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2-11 10:57:09

경복궁 태원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0.6em"
현무문
천하제일복지천
오운각 옥련정
벽화실 청와대 관저
청와대 본관 청와대 녹지원 춘안당 융문당
칠궁 양정재 수궁(구 관저터) 융무당 태화궁
지희실 경농재(관풍루) 대유헌 경무대
청와대 위민관,헬기장
수궁 청와대 춘추관
마장 관가문 희맹공신단
금화문 팔도배미
청와대 영빈관,경호실
추성문 금위군직소 춘화문 춘생문
신무문 수문 계무문 광무문 춘도문 수문
태원전 수문장청 팔우정 집옥재 협길당 각감청 건청궁 관문각 서녹산
남여고 육우정
직처소 어구 동녹산
어린이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선원전 경안당
종각 가회정 보현당 장고 통화당 순화궁 외소주방
순화궁 내소주방
영선문 진전 소주방 진전 생물방 화락당 나인처소
회안전 문경전 장고
숙설소
향원정
전기등소
만화당 벽혜당(왕대비전 생물방) 대향당
정훈당
나인처소
함화당 집경당 영훈당 만경전 건기당(왕대비전 내소주방) 요광당(왕대비전 외소주방)
원역처소 빈궁 수랏간 다경합 건복합
원역처소
제관방
흥복전 중궁전
침방,수방
대왕대비전
침방,수방
제수합 영보당 벽월당(상궁처소)
하향정 원역처소(접견소) 장방(기무처) 아미산 자미당 자경전 집희당(대왕대비전 내소주방) 춘소당(대왕대비전 침방) 취운당(대왕대비전 수방)
국별장직소 함원전함홍각건순각원길헌인지당 예춘당(대왕대비전 생물방) 벽하당(상궁처소) 웅향당(상궁처소)
국출신직소 경회루 흠경각교태전임향당함정당(대왕대비전 외소주방)계응당(상궁처소)
양의문복회당(대전 생물방) 보월당(상궁처소) 자운당(상궁처소) 나인처소
무겸직소 응지당 강녕전연길당
북위장직소경성전 연생전대전 내소주방난지당(대전 외소주방)대소대금방(나인처소)
수문파수각향오문
영추문 수문장청 내각(규장각) 검서청(규장각) 대전장방(내시부) 습회당 협오당 장원당 천추전사정전만춘전자선당비현각 장방 삼처 관리소
수문장청
건춘문
초관직소 장무관직소 입심억석(내의원) 주원(사옹원) 수정전 사정문 오상방 원역처소 세자궁 수랏간 등촉방 장방
훈국군번직소 침의청(내의원) 약방(내의원) 내반원(내시부) 수정문 협의문
융무루ㅓ
근정전계인문
융문루ㅏ
통장청 문기수청 춘방 별감방 초관처소
서소위장직소 의약청(내의원)
옥당
(홍문관)
검서청(규장각) 대전 수랏간 영화문계조당계방 훈국군번처소
누국 당후(승정원) 정원(승정원) 월화문 근정문 일화문
일영대 선전관청 빈청 숭양문 기별청
유화문
수각
┃덕양문
수각
별군직청
춘방책고대청
주차장
상의원 면복각
영제교
신당 덕응방 북마랑 흥례문
전사청 국립고궁박물관
연고 내사복 거달처소 중마랑
동마랑 용성문 어도 협생문 계방
행각
오위도총부
우마랑 좌마랑 내구 연지 수문장청
매표소
군사방
수문장청
매표소
서소부장청
남소위장청
동소부장청
동소위장청
견마배청 남마랑 군사방 초관처소
영군직소
측사
측사 충장장청
수장장청
서십자각 수문 광화문
(월대)
수문 동십자각
경복궁 · 창덕궁 · 창경궁 · 덕수궁 · 경희궁
}}}}}}}}} ||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colbgcolor=#bf1400> 경복궁 태원전
景福宮 泰元殿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건축시기 1867년 (창건) / 2009년 (부분복원)
파일:경복궁 태원전.png
파일:경복궁_태원전.jpg
<colbgcolor=#bf1400> 태원전[1]
1. 개요2. 용도3. 이름4. 역사5. 구조6. 부속 건물과 시설
6.1. 영사재(永思齋)6.2. 공묵재6.3. 숙문당6.4. 동북 세답방6.5. 우물
7. 여담
7.1. 복원 문제

[clearfix]

1. 개요

경복궁의 건물이다. 경복궁의 서북쪽 끝에 있다.

2. 용도

빈전이다. 빈전은 왕비, 대비가 죽은 후 발인할 때까지 을 모시던 곳이다. 빈전은 국상 때 잠깐 사용하는 용도였기에 건물을 따로 짓지 않고, 편전이나 침전의 일부 건물을 활용했다. 그러다 1860년대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아예 빈전 전용 건물을 따로 지은 것이다. 이것이 태원전이다.#

그렇다고 빈전으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1872년 4월 7일 자 《고종실록》의 기사를 보면, 영희전에 있던 태조원종어진을 베껴그리기 위해 옮겨온 어진을 모시는 임시 봉안소로도 기능했다고 한다.

