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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2 23:40:44

범패



1. 개요2. 역사3. 여담4. 관련 항목

1. 개요

범패()는 불교 관련 의식에서 사용되는 의식용 음악으로 불교의식의 진행시 사용되는 모든 음악을 총칭한다. 정수일불교 사원에서 불경을 송독하거나 찬양하는 음조라고 정의, 설명하고 있다.[1] 어산(魚山)이라고도 한다.

장단(長短)과 화성(和聲)이 없는 단성선율(單聲旋律)이며, 또한 일정한 악보가 없이 입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전승이 어려워 배우기 힘들다. 전문적 스님들에 의해 불려지는 좁은 의미로써의 범패는 크게 안채비소리, 바깥채비소리, 화청(和靑) 이 세 가지를 의미한다. 안채비와 바깥채비 등은 의식의 규모에 따라 구별되는데, 간단한 불공과 시식은 안채비소리로, 그 외 영산재 등은 안채비와 바깥채비소리가 모두 불린다. (천상스님이 단성시율(單聲施聿)을 단성선율(單聲旋律) 바로 잡아 수정 함. 범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선율(呼吸旋律)이다. 방대한 경울론을 범패로 하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호흡길이나 소리를 하는 글자가 미미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호흡에 맞게 하는 호흡선율이다. 호흡이나 글자 위치가 시시때대로 미미하게 변하기 땨문에 항시선율(恒時旋律)로 범패 소리를 할수 없고 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장단, 화청, 단성선율을 항시동음으로 한다는 것은 후학에게 제대로 된 이론이 아닌 잘못된 방법으로 가르치며 허송세월을 하게 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단성선율은 호흡선율이며 대중이 함께 소리를 할 때에는 어장이나 법주에 맞는 단성선율로 맞춰서 한다는 의미이며 개인이 소리를 할 때에는 법주의 선율을 따르지만 개인의 호흡에 맞게 미미한 글자의 위치나 호흡에 따라 선율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단성선율의 의미는 대중이 최대한 같은 선율로 한다는 의미이며 호흡선율로 어장이나 법주는 대중이 따라 하지 못하는 고음이나 너무 호흡을 길게 하며 소리를 길게 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장이나 법주는 남녀노소 대중들도 범패소리를 듣고 따라 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잘 하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범패는 호흡을 편하게 하며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안반수의(安般守意)를 기반으로 하는 호흡선(呼吸禪)이며 호흡명상이다. 천상스님은 범패를 통해 마음선, 호흡선(호흡명상), 염불선, 범패선(범패명상), 수식관, 여래선(경율론) 등을 기반으로 하는 사념처관과 신구의 삼밀수행이며 불교 의식과 불교 전통 음악이라 한다.)

안채비는 본사의 큰스님이나 재(齋)의 진행을 맡은 법주(法主)에 의해 불리는데, 권공(權共) 이유가 담겨있는 4·6체 형식이나 산문 형식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찰 안에서 불리는 일반적인 염불(念佛)이 여기에 해당되며 유치성(由致聲), 착어성(着語聲), 편게성(偏偈聲), 개탁성(開鐸聲) 등이 있다.

바깥채비는 홋소리, 반짓소리, 짓소리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범패는 홋소리를 가리키기도 하며, 범음(梵音)은 짓소리의 별칭이기도 하다. 훗소리는 오언사구(五言四句), 칠언사구(七言四句) 등 한문으로 된 사설과 범어로 된 진언(眞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창 또는 대중창으로 부른다. 반짓소리는 일부만 짓소리로, 나머지 소리는 훗소리나 평염불로 불리는 곡을 말한다. 짓소리는 훗소리에 비해 소리가 청아하며 짧은 게송으로 되어 있지만 연주시간이 길고 장엄하다. 현재 짓소리는 과거 72곡(曲) 중에서 15곡만이 전해진다.

이러한 홋소리, 짓소리를 모두 하는 스님을 어장(魚丈)[2]이라고 하며, 어장은 모든 소리를 자유자재로 하는 것은 물론 의식의 전반적 흐름과 이론에도 밝아야 하므로[3] 말강(末講), 중강(中講), 상강(上講)의 과정을 거친다.

