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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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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경우 톱 크래프트에서 제작했으나 미야자키가 저작권을 가지기로 하고 제작한 작품이고 미야자키가 지브리에 저작권 관리를 위탁해 스튜디오 홈페이지 작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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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니노쿠니 시리즈 중 1편을 한정으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을 검수하는 방식으로 참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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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1994)
平成狸合戦ぽんぽこ
Pom Poko
파일:external/imgmovie.naver.net/B2749-00.jpg
<colbgcolor=#ffffff,#010101><colcolor=#de002b> 장르 애니메이션, 코미디, 가족, 판타지, 우화, 블랙 코미디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
각본
기획 미야자키 하야오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
목소리 출연 신초우 코콘데이, 노노무라 마코토, 이시다 유리코
주제가 시게모리 아유미 - いつでも誰かが (언제나 누군가가)
미술 오가 카즈오
작화감독 오오츠카 신지, 카가와 아이
제작사 파일:일본 국기.svg 스튜디오 지브리
배급사 파일:일본 국기.svg 도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원씨앤에이홀딩스
개봉일 파일:일본 국기.svg 1994년 7월 16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5년 4월 28일
상영 시간 119분
월드 박스오피스 $1,252,335
북미 박스오피스 $372,405
일본 박스오피스 44억 7,000만 엔[1]
대한민국 총 관객 수 23,587명
국내 스트리밍
[[넷플릭스|
NETFLIX
]]
,




상영 등급 파일:영등위_전체관람가_초기.svg 전체관람가

1. 개요2. 예고편3. 등장인물4. 줄거리5. 제작 과정6. 해석7. 주제가8. 기타

[clearfix]

1. 개요

タヌキだってがんばってるんだよォ。
너구리도 열심히 살고 있어.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제작하여 1994년 7월 16일에 개봉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원제는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平成狸合戦ぽんぽこ)》. 원작, 감독, 각본은 타카하타 이사오가 맡았다.

일본에서는 44억 엔이 넘는 흥행을 거두며 당시 밀림의 왕제 레오 표절 논란 때문에 주춤하던 라이온 킹 흥행을 제쳤다. 덕분에 라이온 킹이 일본만은 일본 극장 흥행에서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제작진 ▼
* 제작 - 토쿠마 야스요시, 우지에 세이이치로, 이소베 리츠오

2. 예고편

예고편

3. 등장인물

4. 줄거리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쿄 인근 타마산의 자연 속에서 너구리 요괴 바케다누키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너구리들은 사람들이 사는 시골 마을이 근처에 있었지만 굳이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고 자연에서 자라는 식생과 밭의 작물들을 조금씩 먹으며 공존하였다. 하지만 1967년부터 시작된 타마 뉴타운[12] 계획으로 인간 사회만을 위한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사람들과 공존하던 부락들과 자연도 파괴되고 만다.

이에 너구리들은 차츰 삶의 터전을 잃고 산 속으로 쫓겨 들어가게 된다. 결국 극도로 협소한 터전만 남게 되어 살 곳을 잃어버린 너구리들은 급기야 땅을 놔두고 패싸움을 벌이지만 "이대로 가다간 모두 다 죽는다"는 오로쿠 할멈의 일갈의 중재로 정신을 차리고, 모든 너구리들이 살아남기 위해 단결하기에 이른다.

너구리들은 오랫동안 금지되어 있던 변신술[13]을 다시 연마하는 한편 시코쿠와 사도의 변신술 사범들을 초빙하기 위해 젊은 너구리들을 보낸다. 한편 자신의 고향이 파괴되어 격노한 강경파 곤타의 주도에 의하여 공사 현장에 사보타주를 가해 세 명의 중장비기사를 죽이고 여러 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걸로 개발이 멈출 리는 없었고, 계속된 공포 작전에도 약간의 소란과 가십거리만 남겼을 뿐 공사는 진행되었다. 겁에 질려 인부들이 일을 그만 두면 계속해서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대체했기 때문. 이에 흥분한 곤타에 의해 너구리 무리에서는 쿠데타까지 일어나지만 워낙에 낙천적인 너구리들의 성격상 금방 흐지부지된다.

