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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17:57:34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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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주요 관현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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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 그라모폰 소속 주요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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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550724.jpg
정식 명칭 Berliner Philharmoniker
다른 이름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1](영어)
창단 1882년 5월 1일 ([age(1882-05-01)]주년)
정식 데뷔 1882년 10월 17일 [2]
거점 지역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베를린
장르 클래식(고전 음악)
콘서트 홀 Philharmonie Berlin
상임지휘자 키릴 페트렌코
악장 카시모토 다이신[3]
노아 벤딕스 발글레이[4]
비네타 사레이카-뵐크너[5]
공식 레이블 파일:imagesberliner.png 베를린 필하모닉 레코딩스 [6][7]
링크 파일:berlin_Phil_icon.pn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카카오톡 아이콘.svg | 파일:스포티파이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역대 지휘자
3.1. 역대 상임 지휘자3.2. 명예 지휘자3.3. 명예 단원3.4. 한스 폰 뷜로 메달
4. 특징
4.1. 필하모니4.2. 단원
4.2.1. 여성 단원 증가 추세4.2.2. 단원 구성의 국제화4.2.3. 카라얀 관현악 아카데미4.2.4. 기타
4.3. 연주회
4.3.1. 발트뷔네 음악회4.3.2. 제야 음악회
5. 음반/영상물
5.1. 디지털 콘서트홀
6. 비판7. 여담8. 한국인 지휘자 · 작곡가와의 연관9. 주요 수상10. 기타11. 전현직 단원 중 유명 인물12. 관련 문서

1. 개요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거점으로 하고 있는 관현악단이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라고 하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 두 곳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 유명한 베를린 필하모니에 상주하고 있는 상주 오케스트라이기도 하다.

줄여서 '베를린 필'이라 부르는 경우도 많다. 베를린 필이라는 표현이 한국일본에서만 쓰이는 표현으로 지양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8] 사실은 영미권에서도 웹상이나 구어에서 Berlin Phil이라며 자주 쓰는 표현이다.[9]

파일:FOttw8Gb.png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엠블럼, '삼중 오각형'(triple pentagon).
공간, 음악, 사람의 통합을 의미한다.

2.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역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역대 지휘자

3.1. 역대 상임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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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ddd> 임시
(1882–1887)
초대
(1887–1894)
2대
(1895–1922)
3대
(1922–1945)
루드비히 폰 브레너 한스 폰 뷜로 아르투르 니키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rowcolor=#000,#ddd> 임시
(1945)
임시
(1945–1952)
3대
(1952–1954)
4대
(1954–1989)
레오 보르하르트 세르주 첼리비다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rowcolor=#000,#ddd> 5대
(1989–2002)
6대
(2002–2018)
7대
(2019–)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 키릴 페트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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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명예 지휘자

3.3. 명예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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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지휘자
(2019)
명예 단원
(1992)
명예 단원
(2004)
명예 단원
(2014)
다니엘 바렌보임 다니엘 바렌보임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명예 단원
(2016)
명예 단원
(2018)
명예 단원
(2019)
오자와 세이지 마리스 얀손스 주빈 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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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한스 폰 뷜로 메달

Hans-von-Bülow-Medaille (Hans von Bülow Medal).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위대한 지휘자들에게 수여되는 메달.

4. 특징

4.1. 필하모니

독일에서 사실상 최초의 자립 관현악단이자 연주회 전문 악단이었고,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상주 공연장도 무대 작품 상연과는 관계 없이 콘서트를 전문으로 하는 공연장을 사용하고 있는데, 첫 번째로 입주한 필하모니(Philharmonie)는 베른부르크 거리에 위치한 실내 스케이트장을 개축한 건물이었다. 베를린 시민들은 겉모습이 기차역 같다고 해서 철덕으로 유명했던 힌데미트를 풍자해 '힌데미트 역(Bahnhof Hindemith)' 라고 불렀는데, 1944년 1월에 연합군의 공습으로 박살났다.

파일:PHIL-n.jpg
3D로 복원된 옛 필하모니의 모습.

