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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15:54:29

대구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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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그들이 남긴 전적
2.1. 해태 버스 방화 사건2.2.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2.3. 쓰레기 투척 사건2.4. 삼리건 난입 사건2.5. 나지완 홈런 응원 사건2.6. 이천웅 욕설 퇴장 사건
3. 아재들의 변명4. 세월이 지나고 슬슬 부활의 기지개를 켜다5. 나무위키 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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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성 라이온즈의 강성 팬덤을 이르는 말이다.

삼성은 대체로 왕조 시절 이전부터 야구를 봐왔던 중장년 남성층[1] 팬덤이 많은 편으로, 그 성향도 매우 강성이며 성적을 매우 중시하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대충 LG 트윈스와 팬층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암흑기 이후로는 홍준학 단장의 팬덤 유치로 인하여 젊은 라이트 팬덤[2]층이 많이 들어와 현재는 대구아재가 팬덤의 주류가 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대구아재의 세력은 상당히 강하며, 팀이 부진했던 2022년과 같은 시즌에는 다시 존재감을 내비치기도 하였다.

KBO 리그의 모든 구단 팬 중 세 번째로 강성 팬덤으로 평가받는다. 도원전사마산아재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지만, 사고만 쳤다 하면 KBO 역사에 길이 남을 대형사고를 쳤다. 한번 모였다 하면 그 전투력은 충분히 다른 두 아재들과 맞먹을 수 있는 수준이다. 사실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2002년 이전에는 저 둘 이상으로 드셌다. 대체로 잘 나가는 정규시즌 중에는 비교적 얌전하다가 포스트시즌에서 삐그덕거리면 초대형 사건을 저지르는 패턴이다.

그래서 1990년대 대구 지역 방송 아침 뉴스 첫 꼭지는 항상 대구아재와 함께 시작할 때가 많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그 시절 아버지 야구팬들은 특히 해태 타이거즈 전이 있는 날이면 가족들을 야구장에 절대 데려가지 않았을 정도다. 이 날 대구야구장은 아재들의 찰진 욕설과 함께 1루와 3루를 가로질러 공이 아닌 물건들이 마구 날아다니는 그냥 전쟁터였다고 보면 된다.

삼성의 최전성기인 2011~2015년에는 팬덤의 세대교체로 오프라인에서 사건사고는 줄어들었지만[3] 타팀에 과한 오지랖을 부리는 선민사상을 가진 팬들이 온라인에서 유명했다. 일명 ㅇ+찰사 드립과 삼팬이지만 인정한다 드립도 이 때 나왔다.

홍준학 시기 때는 강성 팬덤 홀대 정책으로 올드 팬덤이 산산조각나버렸으나, 정작 삼성이 잘하던 2021년에는 올드 팬덤까지 집결하며 드림 올스타를 삼성 라이온즈 일색으로 만들어버렸다. 2024년에는 홍준학이 팀을 떠났으며 KIA와 함께 팀이 상위권에 도달하며 뉴비 팬덤이 많이 유입된 건 물론 50대 이상의 올드 팬덤까지 집결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삼성이 정민철 해설위원의 이해할 수 없는 비난과 조롱,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된 2024년 한국시리즈 1차전의 막장 행정으로 인한 피해를 보자 집단 항의하는 등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2. 그들이 남긴 전적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2.1. 해태 버스 방화 사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해태 버스 방화 사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2.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KBO 플레이오프/1999년/7차전 문서
3.3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3. 쓰레기 투척 사건

파일:데이비스우산.jpg

1999년 대구 마지막 홈 경기. 상대는 한화 이글스였고, 당시 시즌 홈런 54개를 기록했던 이승엽이 홈런성 타구를 쳤다. 그러나 그게 외야 펜스 바로 앞에서 한화의 제이 데이비스가 잡아냈다. 당연히 이를 좋게 봐 줄 리 없는 아재들은 컵라면과 생수통을 비롯한 온갖 쓰레기를 외야로 투척했고 제이 데이비스는 위에 보이는 사진처럼 우산을 쓰고 서 있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이 해에 이승엽은 당시 아시아 신기록인 왕정치의 55개 홈런 타이에 실패했으며 이후 2003년에 56개 달성으로 아시아 신기록 경신에 성공한다.

2.4. 삼리건 난입 사건

난입은 여러 건이 있었지만, 제일 잘 알려진 건 2010년 플레이오프 삼리건 난입사건이다.

2.5. 나지완 홈런 응원 사건

2011년 9월 22일 KIA 타이거즈와의 대구 홈경기 때 벌어졌던 일이었다. 당시 스코어 5-1로 삼성이 4점을 앞서 있었고, 주자도 없었기 때문에, 오승환이 나와도 세이브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운드에 올라왔던 투수는 임진우였다.

