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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8:09

대학 언론


1. 대학 내에서 발행하는 언론
1.1. 개요1.2. 역사
2. 분류
2.1. 학보사2.2. 교지2.3. 영자신문2.4. 대학별 언론
2.4.1. 개별문서가 개설된 대학 언론
3. 대학 언론 모임4.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외부 언론

1. 대학 내에서 발행하는 언론

1.1. 개요

. 대학에서 발행하는 언론으로서 대학신문이라 하기도 하지만 방송이나 인터넷 웹진 등의 형태를 띄기도 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포괄적으로 묶어 대학 언론이라고 부른다. 대학 내에서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매스 커뮤니케이션. University Press라고 하면 대학의 교재를 만드는 출판부를 말하는 것으로 대학 언론과는 상관없다.

1.2. 역사

대학 언론은 대학학보관보 등의 형태로 처음 시작되었다. 초기 대학 언론은 주로 대학 기관 자체에 소속되어 대학 자체의 학교 정책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학생운동의 등장 이후 대학 자체가 아닌 학생집단 스스로가 대학 언론을 구성하기 시작하였으며, 딱딱한 내용의 대학자체의 학보나 관보와 달리 보다 가벼우면서도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대학 언론이 주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특히 라디오 방송 등이 가능해지면서 대학언론은 방송 등의 형태로 확장되고 인터넷의 발달로 웹에서도 나타나게 되었다. 대학신문의 발행 형태는 주간이나 격주간, 월간, 계간 등 다양하지만, 주간이나 격주간이 대부분이다. 또한 영어를 쓰는 영자신문도 있으며,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대학신문방송국, 영자신문을 세트로 갖추고 있다.

대학언론의 역사는 1960년대~1980년대의 민주화 학생운동의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당시에는 인터넷 등의 매체가 없었기때문에, 종이 신문 등을 통해서 주로 정보를 수집했는데,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대학 언론이 취합, 이를 전달하면서 그 영향력이 매우 커졌다. 특히 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제도권 언론사들이 정권에 의해 검열을 받고있었기 때문에, 대학생을 포함한 식자층에서는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았는데, 이에따라 대학 언론들은 비록 아마추어들이 기사를 작성하지만, 검열을 피해 정보를 공유한 만큼 대학 구성원들 사이에서 신뢰도가 매우 높았다. 이에따라 당시 학생 운동권은 대학언론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고, 대학신문 등을 통해 운동권과 관련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초 들어 운동권이 점차 쇠퇴하고,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면서 대학 언론은 대학생들의 관심에서 크게 멀어지게된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인터넷, 2010년대 이후 스마트폰으로 인하여 정보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뉴스를 접할 수 있게됨에 따라 대학생 아마추어 기자들이 만든 대학 언론은 실제 전문 기자들이 만든 뉴스들과의 경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수요가 급감하게 된다. 그나마 학교 측의 지원을 받는 대학 신문은 금전적인 지원을 받아 나은 상황이지만 최근에는 등록금 인상 등의 문제로 학교에서 예산을 두고 편집 권한 등을 견제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1] 각 단과대학 등에서 발행하는 대학 언론은 사정이 더욱 안 좋다. 다만 방송대처럼 온라인 기반 대학의 경우에는 대학 언론(학보)이 활성화 되어 있기도 하다.

사정이 안 좋으면 우천시 가리개로 쓰이거나 풀밭에서 술 먹을 때 돗자리로 쓰이는 등의 굴욕을 당하기도 한다. 요새 추세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숫자가 비슷비슷한 언론. 물론 읽는 사람이 더 많기는 하다. 오늘날에와서는 많은 대학의 언론 매체들이 소멸되거나 대학교 커뮤니티와 연계하여 웹진 형태로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대학 언론의 위기를 얘기하는 2005년 기사. 사실 대학언론뿐만 아니라, 인터넷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뉴스 매체 전체가 과거에 비해 후퇴기에 놓인 상황이다보니 이러한 흐름은 어쩔 수 없다고 봐야한다.

2. 분류

2.1. 학보사

발행인이 총장이나 부총장 명의로 나오는 신문. 매주 혹은 격주로 발간된다. 동아리가 아니라, 학교예산으로 신문을 만들고, 학교 행정 조직도에도 분명하게 나오는 학교 부속 기관이다. 물론 전문 직업 기자가 아닌, 아마추어인 대학교 재학생들이 무급으로 만드는 만큼, 동아리적 성향도 띄고 있다. 학교에서 자체 관보나 홍보지 성격 용도로 발행하기도 하고, 그래도 명색이 언론이기 때문에 대학본부나 재단에 비판적인 기사도 쓴다. 그런 특색 때문에 보통 동아리학교 부속 기관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는 걸로 사람들은 인식한다.