이후 국립오페라극장, 아드미랄팔라스트, 베토벤홀 등 시내의 다른 공연장이나 티타니아 팔라스트 같은 영화관, 베를린 음악대학 콘서트홀 등에서 셋방살이를 했다. 당시 음반 녹음은 대부분 베를린 달렘에 소재한 예수 그리스도 교회(Jesus-Christus-Kirche)에서 녹음했다. 두 번째 공연장으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새 필하모니는 1963년에 건축가 한스 샤룬의 현대적인 설계로 건립된 건물이다.

파일:7A6F5023-F1F7-45B5-8A03-AD21CA283FB6.jpg
필하모니 외부 전경

겉보기에는 서커스단 텐트처럼 보인다고 해서 '카라얀 서커스(Zirkus Karajani)' 라고도 불리는데, 내부는 무대를 중심으로 모든 객석이 포도밭처럼 둘러싸는 혁신적인 형태로 배치되어 화제가 되었다.[10] 1987년에는 샤룬의 유작을 기반으로 제자인 에드가 비스니에프스키가 보완 설계한 부속 공연장인 실내악당(Kammermusiksaal)도 개관했고, 베를린 필 단원들의 실내악 모임 연주회 등에 주로 쓰인다.

파일:20150618171657.jpg_detail_image.jpg
오각형 모양의 필하모니 내부 모습.

4.2. 단원

4.2.1. 여성 단원 증가 추세

푸르트벵글러 재임 시절 까지만 해도 단원 구성은 독일인 혹은 인근 국가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거기에 성별까지 죄다 남성이었다. 이 때문에 종종 라이벌로 여겨지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남자의 자존심' 을 상징하는 악단으로 간주되었는데, 1980년대 자비네 마이어 사태도 이러한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악단의 체질을 드러낸 것으로 여겨진다.

독일 출신 일색이었던 단원들의 국적은 카라얀 재임기의 오랜 시간을 거치며 국제적으로 면모했는데, 여기에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1963~64년에 새로운 호른 수석 주자를 뽑을 때, 카라얀이 가장 높이 평가했던 연주자가 스웨덴 출신이었는데, 호른 단원들이 독일적인 어두운 사운드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반대하여 채용되지 못했던 경우가 있었다. 1969년 플룻 수석을 뽑을 때도 카라얀이 추천했던 제임스 골웨이에 대해 목관 단원들의 거부감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심지어 전설적인 콘서트 마스터 미셸 슈발베[11]를 뽑을 때도 단원들의 반발이 있어서 카라얀이 이를 무마하기 위한 발언을 해야할 정도였다. 그러나 카라얀 후기에는 실력이 뛰어나다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입단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플루트의 제임스 골웨이(영국), 비올라의 쓰치야 구니오(일본), 바이올린의 야스나가 도루(일본) 등이 들어가 점차 국제적인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다. 특히 야스나가는 이후 악단의 얼굴인 악장(콘서트마스터)으로 선임되었는데, 그는 베를린 필의 국제적인 특징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여성 단원과 관련해서는 자비네 마이어 사건 직후 페미니즘의 상승세와 여성 음악인들의 급증 등으로 베를린 필도 더 이상 '여성 불가' 의 입장을 고수하지 않고 있고, 카라얀 재임 후반기인 1982년에 스위스 출신의 마들렌 카루초가 제1바이올린 정단원으로 뽑힌 이래 지금까지 다수의 여성 연주가들이 정식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3년 2월 라트비아 태생의 비네타 사레이카-뵐크너(Vineta Sareika-Völkner)를 베를린 필하모닉 역사상 첫 악장에 임명하면서, 빈 필하모닉이 2011년 알베나 다나일로바를 역사상 첫 여성 악장으로 선임한 지 12년이 지나 베를린 필하모닉도 금녀의 벽을 확실히 허물게 된다.

4.2.2. 단원 구성의 국제화

전세계 연주자들을 상대로 하는 단원 모집도 계속되고 있는데, 특히 관악 단원들의 경우 대부분 비독일인들로 구성될 정도. 심지어 콘트라베이스의 에딕손 루이스(베네수엘라) 같은 경우 불과 18세의 나이로 정단원에 뽑혀 충공깽을 선사했다.[12] 모두를 더 경악시켰던 사실은 그가 최초로 남아메리카에서 뽑혔고 빈민가 출신이라는것... 참고로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 출신이기도 하다.

