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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탐험가에 대한 내용은 자크 카르티에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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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91c2d><colcolor=#ffffff> 까르띠에 Cartier | |
정식 명칭 | Cartier International SNC |
설립 | 1853년 ([age(1853-01-01)]주년) |
설립자 | 루이프랑수아 카르티에 (Louis-Francois Cartier) |
CEO | 시릴 비그네론 (Cyrille Vigneron) |
업종 | 하이 주얼리, 시계 |
본사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파리 |
모기업 | [[리치몬트|]] |
홈페이지 | |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까르띠에 메종 청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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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치몬트 그룹에 속한 프랑스의 하이엔드 명품시계 및 주얼리 브랜드이다.보석, 시계 등 귀금속을 주력 상품으로 생산하는 브랜드이며, 핸드백, 지갑이나 패션 제품도 생산을 한다. 당시로서는 세공이 어려웠던 백금을 주얼리에 적용하는 등 보석의 역사에 있어 영향력을 가진 브랜드이다.
매출액 기준으로 명품시계와 보석 두 분야 모두에서 선두권인 전 세계 유일한 브랜드이다. 시계 업계에서는 롤렉스와 오메가 이후인 Top 3에 랭크돼 있고,[1] 보석 업계에서는 반클리프 아펠, 불가리, 티파니와 함께 Top 4로 손꼽힌다.
2. 국내 매장
시계류만 판매하는 매장은 정식 매장이 아니며 보석과 시계 모두 다루는 매장이 정식 부티크이다. 매장은 정식 부티크만을 언급한다.[2]- 메종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 롯데백화점 (본점, 잠실점)
-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판교점, 무역센터점,
더현대 서울[3])[4] -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타임스퀘어점, 센텀시티점, 대구신세계)
- 갤러리아 명품관 EAST
시계 매장은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보석까지 함께 판매하는 정식 매장은 매우 적다. 3대 명품 중 하나인 루이 비통[5]보다 매장 수가 훨씬 적을 정도로 매장이 많지 않으며, 입점 기준 또한 까다롭다.[6] 귀금속 업계에서 까르띠에의 위상을 생각하면, 입점 기준이 그만큼 높다고 볼 수도 있다.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엔 아직 매장이 없으며, 과거에는 대백프라자에도 매장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개점하면서 매장을 철수했고, 현대 대구점은 22년 3월에 철수했다. 백화점 기준 전국 10개의 매장이 있는데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는 복층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백화점에서도 상당히 큰 매장,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시계나 주얼리 매장은 의류나 잡화 브랜드에 비하여 큰 규모를 차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복층을 할당한다는 것은 중요성을 매우 높게 보는 것이다. 실제로 명품 시계/주얼리 브랜드 중 복층 매장을 운영하는 브랜드는 까르띠에와 반클리프 아펠이 유이하다.
청담동에 위치한 플래그십, 메종 까르띠에는 2008년 오픈 당시 아시아 최초 오픈이었다. 이후 계속 영업하다가 해당 부지와 건물을 샤넬이 플래그십을 열기 위해 매입하면서, 인근으로 이전했다. 이전한 위치는 이전에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던 자리. 2016년 이전했는데 상당히 빠르게 공사에 들어가 리뉴얼해 오픈했다. 면세점은 주로 롯데와 신라 면세점 매장에 입점해 있다.
3. 역사
까르띠에 설립자인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화약동 제조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손기술이 좋았던 그는 1847년 아돌프 피카드의 보석 세공 견습사로 일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몽고트로이가 31번지의 보석 작업장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까르띠에 최초의 시작. 견습일을 하던 중에 그의 사장 아돌프가 갑작스럽게 죽자 견습생이었던 그는 자기의 스승의 회사를 인수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메종 까르띠에’로 이름을 변경한다.까르띠에가 설립된 곳인 프랑스가 프랑스 혁명 이후로 사회가 안정되고 파리 곳곳에서 호화스러운 파티와 무도회가 열렸다. 호화로운 파티에 참석하는 귀족들의 치장을 위해 주얼리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까르띠에가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나날이 발전해가는 도중 프랑스 황제의 사촌이던 마틸드 공주가 까르띠에를 방문했고, 그의 작품에 매료된 공주를 통해 입소문을 타게 되어 인지도가 큰 지금의 까르띠에로 발전하게 되었다. 마틸드 공주의 후원으로 당시 파리 상류층의 중심부 이탈리아 대로로 사업장을 옮겼다.
