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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15:03:38

구암 허준/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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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MBC드라마 '허준'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은 허준(드라마)/등장인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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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구암 허준 관련 인물들
2.1. 구암 허준 가족
2.1.1. 구암 허준2.1.2. 이다희2.1.3. 손씨2.1.4. 허겸2.1.5. 천양태2.1.6. 장수
2.2. 허륜 가족2.3. 구일서 가족
3. 유의태 관련 인물들
3.1. 약방3.2. 유도지 가족3.3. 그 외 관련 인물
4. 내의원 인물들
4.1. 의관4.2. 의녀4.3. 서리 및 도약사령
5. 궁궐 인물들
5.1. 왕실5.2. 조정신료 및 관리
6. 기타 인물들7. 여담

1. 개요

허준(드라마)의 리메이크 작인 2013년도 MBC 드라마 구암 허준 등장인물 일람.

2. 구암 허준 관련 인물들

2.1. 구암 허준 가족

2.1.1. 구암 허준

2.1.2. 이다희

2.1.3. 손씨

2.1.4. 허겸

2.1.5. 천양태

2.1.6. 장수

2.2. 허륜 가족

2.3. 구일서 가족

3. 유의태 관련 인물들

3.1. 약방

경상도 산음현(오늘날의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3대에 걸쳐 의원을 하고 있는 인물. 조부의 대에서부터 약방을 시작했는데, 전대까지는 고약으로 유명한 정도였지만, 유의태에 이르러서는 의술이 출중해져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내의원 의과에 응시했다가 떨어졌는데, 이것이 양예수의 견제 탓이라고 생각해 직접 양예수를 찾아가 구침지희[56]를 겨루고, 이를 통해 양예수를 개망신시켰다. 본인은 젊은 날에 부린 부끄러운 객기라고 생각하는 듯. 의원에는 유의태의 의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문하생들이 여럿 있지만, 제자 취급은커녕 제대로 가르쳐주는 것도 없다. 이는 '비인부전 비기자부전(非人不傳 非器者不傳)', 즉 '자질이나 성품이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함부로 예나 도를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왕희지의 후학 양성법에 따른 것으로, 보잘 것 없는 도라지 뿌리를 정성스레 캐 온 허준에게 바로 약재창고를 맡기거나[57] 내의원 취재에 응시하려는 유도지를 직접 가르치는 등 의외의 일면을 보이기도 하나[58] 기본적으로는 냉정하고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성격이다.

허준 역시 유의태의 밑에 있는 와중에도 그를 정나미 떨어지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59]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성격이 많이 완화되어[60], 오랜 시간 스승으로 자기를 따르고 성정이 엇나가지 않은 제자들인 오근과 꺽쇠에게 죽기 전, 자신이 죽어도 생업을 꾸릴 수 있게 유가고약의 제조 비법을 전해주는 등, 엄격함 속에 인자함을 갖춘 스승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예진에게 도지를 찾아가 혼인해서 지탱해 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남기고, 임종만 지킨 뒤 떠나게 해 달라는 예진의 청을 거절하며 '네가 의지할 곳을 찾아야 내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다'라는 말을 듣고 우는 예진 앞에서 본인도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 죽음을 준비하며 그릇이 모자란 이들을 내칠 줄만 알았지 감싸안을 줄 몰랐던 것이 자신의 부덕이라고 회한하는 등,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허준이 성 대감으로부터 추천서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 추천서에 눈이 멀어 의원에게 중요한 도리를 잊어버렸다며 추천서를 태우고 내쫒았다.[61] 그 후 허준이 병자들을 돌보느라 과거 시험장에 지각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자를 무시하고 한양으로 간 도지를 꾸짖은 뒤 허준을 다시 약방으로 불러들인다. 허준이 약방으로 돌아온 뒤로는 기약 없이 세상을 거닐며 허준을 후계자로[62] 확정하는 듯하였는데, 허준이 돌쇠 어머니의 눈을 고칠 무렵 반위[63] 증세가 나타난다. 허준은 자신보다 더 큰 의원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유의태는 허준에게 약방 밖에서 반위로 죽어가는 병자의 임종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김민세와 함께 마침 산음 몇몇 고을에서 퍼지는 온역을 진압하러 나선다. 이를 안 허준이 따라오자 너는 살아서 할 일이 있다며 돌려보내려다가 쓰러진다. 역병을 수습한 뒤에 허준이 자신이 반위임을 알게 되자, 부술에 일가견이 있는 의원 안광익을 통해 부술에 대하여 어느 정도 듣고 나서 해부에 적합한 칼을 주문한 다음, 상화와 함께 밀양 천왕산 얼음골에 가서 상화를 산음으로 보내 허준을 불러오게 하고, 자신은 남아서 스스로 손목을 그어 자결, 유서에 피가 멎기 전에 자신의 몸을 해부하여 사람의 장기에 대해 상세히 관찰하고 배우라 적었다. 허준은 처음엔 그럴 수 없다며 거절했으나[64] 김민세의 설득에 결국 스승의 유지를 따른다.

유의태가 허준에게 남긴 유언은 아래와 같다.
허준이는 보아라.
내 죽음을 누구보다 서러워 할 사람이 너임을 알고 이 글을 네게 남긴다. 나는 내게 닥쳐오는 죽음을 보았고, 기꺼이 그 죽음을 맞이하려 했다. 그것은 태어나던 순간 결정되는 모든 생명의 예정된 길이니, 서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육십평생을 살다가는 나같은 자에게, 더 이상 무슨 여한이 있을까만은, 소리없이 닥쳐오는 죽음의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강보에 쌓인 어린아이로부터, 이 세상이 바라는 유용한 사람들. 평생 타인을 위해 덕을 쌓은 귀한 인물에서, 호강 한번 못해보고 고생만 하다 죽은 측은한 인생까지. 이들 모든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만병의 정체를 밝혀, 그들로 하여금 천수가 다하는 날까지 무병하게 지켜줄 방법은 없는가.

이는 의원된 자의 본분이요, 열번 고쳐 태어나도 다시 의원이 되고자 하는 이에겐 너무도 간절한 소망일 것이다. 허나, 나 또한 불치의 병을 지니게 되었으니, 병과 죽음의 정체를 캐낼 여력이 이미 없다. 이에 내 생전의 소망을 너에게 의탁하여, 병든 몸이나마 내 몸을 너에게 준다. 명심하거라. 이 몸이 썩기 전에 지금 곧 내 몸을 가르고 살을 찢거라. 그리하여 사람의 오장과 육부의 생김새와 그 기능을 확인하고, 몸속에 퍼진 삼백예순 마디의 뼈가 얽히는 이치와 열두 경락과 요소를 살펴, 그로써 네 의술의 정진의 계기로 삼기 바란다.

이후 허준은 반위 병자를 극적으로 고쳐내고 유의태를 떠올리며 오열한다.
2019년부터는 뜬금없이 조선시대 CCTV(...)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슈 및 비슷한 대사와 함께한다. 링크의 사진은 허준과 부산포가 사기를 치다 적발된 17회. 이 장면 다음에 허준과 부산포가 곤장을 맞고 있을 때 유의태가 마침 그곳 사또의 건강을 살피러 관아에 왔다가 이를 보았다.

3.2. 유도지 가족

원작에서는 처음 등장했을 때는 자신의 재주를 믿고 날뛰는 오만방자한 한량에 가까웠고[101],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진중한 모습은 상당히 진행된 후에야 나온다. 1999년 판에서 양예수의 졸개들의 수작으로 떨어진 것처럼 묘사되는 첫번째 취재는 그냥 실력도 없이 나대다가 낙방한 것으로 묘사되며, 이때 충격을 받은 유도지는 한동안 밤마다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리다가 아버지의 경멸 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다. 이후 열심히 의술을 공부하여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고 글재주와 의술에 대한 열정이 높은 허준을 첫 동년배 친구로 사귀게 된다.[102] 하지만 유의태가 자신이 아니라 허준을 성대감 댁에 보낸 이후로 허준에 대한 질투로 그를 증오하게 되며 두번째 취재 합격 이후 진천 버드네에서 환자들을 무시한 것을 추궁하는 아버지와의 관계도 완전히 틀어져서 유의태에게 폭언을 퍼부은 후 가산을 모두 청산하고 한양으로 상경하게 된다. 이때 숨겨놓은 비방을 물려달라고 요구하지만 유의태는 감춘 적 없으니 내 머리나 떼어가거라며 비방따위는 없을뿐더러 손수 노력해서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이가 타인의 비방을 설사 얻는다해도 제대로 쓸수는 있겠느냐며 빈정댄다.[103] 한양에 올라와서도, 양예수는 유도지를 보고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변변찮은 실력을 보고 유의태를 조롱하기 위해 일부로 그에게 임해군의 처소라는 좋은 자리를 준다. 이후 허준을 통해 유의태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지만 아버지의 구침지희 때문에 자기가 양예수에게 찍혔다면 죽어서도 도움이 안된다고 아버지는 자신에게 악연이라며 저주를 퍼붓는 등 큰 앙금을 보인다.[104] 나중에 명나라로 가는 사신 행차에 별견의원으로 따라다닌 후 심경의 변화를 겪고 자신의 불효막급한 과거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는 것으로 등장 끝. 사실 이후에도 등장이 있을 예정이었다고는 하는데 작가 사망으로 집필되지 못했다. 하권 에필로그에는 작가가 생전에 구상했던 유도지의 행적이 나오는데, 허준이 임진왜란 전 스승에 대한 존경으로 유도지를 어의로 추천하여 실력이 어의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어의가 되는 호사를 누리지만 임진왜란 발발 후 허준이 미사와 의서를 짊어지고 선조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유도지는 왜군이 지척에 달하자 선조를 버리고 달아났고 허준이 선조와 재회한 후 끝까지 허준이 선조를 호종한 것으로 나오면서 유도지는 그 뒤로 나오지 않는다. 작가의 구상대로 갔다면 결국 선조를 버리고 달아난 죄로 죽게 되었을 듯 하다.

3.3. 그 외 관련 인물

4. 내의원 인물들

4.1. 의관

애초에 모두가 꺼리는 혜민서에서 10년 이상을 그것도 양반이나 되는 사람이 자진해서 근무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을 당장에 내쳤다간 그 즉시 혜민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고, 그랬다간 더 윗선에서 난리칠 게 뻔하고, 심하면 왕에게 보고가 된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람인데, 이게 왕의 귀에 들어갔다간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처음엔 허준을 "어의 되려고 환장한 놈"으로 보았을 만큼 탐탁찮게 여겼지만[158], 허준이 의술과 성품을 모두 겸비한 인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허준을 좋게 보고 그의 좋은 선배가 된다. 허준이 자신보다 직급이 높아졌을 때도 말을 놓았지만 첨정까지 오르면서 어의 직책을 받자 깍듯이 상사대접을 해주기도 하고[159][160], 왜란 당시 폭동을 일으킨 백성들이 허준을 죽이려 할 때도 그런 백성들을 타일러서 돌려보내고[161][162] 허준과 함께 의서를 짊어지고 평양으로 가는 고생길을 자처하기도 했다. 배천수와는 어린 시절 친구였던 사이로 같은 훈장님께 배웠지만 글공부 착실히 하던 배천수는 무장이 되었지만 김만경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전쟁놀이에만 빠져있었는데 의원이 되었다고(...) 그런데 이 전쟁놀이 경험이 공으로 쌓인 건 아닌지 임진왜란이 터졌어도 조정 대소신료 모두 신립 장군 출전만 믿고 안심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혼자서 아무래도 돌아가는 판이 심상치 않다고 볼 정도다. 나중에 동의보감 완성을 위해 그간 모은 자료들을 허준에게 몰래 보낼 때도 자청해서 나설 정도로 의리 있는 인물이다.[163] 안광익이 내의원에 있던 시절에 '무식한 양반놈'이라 부르며 아낀 후배이기도 하다.