그러던 중 마침내 시코쿠에서 오랜 논의 끝에[14] 사범 너구리들이 도착하여 요괴대작전(백귀야행)을 벌인다. 이 작전으로 인간들을 놀라게 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력을 다 써버린 나머지 사범 한 명이 숨을 거두고 말았고[15] 이로 인해 너구리들은 큰 슬픔에 빠진다. 곧바로 매스 미디어에도 인간 마을에 요괴가 나타난 일이 알려지게 되는데, 다음 날 한창 공사가 진행되던 <원더랜드>의 사장이 TV에 나와 자신들의 놀이공원을 홍보하기 위해 벌인 퍼레이드라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에 이른다. 죽 쒀서 개 준 꼴이 된 너구리들은 분노에 차 우왕좌왕하고 곤타를 수장으로 한 강경파, 하게를 중심으로 한 정토파, 쇼키치를 중심으로 한 온건파로 나뉘면서 너구리 무리는 결국 와해되고 만다.

이 무렵 원더랜드 사장과 결탁한 변신술에 능한 여우 류타로가 산을 찾아와 6대 금장대명신에게 대화를 청한다. 그는 이미 타마 지역 여우들은 멸망했으며 변신술을 익힌 극소수의 여우들만이 인간들 틈에 숨어 산다면서 변신할 수 있는 너구리들은 원더랜드 사장 밑에서 급여를 받으며 일할 것을 제안한다.[16] 하지만 너구리들은 그걸 역이용하여 자신들의 노력을 망친 원더랜드 사장에게서 1억엔이나 되는 막대한 돈을 강탈했고 사장은 너구리들이 자신의 돈을 강탈했다고 난리를 쳤지만 미친 사람 취급만 받게 된다.

하지만 너구리들도 언제까지고 산에서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여우들처럼 인간들 틈에 숨어 살자니 변신하지 못하는 너구리들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강경파인 곤타는 자신의 뜻을 따르는 너구리들과 함께 인부들을 습격하였고, 뒤이어 환경보호단체로 둔갑한 뒤 경찰들과 대치하다가 죽음을 각오한 옥쇄 전면전에 돌입. 인간들에게도 어느 정도 상해를 입히게 되지만 결국 경찰들이 가져온 총에 의해 모두 죽고 만다. 그럼에도 곤타를 비롯해 살아남은 몇 안되는 너구리들이 요괴[17]로 둔갑하여 도로에서 지나가는 차량들을 부수며 발악해 보지만 지나가던 데코토라 트럭에 치여 전부 죽고 만다.

한편 스님 너구리가 몰래 방송국에 편지를 보내 백귀야행이 자신들의 일이라는 것을 알리면서 TV 취재진들이 산에 찾아오게 된다. 스님 너구리는 도자기로 변해 인간들에게 다가가지만 잔뜩 긴장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에 오로쿠 할멈이 모습을 드러내 합세하자 본인도 변신을 풀고 백귀야행은 우리가 한 일이라고 속시원하게 외친다. 오로쿠 할멈도 산은 우리의 터전이니 마음대로 없애지 말라, 이는 모든 동물의 바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너구리들은 갖가지 들짐승들로 변신해 취재진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든다.

장로 중 한 명인 999세의 하게다누키는 자신들의 어떠한 노력도 통하지 않는다는 결과에 절망해 현실을 도피하고 종교만 좇게 되고, 결국 노망이 나 변신을 할 수 없는 너구리들을 모아서 사이비 종교 비슷한 그룹을 만든다. 하게다누키는 마지막으로 도술을 써 자신의 음낭으로 보물선을 만들고 도태된 너구리 신도들을 태우고 강을 따라 떠나간다. 다들 흥겹고 즐겁게 배를 타고 나아가지만 그들이 향해가는 정토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길이었고, 이를 설명하는 나레이션은 매우 비장하고 슬픈 내용이지만 음악이나 나레이션 연기는 전혀 슬프지 않게 마치 일본의 전통 연극의 변사마냥 읊는 대조적인 연출이 백미.[18] 뒤에 남은 몇 안되는 주인공을 비롯한 온건파 너구리들은 이 광경을 슬프게 바라본다.

그리고 뒤늦게 분타가 돌아와 자신이 데려오려던 사범이 45년 전에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에 오열한다. 너구리들은 떠나기 전 기분 전환 삼아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이용해 도술을 부려 오래 전 자연과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던 도쿄의 모습을 환영으로 보여준다. 이 도술이 의외로 효과가 있었는지 개발의 방향이 자연을 조금이나마 보존하자는 방향으로 틀어져 도심 곳곳에 소수의 너구리들은 살아갈 수 있는 자연공원이 조성된다.

하지만 자연공원 만으로는 모든 너구리들이 살기에 부족해 몇 남지 않는 너구리들은 뿔뿔이 흩어져 일부는 아직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농촌으로 떠나고[19], 주인공을 비롯한 변신술을 할줄 아는 너구리들은 인간으로 둔갑하여 직장에 다니거나 자영업을 하며 도시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새드 엔딩으로 결말이 난다.

