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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20 22:41:12

전투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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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군대를 공격하는 피로스군의 전투 코끼리.출처
War elephants / 戰象[1]

1. 개요2. 특징3. 평가
3.1. 장점3.2. 단점 및 대응법3.3. 그 외 대응법
4. 역사 및 문화5. 대중매체
5.1. 게임5.2. 영화5.3. 기타

1. 개요

전투에 사용된 코끼리에 관한 문서.

2. 특징

코끼리는 5톤 가까이 나가는 덩치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머리가 좋아서[2] 사람이 하는 지시를 잘 이해하기까지 하므로 오래 전부터 사람에게 길들여져서 수송, 건축, 전투에 많이 사용된 동물이다.

인도에서는 마하바라타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전투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알렉산드로스 3세페르시아 원정을 할 때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15마리를 처음 맞닥뜨렸다. 이후 인도에 원정했을 때 포로스 왕이 거느린 200마리의 아시아코끼리 떼를 만났으며, 이 코끼리 부대는 대왕의 부하들이 더 이상의 원정을 거부하는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3] 이때의 강렬한 인상 덕분에 헬레니즘 시대의 군대들은 코끼리를 대량으로 사용하게 된다. 코의 힘이 발군이라 건축에서 아주 빛을 발했는데 말이나 소로도 끌어올리지 못하는 돌기둥을 코끼리가 코로 들어올렸다.

에피로스 왕국의 피로스 대왕이 이탈리아 침공시 사용한 전투 코끼리 부대는 로마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고, 이후 한니발로마로 진군할 때도 37마리로 구성된 북아프리카코끼리 부대를 대동했다. 다만 한니발의 코끼리들은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는 동안 고생을 하도 많이 한 탓에[4] 이탈리아에 들어간지 얼마 안 되어 한마리만 남고 몽땅 죽어버렸고, 초기 한니발이 연승한 전투들에서도 트레비아 전투를 제외하면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홀로 살아남은 한마리는 전투에 투입하지 않고 그냥 한니발이 타고 다녔다. 그 뒤 칸나이 전투가 벌어진 다음해에 카르타고 본국으로부터 40마리를 공수받아 카푸아 전투때 코끼리 부대를 앞세워 로마군의 포위망을 돌파를 시도했으며 자마 전투에서도 선봉에 배치해 돌격시키는 등의 활용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피로스 전쟁과 포에니 전쟁을 겪으면서 전투 코끼리를 경험한 로마군도 당연히 전투 코끼리 부대를 활용했는데 키노스케팔라이 전투와 피드나 전투,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전투 코끼리가 투입되었고 카이사르의 내전에서도 폼페이우스가 활용하는 등 상당히 오래 쓰였다. 최종적으로 코끼리가 전투에 쓰인 것은 기원후 193년에 디디우스 율리아누스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를 상대할때 서커스장의 코끼리를 동원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에는 코끼리를 전투에 썼다는 기록이 없다. 때마침 기원후 3세기에 접어들어 북아프리카코끼리가 멸종하면서 코끼리 수급이 어려워진 것이 한 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후술할 북아프리카코끼리아시아코끼리, 두 종류의 코끼리가 맞붙은 전투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집트와 셀레우코스 제국의 전투인 라피아 전투가 있다. 코끼리들의 싸움에서는 더 거대한 셀레우코스의 아시아코끼리가 우위를 점했지만 결국 전투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집트가 승리했다. 자세한 내용은 라피아 전투 항목 참조. 참고로 북아프리카코끼리를 제외한 나머지 아프리카코끼리 개체군들은 성격이 너무 예민해 도저히 길들일 수가 없어 악숨 왕국을 제외하면 전쟁터에 동원한 국가는 없었다. 이는 얼룩말, 아프리카물소 등의 아프리카의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중세 시대에 전투 코끼리가 적극적으로 기용되었다. 코끼리 목 위와 후방에 올라탄 기수들이 코끼리를 조종하고 등에 올라탄 병사들이 기수에게 무기를 건네주거나 전투하는 식이었다. 때로는 나레수안처럼 왕이 코끼리를 타고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고 코끼리를 탄 장군끼리 일기토를 겨뤘다는 기록도 종종 있다.

