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흑역사/목록
- 관련 항목 : 군사 관련 정보, 군대 관련 정보, 대한민국 국군/사건사고
1. 각 국가별
1.1. 대한민국
1.1.1. 전근대 시대
- 고조선
- 고구려
- 비류수 전투
- 342년 전연의 침공: 비류수 전투와 주필산 전투만큼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수도가 함락당했다.
- 371년 평양성 전투: 고구려 고국원왕이 백제군과 교전 중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 주필산 전투
- 백제
- 396년 한성포위: 392년 이래 광개토왕에게 탈탈털린 백제가 수도 한성까지 고구려군에게 포위되버린 사건.
- 475년 한성함락: 수도를 웅진성으로 천도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게되었고, 551년 이전까지 한강유역을 확보하지 못했다.
- 554년 관산성 전투
- 신라
- 400년 왜군의 침공: 백제와 가야가 배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고구려에게 지원군을 요청해서 겨우 격퇴했으니 흑역사 맞다.
- 642년 대야성 전투
- 672년 석문전투
- 839년 달벌전투: 장보고+김양의 연합군에게 신라 중앙군이 대패했다. 김헌창의 난과 대조적인 결과.
- 920년 대야성 전투: 이전 2차례의 후백제 침공에도 건재했지만 3차 전투에서 함락당했다. 결과적으로 7년 뒤 서라벌 함락을 초래했다.
- 후백제
- 909년 나주 공방전: 병력상 왕건의 원정군+나주 호족세력보다 우월했으나 패배하고 무주(지금의 광주)까지 역공을 허용했을 만큼 피해가 컸다.
- 930년 고창 전투: 팔공산 전투에서 얻은 한반도 남부 주도권을 다시 고려에게 내줘버렸다.
- 936년 일리천 전투: 고려에 투항한 견훤의 존재로 군의 1/3이 적군으로 돌변, 결국 패배하면서 후백제 패망으로 이어졌다.
- 고려
- 팔공산 전투: 이 패배로 2년간 한반도 남부의 주도권을 후백제가 쥘 정도로 큰 패전이었다. 고창 전투의 승전으로 다시 역전되었지만.
- 통주 전투: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 때 일어난 패전.
- 무신정변
- 안북성 전투: 1차 여몽전쟁이 패전으로 끝나게 된 전투. 이후 고려 정규군은 몽골군과의 대규모의 교전을 피하게 되었다.
- 이작도 전투
- 합포 전투
- 조선
임진왜란 당시 민병을 포함한 50,000여 명의 군사가 왜군 1600명에게 전부 흩어졌다. 그래도 정규군이 나섰던 쌍령 전투에 비하면 나은 편. 애초에 민병이었으니 50,000명이 50,000명답게 싸울 수도 없었고, 이 전투로 인한 피해도 크지는 않았다. 여기서 도망쳤던 병사들 중 일부가 나중에 웅치 전투와 이치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1.1.2. 정부수립 이후
- 대한민국 국방부 그 자체 - 문서의 문제점 부분을 보라(...)
1.1.2.1. 6.25 전쟁 관련
- 6.25 전쟁 당시의 국군 및 미군의 문화재 파괴
후퇴작전 및 영내의 빨치산 소탕을 하기 시작하면서 적군이 주둔할 곳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여러 문화재를 우리 손으로 없애는 병맛 넘치는 짓들을 저질렀다. 월정사 등이 이러한 비현실적이고 효과없는 작전으로 인해 사라졌으며, 해인사 역시 미군의 명령으로 사라질 뻔 했으나, 해인사의 중요성을 안 고 김영환 장군의 목숨을 건 항명 및 설득 덕분에 지켜낼 수 있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 본토 공습이 한창이던 시절 미군 수뇌부가 교토를 문화재가 넘치는 천년고도라는 이유로 폭격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과는 은근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정작 김영환 장군은 미군의 그러한 문화재 보존 예를 지적하면서 해인사 유지의 당위성을 설명했다고 한다.하지만 1950년 미군이 덕수궁을 폭격하려다 제임스 해밀턴 딜 대위의 결단으로 덕수궁이 살아남은건 빼도박도 못한다.즉 이 대위라도 있었기에 미군 수뇌부의 병신짓이 줄어들었지, 아니면 덕수궁터만 남아 두고두고 욕을 얻어 먹었을 것이다 - 6.25 전쟁 당시 국군과 UN군의 평양 정복 및 입성
전쟁 때 38선을 넘어 북진하게 되면서 평양을 정복하고 압록강까지 정복하였으나 중공군의 인해전술 기습과 남하후퇴로 결국 완전정복은 이루지 못했다.김일성도 잡아내지 못하였다 - 거창 양민 학살사건(1951.2)
- 보도연맹 학살사건
- 국민방위군 사건
- 4.3 사건
사건의 발발은 남로당과 일부 주민이 조직한 무장대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무장대 진압 과정에서 토벌대에 의해 많은 양민이 희생되었다.