1874년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는 아들 알프레드에게 일을 가르치며 대를 잇게 한다. 그리고 또 한 세대가 지난 1898년 알프레드는 자신의 첫 번째 아들인 루이와 함께 회사를 경영한다. 1899년 까르띠에는 현재로 치면 서울의 청담동 명품 거리와 같은 명품 거리 뤼 드라 빼 13번지에도 사업장을 열었고, 세 형제 중 사업 능력이 가장 뛰어났던 첫째 루이가 뤼 드라 빼 매장을 관할하게 되었다. 이후 알프레드는 자신의 세 아들들에게 회사를 맡기며 세계적인 회사로의 도약을 준비한다.
파리 뤼 드 라 빼 13번지에 위치했던 까르띠에 부티크 |
1902년에는 뉴욕과 런던에도 지점을 열게 되었다. 두 줄로 된 흑진주 목걸이와의 교환으로 얻은 뉴욕 5번가의 모트 플랜트 빌딩은 훗날 까르띠에 인터내셔널사의 본부가 된다. 이미 이시기에 까르띠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석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었다. 영국의 왕자가 "보석상의 왕이요, 왕의 보석상"이라고 칭송한 것은 유명한 일화. 왕위 대관식에서 쓰일 왕관 제작도 맡았다. 왕관을 만든다는 것은 최고의 보석사로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1904년 에드워드 7세는 영국 왕실의 공식적인 보석상으로 인정했다. 이와 같은 유명세와 인정은 스페인, 포르투갈, 루마니아, 이집트 왕실, 올리언즈 일가, 모나코 왕국, 알바니아 왕실까지 이어졌다.
루이를 비롯한 세 아들들은 최고의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한 아름다운 보석을 찾아 세계 곳곳을 다녔다. 러시아, 페르시아 지역, 인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발견한 아름다운 보석은 곧 까르띠에 상품이 되었고, 당시 제작된 주얼리 중 몇몇은 오늘날까지도 까르띠에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남았다.
남다른 감각을 자랑하던 루이 까르띠에는 수많은 유산을 남겼다. 이전까지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백금을 이용한 디자인으로 보석계에 혁신을 가져왔고, 보석상으로 시작했지만 손목시계 제작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루이 카르티에가 산토스 뒤몽에게 선물한 시계[7] |
4. 컬렉션
4.1. 주얼리
4.1.1. 쥐스트 엥 끌루(Juste un Clou)
쥐스트 엥 끌루 브레이슬릿[8] |
보이는 것과 같이 못에서 영감을 받은 주얼리 컬렉션이다. 러브 브레이슬릿을 디자인한 알도치풀로가 1970년대에 디자인한 주얼리 컬렉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출시한 디자인이다.
이 외에도 브레이슬릿, 링, 네크리스, 이어링의 종류가 있다.
4.1.2. 러브(LOVE)
LOVE |
이 컬렉션은 말 그대로 사랑[9]에 관련이 깊은 컬렉션이다. 브레이슬릿의 경우 착용하는 법이 특이한데 착용하지 않을 경우 2개로 나누어져 있어 서로 맞게 겹친 다음 특수 스크류 드라이버로 나사를 잠그는 식으로 착용한다. 이 착용법에는 서로의 사랑을 봉인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의미에 맞게 결혼 예물이나 커플들이 많이 사용한다.
이 외에도 브레이슬릿, 링, 네크리스, 이어링의 종류가 있다.
까르띠에의 러브 팔찌는 워낙 스테디 셀러이다 보니 금은방에서 제작해서 판매하는 ST 모조품도 상당히 많다.
기본 구성 상 문제인지 탈부착이 힘들고 자주 분리되어서 비효율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매장 직원들도 풀로 붙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
실제로 반클리프 아펠의 뻬를리 시그니처 팔찌와 많이 비교되는 제품인데, 탈착용의 불편함 때문인지 뻬를리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편.
파리 생제르맹 FC에 소속된 이강인 선수가 화이트골드 소재에 다이아몬드가 풀 세팅된 러브 팔찌를 착용한 사진들이 있다. #
4.1.3. 아뮐레뜨 드 까르띠에(Amulette de Cartier)
아뮬레뜨 드 까르띠에 |
보석에 따라 상징되는 희망이나 소망, 맹세가 존재한다. 아뮬레뜨 드 까르띠에는 각각의 보석이 갖는 상징을 기초로 행운을 부르는 주얼리이다.
이 외에도 브레이슬릿, 링, 네크리스, 이어링의 종류가 있으며 각각의 보석에 따라 많은 제품이 존재한다.