인쇄외주를 주고, 기획, 취재, 기사 작성, 편집은 대부분 학생들이 직접 하는 편. 다만 학교측에서 자유도를 보장해 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는 천지 차이다. 이게 애매한 경우 편집권 침해에 대항해서 파업을 한다거나, 백지로 1면을 낸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나 재단 기관지나 다름 없는 경우도 있고, 마음껏 학교를 까대는 신문들도 있다. 보통 학교 설립 초기에 만들어진 경우가 많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신문사 선배들이 교수나 학교 직원으로 있다거나, 이상한 전통이나 용어가 있다든가...특히 운동권의 영향을 받았고, 업무 특성상 준(準)직장 체험 활동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위계질서가 엄격하다.
대학본부재단과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 학교나 교수, 총장, 이사장이 잘한 일에 대해 홍보하는 기사를 쓰기도 하는 한편, 학교 예산이나 정책 등을 가루가 되도록 까는 일도 잦다. 오보만 내지 않는다면 학교측에서도 다 팩트라 할 말은 없으니... 학생회와의 관계도 마찬가지. 학생회에서는 자기들 일을 홍보할 주된 수단 중 하나기 때문에, '이번에 이런 활동을 할 건데 기사화 좀...'하고 부탁하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학보사는 총학이 잘못한 게 있으면 가차없이 깐다. 아무래도 학교보다 만만하기 때문에...
대학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학보사는 정말 무지하게 바쁘다. 매 주 모여서 회의를 하며 기획을 하고,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고 해야 하고, 신입생(수습기자)도 체계적으로 교육을 하기 때문에 유령 회원이 절대로 될 수 없다. 시간이 너무 부족해, 다른 동아리나 학회, 학과 생활도 온전하게 할 수는 없다. 다행히도 대신에 대학본부측에서는 보상으로 장학금을 준다던지, 해외 탐방을 보내준다던지 한다. 수도권의 돈 많은 학교(...)들은 별도로 지원금이나 간식비, 원고료 등이 나온다. 물론 형식적이지만...

학교 부속 기관이다 보니 학보사 업무에는 학생뿐만이 아니라 담당 조교, 간사, 담당 교직원, 주간(主幹)[2] 교수 등의 관계자들이 관여한다. 조교간사, 교직원의 경우는 같은 학보사 선배인 경우도 간간이 있다. 주간 교수는 학보사의 담당 교수[3]라고 볼 수 있는데, 학교내에서 학보사의 총 책임자이다. 주간 교수는 보통 대학본부나 재단, 총장, 이사장측의 입장을 대변한다.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학생들의 신문 기사 편집에 지나치게 간섭을 하다 보면 학생들과 대립하는 경우도 잦다. 주간교수가 선배라거나 하지 않는 이상 기자들의 주적이나 다름없는 학보사가 많다.
위계 질서는 보통 수습 기자-일반 기자-각종 부장-편집장(여기까지 일반 학생)-조교 또는 간사 및 직원들-주간교수 순이다. 보통의 경우는 수습기자 시기가 1학년이고, 2학년때는 일반 기자로 지내고, 3학년때 각 부장 및 편집장을 담당한다. 따라서 1학년부터 3학년까지가 학생기자의 임기라고 볼 수 있으며, 남학생들은 군입대를 늦게 하는 경향이 있다.[4]

물론 예외적인 케이스도 얼마든지 있다. 구인난 때문에 2학년때 학보사에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고, 4학년 때나 심지어 졸업후(...)에도 기자나 간사로써 학보사에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다른 일반적인 동아리에 비교해 시간을 굉장히 많이 빼앗기고, 기수를 따지는 등의 빡빡한 위계질서 문화가 남아있다. 그래서 학생 본업인 학과 공부에 충실해서 학점 관리를 잘하거나,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을 위해 외국어 학습 등을 하기가 쉽지 않다. 중간에 휴학도 힘들다. 따라서 앞서 말한 문제와 취업 준비, 내부 조직 문화에 대한 염증까지 겹쳐서, 같이 들어온 동기중에 임기를 끝까지 마치는 사람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2~30명씩 바글거리는 학보사도 있지만, 수습기자부터 편집국장까지 합쳐 5명 내외인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신문은 나온다

만약 1학년 신입생이 수습기자로 들어간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학보사 일에 묶여 있고 학점 관리가 쉽지 않은 특성상, 무휴학 반수전과, 복수전공, 편입 도전, 공무원 채용 시험/고등고시, 전문대학원 도전 등의 생각은 거의 접고 시작해야 한다.

학보사 경력이 있다고, 대학 졸업 후에 사회에서 메이저 언론사 취업 등에서 딱히 유리한 점은 없다. 사회에서는 아마추어 기자 경력보다는 제도권 언론사 인턴 경력이나 검증된 외국어 실력이나, 학점, 전공 지식을 더 많이 본다. 그래서 많은 대학 학보사들은 신입생들이 지원을 안해서 구인난에 시달린다.