4.2. 의녀

4.3. 서리 및 도약사령

5. 궁궐 인물들

5.1. 왕실

그래도 어쨌든 작중 허준의 처우를 최종결정하는 총책임자로서 그의 선행과 노고를 치하해주는 역으로 자주 등장하며, 갈등을 하다가도 결국은 허준을 용서해 주고 많은 반대를 뿌리치고 높은 책임을 주며 대우하는 등 전체적으로는 좋은 왕 쪽으로 묘사되는 건 사실. 희언 발언도 허준이 워낙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인 장담을 했기 때문에 왕조 시절 임금에게 가벼운 발언을 하는 건 엄히 다스려지던 시대인데다 당시는 허준의 재주와 인품을 제대로 알기 전이므로 전례에 따라 절충안을 채택했고, 그 장담이 이루어졌으니 치하를 해 줬다고 볼 수 있다. 신성군의 경우 거머리가 워낙 본인의 상식 밖의 일인데다 애첩인 인빈과 그 소생인 신성군이 괴로워하니 반대를 표하는 건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고, 단순히 까다가 고친 뒤에 태세전환을 한 것이 아니라 양예수가 중종이 거머리 시술을 받은 전례가 있음을 들며 옆에서 변호하고(=근본없는 방술이 아니라고 일깨워줌) 허준도 이 방법만이 신성군을 고칠 수 있다며 거듭 간언하자 소신껏 시술하라며 기회를 준 것도 선조이다. 의서 때문에 자신을 호송하지 않은 허준을 박대한 것도 찌질하다면 찌질하지만 사실 어의가 왕의 호송길을 책 짊어지고 오기 위해 방기했다는 사실 자체가 상식적으로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백성들의 원성을 들으며 피난 가며 심신은 지쳐 있는데 자기가 수차례 후대해 주고 양반도 만들어 주고 죄도 용서해준 주치의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여겨졌는데 이제와서 얼굴 내밀고 하는 말이 의서 때문에 그랬다고 하면 고깝지 않은 게 기적이다. 물론 그걸 극복한 대범함을 보여주지 못한 건 왕답지 못하다 하겠지만 적어도 이순신을 경계하는 음험함보다는 훨씬 인간적인 모습에 가깝다. 결국 신성군을 잃음으로서 여기서 허준을 박대한 대가를 치르고 허준의 배려[199]로 자신을 살린 유도지를 용서해 계속 관직에 머무르게 해 준다. 후에도 예진과의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본인을 불러들여 자초지종을 들은 뒤 허준을 보국에 임명하는 등 전체적으로 허준 입장에선 후덕한 군주임은 분명하다. 오히려 임진왜란 등 작중에선 배경사건으로 쓰이는 역사적 사실들이 훨씬 더 문제일 뿐.
구암 허준의 전노민의 선조 역시 다를 바 없다. 영창대군이 태어난 뒤에는 쇠약해져 스스로도 죽을 날을 점치고 있다가, 어느 날 당긴다는 이유로 상궁에게 약식을 야참으로 내게 하여 먹고는 더 위중해졌다. 겨우 의식을 차리자 허준의 만류를 뿌리치고 들어온 정성필에게 현재의 세자가 이으라는 전위교서를 남긴다. 얼마 뒤 광해군에게 영창대군을 부탁하고 붕어한다. 원작에서는 위에 언급된 음험한 모습이 허준을 시기하는 양예수 일당의 행태로 묘사되면서 선조는 본인은 위엄 있고 개념 있는 군주 정도로만 등장한다.

공빈과의 관계의 경우 1999년판에서는 서로 대립하는거 이외에는 별다른 일은 없었으나, 구암 허준에서는 공빈을 저주하는 설정이 추가되었고, 오히려 걸렸는데도 배째라는 식으로 나온다. 왜란 중에 신성군이 사망하고 이후 선조가 쇠약해지면서 퇴장하는 것이 1999년작의 결말이었지만, 구암 허준에선 김공량과 짜고 자신들이 미는 규수를 새 중전으로 앉히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실존 인물 인빈 김씨는 신성군 사후 광해군과의 관계 개선에 힘써 자신의 조카를 광해군의 후궁으로 들이고 선조와 광해군 사이에서 광해군 편을 많이 들어주어 광해군의 우대를 받았다.

원작에서는 공빈 김씨가 사망한 후에야 처음 등장하며 아름답고 품위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아들 의안군이 역병에 걸리자 그 징후에 대해서 허준에게 묻지만 허준이 속단하기 어렵다고 하자 "전하께는 말씀드렸을 것도 같건만..."하면서 답답해한다. 결국 의안군은 죽고 이후 등장은 별로 없다.

한편으론 인연이 깊지 않은 허준의 커리어에도 영향이 크다. 신성군이 어렸을 적 심한 종기를 앓았을 때, 궁의였던 유도지는 도저히 자신의 능력으로 치료할 도리가 없어서 허준에게 기회를 주는 척하며 신성군의 병을 허준에게 떠넘기는데, 허준은 이 종기를 거머리를 이용해 완치시킨 공을 세워 어의로 봉해지기 때문. 이때 드디어 허준의 관직이 유도지를 넘어서게 된다. 원작에서는 형인 의안군이 죽는 장면만 묘사되며 신성군의 등장은 거의 없다.

5.2. 조정신료 및 관리

6. 기타 인물들

7. 여담

전체적으로 1999년작에 비해 배우들의 연령대가 젊어진 느낌이라 1999년작과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가 다른 배역으로 출연하는 경우도 있다.[241]

1999년 작 허준에 출연했던 배우들 중 일부는 이후 2006년에 최완규 작가가 집필한 주몽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출연한 배우를 살펴보면 전광렬(허준/금와왕), 김승수(광해군/대소왕자), 임대호(천양태/협보), 박종관(정작/송양), 한인수(안광익/예천 족장), 이계인(돌쇠/모팔모) 등이 있고, 주몽에 출연했던 배우들 중 일부가 또 구암 허준에 출연하기도 했다. 면면을 살펴보면 여호민(천양태/오이), 견미리(함안댁/원후), 원기준(허석/영포왕자), 김병기(성인철/연타발), 김진호(김응택/양탁), 정호빈(안광익/우태), 이재용(삼적대사/대사자 부득불), 황범식(송학규/외사자 진용), 박경환(혜민서 도약사령/부분노), 신준영(밀수꾼/배망) 정도가 현재 출연한 상태고 이후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또 유태웅이나 손헌수등 야인시대에 출연했던 배우들도 보인다.[242]

과거 작품들과의 인물 설정 변화가 눈에 띄는데, 드라마 마지막회까지 등장하는 장학도는 내의원 비리고발 이후 그만두면서 리타이어 되면서 그 역할을 공기가 이어가게 되었고, 중반에 리타이어된 장쇠와 영달이 다시 등장하는가 하면, 공빈 김씨의 오라비 김예직이 남동생이 아닌 오라비로 설정이 바뀌었고, 공빈 죽음 이전까지 출연분량도 많아졌다. 거의 단역수준이었던 돌쇠도 비중이 많이 커지면서 허준을 모시며 거머리 치료법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허겸과 언년이가 서로 탄생순서가 바뀌었고, 시종일관 언년이에 대해 냉담했던 겸이가 구암 허준에선 오히려 언년이와 혼인을 하겠다고 해서 가족들을 놀라게 하는 등의 변화도 생겼고, 어의 허준이 각종 질병을 연구하기 위해 명나라로 떠나는 에피소드도 추가되었다.