밀림이 많은 동남아에서는 총기가 보편화되는 근현대에도 계속 코끼리가 동원되었고 심지어 베트남 전쟁 때까지도 직접 전투는 하지 않았지만 APC 같은 탈것으로 쓰였고.# 아직까지도 미얀마카렌 민족해방군들이 사용하고 있다. 전투는 몰라도 밀림에서의 인원 및 물자수송에는 코끼리를 따라올 교통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아시아코끼리가 인도와 동남아시아지역 국가들에서 전투 코끼리로 길들여져 이용되었고 북아프리카코끼리가 카르타고, 악숨 왕국 등의 국가들에서 전투 코끼리로 길들여져 이용된 것과는 달리 둥근귀코끼리는 전투 코끼리로 길들여진 사례가 없다.[5]

3. 평가

3.1.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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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타 연합의 전투 코끼리와 그 기수가 무굴 제국의 병사들을 공격하는 그림.(출처)
그 체급에서 나오는 맷집 덕분에 심지어 총기류가 보편화되어 있던 근대에도 인도차이나 반도를 침략하던 프랑스인들이 베트남과 전투할 당시 전투에서 코끼리가 총탄을 씹어먹고 닥돌하는[6] 바람에 고생을 겪어야 했다. 저 시절은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으로 기관총이나 독가스, 미사일, 전투기 같은 무기가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전근대적 수법이기는 해도 코끼리의 막강한 파괴력은 꽤 고역이었을 것이다. 코끼리가 후술할 다수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전쟁에서 사랑받은 것은 이 때문이다.

3.2. 단점 및 대응법

그러나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은 단점 때문에 고대 이후로 유럽권 전장에서는 코끼리가 완전히 퇴출되고, 전장을 지배하는 동물의 자리는 이 독점하게 되었다.

3.3. 그 외 대응법

아래의 예시 외에도 다양한 대응 전술이 있었다. 핵심은 위에서 말한 코끼리의 단점을 이용해서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놀라서 자기 군대를 공격하게 만드는 것.

4. 역사 및 문화

특히 로마인들은 헬레니즘 왕국들과 카르타고를 정복하면서, 코끼리에 대한 대응 전술을 많이 발전시켰고, 로마의 대코끼리 전술덕에 이후 서구권에서 전투 코끼리는 사멸한다. 그 로마인들도 상대가 헬레니즘 왕국들인 그리스, 시리아 전쟁에서는 코끼리를 써먹으며 상당한 재미를 보았다. 전술했듯, 팔랑크스에게는 코끼리가 저승사자였기 때문.

참고로 고대에는 북아프리카 지역에도 코끼리가 있었는데,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아프리카코끼리의 개체군들이었다.링크 로마인들의 기록에 등장하는 코끼리는 대부분 이 코끼리들이며, 상대적으로 척박한 지역에서 살아서인지 다른 지역의 아프리카코끼리치곤 왜소한 덩치였으며 지금의 아시아코끼리보다도 약간 더 작은 크기였다.[21] 이들은 환경파괴와 사하라 사막의 확대, 그리고 로마인들이 검투사 시합에 쓰기 위해 무분별한 사냥을 펼친 결과로 씨가 말라 버렸다. 기록에 의하면 로마시대 때 이 코끼리 10마리를 생포하면 9마리는 수송 중에 죽고 1마리만 살아서 로마에 도착했다고 한다.

스스로를 헤라클레스의 현신이라고 주장한 황제 콤모두스는 경기장에서 3마리의 코끼리를 죽였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코끼리를 죽이기만 하는 건 아니었고 바닥에 코로 글씨를 쓴다거나 재주를 부리는 공연도 있었다.

