상대하느라 전장 반대편에 가 있는 상태였다.

결국 판다바들은 아르주나로부터 연화진으로 진입하는 방법을 배워 익힌 아르주나의 아들 아비만유[69]를 앞세워 일단 연화진으로 줄줄이 들어간 뒤 어떻게든 격파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래서 아비만유가 앞장서고 나머지 판다바들이 뒤따라 연화진에 진입하려고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비만유가 연화진에 들어선 그 순간 나머지 판다바들의 앞을 신드의 국왕 자야드라타[70]가 막아서면서 아비만유만 졸지에 역으로 포위당한 형국이 되어 그는 홀로 적들을 상대해야 했다. 앞서 나온 대로, 크샤트리아의 교전수칙에 따르면 혼자인 전사를 여럿이 공격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었지만 카우라바는 그것을 저버리고 드로나, 카르나, 샬리야, 아스와따마, 크리타바르마 등 쟁쟁한 전사들이 그를 집중공격하였다. 아비만유는 용감히 분전하였으나 숫자에 밀려 결국 모든 무기를 잃고 만신창이의 몸으로 전차도 부서져 홀로 맨몸으로 싸우게 되었다. 이 역시도 다치거나 무기가 없는 전사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 전차에 타지 않은 전사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교전수칙을 죄다 깬 것으로 이 상태에서도 아비만유는 꺾이지 않고 싸웠으나 결국 두샤사나의 아들의 손에 죽었다[71]. 아비만유가 죽자 카우라바의 장수들은 시체를 에워싸고 춤추며 기뻐했으나, 이러한 일족의 비열함에 치를 떨면서 두료다나의 이복형제 유유추는 무기를 버린 뒤 카우라바 군을 떠나고 말았다[72].

귀환 후 아들의 비참한 죽음을 알고서 비통함과 분노가 극에 달한 아르주나는, 스승님 드로나한테는 감히 덤비지 못하고 "내 아들의 죽음에 1차적인 책임이 있는 신드의 왕 자야드라타를, 내일 해가 지기 전 직접 죽여버리겠다!"고 선언했으며 이를 지키지 못하면 스스로 불에 뛰어들겠다고도 맹세했다. 아르주나의 선언을 전해듣고 공포에 휩싸인 자야드라타는, 두료다나에게 자신을 본국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애원하였으나, 두료다나는 그의 요청을 반려하였고 대신에 최상의 경호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오히려 두료다나는, 다음 날 하루 동안 자야드라타를 어떻게든 지켜내기만 하면 맹세를 이루지 못한 아르주나가 스스로의 말을 지켜 자살할 것이라고 생각해 이를 역전의 기회로 여겼다!

4.16. 14일차

그리하여 전투 14일째가 되던 날, 카우라바 측은 원형진-연화진-첨두진의 3중 방어망을 펼친 후 그 한가운데에 자야드라타를 배치하여 그를 경호할 만반의 채비를 갖추었다. 이에 대해 판다바 군은 아르주나가 단신으로 적진을 돌파하여 자야드라타를 상대하기로 하고, 나머지 주력이 드로나와 카우라바들의 주력을 상대하기로 하였다.

아르주나는 가장 먼저 드로나와 맞붙었으나 재빨리 우회하여 계속 전진하였다. 그 후 칼링가의 왕 스루타유드하와 싸워 그를 죽였고[73], 곧이어 캄보쟈의 군대와 그들의 왕 수다크시나를 공격하여 이들도 전멸시켰다. 당황한 두료다나가 급히 스승 드로나로부터 브라흐마의 갑옷을 빌려 입고 아르주나의 앞을 막았으나, 이미 그 갑옷의 정체를 알고 있던 아르주나는 갑옷의 틈새마다 화살을 쏘아 두료다나를 무력화시킨 뒤 쫓아내었다.

카우라바들의 방어망이 아르주나에게 줄줄이 깨져나가자, 남은 판다바들도 카우라바들을 향해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드리스타드윰나가 드로나를 향해 기세좋게 덤벼들었지만 접전 끝에 밀려났고, 다시 사티야키가 달려와 치열한 싸움을 벌렸지만 역시 드로나를 이길 수는 없어서 결국 판다바의 대군이 그를 구출해야만 했다. 초조해진 유디슈티라는 자신의 경호가 약해지는 것도 무릅쓰고 사티야키와 비마를 보내 카우라바들을 분산시켜 적진 한가운데에서 분투하던 아르주나를 돕도록 명령하였다.

적진으로 향한 비마는 카우라바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으나 이들을 전부 격파하여 많은 카우라바 형제들을 살육하였다. 그 중에는 판다바들에게 온정적이였던 비카르나도 있었는데, 비마도 비카르나만큼은 죽이고 싶지 않아했지만, 비카르나도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자 물러서지 않았기에 결국 그의 목숨마저 앗아갈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비마는 드로나와 마주했는데 이 대결은 비마가 철퇴를 던져 드로나의 전차를 부숨으로서 제압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다음으로 비마를 상대한 것은 카르나였다. 둘은 막상막하의 혈전을 벌였으나 이번에는 날렵한 카르나가 지치고 흥분한 비마에게 상처를 조금씩 입히는 식으로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두료다나가 보낸 카우라바 형제들이 카르나를 돕고자 비마에게 덤벼들었으나 이들은 전부 비마에게 잡혀 죽고 말았다. 결국 비마는 수세에 몰려 궁지에 처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카르나가 친어머니 쿤티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최후의 일격을 보류했기 때문에 간신히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한편 역시 적진으로 출격한 사티야키는 금세 부리스라바스[74]와 싸움이 붙었는데, 그동안 지친 사티야키는 부리스라바스를 이길 수 없었고 결국 기절한 끝에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싸움은 근처에 있던 아르주나의 시선을 끌게 되었고, 부리스라바스가 칼을 들어 적을 죽이려 한 그 순간 아르주나는 화살을 날려 그 오른팔을 잘라내고 말았다[A]. 부리스라바스는 당황하여 아르주나에게 "왜 남의 싸움에 끼여드느냐"는 항의의 말을 쏟아냈지만, 돌아온 것은 "아비만유를 비열하게 죽여 놓고, 이제 사티야키마저 기절한 상태에서 죽이려 하는가"라는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말문이 막힌 부리스라바스는 조용히 앉아서 요가의 자세를 취하였는데, 바로 그 순간 깨어난 사티야키가 바로 부리스라바스의 목을 쳐서 죽이고 말았다(...). 사티야키는 물론 자신의 행위가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으나 사방에서 쏟아진 비난과 야유를 피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아르주나와 크리슈나는 카우라바 군대의 마지막 저항을 돌파하고 드디어 자야드라타의 앞에 당도하여 그와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그러나 아르주나가 죽일 듯한 기세로 자야드라타에게 맹공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야드라타는 의외로 무너지지 않고 잘 싸웠다. 그렇게 시간이 지체되던 중 해가 완전히 지평선으로 넘어가자, 카우라바 진영은 환호하기 시작하였으며 자야드라타 본인도 스스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크리슈나가 살짝 마술을 부려 착시를 일으킨 것에 불과했기에 빈틈을 놓치지 않은 아르주나는 서둘러 화살을 날려 방심한 자야드라타의 목을 날려 버렸다.