임진우가 흔들리면서 주자 1루 상황을 만들어 줬고, 타석에는 나지완이 들어섰다. 이 때, 한 대구 아재가 외치기를
"나지완 홈런"

문제는, KIA 입장에서는 이거만한 굴욕도 없었고, 이런 식의 굴욕적인 응원을 대구 관중 대다수가 따라했다는 점이었다. 결국 그 아재의 외침대로 나지완이 출루, 주자 1,2루가 되자 그제야 오승환을 올려서 결국 세이브 성공하고 경기를 이겼지만, 이 과정에서 오승환은 안타를 맞고 1점을 더 내줘서, 임진우의 방어율이 올라갔다. 뿐만 아니라, 삼성 라이온즈의 공식 트위터미투데이는 앞의 사실은 싹 빼먹고 오승환 세이브만 강조했고, 수많은 팬들에게 까였다.

2.6. 이천웅 욕설 퇴장 사건

2017년 7월 21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LG와 삼성과의 경기중 외야에 있던 한 삼성팬이 외야 수비를 보고 있던 LG 트윈스이천웅 선수에게 욕설과 폭언을 하여 퇴장당한 사건이다.#

이 삼성팬은 1회부터 욕을 시작하여 연장 11회까지 욕을 했다고 한다.

3. 아재들의 변명

롯데 자이언츠에 묻혀서 그렇지, 삼성 라이온즈도 KBO 리그 창립부터 변함없이 이어져 온 전통있는 구단이며, 그만큼 팬심의 충성도도 높다. 다만, 과도한 팬심으로 인해 이런 좋지 않은 응원문화들이 생겼을 뿐이다.

그리고 성적이 너무 좋다 보니,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나 KBO 포스트시즌 진출은 당연시되는 경향이 심했다. 남들은 우승을 하고도 남는 전력이니, 팀을 둘로 나눠도 우승후보라느니 하면서 삼성의 전력에 대해 높게 평가해 주는데[4] 정작 KBO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주지하다시피 전력의 우열은 차치하고 이기는 경우보다 지는 경우가 많았고[5], 평가받는 전력과 실제 따라오는 결과의 간극에서 오는 좌절감과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서 초조함이 팬들의 정서에 만연해 있는 탓이 컸다.

그래서 삼성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때마다 선수들 뿐만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도 '이번에는 절대 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팽배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시즌에서의 또 한 번의 실패가 현실로 다가오면 그동안 쌓았던 스트레스를 이런 식으로 풀었다.

4. 세월이 지나고 슬슬 부활의 기지개를 켜다

사실 대구아재들의 명성이 제일 높았던 때는 오히려 삼성이 팀컬러대로 화끈하게 공격야구를 추구하던 1980~90년대였다. 공격야구 때문도 때문이지만, 그보다도 더 큰 원인은 그 시기에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못해서.[6] 우승을 못 한 원인이 공격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투수력이었음을 굳이 든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공격야구든 수비야구든 팀이 못하면 팬은 강성이 된다. 삼성과는 반대로 투수력에 비해 공격력이 형편없었던 인천아재의 공격성이 대구아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것만 봐도 팀이나 감독의 성향과 팬들의 공격성은 무관함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일어난 버스 방화 사건이나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 사건이 다 포스트시즌과 관련이 있음을 주목하자.

이후 김응용-선동열로 이어지는 해태 출신 감독들이 취임하며 지역색이 흐릿해지고, 특히 선동열 감독 부임 이후에는 기존의 공격야구 이미지를 탈피하고 투수 중심의 지키는 야구로 팀컬러가 변하게 되면서, 기존의 골수 팬들이 떨어져나가거나 젊은 층 팬들과 가족 단위 팬들의 유입이 늘며 팬덤의 분위기가 다소 순해졌다. 또한 삼성이 한국시리즈 징크스를 털어내면서 포스트시즌만 되면 발동하는 우승 강박증이 해소되었다. 만약 김응용선동열이 전임 감독들의 실패를 반복했더라면 대구아재의 과격성은 감독이 호남팀 출신이라는 점까지 더해져서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았을 거다. 사실 삼성 팬덤은 그동안 적장으로서 삼성의 우승을 저지해왔던 김응용 감독이 삼성 감독으로 부임한 뒤 팀 컬러를 업그레이드 시킨채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팀을 우승시킨 이후엔 오히려 친김응용 팬덤이 되었다. 다만 선동열 감독 부임 시절에는 2005년~2006년 2년 연속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음에도 불구하고, 해태 출신이라는 것, 삼성의 팀 컬러였던 공격야구를 포기하고 투수 중심의 야구를 한 덕분에 기존 올드 팬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었다. 극단적인 팬덤에서는 이름하야 '멍게강점기'로 폄하할 정도.