고대 국가 중 코끼리 부대로 가장 큰 재미를 본 국가는 난다 왕조, 마우리아 왕조 등 고대 인도의 대제국들이었다. 원래부터 국력이 대단하기도 했고, 본토에 광활한 코끼리 서식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맞물린 것이다. 그 결과, 전투 한번에 로마나 그리스에서는 상상도 못할 백마리, 천마리 단위의 비현실적인 물량을 동원하는것이 가능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조차도 난다 왕조에 6천 코끼리 부대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체념하여 인도 정복을 포기했을 정도였다.[22] 나중에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셀레우코스 1세와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선물로 보내준 코끼리가 500마리에 달했는데, 이정도면 당시 셀레우코스 제국이 보유했던 모든 코끼리 숫자에 맞먹는 엄청난 숫자였다.

중국에서도 아시아코끼리의 아종인 인도코끼리가 살았었고 현재는 소수의 개체들만 남쪽에서 서식한다.

한편, 코끼리 서식지가 유지되고 코끼리가 접근할 때까지 바로 알아차리기 힘든 정글지형인 인도동남아시아에서는 근대까지 계속 전투용으로 남았다. 비록 획득비와 유지비가 너무 비싸게 먹히기는 했지만, 사용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었다.

티무르 제국을 건국한 티무르는 인도의 델리를 정복할때 델리-술탄군이 동원했던 코끼리 부대가 인상 깊었는지, 이후 정복전에 종종 전투 코끼리 부대를 편성해 동원했다. 이라크 공격을 비롯해 1402년 앙카라 전투에서도 인도인 전투 코끼리 부대를 동원해 승리하기도 했다. 이 때 티무르군의 전투코끼리는 기록자 시점상 그리스의 불이라 불렸던 화기를 코끼리에 탑재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몽골군의 바간 왕조 정복, 파니파트 전투(1526, 1556)[23]에서의 패전에 의하여 결국 주도권을 잃고 몰락하게 된다. 머스킷 여러 발을 맞고도 잘 안 죽을 만큼 코끼리의 가죽은 질겼지만, 대포는 코끼리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그러나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결국은 도태됐지만 코끼리의 등 위에 작은 대포를 올려놓고 일종의 견인포 내지 자주포로 이용하고자 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시도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 바로 토탈 워: 미디블2,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아시아 왕조의 코끼리 포병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용과는 별개로 코끼리의 힘을 산업에 이용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인도동남아시아에서 계속되고 있다. 아시아코끼리는 포악하고 사나운 아프리카코끼리에 비해 훨씬 더 가축화가 용이해 여러 장점들을 활용할 수 있는데 불도저와 달리 수시로 적당한 지점을 찾아 발을 디딜 수 있고, 인도와 동남아의 기후 특성상 코끼리의 식량으로 쓸 식물이 풍부하기에 가능한 일. 더구나 코끼리는 힘도 좋아 보다 많은 양의 짐을 끌 수가 있다. 다만 코끼리가 등짐을 지는 힘이 의외로 약해서, 기껏해야 낙타의 세 배 정도가 한계라고 한다. 사실 당연한 게 코끼리 정도의 덩치라면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척추와 무릎에 상당히 큰 부담이 간다. 안 그래도 중력을 버티기 꽤나 어려운 커다란 덩치인데 거기에다 사람이 타고 등짐까지 올려놓는다면 그것은 코끼리에게는 사실상 학대나 다름 없을 정도의 고통이다. 그러다보니 코끼리를 산업에 동원하는것이 동물보호단체들과 동물학자들의 비판을 많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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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로는 코끼리에 중화기를 얹고 그걸 쓰기도 했다. 물론 이 사진에서는 진짜 사용한 것은 아니고, 1914년에 촬영했다고 하는 사진이다. 사진에 찍힌 군인들은 미군이라고 하며, 등에 얹어놓은 중기관총은 M1895 콜트-브라우닝이다.