[1] 아버지인 김무생도 허준역을 맡은 바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이 김주혁의 지상파 드라마 마지막 출연작이 되었다.[2] 드라마 1회에서 허준이 소개되는 장면이 바로 이 밀거래 장면으로 허준이 밀거래 도중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며 약조한 200냥이 아닌 300냥을 요구한다. 그러자 상대방도 그 가격엔 못 주겠다며 둘이 뻗대다가 관에서 순찰을 돌 새벽이 되자 허준이 자기의 물건에 불을 질러버리고, 이에 상대방이 사색이 되어 300냥은 물론 은자 50냥에 비단 100필까지 얹어 준다. 거래 상대는 짜증내면서도 은근 감탄해 그의 이름을 묻고, 바로 여기서 허준의 이름이 나오는 것. 사실 주인공 보정이긴 하지만 당시 상대방이 더 절박하다는 걸 알아차린 허준의 안목, 새벽까지 안색 하나 안 변하고 버티는 지구력, 참을성, 스스로의 물건에 주저않고 불을 지르는 배짱 등을 보여주면서 전설의 "4딸라" 장면과 달리 그래도 어느 정도 개연성은 있다. 한참 뒤 양태가 이를 따라하다 피보는 장면이 있는데, 둘이서 치열하게 대치하다 불을 질러버린 허준과 달리 거래가 틀어지자 냅다 불을 질렀는데, 상대방이 별로 절박하지 않아서 오히려 양태가 "여보쇼...불을 꺼야하지 않소"라고 했다가 상대의 무관심한 반응에 허겁지겁 불을 끄고 손해까지 엄청 본다. 이래서 뭐든 어설프면 안 된다 이 때문에 사실 밀거래를 하자고 한 이는 임오근이었음에도 양태가 허준에게 혼이 난다. (밀거래에 대해 모르던 임오근에게 알려준게 양태이므로, 허준은 양태가 그를 꼬셨다고 생각한다. 허준이 이 일을 안 것은 반묘의 출처를 조사하다 밀거래로 구하는 약재라는 것을 짐작하였을 때였다.) 그러고 난 다음 이번에는 허준이 한 번 더 하자고 말한다. 물론 이 때는 이정명이 반묘의 출처를 알게 하기 위한 미끼작전이었다.[3] 이 때 허준은 정경부인을 치료한 뒤 그 집에서 추천서와 선물을 받았는데 이를 질투한 임오근의 밀고로 15회에서 파문당했다. 받은 재산도 유의태 부인이 보낸 하인에게 뺏겼다. 16화에서는 술로 세월을 보내다 주모~ 주모, 여기 술 좀 더 줘허얽~ 그의 사정을 안 부산포와 함께 사기를 치다(사실 부산포가 허준도 속였다) 걸려 장을 맞은 뒤로는 부산포와 결별하고[243], 마연동 철광에서 일하기로 한다. 마연동에서 만난 늙은 광부의 천식을 삭히고 광산이 무너져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던 중, 양태에게 마연동에 갔다는 말을 듣고 온 다희를 본 뒤 다시 유의태를 찾아갔다. 유의태는 다른 말이 없었지만, 예진의 도움으로 김민세가 대풍창 병자들을 보살피는 삼적사로 가기로 한다.[4] 사실 이런 인생은 전부터 살게 될 거라는 복선이 있었는데 유의태 문하 시절에 안광익이 남긴 의서로 집에서 공부를 하던 중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하던 여성을 살려주면서 였다. 이 때 살려준 여성의 아버지가 사공이었는데 이를 이야기 하는 바람에 몇몇 병자들이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말과 돈 한 푼 안 받고 병을 고쳐준다는 말을 듣고 허준을 찾아왔었다.[5] 엿새라고 했으면 손목 잘릴 걱정 안해도 됐었다.[6] 이 말을 듣고도 허준이 태평하게 약을 달이자, 허준을 돕던 소현의녀가 예전에 거짓말을 일삼다 손목을 잘린 의녀 이야기를 해주며 허준에게 경고해준다.[7] 이때 양예수가 여태 한번도 치유된적이 없는 었던 반위를 너와 네 스승 따위가 뭘 안다고 고칠 수 있다고 지껄이냐고 하자 허준이 죽은 유의태의 시신을 직접 해부하고 부검하여 알게 된 사람 내장과 신체 기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는 장면이 압권. 구암 허준에서는 동일한 장면이 해가 진 뒤로 바뀌어 있다.[8] 이 장면이 그 유명한 거머리 치료 장면이다.[9] 드라마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어의 임명+당상관 벼슬 하사+면천이 동시에 이뤄진 것처럼 묘사되어 허준이 부인에게 "우리 겸이(아들)가 대과를 볼 수 있게 되었소"라고 나오며, 자막으로 "의관으로 정3품 당상관이 되면 모두 '어의'라 칭함"이라고 나온다. 그러나 허준은 당상관에 오르기 최소 몇년전부터 어의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의관으로 당상관에 오르는 것은 오히려 매우 드문 케이스라 허준이 이 벼슬에 오른 것에 반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허준이 당상관 벼슬을 받은 것은 임진왜란 1년전이었는데, 이때 그는 면천된지 한참 된 시점이었다.[10] 역병의 조짐이 있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약을 먹으려고 하는데 역병에 걸려있던 아이들이 보이자 아이들에게 먹이고 자신은 먹지 않았다. 결국 그때문에 역병이 발병하게 된다.[11] 다만 이는 치료된 것이 아닌 회광반조와 같은 상황이다. 상황을 들은 다희는 울먹이지만... 아래에 나와있다시피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12] 아들인 허겸 역할을 맡은 이해우보다 5살이 어리다. 그래서인지 분명 노년이여야 할 극 후반부에도 머리만 희끗한 희대의 사기 동안을 보여주었다. 홍충민에 경우에도 동안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박은빈보다는 나이들어 보이게 꾸몄다.[13] 배역은 정동환.[14] 유의태를 찾아다녔다. 다희 아버지와 유의태 간에 면식이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리메이크판인 구암 허준에서는 압록강 국경 부근에 있는 용천에서 경상도에 뿌리를 박은 유의태를 찾는 게 말이 안 된다 판단했는지 장 의원을 찾아간 후 명나라 약재를 얻기 위해 밀수꾼을 찾는걸로 바뀌었다.[15] 산음으로 내려가던 중 누명이 풀린 것을 안 허준이 이젠 맺어질 수 없는 사이라며 다희가 예전에 살던 집(이 집은 허준이 도지를 따라 한양에 왔을 때에는 양예수의 집이었고, 허준이 급제하여 한양에 온 뒤 다희가 일감을 찾다 다시 왔을 때도 그대로다)에 간 사이 편지만 남기고 떠나버렸고, 이후 양태와 재회하여 같이 산음으로 내려오지만 반상의 법도 때문에 고생하던 자신과 앞으로 또다시 고생할 아들 때문에 반대하던 손씨를 겨우 설득한다.[16] 고생한 생활이 몸에 배었는지 정경부인 된 62화에서도 바느질을 직접하고 있었다.[17] 다희의 가문이 풍비박산나자 자신의 가문에서 혼담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는데 다른 혼담을 죄다 거부하고 다희 부녀가 있던 용천까지 찾아갈 정도로 다희를 사랑하는 로맨티시스트다. 허준이 내의원 과거를 치르러 한양으로 향할때 들렀던 진천현의 현감으로 재등장했는데 허준이 덕망이 있는 김상기를 보며 아내는 좋은 남자를 알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괜찮은 인물이다. 드라마에도 허준이 진천 현감과 만나는 장면이 있지만, 설정이 다르기 때문에 다희와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다.[18] 밭에서 농사, 시장에서 나물, 떡 장사, 유의태 약방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하며 고생했다.[19] 그간의 비리가 적발되어 혜민서로 좌천된 김응택과 송학규가 혜민서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면서 혜민서의 재물을 조사할 때, 예진과 채선이 당귀가 줄었다는 것 때문에 의심을 받아 포도청에 끌려갔다. 세희가 혜민서 의관 한 봉사가 그동안 약재를 빼돌리고 있었다고 한 말을 들은 허준은 집에 갔다가 함안댁이 하는 말을 듣고 당귀가 기방으로 갔을 가능성에 도달한다. 이때 손씨도 기생이나 화류계 여성들이나 알고 있던 당귀물 소세(세수)의 효능을 이미 알고 있었다. 허준은 임오근의 도움으로 기방에 가서 한 봉사가 기생들에게 당귀를 공급하고 있었음을 안 뒤, 한 봉사에게 자수를 권한다. 그가 자수하여 예진과 채선이 돌아온 뒤, 허준이 의녀들에게 당귀 우린 물로 씻으면 피부가 고와진다고 말하고 간다.[20] 이때 임오근의 평이 걸작인데 '못 고치는 것 없는 천하의 명의가 제 어머니 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니 세상 참 모를일이네' 라고 하였다.[21] 을사사화는 대윤이 소윤에게 숙청된 사화이고 손씨의 부친이 부원군이었으므로 대윤의 핵심인물이었을 것이다.[22] 그전까지는 팔려다니기는 했지만 양반의 첩이 된건 처음으로 손씨의 부친이 을사사화로 숙청된 대윤의 핵심인물이어서 다른 양반들이 손씨의 미모가 탐이 나지만 괜히 구설수에 오를까 차마 첩으로 삼지 못했다. 그런 손씨를 첩으로 거둘 정도면 허륜은 손씨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이라고 봐야한다.[23] 몹시도 가난해서 간장탄 물로 배를 채우면서도 아들 허준에게는 티 한번 내지 않는다. 물론 이를 잘 알고 있는 허준은 성 대감이 아내를 고쳐준 선물로 좋은 집을 선물해준다고 하자 평소 성정이라면 바로 거절했겠지만, 어머니의 간장 탄 물 장면을 회상하며 잠시 머뭇거린다.[24] 원작 소설에는 1남 1녀로 허겸의 여동생(이름은 허숙영)이 등장하지만 드라마에선 항상 외아들이다. 전개 상 허준의 딸이 활약할 만한 에피소드가 없긴 하다.[25] 1999년작에선 허겸이 먼저 태어나고 다희가 유산하는데, 구암 허준에선 다희가 유산을 한 뒤, 허겸을 임신하는 것으로 순서가 바뀌었다. 그래서 다희의 친척 오빠가 한양에 온 다희를 찾았을 때 아들이 다닐 서당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1999년판과 달리 2013년판은 그냥 잊어달라고 말하고 돌려보낸다.[26] 원작과 드라마에서는 허준이 겸이가 영특하지만 신분의 한계로 배운 게 많을수록 더욱 고통스러운 인생을 산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걸 걱정하여, 다희에게 글공부를 너무 깊게 시키지 말라하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에서는 다희의 교육열에 거기까지만 말하지만, 원작에서는 더욱 강한 반대로 묘사된다.[27] 원작에서는 피난전에 허준이 가족을 만나는데, 거기선 허겸이 아버지에만 의존하여 피난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세워놓지도 않고, 나약하고 어린애같은 모습을 보이자 허준에게 질책을 당한다. 허준은 속으로 자식을 잘못봤구나라며 자신에게 한숨쉰다. 하지만 아들에게 기대한 담담하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준 아내 다희를 보고 아들에게 실망한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28] 1999년작에서는 진천의 현감으로 갔다고 언급되었는데 진천은 과거 허준이 첫 과거시험으로 보러갔다가 병자들을 돌봤던 버드내 마을이 있는 곳이다.[29] 구암 허준에선 누나[30] 그 이전엔 양반으로 신분 상승을 해버린 탓에 본인도 곤란해했던 모양. 부모님이 신분 차이를 띄어넘어 결혼을 하엿지만 그 때문에 유배를 갈뻔했기 때문에 트라우마로 작용한듯.[31] 131회에서 광해군을 대면한 유도지의 언급으로 파주 목사에 재직중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전 나무위키에선 파주 현감이라하여 당시 파주 목인 상황과 맞지 않다고 설명이 되어 있는데, 131회의 유도지의 대사를 보아 파주 현감이 아닌 파주 목사이다.[32] 오리지널에선 임대호가 맡았다. 야담이지만 임대호, 여호민 모두 MBC 드라마 주몽에 출연하여 각각 협보와 오이 역을 맡았다. 여담이지만 여호민은 이 작품과 주몽을 제외하면 사극에서 모두 악역을 맡았다. 대표적인 역할이 동이의 오호양과 옥중화의 동창이다. 오호양의경우에는 어딘가 모자라보이는 악역이고 동창이는 마지막화까지 주인공을 괴롭히는 지독한 악역이다.[33] 1999년판에서도 봉수대에서 일한적이 있었다고 나오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그 때의 경험으로 봉화불 숫자가 무슨 의미인지를 구일서에게 자세히 알려준다.[34] 1999년작에서 김공량으로 출연[35] 1999년작에선 내의녀 소비역으로 등장.[36] 식객민우김치싸대기 드라마 <주몽>에서 찌질한 영포왕자 역을 맛깔나게 소화한 전적이 있는 그 배우.[37] 허준의 아들인 허겸을 안고 "내가 니 큰아버지다."라고 말했다.[38] 이 일로 인해 허준의 집 앞을 서성거리다 돌쇠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 장면을 보고 모팔모에게 봉변을 당하는 영포왕자를 떠올렸다는 평이 많다.(...)[39] 구암 허준에선 호형호제 하는 정도는 아니고 그냥 허 의원이라고 불렀지만, 허준이 정1품 보국공신에 오르자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부터 그냥 형님이라고 부르는 건데..."하면서 후회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40] 임오근이 도약사령으로 있으면서 질은 좋지만, 모종의 이유로 내의원에 들어가지는 못한 약재들을 구일서에게 갖다주었던 것도 성공의 원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돈이 잘 모이지 않아서 셋이서 밀거래에 뛰어든 적도 있지만, 양태가 어설프게 허준이 용천에서 하던 방식을 따라하다가 손해만 봤다. 정작 이를 허준이 알았을 때는 화를 내면서도 한 번 더 하자고 제안한다. 당시 허준은 구태훈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반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임오근에게 내의원 약재창을 조사하게 하였다가, 내의원에 없는 것을 알고는 밀거래로 구한 것[244]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밀거래 이야기가 나오자 오근이 허준이 예전에 밀거래를 하였다고 들었다고 말했고, 그것을 말한 사람이 양태임을 알고 저잣거리에 가서 양태와 일서에게 제안한 것이다.[41] 재미있게도 구일서도 언년이를 낳기 전까지 산음이나 한양에서 투전판에 돈을 퍼부은지라 함안댁의 속을 썩인 인물이다.[42] 이는 드라마판에서는 안광익에게 의술을 배워 은혜를 갚으려는 허준이 하는 것으로 나온다. 결과는 물론 실패.[43] 이 때문에 얼굴이 무척이나 험상궂고 무서워 보인다.[44] 구암 허준에서 구일서 역을 맡은 박철민은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의 부장 김완 역을 맡았으며, 해당 드라마에서도 서남 방언을 사용한다. 