다만 자야드라타를 죽이는 데에 성공했으나 아르주나로서는 아직 할 일이 한 가지 더 남아 있었다. 일찍이 자야드라타의 아버지인 브리타크샤트라가 "내 아들의 목을 땅에 떨어트리게 하는 자는 그 자신의 머리도 산산조각이 나게 될 것"이라는 저주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아르주나는 얼른 하늘로 날아간 자야드라타의 머리가 땅에 닿지 않도록 연거푸 화살을 날려 그것을 전장 근처의 한 아쉬람[76]으로까지 날려보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수행자로 나선 늙은 브리타크샤트라가 기거하고 있었는데 자야드라타의 머리는 하필 눈을 감고 명상을 하던 그 아버지의 무릎팍에 그대로 떨어졌다. 브리타크샤트라가 일어서자, 자야드라타의 머리는 땅으로 굴러 떨어졌고(...) 곧 저주가 실현되어 자야드라타의 아버지의 머리는 수백 개의 조각으로 박살이 났다.

한편 이날에는 해가 진 후에도 양 군은 서로 물러서지 않고 전투를 그치지 않았다. 양측은 심지어 횃불을 동원하여 명령과 신호를 주고받는 방법까지 고안해내기에 이르렀다. 달이 떠오르자, 비마와 락샤사의 아들 가토트카챠는 공중에 날아올라 무시무시한 마술이며 화살비를 쏟아내 셀 수 없이 많은 카우라바 장수들과 전사들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카우라바 군의 락샤사 알람부샤가 그를 저지하려 시도하였으나 혈투 끝에 되려 제 목이 잘리는 신세가 되었다. 피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카르나는 결국 아르주나를 죽이기 위해 아껴왔던 필승의 병기인 투창 샤크티가토트카챠를 향해 내던졌다. 가슴을 관통당한 가토트카챠는 힘없이 하늘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몸을 최대한 불려서 카우라바 진영에 추락하면서 무려 한 개 악샤우히니에 달하는 병력이 압사당했다고.

4.17. 15일차

전투 15일째가 되던 날, 드로나는 판다바 진영을 향해 브라흐마스트라를 마구 써대기 시작했지만 천신들의 제지로 이를 그만두어야 했다. 하지만 브라흐마스트라 없이도 드로나는 충분히 위력적이었고, 그는 드루파다비라타를 포함해 수많은 판다바 장수들과 전사들을 기세등등하게 죽이고 다녔으나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다.

도저히 정정당당한 방법으로는 드로나를 저지할 수 없게 되자, 판다바 측은 크리슈나의 사주 하에 속임수를 써서 드로나를 잡기로 결정했다. 아들 아스와따마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가 전의를 잃게 될 것이라고 판단, 먼저 비마가 아스와따마라는 이름의 코끼리를 죽인 뒤 드로나에게 "내가 아스와따마를 죽였다!"라고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이를 믿지 못한 드로나는 유디슈티라에게 고개를 돌리고 사실을 물어보았는데, 이는 드로나가 유디슈티라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떠한 거짓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으로 그때까지는 실제로 그랬다.

그러자 유디슈티라는 드로나에게 "아스와따마는 죽었습니다. 단, 당신의 아들이 아니라 코끼리 아스와따마가..."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이 부분은 판본마다 조금씩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떤 전승에서는 유디슈티라가 일부러 뒷부분은 안 들리게 소곤소곤 말했다고 전해지고, 어떤 전승에서는 판다바들이 나팔을 불고 북을 쳐서 말 뒷부분을 끊었다고 하고, 또 어떤 전승에서는 드로나가 유디슈티라의 대답의 앞부분만 지레 듣고 실신해버렸다고도 한다. 이 직후에 그동안 땅에서 한 뼘 위 정도로 떠다니던 유디슈티라의 수레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못했는데, 이는 고결했던 유디슈티라도 드디어 속세의 속물로 떨어졌다는 뜻이라고도 하고, 혹은 거짓말을 하는 데에 대한 죄책감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 유디슈티라의 속마음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고도 한다.

하여간 아들이 죽었다는 거짓말을 드로나에게 들려주었다는 것이 핵심. 이 엄청난 거짓말을 마침내 진실이라고 믿어버린 드로나는 마차 위에서 그대로 실신했고[77], 그에게 아버지 드루파다 왕을 잃은 드리스타드윰나가 달려나가 공포와 만류의 아우성이 무성한 가운데 드로나의 목을 쳐서 원수를 갚았다.

4.18. 16일차

드로나가 전사하자, 두료다나는 카르나를 새로운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였고 그를 앞세워 전쟁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이때 카르나는 크리슈나를 전차 몰이꾼으로 둔 아르주나에 대적하기 위하여 크리슈나에 버금가는 전차몰이 솜씨를 지닌 샬리야에게 자신의 전차를 몰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전투 16일째가 되던 날, 카르나는 판다바 군대에 맹공을 가하여 그들이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패주하게 하였고, 아르주나도 카우라바 군대에 똑같이 맞서 싸웠다. 카우라바들 중 둘째이던 두샤사나는 이날 비마에게 습격당하여 오른쪽 팔이 몸통에서 분리되어졌고 또 가슴팍이 뜯겨져 나갔으며[78], 비마는 그의 피를 마시고 시체 위에서 춤을 추면서 원수를 갚은 것을 자축했다. 카르나조차 이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고 두려움에 떨다가, 샬리야의 격려를 받고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전투가 멈춘 뒤 아스와따마는 두료다나에게 또다시 화친을 제의했지만 당연히 거부당했다.