에필로그에선 갑갑한 인간 세상을 살게 된 쇼키치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던 도중, 떠났던 너구리들이 한밤의 골프장에서 모처럼 연회를 벌이고 있는 것을 발견해 친구들과 재회한다. 오랜만에 폰키치를 비롯한 친구들과 다시 만나 회포를 푸는 도중, 폰키치가 관객들 쪽을 보면서 하는 대사가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과 여운을 남기며 영화가 끝난다.[20]
저기요, TV에서 그러죠?
개발 때문에 너구리나 여우가 모습을 감췄다고요.
그런 말 그만 하세요.
아, 뭐... 물론 변신하는 너구리나 여우도 있긴 하지만,
토끼나 족제비는 어떻게 된 거죠?
스스로 모습을 감출 수 있나요?
더빙판 대사

5. 제작 과정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제작 비화 1▼
||“내가 돼지로 영화를 만들었으니까 다카하타 씨에게는 너구리로 만들게 하자!”
붉은 돼지」를 제작하던 어느 날, 미야 감독이 뜬금없이 말했다.
지브리는 원래 미야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곳이다. 그러는 사이에 스태프를 정규직으로 만들고 신사옥을 짓는 등 규모가 커지면서 일정한 페이스로 작품을 계속 만들 필요가 생겼다. 미야가 신작을 만드는 동안, 그 사이에 다른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미야가 너구리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말도 안 돼! 너무 무모하잖아!”라고 소리쳤지만 한편으로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카하타는 원래 자기가 나서서 “이 작품을 하고 싶다”라고 말하지 않는 타입이다. 그래서 「반딧불이의 묘」도 「추억은 방울방울」도, 처음에는 이쪽에서 떠넘기는 형태로 시작했다. 처음에 왜 만들 수 없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도 그의 특징이다. 하지만 일단 떠맡으면 혀를 내두를 만큼 멋진 작품으로 완성해준다. 그는 그런 감독이다.
지금까지 다카하타와 일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미야의 말을 에두르지 않고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다카하타 씨, 미야 씨가 그러더군요. ‘내가 돼지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까 다카하타 씨는 너구리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죠.”
“말도 안 돼! 미야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가?”
“예전에 그러셨잖습니까? 누군가가 너구리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그 누군가가 다카하타 씨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의 저항은 예상보다 훨씬 격렬했다. 그래서 매일 그의 집으로 찾아가 몇 시간씩 설득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미야와 내가 좋아하는 스기우라 시게루란 만화가의 작품 중에 「808 너구리」라는 것이 있다. 미야는 그것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그 작품은 다카하타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 말고 너구리를 토대로 쓴 소설이나 만화는 없을까? 그때 떠오른 작품이 이노우에 히사시의 『복고기腹鼓記』로, 너구리에 관한 동서고금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었다. 더욱이 이런 책이 있다는 걸 가르쳐준 사람도 다름 아닌 다카하타 감독이었다.
“이 작품으로 할지 안 할지는 둘째 치더라도, 일단 이노우에 작가를 만나보시지 않겠습니까?”
실은 「추억은 방울방울」을 만들 때, ‘횻코리효탄섬’의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이노우에의 오른팔인 와타나베 아키오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를 통해 연락했더니 이노우에는 “그런 일이라면 시간을 내보죠”라고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다카하타 감독과 같이 약속 장소인 아오야마의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와타나베가 이노우에 작가와 함께 나타났다. 이노우에 작가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대뜸 “이런 이야기는 어떻습니까?”라고 구체적인 스토리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더 놀라운 일은 그에 대한 다카하타의 반응이었다.
“이건 토토로를 너구리로 바꾸었을 뿐이잖습니까?”
게다가 이노우에가 아이디어를 내놓을 때마다 일일이 단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노우에 역시 화를 내기는커녕 “듣고 보니 그렇군요”라고 순순히 인정하면서 다음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조마조마하면서도 깊은 감동이 솟구쳤다. 몇 가지 아이디어를 잇따라 내놓는 이노우에도 굉장하고, 그것을 모두 부정하는 다카하타도 굉장하다. 더구나 그렇게까지 부정하면 보통을 화를 내든지 맥이 빠지든지 할 텐데, 이노우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그들의 두둑한 배포와 도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런 대화가 네 시간쯤 이어졌을까? 이노우에 작가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것이 『복고기』였다.
“제가 쓴 작품 중에 『복고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네, 저도 읽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책에는 일본의 너구리 이야기가 전부 담겨 있지요. 실은 요네자와에 지필당문고라는, 제 책을 모아둔 공간이 있습니다. 거기에 『복고기』를 쓸 때 모아놓은 너구리 자료가 전부 있으니, 한번 가보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다카하타와 둘이 요네자와를 방문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카하타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 듯했다.
“이렇게 급하게 너구리 책을 읽어봐야 소용없어. 그게 영화로 이어질 리가 없네.”
“하지만 이노우에 씨가 모처럼 말씀해주셨으니까 여행하는 셈 치고 가보는 게 어떨까요?”
나는 가까스로 다카하타를 설득해서 신칸센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지필당문고에 도착한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상보다 책과 잡지가 많아서 꼭 작은 도서관 같았던 것이다. 그 안에는 이노우에의 말처럼 너구리 코너도 있었다. 다카하타 감독은 몇 권을 손에 들고 내키지 않는 얼굴로 휘리릭 넘겨보았다. 나는 그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 중에서 세 권을 빌린다면 뭐가 좋겠습니까?”