장점이라면, 학생 기자 신분을 유지하면 장학금을 받기가 매우 쉽고, 활동 보조금도 나오며, 여러 행사를 볼 수 있고, 다양한 인맥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활동을 하다보면, 학내에서 행사 취재 등으로 여러 사람(타학과 학생, 교수, 교직원, 졸업생 등)들과 만나게 되고, 강연회 등을 명목으로 오는 외부 유명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또, 다른 지역 대학 학보사와의 연합 모임 등에도 참석 할 수 있다. 카메라 같은 고가의 장비도 다뤄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서 학보를 만들어도, 대다수 일반 학생들의 반응은 그게 뭥미?(...). 학생운동이 소멸되고, 가중된 취업난 등으로 대학 언론에 무관심한 학생이 거의 대부분이다. 무겁고 진지한 기사들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기사들도 많이 실리지만, 전문 직업인들이 만드는 제도권 일간지마저 잘 안 보는 게 요즘 대학생들이다 보니, 자신과 동등한 신분의 아마추어들이 만드는 대학 언론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아무리 미친 퀄리티의 기사를 썼다 해도 정작 봐 주는 사람들은 총학생회, 단과대 등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나 혹은 학교에 특별히 관심 있는 소수의 학생들 뿐이다. 다만 교수교직원들은 학교가 곧 자기 직장이고, 직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무슨 행사가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자주 본다. 일종의 학내 관보 성격도 있기 때문이다.
보통 학보사들은 과거 학생운동[5] 시절의 영향이 남아 있는데다가, 다수 대학생[6]들의 성향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띄는 경우가 많다. 학보사 출신 졸업생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경향신문이나 한겨레신문 같은 진보 언론 기자로 입사 한다. 아무래도 기자 경력이 있다보니 언론사 취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 물론 보수적 성향의 조중동으로 진출하는 학보사 출신 졸업생들도 적지 않고, 기자 외의 길을 걷는 졸업생들도 상당수다.

학보사는 과거에는 PDNL계열로 크게 나뉘는 경우가 많았으나, 학생운동이 소멸됨에 따라 구분이 거의 무의미해졌다.

2.2. 교지

사실 위의 학보사와 거의 동일하지만, 소속이 학교 소속이 아닌 경우, 학생회 소속인 경우도 있고, 그냥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자치언론인 경우도 있다. 학보사보다 좀 더 유연하고 재밌는 기사나 정치색이 듬뿍(...)들어간 내용들이 담긴다. 하지만 아무래도 학보사보단 돈이 심히 부족하다 보니 월간이나 계간, 혹은 학기간으로 발행되는 경우가 많다. 형태도 신문이 아니라 책자나 잡지 형태. 인원도 학보사보다 훨씬 적다.

2.3. 영자신문

말 그대로, 영어로 발간되는 신문이다. 학보사처럼 학교 기관인 경우도 있지만 동아리인 케이스도 있다. 하지만 언어의 압박 때문에 학우들의 인지도나 구독률이 처참하게 낮다. 스펙으로 쓰기에는 아무래도 영어를 가지고 뭔가 했다는 게 인정이 되다 보니 학보사보다는 인기가 좋은 편.

2.4. 대학별 언론

가나다순으로 배열해주세요.

2.4.1. 개별문서가 개설된 대학 언론

3. 대학 언론 모임

대학 언론 역시 '연합 동아리' 처럼, 대학간에 연대/연합을 하고, 정기/비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다. 지역별로 있는 곳과 없는 곳이 있다.

4.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외부 언론

대표적으로 대학내일, 캠퍼스 헤럴드, 캠퍼스 라이프, 캠퍼스 플러스, Ceci캠퍼스, 바이트, 캠퍼스잡앤조이 등이 있다. 무가지이며 보통 여성지남성지에서 퍼온 것 같은 기사를 적으며 문화 관련 정보 등을 제공한다.