1890년(고종 27년) 익종(효명세자)의 비 신정왕후 조씨의 국상 때와# 1895년(고종 32년) 명성황후의 국상 때 빈전으로 기능했다.#

3. 이름

‘태원(泰元)’ 뜻은 ‘하늘’이다. 《한서》 - 〈예악지〉에는, ‘오직 태원이 존귀하고 토지신은 변방을 다스리니, 하늘을 씨줄로 하고 땅을 날줄로 하며, 사계절을 이루었다’는 구절이 있다. 당나라의 학자인 안사고가 여기에 ‘태원(泰元)은 하늘(天)’이란 주석을 달았다.

존귀한 분의 시신을 모시는 빈전이므로, 하늘이란 존칭을 건물의 이름으로 붙인 듯 하다.#

4. 역사

임진왜란 이전에는 없었다. 1860년대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처음 지었다. 일제가 허물고 그 자리에 일제 관료들의 관사를 지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에는 대한민국 육군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제30경비단이 주둔하면서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었다. 그리고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을 주축으로 한 하나회 일당이 벌인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의 지휘부가 30경비단에 있었다. 이 당시 30경비단에 모였던 사람은 하나회 보스인 전두환과 그의 절친한 동기 노태우, 30경비단장이던 장세동을 비롯해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박준병, 백운택,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김진영 등 하나회 핵심 간부들이었다. 대한민국 국군과 정치의 흑역사 중심에 이 건물이 있었던 셈이다.

1996년 12월에 30경비단이 떠난 후 다음해 10월부터 복원을 위한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망가진 유구 때문에 위치 확인이 불가능할 뻔했는데, 다행히 부속건물 영사재 터와 행각 터가 온전히 남아있어서 위치 파악이 가능했다.# 이후 2001년부터 공사에 착수하여 2005년 말에 복원 공사를 끝냈고, 2009년 1월 말부터 일반에 공개하여 오늘에 이른다.#

5. 구조

파일:경복궁 태원전 배치도.png
<colbgcolor=#bf1400> 태원전 배치도
태원전 권역은 태원전을 중심으로 좌, 우, 남쪽에 부속건물과 행랑이 있는 형태이다.

제일 남쪽에 출입문 건숙문이 있고 건숙문 안에 경안문이 있으며 경안문을 지나야 태원전이 보인다. 건숙문의 동북쪽, 경안문의 동남쪽에 공묵재란 건물이 태원전의 남행각과 붙어있다.

태원전 건물 동북쪽에는 영사재가 있다. 영사재는 태원전과 붙어있으며 동남쪽으로 동행각과 통한 형태이다. 태원전의 서북쪽에는 숙문당이 있으며 태원전의 서행각과 동행각 밖에는 빨래를 하던 세답방이 있다. 배치는 각각 동북쪽에서 시계 방향으로 대왕대비전, 중궁전, 왕대비전, 순화궁, 빈궁 세답방이다.# 공묵재와 영사재는 재실로 사용했고 숙문당은 혼전으로 쓰였다.

자세한 건물의 구조는 이 포스팅을 참조.

6. 부속 건물과 시설

6.1. 영사재(永思齋)

파일:경복궁 영사재.png
<colbgcolor=#bf1400> 영사재

6.2. 공묵재

파일:경복궁 공묵재.png
<colbgcolor=#bf1400> 공묵재

6.3. 숙문당

파일:경복궁 숙문당.png
<colbgcolor=#bf1400> 숙문당

6.4. 동북 세답방

파일:경복궁 태원전 세답방 1.png
파일:경복궁 태원전 세답방 2.png
<colbgcolor=#bf1400> 동북 세답방

6.5. 우물

파일:경복궁 태원전 우물.png
<colbgcolor=#bf1400> 우물

7. 여담

7.1. 복원 문제

파일:경복궁 태원전 미복원지.png
<colbgcolor=#bf1400> 태원전 미복원 흔적
태원전을 복원할 때 서북쪽 구역을 완전하게 재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경복궁 서북쪽 궁장의 일부가 잘려나가 효자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측세답방 건물을 절반만 복원했고, 세답방 서쪽 행랑의 일부를 주춧돌로 흔적만 남겼다. 그렇다고 원래대로 다 복원하자면 효자로를 막아야 하는 것이 문제. 현재로서는 사실상 100% 원형 복원이 불가능하다.[2]

[1] 두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가능은 한데 서십자각영추문을 포함해서 경복궁 서쪽 궁장이 밀려들어간 상태여서 복원할려면 전체적으로 효자로를 서쪽으로 밀어야하는데 건물 이건에 따른 토지보상비가 주 문제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