하지만 2011년, 류중일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공격야구가 부활했다. 게다가 2012년 이승엽의 복귀와 20세기 시절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코치 복귀 등으로 예전에 화끈했던 아재들이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은 듯.

2014년에 들어서는 마무리 임창용이 거하게 불을 질러 다 이긴 경기를 놓치자 이에 화가난 팬이 자두를 투척하는 등 "역시 대구아재다" 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당시 투수코치였던 김태한의 투수교체 타이밍과 좌우놀이 실패로 분노는 극에 달하였다.

예를 들어 이런거

2015년에 들어서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터진 원정도박 사건과 2015년 한국시리즈의 졸전 이후로 대구 삼성 라이온즈가 아니고 '수원 삼성 라이온즈'라며 응원을 그만두자는 아재들도 나타났다. 삼성이 대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점, 제일기획의 라이온즈 인수 건도 포함해서다. 요지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삼성' 딱지를 떼자는 건데, 이는 딱 롯데의 그거다. 그 이후는 삼성의 비밀번호로 이어졌다.

2019년에 들어서는 프로축구 판으로 영역을 개척했다. 위의 대구 FC 레플리카가 대표적인 사례로, 대구 FC가 세징야조현우를 앞세워 리그 강팀으로 급부상하자, 주중에는 야구를, 주말에는 축구장을 찾는 아재들이 늘었다. 2021년 K리그1 1라운드 대구의 홈 개막전에 삼성 라이온즈의 후드티를 입은 팬이 대구 FC를 응원하는게 중계 화면에 잡혔다.#

2020년 시즌 종료직후 대구아재들이 아직 건재하다는것을 홍준학 퇴출 현수막으로 보여주는 중이다.

2021년 성적이 반등하자 팬심이 폭발, 올스타전 투표에서 드림팀 전원을 삼성선수로 도배하는 화력을 보여주었다.[7]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에도 원태인 발목이나 잡지 말라며 어그로를 끌다가 정작 원태인의 트롤링이 패착이 되자 입 싹 닦고 모른 척 하기, 자팀 신인 올려치기를 위한 타팀 신인 조롱[8] 등 악질적인 면에서 왕조시절과 하나도 안 변했다. 그리고 김지찬, 김상수의 실책으로 팀이 나락으로 가자 이 둘의 SNS에 패드립 포격을 난사하면서 건재함을 과시하는 중이다.

2022시즌은 대구아재들이 발호한 가장 대표적인 시즌인데 우선 역대 최장 연패기록을 경신하는 등 팀 성적이 극도로 부진했고, 감독은 성적도 부진할 뿐더러 특정 선수 편애로 대놓고 팀을 망쳤고, 주장은 리그 역사상 최악의 부진을 기록하였으며, 에이스는 한미일 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불운을 갱신했고, 연봉 톱타자는 5홈런밖에 치지 못하는 등 각종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경신하였다. 이승엽이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선임되자 더욱 여론이 험악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런트는 스케치북 검열같은 사건사고나 일으키고, 뻔뻔하게 교체되지 않고 그대로 가서 사실상 대구아재들은 자포자기한 모양새.

대신 축구에서 대구아재가 칼(?)을 빼들었다. 인천전과 수원전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은 W석 아재가[9] 경기 끝나고 물병을 투척한 것. 당연히 아재들은 잡혔고, 구단은 벌금을 내야 했다. 해당 문서 참고.

2023년에는 삼성이 아무런 변화도 없이 기존 수뇌부들은 여전한데다, 이들이 본인 밥그릇을 뺏으려는 대구아재한테 앙심을 품었는지 작정하고 팀을 박살내서 전해를 능가하는 역대 최악의 시즌[10]으로 보내자 올드 팬덤은 아예 멘탈이 붕괴하여 해탈한 상태가 되었고, 신규 팬덤 역시 불매운동을 하는 등 분위기가 박살나버렸다. 그러나 팀이 한때 최하위로 굴러떨어지자 구단 수뇌부가 버티지 못했으며 결국 해당 시즌 종료 직후 홍준학이 팀을 스스로 떠났다.