대체로 이런 대학생 대상 언론은 광고를 위한 것으로 마구 배포되는 편이라 아예 마케팅을 위해 화장품 등을 끼워 배포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에서 공식적으로 배포를 금지시키기도 하는데, 연세대의 경우 학내 언론을 배포하는 곳에 이들이 기승을 부리자 학내 언론 말고는 다른 무가지나 인쇄 매체를 배포하는 것 자체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독지가란 이름을 달고 기존의 신문들이 광고나 홍보 목적으로 자신의 신문을 배포하는 일은 막지 않고 있으며, 2015년 현재 대학내일도 자체 배포대를 유지하며 정상 배포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현재는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으며, 그나마 SNS 홍보전략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대학내일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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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 학생운동권의 지원을 받은 대학언론은 예산 문제에 있어서 대학 기관과의 협상에 우위를 점했지만, 이러한 지원이 사라진 오늘날의 대학 언론들은 대학기관과의 예산 협상에 있어서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2] 어떤 업무를 책임지고 맡아서 처리하는 사람.[3] 중/고등학교로 치면, 담임 교사.[4] 때문에 일반적인 학보사는 여초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애초에 학보사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대개 인문/사회 계열 전공생이며, 적지않은 남학생들이 늦은 군입대에 부담을 느끼고 학보사를 도중에 탈퇴하기 때문이다.[5] 전통이 깊은 학보사는 과거 민주화 운동의 한 축으로 활동하기도 했다.[6] 전부라곤 할 수 없지만 20대 대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므로...[7] 특이사항으로 영자신문 외에 중문신문을 같이 발간하고 있다. 제2외국어로 발행하는 대학언론은 전국에서 강남학보가 유일함[8] 언론원[9] 신문방송사[10] 글로컬캠퍼스 신문사[11] 신문방송사[12] 경남 지역 대학 중 가장 오래된 대학 신문으로, 1957년 3월 20일에 창간했다. 2013년 9월 11일에 지령 1,000호를 발간했으며, 2017년 3월 20일엔 창간 60주년을 맞았다. 2017년부터 종이신문 발행이 중단됐다.[13] 1947년 창간한 교내 공식 주간신문[14] 1954년에 창간한 고대의 영자신문. YBM 민영빈 회장이 창간했다.[15] 1955년 12월 5일 창간한 교지[16] 1961년에 개국한 고려대 종합 방송국.[17] 1997년에 개국한 고려대 영상 방송국[18] 1989년에 개국한 고려대 학생 자치 TV방송국[19] 여성주의 교지[20] 정경대학 자치언론[21] 1948년 창간한 교내 공식 신문[22] 국민대의 영자신문.[23] 국민대신문 및 방송국 해직자들이 모여 만든 학생 자치 언론[24] 총장직속기관 교내언론기관이다. '군산대신문(학보, 영자기사 포함)', '군산대뉴스(방송)'를 월간 발행한다.[25] 1948년 창간한 교내 공식 주간신문[26] 죽전DKBS, 천안DKBS[27] 학보사[28] 2012년 예산삭감을 이유로 대학본부에서 종이신문을 강제 폐간시켜 1년에 두 번만 오프라인으로 발행하고 있다.[29] 한겨레21에 소개되기도 했다.[30] 서울캠퍼스와 역사를 같이한다.[31] 1977년 창간했으며 대전여대학보가 전신이다. 2014년 기수단절로 10개월간 휴간했으며, 10월에 복간됐다. 그러나 2016년 주간교수의 독단적인 탄압으로 전임 편집국장 및 기자들을 전원 해고한 뒤로 모든 기사가 검열되고 사실상 활동이 중단돼 있는 상태이다. 당시 해고된 사진기자의 폭로문[32] 부산교대의 신문. 1962년 창간.[33] 과거의 부대신문, The Hyowon Herald(영자신문), PUBS(교내방송국)이 통합되어 단일기관에서 학내신문 및 영자신문, 교내방송을 송출한다.[34] 부산외대 교내방송. 영상 방송과 오디오 방송을 모두 했지만 남산동 이전 후 영상방송은 중단 된 상태[35] 부산외대의 영자신문사 모태는 The Sermo[36] 원래 B동 방송국 옆에 있었지만 방송국만 자리에 남고 영자신문사, 신문사는 도서관(I동) 5층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37] 김문기 및 휘하 세력이 상지대를 주무르던 당시 상지대 총학생회와 더불어 학내 비리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학교에 비판적인 기사를 내지 말라며 편집권을 침해하자 백지발행, 발행 중단, 호외 발행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항의했으며, 이 과정은 여러 학보사와 기성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38] 신라대학교 신문, '진리탐구', '정론직필', '문화창달'을 사시(社是)로 하고 있다.