4.1.4. 트리니티(Trinity)
트리니티 반지 |
1924년에 탄생하여 거의 100년이 된, 주얼리 업계 전체로서도 매우 유서 깊은 라인업이다.
루이 까르띠에의 친구인 장 콕토(Jean Cocteau)는 20세기 초중반 시, 영화, 그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재능있는 예술가였다. 그가 30살때 자신의 연인인 레몽 라디게(Raymond Radiguet)에게 선물한 3개 링으로 이루어진 반지에서 모티브를 따 까르띠에가 만든 반지이다. 한편으론 콕토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착용할 우정 반지로서 까르띠에에게 의뢰하여 탄생한 반지라는 설, 토성의 고리를 모티브로 한 반지를 요청하여 만들어진 것이란 설도 있다. 어떤 것이 진실이든 이 반지가 장 콕토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참고로 콕토의 연인인 라디게는 당대 유명한 소설가이자 극작가였으며, 당시 16세의 소년이었다.
트리니티 컬렉션은 장 콕토에 의해 파리 상류층에게 널리 알려져 아직까지도 까르띠에의 대표 디자인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는 트리니티 반지를 너무나 사랑하여 항상 왼쪽 새끼손가락에 끼고 다녔다. 심지어 두 개를 동시에 착용하여 6개의 링이 그의 왼손에 늘 함께했다고 한다. 보헤미안적인 예술가의 삶을 산 장 콕토는 파리에서 활동을 하다가 60세가 되던 해에 파리 근교 Milly-la-Forêt의 작은 마을에 있는 집으로 옮겨 지낸다.
후에 이 집은 까르띠에의 지원으로 리모델링을 거쳐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공개 당시 까르띠에사는 장 콕토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트리니티 컬렉션을 발표하는데, Trinity la belle는 장 콕토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두 개의 트리니티 링에서 영감을 받아 여섯 개의 링의 조합으로 재탄생했다. 이 한정판 까르띠에 로고 옆에는 다이아몬드 별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시인인 장 콕토의 서명에 항상 등장하던 별을 상징한다고 한다.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트리니티(trinity)라는 이름답게 핑크골드(혹은 로즈골드), 옐로골드, 화이트골드로 만들어진 3개의 반지가 영구적으로 분리할 수 없도록 얽힌 형태이다. 핑크골드는 사랑(love), 화이트골드는 우정(friendship), 옐로골드는 충실(fidelity)을 뜻한다고 한다. 이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관계를 상징하며 1) 사랑으로 맺어지는 연인 내지 가족 관계, 2) 우정으로 맺어지는 친구, 동료, 선후배 등과의 인간관계, 3)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인 충실함으로 맺어지는 고객, 직장 동료 등과의 비즈니스적 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영단어 friendship과 fidelity가 문맥에 따라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에 조금씩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예컨대 이 반지를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커플링 혹은 웨딩링으로 착용한다면 friendship은 '친절', '다정함'이 될 수도 있으며, fidelity는 상대방에 대한 '정절', '신의'를 의미할 수도 있다. 도대체 저 세 단어가 정확히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따져 묻기보다는, 이렇게 자신의 반지가 갖는 의미에 맞추어 저러한 중의성을 자유롭게 적용하는 것 또한 트리니티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구매자 혹은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동서고금 막론하고 숫자 3은 신성한 세 가지 키워드를 나열하는 데 자주 사용되므로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심지어 그냥 절친한 세 명의 친구가 각자 한 명씩을 상징하는 우정 반지로 낄 수도 있다.
- 예시
- 인생의 성공: 부(富),명예, 건강
- 철학: 진(眞), 선(善), 미(善)
- 신앙: 믿음, 사랑, 소망 혹은 성부, 성자, 성령
- 가족에 대한 사랑: 부모님, 배우자, 자녀
- 시간과 영원함: 과거, 현재, 미래
- 회사를 이끄는 경영자: 고객, 임직원, 주주
이 가운데 핑크골드가 메인 반지로서 외부에는 Cartier 로고가, 내부에는 사이즈/일련번호/18K의 금 소재를 의미하는 Au750 등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일반적인 반지의 링 내벽은 착용자의 손가락 피부와만 접촉하지만, 트리니티는 끊임없이 세 개의 반지가 서로 안팎으로 얽혀 긁고 긁히는 구조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 착용하면 마모로 인해 링 안쪽에 새겨진 일련번호(serial code) 식별이 불가하여 보증서와의 일치 여부 확인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한다.