4.19. 17일차

전투 17일째가 되던 날, 카르나는 먼저 유디슈티라와 결투를 벌여 승리를 거두었으나 역시 그를 죽이지는 않았다.생포를 했으면 카우라바 승리였을 텐데[79] 그 후 카르나는 아르주나를 대적하여 대단한 싸움을 벌이게 되었는데, 어찌나 치열했던지 판다바와 카우라바의 양측 군대는 물론 천신들까지 숨을 죽이고 이 결투를 지켜볼 정도였다. 카르나는 몇 차례나 아르주나를 향해 화살을 날렸으나 그때마다 크리슈나가 마차를 몰아 손가락 다섯 개 폭만큼 주저앉혔기에 화살들은 아르주나의 투구 위를 스치면서 지나갈 뿐이었고, 또한 화살을 쏘아 아르주나의 활 간디바의 시위를 끊어보기도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결국 카르나는 필살의 병기 브라흐마스트라를 쓰려고도 하였는데, 스승 파라슈라마의 저주[80]가 발현된 탓에 결정적인 순간에 기억을 잃어 실제로 사용하지는 못하였다.

갈수록 점입가경이 되어가던 두 대전사의 대결은 어느 순간 카르나의 마차의 바퀴가 진흙에 빠져서 오도가도 못 하게 되자 갑작스레 중단되었다. 사실 이것은 대지의 여신이 카르나의 마차의 바퀴를 붙잡은 것으로, 카르나가 옛날에 받은 저주[81][82]가 비로소 실현된 것이었다. 카르나는 활까지 내팽개치고서[83] 바퀴를 진흙탕에서 빼 보려고 용을 썼지만 허사였고, 아르주나에게 전사의 규율을 상기시키며 자신에게 시간을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자 아르주나는 카르나가 저지른 비열한 행동들, 특히 아비만유의 살해에 대해서 준엄하게 추궁한 뒤 화살을 쏘아[A] 카르나의 목을 날리고야 말았다.

그동안 99명이나 되는 친동생들이 죽어나가는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두료다나였지만, 카르나의 죽음에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4.20. 18일차

카르나마저 장렬히 전사하자, 두료다나는 또다시 새로운 총사령관을 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리파는 판다바들에게 온건적이라고 판단되어 기각되었고, 아스와따마도 고려되었으나 결국 카우라바의 새로운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은 샬리야였다. 이제 그 수가 얼마 남지 않은 카우라바의 장수들과 장병들은, 새 총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죽음을 각오하고 또다시 전장에 임하였다.

한편 18일째 날 이른 아침(혹은 17일째 날 늦은 밤), 두료다나의 어머니 간다리가 카우라바 진영에 당도하였는데 이 방문의 목적은 이제 99명의 아들이 전부 전사하고 장남 두료다나밖에 남지 않자 그 두료다나만이라도 구하는 데에 있었다. 시바 신의 추종자였던 간다리는 남편 드리타라스트라보다 많은 것을 보지 않겠다는 의지로 그동안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시바를 모시며 살아왔으며, 그렇게 쌓인 염력을 두료다나에게 눈길로 쏘아 전수하려 한 것이었다. 두료다나는 간다리의 요구에 따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그가 있는 천막에 들어서려 했으나, 그 순간 하필 (간다리를 만나려고 온) 크리슈나(!)와 마주쳤는데 그는 "아니, 다 큰 남정네가 어머니의 처소에 알몸으로 들려고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소?"라며 핀잔을 주었다. 그렇게 당해놓고도 말은 틀린 게 아닌지라 두료다나는 고민하다가 결국 하체만은 천으로 살짝 가리고 간다리의 처소에 들게 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간다리는 아들이 들어오자 그대로 염력을 쏘아버려, 결국 두료다나의 하체에만은 보호의 힘이 미치지 않게 되었다. 왠지 아킬레우스 뒤꿈치와 테티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리하여 전투 18일째가 되던 날, 카우라바 군대는 곳곳에서 패주하기 시작했다. 주사위 노름의 달인이던 샤쿠니와 그 아들은 사하데바에게 잡혀 죽었고, 총사령관인 샬리야도 유디슈티라와 막상막하로 결투를 벌였지만 결국 패배해 전사하고 말았다. 총사령관을 잃은 카우라바 군대는 뿔뿔이 흩어져 도주했는데 판다바 측은 패주하는 적병은 해치지 않는다는 관습을 깨고 이들을 추격하여 전부 죽여버렸다. 최후까지 발악하던 두료다나도 그 와중에 어쩔 수 없이 인근 숲의 호수로 도주하여 물에 들어가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

4.20.1. 철퇴 대결

판다바 형제들과 크리슈나는, 두료다나를 추격하여 드디어 그가 있던 호수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마침내 체념한 두료다나는 무장을 갖추고 나와 판다바들에게 정정당당한 1:1 대결을 요구하였고, 그의 요구는 받아들여져 두료다나는 비마와 철퇴로 결투를 벌이게 되었다. 힘은 비마가 더 세었지만 기술은 두료다나가 더 뛰어난 편이었고, 무엇보다도 두료다나는 이미 어머니로부터 불사의 염력을 받은 상태였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밀리는 것은 비마였다. 비마가 점점 질 위기에 놓이자 크리슈나는 능청스럽게도 자신의 허벅지를 두드리기 시작했고[85], 이를 눈치챈 비마는 불시에 두료다나의 하체를 철퇴로 쳐서 박살내고야 말았다. 물론 이를 전혀 예상치 못했던 두료다나는 무력하게 당하고 말았고...

