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테 전투 영어: Battle of Patay 프랑스어: Bataille de Patay[1] | ||
▲파타이에서 잉글랜드군을 무찌르는 프랑스군과 잔 다르크[2] | ||
시기 | 1429년 6월 18일 | |
장소 | 프랑스 파테 | |
원인 | 루아르 원정을 수행하는 프랑스군의 잉글랜드군 추격 | |
교전국 | 프랑스 왕국 | 잉글랜드 왕국 |
지휘관 | 라 이르 장 2세 달랑송 장 포통 드 생트라유 장 드 뒤누아 질 드 레 아르튀르 드 리슈몽 잔 다르크 앙투안 드 샤반 | 존 파스톨프 존 탈보트 토머스 스케일스 |
병력 | 총원: 8,000명 기병: 1,500명 | 총원: 5,000명 |
피해 규모 | 약 100명 전사 | 약 2,500명 전사 |
결과 | 프랑스의 승리. | |
영향 | 1429년 7월 프랑스, 트루아 및 랭스 탈환. 샤를 왕세자의 왕위 계승권 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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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년전쟁 시기인 1429년 6월 18일, 프랑스군이 파리로 후퇴하던 잉글랜드군을 추격해 막대한 피해를 입힌 전투. 잉글랜드군은 이 전투에서 주력 부대의 상당수를 상실해 잔 다르크의 랭스 행진을 저지하지 못하고 수세에 몰렸다.2. 배경
1429년 5월 8일 오를레앙 공방전에서 승리한 프랑스군은 잔 다르크의 독려에 힘입어 루아르 원정을 단행했다. 잉글랜드군은 오를레앙 주변의 루아르 강 계곡에 있는 쟈흐고, 멍, 보장시 등지에 군대를 배치해 버텨보려 했지만, "하느님이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 성녀를 보내셨다"라는 확신을 품은 프랑스군의 맹렬한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파리에서 루아르 계곡으로 달려온 존 파스톨프는 아군을 구원하려 했지만 쟈흐고, 보장시의 함락을 막지 못했고, 멍 요새에 있던 존 탈보트와 토머스 스케일스의 잉글랜드군을 불러들인 뒤 파리로의 귀환길에 올랐다.총합 5,000가량의 잉글랜드군의 행군 속도는 매우 느렸다. 가장 느리게 움직이는 수송 마차와 포병대를 보호햐기 위해 선두에 세웠기 때문이다. 파스톨프는 선두에서 수송 부대, 포병 부대, 숙영지 경비병, 소규모 기마병들과 함께 했고, 탈보트, 스케일스는 노르망디와 프랑스 점령지에서 모집한 프랑스 민병대와 함께 중군에 있었다. 후위대에는 잉글랜드 맨앳암즈 및 장궁병들이 배치되었다. 이 사실을 첩보를 통해 접한 프랑스군 총사령관 장 2세 달랑송을 비롯한 프랑스 장군들은 섣불리 추격했다가 크레시 전투, 푸아티에 전투, 아쟁쿠르 전투, 베르뇌유 전투 같은 참혹한 패배를 겪을 것을 우려해 추격하기를 주저했다. 이때 잔이 그들을 독려했다.
"저들이 그대로 돌아가게 내버려둔다면 랭스로 행차하실 샤를 왕자님의 대관식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들과 싸우러 갑시다! 그들이 구름에 걸려 있더라도 우리가 잡을 겁니다. 하느님이 그들을 벌하려고 우리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쓸 때입니다!"
프랑스 수뇌부는 그녀의 뜻에 따르기로 하고, 북쪽으로 후퇴하는 잉글랜드군을 추격했다. 라 이르가 이끄는 1,500명의 기마병이 선두에서 질주하는 동안, 장 2세, 잔, 리슈몽 등이 이끄는 프랑스 본대가 뒤따라갔다. 이후 6월 18일 정오에 프랑스군 선봉대가 파테 마을 인근에서 잉글랜드군과 대면하면서 파테 전투의 막이 올랐다.