재미있는 것은 구일서는 산음(경남 산청) 사람이고 김완은 경상북도 영천 사람인데, 드라마에서는 서남 방언을 사용하는 캐릭터로 각색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린 건가?[45] 1999년작 드라마에서도 임진왜란 때 평양성 전투에서 양태와 함께 의병으로 참전, 왜군들에게 돌을 던지는 등 활약을 한 바 있다.[46] 작중 무대인 산음(경남 산청)은 서쪽으로 지리산을 넘어 전라도 남원이고, 남쪽은 경남 하동, 동쪽은 경남 진주여서 경상도 땅에서 전라도 말투를 쓰는것도 지리산을 낀 남원에서 건너온 사냥꾼이라고 하면 딱히 이상할 것은 없다.[47] 왜란이 일어나서 북쪽으로 피난갈 때는 만삭으로 힘들어 하는 유월이에게 대놓고 눈치를 주고 악담을 끊임없이 하다가 결국 구일서에게 따귀를 맞는 장면까지 나온다. 서러워서 혼자 강에 갔다가 배를 태워주겠다면서(정성필의 지령을 받은 배천수가 배를 태워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접근한 사람이 있어 다른 집 식구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많은 돈을 줘 가면서 배를 잡아 두었는데, 가서 보니 사기를 당하였음을 알았다.[48] 작중 중반, 허준과 다희의 신분이 탄로났다가 선조의 대권으로 죄사함을 받고 신분이 복원된 적이 있었다. 이때 다희와 함께 장을 보던 함안댁이 이런저런 시비를 거는 오씨의 눈 앞에서, 다희에게 "대갓집 마님께서 어찌 저런 천것들과 말씀을 나누십니까?" 라고 하여 오씨를 데꿀멍시킨 적도 있었다(...)[49] 1999년작의 배우 김해숙은 부산출신인데, 작중에서는 ~잉 ~그려, ~아이고메, 거시기~ 이봐라~ 등의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 쓰는 기묘한 방언을 썼다. 산음 자체가 화개장터인 하동의 옆동네라 전라도와 경상도가 교류하는 동네라 그런듯.[50] 근데 1999년작이나 구암허준이나 이 약재상이 많이 위험한 장사였다. 혜민서에서 벼슬을 하는 임오근의 빽으로 왕실에 진상하는 특산품 약재를 상인들을 구워삶아서 웃돈주고 저잣거리에 파는데다가, 그것도 장사 안된다면서 명나라 약재를 밀수까지 하려했다. 원산지가 들키면 당장에 요절날 일.... 그래도 둘다 용케 안걸렸다.[51] 같은 중인이었던 허준네 가족이지만 허준이 어의가 되면서 양반이 되면서 신분이 달라져버렸다. 허준은 부인과 신분을 띄어넘어 결혼을하였지만 그것 때문에 죽을뻔했기 때문.[52] MBC 공채 개그맨으로, 야인시대에서 임화수의 비서인 눈물의 곡절을 연기했다.[53] 아이러니 하게도 가정폭력을 제외하면 언년이 낳기 전에 구일서가 하던 짓과 똑같다.[54] 구일서 입장에서는 딸이 맞은 거 말고도 화낼 이유가 있는 게 장서방 하는 짓이 과거 자신이 하던 짓과 똑같다.가정폭력 빼고[55] 이때 기초적인 침술이나 약 조제조차 전혀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나마 금태산 운봉사에서 동자승으로 살며 안마와 도인술을 배웠다고 한다.짧게 말하면 파계승[56] 과거 화타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총 9개의 침을 닭에게 끝까지 찔러넣되, 닭이 아파하거나 죽어서는 안되며, 찔러넣은 후에도 닭이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하는 조건을 놓고 하는 겨루기. 게다가 여기서의 침이 흔히 생각하는 작고 가느다란 침이 아닌, 웬만한 주삿바늘 이상의 굵기이며, 어떤 것은 초소형 단검 같은 흉악한 물건도 있다. 5개까지 성공하면 범의, 6개를 교의, 7개를 명의(화타는 적어도 여기를 넘어야 병자를 직접 보게 하였다고 한다고 언급된다), 8개는 대의, 9개 모두 성공하면 태의라고 부른다. 유의태는 자신이 지면 눈을 파 주겠다고 말하는 한편, 자신이 이기면 발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조선 제일의 명의는 유의태"라고 세 번 외치고 주안상을 차리라고 요구하였다. 여기서 유의태는 9개의 침을 아무 이상 없이 꽂고 닭도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게 했지만, 양예수는 8개부터 닭이 신음소리를 내더니 9개째에서는 울부짖기 시작했고, 돌아다니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57] 이에 들뜬 허준이 지리산의 약초를 죄다 뿌리채 캐내버리자 이를 본 안광익이 약초 구분도 못 하는 놈이 무슨 의원이 되겠냐며 화냈다. 약초마다 약으로 쓰는 부위가 다른데, 허준이 캔 마황은 줄기만 쓰는 약초라서 뿌리까지 캐어가면 그 약초의 씨가 말라버린다는 가르침이었다.[58] 작중 내내 싸늘하던 유의태가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흥분한 모습이 유도지가 취재에 합격한 후였다. 그때 유의태는 도지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믿지 않았는데 애썼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데 이 일로 산음 현감이 잔치에 참여하였을 때, 진천 현감이 보낸 서신을 통해 허준이 겪은 일을 알게 되면서 기쁨은 그대로 분노로 바뀌어[245] 도지와 의절한다. 이후 허준이 사또의 곽란을 고칠 의원 중 한 명으로 왔을 때, 그에게 치료를 맡겼다가 경과를 보고하러 왔을 때 다시 약방에서 일하게 한다.[59] 원작에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는 스승 유의태를 존경하면서도 그 차가운 인격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인간이라 느끼는 자신에게 소름이 끼친다는 표현이 있다.[60] 드라마에서 유의태는 유도지가 취재에서 낙방했을 때 애썼다고 위로해주지만, 원작에서는 미련한 것이라고 빈정대고는 무시해버린다. 드라마에서 못마땅한게 있으면 이순재가 분한 유의태는 서릿발같이 꾸짖으면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걸 지적이라도 하지 원작에서는 화를 내는 애정조차 없어서 빈정대거나 욕설 한마디로 싹 무시해버리고 쳐다도 봐주지 않는다. 부산포가 자기를 죽이려고 덤벼드는 순간까지 동요하지 않고 가만 있는 모습은 소름끼칠 정도.[61] 이 장면을 두고 일부 시청자들이 그냥 내쫓으면 되는데 굳이 추천서를 태웠냐며 유의태를 욕하는 경우도 있으나, 유의태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유의태가 직접 말했듯이 허준은 추천서를 받은 시점에서 (나중에 후회했지만) 출세에 눈이 멀었었고, 허준에게서 심의가 될 가능성을 본 유의태로선 추천서를 냅다 받은 허준에게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62] 진천의 돌쇠가 눈먼 어머니를 고쳐 달라며 산음까지 왔을 때(같은 시기에 도지는 한양에서 임해군의 환우를 살피고 있었다), 하던 대로 허준이 보게 하는 한편, 침을 쓰던 병자에게 뜸을 뜨게 하고 나간다. 본래 침과 뜸을 같은 자리에 쓰지 않는 것(침과 뜸을 함께 쓰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김예직의 구안와사와 반위를 고칠 때 함께 사용한다)이 의가의 법칙인데, 허준의 침술을 믿은 유의태가 허준이 뜸을 뜰 자리에 침을 놓아도 될 것이라고 보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실제로 허준은 침을 택하였다.[63] 오늘날의 위암. 정확하게는 위암, 위 유문 협착증, 식도협착증, 췌장염 등 심각한 위장 질환을 아우르는 명칭이다. 본인도 진작에 알고 있었으며, 피를 토할 정도로 진행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도지가 한양으로 갈 무렵부터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64] 당시 유교적 관점에서 신체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아 죽어서도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 게다가 그것이 아니더라도 허준은 스승의 몸에 칼을 대고 살갗을 찢는 패륜을 저지를 수는 없다고 여겼다.[65] 실존 인물이라면 1550~1551년 생. 허준이 유의태의 약방에 들어올 당시에 열아홉이었다고 한다. 허준의 실제 생년으로 계산하면 허준과는 11~12세 차이.[66] 궁녀출신, 김민세의 처제로, 궁에서 자살을 기도했다가 안광익의 도움으로 나와 안광익과 결혼 후 삼적사에서 김민세를 돕는다.[67] 관비 출신의 혜민서 의녀로 허준과의 나이 차는 10살 이상이지만 허준의 진심 어린 진료를 보고 그를 연모하게 된다. 91년 서인석 주연 <동의보감>에서는 임채원(당시에는 임경옥이란 본명을 썼음)이 연기.[68] 당시 허준은 가족이라고 편의를 봐 줄 수는 없다며 줄을 서게 하였다. 다희도 서리가 돈을 주면 순번을 당겨주겠다고 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이후 그 서리가 농가진에 걸리자, 동료 의관들은 허준을 모함한 자를 허준이 돌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만, 허준은 자신에게도 송진을 뿌려가면서 서리를 고친다.[69] 허준도 약초꾼 시절에 동료 약초꾼들에게 속아 산에 차고 넘치는 약초[246]를 찾으러 다른 길로 돌아다니다 사고를 당했을 때 삼적과 함께 자신을 간호한 대풍창 병자들을 보고 기겁하였다. 허준이 거머리를 사용하기 전에 자주 보인 입으로 고름 빨기는 유의태와 김민세에게 배운 것이고, 양예수도 허준의 압진은 유의태와 김민세의 솜씨임을 알아본다.[70] 허준은 어의가 되어 면천을 한 이후로도 사석에서는 젊은 시절 의원에서 그녀를 대하듯 정중하게 아씨라 부르며 존댓말을 하고, 나이와 신분을 벗어나 그녀를 존중하고 그녀로 인해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도지를 제외하고 조정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먼저 안 것은 선조의 대전 지밀상궁. 선조와 성인철에게 예진을 데려간 사람도 이 상궁이다.[71] 궁을 떠난 예진에게 함께 온 여자아이가 내의녀님이라고 부르는 부분은 오류가 아니다. 예우 차원에서 사회에서의 직함을 부르는 경우는 흔하고, 이것이 일종의 대명사로 정착하기도 한다.[72] 참고로 이 마지막 참배 장면은 원래 정말 늙을대로 늙어버린 쭈글쭈글한 가면을 착용하고 촬영을 시도했는데 결과물을 본 스태프들조차 그 참담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그냥 머리를 좀 희끗희끗하게 어루만지는 정도로 손을 보고 재촬영을 해 방송했다.[73] 특히 침술에 능숙치 못한 장면이 몇번 나오며 약초꾼들은 임오근이 침을 놔주겠다고 하면 슬슬 피한다. 온역이 돌 때는 한증에 걸린 구일서를 진맥하여 역병의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지만 예진이 한증이라고 정정한다. 일전에 허준이 한증 환자를 치료한 것[247]을 떠올리고는 찬 물을 끼얹어 일서를 기절시키기도 하였다.[74] 의외로 드라마판 극초반부에선 환자들을 진맥하고 그 처방에 대해 막힘없이 술술 읊는 유능한 면모를 보이는 인물이였다. 부산포가 약방을 떠나고 허준이 병부잡이를 거쳐 임상에 참여하면서 저절로 돌팔이 포지션으로 정착한다. 임신한 함안댁을 위하여 구일서가 보약을 지으려고 할 때, 그가 가져 온 웅담은 임부에게 독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그 웅담은 자기가 쓰기로 하고, 일서에게는 다른 약을 줘서 보낸다. 예진에게 물어서 재료를 맞췄지만.[75] 나중에는 입문한지 얼마 안된 상화에게 트집을 잡기 위해 약초에 대해 질문하고, 상화가 막힘없이 대답하자, 할 말이 없어진 임오근은 상화를 내보내고 혼잣말로 "허준이보다 더 무서운 놈일세"라고 하는 장면도 나온다. 학식은 있지만 의술이나 약방 관습에 무지했던 허준과 달리 상화는 웬만한 약방보다 고된 삼적사에 익숙하기 때문에 오근이 얼른 떠올릴 법한 약재에 대하여 잘 알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76] 이때 유의태에게 맡기려는 이방에게 처음으로 허의원이라고 하는 등 한 명의 독립된 의원으로서 보고있음을 내비쳤고 허준은 그에 감격했다.[77] 임오근이 한양에서 도지의 입격사실을 허준에게 알려주면서 그때 섭섭한 마음이 들어 유의태에게 일러바치는 바람에 고초를 겪은 일에 대해 사과를 했으며, 허준도 그 때는 자신이 경솔한 선택을 했다며 자신이 오히려 잘못한 일이라며 다 잊은 일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78] 사실 임오근이 아니었으면, 허준이 의원으로의 직업정신이 각성하지 않은 채로 추천서에 의한 입격으로 그저그런 내의원 의원으로 살다가 죽었을 것이다. 유의태에게 파문 당한 이후, 술에 빠져 방황하다가 돈이라도 벌기 위해 마연동 탄광에서 일을 하지만, 탄광이 무너지는 바람에 많은 부상자가 생기고, 거기서 병자들을 진료하면서 결국 자신은 의업을 저버릴 수 없는 사실을 자각하고(마연동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는 2013년판에서는 부산포와 결별한 뒤 바로 유의태에게 용서를 구하러 가는 것으로 변경되어, 이후 평양에서 다희가 겸에게 하는 이야기의 배경도 삼적사로 바뀐다), 더 많은 병자를 돌보면서 유의태만큼 의술이 뛰어난 삼적에게도 의술을 전수받을 겸, 그가 있는 삼적사에서 대풍창 병자들을 돌보면서 진정한 의원으로의 사명감이 제대로 각성한다.[248] 그에 따라 인격도 한층 더 성숙해진 허준이 지극히 인간적인 행동을 한 임오근을 미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허준은 내의원 입격 때부터 왜란이 한창일 때까지 자신을 모함해온 유도지도 그의 진심어린 사죄에 자기도 용서를 구하며, 용서를 해준 대인배이다.[79] 원작 소설에서 내의원 시험에 제때 도착하지 못한 허준에게 도지의 합격사실을 알린 이는 유의태의 막내 제자인 상화인데 드라마에서 상화는 삼적대사의 양아들인 대풍창 병자로 나오지만 원작에서는 삼적대사의 양아들은 길상이며 원작소설의 상화는 허준이 성인철 대감의 부인을 치료하기 전에 문하로 들어온 인물로 사람이 워낙착하고 동정심이 많아 허준이 어려울때 많은 도움을 준 인물로 드라마에서는 상화와 길상이가 합쳐졌다. 드라마에서는 임오근이 허준에게 찾아와 유도지에게 인사하고 뱃놀이를 하자고 하자고 하고 허준도 유도지를 찾아가 인사를 드리지만 유도지가 권유한 유람은 거절하고 진천으로 바로 내려간다. 원작 소설에서는 상화가 마음이 편치 않으면서도 유도지가 시켜서 허준에게 도지에게 인사하고 뱃놀이를 하자고 하는 부분까지는 같으나 허준에게 열등감이 있던 유도지와 임오근은 인사를 받을 마음이 없었고 허준이 상화와 함께 인사를 하러 갔을땐 허준 앞에서 뱃놀이를 하며 떠나고 있었다. 자신을 시켜 허준을 데려오게한 뒤 의도적으로 모욕을 준 사실을 안 상화는 허준은 가만히 있는데도 유도지와 임오근에게 온갖 욕설을 하며 흥분한다.