치명상을 입은 두료다나가 땅바닥에 쓰러지자 비마는 그 위에서 춤을 추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러자 크리슈나는 점잖게 비마를 말렸지만, 이 행동은 이미 격노한 두료다나의 화를 더 돋굴 뿐이었다. 두료다나는 "나는 그동안 수많은 복을 누려왔으며 마지막에도 이렇게 장렬히 가니 후회가 없지만, 너희 판다바들은 이겼지만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전쟁의 참혹함을 곱씹으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으며 특히 크리슈나에게는 비슈마, 자야드라타, 드로나, 카르나 등 수많은 영웅들을 비열한 속임수를 써서 죽인 원흉이라며 욕지거리를 쏟아내었다. 크리슈나는 이를 굳이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두료다나에게도 "그 동안 네가 저질러 온 수많은 악행들을 생각하면 인과응보가 맞다."고 지적하였다. 물론 화가 나서 눈이 뒤집힌 두료다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86]. 최후까지 정정당당하게 싸우다 쓰러진 용사 두료다나에게 천신들은 꽃비를 내려주고 풍악을 울려주었으며, 이에 판다바들은 크게 위축되었다고 전해진다.

바로 이 시점에서 크리슈나의 형 발라라마가 성지 순례를 마치고 철퇴 대결의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사건의 전말을 안 후 진노하여 자신의 병기인 쟁기를 들어 비마를 공격하려고까지 하였으나, 동생 크리슈나가 "칼리 유가에 들어선 지금으로서는 옛 법도들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이미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두료다나의 허벅지를 부수겠다고 비마가 맹세했던 것이 이제야 실현되었을 뿐이다"라며 극구 만류한 덕에 겨우 진정하였다. 그러나 화가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던 까닭에, 두료다나에게는 칭송을 바치고 비마에게는 비난을 쏟아낸 뒤에야 현장을 떠났다.

이후 판다바들과 크리슈나는 조용히 두료다나를 남겨둔 채 크리슈나가 모는 아르주나의 전차를 타고 텅 빈 카우라바 진영으로 당도하여 그들이 남긴 재물을 취하고자 했다. 그런데 판다바들이 내리자마자, 그간 18일간의 혼전 속에서도 무사하던 아르주나의 전차가 갑자기 불길에 휩싸이더니 순식간에 타서 사라지고 말았다. 판다바들은 당혹스러워하며 일단 그곳에서 하룻밤을 나기로 하였는데,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예기치 못한 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4.21. 18일의 밤과 그 후

주군 두료다나가 중상을 입은 채 죽어가기 시작하자, 이미 아버지 드로나를 비열한 속임수에 잃은 아스와따마의 분노가 드디어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아스와따마는 크리파와 크리타바르마를 이끌고 죽어가는 두료다나에게 다가가 그에게 판다바들을 죽여서 그의 원한을 갚겠다고 맹약하였고, 두료다나도 크게 기뻐하며 그를 총사령관으로 즉시 임명하였다.

아스와따마와 휘하의 두 전사가 판다바 진영에 도착한 것은 한밤중으로, 그들은 다음 날 아침에 죽든 살든 판다바들과 결판을 내기로 하였다. 크리파와 크리타바르마는 지쳐서 금세 곯아떨어졌지만, 증오에 사로잡힌 아스와따마는 잠들지 않고 판다바 진영을 노려보던 중 반얀나무 위에 앉아 잠든 까마귀 무리가 부엉이의 습격을 받아 하나하나 사냥당하는 모습을 보고 불현듯 판다바 진영에 기습 공격을 가해 그들을 몰살시키겠다는 영감을 얻었다.

마음을 정한 그는 크리파와 크리타바르마를 깨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고, 둘은 처음에는 극력 반대하였으나 아스와따마가 고집을 굽히지 않자 그를 혼자 보낼 수도 없어서 결국 그 뒤를 따랐다. 판다바 진영의 대문 앞에서 시바 신으로부터 불타는 칼까지 받은 아스와따마는, 먼저 총사령관의 천막에 들어가 잠든 드리스타드윰나를 무참히 죽이고, 곧이어 판다바들의 천막에 들어가 판다바와 드라우파디의 다섯 아들들의 목을 베었으며[87] 그 후 판다바 군영에 불을 질러 대혼란을 유발한 뒤 그곳에 있던 판다바 장수들과 병사들을 하나하나 도륙하였다. 간신히 빠져나온 몇몇조차 밖에서 매복하던 크리파와 크리타바르마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학살을 끝낸 아스와타마, 크리파, 크리타바르마는 서둘러 판다바들의 다섯 아들들의 수급을 가지고 죽기 일보 직전에 놓인 두료다나를 찾아갔다. 이 뒷부분은 판본마다 이야기가 갈리는데, 어떤 판본에서는 두료다나가 아스와따마로부터 보고를 받은 후 행복해하며 죽었다고 하고, 다른 판본에서는 그 수급의 주인들이 판다바들이 아니라 판다바들의 아들들임을 알고서는[88] 왕조의 대가 끊겼다며 씁쓸해하다 죽었다고 하며, 심지어는 그걸 알고서도 '일단 판다바들의 대가 끊겼다'는 사실을 더 좋아하다가 죽는 판본도 있다. 근데 아들들을 다 잃었어도 대를 이으려면 전쟁 후에 다시 낳을 수 있을 텐데... 전쟁 후에도 36년이나 통치한 걸 보면 가능하긴 했을 것 같다...

아군 진영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것을 판다바들이 알게 된 것은 날이 밝은 19일이었다. 카우라바 진영에서 두료다나의 보물을 가지고 돌아온 그들이 본 것은 초토화된 진지와 목이 잘린 아들들의 시신이였다. 드라우파디는 자식들의 죽음에 분노하여 피칠갑을 한 채 아스와따마, 크리파, 크리타바르마를 잡아오도록 남편들에게 지시했다.

판다바들의 포위망이 좁혀 오자, 아스와따마는 최후의 발악으로 다시 한번 브라흐마시라스트라(브라흐마스트라의 진화형)를 발사했고 이에 아르주나 또한 같은 브라흐마시라스트라로 받아쳤다. 이 여파로 세상이 멸망할 것을 우려한 선인들이 아스트라를 거두어 달라고 부탁하자, 아르주나는 무기를 거두었지만 순순히 물러설 생각이 없던[89] 아스와따마는 판다바들의 대라도 확실히 끊고자 아비만유의 아내이자 아르주나의 며느리인 우따라[90]가 임신 중이던 태아 파리크시트를 향해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 다행히 크리슈나가 재빨리 산모의 자궁 안으로 들어가 브라흐마스트라를 막아내고 태아를 지켜내니 이 아이가 나중에 판다바들의 왕권을 계승하게 된다. 결국 세 사람은 모두 항복하여 체포당했고, 주범인 아스와따마는 힘의 근원인 이마의 보석을 빼앗기고 3000년간 숲과 황무지를 고통스럽게 방황하는 형벌이 내려졌다[91]. 크리파와 크리타바르마는 아스와따마를 말리려고 했다는 점이 참작된 것인지 사면령이 내려져, 크리파는 새로운 왕조의 밑으로 들어가 충성을 바쳤고 크리타바르마는 크리슈나와 함께 야두 씨족으로 복귀했다.