5. 대중매체

5.1. 게임

5.2. 영화

5.3. 기타


[1] 싸울 전, 코끼리 상[2] 돌고래, 유인원, 까마귀 등과 같이 최상위권에 속하는 동물이다.[3] 하지만 오히려 포로스가 코끼리 부대를 끌고온 게 패배의 중요한 원인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자신을 환영한 인도의 탁실라 왕국에게서 코끼리에 대한 얘기를 듣고 코끼리에 탄 기수를 활과 투창으로 공격하고 불화살을 날려 전투코끼리에 대응했다. 그러자 코끼리들이 미쳐날뛰어 오히려 포로스군에게 달려들어 아군을 뭉개버리는 난동을 일으켜 포로스군이 마케도니아군에게 박살나고 만다.[4] 코끼리는 털매머드 등을 제외하면 예나 지금이나 더운 지방에서 사는 동물이다. 그런 놈들을 끌고 눈 덮인 산맥을 넘었으니 버티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설상가상으로 계절도 겨울이었다. 게다가 사람도 오르내리기 힘든 높은 산악 지대에서 이 덩치 큰 녀석들을 데리고 다니는 여정이 쉬웠을 리가 없다.[5] 서식지와 인접한 곳에 다호메이 왕국, 콩고 왕국 등이 있었으나 이들 나라에서 둥근귀코끼리를 잡아와 전투 코끼리로 훈련시킬 시도는 일절 하지 않았다.[6] 현재 쓰이는 강하고 효율적인 총탄들로도 코끼리를 잡는 건 매우 어려우며 이를 그나마 효과적으로 상대하기 위해 엘리펀트 건이라는 대구경 화기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하물며 당시 총기는 현대 총기보다 위력도, 연사력도 떨어졌기에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7] 알렉산드로스의 팔랑크스는 상당수가 부왕인 필립포스 대왕 때부터 전투 경험을 쌓은 자들로, 역대 팔랑크스 중 최강이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사분오열된 이후로도 전투에 참여하여 50대 무렵이 될 때까지 전투에 종사하였으며 이들에게 맞서는 군대들을 무찌르고 다녔다.[8] 물론 빠르게 돌진하는 코끼리에 대응해 보병 방진을 재빨리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만큼, 매우 숙련된 부대에서나 가능한 대처법일 것이다.[9] 코끼리와는 조금 다르지만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도 거의 중소규모의 성만한 크기의 거대한 괴물 코끼리인 무마킬이 등장하는데, 로한의 왕족 에오윈이 쌍검을 활용하여 말을 탄 채로 아킬레스건을 공격하여 넘어뜨렸다. 다만 쌍검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말을 몬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지라, 말을 같이 타고 출전한 호빗 메리아독이 말고삐를 잡았다.[10] 자마 전투 때도 스키피오가 카르타고의 코끼리 부대에게 이 방법으로 통제력을 잃게 했다. 또한 1511년 7월 25일, 말레이시아 남부의 항구 도시인 말라카아폰수 드 알부케르크가 이끄는 900명의 포르투갈 군대가 공격했을 때, 말라카를 다스리던 술탄 무하마드 샤는 전투용 아시아코끼리를 내보내어 저항했는데 코끼리를 본 포르투갈 군대는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곧바로 코끼리를 상대로 소총석궁으로 집중 사격을 퍼부어 코끼리들을 놀라 달아나게 만들어 결국 말라카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출처] 르네상스의 어둠/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266~267쪽[12] 한편 1388년 중국 운남성에서 토착 지배자인 사윤발이 명나라 조정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약 100여 마리의 아시아코끼리들을 앞세웠으나 명나라 군대가 석궁과 함께 폭약 때문에 큰 소리가 나는 화창(火槍)과 신기전(神機箭)을 번갈아가며 쏘아대자, 사윤발의 반란군이 거느린 코끼리들은 놀라서 달아났고 반란군은 크게 패배하였다.