[80] 다만 애드립이 지나쳐서 NG 수준까지 간 적도 많았는지, 종영 후 스페셜에서 방영된 NG 모음 코너에 "문제는 임오근" 이란 소제목까지 있었다.[81] 2차 시험에서도 허준에게 과외를 받아 배강에서 쓰일 교재를 추천받아 해당 교재를 달달 외웠고 정말 그 교재가 배강에 쓰였지만 임오근 차례가 오자 교재가 바뀌어 버벅거리다 쫒겨난다. 올라와서, 손목을 지나......[82] 허준이 입격한 취재는 만력 원년(1573년. 도지가 입격한 취재로부터 2년 뒤인 계유년이며, 선조 6년이기도 하다) 11월 13일(이것도 음력 기준)이다. 1차 합격자를 명시한 방에서 8번 자리(세로쓰기이므로 오른쪽에서부터 센다)에 임오근, 16번 자리에 허준이 있다. 2차 합격자를 명시한 방은 11월 15일에 붙었는데, 1등 허준, 2등 이명원과 장학도, 3등 김정훈, 박영수, 김병규, 4등 이원준, 김광식, 구진근.[83] 물론 이것도 소문만 듣고 부산포가 지레 짐작한 것이었고, 그런 의서는 없었다. 참고로 이 소문을 말한 사람은 영달과 꺽쇠. 꺽쇠도 오근에게 들었다고 한다. 당연히 유의태는 의술이 책 한 권 가지고 되냐며, 너는 7년이 아니라 평생을 가도 의원이 되긴 글렀다며 꾸짖는다.[84] 전녀위남법이라고 부른다. 원대의 의원 위역림이 쓴 『세의득효방』에 태아의 성별이 정해지지 않은 시기에 약과 방술을 사용하여 원하는 성별이 나올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나온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태아의 성별이 수정과 착상 단계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기에 통할 수 있었던 이야기다. 전녀위남법은 『동의보감』에도 나온다.[85] 유도지로부터 50살 넘은 사람들도 취재 보러 왔다는 말에 안심하는 모습을 보인다.[86] 다만 이전에 수차례 유의태에게 나이가 나이인지라 먹고 살길을 제발 가르쳐달라고 하소연했으나 유의태로부터 비인부전이라는 말만 듣고 싸늘하게 무시당한다.[87] 어차피 확률은 50%고 부산포는 그걸로 꽤 돈을 벌었던 모양. 한번은 독자만 낳아온 집에서 실패해서 딸이 태어나는 바람에 대접 잘 받가가 맞아죽을 위기에 처하자 한밤중에 담장을 넘어 달아났다고 한다.[88] 실제로 부산포는 수 명의 약초꾼들까지 거느릴 정도로 나름 잘나가는 의원행세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기존의 유의태 제자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89] 약을 달이는 물 긷는 곳을 엉터리로 일러주어 유의태의 꾸지람을 듣게 하였다. 선배 약초꾼들도 계속 해 왔던 일이라고 한다. 본래는 혼자 찾아야 하지만(장쇠는 달포 걸렸다고 한다), 허준은 예진의 도움으로 올바른 장소를 찾는다. 이 뒤로도 허준은 탕약에 필요한 물을 손수 길어 쓰며, 같은 맥락에서 빗물로 광해군에게 올릴 탕약을 만든다. 예진이 허준에게 말한 33가지 물은 『동의보감』 「탕액편」에도 나온다. 유의태의 약방에서 사용하는 물은 최고의 물이라 여겨지는 정화수(새벽에 처음 긷는 물) 다음의 한천수(닭이 울기 전에 뜬 찬 샘물.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물이다)다. 이 장면은 드라마에서 반위가 처음 언급되는 대목이기도 하다.[90] 이때 하는 변명이 가관인데, '비록 산삼을 훔쳤지만 도망가던 도중 스승님께 드릴 약재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돌아가는 중이였다'라는 되도않는 변명을 지껄였다. 사실 이 에피소드는 소설 초반에 허준이 겪게 되는 에피소드 이지만 이것이 영달이에게 넘어간 것이여서 어찌보면 영달은 드라마판의 피해자라고 볼수도 있을지도...[91] 요즘으로 치면 환자의 신상 정보, 병력과 처방이 기록된 차트. 원작에서도 의원의 병부만 있어도 그 데이터를 가지고 외우기만 해도 의원 행세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직 허준이 예진과 친해지기 전에 병부를 필사하며 공부하다가 들켜서 이러면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허준의 노력을 알면서 가까워진 뒤로는 자신이 필사한 의서를 주기도 하였다.[92] 1999년작에선 예진과 임오근이 근처 숯을 만드는 곳에서 목초액을 구해왔던 장면이 변형된 것.[93] 자신이 연모하던 예진의 마음이 허준에게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랜만에 의과 취재가 결정되어 공부하고 있었는데, 허준이 삼적사로 간 뒤 예진이 마음의 병이 생겨 까닭 없이 몸져 누웠을 때 손수 간병하기까지 하였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도지의 어머니가 예진에게 핀잔을 주자 예진은 삼적사로 갔고, 도지가 삼적사에 가서 예진을 데려오려고 하였으나 허준이 있는 것을 보고는 실망하여 바로 떠났다.[94] 허준 역시 유의태가 인간미라고는 전혀 없다고 디스할정도로 앞, 뒤 꽉 막힌게 유의태라는 캐릭터. 결국 심의와 출세 중 출세를 택한 도지는 의절이라는 패륜을 저지르고 떠나버린다. 하지만 드라마판에선 유의태도 제 자식보다 남의 자식을 더 아끼는 아버지의 참담한 심정을 이해할 그릇이 못 된다며 탄식한다.[95] 유의태의 아들이란 이유로 유도지를 경계하던 양예수도 그의 자질이 평범함을 알고 금방 신경을 꺼 버린다.[96] 실력은 있지만 병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부족하다 하여 유의태와 김민세에게 타박을 들은 적이 있다.[249] 이 말을 듣고도 내의원 취재에 응시하였다가 구침지희를 기억하는 감독관들의 농간으로 낙방하였다. 그 충격으로 의서까지 태우려고 하던 것을 말았고, 한 달 가까이 병사에 나가지 않았다. 두번째 취재로 내의원에 입격하였을 때도 유도지는 말을 타며 풍물 소리와 함께 약방으로 들어오는 데 반해, 허준은 일서와 양태가 보기에 지난번처럼 낙방한 것 같이 보일 정도로 수수하게 들어왔다. 이 시점에서 허준은 고생하는 가족들 때문에 성인철의 추천서를 받거나 부산포와 함께 사기를 치던 때와 달리 심의로 각성하여, 넉넉하지는 않아도 형편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97] 어머니에게 부탁하여 구침지희를 기억하는 의관들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고, 산음보다 한양이 가까운 단양에서 공부를 하다가 갔다. 내의원 의관 중에 귀한 의서를 필사하여 비싸게 파는 이들이 있어 그들에게 책을 사서 공부하였는데, 그 책에 욕심을 낸 한 의원이 몰래 보려다가 들켜서 달아나다 마침 돌쇠를 도우러 나와 있던 허준이 방해하여 잡히기도 하였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아버지를 살펴달라며 주막의 의원들을 찾아온 부부다. 도지는 처방만 일러주고 날이 밝으면 약방에 가라고 말했고, 정상구와 우공보는 돌쇠를 도운 의원이 허준임을 알고는 그를 따라갔다가, 소문을 듣고 온 병자들이 모이자 얼마간 남아서 함께 병자들을 보았다. 이들은 제때 들어갔지만 낙방하였다.[98] 도지가 입격한 내의원 취재는 2차 시험 합격자 방이 붙은 시점에서 신미년(1571년) 3월 3일(음력 기준)이다. 2차 시험 1등은 유도지와 구지홍, 2등은 정인필과 이창호, 3등은 서경철, 4등은 양신홍과 남상효.[99] 허준이 선조를 돌보던 중, 시침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왜적에게 다쳐(신성군이 죽자 쇠약해진 선조를 살피기 위하여 허준이 의주로 가야 했는데, 성이 포위되어 소수 인원만 데리고 밤에 몰래 나가야 했다. 이 때 총에 맞아 조금 다쳤다) 시침을 할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대리 시침자로 유도지를 지목한다. 이후 유도지가 대리 시침으로 선조를 살리자, 선조가 죄를 사한다. 이후 유도지는 허준 앞에서 사죄하고 그간의 불편한 관계를 청산한다. 1999년작과 구암 모두 공통점이 있다면 비가 내리던 때라는 것이고 차이가 있다면 용서를 구하기 위해 무릎을 꿇으려던 유도지를 허준이 막는 1999년작과는 달리 구암에서는 유도지가 먼저 무릎을 꿇고 허준이 그의 앞에 같이 무릎을 꿇고 지난 날을 청산하는 장면으로 나온다.[100] 십수 년 전 허준이 유도지의 어머니 오씨의 병을 치료해준 적이 있다. 그때의 빚을 이제야 갚게 된 것.[101] 유의태의 능력도 크게 안믿고 구침지희 일화에 대해서 허세 정도로 폄하하며, 유의태가 없으면 가장으로 행세하려 들다가 낙방한 후 구침지희 일화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 뒤에는 자기가 실력이 없어서 떨어진게 구침지희 때문일 것이라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등 찌질하게 군다.[102] 병사 주변에서 장쇠, 꺽쇠, 영달 등은 수준이 안맞아서 친구로 지내긴 그렇고 부산포와는 나이 차이에도 형제처럼 지내긴 했으나 부산포가 유의태 욕을 하고 쫓겨나면서 충격을 받았으며, 임오근은 아예 유도지를 경쟁자로 여기고 사사건건 유도지와 충돌하는 지경이 되어 데면데면한 사이였다.[103] 유도지는 유의태가 지금의 실력을 갖춘게 유씨 집안에 전해지는 비방이 한몫을 했다고 보았다. 문제는 유의태 조부나 선친을 봐도 비방이라고 내려올게 없었고 유의태의 실력은 모두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으로 비방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유의태 입장에서는 비방은 자신의 머리속에 든 지식이니 머리를 떼어가라고 한 것이다. 이걸 보고 오씨가 네 아버지는 미친 사람이라고 옆에서 울부짖는다.[104] 이때 허준을 만나 것조차 곧 자신이 양예수에게 숙청당할 것 같으니 뇌물이나 써보자고 찾아온 것인데 오히려 허준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악연이라고 칭하는 도지의 말에 허탈해하며 유의태가 가여워서 유도지를 외면한채 눈시울을 붉힌다.[105] 부친(권혁수 영감, 이대로가 연기)이 역관 출신이다. 역관은 잡과라 중인으로 분류되지만 고위 관료면 위세로는 웬만한 양반 이상이다. 이 연줄 덕분에 탕약방으로 좌천된 유도지는 마침 대신 배치된 궁의가 상급자에게 불손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알고는 장인에게 부탁하여 내의원 부제조에게 청탁을 넣게 할 수 있었다.[106] 유도지가 사신단을 따라 가면서 그 충격으로 몸져 눕자 급한 대로 며느리가 허준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허준을 보자마자 화를 내면서 진료를 거부하였다. 다희에게 욕설을 하고 주먹질에 머리를 잡아 끄는 등 모질게 굴어 분노한 허준이 스승님께 죄를 짓더라도(스승의 기일이라 술을 올리러 갔다가 부인이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을 보았고, 자신에게도 달려들었다. 정작 도지의 집에서는 도지가 별견 의관으로 간 일로 뒤숭숭해서 기일인지도 잊고 있었다) 진료하지 않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할 정도였다가 다희가 허준을 설득하자 허준도 스승님의 아내라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고 진료를 위해 홍춘(양반집 혼수품을 검수하고 돌아가는 길에 생각 나서 도지의 집에 들른 예진이 허준의 사정을 알고 제안하였다)까지 데려오면서 오씨에게 간청한다. 그래도 허준의 아내인 다희가 자신이 좋아하는 굴죽까지 끓여다주자 잠시 망설이다가 그 죽을 먹고는 고맙다는 말까지 한다.[107] 허준이 간단한 환자 몇명을 봐주고 얻은 약간의 보수를 보고 눈이 뒤집혀져서 다 내놓으라고 발을 굴러대고 허준이 파문된 후에는 성대감이 허준에게 하사한 물건들을 자기 집에서 배운 것으로 얻은 거니 자기거라는 논리로 다 털어간다.[108] 허준은 병자들에게 돈은 일절받지 않았기에 허준에게 있던 거라고는 첫 환자인 액기증에 걸린 처녀를 치료하기 위해 쓴 닭값만 받은 것과, 병자 중에 어부인 노인이 갖다준 물고기 몇마리와 강아지 정도가 전부였는데 허준이 그걸 이야기하자 거짓말하지 말라며 돈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등 악다구니를 쓰고 유도지가 듣고보니 대단한 병자도 아니니 신경쓸 것 없다고 가만 있자 넌 왜 또 가만있냐고 아들에게까지 성화를 부리다가 유의태에게 소란 피울 것 없다고 혼이 나고 나가버린다.[109] 그러니까 유의태는 유도지가 갔으면 성대감 부인을 고치지 못했다고 여긴 것이다.[110] 산음에 사는 환자 가족들이 떠나는 오씨를 보고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갔지만 산음을 벗어나기 전에는 가마문도 안 열었다고.[111] 대장금 민상궁, 이산 김상궁, 동이 봉상궁등에 출연한 상궁 전담배우. 이쪽도 이병훈 사단과 관계가 깊다.[112] 드라마에서는 침모로 유의태의 부인 오씨가 유의태에게 시집올때 친정에서부터 데리고 왔다.[113] 이숙씨가 56년생으로 1999년 방영당시 43세, 김소이씨가 빠른 71년생이니 당시 기준으로 42세로 나이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114] SBS공채 9기 탤런트[115] 이때 임오근과 홍춘이 주워 입양한 아기에게도 양태는 우리 아기 먹을 젖도 없다며 거절하는데 기꺼이 젖을 물려 주는 착한 성품을 보인다.[A] 원작에서는 안광익도 유의태의 절친으로 유의태, 김민세, 안광익 3인방이 어울리지만 드라마판에선 면식이 없고 김민세의 소개로 알게된다.[117] 아마도 명종의 아들인 순회세자일 확률이 높다. 김민세와 안광익이 내의원에서 종사하던 것이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으로부터 10여 년 전 일인데, 1999년판 기준 1회가 선조 1년(1568년)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순회세자가 4년 전에 세상을 떠났음을 고려하면 작중에서 직접 언급하지 않는 시간(안광익이 남긴 의서로 공부하면서 몇 년이 지나가는 묘사가 있다)을 포함해야 과거 이야기와 맞는다.[118] 이 나병환자 일가족이 사는 움막에 상화의 비단신이 있었고, 나병환자들이 어린 아이의 간을 먹는다는 소문을 떠올린 김민세는 이들에게 아들이 어딨냐고 추궁하지만 이들은 대답하지 않고 눈물만을 훌리며 부둥켜 안는다. 아들이 이들에 의해 살해당했고 먹혔음을 직감한 김민세는 그만 이성을 잃고 농가에 있던 갈퀴를 집어들어 이들을 살해한다. 원작에서는 확실하게 이들이 상화를 죽이고 잡아먹은 것으로 나와있었고 1999년 버전에서도 그렇다는 암시를 하고 있으나 구암 허준에서는 한센병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친아들 상화는 익사했고 이들을 죽인 것은 오해로 인한 비극이었다는 것으로 바뀌었다.[119] 상화가 입었던 옷을 이 소년이 입고 있었다. 