1951년 1.4 후퇴당시 제2국민병으로 편성된 국민방위군의 고급장교들이 국고금과 군수물자를 부정처분하여 착복함으로써 아사자와 동사자가 속출하였는데 사망자수만도 1,000여명에 이르렀다. 이 참상은 국회에서 폭로되어 진상조사단이 구성되었다. - 현리 전투
- 한강 인도교 폭파
- 한국군 위안부 - 일본군이 한 짓을 답습한 국군 최악의 흑역사
1.1.2.2. 가혹행위, 자살, 총기난사 관련
- (1959/2/18) 제28보병사단 사단장 살인사건
- (1984/6/26) 조준희 일병 총기난사 및 월북 사건
- (1985/2/24) 제28보병사단 화학지원대 총기난사 사건
당시에는 은폐된 사건이지만 2005년에 같은 28사단에서 발생한 530GP 사건 때문에 덩달아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군대에서 일어난 사건 중에서 마지막으로 군법에 의해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기도 하며 이 이후로는 군법에 의한 사형집행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선고만 내릴뿐 실제로는 집행되지 않고 있어서 사실상 중단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 (1988) 이길우 병장 사건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져봐야 한겨레신문를 통해 알려진 사건. 고등학교를 졸업한 85년에 절도범으로 오인되서 파출소로 연행되었고 그곳에서 경찰에게 고문을 당해 정신병 증세가 생겼다고 한다. 그런 상태에서 86년에 입대하라는 통지서가 날라와 입대를 했는데 그대로 군복무를 하다가 88년에 동료를 사살한 사건을 벌였다. - (1993/4/19) 혜화동 무장 탈영병 총격 난동사건
- (2005/1/10) 논산 육군훈련소 인분 사건
- (2005/6/19) 530GP 사건
- (2005/6/28) 해군 동검도 제초제 사건
- (2011/7/4) 제2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 (2011/12/4) 김희성 일병 자살 사건
이 사건을 통해 국방부 측에서 유가족에게 군 사망자 조의금 지급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군 간부가 유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채 그동안 관행적으로 군 사망자 조의금을 맘대로 썼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2012/2) 구상훈 이병 가혹행위 은폐 사건
군 수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보여주는 사건으로 피해자가 식물인간상태에서 사망했으면 영원히 묻혔을 사건이다. - (2012/10/16) 오혜란 대위 성추행 자살사건
- (2013/7/1) 김지훈 일병 자살 사건
사고 사건이 타군에 비해 적었고 제일 신사다운 이미지를 가진 공군이었기에 더더욱 흑역사로 남았다. 원인, 과정, 수습, 결과, 전망 등 모든 부분에서 이전까지 타군에 존재했었던 추악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사건 이후에도 공군 가혹행위 사건이 줄줄이 나온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 (2014/4/7)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윤일병 사건)
6~70년대에 일어날 일이 21세기 현재에도 일어난 사건이자 전시에 이성이 끊어져 포로에게도 할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행동들을 평시에 후임에게 해서 결국 죽은 사건. 잔혹하니 항목 참고시 주의. - (2014/6/21)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임병장 사건)
- (2014/7/10) 이상병 자살 사건
윤일병 사건이 터지고 나서 제대로 밝혀졌는데, 정신병에 걸린 병사를 제대로 의병전역 조치시키지 않고 방치함과 동시에 영창만 줄기차게 보내 정신병이 심하게 걸려 자살한 사건이다. - (2014~2015) 제1전투비행단 가혹행위 은폐 사건
제 2의 윤일병 사건. 공군도 육군 못지 않게 간부들이 사건 은폐/축소할려고 애를 많이 쓴다. 윤일병과 마찬가지로 가해자편만 드는건 덤.. 윤일병 사건을 겪어서 그런지 피해자 측은 대응이 적극적이다. - (2015/1/16) 31사단 이 일병 실족사 사건
목포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31사단 이 모 일병이 경계근무 도중 총기와 공포탄을 소지한 채 근무지를 이탈했다. 군은 탈영에 초점을 두고 진돗개 하나까지 발령했지만, 일주일만에 실족사로 밝혀졌다. - (2015/5/13)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건
처음으로 예비군 훈련 중에 일어난 총기사고.
