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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01:24:40

포퓰리즘

대민영합주의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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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대중주의) 사상의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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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번역3. 유래4. 성향5. 분파6. 정치적 용례에서의 어감7. 관련 정당 및 인물8. 관련 인용문9. 기타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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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Populism

포퓰리즘(대중주의, 인민주의)이란 사회가 궁극적으로 동질적인 두 진영으로, 즉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로 나뉜다고 여기고 정치란 민중의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를 말한다.(C. Mude, C. Kaltwasser, 『포퓰리즘』POPUL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12017), 이재만 옮김, 교유서가, 2019, ebook) 어원적으로는 백성(인민) 혹은 대중을 말하는 라틴어 Populus에서 유래하였다.

일반 대중을 동원하여 권력을 획득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정치 시스템이자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 형태이다. 사회에 부패한 엘리트와 순수한 대중만이 있으며 후자의 의사를 따라 정치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엘리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는데, 엘리트주의는 사회를 동질적인 ‘선한’ 이들과 ‘악한’ 이들로 나누는 포퓰리즘의 기본적인 이원론적 구분을 공유하면서도 두 집단의 덕성을 정반대로 바라본다.(Mude 등, 같은 책) 다원주의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포퓰리즘을 특정 계파의 전유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인기에 따른 정치를 의미하기에 실제로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인 기본소득은 대한민국에서는 좌파 계열에서 주장하지만, 일본에서는 하시모토 도루와 같은 극우 진영에서 밀어붙이기도 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도 대표적인 포퓰리즘을 위시한 정치인이다.

2. 번역

Populism의 한국어 번역에는 다소의 혼란이 있었는데 전에는 주로 인민주의로 번역되었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인민이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에 대신 대중주의인기영합주의, 대중영합주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이후 대중주의나 민중주의라는 단어는 사민주의 개념도 일부 포함하는 것으로 수렴했고 좌우 진영 상관없이 포괄적 의미로 혹은 맥락상 부정적 의미로 쓸 때는 음차한 단어인 포퓰리즘을 주로 쓰게 되었다.

3. 유래

러시아에서 발생한 19세기 중후반 농본주의적 급진사상미국에서 받아들여서 발전시킨 것으로, 19세기~20세기 초반 미국 혁신주의의 일종으로 시작되었다.[1]
포퓰리즘이란 사회가 궁극적으로 서로 적대하는 동질적인 두 진영으로, 즉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로 나뉜다고 여기고 정치란 민중의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심이 얇은 이데올로기이다.
포퓰리즘을 ‘중심이 얇은 이데올로기’로 규정하는 방식은 흔히 말하는 이 개념의 가변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데올로기는 인간과 사회의 본성에 관한, 아울러 사회의 조직과 목표에 관한 일군의 규범적 이념이다. 간단히 말해 이데올로기는 세계가 어떠하고 또 어떠해야 한다는 견해다. ‘중심이 두껍’거나 ‘완전한’ 이데올로기들(예컨대 파시즘, 자유주의, 사회주의)과 달리, 포퓰리즘처럼 중심이 얇은 이데올로기들은 다른 이데올로기들에 들러붙는 것처럼(그리고 때로는 흡수되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인 한정된 형태들로 나타난다. 사실 포퓰리즘은 거의 언제나 다른 이데올로기의 요소들에, 더 폭넓은 공중에게 호소하는 정치 프로젝트를 촉진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들에 들러붙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이유로 포퓰리즘은 단독으로는 현대 사회가 낳는 정치적 문제들에 복잡한 해답도, 포괄적인 해답도 내놓지 못한다.
(중략).
엘리트주의는 사회를 동질적인 '선한' 이들과 '악한' 이들로 나누는 포퓰리즘의 기본적인 이원론적 구분을 공유하면서도 두 집단의 덕성을 정반대로 바라본다.
(중략)
다원주의는 포퓰리즘과 엘리트주의 모두의 이원론적 시각에 완전히 반대하고, 사회가 각기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서로 어느 정도 겹치는 다종다양한 집단들로 나뉜다고 본다.
Cas Mudde, Cristóbal Rovira Kaltwasser 공저, 《포퓰리즘》(이재만 역)

미국에서 시작된 초기 포퓰리즘은 관료주의를 배격하고 정형화된 정당의 틀마저 깨는 혁신주의의 일종이었다. 국익이 없으면 대외정책을 거부하고, 연방군의 비대화 반대와 민병대의 역할 확대까지 주장하였다. 당연히 정치계의 엘리트들은 이를 곱게 보지 않았으며 대중들이 당장의 이익에 눈멀어서 장기적인 국익을 망친다고 비판하였다.