화청(和靑)은 재를 지내는 여러 절차 사이에 어장이 징·북·목탁 등의 타악기를 치며 부르는 것으로서 화청과 회심곡(回心曲)으로 나눌 수 있다. 사설 형식의 가사를 개개인의 독특한 음성으로 부르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음이 쉬워 대중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화청의 내용은 불보살을 청하여 공덕을 찬탄하며 재를 지내는 신도의 소원성취를 기원하거나 영가의 극락정토왕생을 발원하는 의식적 내용으로 되어있다. 회심곡은 인간의 권선징악과 희로애락 그리고 생로병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된 것과 '부모은중경' 중 덕담 부분을 뽑아서 한글로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축원화청을 부르기전에 독창으로 부르며, 실로 종류가 매우 다양한 편이며 《왕생가》, 《열반가》, 《몽환가》 등이 있다,

2. 역사

天竺國俗, 甚重文製. 其宮商體韻, 以入絃為善. 凡覲國王, 必有贊德. 見佛之儀, 以歌歎為貴. 經中偈頌, 皆其式也.
천축국의 풍속은 문장의 체제를 대단히 중시한다. 그 오음(五音)의 운율(韻律)이 현악기와 어울리듯이, 문체와 운율도 아름다워야 한다. 국왕을 알현할 때에는 국왕의 덕을 찬미하는 송(頌)이 있다. 부처님을 뵙는 의식은 부처님의 덕을 노래로 찬탄하는 것을 귀히 여긴다. 경전 속의 게송들은 모두 이러한 형식인 것이다.
<양고승전(梁高僧傳)>권2, 진장안구마라집(晉長安鳩摩羅什)[4]

범패의 기원에 대해서는 영산회상 기원설, 묘음보살(妙音菩薩)의 음악공양설, 중국 조식(曹植) 창작설 등이 있고, 그 전승에 대하여 오(吳)의 지겸(支謙)이 범패삼계(梵唄三契)를 짓고, 강승회(康僧會)가 니항범패(泥恒梵唄)를 만들어 강남에 범패성명(梵唄聲明)을 크게 유행시켰다. 분명한 것은 인도의 종교음악으로부터 불교음악 범패의 원류가 형성되었고 불교의 전래와 함께 실크로드를 따라 불교문화권으로 전래된 문화라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당나라의 유학승 출신으로 쌍계사를 중창한 진감선사(眞鑑禪師)가 범패를 잘했다는 언급이 있어서 으레 한국 범패의 시작으로 진감선사를 꼽고 있는데, '불교 의식 진행 시에 사용되는 모든 음악'의 통칭이라는 범패의 정의를 감안하면 <삼국유사>의 '월명사(月明師)가 지었다는 향가 도솔가(兜率家)를 범패의 시작으로 볼 수 있고, 더 올라가면 신라의 원효가 지었다는 무애가도 종교적 목적을 가진 음악의 하나로써 범패의 하나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의 승려 자각대사(慈覺大師)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서는 중국에 있던 신라의 적산법화원에서 불리는 범패에 당풍(唐風)[5], 향풍(鄕風)[6], 고풍(高風)[7]의 세 종류가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적산원(赤山院)에서의 불교강의(佛經講義) 의식. 아침 8시에 불경강의를 위한 종을 쳐서 대중에게 알리고, 종소리가 그친 이후 한참 있다가 대중이 법당(法堂)에 들어갔다. 바로 그때 대중을 안정시키는 종소리가 울렸고, 강사(講師)가 법당에 들어와 높은 의자에 앉으려 하자 곧 대중이 합창으로 ‘칭탄불명(稱嘆佛名)’을 불렀는데, 그 곡조가 아주 신라풍이었고 당풍을 닮지 않았다. 강사가 자기 자리에 앉자 ‘칭탄불명’을 부르는 소리가 그쳤다. 강사의 아래에 앉았던 한 승려가 당풍의 범패를 불렀는데, 그 가사는 ‘운하어차경(云何於此經)’이란 한 행짜리였다. …그 강사가 자기 자리에 내려오자, 한 승려가 ‘처세계여허당(處世界如虛堂)’이라는 게(偈)를 불렀는데, 그 노래소리가 본국(일본)의 것과 아주 비슷했다.
엔닌 ≪입당구법순례행기≫권 2, 개성(開成) 4년(839) 11월 12일.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는 839년)의 일을 기록했고, 진감선사가 신라로 귀국한 때는 흥덕왕 5년(830년)이었는데, 엔닌의 귀에 신라 범패와 당의 범패, 일본의 범패가 서로 다르게 들렸다는 기록은 이미 동아시아 삼국에 각기 독특한 불교 음악이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이미 진감선사 이전에 신라에서 부르던 고유 범패가 있었고, 진감선사가 당에서 귀국해 옥천사에서 가르쳤다는 범패는 당풍 범패라고 추정한다.