1.1.2.3. 군 의문사 관련
- (1998/2/24) 김훈 중위 사건
군 의문사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군 수사가 얼마나 허술했고, 군 의문사가 왜 일어났는지 알게 된 사건 - (1984/4/2) 허원근 일병 사건
김훈 중위 사건과 달리 이 사건은 비교적 타살이 확실히 증명되는 사건 - 함광열 이병 사건
1.1.2.4. 군 의료체계 사고 관련
- 노충국 사건
- 노우빈 훈련병 사건
- 신상민 상병 사건
1.1.2.5. 군사 반란 관련
- 5.16 군사정변
- 12.12 군사반란
-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진압군
1.1.2.6. 북한 관련
- 2012년 북한군 귀순 사건
- 장성 간첩 사건
2010년 중순쯤에 군 사령부에서 참모로 근무하던 김 모 소장이 북한 간첩 흑금성에게 작계 5027를 유포. 이 사람은 27보병사단 33대 사단장이었고 현재 이등병 전역 후 국군교도소에 있다. 부대 흑역사
1.1.2.7. 기타
- 괄약근에 힘줘서 군대 빼기
당시 이 수법이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병역면탈이 이렇게 쉬울 줄이야'면서 사람들을 온통 경악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작곡가 중에 한 사람이 이 방법으로 군면제를 받았었다. - 김영삼 항모
- 대구 달성터널 폭발사고
- 병무청 문자논란
- 석사장교제도
석사학위 소지자 중 시험을 통해 선발된 사람들은 4개월 군사훈련+ 2개월 전방실습 등 총 6개월만 복무하면 예비역 소위로 제대할 수 있었던 우왕ㅋ굳ㅋ한 제도. 5공화국 정권이 이공계열 학생에 대한 군복무 혜택 목적으로 도입했는데 저 어마어마한 복무 기간 때문에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제도를 없애라며 데모도 한 적이 있는데, 정작 갔다온 선배들은 "이거 꿀인데 왜 저러지?"라는 반응이 많았다. 결국 전,노 전대통령 아들들이 모두 석사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뒤인 1990년 폐지되었다. -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
해병대가 자존심하나때문에 한밤중에 공군비행학교를 1 00명넘는 장교들이 모여 무임승차까지 하고 기습해 공군과 얽혀 300여명이 패싸움을 벌이고 기물을 파손시 킨것은 물론 기습한 주제에 오히려 해병대 장교 1명이 사 망하는등의 아군이 서로를 쥐어팬 유래를 찾기힘들 정도 로어처구니 없는사건 이뭐병... - 실미도 사건
-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
- 옹진호 사건
- 육군훈련소 전염병 사망사건
- 율곡사업
- 제13공수특전여단 훈련사망사고
- 직각식사[1]
- 천안함 피격사건
국방장관이 천안함이 침몰한 3월26일을 '국군 치욕의 날'로 기억할 것이라 말했다. - 통영 YTL 침몰 사건
- 군 생활관 게임채널 차단사건
- 군인권센터 상담업무 방해 시도 사건
1.2. 미국
- 베트남 전쟁
- 테러와의 전쟁 - 현재진행형의 흑역사
- 독수리 발톱 작전
- 진주만 공습
- 리틀 빅혼 전투
한동안 야만적인 원주민에 둘러싸인 미군의 최후의 저항으로 미화되었으나, 현대에 이르러 이 전투는 커스터의 실책과 삽질로 평가받고 있다 - 미영전쟁 당시 영국군의 워싱턴 D.C 점령
미국이 독립한 이후 수도가 외국군대에게 점령당한건 이때가 유일 - 보너스 군대
-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
- USS 빈센스 함 사건
- USS 포레스탈 화재 사건
- 전익 폭격기 XB-35
당시로서는 제어불가...결국 노스롭은 근성으로 B-2를 만들어내게 된다. - 플레처급 구축함중 하나인 윌리엄 D 포터
- 각종 학살
- 인디언 전쟁
- 1938년 이전 미군 45보병사단의 엠블럼. 결국 폴란드 침공 터지기 네달전에 바뀌었다.
- 피그만 침공
- 노스우즈 작전
- F-20
- RAH-66
럼스펠드가 예산크리로 인해 크루세이더 계획과 함께 계획이 취소, 덕분에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매우 격분했다. - 크루세이더
- XF5U 플라잉 팬케이크
- YF-23
형상때문에 간지를 중요시하는 밀덕들은 좋아했지만 현실은... 노스롭 중역들은 최종결정 직전 미리 탈락을 예측하고 몰래 주식을 처분했었다.야 이... - 테일후크 스캔들
- 제러미 마이클 보더 해군참모총장 자살 사건
- 아스널쉽
- 카발레세 케이블카 추락 사고
- 모가디슈 전투
- 뉴욕 징병거부 폭동 -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의 배경.