[39] 2020년 예산 삭감으로 신라대학보와 방송국이 같은 기구로 통합되었다.[40] 서강타임즈가 모태이다.[41] 라디오와 영상을 동시에 하는 교내 유일의 종합방송국[42] 대학가 최초의 영상전문방송국이다.[43] 1963년에 창간한 공식 교내신문[44] 1987년에 개국한 공식 교내방송국[45] 총학생회비로 운영되는 교내 유일한 자치언론[46] 연간 발행, 예술대학인만큼 학생들의 에세이, 작품, 비평문, 예술인 인터뷰 등등 예술에 연관된 내용이 주를 이룬다.[47] 서울이 안 들어간다. 전시 연합대학 시절 창간되었기 때문이라고. 1952년 전쟁 중에 창간됐고 1958년부터 한동안은 고등학생을 위한 판을 발행하기도 했다. 당시는 고교 진학률이 낮아 고등학생의 사회적 위상이 지금의 대학생보다도 더 식자층에 가까웠다. 2017년 전 주간교수와 학교 당국의 편집권 침해에 항의해 1면을 백지발행했다.서울대 대학신문은 백지발행 중[48] 2014년 1월 종간[49] 1964년 창간한 공식 학교신문. 2017년 서울시립대신문에서 선배기자가 후배기자를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해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2017년 서울시립대신문 성추행 사건 아카이빙 대학문화도 그렇고 이 동네는 왜 이러냐[50] 대학방송. 다른 학교와 달리 학교명에서 이름을 따오지 않고 학교 소재 행정구역인 전농동에서 이름을 따왔다.[51] 영어영문학과 소모임에서 시작. 비록 언어의 한계로 인해 지원자는 적으나, 상당히 높은 퀄리티의 매거진을 출간해내고 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동시 발행. 현재는 학교에서 상당한 지원을 받는 중[52] 서울시립대 교지. 1978년 창간. '진보시대를 여는 실천의 활자'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활동중. 2010년 당시 예산 삭감 문제로 총학생회와 갈등을 빚었고, 결국 15% 삭감, 이후 5%p 추가 삭감으로 총 20% 예산이 삭감되었다. 활동에는 큰 지장은 없으나 발간부수가 줄었음. 2011년 대학문화 구성원 사이에서 성추행 논란이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 항목의 '다함께 대학문화 성폭력 사건' 참고[53] 1979년 창간[54] 1964년 창간[55] 1971년 설립[56] 총장 직속의 부속기관인 언론출판부가 담당하고 있으며 신문사 외에도 교지편집위원회, 영자신문사, 방송국 등이 속해있다.[57] http://www.smunews.net/[58] '정론직필'을 사훈으로 삼고 있다. 학교의 동향, 소식, 홍보 등이 치중됐지만 간간히 기획/해설 부분에 여론을 들끓는 보도가 올라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2012년 교내 환경미화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알린 글('열악한 환경 속 환경미화노동자들, 우리의 도움 필요해', http://www.smunews.net/496317)과 동 년인 2012년 대학 등록금 인하에 따른 셔틀버스 유료화 정책 논란('복지축소 불러온 등록금인하, 그 원인과 문제 그리고 해결책은?', http://www.smunews.net/495392)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기숙사 문제, 교양과목 축소 문제, 학과 구조개선 문제 등을 보도하며 대학신문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교내 곳곳에 TV가 설치되어 SUBS의 영향이 커졌다.(수업 들으려고 건물로 들어갈 때, 학생식당에서 밥먹고 있을 때, 인쇄를 하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 기다리고 있을 때, 기숙사 매점 앞에서 야식 먹고 있을 때마다 TV에서 틀어주는 SUBS 방송이 나온다.) 작년 2학기 땐 매주 1회를 정해 아침마다 기숙사생들에게 신문을 직접 배포하였는데 이를 봐서 학생들의 구독률이 떨어진 걸로 짐작된다.[59]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센터[60] 1946년 창간으로, 최초의 대학 교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61] 최초의 대학 방송국으로 알려져있다. 1953년 개국.[62]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 내 독립언론. 2012년 3월 창간. 재정적 종속을 막기 위해 자체적으로 예산을 마련한다. 합리적 비판과 건설적인 대안 제시를 지향하며 학내 학생 자치 공동체를 복원하고 건전한 담론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자들은 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활동한다.