약 한 세기라는 긴 역사만큼 많은 유명인들이 착용해왔다. 태생부터가 남성용 반지였던 만큼, 다른 반지들에 비해 남성들의 선택도 많이 받는 편이다.
장 콕토 | 알랭 들롱 |
그레이스 켈리 | 게리 쿠퍼 |
이브 생 로랑[11] | 에마뉘엘 마크롱 |
다이애나 왕세자비 | 카일리 제너 |
윤여정 | BLACKPINK 지수 |
Stray Kids 현진 |
2023년 10월 기존의 트리니티를 단종시키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리뉴얼하였다. 전체적으로 너비는 살짝 좁아졌지만 두께가 두꺼워져 중량은 늘어났으며, 기존에 평평한 내벽면으로 가장자리 단면이 뾰족했다면 리뉴얼된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둥그스름한 형태로 바뀌었다.
트리니티링 클래식(미디움 사이즈) 변경 전(좌) 및 2023년 10월 변경 후(우)
4.1.5. 클래쉬 드 까르띠에(Clash de Cartier)
스터드 디자인으로 강렬한 이미지이다.4.2. 시계
까르띠에는 시계 브랜드로서도 매우 유명하며, '세계 최초로 현대적 손목시계를 만든 브랜드이다.[12] 헤리티지가 매우 중요한 시계 시장에서 이러한 상징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시계 업계 내에서 까르띠에의 위상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보석 브랜드로서도 매우 유명하고 시계의 가격대도 주력 제품은 여성용 시계가 400~500만 원대[13], 남성용은 1,000만 원 부터 시작하며,[14]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상품인 탱크 머스트가 사이즈에 따라 5-700만 원대 선이다.[15], 기본 천만 원대 이상인 롤렉스보단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물건 구하기도 어렵지 않기 때문에 이에 힘입어 인지도 높은 예물 시계 브랜드 TOP 3에 해당되는 롤오까의 한 축이다.
세계대전 시절 전차에서 영감을 받은 탱크, 헤리티지로 인정받는 산토스, 2000년대에 출시한 남성용 시계 발롱 블루 등 주옥 같은 모델들이 많다. 주로 다이얼에 로마자 인덱스를 새기는 편이며, 이같은 로마자 인덱스와 파란 구운 핸즈는 까르띠에 워치의 상징 그 자체가 되었다. 더불어 외형과 마감 면에서도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 여타 고급 오토매틱 시계들이 그렇듯, 유지 비용이 만만치 않은 편이다. 까르띠에는 5년에 한 번씩 자사의 오버홀 서비스를 받을 것을 권하고 있으며, 오버홀없이 계속 사용할 경우 실제로 (심할 경우) 대략 5-7년 정도 주기로 이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 오버홀 가격은 본사 기준으로 최저 50만 원, 평균 70만 원(2010년 기준) 정도의 공임을 받으므로 유지비가 많이 드는 편이다.
쿼츠 시계 비중이 높고, 외관 디자인에만 치중하고 성능이 낮은 무브만을 사용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네바 홀마크 인증을 받기 위해 자사의 무브먼트를 제출하는 나름 몇 안 되는 회사이기도 하다. 리치몬트 그룹에 기술력이 좋은 시계 브랜드가 많기 때문에[16] 어느 정도의 검증된 기술력이 브랜드 간에 공유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까르띠에 상위 라인업의 무브먼트는 예거와 피아제의 무브를 베이스로 제작된다.
시계에서 빅 5라 불리는 최고 브랜드 중 하나인 바쉐론 콘스탄틴의 엔트리 라인업 피프티식스에 까르띠에 자사 무브먼트를 베이스로 한 무브먼트가 들어갔다.[17]
Masse Mysterieuse[18] |
4.2.1. 산토스(Santos)
산토스 드 까르띠에[19] |
남성 예물 시계 시장의 큰 축을 담당하며, 전 라인업 중 유일하게 미디움, 라지 두 버전으로만 나온다.
탱크 머스트 오토매틱이나 발롱 블루 오토매틱 모델과는 다르게 자사 무브먼트를 사용한다.[20]
4.2.2. 탱크(Tank)
탱크 머스트[21] |
남성과 여성 예물 시계 시장의 큰 축을 담당하며, 남녀불문 럭셔리 시계의 근본이다. 특유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은 호불호가 거의 없으며, 대부분 사람들이 쉽게 알아보는 시계로 인지도가 굉장히 높다.