- 도널드 럼즈펠드
- M60 패튼 탈취 사건
- 미 공군 CT-43 추락 사고
- 휴즈 에어웨스트 706편 공중충돌 사고
- 제독들의 반란
- 미군의 일본인전사자 유체의 절단
1.3. 일본
- 구 일본군 그 자체.
- 할힌골 전투
당시 만주는 일본 관동군(關東軍)이 장악하였는데, 노몬한 부근은 국경선이 확실하지 않아 가끔 분쟁이 일어났다. 1939년 5월 몽골군이 할하강(江)을 건너오자 일본군은 불법월경(不法越境)으로 간주해 충돌하였는데, 이때 몽골과 상호원조조약을 맺은 소련이 기계화 부대를 투입하여 일본군을 전멸시켰다. - 치치시마섬 식인 사건
2차대전 말기에 치치시마라는 섬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부대가 지휘관인 다치바나 요시오를 중심으로 술안주가 없다면서 미군 포로들을 처형한 후 그 인육을 먹은 식인 사건으로 같은 일본군마저 이건 미친 놈들이라며 경악을 했고 A급 전범들에게 무죄를 주장한 인도 판사마저 "살면서 이런 또라이 색히들은 처음 본다"며 사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 임팔 작전
- 카미카제및 자폭병기들
- 반자이 어택
- 97식 전차
다만 개발 당시 기준에서는 최소한 평균은 갔다. 또한 우리가 알고있는 내용 중에서도 다소 과장되거나 와전된 것들도 많은편(예를들어 '장갑이 소총탄에 관통되기도 했다.'는 내용이 대표적) - 초대형 폭격기 G10N 후가쿠
- 핫코다 산 참사
1902년에 러일전쟁 대비를 위해 육군 보병 제 5연대에서 이 훈련을 하다 기록적인 한파와 눈보라를 만나 210명 중 199명이 동사했던 사건으로, 대한민국 국군에서 혹한기 훈련을 앞둔 군 장병들에게 실시하는 정신교육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 J7W 신덴
- 난징 대학살 사건
- 일본군 위안부
- 자위대 안습전설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임진왜란)
임진왜란에서 패배한 덕분에 힘이 다 빠진 도요토미가는 몰락했다. 이는 일본 센고쿠 시대 역사상 최악의 병크로도 기록되었고, 한일관계 악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었다. 한국에서야 말이 필요없을정도로 악의 수괴 취급이며, 일본[2]에서도 진짜 흑역사로 취급되는 감이 없잖은게 전국 3대 인물답게 그에 대한 일화는 많이 전해지지만 '분로쿠/케이쵸의 역'에 관해서는 어지간해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의 이상의 언급을 의식적으로 피한다. 이후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서군의 중심인 모리와 시마즈의 후손들은 조선을 침략해서 일제시대를 야기했다. - 전일본공수 시즈쿠이시 공중충돌 사고
1.4. 중국
- 부견이 저지른 최대의 삽질 비수대전
동진의 승리로 끝났으며 전진에는 각종 반란으로, 동진에는 승리로 인한 안이함으로 몰락. 결국 남북조시대를 여는데 한 몫함. - 송의 군사력
- 금 사신을 공격한 송의 한 지방관
한 지방관이 공을 세우기 위해서 보병 2000명으로 금의 사신을 공격했는데, 이에 호위무사 17명이 진법까지 구사해서 보병 2000명을 뚫어버렸고 사신은 가던 길 갔다고 한다. - 수양제때의 고구려 침공
수 양제의 파멸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수나라 역시 이때의 패배로 2대를 못 넘기고 멸망. - 사르후 전투
명나라의 패전으로 요동지역의 패권이 완전히 만주족에게 넘어갔다. - 청나라 말기의 잇따른 패전
1.5. 러시아
- 나선정벌
- 러일전쟁
-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 대숙청
- T-28,T-35
- 정치장교
- K-19
- 쿠르스크 함 침몰사건
- 1차 체첸 전쟁
-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 소련판 베트남 전쟁
1.6. 독일
- 나치 독일 그 자체 -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치메리트코팅 : 원래는 연합군이 노획한 자국의 흡착지뢰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각종 기갑차량에 덧칠을 하였지만 정작 연합군은 흡착지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어의 의미가 없었고 쓸데없이 차량의 중량만 증가시키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그 때문에 전세계의 모델러들은 이걸 재현해내느라 고통받는다. - 스탈린그라드 전투
Me262그러나 기체의 성능과 당시의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싸운 파일럿들의 활약상으로 보면 흑역사라고 치부할 수 없다. 외국의 저명한 군사 학자들도 Me262가 흑역사라고 하지 않는데 하물며 그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리가 없는 지식으로 멋대로 흑역사라 간주할 깜냥이 될까?유로파이터 타이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