[63] 독립언론. 2012년 10월 창간. 창간호부터 재단 비리 고발을 중심으로 활약하는 언론으로, 실명이 아닌 필명을 쓰고 있다.[64] 1982년 창간되었다. 사훈은 '정론직필' 이다.[65] 2015년으로 60주년을 맞았다.[66] 2013년 이후로 부원모집 흔적이 없다.[67] 2013년 오보로 인하여 강제폐간 되었다가 2014년 총장 직권으로 다시 복간.[68] 1919년 창간한 최초의 대학 신문이라고 한다.[69] 2001년 10월1일자로 신문사, 방송국, 영자신문사를 합병하여 '안동대언론사'로 새롭게 출범[70] 1979년 5월 28일 창간. 월간/월요일 발행. 2010년 신문사와 영자신문사가 통합(신문사 내에 영자부 운영)[71] 1962년 연세춘추의 부속신문으로 창간되어 지금은 독립하여 월간으로 나온다. 영자신문이다. 사실 신문보단 주간지의 판형을 띄고 있다.[72] 미래캠퍼스 전용 신문[73] 문과대 자치언론이다. 윤동주가 참여한 적도 있다고 한다.[74] 등록금에서 지원이 나가는 형태였으나 자율 경비로 바뀌면서 예산이 줄어들었다. 주로 진보적인 담론을 다루는 계간지다.[75] 원래는 상경대학 신문이었지만 캠퍼스 전체로 확대된 '연세통'의 후신. 연세통의 종이신문 형태를 버리고 잡지 형태로 발행되고 있다.[76] 연대 방송사로 점심이나 저녁에 방송을 내보낸다.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들어오기도 한다. 입 분야를 지망하니 입망생[77]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방송국, 매지리에 속해서 'M'이 추가됨. 2013년 당시 예산이 70% 삭감되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78] 전국 최초로 중국어신문을 매거진 형태로 발간하고 있다.[79] 국문언론이 없고 모두 영어로 발행함[80] 1954년 2월 12일 창간, 주간으로 발행되는 한글판 신문[81] 1954년 시작된 국내 최초 학내 영자신문[82] Ewha University Broadcasting System[83] 앞의 세 언론기관 모두 학교부속기관인 이화미디어센터 소속이다.[84] 1929년에 창간, 이후 잠시 활동을 멈추었다가 1950년에 발간을 재개하였다. 교내 유일의 중앙자치언론이다.[85] 공식 교내신문이다.[86] 1968년 창간된 영자신문.[87] 전남대학교 교지[88] 대학신문의 효시를 주장한다.[89] 1957년 설립된 영자신문이다.[90] 대학방송의 효시를 주장한다. 이쪽도.[91] 중앙대학교 교지로 연 2회 발행. 2009년 58호에 당시 총장이었던 박범훈 총장 및 두산 재단을 풍자하는 만평을 게재하여 배포 몇시간만에 전량회수 당하는 사태가 발생. 이후 2010년 중앙문화와 녹지 둘 다 교지 예산 전면삭감을 발표하고, 1년간에 걸친 논란과 협상 끝에 교지대 분리납부 및 자치언론으로 떨어져 나온다는 조건으로 다시 복간함. 이 사이에 2010년 한겨레21의 지원으로 무제호를 발간하였음.[92] 중앙대학교 여성주의 교지로, 2010년 중앙문화와 같이 예산삭감을 당했다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자치언론으로 복간함.[93] 중앙대 인문학 모임(동아리 아님) 자유인문캠프에서 발행하는 독립언론으로, 두산 재단이 들어온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이들이 모여 2011년 12월 창간. 실명이 아닌 필명으로 쓰며, '잠수함 토끼들'이라는 필진으로 구성되어 있다.[94] 공식 교내신문[95] 공식 교내신문.[96] 영자신문.[97] 교내방송.[98] 교지편집위원회[99] 2017년 김윤배 전 총장 비판 기사 게재를 이유로 학교 측이 신문을 무단 회수해 호외를 발행했다.[100] 공식 교내신문.[101] 영자신문.[102] 교내방송.[103] 교지편집위원회[104] 대전대, 목원대 등 대전지역 대학 중심으로 만든 교지 언론연합. 편집장이 충남대 출신이나, 필진은 대전 이외에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등의 충남지역 대학에서도 참여하고 있다.[105] 충남대 경상대 편집부 신문.[106] 교내 국자신문.[영자신문.] [108] 교내 방송국.[109] 교지편집위원회[110] 교내 국자신문.[111] 교내 영자신문.[112] 교내 방송국.[113] 교내 국자신문[114] 교내 영자신문[115] 교내 방송국[116] 2018학년도 2학기에 청년과학에서 이름을 바꾸었다.[117] 교내 자유언론[118] 교내 국자신문.[119] 교내 영자신문.[120] 교내 방송국.[121] 교내 국자신문[122] 교내 교육방송국[123] 교내 영자신문[124] 교지편집위원회[125] 공식 교내신문[126] 교내 방송국[127]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보사 라는 산하 기관에서 발행[128] 방송대에서 운영하는 OUNTV에서 방송 된다.[129] 외대학보 해직자들이 나와서 외대언론협동조합을 결성 후 만든 독립언론.