2024년에는 대구아재들의 영원한 주적인 홍준학이 나가고 팀이 다시 상위권이 되며 부활했다. 대구아재들은 상당수 바뀐 이종열 체제 하에서는 삼성의 수뇌부에 만족하고 있으나 이 시즌에는 외부적인 위협들과 싸우고 있다. 이 시즌 정민철 해설위원이 삼성과 척을 졌는지 쓸데없이 삼성 선수들을 비난하고 삼성 팬덤을 대놓고 조롱하자 시즌 내내 정민철과 기싸움을 하고 있다. 거기다 KBO 한국시리즈 1차전의 졸속 운영으로 인해 삼성이 피해를 보자 KBO를 가루가 되도록 까고 있다.

5. 나무위키 내에서

나무위키 내 삼성팬들, 특히 그 중에서 비로그인 유저들의 경우 타 팀에 비해 서술 경향이 상당히 강성이다.[11] 그만큼 취소선 드립을 통한 감정 표현 등 또한 매우 극심한 편이다. 특히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최형우가 부진하자 최형우/2015년 문서가 엄청난 문서 훼손이 일어났다. 제일기획으로 넘어간 다음은 더 심한데 2016년 6월 밑도 끝도 없는 추락을 하자 팀별 월별 문서에서 비로그인 편집 제한이 붙기도 했다.[12] 그리고 최재원을 LG에 눈 뜨고 빼앗기자 김한수 문서가 반달당했다.

칩찰사 문서는 아예 토론을 걸어 삭제는 물론 관리자 전용 편집으로 잠궈버린 전적이 있다.

2016년 이후로 팀이 암흑기에 빠진 이후로 그 빈도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삼성 라이온즈 관련 문서에 온갖 취소선 드립을 남기는 등 이들의 과격한 활동은 끊이질 않고 있다.


[1] 2000년대~2010년대 초 당시 30~40대였던 세대는 대부분 현재 50대 이상이 되었다. 물론 50대 이상~60대 초반도 현재는 아저씨로 칭하니 이들은 아직까지는 대구아재가 아닌 것은 아니다.[2] 이 팬덤의 경우 선수 개인팬의 색채를 강하게 띠는 여성 팬덤도 상당히 많은데, 대구아재들은 팬들의 성별에 무관하게 선수 개인팬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다. 당장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김상수의 이적 당시에도 김상수의 개인 팬덤은 극딜당했다.[3] 물론 아주 사라진건 아니고 나지완 응원 사건이나 한화 이글스 응원 플래카드 등의 사건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공권력이 나서서 제압하는 수준의 사건을 저지른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다는 것.[4] 실제로도 삼성은 1970~80년대 경북고대구상고를 대표로 한 TK권의 고교야구 강세로 처음으로 가을야구를 못한 1994년 전까지 오랫동안 우승후보로 손꼽혀 왔고, 이때문에 삼성에서 주전을 잡지 못한 선수들이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할 때 많이 넘어가기도 했다. 그러니까 빙그레가 한동안은 삼성 2중대였던 것.[5] 실제로 삼성이 전력상 우위로 평가받았으면서도 패배한 포스트시즌만 해도 1984년 한국시리즈, 1987년 한국시리즈, 1988년 플레이오프, 1998년 플레이오프, 1999년 플레이오프, 2001년 한국시리즈, 2003년 준플레이오프 등이 있다. 열세라는 평가를 뒤집은 건 1990년 플레이오프나 2008 준플레이오프 정도.[6] 2001년까지 삼성의 우승 기록은 딱 1번 뿐이었고, 그마저도 '전후기 리그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면제되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적은 없었다.[7] 이 과정에서 야구와 관련없는 아이돌, 가수 팬덤과의 문어발식 동맹, 성적을 무시한 무지성 자팀선수 뽑기로 타팀의 반발이 심했다.[8] 글에 나온 세 명은 신인왕 경쟁자로 주목받았다가 당시 부진했는데, 이 중 이의리는 올림픽에 나가 탈삼진 1위를 기록하고 4점 중반대였던 평균자책점을 3점대 중반까지 끌어내렸으며 김진욱은 같이 올림픽에 나갔으며 불펜 전환 후 호투를 계속하고 있다.[9] 서포터즈 그라지예는 S석에 있다.[10] 심지어 해당 시즌은 단순히 삼성 라이온즈를 넘어서 10개 구단 통틀어 2020년대 최악의 시즌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잦다.[11] 워낙 암흑기가 길었던 LG, 삼성에서도 흑역사였던 감독의 독재와 노리타들의 언플 똥싸기에 지친 한화, 성적은 정반대지만 같은 경상도 아니랄까봐 한 성깔 하는 롯데 등이 다소 강성이지만 삼성은 이들보다도 상당한 강성이라 뒷처리 흔적이 큰 편이었다.[12] 결국 토론 끝에 저속한 언행을 삼가는 방향으로 갔다. 삼성 뿐 아니라 다른 구단도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