[13] 이 점을 이용해 피부에 붙어 떨어지지 않도록 송진이나 타르를 바른 불화살을 쏘거나 벌집을 던진다. 심지어는 위에서 설명한 것 처럼 송진 바른 돼지에게 불을 붙여 돌진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면 코끼리가 놀라 발광하기 때문에 기수가 코끼리를 제대로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대응해서 전쟁시 코끼리 기수들에겐 커다란 스파이크를 지급하였으며, 코끼리가 날뛰어 아군에게 피해가 갈 상황이 오면 그 스파이크를 코끼리의 뒷목에 박아넣어 연수를 찔러 즉사시켰다고 한다. 위 사진들의 코끼리 기수가 코끼리 위에서 밑에있는 적군에게 닿지도 않는 스파이크를 들고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14] 나름의 대응방식으로 코끼리를 전투 시작 전에 취하게 하는 방법이 있었다. 코끼리를 술에 취하게 해서 소음이나 고통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비교적 덜 받게 하는 방식이다.[15] 더구나 전쟁터라는 특성상 전투 코끼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열량을 소모하므로 저 유지비의 배는 먹여 줘야 한다. 게다가 코끼리는 추위에 약해서 겨울에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따뜻하게 해주며 신경을 많이 써 줘야 된다. 결국 코끼리 부대 하나를 운용하기 위해선 상상도 못 할 만큼 엄청난 돈을 써야 했다.[16] 즉, 코끼리 부대를 소유 하는 걸로 주변 국가에 "봐라, 난 코끼리 부대가 있을만큼 강하고 돈이 많다."라며 기선제압을 할 수 있었다.[17] 오히려 이쪽 지역에서는 코끼리를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인지 유지비가 비싸다는 인식이 확실히 박혀 있어서 군주들이 싫어하는 신하에게 코끼리를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줘 버리는 일화가 많다. 신하 입장에서는 감히 군주가 하사한 귀중한 코끼리를 굶겨 죽일 수는 없으니 코끼리가 퍼먹는대로 식비를 대다가 집안 재정이 거덜나게 된다는 것.[18] 반면 말은 한 마리당 하루에 9~10kg 정도고, 말 11마리로 코끼리 한 마리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코끼리 한 마리를 운용할 바에야 말 열 마리를 운용하는게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전투 코끼리는 점차 도태된 것.[19] 그 삼국시대에도 중원에서는 이미 코끼리를 찾아볼 수 없었고 지금의 베트남 북부에 해당하는 교주에서만 코끼리를 동원했다. 종종 삼국지 기반의 창작물들에서 남만 정벌 시점의 전투용 짐승들에 전투 코끼리가 섞여 등장하기도 하는데, 촉한의 남중 정벌 자체가 정사에 언급되기는 하는 사실이고, 남만 자체가 워낙 중원과 먼 외지였기에 중국코끼리였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20] 특히 동남아시아는 기병으로 양성할 말이 부족하여 보병이 군대의 중심이었다. 실제로도 태국과 미얀마는 동원된 군대의 기병 비중이 전체 군대의 10%도 안될 정도로 기병이 적었다. 동남아시아의 역사극들을 봐도 등장하는 전근대 동남아 국가들의 군대가 기병이 손에 꼽을 만큼 적다는 것을 바로 알수 있다.[21] 처음에 리비우스의 기록 중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코끼리가 셀레우코스 왕조의 코끼리보다 작았다라는 서술에 의문을 품었던 역사가들이 많았는데 이것은 이 코끼리의 존재로 의문이 풀렸다.