[130] 영자매거진사[131] 2004년 한국전통문화학교신문방송사 규정 설립으로 한국전통문화학보사와 방송국이 신문방송사로 통합됨.[132] 교내 국자신문[133] 교내 방송국[134] 교내 영자신문[135] 2017년부터 종이신문을 없애고 인터넷판만 발행하고 있다[136] 서울 캠퍼스 교지. 계간지이며 서울 캠퍼스 유일의 중앙자치언론.[137] 약칭 HUBS[138] 영자신문이다.[139] ERICA 캠퍼스 교지.[140] 교지편집부. 하지만 동아리 개념이다.[141] 세종 캠퍼스 교육방송국[142] 약칭 전대기련. 1971년 5월 최초로 전국대학언론인들이 모여 단체를 만들고 발간한 기관지 '필맥'에서 기원했다. 한총련 사건과 IMF, 2000년대 이후로 쇠퇴해 사실상 단절됐으나 한때는 매년 총회에 1000여명이 넘게 모였고, 그 곳에서 각 부서별로 전문가들에게 교육도 받았으며, 공동기자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0년대부터는 지부별 모임, 기자한마당, 수습학교, 5.18 행사 참여 등 부가적인 행사로 명맥을 유지했지만, 2011년 전대기련 현역으로 활동했던 00학번대 마지막 집행부 3명이 퇴임을 하면서 사실상 해체됐다. 해체 이후에도 2012년까지 남은 현역들을 중심으로 기자한마당을 이어갔지만, 2013년 이후에는 전대기련은 물론 기자한마당이란 명칭 자체를 더 이상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지역별로 뜻이 맞는 학보사 기자들이 새로운 모임들을 구성했다(대학언론협동조합 주최 여름기자캠프, 대구경북학보사연합, 부산지역 학보사 모임, 2014 기자캠프, 2015 데드라인 기자세미나, 기타 온라인 모임 등). 사실 전대기련의 역사는 전국구 단위일 뿐더러 유실된 자료가 많고,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일부 보수단체에서는 전대기련을 이적단체라 주장하기도 함) 특정 단체라기보단 지역별 모임으로 바라보면 편할 것이다. 서울동부/서울서부/서울남부/경기·인천/강원/충남/충북/대구경북/경남/광주전남/부산울산지역연합이 존재했다. 8~90년대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의 모임인 '필맥' 페이스북 참조. 어떤 인터넷 블로거가 '전국대학생기자연합'이라는 잘못된 풀네임으로 전달해 한 때 오역으로 논란이 일기도....[143] 약칭 서언회. 서울 지역 학보사 모임이다. 2009년 이주호 교육부 장관 간담회에서 첫 모임을 가졌으며, 2011년과 2014년, 2021년, 2022년 서울시장 후보자 공동취재, 2021년 대통령 후보자 간담회, 편집권 침해 관련 공동성명서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30여 대학(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국민대, 단국대, 덕성여대, 동국대, 동덕여대, 명지대, 삼육대, 상명대, 서강대, 서경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서울여대, 서울예술대, 성공회대, 성균관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예술종합대, 한국외대, 한국체대, 한양대, 한성대, 홍익대) 가입. 학보사 구성원 전체의 모임이라기보단 대표(편집국장)들의 모임에 가깝다.[144] 약칭 서방협. 서울지역 대학 방송국 모임이다. 페이스북 참조.[145] 끊어진 서울 지역대학영자신문연합(Union of Seoul Region Campus English Newspapers, USCEN)의 명맥을 이으면서 전국 규모의 조직 설립을 논의하자는 취지로 2012년에 재탄생한 전국 대학 영자신문 연합회. 주로 수도권 소재 대학으로 구성됨. 공동신문 제작, 연합워크샵 등을 주최했음. 舊 전국대학영자지신문기자연합(이하 전영기련)의 후신으로 추정됨. 싸이월드 페이스북 참조.[146] 약칭 부대련. 부산지역 학보사 모임이다. 부울경 모임 이후 현존하는 지역별 연합 중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8월 동명대, 동아대, 부경대, 부산대, 부산교대, 부산외대, 한국해양대 등 7개 대학 신문사로 결성돼 첫 모임을 가졌다. 2015년 9월에는 법원의 날을 맞아 부경대와 부산대, 부산외대, 한국해양대 등 4개 학보사가 부산고등법원이 주최한 '부산대학언론연합 소속 기자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2015년 9월 21일(월) 발행된 부경대신문 제736호 12면 기획기사 참고 가능.[147] 약칭 부경방련. 매년 여름마다 모임을 하고 있고, 2015년도는 메르스 사태로 인해 모이지 못했다고 한다.[148] 2011년 대구한의대신문과 대구대신문을 중심으로 결성된 대구경북지역 학보사 모임이다. 매월 정기적으로 모여 기자캠프와 지역별 공동 취재, 수습학교 등을 개최하며 활발히 활동했으나 2013년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모임이 지속되지 않음. 싸이월드 참조.[149] 약칭 대경방련. 이 단체 또한 매년 모임을 하고 있다.