그랬더니 그도 관심이 가는지 “세 권? 글쎄……”라고 말하면서 진지하게 고르기 시작했다.
내 쪽에서 보면 그 책에서 실제로 수확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노우에를 만난다, 또는 책을 빌린다. 그런 계기를 하나씩 만들어나가면 어느 순간에 적극적으로 작품 제작에 임하지 않을까 하는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6개월쯤 지났을까? 어느 날 다카하타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자연이라도 그릴까?”
나는 그의 진의를 이해할 수 없어서 되물었다.
“자연이요?”
다마 지역 뉴타운 아나? 산을 깎아내고 만든 주택지지. 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내고 마을을 만들다니. 세계 역사상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이 어디 있겠나? 이건 영화로 만들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야.”
잠자코 듣고 있었더니 그는 “만약에 만든다면 말이지만……”이라고 운을 떼며 말을 이었다.
“동물을 그릴 때는 의인화를 하는 게 일반적이지. 그런데 너구리가 원래 모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면 어떻겠나?”
그는 원래 동물을 좋아해서 다큐멘터리 방송도 자주 보았다. 그래서 기본적인 소양도 있었으리라. 택지개발로 인해 주거지인 산에서 쫓겨난 너구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소하게나마 인간에게 저항하려고 한 너구리도 있지 않을까? 그것을 가공의 다큐멘터리로서 그릴 수 없을까?
그것이 그의 아이디어였다.
“물론 인간과 싸운다고 해도 너구리들에게는 무기가 없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변신술’을 연마해서 그걸로 인간을 위협하는 게 고작이겠지. 싸움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허술하고, 결국 너구리들은 살곳을 잃어버릴 거야. 그곳에서 사람들이 너구리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인간들이 해온 일을 돌이켜보는 거네. 그런 영화라면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스토리는 이미 훌륭하게 완성되어 있었다. 역시 대단하다고 감탄하는 한편, 왜 더 일찍 말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도 들었다.
가공의 이야기라곤 하지만 일종의 다큐멘터리니까 우선 취재부터 해야 한다. 우리는 실제로 다마 지역에서 너구리를 잡는 사람이나 집에서 키우는 사람을 찾으며 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너구리는 어릴 때는 온순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면 난폭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어 너구리 연구자를 만나고, 다마 뉴타운 개발에 대해 취재했다. 뉴타운을 조성할 때, 산을 무너뜨리는 것에 반대했던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다. 다카하타 감독의 작품에는 항상 이런 취재가 따라다닌다. 그것이 작품에 깊이와 무게를 더해주곤 한다.
취재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한편, 제목도 정해야 했다. 제목을 의논하는 사이에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너구리 싸움’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곳에 다카하타의 “어리석음을 느끼게 하는 ‘헤이세이(平成)’란 말을 붙이면 어떻겠나?”라는 아이디어가 더해져서 제목은 「헤이세이 너구리 싸움」이 되었다.
그런데 그 제목을 보고, 니혼 테레비의 오쿠다 세이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카하타 감독님 작품에는 항상 ‘ほ 호’자가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없군요.”
다카하타는 다시 머리를 짜내서, 북이나 부른 배를 두드릴 때 나는 의성어인 ‘폼포코’란 말을 덧붙였다. 이리하여 일본 제목은 「헤이세이 너구리 싸움 폼포코」로 정해졌다.||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제작 비화 2 ▼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사람이 영화감독뿐만 아니라 경영자로도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제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훌륭한 경영자는 사내의 정보 수집에 빈틈이 없다. 즉, 사내의 도처에 스파이를 심어두고 모든 정보를 수시로 받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을 안 해도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시나리오의 탈고일을 알고 있었다.
탈고 당일, 미야가 나를 찾아왔다.
“스즈키 씨, 시나리오가 완성됐지?”
“네, 덕분에 그럭저럭 완성됐습니다.”
“무대가 다마 뉴타운이라면서?”
“그렇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다음 말을 듣고 나는 한순간 얼어붙었다.
“제작을 중지해.”
농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더할 수 없이 진지했다.
“난 항상 1년 만에 작품을 만들어왔어. 반면에 파쿠상은 2년에 걸쳐 만들고 있지. 이래서는 지브리의 주류가 파쿠상이고 나는 비주류가 아닌가? 내가 지금 어떤 심정으로 「붉은 돼지」를 만들고 있는지 아나? 파쿠상이 엉망으로 만든 스태프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내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는 스즈키 씨가 가장 잘 알 거야! 그래서 그 작품은 제작할 수 없어!”
물론 미야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다카하타가 작품을 만들지 않으면 지브리가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야는 내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그런 건 상관없어! 제작 중지야!”
원래 뜨거운 사람인 데다 「붉은 돼지」의 제작이 막판에 이르면서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한 듯했다. 더구나 다카하타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한순간에 폭발한 것이다.
지브리에는 일명 ‘어항’이라고 부르는 투명한 유리방이 있는데, 그곳에 둘이 틀어박혀 여덟 시간 정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작을 중지하지 않는다면 내가 지브리를 관두겠네.”