[22] 물론 코끼리 부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20만 보병과 6만 기병도 있었다.[23] 무굴 제국의 바부르군과 로디 왕조의 이브라힘 술탄의 군대와의 전투. 1000여 마리의 코끼리를 동원하였지만 오스만 제국에서 구한 대포에 의하여 코끼리들이 놀라서 도망갔다고...[24] 풀옵/풀업 기준 게임 상 모습. 저옵의 경우 상교 없이 등에 팀 컬러의 천 한장 덮은 코끼리만 나온다.[25] 인도의 국가 보너스 덕에 생산 비용이 페르시아보다 15% 저렴하며, 업그레이드가 무료이다![26] 이름은 모두 한글판을 기준으로 한다.[27] 사실 화랑이 궁수치고는 건물을 잘 부수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역사 관련 게임에서 코끼리가 갖는 강력한 건물 파괴력과 궁수의 낮은 대건물 능력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점이다.[28] 고유 유닛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없던 시절이다.[29] 유럽을 봐도 일신교는 중세에 나왔다고 할 수 있는데, 문명 2의 시대 구분은 심플하게 고대→르네상스→산업→현대. 문명 3의 시대도 고대→중세→산업→현대의 넷으로 나뉘었으며, 고대 시대와 고전 시대가 분리되고 중세도 중세와 르네상스로 나뉘게 된 것은 4편에 들어서이다.[30] 정확히 말하자면 진급 자체는 있었으되 여러 능력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전투력이 올라가는 것이었다. 진급 시스템이 처음 생긴 문명 4에서도 이후 시리즈들처럼 뭔가 독특하다 싶은 능력을 가진 고유 유닛이나 건물은 두 번째 확장팩에서나 실험적으로 등장했다.[31] 원거리 공격 진급과 근거리 공격 진급이 따로 있는데, 고유 유닛을 제외하고 원거리 유닛을 업그레이드하면 근거리 유닛이 되는 경우는 전투 전차→기사가 유일하다.[32] 문명 4의 발리스타 코끼리이다[33] 무도가도 있지만, 무도가는 일꾼인 건축가가 변신하는지라 순수한 전투 전용 유닛이라 보긴 좀 어려워서 제외.[34] 불가사리는 지상 유닛은 일반 유닛이든 영웅이든 한 방에 처치가 가능하지만, 건물은 흠집조차 내지 못한다.[35] 사실 암살자(어쌔신)란게 생긴건 여기서 1000년은 지난 이후고 이 때 바예크는 암살자라기보단 전사 내지 정예병에 가까운 메자이지만 암살자든 전사든 코끼리한테 한번 치이면 즉사인건 변함없다.[36] 기본 공격력은 엘리펀트 아처가 조금 더 좋다.[37] 가까이 줌 해보면 보인다. B급 공포영화 포스터에 그려진 인물처럼 생긴 게 많이 볼품없다.[38] 파쇄차보다 건물 해체능력이 훨씬 뛰어나다. 기본적으로 4천이라는 본진건물에 필적하는 체력에, 공격속도도 무지막지하게 빠르다. 하지만 대 바이오닉전에서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편.[39] 말 그대로 경험치를 팍팍 퍼준다. 코끼리의 체력은 약 4천. 1레벨 무기를 착용하지 않은 영웅이 평타만으로 코끼리 한마리를 잡는 것으로 만렙을 찍는다(물론 모든 영웅이 그런 것은 아니며, 기본 공격이 스플래시인 이령과 여여문은 오히려 코끼리 잡다가 자기 공격에 자기가 당해서 위험해진다. 거기다 공격 속도도 느리다.).[40] 코끼리 자체 방어력(게임 상 표시되는 방어력 수치)+등에 탄 전투원의 방어력을 합쳐 최종 방어력을 계산하기에 무시무시하다.[41] 상대가 코끼리 포병대일 경우 특히 조심해야 한다. 왜냐면 코끼리 포병대의 사거리는 사석포 이하의 공성무기들보다 길다. 대형 사석포부터 사거리가 코끼리 포병대보다 길어지니 참고할 것.[42] 사실 반란군 유닛 목록에는 이미 있다.[43] 다만 스타팅 로스터의 코끼리는 아프리카 코끼리인데 용병은 인도 코끼리가 나온다.[44] 이중 시리아 장갑 코끼리는 전장의 야수들 dlc가 있어야 뽑을 수 있다.[45] 종종 코끼리가 “뿌우~” 하고 우는데, 이것이 크리티컬 데미지 신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