5. 뒷이야기

하여간 그 길로 판다바들은 하스티나푸라 도성에 개선하였고, 눈 먼 드리타라스트라와 간다리 그리고 쿤티와 대면하였다.

드리타라스트라는 결국 자포자기하여 순종의 뜻으로 판다바들에게 하나하나 포옹을 해주었는데, 비마의 차례가 오자 크리슈나는 조용히 비마를 제지하고 대신 쇠로 된 비마의 상(狀)[92]을 슬쩍 드리타라스트라의 품에 밀어넣었다. 자신의 아들들을 전부 죽여버린 비마에 대해 원한이 가시지 않은 드리타라스트라는 완력만으로 이 상을 깨부숴(!) 버렸으나, 곧 후회하던 중 크리슈나로부터 사실을 전해 듣고서 보복을 완전히 포기했다. 한편 간다리 역시 아들들을 전부 잃은 슬픔에 판다바들과 크리슈나를 노려보았는데, 그 눈길이 얼마나 독하였던지 눈가리개 밑 틈새로 나온 빛에 유디슈티라의 발 끝이 타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간다리는 크리슈나에게 "36년 후 너와 너의 일족들은 멸망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었고, 역시 곧 후회하였으나 크리슈나는 먼 훗날 자신의 일족이 교만해진 끝에 마땅한 징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그 저주는 과연 현실이 되고야 말았는데, 그 전말은 크리슈나 문서를 참조할 것.

한편 아들들을 만난 쿤티도 그제야 마침내 그동안 숨겨왔던 이부형 카르나의 출생의 비밀과, 그를 전쟁 직전에 만나서 전향을 설득했던 일, 그리고 한 사람만을 죽이겠다고 한 그의 약속 등등을 전부 말해주었다. 당연히 판다바들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고, 특히 유디슈티라는 괴로워하던 끝에 "앞으로 여자들은 비밀을 지킬 수 없도록 입이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저주를 남겼다.

결국 드리타라스트라와 간다리, 그리고 쿤티는 유디슈티라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조용히 도성을 떠났다. 드리타라스트라는 숲속에 들어가 수행에 전념하던 끝에 숲에서 화재가 일어났을 때 피하지 않고 죽었으며 간다리와 쿤티가 그 뒤를 따랐다고 한다. 끝까지 드리타라스트라를 보필하던 시종 산자야도 수행자가 되어 남은 생을 보냈다고.

6. 참고자료

<마하바라타 1~4> (크리슈나다르마 저, 박종인 역, 나들목)
<마하바라따 1~8> (박경숙 역, 새물결)[93]
<마하바라타> (주해신 역, 민족사)
Kisari Mohan Ganguli의 영역본
영어 위키피디아