그런 최후통첩 같은 말이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계속되었다. 그런 일이 한 달쯤 계속되던 어느 날, 미야가 신음소리를 내면서 가슴을 누르더니 그 자리에서 털썩 쓰러졌다. 구급차를 부르느니 마느니 하는 엄청난 소동이 벌어졌지만, 다행히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영화감독이든 작가든, 창작하는 사람의 스트레스는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어쩌면 그때의 미야는 그런 스트레스가 한계에 도달했을지도 모르겠다.
미야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만들지 않으면 지브리는 끝나버린다. 그야말로 사방팔방이 꽉 막힌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운을 하늘에 맡기고 한 가지 도박에 나섰다. 일부러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회사에 가지 않은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한 미야는 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정신을 차린 듯했다. 다카하타도 미야와 나 사이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그날 미야의 작업실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곳에서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했다는 사실이다. 미야 가슴속의 응어리가 녹아내리면서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 것이다.
두 사람은 그것을 계기로 각자 자신의 작품으로 돌아갔다.||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제작 비화 3 ▼
||그렇게 전쟁 같은 상황을 빠져나오면서 제작이 겨우 궤도에 올랐…… 다고 말하고 싶지만, 문제는 역시 다카하타였다. 여느 때처럼 일정이 지연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매번 개봉에 맞는다, 맞지 않는다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학습한 덕분에, 나도 이번에는 약간 머리를 굴렸다. 개봉 예정은 1994년 여름이었지만 그에게 봄에 개봉한다고 말해둔 것이다. 만일에 대비해 ‘봄 개봉’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포스터까지 만들고, 배급사인 도호 사람들에게도 입을 맞춰달라고 했다.
예상한 대로 제작이 지연되었다. 그래서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서 다카하타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군요. 이렇게 되면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요. 도호에 여름에 개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여기까지는 내가 계산한 대로였다. 성공이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것도 잠시, 여름 개봉도 어렵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브리의 경우, 작화의 생산 속도는 아무리 기를 써도 한 달에 5분이 고작이다. 결국 9월까지 가야 완성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다시 다카하타 감독과 속을 털어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대로 가면 여름에도 개봉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다카하타 씨도 알고 계시죠? 개봉을 겨울로 미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실제로 그럴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뜻밖에도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건 좀……. 역시 여름에 개봉을…….”
“하지만 그때까지 완성이 안 되잖습니까? 겨울로 하시지요.”
“아니, 여름으로…….”
이미 봄에서 여름으로 미뤘다는 부담감과 함께 그 무렵만 해도 아직 일정을 지키려고 하는 의식이 남아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럼 어떻게 하면 스케줄을 단축할 수 있을까? 나는 구체적으로 이렇게 제안했다.
“지금의 그림 콘티에서 10분을 줄이면 어떨까요?”
“어디를 줄여야 할지 모르겠네. 자네가 결정해주지 않겠나?”
“하지만 다카하타 씨 작품에 제가 손을 댄다는 건…….”
이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의 시작이었다…….
나는 뒷부분을 대담하게 자르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리고 “여기는 된다”, “여기는 안 된다”라고 옥신각신하면서 10분을 자르는 것에 성공했다. 다카하타도 처음에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하면 일단 이야기는 통하겠군.”
그런데 다음 날부터 매일 두 시간씩 그에게 잔소리를 듣게 되었다. 10분을 잘라냄으로써 작품의 주제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카하타 감독의 말이 맞다. 뒷부분을 줄임으로써 자칫하면 “자연이 중요하다”라는 흔한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원래 시나리오는 “자연을 소중히 하자고 말하는 쪽에도 문제가 있지 않은가?”라는 의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세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고, 인간은 복잡한 문제를 짊어지고 살고 있다는 점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대로 만들었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다카하타 감독의 의견이 옳다. 하지만 10분을 자르도록 허락한 사람도 다카하타 자신이다. 나는 그 딜레마를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하쿠호도의 지브리 담당인 후지마키 나오야가 웬일로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그러더니 별안간 다카하타에게 “콘티를 봤는데 특히 마지막 부분이 좋더군요”라고 말한 것이다. 다카하타 감독으로서는 아군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개봉에 맞지 않아서 그곳을 자를 수밖에 없네.”
“으아! 그건 너무 아깝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폭발할 뻔했다.
‘이 녀석이 정말! 내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는 줄도 모르고!’||