4.2.3. 발롱 블루 (Ballon Bleu)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22] |
4.2.4. 롱드 (Ronde)
롱드 솔로 드 까르띠에[23] |
이 외에도 파샤, 팬더, 꾸쌍, 마이용, 베누아, 팬더, 프리베, 드라이브, 똑뛰 라인업이 있다.
4.3. 가죽제품
까르띠에의 가죽 컬렉션은 주얼리, 시계를 잇는 주력 컬렉션이며, 특유의 스타일이 반영된 것으로 유명하다. 구성은 핸드백이나 백, 지갑, 벨트 라인 및 기타 가죽 소품으로 이루어져 있다.4.4. 향수
Cartier Baiser Volé parfum video commercial |
향수도 만드는데 'Baiser Volé(베제 볼레)'라는 향수 광고에 이병우가 작곡한 영화 장화, 홍련의 OST인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삽입해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전속 조향사인 마틸드 로항이 향수 컬렉션 전체를 담당하고 있다.
5. 앰버서더
Cartier | ||||
<rowcolor=#FFFFFF> 이름 | 직업 | 국적 | 지역 | 역임 연도 |
모니카 벨루치[24] | 배우, 모델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글로벌 | 1997~ |
제이크 질렌할 | 배우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2018~ | |
릴리 콜린스 | 배우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2018~ | |
트로이 시반 | 가수 | [[호주| ]][[틀:국기| ]][[틀:국기| ]] | 2018~ | |
장첸 | 배우 | [[대만| ]][[틀:국기| ]][[틀:국기| ]] | 2020. 01.~ | |
엘라 발린스카 | 배우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2020. 06.~ | |
라미 말렉 | 가수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2020. 09.~ | |
윌로우 스미스 | 가수, 배우, 댄서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2020. 09.~ | |
잭슨 | 가수 | [[홍콩| ]][[틀:국기| ]][[틀:국기| ]] | 2020. 09.~ | |
멜라니 로랑 | 배우, 감독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2021. 11.~ | |
나딘 라바키 | 배우, 감독 | [[레바논| ]][[틀:국기| ]][[틀:국기| ]] | 2021. 11.~ | |
마리아칼라 보스코노 | 모델, 배우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2021. 11.~ | |
애나벨 월리스 | 배우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2021. 11.~ | |
골쉬프테 파라하니 | 배우 | [[이란| ]][[틀:국기| ]][[틀:국기| ]] | 2021. 11.~ | |
지수 | 가수, 배우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2022. 05.~ | |
티모시 샬라메 | 배우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2022. 09.~ | |
바네사 커비 | 배우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2023. 04.~ | |
디피카 파두콘 | 배우 | [[인도| ]][[틀:국기| ]][[틀:국기| ]] | 2023. 05.~ | |
엘르 패닝 | 배우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2023. 05.~ | |
뷔 | 가수, 배우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2023. 07.~ | |
현진 | 가수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2024. 09.~ |
6. 기타
- 영화 인사이드 맨 후반부에서 이 회사의 반지가 결정적인 증거로 나온다.
- 2022년 5월 9일부터 22일까지 롯데월드타워 월드파크 잔디광장에서 ‘팬더 드 까르띠에’의 히스토리를 체험할 수 있는 '인투 더 와일드' 팝업을 선보였다. '인투 더 와일드' 체험형 팝업과 디지털 익스피리언스 오디오 가이드에 배우 송강이 참여했다. #
- 2024년 더현대 서울에 입점하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세계 최초로 까르띠에 카페를 선보인다 하여 화제를 모았다. 플래그십 스토어인 까르띠에 메종에서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라운지를 운영한 적은 있어도 아예 카페를 운영하는 것은 처음이다. 브런치 카페를 운영하는 티파니앤코나 아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불가리처럼 브랜드 체험형 공간의 일환으로 보인다.
- 2024년 5.1 ~ 6.30에 서울 DDP에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 전시회를 열었다.