자신은 아버지가 잡아온 인육을 먹기를 거부하고 가물치를 잡아 병을 고치려 한다고 김민세에게 울면서 해명한다. 상화의 옷은 아버지가 입으라고 던져준 것이었다고. 이 길상이라는 소년이 과연 상화를 먹는데 동참했는지에 대해선 원작이나 드라마에서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120] 안광익의 여동생. 1999년 버전에서는 이름이 여옥으로 나온다. 원작에서는 안광익의 아내인 궁녀 정씨의 언니로 나온다.[121] 원작에선 정신을 잃고 자기 집에 있는 우물에 몸을 던져 죽는다.[122] 양예수가 그따위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 좀 죽인 죄는 자신이 책임지고 벗겨주겠다고 간곡히 말리지만 전혀 듣지 않는다. 양예수도 김민세가 유의태의 친우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인연을 끊는다. 실제로도 조선의 법 체계상 아무리 중인출신의 잡과 출신이라 하더라도 엄연히 나라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의 아들을 납치해 잡아먹고, 그로인해 분노한 관리가 문둥병자들을 몰살한건 정당방위를 넘어서 당하관인 양예수까지 갈 필요도 없이 그 지역의 현령이 바로 수습할수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당시 문둥이라 비하하며, 마을에만 내려와도 장정들이 달려들어 때려죽이던 이미지를 생각하면, 안광익은 무죄를 넘어 자연재해 수준의 참척을 겪은 비운의 관리로 남았을 것이다.[123] 작중에서는 안점산이라고 나온다. 현재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 있는 마안산의 옛 이름. 소설에서는 산음에서 함양까지 30리, 다시 함양에서 북쪽으로 30리를 간다고 나오며, 실제 거리도 그 정도 된다.[124] 드라마에서는 삼적사가 우리가 흔히 보는 번듯한 산사가 아니라 산골 조그만 마을처럼 나온다. 절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나환자촌. 산을 다니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것으로 보아 일반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꽁꽁 숨겨 지은 것 같다. 하긴 나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당대의 정서상 그냥 둘 리가 없다. 1999년판 방영 당시에도 삼적사 이야기가 나오는 19화(현재의 상화가 삼적의 양자가 된 이야기, 상화가 수연을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가 봉변을 당하는 전개가 나온다)에서는 예고 직전에 한센병에 대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자막(아무것도 없이 검은 바탕에 흰 글씨만 떠 있어 섬뜩할 수 있다)을 띄우기도 하였다. 허준이 삼적사를 찾을 때 습격하거나 유의태의 아들이라는 유도지가 와도 그다지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 것을 보아, 병 때문에 서럽게 살아 온 사람들이라 외부인에게 적대적인 사람이 많은 것 같다.[125] 처방을 찾긴 한 모양인데 대부분 독초와 독약이 주재료라 복용할 경우 환자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복수심을 불태우던 양아들 상화가 수연과 가출했다가 고을 사람들에게 봉변당하고 돌아오자 그 날 밤에 스스로 약을 시험해 보았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가 겨우 살아났다.[126]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곳이라 자진한 뒤의 부패를 늦출 수 있어서 택한 것 같다.[127] 원작에선 8의론은 유의태가 가르침을 준다.[A] [129] 따로 언급은 없지만, 드라마에서는 하급 의관인데도 유복하게 사는 것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유의로 보인다. 김민세도 동일.[130] 차마 사람을 해부해보진 못하고, 산짐승 위주로 연구한다.[131] 김민세가 유의태에게 안광익에 대해 알려주었는데 내의원에서 짤린 이유가 참 어마무시하다. 부술에 심취한 나머지 의금부 관리와 내통하여 대역죄인의 몸을 해부해 보려다가 들켜 죽을 뻔했다고. 그나마 양예수가 구명하여 목숨은 건졌으나 내의원에서 쫓겨났다. 의금부라면 양반들만 다루는 사법기관인데 아무리 대역죄인이지만 그래도 양반의 시체를 해부하려다 걸렸으니 안 죽고 살아난 게 용할 정도. 이후 허준도 안광익을 만난 뒤 본격적인 독학을 시작하면서 의술에 미쳐 막 장례를 마친 무덤을 파려다가 들켜서 무산된 적이 있다.[132] 산에서 무슨 기공을 연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의서인 동의보감을 보면 알겠지만 조선 시대 한의학은 도가적 요소인 '도인술'도 중요한 요소로 다루고 있다. 퇴계 이황의 <활인심방>이 대표적인 예. 상화와 수연을 한양에 데리고 온 뒤 얼마간 한양에 체류하였는데, 한양에서도 백성들과 기공을 연마하다 신고가 접수되어 정작이 와서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133] 1999년작 허준에는 옥에 티가 있는데, 김민세와 안광익의 과거 회상 장면에서는 김응택과 송학규가 먼저 입격한 상사로 나온다. 추가로 캐스팅하는 수고를 덜려고 별 생각 없이 배우를 돌려 쓴 것일 수도 있다. 물론 2013년작에서도 같은 역할을 맡는 배우를 투입한다.[134] 김민세의 부탁으로 상화와 수연을 내의원에 들여보내 허준의 제자로 삼아주려고 상경하여 혜민서를 찾았는데, 혜민서 서리와 실랑이를 하다가 김응택과 송학규를 알아보고 출세했다며 내의원에는 인재가 그리도 없냐는 식으로 실컷 놀려댔다. 뒤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이명원과 장학도, 김만경은 깨알 같은 개그 코드. 1999년 판에서는 실제로 안광익 역의 한인수가 김응탁과 송학규 역할의 박광남 문회원보다 어린나이었다.[135] 1999년 드라마에서는 김민세가 먼저 제안한 것으로 각색되었다.[136] 정씨가 안광익에게 왕자의 치료를 맡긴 이유는 정씨의 부모님이 안광익의 치료를 받아 씻은듯이 나은 적이 있기 때문.[137] 삼적대사[138] 드라마판에선 허준이 밀수업자로 일하던 시절 부하의 이름으로도 등장한다.[139] 유의태가 젊었을 때부터 이미 어의였다. 어의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어의는 드라마에서처럼 임금이 승하하였다고 해서 무조건 잘리는 직종이 아니다. 어의는 단 1명에만 임명되는 자리가 아니다. 애초에 이 드라마에서도 허준과 양예수가 함께 왕실을 보필하였다. 다만 이른 나이에 어의가 되어서 그렇지 연배 자체는 유의태보다 많이 윗줄은 아니다.[140] 원작에서도 양예수가 명종의 대왕대비가 승하했을때 어의였다고 나오는데, 당시 수의와 다른 어의들이 주장한 것과 다른 탕약을 주장해서 대왕대비가 승하했을 때도 살아남았다고 나온다.[141] 양예수가 후계자로 점지해 둔 사람은 김민세였는데, 이는 김민세의 의술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그의 주특기가 탕약약제를 주로 다루는 탕제라서 침술의 권위자인 자신의 위치를 직접적으로 위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밀어주던 김민세가 유의태의 친구가 되었다는 풍문에 김민세마저 증오하게 된다고 나온다.[142] 양예수라는 캐릭터는 원작 동의보감이나 드라마 허준에서도 보이는 모습은 중세 조선시대의 의원이 아니라 대학병원의 원로 학장 같은 모습을 풍긴다. 철저하게 윗선에 신임을 받으면서 자신의 눈에 들어온 인물은 무능과 유능을 따지지 않고 중용하며, 거대한 파벌을 만들어 철저하게 영역을 지키는 이미지다. 이런 이미지는 훗날 MBC의 또다른 의학 드라마인 하얀거탑우용길교수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진다.[143] 사실 이런 모습이 오히려 실제 역사와 가까울지도 모른다. 실제로 허준과 양예수는 동의보감 편찬작업을 함께 했다고 전해지며, 허준에게 실질적으로 의술을 전수해준 인물도 양예수일 거라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애초에 유의태가 실존인물이 아니며 그와 관련된 악연 자체가 창작된 것에 불과하니, 대인재나 뭘 논할 것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양예수는 기록 자체가 많지 않아 실록 내용대로 명종 때부터 임금을 진료하던 의관이란 점이나 다른 사료에 약간 언급이 있을 뿐 그와 관련된 것은 대부분 창작이다. 의술을 전수해줬다는 추측도 양예수가 훨씬 선배 의관이란 점, 문신인 유희춘은 허준의 후원자였는데 양예수 역시 유희춘을 매월 진료했다는 기록 등을 두고 주장하는 것인데 둘 사의 각별한 관계가 있었다고 볼만한 근거는 없다. 설령 유희춘을 통해 둘이 만났다고 해도 당시 허준은 이미 의원으로 활약 중이었고, 양예수에게 뭔가를 배웠다는 기록은 당연히 없다.(애초에 유희춘의 책 미암일기에 둘의 관계에 대한 서술은 없다) 허준이 양예수가 스승이었다고 언급한 적도 없고, 실질적으로 그냥 같이 일한 선배 어의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144] 1999년 판에서는 양예수는 현실적인 어려움(선조를 호송할 수 없고 피난 중 무거운 의서를 지고 가는 부담 등)에 입각해 원만한 반대를 하고 허준에게 억하심정이 있는 유도지와 김응택이 대신 하도록 바뀌었다. 난리통이라 거리낄 것 없다 이건지 윗 직급인 허준에게 “그렇게 의서가 소중하면 영감이 직접 지고 가시오” 하고 막 나가는 김응택이 압권. 훗날 의서를 짊어진 허준 일행이 가까스로 선조의 피난소에 합류하자, 양예수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네. 수백리 길을 지고 걸으면서까지 의서를 지키고자 한 자네의 고집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걸세” 라는 표현으로 허준의 노고를 간접적으로 위로하는 한편 그에 대한 선조의 인식이 좋지 않음을 알려주었다.[145] 실제로 사흘 만에 나을 수 있었는데 병자가 허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서 하루 연장된 것. 정작도 의원의 소양이 뛰어나면 불가능은 아님을 인정하였다.[146] 드라마에서는 유도지가 이렇게 한 것을 양예수가 오히려 흡족해하며 넘어갔는데 성인철과 정작이 허준이 정리한 병부일지를 보면서 양예수와 유도지가 쌍으로 털린다.[147] 한의사인 이상곤 박사의 경우, 허준의 처방이나 의학적 기초를 들어 허준을 수암 박지화의 제자일 것으로 추정했는데, 바로 그 박지화의 또 다른 제자가 정작이다. 유승진의 웹툰 <포천>에서는 이 설을 받아들였는지 상원 지진 에피소드에서 정작의 언급을 통해 박지화의 문하 - 직접적으로 허준이 박지화를 일컬어 '스승님'이라고 하는 언급은 없어서 단순히 장면상으로 볼 때에는 박지화의 지휘를 받아 상원 지진 피해자를 진료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해당 에피소드가 대개 각지의 도사들과 그 제자들이 상원의 지진 피해를 돕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볼 때 허준 또한 정작과 함께 박지화의 문하로 등장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 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148] 이는 정작의 신분이 양반이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유의 출신 의관은 문과에 급제하였다면 의관이라도 당상관이 될 수 있다. 황해도 역병이 수습된 뒤 파견된 의관들의 품계가 하나씩 오를 때 양예수도 가의대부가 될 기회가 있었지만, 의관으로서 동반(문관)의 반열에 설 수 없다며 사간원에서 반대하여 무산되었다.[149] 양예수를 받들어 차대의 어의를 꿈꾸던 김응택은 허준, 정작, 이명원, 이공기 네 명을 가리켜 네 반골이라고 부르며 증오한다.[150] 다만, 후반부에는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에 속하는 바람에 중립을 지키는 허준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151] 1999년도판 드라마 허준에서는 김응택으로 나온다.[152] 실존인물 김응택은 1596년(선조 29) 동궁인 광해군의 병을 고친 공로로 내의(內醫)로서는 특별히 동반직(東班職)에 올라 면천되는데, 어의가 아닌 이가 동반직으로 양반의 신분이 되는 것은 특별한 배려인 것이다. 세자 광해군의 병을 고쳤기 때문인지 다른 양반들의 견제없이 수월히 올랐고 같은 해 어명으로《동의보감(東醫寶鑑)》의 편찬에 참여하였을 정도로 실력과 인망이 있었다. 여기에는 김응탁 이외에 허준(許浚)·정작(鄭碏)·양예수(楊禮壽)·이명원(李命源)·정예남(鄭禮男) 등이 동참하였으나,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병사하고, 훗날 허준이 완성하게 된다.[153] 이후 유도지가 2번째로 과거시험을 쳤을 때 양예수는 이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했다. 다만 양예수가 유의태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임을 김응택은 알아 보았고, 허준이 혜민서에 배치될 때에도 유도지와 허준은 그릇이 다르다고 평하였다.[154] 가장 높은 예조참판에게 나름 신경쓴다고 허준을 보냈는데, 허준은 가서 참판의 진료를 해보고 큰 이상이 없어서 진료만 하고 가지고 갔던 보약도 그냥 들고 와버렸다.[155] 도제조로 부임한 성인철이 혜민서 불시검문을 왔을 때에도 앉아서 졸고 있었다. 게다가 성인철이 '병자들의 수에 비해 의관이 부족한 것 같은데, 자네들(김응택, 송학규)은 뭐하는 거냐!'고 윽박지르자, 잡무가 많다는 핑계를 대지만, 성인철에게 '잡무나 보려고 판관의 녹을 먹느냐!'라며 호되고 꾸짖었고, 할 말이 없는 둘은 그대로 탈탈 털린다.[156] 양예수한테 그런 사실을 자신에게 먼저 보고를 했어야지 일을 얼마나 크게 만든 건줄 아냐며 갈굼을 먹는다. 배천수는 허준 입장에선 대립구도이지만, 악역은 아니고 원리원칙을 지키려 한 인물이자 김만경의 친구이기 때문에 주인공 허준을 고변하는 어그로를 주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연출한 듯.[157] 사실 내치지 못하는 더 큰 이유는 그의 신분이 양반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양반 신분인 정작도 직급은 판관이지만, 어의 양예수도 면천을 받아 양반이기는 하지만 정작은 출신부터 양반이라서 예우해준다.