4. 성향

포퓰리스트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안티포퓰리즘적인 기득권 세력의 경우 차별의 대상이 되기 쉬운 소수자의 인권 문제나 도덕, 이슬람권 국가와의 관계 등 여러가지 문제 때문에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데 포퓰리스트들은 정치적 올바름이 진실을 호도하는 악한 위선이라고 생각한다.[2] 정치적 올바름은 대체적으로 도덕적으로 우등한 엘리트 계층이 도덕적으로 열등한 민중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구도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던 근대 서양계몽주의 철학과도 상당 부분 유사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3], 포퓰리스트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다만 둘 다 엘리트주의적이긴 하지만 계몽주의는 이성을 극도로 중시하는 철학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올바름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는 없다. 계몽주의의 유지를 계승하는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은 여러 이슈에서 이들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포퓰리스트들은 반세계화 성향을 띄는 경우가 많으나[4] 다른 정치세력과 달리 대중이 엘리트에게 지니는 분노를 정치적인 자양분으로 삼는다. 때로는 내셔널리즘과 결합할 수 있으며,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는 볼리비아의 인종화된 권력 균형을 직접 겨냥해 부패한 '유럽계 엘리트와 순수한 '메스티소' 민중을 구분한 바가 있다.[5]

2010년대 이후 유럽에서는 시민들의 25%가 포퓰리즘 정당들을 지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유는 반난민, 경제 불황, 기성 정치 반감 등으로 3배 이상 넓혔다. 2020년대 이후에도 주류가 되고 있는 상태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감까지 나타나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5. 분파

대중주의는 보통 크게 우익대중주의좌익대중주의로 나눈다. 같은 대중주의를 추구하긴 하더라도 좌파냐 우파냐에 따라 여러 면모에서 차이점을 보이기 때문이다.

보통 우익 대중주의는 경제관에 있어서 일관되지 않지만 좌익대중주의는 친복지, 사회주의적인 경제를 선호한다. 또한 우익 대중주의의 반엘리트주의는 좌익 대중주의만큼 강력하지 않은데, 우익 대중주의는 대개 자유주의 엘리트들이 평범한 다수자 대중들을 역차별한다고 인식한다. 좌익 대중주의는 부유한 엘리트들이 신자유주의를 내새워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서 엘리트에 대한 원색적 증오감은 좌익 대중주의가 우익 대중주의보다 더 큰 편이다.[6]

우익 대중주의자가 사회 이슈에 집중해서 대중적인 분노를 자극한다면 좌익 대중주의자들은 경제 이슈에 집중해서 대중적인 분노를 자극한다. 우익 대중주의자들은 대중과 비교했을 때 소수의 강자소수의 약자 양자 모두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좌익 대중주의자는 소수의 강자자본 세력에 대한 증오감, 그들이 누리는 특권에 대한 분노에 기인한다. 우익 대중주의자들은 대개 반이민 정서를 지니지만 좌익 대중주의자들의 이민관은 통일되어 있지 않다.[7]

6. 정치적 용례에서의 어감

혼란의 한 가지 원인은 민중이나 조직이 스스로 포퓰리즘을 표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오히려 포퓰리즘은 다른 민중이나 조직에 십중팔구 부정적인 의미로 붙이는 딱지다. 대체로 동의하는 소수의 포퓰리즘 사례들, 이를테면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 후안 도밍고 페론이나 네덜란드의 살해당한 정치인 핌 포르타윈조차 스스로 포퓰리스트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Cas Mudde, Cristóbal Rovira Kaltwasser 공저, 《포퓰리즘》(이재만 역)
포퓰리즘이라는 말은 현대 정치에서 대개의 경우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의 표현이다. 때문에 한국어로는 대민영합주의 또는 대중영합주의로 의역되기도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앞에 '망국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 말대로라면 정치인이 유권자에게 돈 주고 표를 사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2010년 전후로 등장한 무상 시리즈와 관련이 깊다. 다시 말해서 민중이 제시한 의견에 국가가 영합해서, 지지율만 가져가는 정치 체제를 뜻한다. 이러한 대민영합주의가 극심해지면 중우정치의 결정판이다.