6. 해석

산에서 자연과 더불어 숨어 사는 너구리들이 인간의 개발에 의해 자신들이 보금자리를 잃게 되자 이를 막기 위해 갖은 수단을 갈구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으로,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너구리들의 저항과 자연을 위협하는 인간의 탐욕을 유쾌하게 묘사하고 있다. 도시개발과 환경보호를 주제로, 그것을 너구리들의 시점에서 그려낸 작품.

하지만 그런 유쾌한 묘사에 비해 앞에서 봤듯 결말은 유쾌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데다가 작중에서도 자연을 보호하자며 큰소리를 내면서도 정작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만들어낸 현대문명의 편리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함을 담고 있는 인간 사회를 익살스럽게 풍자하고 있다.

초반에도 인간 세상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인간들이 버린 TV를 고쳐가며 만복사에 설치했는데 정작 하라는 인간 연구는 안하고 TV가 보여주는 오락거리에 빠져 뒷전으로 미루는 모습도 그렇고, 사람을 욕하며 몰아내자고 하면서도 결국은 사람이 만든 햄버거나 감자튀김을 좋아하고 사람을 다 몰아내자고 하다가도 "사람이 없으면 그런 거 못 먹잖아?"라는 말에 주저하던 강경파 곤타조차도 "어쩔 수 없지... 몇 명은 내버려둘까." 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너구리들의 계획은 전부 실패하면서 자연은 인간에 의해 개발당해 너구리들이 쫓겨나고 어쩔 수 없이 인간들 속에 숨어 살게 되는 씁쓸한 결말이라 뒷맛이 쓰다. 그래도 너구리들끼리 나름 잘 지내는 모양.

사실 겉보기에는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파괴를 풍자하는 작품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프랑스의 68혁명 시기와 맞물리는 일본의 전공투를 비롯한 신좌파 학생운동의 몰락을 빗댄 작품이기도 하다.#

일본의 전공투도, 한국의 운동권도, 프랑스의 학생회도 그렇지만, 이들은 자본주의 기득권 세상을 때려 부수고 기득권들을 처단하는 것을 부르짖었으나, 안으로는 자본 기업체들이 생산하는 기호품들(담배, 술, 잡지 등)은 끊지 못하는 이중적인 면을 보였고, 이를 너구리들이 맥도날드 햄버거와 각종 음식물들에 보이는 식탐으로 익살스럽게 비유하고 있다. 극중 가장 극성 운동권에 해당되는 너구리 곤타 역시 '인간들을 다 죽이자'라고 외치지만,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각종 식품들에 침을 질질 흘리며 '그렇다면 다 죽이는 건 그만둘까' 라며 수정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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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포코에서 경찰의 모습과 전공투 당시 경찰 기동대의 모습이다. 전공투의 나리타 투쟁 사건을 끝으로, 학생운동은 점점 몰락의 길을 걷는다. 대다수가 신좌파운동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학생운동을 청산하고 나서 일부는 본격적인 무장투쟁 운동을 시작하는데, 아사마 산장 사건을 터뜨리는 바람에 실제 총격전까지 벌어진다. 이를 끝으로 남은 무장투쟁 단체들은 테러단체화 되거나, 자연스럽게 와해된다.