[158] 사실 진짜로 허준을 그렇게 본 게 아니라 10년을 넘게 내의원 생활을 하면서 본 의관들 대부분이 어의를 목표로 출세길에 오르려고만 하는 모습을 보며 느낀 회의감에서 한 말에 가깝다.[159] 즉 허준이 어의가 되기 전까지는 계속 말을 놨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허준은 종9품 참봉, 김만경은 종8품 봉사였는데, 구안와사 이벤트 이후 허준이 직장으로 바로 승진했을 때도, 이후 종6품 주부, 종4품 첨정에 이를때까지는 계속 말을 놓았다가 정3품 당상관에 임명되고, 어의가 되고서야 완전히 존대를 한다. 허준이 '계속 말 놔도 된다.'고 했지만, 김만경도 '소인도 낯짝이 있지 이제는 말 못 놓겠다.'고 하는 개그 신도 있다.[160] 이는 허준이 어의가 되면서 당상관이 되어 양반으로 신분이 승격되었기 때문이다. 허준은 그간 직급이 높아도 중인이라, 양반인 김만경이 말을 놓을 명분이 있었으나, 허준이 양반이 되면서 그럴 명분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지만 어의가 된 허준에게 반말을 하는 것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허준이 어의가 된 뒤 반말을 한 것은 몽진이 결정되자 의서를 지고 가자는 제안을 처음에는 거절하였을 때 나온다.[161] 이 때 모습이 참으로 패기가 넘치는데, 중간에 끼어들어 '네놈은 뭐냐?'며 덤비려는 백성의 멱살을 잡으며, 내 얼굴을 똑똑히 보라며, 몸이 아파서 혜민서를 찾았다면 나를 봤을 거라고 호통을 쳤다. 분노한 군중들이 모두 횃불이랑 몽둥이를 들고 살기등등한 눈으로 노려보는데도 전혀 기가 죽지 않는 맹상훈의 연기가 일품으로 김만경을 알아본 이들이 주춤거리자 이번엔 허준을 가리켜 혜민서에서 저 사람에게 치료안받은 사람 있느냐고 일갈하자 군중들이 허준도 알아보고는 보내준다.[162] 이때 물러난 백성들은 잠시 뒤 백성들이 궁궐과 혜민서에 불을 질렀다는 것을 알리면서 다시 나오고, 이 소식을 들은 허준은 김만경의 도움으로 옷을 갈아입고 혜민서로 간다. 먼저 간 예진과 상화가 의서와 비망록을 최대한 건지려고 하였지만 도중에 예진이 질식하여 당장 챙길 수 있는 것만 들고 불타는 혜민서를 나온다. 그동안 양태와 겸은 관리들이 어가를 따라갔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 떠나고, 가기 전에 다희가 허준이 올 때를 대비하여 저녁상을 차려 둔다.[163] 임진왜란 이후에는 진급도 한 듯 하지만 마지막화까지 한 계단 오른 종7품 직장으로 나온다.(...) 그래도 구암 허준에서는 마지막에 내의정이라 불리는 장면이 나온다. 내의정은 정3품 하 품계로, 정3품 상부터는 어의다.[164] 명나라 사신의 행차길에 파견되는 의관. 수천 리 길을 말 한 필 없이 미투리 세 벌만 지참되고 걸어서 고행해야 하는 강행군이라서 내의원 말단(보통 봉사급에서 한다)들도 발령나면 내의원을 그만 둘 정도로 고행길이다. 사실상 좌천을 의미한다.[165] 도지는 듣고서 끝냈다. 물론 허준이 하옥되자 죄인의 건강을 살피러 왔을 때 나는 다시 시작할 것이라면서 속으로 웃으며 돌아갔다.[166] 동의보감 편찬 때도 중국 의서에 나오는 이야기만 줄줄 읊는다거나, 병부 정리나 궁중엔 희언이 없다 등의 내의원 내 암묵의 룰 설명, 목초액을 보고 의서에 안 나온 건데 저게 치료에 도움이 되냐고 묻는 등.[167] 그리고 황해도 지역에 역병이 창궐했을 때, 파송의원으로 대책회의를 할 때에도 그의 다소 과격함이 있는 의견은 전부 허준에게 반박당한다.[168] 입궐 첫날에 다희가 하혈로 쓰러지는 바람에 지각해서 의생 교육 담당자인 유도지가 그 벌로 10일 연속 당직을 세웠다. 거기에 한 사람의 잘못은 연대책임이라는 이유로 동기들도 하루씩 돌아가면서 허준과 함께 당직을 서기를 명령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명원과 장학도를 제외한 동기들의 원망스런 눈빛은 덤...[169] 1999년판에서 실존인물이자 동의보감 편찬에도 참여한 이공기의 비중이 단역 수준인 것에 대한 질타가 따르자 구암 허준에선 장학도를 집어넣되 이명원이나 허준과는 교분이 없는 동료 의원으로 설정해서 바로 하차시켰으며 장학도가 하차하기 전에 먼저 등장하여 수석에 입격하여 봉사에 제수한 허준을 허준의 동기들이 질투하자 허준의 동기들을 디스하며 허준과 첫 만남을 가진후 친해졌으며 허준과 동기인 이명원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해 세 명이 의기투합하는 장면을 연출한다.[170] 작중에서 노처녀로 일생을 보내, "나야 남정네 하나 못 만나 이곳에 남는거다."라고 하는데, 구판 덕금역의 배우 엄유신은 허준 이전에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용의눈물)의 부인 최씨를 연기했었다. 당시에는 남편의 일을 모르는 무지렁이 가정주부에 남편의 사랑을 못 받는 나이든 마누라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묘한 배우개그...[171] 공빈이 광해군을 낳을 때 난산으로 힘들어 했었지만, 궁의였던 유도지와 어의 양예수도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홍춘이 나서서 단번에 해결했다. 태아가 대변을 보는 희귀한 사태라 홍춘이 아니면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 일에 대하여 유도지가 사례하기로 하였으나, 따로 나오지는 않는다.[172] 남성의 양기가 있어야 낫는 병, 그러니까 상사병이다. 전혀 그럴 거 같지 않은 인물이 그런 병에 걸렸다 하니 의녀들이 단체로 충격받는다. 처음에는 학질인 줄 알았는데, 허준이 나서서 진맥하여 실려병임을 알았다.[173] 더 앞에 임오근이 상사병이 도져 앓아 누웠을 때, 허준이 자신보다 직급과 신분이 낮은 홍춘에게 눈도 못 마주치고 말까지 더듬거리면서 오근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174] 천하의 허준마저 어버버하는 작중 허준의 몇 안되는 개그신인데, 대사가 저기..저....오근이형님과는 오래전부터 알고지낸 사이인데...어...정말 좋으신 분입니다.라고 멋쩍어서 더듬거리는 장면이었다. 혜민서 내에서 존경받는 허준이 저렇게 말하니 홍춘도 정색하며 나리까지 왜 그러시냐면서 얼굴을 붉히고 도망가는게 포인트...[175] 1999년판은 미간에서 왼쪽 눈으로 쏠린 지점에 점이 있고, 2013년판은 입술 오른쪽 아래에 위치.[176] 1999년 허준에도 나왔다. 1999년 허준에서는 과거를 보기위해 채비를 한 허준이 진천 한 주막에서 묵고 있다가 어느 한 사내(박윤배)가 아버지가 위독하니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그 사내의 부인으로 나왔다. 허준이 돈도 안받고 치료한다는 걸 온동네방네 소문내면서 마을사람들이 몰려와 허준이가 한양길을 못가게한 원흉(?)이기도 하다. 물론 이때는 허준에게 밥한끼 먹이려고 하는데 집에 식재료가 없어서 마을들 다니며 하나하나 빌리다보니 자연스럽게 허준에 대해서도 알리게 된 것.[177] 근데 지명된 이 둘은 다시 혜민서로 돌아온다. 채선은 일에 도통 적응을 하지 못하고 사고쳐서 혼나기만 하자 돌아왔는데 채선은 까막눈이어서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으로 이때문에 넌 의녀가 되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세희는 유도지와 스캔들 문제로 궁에서 내쳐질 뻔했으나 양예수가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위해 적당한 선에서 덮으면서 돌아왔다. 대신 양예수가 추천한 소현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178] 공빈이 광해군을 낳을 때 난산으로 고생하는 것을 본 양예수가 홍춘이를 데려오라 했을 때, 절대 안 된다고 막아섰을 정도로 홍춘을 경계하지만 양예수가 홍춘이까지 가기 전에 자네가 해결했어야지라고 해결못할거 같으면 가만히나 있게라고 반박당하자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179] 1999년에 이어 내의녀로 출연. 참고로 해당 배우는 의녀역만 3번째이다.(나머지 한번은 대장금.)[180] 단 1999년 드라마의 김은수와는 달리 구암 허준에 출연한 이승아는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이다.[181] 정확히는 홍춘에게 먹이려고 몰래 불렀다.[182] 예진과 마찬가지로 남자로서 허준을 사랑했다기보단 의원으로서 존경했던 것이지만 허준을 남자로도 의식했다. 극중 허준을 바라보는 소현의 눈빛을 보면 그런 감정을 엿볼 수 있다.[183] 일반 의녀들(내의원 내의녀는 가능)은 의관의 허가 없이 시침을 할 수 없다. 오늘날 간호사의사의 허가없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184] 하지만 애초에 이 일은 혜민서에서 환자는 안 보고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었던 김응택과 송학규의 잘못이 더 크다. 처음부터 저 둘이 원래 일인 환자를 봤으면 일어나도 않았을 일. 당시에 혜민서에 온 양예수는 소현의 침술과 지식을 알고는 기회를 보아 내의원으로 올리자고 말하고, 반발하는 김응택과 송학규에게 너희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서 의녀가 시침까지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일을 하지 않는게 발각되면 내의원에서 나갈 생각이나 하라는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들은 과거 허준이 사가에서 병자를 살핀 것이 적발되어 내의원에서 창덕궁 동인문까지 1000회 왕복하며 어필 현판을 낭독하는 벌을 기어이 채웠을 때에도 병자를 보지 않는 것이 발각되면 문책할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다.[185] 심의 때문에 술에 취한 유도지 옆에서 잠만 잤다고 나오며, 내용상으로는 관계를 가진 것이 맞는다. 작중에서는 '아이들이 보아서는 안 될 일'이라고 나온다.[186] 세희가 자신을 밀어내는 유도지에게 일전의 일로 협박하자, 도지의 사정을 안 정태은(2013년판에서는 허석)이 세희를 협박하지만, 세희가 양예수 앞에서 유도지와 정을 통하였다고 고하였고, 이에 양예수는 사건이 더 커지는 걸 우려하여 유도지는 명나라 사신행차를 수행하는 별견의원으로 좌천시키고, 세희도 혜민서로 내려보낸다. 세희의 자리에는 소현이 들어간다.[187] 구암 허준에선 어의녀로 소현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188] 한보배와 홍춘역의 윤유선은 매직키드 마수리에서 모녀로 나온 적이 있다.[189] 구암 허준에서는 귀여움이 배가가 되었다.[190] 임오근이 처음 나이를 물었을 때 기준으로 18세. 수연이 들어오기 전까지 막내라 이리저리 혼나서 그런지 수연을 이유 없이(굳이 이유를 댈 때는 촌티를 못 벗고 있다며) 갈구기도 하는데 수연이가 자신이 몰래 짝사랑하던 종약서원 상화와 좋아하는 사이인 것을 알고 질투했기 때문이다.[191] 홍춘은 캐릭터상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192] 더욱 안타까운 점은 허준이 역병을 잡은 듯 했으나 다시 번지면서 좌절했을 때 그녀가 쓰러지고, 그녀가 죽은 후에야 메실을 통한 역병을 잡아낸다.[193] 허준이 어필 현판 낭독을 마친 뒤에도 호되게 당했으니 더는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뒤로도 종종 병자들에게 돈을 받고 순번을 바꿔주려고 하였으나, 마침 그때 권유를 받은 사람이 다희라서 실패한다. 허준도 가족이라고 편의를 봐 줄 수는 없다면서 줄을 서게 하고, 미친 거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면서 문으로 돌아간다. 만만한 놈이 아님을 느낀 김 서리는 도약사령이 돈을 줘도 순번을 당기지 않는다.[194] 현재는 농피증이라는 습진성 피부 질환으로 불리는 병으로 현재는 후시딘 같은 연고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증상에 불과하나 조선 시대에는 농가진에 걸리면 온몸에 습진이 번져 죽게 만드는 강한 전염성을 띄는 종기였다.[195] 극중에서는 오가라고만 할 뿐 이름은 안나온다. 아마도 1999년판 담당 배우인 오정석의 성씨를 따왔을 가능성이 높다. 김 서리도 동일.[196] 대개 선조는 이순신이 주인공이거나 임진왜란이 주된 내용일 때에 주로 등장하다보니, 이순신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악역이지만, 허준은 자신과 왕실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인 만큼 미워할 이유가 없고, 허준도 조선 시대 의원 중에서는 최고의 실력자라 할 수 있으며, 그를 절대적으로 신임한 것도 사실이고, 왜란 후에 공신 반열에도 올려주었으며, 그리하여 동의보감의 편찬도 허락했을 것이다. 선조가 조선 왕 중에서는 장수한 편(재위 기간은 어려서 즉위해서 긴 것이지만 나이는 당시 기준으로는 오래 산 편)인데, 이도 허준의 의술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197] 이는 김예직이 허준의 다소 과격한 시술에 반감을 가져 치료를 거부하니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절충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이 말은 공빈이 닷새 안에 허준이 말한대로 하겠다고 하고 한 말로 선조와는 무관하며 그 말을 할때는 선조는 있지도 않았다.[198] 배우 박찬환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저 말을 하는데, 방금 전까지 손모가지 자른다고 협박하던 왕이 일순간에 표정을 바꾸며 말하는 걸 보면 기가 찰 소리였다. 원작 소설에서는 공빈이 한 말이라 공빈이 동생 때문에 자신이 의관에게 심했다며 사과한다.[199] 평양성에서 오는 길에 손에 왜적의 조총을 맞아 시침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옥에 갇혀 있던 유도지가 선조의 시침을 하라 하였는데, 사실 총상은 그리 심하지 않은 수준이었고 허준 자신이 할 수 있었음에도 유도지에게 공을 세워 구명할 기회를 준 것이다.[200] 모후 공빈의 기일임에도 선조가 인빈의 처소를 찾자 급병이 났다는 거짓 전갈을 보내면서까지 허준을 처소로 불러 넋두리를 한다.[201] 비상을 소금과 함께 빗물에 녹인 다음 은근히 달여 희석한 약이다. 비상이 들어간 약인 만큼 증상과 배합에 신경 써야 하는데, 이를 노린 정성필이 배합이 틀리도록 도약사령을 매수하여 예정보다 약을 더 올리게 한다.[202] 은비녀가 검게 물든 것을 보았다. 은은 비소와 결합하면 색이 변하기에, 독살에 쓸 법한 물질을 감지할 수 있다. 