[1] 오늘날 인도 하리아나 주, 즉 델리 북서쪽에 위치한다...고 전해진다.[2] 사하데바는 비라타, 나쿨라는 드루파다, 아르주나가 드리스타드윰나, 비마는 시크한디를 추천했는데 유디슈티라가 드리스타드윰나를 총사령관으로 낙점했다.[3] 드루파다의 아들, 드라우파디의 오빠, 판다바들의 처남.[4] 판찰라의 국왕이자 드리스타드윰나, 드라우파디, 시크한디의 아버지, 판다바들의 장인.[5] 마츠야의 국왕.[6] 시칸딘이라고 적힌 판본도 있다. 드루파다의 딸이며, 어려서부터 하도 비슈마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내서 비슈마를 두려워한 아버지에게 내쫓긴 후 야인 생활을 계속하다가 판다바 진영에 합류했다.[7] 그런데 사실 시크한디의 성별은 판본에 따라 좀 차이가 난다. 일반적으로는 여성이라고 하지만, 일시적으로 남성성을 부여받은 성전환자설도 많고, 어떤 판본에서는 그냥 남성이나 혹은 고자(...)라고도 한다. 일단 확실히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던 듯.[8] 판다바와 드라우파디 사이의 다섯 아들들.[9] 아르주나와 수바드라(크리슈나의 여동생) 사이의 아들.[10] 비마와 히딤비(락샤사 여자) 사이의 아들.[11] 아르주나와 울루피(나가 족 공주) 사이의 아들.[12] 쿠루 일족의 최연장자이자 판다바와 카우라바의 큰할아버지.[13] 판다바와 카우라바의 스승이자 아스와따마의 아버지.[14] 앙가의 국왕이자, 두료다나의 친구이며 최측근 가신.[스포일러] 판다바들의 이부형.[16] 마드라의 국왕이자 판다바들의 외삼촌.[17] 드로나의 아들이자 크리파의 조카.[18] 판다바와 카우라바의 스승, 드로나의 처남, 아스와따마의 외삼촌. 다만 드로나보다는 그 권위와 실력이 낮았다.[19] 신드의 국왕이자 드리타라스트라의 사위.[20] 캄보쟈의 국왕.[21] 프라그죠티샤의 국왕. 아수라인 나라카의 아들(참고로 나라카는 크리슈나의 아내에게(...) 죽었다)이며, 일설에 따르면 두료다나의 장인이기도 하다.[22] 바흘리카의 손자. 판다바-카우라바들과는 7촌 아저씨뻘이다.[23] 간다라의 국왕이자 카우라바들의 외삼촌.[24] 바흘리카의 국왕이자 부리스라바스의 할아버지. 그리고 비슈마의 삼촌(비슈마의 아버지인 샨따누의 작은형)이기도 하다. 바가다따와 함께 작중 최연장자.[25] 두료다나의 동생, 카우라바 중 하나. 군중 앞에서 드라우파디의 옷을 벗기려 한 장본인.[26] 두료다나의 동생, 카우라바 중 하나. 이 비카르나는 일전에 도박판에서 두료다나, 샤쿠니, 카르나가 벌인 악행을 비판한 적도 있을 만큼 품성이 정의로워서, 비마가 그를 죽인 뒤 매우 슬퍼했다는 구절이 있다.[27] 드리타라스트라와 바이샤 여인 사이의 아들.[28] 락샤사들의 왕.[29] 트리가르타의 국왕.[30] 전차 1대와 코끼리 1마리당 1명씩 계산해서 이 정도 수치가 나오는데, 실제로는 전차 1대당 2명이, 코끼리 1마리당 7명이 탔으니 이보다 훨씬 더 큰 수치가 나올 것이다.[31] 판다바 5형제, 크리슈나, 사티야키, 유유추.[32] 아스와따마, 크리타바르마, 크리파, 브리샤케투(카르나의 막내아들).[33] 전쟁 이후 드리타라슈트라가 유디슈티라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냐고 물어보자, 유디슈티라는 자그마치 16억 6000만 명이 죽고 24만 명만이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16억 6000만 명이나 되는 숫자에 적지 않은 인도인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아무리 18개 악샤우히니 병력에 그 외 친위부대가 많기로서니 16억 명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 대부분의 전사들이 단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몰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후 24만 명씩이나 살아남았다는 것도 논란거리이다. 우선 강굴리의 영어 완역본에는 저렇게 나와있으니 일단 기재해둔다. 그냥 후대에 가필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 중 하나로 여겨진다.)[34] 그 규모를 알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것이 제2차 세계 대전인데, 무려 6년간 계속된 전쟁에서 자그마치 7천 3백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 여기에서 독소전쟁분만 따로 빼서 계산해봐도 소련측 민간인 사망자가 무려 2천만명이고,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측 전사자만 20만명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는 것이지만 무려 6년 동안 치러진 전쟁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7천만명이었다! 그러니 18일, 약 3주 남짓한 기간동안에 벌어진 전쟁에서 발생한 사망자의 수가 이 정도라는 것은 가공할만한 규모인 셈이다.[35] 이에 버금가는 피해가 나온 가상의 전투는 바로 기동전사 건담일년전쟁중 일어난 브리티시 작전인데 지구 인구의 절반이 이로 인해 사망했다. 현실 세계에 비유하자면 중국+인도+미국 인구가 모두 절멸한셈이다. 그것도 단 하루만에 벌어진 작전에서.. 게다가 이 쿠룩셰트라 전쟁과의 차이점은 쿠룩셰트라 전쟁은 오직 인명피해만 엄청났던 반면, 브리티시 작전은 지구의 환경까지 황폐화 시켰다는 점에서 그 궤를 달리한다.[36] 그런데 라마야나의 경우는 억이나 조 단위뿐 아니라 자 단위까지 나올 정도인지라, 병력 규모 면에서는 마하바라타를 아득히 압도한다. 거기다가 원숭이 일반병들도 산봉우리를(!) 집어던지면서 싸우는 장면이 다반사인데, 원숭이 군 측에만 '수백 개 악샤우히니'에 맞먹는 병력이 있을 정도다. "There were hundreds of akshouhinis of the residents of the forest(the apes)." (Yuddha Kanda 31) 쿠룩쉐트라 전투 시 총병력의 규모가 18개 악샤우히니임을 감안하면...[37] 양군 모두 수백만씩 동원되며 나중에는 저마다 산을 집어던지면서 싸운다.[38] 기원전 5500년설, 기원전 3000년설, 기원전 2500년설, 기원전 1500년설, 기원전 1300년설, 기원전 1000년설, 기원전 950년설 등등 엄청나게 다양한 이론이 제시되는 편이다.[39] 판본에 따라서는 죽음의 신 야마.[40] 왜 하필 쌍둥이였냐면, 쿤티가 주문을 한 번만 알려주겠다고 하여, 그나마 자식을 둘을 두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판본에 따라서는 오히려 쿤티가 한 번에 자식을 둘이나 둔 마드리에게 속았다면서 주문을 더 이상 가르쳐 주지 않겠다고 하기도 한다.