3. 전투 경과
맹렬한 여름 더위에 시달리며 느릿느릿 행진하던 잉글랜드군은 6월 18일에 파테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2마일 떨어진 블루아-파리 도로와 오를레앙-샤르트르 도로의 교차점에 이르렀다. 이때 정찰병들이 적 기병대가 근처에 이르렀다는 첩보를 전했다. 파스톨프는 탈보트, 스케일스와 함께 전쟁 회의를 열어 어찌 대응할 지 논의한 끝에 적군의 추격을 따돌릴 가망이 없으니 전투 대형을 편성한 뒤 적을 격퇴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잉글랜드군에게는 불행하게도 그들이 전투 대형을 갖춘 곳의 지형은 작은 숲 몇 곳이 산개할 뿐 드넓은 들판이 펼쳐지는 등 매우 평탄해서 방어상의 이점을 거의 가져다주지 못했다. 파스톨프는 대포와 짐을 블루아-파리 도로 서쪽의 조그마한 언덕인 라가렌에 올려놓게 하고, 탈보트에게 500명의 장궁병들을 데리고 울타리가 앞에 쳐져 있는 숲에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이들은 프랑스 기병대에게 기습 사격을 가해 상당한 손실을 입힌 뒤 즉시 물러나서 본대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탈보트의 궁수들은 오후 1시 30분까지 두 그룹으로 나뉘어 교차로 바로 남쪽의 블루아-파리 도로 맞은편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장궁병들이 기병들의 돌격을 저지할 말뚝을 충분히 박지 못했다. 장궁병들이 숲속에 자리를 잡은 직후, 프랑스 기병대가 탈보트의 장궁병들에게서 반 마일 떨어진 생페라비에 도착했다. 이때 큰 사슴 한 마리가 기병들의 접근에 놀라 숲에서 뛰쳐나와 장궁병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궁수들은 갑작스러운 사슴의 돌진에 당황해 비명을 지르며 자리를 피했다.
프랑스 기병들은 그 비명을 듣고 적이 숨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즉시 라 이르에게 잉글랜드군을 발견했고 적이 전투 대형을 결성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라 이르는 적이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을 확인하고 즉시 돌격하라고 명령했다. 오후 2시, 프랑스 기병들은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며 적 궁수병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은 엉성하게나마 전방에 서 있는 말뚝을 회피해 장궁병의 측면을 강타했고, 뒤이어 장궁병들을 에워싸서 섬멸했다. 얼마 안남은 장궁병들이 가까스로 그들을 피해 본대로 도주했다.
장궁병들이 형편없이 깨져서 달아나는 모습을 본 병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특히 잉글랜드군이 최근에 노르망디와 프랑스 점령지에서 징집한 민병대가 도주하기 시작했다. 파스톨프가 병사들을 진정시키려고 애쓰고 있을 때, 라 이르의 프랑스 기병대가 적 본대를 향해 돌진해 적 대열을 돌파하고 적병들을 마구 베었다. 한 시간 남짓 지속된 전투 끝에, 잉글랜드군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도주했고, 프랑스 기병들은 그런 적을 추격해 무참히 학살했다.
해가 저물 무렵 전투 현장에 도착한 프랑스 본대는 프랑스 기병대를 피해 사방으로 달아나는 패잔병들을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때 잔 다르크는 치명상을 입은 잉글랜드 병사를 발견하고 말에서 내려 그 옆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양손으로 끌어안은 뒤 위로를 건네고 죽기 전에 자신이 생전에 지은 죄를 고백하고 평온하게 임종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전해진다.
한편 탈보트는 울타리 뒤에서 체포되어 파테 마을에 있는 집으로 이송되었고, 토머스 스케일스 역시 생포되었다. 존 파스톨프는 가까스로 전장을 빠져나와 파리로 쓸쓸히 돌아갔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섭정인 베드퍼드 공작 존은 파테 전투 소식을 듣고 진노해 파스톨프의 기사 작위의 상징인 가터 훈장을 제거했다. 이후 4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1433년 프랑스군 사령관이었다가 잉글랜드군에 체포된 장 포통 드 생트라유와 교환하는 대가로 석방되어 잉글랜드로 돌아간 탈보트는 파스톨프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파테에서 심각한 패배를 당했다며 파스톨프를 오랫동안 적대시했다.
4. 결과
도팽 샤를을 따르는 아르마냑파 프랑스군은 이 전투에서 1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반면 잉글랜드군은 부대의 절반인 2,500여 명을 잃었고, 존 탈보트, 토머스 스케일스 등 고위급 장성들이 생포되는 참패를 입었다. 이리하여 루아르 강의 주도권은 아르마냑파 프랑스에 넘어갔고, 잉글랜드군은 파리로 패퇴했다. 그 후 잔 다르크는 도팽 샤를을 찾아가 랭스로 가서 대관식을 거행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고, 처음에는 파리 공략이 우선이라며 부르고뉴파의 지배하에 있는 랭스로 가려 하지 않던 샤를은 거듭된 요청에 결국 마음을 달리 먹었다. 6월 24일 잔 다르크의 의지에 따라 랭스로 진군한 프랑스군은 큰 저항을 받지 않고 7월 16일 랭스에 입성했고, 도팽 샤를은 7월 17일 랭스에서 프랑스 국왕 샤를 7세로서 대관식을 거행했다.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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