실제로 전공투의 몰락 이후 일본 시민운동 세력은 극도로 위축되었고 이런 현실에 대다수의 좌익성향 운동가들은 현실에 절망해버린다. 일부는 너구리들처럼 일반인들 사이에 숨어들어가고, 일부는 무장투쟁운동, 일부는 당시 3D 업종이라 인력이 부족해서 아무나 받아주던 애니메이션계와 영화계로 흘러가기에 이른다.[21] 감독인 타카하타 이사오는 이 세대는 아니지만 이 세대의 학생 운동을 지지하던 좌익 사상가였으며, 이 작품에도 이러한 전공투 경력이 있는 스탭이 몇 명 참여하고 있다.

사실 전공투와 운동권들의 과격 혁명 역시, 그들에게는 목숨을 걸 만큼 가치있는 천하의 향방을 가늠하는 혁명의 여정이었을지 모르나,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볼 때는 '저것들이 무슨 애들 전쟁놀이 하나' 라며 우스꽝스럽게 보이기 일수였다.[22] 이러한 면모를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너구리들과 인간들의 생태계를 둔 전쟁 아닌 전쟁을 통해 익살스럽고도 훌륭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학생운동의 몰락을 그려낸 과정을 요약적으로 상징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정작 만든 사람들은 전공투까지 멀리 가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사실 타카하타 이사오미야자키 하야오는 젊은 시절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부당 대우에 불만을 품고 노조, 데모 활동을 했는데 그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요 등장인물은 미야자키 하야오, 코타베 요이치 등 전부 토에이와 관련된 인물이 모델이라고 한다. 미야자키는 '뭐 이런 영화를 만들었어?' 하고 투정을 부렸지만 실제로는 이 작품을 보면서 울었다고 한다. 곤타가 자신을 모델로 한 캐릭터고 자신의 청춘이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제작 비화 ▼
||그렇게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영화가 완성된 날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다카하타, 미야 감독과 함께 첫 시사를 봤는데, 미야가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너구리들의 모델이 바로 토에이 동화 시절 그들의 동료였던 것이다. 특공대의 리더 격인 곤타는 미야, 주인공인 쇼키치는 다카하타다. 나머지 캐릭터들도 각각 누구를 투영했는지, 본인들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마 미야는 그 영화 안에서 자신들의 청춘을 보았으리라.
다카하타에 대한 미야의 마음은 제3자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 미묘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애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단어만으로는 부족하다. 미야는 다카하타에 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파쿠상(타카하타 이사오의 애칭)의 스태프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나 하나야. 나머지는 모두 없어졌지. 나 혼자 견뎌낸 거야.”
그것은 미야의 자랑이기도 하다. 일흔 살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렇게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말하는 일도 있다.
파쿠상을 욕해도 되는 사람은 나와 스즈키 씨뿐이야. 다른 녀석들이 욕하면 가만두지 않겠어!”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미야는 다카하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해주었다. 훌륭하다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다카하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미야 씨는 가난뱅이 근성이 있어. 그냥 자기 생각대로 하면 될 텐데 왜 저러는 거지?”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도대체 무엇일까……?||

7. 주제가

上々颱風(Shang Shang Typhoon) - 언제나 누군가가(いつでも誰かが)