고려 시대 불교는 국교로서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가 국가의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백좌도량(白座道場) 등이 왕궁에 설치되었으며, 특히 의종(1147-1170) 이 각(角)을 부는 취각군사(吹角軍事)와 소라를 부는 취라군사(吹螺軍事)를 세워 연등회에 참석했으므로 범패 또한 상당히 성행한 듯하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의 억불숭유 정책 때문에 자연히 범패도 드물어졌다. 하지만 세종 13년(1431) 8월에 범패가 행해졌던 사실이 문헌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범패의 기록은 '범음종보(梵音宗譜)'(1478), '신간책보범음집(新刊冊補梵音集)'(1713), 백파(白坡)의 '작법귀감(作法龜鑑)'(1828) 등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영조 24년(1748) 범패의 대가 대휘(大煇) 화상이 범음집(梵音集)이 저술했고, '범음족파(梵音族派)'에 범패승들 이름이 많이 기록되었으므로 여전히 민간신앙의 주체로서 범패의 수요는 꾸준히 있었던 모양이다. 작법귀감에서는 범패에 사용되는 선율을 4성[8]으로 언급하는데, 당대의 승려 처충(處忠)이 지은 원화운보(元和韻譜)에서 언급한 사성과도 일치하여 중국어가 형성되던 초기의 성조 체계가 불경 나아가 범패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9]

1911년 6월 사찰령과 더불어 각 본말사법(本末寺法)이 제정되자 조선승려의 범패와 작법이 금지되었고, 의식은 간소화되면서 맥이 끊어지는 듯했으나, 1931년 안진호(安震湖)가 불교의식을 모은 '석문의범(釋門儀範)'을 펴내자 이후 불교의식예법의 필독서가 되었다. 근대에는 서양음악의 도입으로 오선보로 제작 및 편찬된 찬불가가 등장하였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권상로[10]1925년에 제작한 찬불가집 '은듕뎐', 조학유가 '불교'에 게재한 24곡의 찬불가(1926-1927) 등이 있으며, 특히 백용성[11]은 자신의 '대각교의식'에 찬불가 등을 수록하여 찬불가 운동을 통해 대중의 교화를 시도하였다.

해방 이후 불교의 권공의식은 점차 쇠퇴해 갔지만 영남, 호남, 경기를 중심으로 이어졌던 범음이 한국 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지정과 더불어 전승되어 가고 있다. 근대의 맥을 이어 해방 이후 찬불가의 제작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김정묵의 '찬불가(讚佛歌)', 정운문의 '불교동요집'(1964), '행복의 문'(1979), '어린이찬불가'(1985), '불교성가집'(1983) 등을 들 수 있다.

1970년대 이후로는 점차 불교계의 공식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불교음악은 범패를 중심으로 한 전통 불교음악과 새롭게 창작된 다양한 찬불가가 서로 공존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3. 여담

4. 관련 항목



[1] 출처: 실크로드 사전[2] 불교에서도 물고기가 불교의 중요한 상징으로 쓰이는데, 절에 가본 사람들은 나무로 만들어 배가 비어 있는 물고기 모양의 목어라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선종(禪宗)에서 사찰규범의 지침서로 삼고 있는 〈백장청규(百丈淸規)〉에는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자지 않고 도를 닦으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으며, 또한 이것을 두드려 수행자의 잠을 쫓고 정신 차리도록 꾸짖는다”고 적고 있다. 낮이나 밤이나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의 속성을 잠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수행에 정진하는 수도자의 근면한 자세를 강조한 것.[3] 이 점은 종묘제례악이나 문묘제례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4] 해당 전기는 현재 고려대장경 및 다이쇼신수대장경에 실렸다.고승전2 구마라집전(국역 한글대장경) 국역 한글대장경 사이트에서 양고승전의 원문을 제공하고 있는데 검색할 때는 양고승전이 아니라 고승전으로 입력해야 나온다.[5] 중국 범패.[6] 신라풍 범패.[7] 일본식 범패.[8] 맑으면서 멀리 가는 소리(거성), 높은 음으로써 점점 높이 올라갔다가 그치는 소리(상성), 높낮이 없이 급하게 닫는 소리(입성), 애절하면서도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소리(평성).[9] 출처: 윤소희 <중국 한어 성조와 한국 범패>[10] 이 사람 친일파다. 한국 불교계의 수치.[11] 한용운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의 한명으로 참석하기도 했던 불교계 출신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