[1] 소위 ‘롤오까’로 통용된다.[2]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인천점, 광복점, 창원점), 현대백화점 (울산점, 킨텍스점), 신세계백화점 (본점, 경기점, 대전신세계 Art & Science, 광주신세계백화점, 스타필드 하남점) 11개의 지점은 보석류는 판매하고 있지 않아 제외된다.[3] 입점 예정[4] 현대 부산점 매장은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오픈 후 철수했으며, 대구점은 22년 3월에 철수했다.[5] 백화점 기준으로 전국 매장 21개[6] 참고로 까르띠에 워치 역시 업계에서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서 시계만 취급하는 매장도 그렇게 많지 않고 입점 기준도 꽤 깐깐하다. 다만 시계의 경우 업계에서 본좌 취급을 받는 롤렉스의 입점 기준이 훨씬 깐깐한 편.[7] 오른쪽의 남자가 산토스 뒤몽이다.[8] 경첩을 이용하여 착용할 수 있다.[9] 관습에서 벗어난 사랑을 의미한다.[10] 오늘날에는 이 반지를 여성들이 더 많이 착용하지만, 위 일화대로 그 탄생은 남성을 위한 반지였다. 실제 까르띠에 내 다른 인기 모델인 러브나, 쥐스트 엥 끌루, 클래쉬 등의 디자인이 다소 과감하거나 화려한 반면에, 이 트리니티는 그 의미도 진지하고 디자인도 무난하면서도 유니크한 측면이 있어 남성들에게도 커플링이나 웨딩링으로서 사랑을 받는 편이다. 여담으로 까르띠에의 시계 또한 여타 시계 브랜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그 시작은 남성을 위한 것들이었다. 실질적으로 최초의 손목시계로 평가되는 산토스는 브라질의 파일럿 아우베르투 산토스뒤몽에게, 까르띠에를 대표하는 시계 탱크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총사령관인 존 퍼싱 장군에게 최초로 헌정되었다.[11] 손목에 찬 시계도 까르띠에의 탱크이다.[12] 사실 최초의 손목시계라는 언급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파텍 필립과 까르띠에 사이에 논란이 있었던 부분이다. 이는 ‘손목시계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까르띠에는 러그가 있는 디자인의 소위 '현대의 손목 시계 디자인'을 최초로 정립했고, 파텍 필립은 '기존의 두꺼운 회중 시계에 팔찌를 접목해 손목에 얹은' 최초의 브랜드 정도로 정리됐다. 파텍 필립과 까르띠에 둘 다 최초라고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해석의 여지 때문이다.[13] 당연히 기본적인 베이스 모델 기준이며, 주얼이 박힐수록 수천만 원대부터 수억 원까지 올라간다.[14] 남성용 탱크 머스트(L 사이즈 및 XL사이즈)나 발롱 블루 모델이 존재하나 남성들이 가장 대중적으로 픽하는 모델이 산토스이며, 미디움 사이즈도 천만 원이 넘는다.[15] 전술했듯이 이 역시 고급 모델이나, 보석이 박혀있거나, 케이스가 금으로 되어 있는 모델의 경우 가격은 수천만 원대나 억대로 올라가는 모델도 있다.[16] 바쉐론 콘스탄틴, 아 랑에 운트 죄네, 예거 르쿨트르, 피아제 등 시계 브랜드 중에서도 고급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17] 정확하게 말하면 리치몬트 그룹에서 무브먼트를 설계하는 Val Fleurier(발 플러리에)라는 자회사가 제작한 무브가 베이스이다. 같은 설계의 무브먼트를 까르띠에는 1904MC, 피아제는 1110P, 바쉐론은 Cal. 1326이라는 이름으로 탑재한 것이지, 까르띠에가 하이엔드인 바쉐론에도 없는 엄청난 기술력이 있었던 건 아니다. 탁상시계용 무브먼트로 군납용 장비나 만들던 파네라이가 리치몬트에 들어간 후 갑자기 자사 무브 신제품을 쏟아낸 것도 발플러리에의 도움으로 가능했다.[18] 마쓰 미스테리우스라고 읽으며, 30개 한정판으로 가격은 기본 모델 기준 한화로 약 3억 5천만 원이며 바게뜨 세트로 구입 시 약 7억 8천만 원, 바게뜨 세트와 플래티넘 팔찌 세트로 구입 시에는 약 16억 3천만 원이다.[19] 사진은 large모델.[20] 칼리버 1904MC 무브먼트. 다만 ETA 2892와 매우 유사하여 독창적인 자사 무브먼트라고 보기에는 조금 애매하며 해당 무브먼트의 내구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이 있다.[21] 사진은 small 모델[22] 사진은 36mm 모델.[23] 사진은 36mm 모델이며 리테일가는 461만 원이다.[24] 1997년 브랜드 앰버서더이자 뮤즈로 임명되었다. 또한 2004년 발표에 따르면 유일한 까르띠에 여성 앰버서더였다.[25] 쉐와 마찬가지로 고유명사 취급되면서 가능하다.[26] 앰버서더 지명된 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