[41] 남편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는 없다면서 결혼 후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한 번도 이를 풀지 않았다.[42] 모두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마츠야의 비라타와 트리가르타의 수사르마는 이웃나라의 왕들로서 서로 다툼이 잦았고, 드루파다와 드로나는 어릴 적 친구였지만 자라서는 사이가 틀어진 상태였으며, 사티야키와 부리스라바스는 가문 사이가 대대로 앙숙간이었다.[43] 실제로 차남인 비마도 서툰 실력으로 계속 지면서도 거듭 도전하여 모든걸 다 잃어버린 유디슈타라의 실책에 형님의 손을 불로 지져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분노했었다.[44] 사실 발라라마가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었다. 본인도 사기도박에 당한 이유로 분노해서 크리슈나의 처남을 때려죽인 전적이 있다. 이 처남은 그냥 처남도 아니고 크리슈나의 3대에 걸친 인척(...)이었는데도. 내가 당하면 상대를 때려죽여야 하지만 남이 당한 건 그쪽도 책임이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그 처남의 이름은 루크미이며, 발라라마의 도박은 시기상으로 보아 쿠룩셰트라 전쟁 이후인 것으로 여겨진다. 예전의 자기 발언을 누군가 일깨워줬으면 기분이 어땠을지...[45] 어머니가 최하층 계급인 수드라인 천출이였던지라 왕족 대우는 받을 수 없었다.[46] 사실 이것도 판다바 측이 양보한 거였다. 인드라프라스타 지역은 현재 왕인 드리타라스트라가 생색내기로 내준 미개척지이기는 하지만, 정식으로 나눠준 영토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카우라바의 지원 없이 오로지 판다바의 힘으로 개척해놓고는, 사기 도박으로 빼앗겼다. 유디슈티라는 카우라바들의 왕국의 나머지 땅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서로 불가침협정 맺고 끝내자고 말했다.[47] 그런데 카르나는 자신을 무적으로 만들어준 이 갑옷과 귀걸이를 아들 아르주나를 돕기 위해 온 신들의 왕 인드라에게 이미 뜯긴 상태였다. 거지 브라만으로 위장한 인드라가 매일 새벽 뜨는 해를 (즉 아버지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중에 받은 부탁은 거절하지 못하는 카르나의 성품을 악용하여 (어떤 판본에서는 탁발하는 브라만에게는 원하는 것을 모두 주겠노라고 한 카르나의 다짐을 악용하여) 그의 갑옷과 귀걸이를 요구한 것이다. 물론 카르나는 선선히 갑옷과 귀걸이를 건네주었다. 오히려 머쓱해진 인드라가 카르나에게 보답으로 소원을 제안했는데, 카르나는 아버지 수리야의 조언에 따라 인드라의 투창인 '바사비 샤크티'를 요구하여 이를 받았다. 이 투창은 목표물을 무조건 죽일 수 있는 필살의 병기였지만, 카르나는 단 한 번만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인드라가 추가했다.[48] 즉 아르주나나 자신이나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죽는다는 뜻.[49] 두료다나는 원래 판다바들을 지원하기 위해 진군하던 마드라 국왕 샬리야(나쿨라와 사하데바의 외삼촌)와 그 군대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여 그걸 받아먹게 한 뒤, 깜짝 등장을 해서 샬리야에게 자기 편을 들 것을 요구했는데 자기 조카들이 접대하는 줄 알고 있었던 샬리야는 뒤늦게 속은 것을 알았으나 당시 도의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50] 야다바의 백만 대군이 카우라바에게 넘어가긴 했지만, 사티야키나 체키타나 등 야다바 중에서도 개인 자격으로 판다바 측에 참전한 이들이 많았다.[51] 여동생인 루크미니와 크리슈나 간의 결혼에 반대해서 크리슈나와 대판 싸웠다가 깨졌는데, 그 후 패전을 수치스러워하면서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보자카타라는 도시를 세운 뒤 그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어찌어찌 화해한 모양으로 루크미니와 크리슈나 사이의 아들에게 딸을 시집보내어서 이중으로 인척지간이 되었다. 쿠룩쉐트라 전투에서도 크리슈나의 중개로 판다바 측에 참전을 제안한 것으로 보아 이미 화해한 뒤인 듯.[52] 비슈마든 드로나든 카르나든 내가 다 상대해주겠다고 떠벌렸다.[53] 결과적으로는 이게 매우 현명한 선택이 되었다. 전쟁에서 무수한 왕과 왕자와 전사들이 죽고 군대가 전멸했는데 루크미는 국력을 온전히 보전했으니. 그런데 어차피 나중에 아르주나가 아슈바메다를 위해 세계를 다시 정복해 쿠루 왕조의 패권을 재차 확립하므로, 이때 전력을 보존한 것도 별로 득이 되지는 않았으리라.[54] 이후 전투 과정을 눈 먼 드리타라스트라에게 말로 생중계해준다.[55] 전후 아르주나가 아슈바메다 제를 위해 인도의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다가 마니푸르 왕국의 왕이 된 바브루바하나를 만나고, 그와 싸우다 죽지만 아들 이라반의 생모인 울루피 덕에 다시 살아난다.[56] 편제의 한글 번역명은 <마하바라따 1>(박경숙 역, 새물결)에서 발췌.[57] 비슈마가 "넌 어차피 판다바들 상대도 안 되고 게다가 내 말도 안 들을 텐데 좀 짜져 있으면 안 될까" 하고 요구했고, 카르나도 여기에 욱해서 "당신 좋을 대로 하쇼"라고 응수했다. 다만 이것은 카르나의 비밀을 통찰력 깊은 비슈마가 간파하여 형제상잔의 비극을 막기 위해 일부러 벌인 일이라는 판본이나 해석도 있다.[58] 크리슈나의 종족인 야다바의 한 갈래.[59] 사촌뻘인 크리슈나(...)에게 목숨을 잃었다.[60] 비마(...)에게 목숨을 잃었다.[61] 그런데 비슈마는 정작 당사자인 카르나에게는 "넌 라티의 1/2만큼도 안 된다"고 혹평했다. 실제로 그렇다기보다는 카르나를 도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정.[62] 훗날 크리슈나에게 죽은 살와 왕과는 동명이인이다.[63] 예를 들면, 철퇴를 사용하는 대결에서는 하체에 대한 공격이 금지되었다.[64] 아르주나의 며느리이자 아비만유의 아내인 우따라와는 동명이인이자 친남매간이다.[65] 두료다나는 일전에 판다바들이 숲 속에 유배 상태로 있던 중 그들을 약올리기 위해 무리를 거느리고 그곳으로 나섰다가, 간다르바들과의 싸움에 휘말린 끝에 굴욕적으로 패배해 간신히 판다바들(...)에게 구출된 적이 있었다. 적이지만 생명의 은인인 건 사실이라 두료다나는 아르주나에게 이 보답은 꼭 하겠다고 약속했다.[66] 시크한디의 무예가 무저항의 비슈마조차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었기에, 비슈마를 실제로 맞춘 것은 아르주나의 화살뿐이었다는 판본도 있다.