예를 들어 정치인이 선거철만 되면 시장에 가서 길거리 음식을 사 먹는 건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내가 힘든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라는 의도도 있지만, 결국 하나의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 정말 시장에서 음식 파는 자영업자들을 고려한다면 그곳에 호위를 끼고 사진 찍으러 나갈 시간에 자영업자들을 위하는 제도나 더 고려할 것이지, 굳이 나서서 쇼를 할 필요는 없다.

이런 정치는 시민의 의견에 호응하는 민주주의적 정치체계같아 보이지만, 사실 겉으로만 호응할 뿐이다. 선거 때는 온갖 잘나보이지만 현실성 따윈 개나 줘버리는 정책[8]을 남발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열광하게 하고, 그 이후로는 모른 척 하고 또 지지율이 나빠지거나 다음 선거가 다가오면 이러한 짓을 남발하는 방식의 정치방식이다.

사실 당선된 뒤에 이런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나마 양반이다. 진짜 최악은 그 공약을 정말로 지킬 경우다. 가령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준의 대규모 복지 정책을 남발해서 정권을 유지하려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정권은 유지하지만 국가 경제가 악화되며 빈곤층이 증가하고 무리한 복지 정책에 대한 요구가 강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설령 정권이 다른 정당에 넘어가더라도, 다음 정권이 복지정책을 폐기하려면 사회적 반대에 부딪히는 부작용을 버틸 수가 없다. 인간 심리상 애초에 줬던 걸 뺏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한 번 가동되기 시작한 복지정책은 폐기하기 굉장히 힘들다.

이러한 결과 제대로 된 정치인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게 되므로 국가의 효율은 점점 나빠지게 되며, 결국은 이루어질 수 없는 공약만 남은 허울뿐인 국가로 전락하게 된다.[9] 그나마 이 효율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른 비도덕적인 제도로 다른 표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런 용기를 내는 정치인은 안타깝게도 없다.