[150] 2011년 민중의소리 후원으로 준비위원회를 개최한 뒤 2012년 1월 2박3일 일정으로 대학언론캠프를 개최했다. 2012년 3월 서울 여의도에서 창립식을 가졌지만 8월 이후 대학언론캠프가 취소되면서 사실상 해체됐다. 블로그 페이스북 참조.[151] 끊어진 전국교지편집인연합(약칭 전교련)의 명맥을 이으면서 전국 규모의 교류를 논의하자는 취지로 2012년 몽당연필이란 명칭을 확정지어 결성된 수도권 중심 교지연합이다. 2010 외대 성명, 2011 반값등록금 집회 참가, 2012 대선취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한동안 활동이 줄어든 후 2014년 몽당연필 페이스북 그룹에서 부활론이 제기됐으나 담당자가 모 사건에 연루된 내역이 문제가 돼 사실상 해체됐다. 페이스북 참조. 이후 전국적인 교류가 모두 끊겼지만 2015년 3월 동국대신문과 동국교지 언론 탄압을 계기로 교지 간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논의할 온라인 그룹을 만들기 위해 중앙문화 편집장이 전국 교지 페이스북 모임을 만들었다. 참고로 교지 페이스북 그룹은 몽당연필과 관련이 없는 주소이다. 페이스북 참조 가능.[152] 2013년 당시 중앙문화, 고대문화, 대학문화를 주축으로 만든 '문화돌림'이라는 교지연합체에서 발전한 모임. 2013년 12월 1회차, 2014년 3월 2회차 이후 한동안 활동이 없었다. 페이스북 참조.[153] 충남대 보운교지, 카이스트 한울, 목원교지를 중심으로 결성된 대학언론 모임. 주요 사업으로 2014년 6월 1회차, 2014년 9월 2회차로 대전지역 대학언론포럼을 개최했다. 대전지역 대학언론(학보사, 방송국, 영자신문사, 교지 등)사의 언론기구 연합체로 규정을 지었으나 실제로 활동하는 인원은 순수 대학언론 출신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도 다수 포함돼 지역 계간지란 색채가 짙다. 페이스북 참조.[154] 외대학보 편집장이던 강유나가 창간한 외대알리를 시점으로 생겨난 독립언론 모임. 연세두리(舊 연세통)등 당시 서울소재 독립언론들과 함께 시작했으나 의견 불일치로 탈퇴.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조일신이 회대알리를 창간하면서 대학언론협동조합이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이후 세종대(세종알리), 이대(이대알리)를 시작으로 n대알리 프로젝트가 본격화 되었다. 2012년 대선후보 공동기획 준비 및 취재, 2013년 여름기자캠프 주최, 2014년 제2회 대학언론포럼 참가, 2015년 회대언론협동조합 창간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고찌(성균관대), 국민저널(국민대), 뒷담(경기대), 앞담화(동국대), 성신 퍼블리카(성신여대), 잠망경(중앙대), 지스캐치(광주과학기술원), 포춘(포항공대) 등은 해당 모임의 소속이 아님. 참고 사항으로 청주대학교 '청대숲'은 총학생회에서 탄생한 별개의 자치언론이다. 웹사이트 참조.[155] 동덕여대학보와 목포대신문, 서울여대학보, 원광대신문, 한국항공대신문을 중심으로 개최된 행사. 대학신문사의 교류와 연대를 목적으로 2014년 7월과 2015년 1월 2회에 걸쳐 열렸다. 2011년 해체된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약칭 전대기련)의 주요 행사인 기자한마당(싸이월드)이 캠프의 기원이다. 이후 활동이 없다가 2015년 10월 원광대학교 학보사 창간 59주년을 맞아 '제1회 대학언론 컨퍼런스'(관련기사)를 개최했다. 2015년 11월 2일(월) 제1283호 창간 59주년 기념호 6면 특집 참고 가능. 페이스북 참조.[156] 2015년 8월 학보사 기자들의 애환을 풍자한 페이지인 '내가 학보사 힘들다 그랬잖아' 웹사이트 페이스북의 운영진 기자들을 중심으로 주최한 기자 세미나. 대학 언론, 특히 학보사에 대한 위기 상황을 논의하고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디지털 퍼스트 도입, 지역별 특성화 등을 강조했다. 회의 과정에서 독립 언론에 관한 담당자의 발언이 문제가 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페이스북 참조.[157] 전대기련에서 만든 대학 전문 뉴스사이트인 Unews(유뉴스)가 없어지고 페이스북에서 생긴 전국구 단위의 온라인 모임이다. 본래 그룹명은 '전국 대학생 학보사기자 페이스북 모임'으로 2020년 3월 8일 관리자가 바뀐 뒤 학보사 뿐만 아니라 방송국, 영자신문사, 교지편집위원회, 학내 자치·독립언론, 대학원신문 등 참여 단위를 대폭 확대시켰다. 3,000명이 넘는 그룹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0년 8월 전대기련 기자한마당 기획단 중 한 명이 온라인에서 기자들간의 상시적인 정보공유를 위해 만든 것이라 밝혀졌다. 전국구 단위로 유일하게 활성화된 커뮤니티로 알려짐. 페이스북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