[67] 판본에 따라 두료다나가 맹세를 한 스승에게 의기양양하게 속셈을 떠벌리기도 하고 혹은 굳이 심기를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기도 한다.[68] '맹약 용사'들이라는 뜻.[69] 아비만유가 알고 있던 것은 연화진을 격파하는 방법이 아니라, 들어가는 방법뿐이었다. 어머니인 수바드라가 그를 임신하고 있을 때 아르주나가 연화진으로 진입하는 방법을 들려 준 적이 있어서 그 때 배웠다고 한다. 그런데 연화진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말할 때에는 수바드라가 잠이 들어서(...) 그 부분은 못 들었기 때문에 익히지를 못했다고.[70] 자야드라타는 판다바들의 13년 유배가 끝나갈 무렵에 우연히 만난 드라우파디를 납치하려고 했으나, 비마와 아르주나에게 저지당한 뒤 머리칼을 깎이고 굴욕적으로 쫓겨났던 적이 있었다. 그 후 복수를 다짐하며 시바에게 판다바들을 무찌를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였는데, 시바는 그가 판다바들을 이기게 해 줄 수는 없지만, (아르주나를 제외하고) 대적할 수는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축복이 이때 발현된 셈.[71] 카르나가 등 뒤에서 찔러 죽였다는 판본도 있다. 전승에 따라서 세부 묘사에 차이는 있으나 카우라바 측이 교전수칙을 깨고 아비만유를 죽였다는 점은 같으며, 이때 카르나가 무기와 전차도 없는 아비만유를 죽인 것 때문에 후에 아르주나가 자신을 죽이려는 것에 대해 반박을 할 수 없게 된다.[72] 판본에 따라 유유추가 판다바 측으로 귀순하는 시점이 전투 개시 직전 유디슈티라가 카우라바 진영에 마지막 인사를 올릴 적으로 앞당겨지기도 한다.[73] 스루타유드하에게는 그 어머니가 물의 신 바루나로부터 받아온 철퇴가 있었는데, 이 철퇴는 그 어떤 적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무적의 병기였지만 만약 무장하지 않은 사람을 상대로 사용할 시 오히려 사용한 사람에게 되돌아와 그를 죽이는 역효과를 낸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스루타유드하가 이 철퇴를 하필 크리슈나를 향해 내던지자 역효과가 즉시 발동되어 스루타유드하에게 되돌아와 그를 죽인 것이다(...).[74] 부리스라바스는 과거에 부리스라바스의 아버지와 사티야키의 할아버지가 신부를 놓고 전쟁을 벌였다가 사티야키의 할아버지가 이긴 까닭으로 이미 전쟁 이전부터 사티야키와 헤묵은 앙금이 있던 터였다.[A] 아르주나는 마지못해했지만 크리슈나가 독촉했다는 판본도 있다.[76] 힌두교 수행자의 수행처.[77] 아들의 영혼을 찾으러 명상에 들었다는 판본도 있다.[78] 주사위 도박판의 현장에서 비마가 두샤사나를 저주하며 맹세했던 내용 그대로였다.[79] 굴욕감과 비참함이 너무나 큰 나머지 유디스트라는 일시적으로 카르나 공포증...이 걸리고 말았다. 진영으로 후퇴해 상처를 보살피고 있을때, 아르주나가 걱정돼서 찾아오니, 동생이 카르나를 죽이고 나를 안심시키려고 찾아왔구나 하고 너무나 기대한 나머지, 기쁨에 차서 아르주나를 상찬한다. 아르주나가 솔직하게 아직 못죽였다고 실토하자, 격분해 다른 사람에게 간디바를 넘기라고 비난한다. 이 때 아르주나는 누구라도 간디바를 포기하라고 요청하는 사람을 죽이기로 맹세를 했기 때문에 크리슈나가 말리지 않았다면, 유디스트라를 죽일 뻔 했다.[80] 카르나는, 크샤트리아를 증오하던 파라슈라마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그에게 자신의 신분이 브라만이라고 속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파라슈라마가 카르나의 무릎베개를 베고 잠든 사이 벌레가 카르나의 살을 물어뜯었으나, 카르나는 스승을 깨우지 않기 위해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잠에서 깬 파라슈라마는 카르나에게서 흐르는 피를 보고서 "이런 고통을 참을 수 있는 것은 크샤트리야뿐"이라며, 그를 파문하고 자신으로부터 배운 브라흐마스트라를 잊을 것이라는 저주를 내렸다가 후에 카르나의 간청으로 "너는 브라흐마스트라가 가장 필요할 그 순간에 그것을 잊어버릴 것"이라고 순화하였다. 그리고 그래도 정이 들었는지 '비자야'라는 이름의 자신의 활을 물려주기도 했다.[81] 일전에 어떤 브라만의 소를 죽인 죄로 그 브라만으로부터 "결정적인 순간에 대지가 네 마차의 바퀴를 붙잡을 것"이라는 저주를 내렸다.[82] 어떤 판본에서는, 이 저주가 어느 날 우유를 쏟은 아이를 돕기 위해 우유를 머금은 흙을 쥐어짜자 대지의 여신이 상처를 입고 분노해 내린 것이었다고 한다. 이 판본에서는 소를 잃은 브라만의 저주가 "너는 이 소처럼 무력하게 죽게 될 것"으로 바뀐다.[83] 이 부분이 의미심장한데, 카르나의 활 '비자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바로 '승리'라는 뜻으로 실제로도 주인에게 늘 승리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즉 카르나는 손에서 '비자야'를 놓아 버린 것이다![A] 아르주나는 마지못해했지만 크리슈나가 독촉했다는 판본도 있다. 이 쪽이 좀 더 메이저한 편.[85] 혹은 아르주나에게 "비마는 예전의 맹세대로 두료다나의 허벅지를 부술 것"이라고 (물론 비마한테도 들리도록) 슬쩍 말해주었다는 판본도 있다.[86] 어떤 판본에서는, 두료다나가 욕설을 퍼붓다가 고통에 겨워 말은 더 못 하고 손가락 세 개를 들어 판다바들에게 보이기도 한다. 크리슈나는 이것이 (두료다나 본인이 분석한) 카우라바 측의 3대 실책을 의미한다며, 바로 <1) 하스티나푸라 성(城)을 낀 채 수성전을 벌이지 않은 것, 2)크리슈나에 대적할 수 있는 전술가인 비두라를 영입하지 않은 것, 3) 드로나 사후 시바의 화신 아스와따마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대신 말해준다.[87] 그들을 판다바로 오인하고 죽였다는 판본도 있고, 알면서도 그냥 죽여버렸다는 판본도 있다.[88] 수급을 손으로 잡아 으깨보고는 "신의 아들들인 판다바들의 머리는 이렇게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이것은 판다바들의 아들들의 머리이다." 라고 말했다.[89] 판본에 따라서는 아스와따마가 브라흐마시라스트라를 거두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내용이 추가되기도 한다.[90] 전투 첫날 전사한 우따라와는 동명이인이자 친남매간이다.[91] 그래서인지 구글에 Ashwatthama를 검색하면 인도인들이 검색한 것으로 보이는 Ashwatthama alive(...) 등등이 검색내용이나 연관검색어로 주르르 뜬다(...). 크립티드?[92] 두료다나가 무예를 연습할 때 적대감을 키우기 위해 과녁으로 쓰던 물건이라고 한다.[93] 최초의 한국어 완역본이지만 아쉽게도 아직 본격적인 전투 부분은 정발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