민주주의의 본령은 국민에 의한 정치인데 직접적 실현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고,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가는 한 상위 계층과 일반 하위 계층이 형성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엘리트들은 일반 국민보다 잘나고 능력이 출중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현대 민주 국가는 대의민주주의와 권력분립 체제로 이를 보완한다. 즉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의 민주정에 가까운 입법부, 엄선된 엘리트들이 이끄는 사법부, 강력한 1인의 리더십이 이끄는 행정부가 권력을 분립하고,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입법부의 전문성을 보완한다. 이렇게 하면 여론은 엘리트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고, 엘리트는 여론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게 되어, 다수의 독재와 소수의 독재가 모두 방지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민주 국가의 체제를 포퓰리즘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국민의 주권을 긍정하면서도 엘리트의 능력으로 보완하는 복합적인 체제가 현대 민주 국가의 체제이다. 엘리트주의가 만연하여 일반 국민들이 영도자에게 이끌려 정치참여에 담을 쌓거나 완전히 엘리트주의를 배격하여 당장의 이익에 이끌려 나라를 이끌어간다면 바로 중우정치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여론의 오판 가능성을 인정하는 게 국민주권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둘 다 군주정이라고 한들 제한군주정(Limited monarchy)과 전제군주정은 다르고, 비슷한 원리로 현대 민주국가의 체제와 포퓰리즘은 다르며, 왕(국민)의 능력이 관료(엘리트)보다 낮을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고 한들 왕(국민)의 주권이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엘리트의 능력과 국민의 주권을 모두 다 제도에 반영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국민 모두가 다 똑똑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이면, 대중이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결론이 수렴되어 나올 것이지만, 현실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비유를 빌리자면, 다수의 늑대와 소수의 양으로 이루어진 유권자가 저녁밥으로 뭐 먹을지를 여론으로 결정한다면 무슨 꼴이 벌어지겠는가? 조금 더 현실적인 예시를 든다면, 여론이 이슬람 원리주의를 원하는 나라에서 여론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결국 여론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면 다수가 소수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체제가 구현되며, 이는 대중의 여론을 내세운 권력일 뿐 입장이 다를 수 있는 시민의 자유와 결정권을 규정하고 보호하지 못하며 전문성을 동원해 이견을 조정하고 답을 찾아내는 절차라기보다는 단순한 주도권의 대중 이전에 가깝다. 이러한 체제는 집단적인 패권과 사회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대중은 집단을 내세워 개인을 압박하며, 여론과 그에 포함된 감정적 태도가 지성을 잠식하면서 의견을 조정하는 절차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타인의 결정권을 침해하는 무리지은 패권이 형성된다. 그렇기에 부패한 엘리트와 순수한 대중이라는 포퓰리즘적 세계관은 거부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깨우친 엘리트와 미개한 대중'이라는 식의 엘리트주의 세계관도 수용해서는 안된다. 엘리트들도 욕심이 넘쳐나기에, 그들에게만 권력을 쥐어주면 견제받지 않는 엘리트가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국민을 우롱하고, 국민의 주권이 부정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국민을 왕에 비유하자면, 일종의 찬탈 정권이 탄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집단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공공재산(Res Publica)인 국가를 운영하는 체제로는,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규율이 없는 포퓰리즘보다는, 다수의 독재와 소수의 독재를 모두 방지하고, 각자의 결정과 의견을 존중하며, 수많은 전문가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정치적 약점을 보완하는 권력분립형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더 합리적이다. 국민을 왕에 비유하자면, 왕 앞에서 정치생명을 걸고 No를 외칠 수 있는 충신과, 그러한 충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성군의 협치에서 건강한 정치가 구현되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폐해가 나타난 역사적 사례로는 아랍의 봄이 있다. 중동독재 정권들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되자 오히려 상당수 아랍인들의 지지를 받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확산된 사례에서 다수의 이득을 위한다는 명목이 다수에 의한 압제와 소수자·약자에 대한 탄압 정당화로 악용되는 모습이 확인된다. 이처럼 사회적 측면에서 포퓰리스트들은 대중의 눈치를 보느라 약자와 관련된 인권 의제를 고의적으로 무시하며, 분노를 조장하기도 한다. 중동독재자들 중 튀르크/아랍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몇몇은 이슬람 사회를 어느 정도 근대화하려던 세속주의자들이었으며, 이슬람 근본주의와 대립했다. 시리아알라위파도 생존과 권력을 위해 좋든 싫든 서방식 마인드를 지니고 토착 기독교 등의 소수종교들과 연합해 수니파를 견제했다. 중동의 독재 정치와 중동인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이슬람 근본주의는 별개의 문제다. 중동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너무나 큰 사회적 영향력과 보편적 국민 정서로서 박혀 있기 때문에 '민주화다수결 민주주의 →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의 집권→ 인권 탄압'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나올 수 있다. 혁명 직후의 이집트가 이 테크를 타다가 군부에 의해 쫓겨났다. 군부에 의해 좌절되긴 했지만 이집트 국민들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심화되고 있다. 이런 대중주의가 극단으로 치닫은 사태가 바로 파시즘이다.[10] 현대네오파시즘 역시 대개는 이러한 대중주의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포퓰리즘의 극단이 파시즘뿐이라는 뜻도, 파시즘이 언제나 포퓰리즘적인 형태라는 뜻도 아니다. 프랑코 정권 같은 애매한 사례도 있고, 차베스주의처럼 역주행할 수도 있는, 일종의 극과 극은 통하는 이데올로기다. 다만 나치와 히틀러가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민주체제를 이용해 포퓰리즘 독재에 성공하는 충격적인 사례를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나치 정도의 극단적 사례는 들지 않더라도, 대중이 독재자를 지지하는 경우는 역사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11] 오늘날에 와서도 세계적으로 많은 대중주의 정당이나 대중주의 정치인들이 정치극단주의에 경도되어 있고 그 지지자들 역시 정치극단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사례는 많다. 뿐만 아니라 대중주의가 득세하면 그에 동반하여 반지성주의도 함께 득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엘리트주의가 쇠퇴하고 대중주의가 득세하는 과정에서 대중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지식인에게 대중이 극단적인 적개심을 표출하는 현상이 세계 각국에서 반복되고 있기도 하다.