8. 기타


[1] 배급 수익은 26억 3천만 엔.[2] 고양이의 보은에서 바론 역, 이웃집 토토로에서 쿠사카베 타츠오를 맡았다.[3] 작중 내레이션 중 하나가 중년의 쇼키치이다.[4] 너구리 족장들의 회의 때 민간인 대표로 나서서 인간들의 지식을 무시해서는 안되고 인간들의 지식을 이용해야 한다고 얘기한다.[5] 모노노케 히메 의 성우이다.[6] 국내판에선 분식집으로 로컬라이징 되었다.[7] 복선이 있었는데, 요괴 대작전을 가로챈 원더랜드 사장의 돈을 타마자부로가 빼돌릴 당시 그 돈을 쥐고 매우 좋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8] 보타락도해(補陀落渡海) 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보타락(補陀落)은 저 멀리 남쪽바다 건너에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전설상의 산인데, 전근대 일본 태평양 연안 지역에서 보타락을 찾아 배를 타고 먼바다로 떠나가는 의식을 보타락도해라고 했다. 그런데 살아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고 그래서 사실상 인신공양이나 수장과 같은 형태가 되어버리고 만다.[9] 사망 장면은 마치 승천하는 모습이었는데 천계에서 부처가 내려와 그의 영혼을 안고 천계로 다시 돌아간다.[10] 당시 니혼 TV 아나운서.[11] 정확히 말해 변신술을 이용해서 원더랜드라는 테마파크에 너구리들을 취직시키면 된다는 아이디어였지만, 교부다누키의 환술을 퍼레이드라고 포장시킨 원더랜드의 사장에게 앙심을 품었기에 1억 엔 가량을 훔쳤다. 대부분 일본의 대중매체에서는 여우와 너구리가 사이가 안 좋거나 라이벌로 나오는 이미지를 생각하면은 현실적인 조언을 주는 여우는 신선한 시도다.[12] 일본 부동산 버블을 다루는 다큐에 고정으로 출연하다시피하는 그 타마 뉴타운 맞다.[13] 오로쿠 할멈의 말에 따르면 원래 에도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너구리들과 여우들은 변신술로 인간계에 쉽게 녹아들 수 있었으며, 변신술을 보는 일이 흔해서 당시 인간들은 이를 그림에 담았다. 그러나 개화 이후 인간들은 변신술에 능한 그들을 경계해 마구 사냥했고, 여우족이 멸망하고 너구리족 역시 명맥을 이어가는 수준이 되어버리자 너구리족의 전대 족장들은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 변신술을 금지시키고 봉인시켰다.[14] 하게, 이누가미교부, 6대 금장 뿐 아니라 시코쿠 진영 장로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걸로 나온다. 이중 교부의 경우 오랜 고민끝에 참전을 결심한 듯 보이는데 서술할 과거로 인해 꽤 고민한 듯. 게다가 후임 결정 건으로 심란했을지도 모른다.[15] 말이 좋아 사범이지, 일반 너구리들 부류인 '요물'의 수준을 넘어 거의 '요괴'의 경지에 도달한, 도사급인 신령의 너구리들로, 가장 나이 많은 너구리 '하게'는 999세였다. 엄청난 공력을 지닌 너구리들을 시코쿠에서 초빙한 것인데, 이들 모두가 고령인지라 한 마리가 죽은 것. 여담으로 이 사범은 과거 모두를 위해 희생하기로 결심했다고 하는데 이유는 위에 서술.[16] 변신하지 못하는 너구리는 어떻게 하냐고 하자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여우족도 변신하지 못하는 여우는 포기했다고.[17] 참고로 너구리들이 둔갑한 이 요괴의 정확한 이름은 츠루베오토시(つるべ落とし)다.[18] 보물선은 결국 환영일 뿐이고, 이들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다 물에 빠져 죽는다는 결말을 담담하게 암시한다.[19] 허나 이런 농촌도 결국에는 개발이 될 것이라는 씁쓸한 암시를 준다.[20] 토끼나 족제비도 둔갑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애초에 작품 초반부에 할머니가 변신술을 가르칠 때 여우, 너구리, 일부 고양이들만 변신할 수 있다고 못박기 때문에 토끼나 족제비는 둔갑을 못하는게 맞다. 물론 죽었는지 어떤지도 나오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너구리들보다 형편이 훨씬 안 좋다는 뜻인 것만은 분명하다.[21] 한국에서는 주로 학원 강사들이 사회운동을 했던 경우가 많았다. 교직에 몸담고 있었거나, 민주운동가 경력 때문에 빨간줄이 그어져서 교사 채용에 낙방했던 사람들이 학원가로 흘러들어온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학원 강사들이 대부분 진보 성향인 경우가 많다. 한석원도 운동권 출신이었고, 5.18 민주화운동의 주역 중 한 사람인 윤상원도 평상시에는 과외수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사람이다. 정봉주, 정청래, 박정 등도 학원강사 출신이다.[22] 더구나,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전공투와 운동권의 윗세대 어르신들이 전부 세계 대전과 6.25 전쟁이란 극단의 난세를 해쳐나온 세대인지라 더욱 한심하고 하찮아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도 크다. 그나마 한국의 경우는 군사정권의 독재에 대한 저항이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었고, 프랑스나 기타 서유럽 국가들도 파시즘제국주의 시절의 적폐 타파라는 대의명분이 있어서, 2020년대로 접어든 현재까지도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리버럴 성향의 원내 주류 정당들을 중심으로 사상적 명맥을 이어가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경제의 고속 성장이 일어나는 동안에 파시즘적인 요소도 상당히 희석되어버려서, 일본인들 사이에서 전공투와 같은 좌파적 시민운동에 대한 관심도가 적었다.[23] 이는 당시 일본문화 개방 이전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24]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이 성공한 후 붉은 돼지, 천공의 성 라퓨타, 귀를 기울이면 등이 뒤늦게 개봉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