사실 비상도 순수 비소만으로는 독이 없고, 산소와 결합하는 과정에서 독이 생긴다. 맛이 없어 속이기 쉽고, 쥐약에 쓰는 것이라 구하기도 쉬워서 비상을 많이 사용하였다.[203] 약사발 집어던지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바둑판을 던져서 허준의 발을 찍어버리기도 했다. 장기판과 양면으로 된 그 바둑판이 아닌, 밥상 대용으로 쓸 수 있는 묵직한 그거... 궁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면서 친구 관원과 바둑을 두기까지 한다. 그 친구도 허준이 자꾸 답답하게 나오니 자기도 한 소리 하기도 했다.[204] 유도지와 양예수는 반위라는 게 알려지면 자신들의 목숨도 위험하게 되어 이를 함구하라며 허준을 말리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유 봉사나 어의 영감이 윗분들을 생각해 얘기를 하지 못했다고 얼버무린다.[205] 무한걸스 1기 멤버인 그 정시아 맞다. 시아버지(백윤식)가 물러나고 며느리가 뒤를 이은 격[206] 정원군(인조의 아버지)도 있으나 드라마에선 미등장.[207] 단순한 열병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알 수 없는 풍토병에 걸린 것이었고, 이에 유도지는 부랴부랴 허준이 짊어지고 왔던 의서와 비망기를 찾아보았지만, 책이란 책은 죄다 평양성에 두고와서 손 쓸 방도가 없었다.[208] 이 궁녀의 배우는 1999년판 기준 이유리(배우)다.[209] 김민세가 길에서 쓰러진 대풍창 병자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그 병자를 살피기로 하였다. 이 때 한 유의태의 대사가 드라마와 원작 모두 동일한데, "믿어 볼 만한 아이외다."[210] 허준의 실력을 못 믿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동안 실력 없고 무책임한 의원들이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면서 호언장담을 해 놓고선 아무것도 호전시키지 못하자 그것이 쌓이고 쌓여 의원에 대한 불신도 어느 정도 있던 상태였다. 게다가 당시 허준은 부인이 허드렛일을 하던 집에서 누명을 쓰고 매를 맞은 일 때문에 약방을 나가려고 하다가 불려가서 이 일을 맡았는데, 자신을 믿고 맡긴 유의태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낫게 하여야 했고, 이 때문에 자신에게 고압적이게 구는 성인철 앞에서도 당당하게 말하여 성질을 건드리고 있었다.[211] 이 추천장 때문에 허준은 유의태의 분노를 사 파문을 당하고 한동안 방황했다. 게다가 선물로 받은 재물은 오씨가 약초꾼들을 보내 몰수하였다. 다시 받으려고 하였지만 사신으로 발탁되어 명으로 간 상태였다.[212] 허준을 만나기 전, 내의원 의관 중에서 유도지를 알아보고는 약방 문하생 중에 자신이 추천장을 써준 인물이 있는데 혹시...까지 나온 걸로 보아, 허준을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일로 허준이 파문되었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겠지만... 이후 혜민서에서 구안와사 환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혜민서 의관을 보고 한눈에 그가 허준임을 알아본다.[213] 허준과 재회하면서 그대가 내의원에 있지않아 내가 써준 추천장을 안썼냐면서 들어보나 내의원 역사에 길이남을 성적으로 입격했다고 들었다면서 역시 허의원이라며 자신이 써준 추천장을 쓰지않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입격한 것에 매우 흐뭇해한다. 이는 이후 양예수의 구안와사 관련 발언을 보고 허준에게 기회를 주는 것으로 연결된다.[214] 1999년판 성인철역의 변희봉의 본명이 변인철이다. 당시 배역을 밭은 배우의 본명으로 설정한 것으로 추정된다.[215] 허준이 이 말을 하자 주변의 선비와 종들이 모두 경악하고 허준 역시 천민[250]인 자신 주제에 감히 대감에게 대든 것에 내가 미쳤나?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216] 1999년작 허준에서 부산포 역할로 출연했다.[217] 자신의 세를 늘리기 위해 영향력 있는 직위(포도청 종사관에 홍문관 교리. 아주 높은 관직은 아니지만 지위에 비해 권한이 강하다)에 있던 젊은 신료들인 이정명, 구태훈을 영입하려 했으나 도리어 거부당하고 오히려 자신이 위기에 몰리자 구태훈은 독살로, 이정명에겐 역모 혐의를 뒤집어 씌워 제거한다.[218] 허준이 반상의 법도를 어기고 다희와 혼인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문제가 됐을 때 정성필이 다희를 심문하는데, 이 때 정성필은 네 아버지와 자신이 친분이 있었다며, 나를 알아보겠냐며 물으나 기억에 없다는 대답을 듣는다. 허준과 결혼하게 된 것은 그의 강압에 의한 것이 맞지 않냐고 했다가 자신과 남편은 서로 연모해서 맺어진 것으로 우리를 모독하지 말라는 말만 듣는다.[219] 이 과정에서 김공량이 허준이 예진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고, 이후 허준이 보국숭록대부로 초자될 때 이를 이유로 반대하였다.[220] 야인시대에서 유지광역을 맡은 그 배우. 동시대를 다룬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이영남 역을 맡았다.[221] 최명궐의 발언에 성인철이 뜬금없다는 듯이 반응하는 것은 오류가 아니다.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역사를 조사할 수 없는 전근대 문명에서 역사서란 접근하기 어려운 물건이었고(특히 조선왕조실록은 왕도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것에 해박한 사람도 적었다. 공부한 적이 있다고 바로 떠올리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의례에 해박한 사람이 사대부들 사이에서 높은 대우를 받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222] 1999년 허준에서도 두번 등장한다 한번은 허준이 과거장에 늦게 왔을때 그를 내쫓던 포졸로, 두 번째는 유도지의 동기 의관으로 등장. 후에 KBS 사극 정도전에서는 권근, 징비록에서는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연기한 배우이다.[223] 내의원은 왕실 종친부 전용이라 생각해 혜민서에서 약을 날라온다.[224] 이름은 만춘. 구태훈 사망 전, 정성필 일파에서 증거를 없애려고 목을 매어 자살한 것으로 위장해 살해한다. 허준은 이것을 눈치챘지만 증거가 없어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김만경에게만 말했다.[225] 1999년작에서는 이태성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임산부에 궁합이 맞지않고 독이되는 천문동과 잉어를 함께 올리려 한 일로 양예수의 노여움을 사서 탕약방으로 좌천된 도지가 장인의 도움으로 궁의로 복귀할 때 확인할 수 있다.[226] 1999년작에서는 문승훈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227] 이은성 소설에서는 만석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바탕으로한 허준 드라마에서 1975년, 1999년, 2013년까지 3번이나 돌쇠역으로 출연했다. 1975년 드라마에는 원작처럼 만석으로 등장[228] 원작 소설에서 자신의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허준을 자신의 집에 유인했을 때 허준이 떠나려고 하자 식칼로 허준을 위협하며 결국 떠나는 허준의 가슴팍에 칼을 찌른다. 허준이 택견의 고수가 아니었다면 돌쇠에 의해 살해당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식칼을 빼드는건 심의에 걸렸는지 낫으로 순화되었다.[229] 여담으로, 원작에서는 다희와 정혼했던 남자인 김상기가 바로 이 진천 군수이다. 1999년 드라마에서는 다희의 정혼자가 따로 등장하지 않아서 해당 배역은 노년의 현감으로 바뀐다.[230] 이는 허준이 준 처방전에 독성이 강한 부자가 들어있어서 이를 중화시켜주는 꿀을 반드시 같이 써야 부작용이 없는데, 허준의 처방으로 효험을 보자, 돌쇠는 꿀이 제철도 아닌데다 비싸다는 이유로 꿀을 뺀 부자탕을 계속 먹인 탓이다. 게다가 진천 군수가 돌쇠의 효심이 지극한 것을 칭찬하면서 약값으로 쓰라고 돈을 내려주는 변수가 발생하는데 허준은 가난한 돌쇠가 부자를 계속 사 먹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난데없는 목돈이 들어온 돌쇠는 독한 부자탕을 꿀을 뺀채로 생각없이 마구 사서 먹인 것이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꿀을 사서 썼으면 균형이 맞았을 것이다. 게다가 돌쇠가 난리를 피우는 것을 들은 병자 하나가 허준이 병을 빨리 낫게 하려고 독한 약을 무리해서 사용한다며 환자들을 선동하여 단체로 약을 거부하기까지 하였다가 예진이 약을 받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내보내라고 말하자 선동하던 환자도 약을 먹었다. 이후 허준이 돌쇠 엄마를 낫게하자 선동하던 환자들도 허준을 찬양하며 약을 먹는다.[231] 약방 입구에서 낫을 휘두르며 허준이 자기 어머니 고치기 전까진 아무도 들일 수 없다며, 찾아온 병자들을 모두 쫒아낸다. 오근까지 기세에 눌리는 것을 보다 못한 양태와 일서가 술상을 차려 잡아두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원작에서는 낫이 아니라 식칼을 휘두르는데다 허준의 집에 들이닥쳐 아들과 남편을 용서해달라고 비는 허준의 노모 손씨와 아내 다희를 자신의 종처럼 부리며 밥이나 술을 달라고 욕을 하면서 주먹을 휘둘러 허준의 노모 손씨와 허준의 아내 다희를 때렸다고까지 나온다. 심지어 원작에서는 자기 어머니가 눈을 뜬 그때도 술이 떡이 되는데도 해장한다고 해장술까지 마셔서 정신도 제대로 못 차렸었다.[232] 의원이 아닌데 의원 행세를 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살던 진천에서 거머리로 종기를 치료하는 민간요법이 있었는데 그걸로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구암 허준에서는 재등장시 수하까지 거느리고 의원님으로 불려서 허준이 분노했는데 요행히 돌쇠의 경우 사망자 등이 없어 처벌이 약했지만 잘못했으면 거머리로 치료하다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어서 중대한 문제였다.[233] 1999년판에서는 돌쇠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촌민이 자기네 마을에서 매실즙 먹고 비슷한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알려준다.[234]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강유미(박민영)의 아버지로 나왔다.[235] 1999년판에선 윤여정 배우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대사가 거의 없다는 것이 특이하지만, 대신 중풍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완치되는 환자 연기를 혼신의 힘을 다해 소화한 것으로 유명하다.[236] 묏대추의 씨로 만든 약. 신경을 안정시켜 숙면을 취하게 한다.[237] 개명전 홍성선, 1999년작 이명원 역[238] 중요한 것은 이 때의 허준은 사직했지만 '대감' 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며, 은퇴했으나 현직 품계는 종 1품이고 심지어 정 1품 품계를 수여받았으나, 대간들의 건의로 잠시 보류된 상태여으며 허준이 낸 사직서도 광해군이 처리하지 않고 다시 불러올 생각이였다는 것. 정 1품 품계는 비변사의 수장들인 현직이나 은퇴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급 인물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고, 6조의 판서들과 성균관 대제학, 그리고 지방관의 끝판왕인 관찰사와 한성판윤은 각각 종 2품, 정 2품이다. 참고로 현감은 종 6품. 즉, 허준은 현감 따위가 감히 쳐다도 못 볼 인물이다.[239]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자신을 크게 존경하는 대통령이 만류하는 데도 나이를 이유로 은퇴한, 위인전에 실리는 것은 물론이고 의료분야에서는 세계유산급의 저작까지 남긴 전국적으로 존경받는 전직 국무총리가 고향땅 면사무소에다가 민원을 넣었더니 면장이 대놓고 욕하며 쫓아낸 것이다.[240]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저런 상황은 허준의 언더독격인 상황을 부각시켜서 좀 더 극적으로 만들려는 장치일 뿐, 실제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또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그 동네 양반들 모임인 유향소 관리이기도 한데다, 1품 품계까지 받은 전직 당상관이라면 그 고을 사또가 부임하면 먼저 찾아가서 인사드려야 될 정도의 상대이기도 하니 그냥 어지간히 일 못하고 탐욕스러운 탐관오리라고 해도 허준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241] 예를 들어 구암 허준에서 허준의 아버지 허륜 역을 맡은 최상훈은 1999년작 허준에서 악역 김공량 역을 맡았고, 김서리 역을 맡은 김영선은 초반에 다희의 아버지의 병세를 살피는 의원으로 출연했다. 이계인의 경우, 그 때와 똑같은 돌쇠역으로 열연. 이승아는 1999년과 13년 버전 모두 내의녀로 출연했다. 나성균와 신국은 1999년엔 약초꾼이었다가 13년에 조정신료로 나란히 엄청난 신분상승을 했지만, 둘 다 허준과 대립하는 악역.[242] '허준' '야인시대' '주몽'이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후보에 오른 해(허준-13회 야인시대-16회 주몽-19회)에는 "한번 드라마 작가상을 받은 사람은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걸려 아쉽게 탈락한 작품들도 있었는데 이들 중 16회와 19회는 9~10,15회에 이어 5번째로 드라마 부문에서 수상작을 내지 못했으며 <태조 왕건>은 역대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 중 유일한 정통 사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