위의 Mudde와 Kaltwasser의 저술을 참고한다면, 한국에서 포퓰리즘을 '대중영합'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로 사용하는 것은, 세계적 규모에서 볼 때 오히려 매우 정석적인 용례로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12]

7. 관련 정당 및 인물


8. 관련 인용문

최근에 포퓰리즘을 나쁜 엘리트에 적대적으로 선량한 인민을 위치시키는 ‘얇은-중도적 이데올로기(thin-centred ideology)’로 보는 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포퓰리즘은 본질적으로 어떤 메시지(message)를 보내는 행위자로서의 특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메시지로서의 특성을 가진다.
박진완,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political approach that strives to appeal to ordinary people who feel that their concerns are disregarded by established elite groups.
그들의 관심사가 확립된 엘리트 그룹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평범한 인민들에게 호소하고자 하는 정치적 접근
옥스퍼드 영영사전의 populism 정의
또한 언제나 소란하고 성난 군중들은
몹시 불쾌하고 떠들썩한 목소리로 외치네,
법은 우리라고.
W. H. 오든, <법은 사랑처럼> 中
카자흐스탄 국민이 나를 지지하고, 나에게 자리를 허락하여 주었기 때문에 지난 27년 5개월 동안 대통령으로 일할 수 있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민주주의에 대한 (수식어가 붙지 않는) 가장 적절한 정의는 국민주권과 다수결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 정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와 비자유민주주의 모두 가능하다.
(중략)
그렇지만 대부분의 일상 용법에서 민주주의는 실제로 민주주의 자체보다는 자유민주주의를 가리킨다. (수식어가 붙지 않는)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주된 차이점은 후자가 국민주권과 다수결을 존중할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소수자 보호 같은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 특화된 독립 기관들까지 수립하는 정치체제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중략)
간단히 말해 포퓰리즘은 본질적으로 민주적이면서도 현대 세계에서 지배적 모델인 자유민주주의와 충돌한다. 포퓰리즘은 그 무엇도 ‘(순수한) 민중의 의지’를 제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다원주의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며, 따라서 소수자의 권리는 물론이고 그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적 보장책’에도 반대한다.
Cas Mudde, Cristóbal Rovira Kaltwasser 공저, 《포퓰리즘》(이재만 역)

9. 기타

아르헨티나를 위시한 몇몇 남미 국가는 한때는 강대국이었지만 후안 페론 집권기에 이것 때문에 몰락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아르헨티나는 페론 이전과 이후에 등장한 군부 독재정권들도 상당한 삽질을 했기 때문에 단순히 후안&에바 부부의 포퓰리즘 정책 탓만으로 돌리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사실 50년대 중반-80년대에는 후안 페론과 이사벨 페론이 3년 정도[34] 집권한 걸 빼면 아예 군부와 급진시민연합이 집권했고 90년대엔 카를로스 메넴은 친페론파 정당에 소속되었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던 인물이다.

포퓰리즘이 오히려 헌법 논의에 도움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 학자도 있다.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을 추구하는 정당, 정치인 중에는 좌파우파를 가리지 않고 정치 극단주의에 경도된 이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극좌 정당이나 극우 정당도 유난히 많이 보이며, 중도 정당은 그 비중이 상당히 적다. 포퓰리즘이 정치극단주의에 경도되기 매우 쉬움을 방증하는 사례라 보여진다. 물론 중도를 표방한다고 해서 포퓰리즘과 결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의 시민정의 파키스탄 운동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을 추구하는 정치인 중에는 이른바 스트롱맨 정치인이 많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렇게 포퓰리즘&스트롱맨 성향을 동시에 가지는 정치인들이 2010년대를 기점으로 우연인지 필연인지 세계의 주요 국가들에서 한꺼번에 튀어나왔던 데다 기타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류의 인물들이 대약진을 벌이고 있는 추세여서 현재에 와서는 하나의 새로운 국제질서 패러다임이 되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스트롱맨 성향의 정치인 중 상당수가 독재자인 상황이고, 자연히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을 추구하는 성향을 보이는 정치인들 중에도 2010년대를 기점으로 독재자가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과거 전체주의·파시즘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듯 민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합법적으로 독재 체제를 쌓아 올린다는 것. 제아무리 스트롱맨이라도 민중의 지지가 없이는 그 위치에 오를 수 없을 것임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볼 수도 있긴 하다.[35]

물론 반대로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대중주의자도 많다.

10. 관련 문서


[1] 미국 인민당의 별칭이 포퓰리스트당이었다.[2] 물론 좌파 포퓰리스트 중 '일부'는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포퓰리스트들은 정치적 올바름에 부정적이며, 우파 포퓰리즘의 경우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 따라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 역시 여러 면에서 계몽주의 철학에 대한 비판과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다.[4] 포퓰리스트가 아무리 대세 영합적이라고는 해도 집권 후에 정책 방향을 결정해야 하니 당연히 정치적 판단기준으로 삼는 큰 골자의 성향은 있다.[5] 완전히 같은 사례는 아니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가 현대 대한민국의 엘리트 집단으로 계승되었다'라는 비슷한 레토릭이 대한민국에도 있다. 다만 에보 모랄레스의 사례와 대한민국의 민족주의는 우파민족주의와는 사뭇 다른 좌파민족주의로 분류된다.[6] 심지어 좌익 대중주의자들 사이에선 엘리트들이 궁지에 몰리니까 우파 포퓰리스트들을 키웠다는 음모론도 종종 나온다.[7] 좌익대중주의는 이민자와 난민에 대해 어느 정도 제한하자는 독일 좌파당 같은 부류도 있고 오히려 그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불굴의 프랑스 같은 부류도 있을 정도로 천차만별이다.[8] 가령 매년 대선 후보들이 외치는 반값 등록금, 서민갱생정책, 국민연금 확대, 철도 지하화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대다수는 그들의 집권 기간 중 현실에서 가능할 리가 당연히 없다.[9] 참고로 대한민국에서는 표를 얻으려는 대중주의를 표퓰리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표(票)와 포퓰리즘을 합성한 표현이다.[10] 나치즘은 ‘우리는 다수의 권력을 쥔 부패한 정권과 내, 외부의 적들에 의한 압제에 시달리고 있다’ 라는 명분으로 이념 확장을 시작했고, 자신들이 정권을 잡은 뒤로는 '바로 이 명분'으로 이권 장악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했다. 그리고 소위 아랍의 봄 이후의 이집트나 이란 혁명 후의 이란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11] 오늘날 세계 곳곳의 의원내각제에서 총리를 직선으로 뽑지 않는 것도, 대중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경계라고 해석할 수 있다.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직선제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국가원수정부수반에 관한 직선제는 의외로 민주국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다.[12]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가 만연해진 요즘정치의 특성상 2010년무상급식 논란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표현이 되었다. "망국적 포퓰리즘"이 관용어구가 되어버렸을 정도.[13] 출처: KISS 등재 논문[14] 출처: SCI 등재 논문, 옥스포드 대학 출판 자료[15] 출처: KISS 등재 논문[16] 출처: SCOPUS 등재 논문[17] 출처: SCOPUS 등재 논문[18] 출처: SCOPUS 등재 논문[19] 출처[20] 출처[A] 출처: KISS 등재 논문[22] 출처: KISS 등재 논문[23] 출처: KISS 등재 논문[24] 출처: #, #[25] 출처: CEEOL 등재 논문[A] [27] 출처: KISS 등재 논문[28] 출처: SCOPUS 등재 논문[29] 출처: 관련 도서, SCI 등재 논문[30] 출처: KISS 등재 논문[31] 출처: KISS 등재 논문[32] 출처: KISS 등재 논문[33] 출처: KISS 등재 논문[34] 다만 후안 페론은 재집권한 지 얼마 안 가 노환으로 사망하고(재집권 당시 나이가 거의 80인 노인이었던 데다 건강상태도 영 안 좋았고 선거운동으로 몸에 무리가 갔던지라 오래 집권하기엔 무리였다.) 그 뒤에 페론의 세번째 부인인 이사벨 페론이 집권했는데 재임기간 내내 오일쇼크를 극복하기는 커녕 삽을 푼지라 군부를 통제하지 못하고 오래가지 않아 쫓겨났다.[35] 애초에 대중의 지지는 독재의 반의어가 아니다. 대중의 지지를 명분으로 하여 '견제 불가능한 권력'을 얻기만 하면 독재이다.[36] 마오주의, 티토주의 제외[37] 유럽이나 영미권의 대표적인 대중주의적 황색언론 중에는 우익 대중주의 언론이 많다. 아무래도 좌파의 언어보다는 우익 대중주의적 수사를 쓰는 것이 대중추수로 돈벌기 쉽기 때문이다. 독일의 대표적 황색언론인 Bild도 이와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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