쓰치야와 야스나가 이래로 일본인 혹은 일본계 현악 단원들이 수석/부수석급이나 악장(콘서트마스터)을 맡는 경우도 늘어났는데, 2009년에는 야스나가의 뒤를 이어 카시모토 다이신이 두 번째 일본인 악장으로 선임되었다. 2018년 비올리스트 박경민이 정식으로 입단하면서 비로소 최초의 한국인 베를린 필하모닉 정단원이 탄생하였다.

4.2.3. 카라얀 관현악 아카데미

단원 수급은 걸출한 연주자를 오디션과 견습 기간을 거쳐서 뽑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카라얀 재임기부터 수석급 연주자들이 학생 연주자들을 지도하는 '관현악 아카데미(Orchestra-Academy)' 라는 제도를 마련한 이래로 이 쪽을 통해 입단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물론 이 아카데미를 거쳐간 연주자들은 굳이 베를린 필이 아니더라도 다른 악단들의 단원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꽤 많아서, 관현악단 입단을 목표로 하는 연주자들의 등용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4.2.4. 기타

악단 활동과 병행해 단원들이 꾸려나가는 실내악 활동도 활발한데,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을 따지자면 '베를린 필하모닉 12 첼리스트' 를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여러 악기 편성으로 구성된 실내악 그룹이 결성되어 있고, 1990년대 후반 부터는 시대 고증에 맞추어 연주하는 시대연주의 강세를 반영하듯 '베를린 바로크 졸리스텐' 등의 시대연주 계통 그룹도 인기를 얻고 있다.

단원들의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하다. 푸르트벵글러나 카라얀 등 워낙 카리스마가 있는 지휘자 밑에 있었기 때문에 아예 상임지휘자가 없는 빈 필에 비해 순종적인 이미지로 비춰지기도 한다. 옆 동네 빈 필은 상임지휘자가 없고 입단 과정도 꽤 복잡한 만큼 고참 단원들이 주축이 되어 악단의 분위기를 이끌어야 되는 시스템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치지만, 베를린필의 경우 그냥 악단 개개인이 모두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아닌 연주자로써의 자존심과 프라이드가 매우 세다. 거의 단원들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라 어지간한 지휘자들도 설설 긴다.[13][14] 번스타인도 베를린 필을 처음 지휘하고 단원들의 거만한 태도에 많이 불쾌해했고, 아바도도 임기 내내 리허설 시간에 단원들의 노골적인 항의를 들어야 했다.[15]

카라얀 역시 자비네 마이어 사건 때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과도하게 갈등을 빚은 감이 있다. 특히 목관악기 단원들의 자존심과 입김이 센 편인데, 베를린 필의 목관악기 수석들은 해당 악기 최고의 명인들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비네 마이어 사건 때 카라얀과 갈등을 주도했던 단원도 대부분 목관 수석 단원들이었다. 반면 훗날 단원들의 인터뷰로 볼 때, 현악기나 금관/타악 파트 단원들의 상당수는 카라얀에 우호적인 경우도 많았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4.3. 연주회

정기 연주회 이외에는 제야 음악회[16]가 유명하며, 여름에 시즌을 마무리하며 베를린 올림피아 슈타디온 근처의 대규모 야외 공연장인 발트뷔네(Waldbühne)에서 개최하는 특별 대중 음악회와 악단 창립 기념일을 전후해 유럽 각지의 유서 깊은 공연장/사적에서 진행하는 유러피언 콘서트도 유럽 전역에 중계되고 거의 매년 DVD로 발매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외에도 현대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심야 음악회가 있다.

자선음악회나 사회적 이슈를 기념한 음악회도 가끔 열리는데, 그 예시에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 '동독 시민을 위한 음악회',[17] 2010년 '유니세프 아이티 지진 긴급 구호를 위한 자선음악회',[18] 2016년 '난민과 조력자를 위한 특별 음악회'[19] 등이 있다.

참고로 일본/대만/중국으로의 아시아 투어는 거의 매해 진행되고 있으나, 한국은 2017년 이후 발길을 끊은 상태다. 1984년 카라얀 내한 이후 아바도 시대에는 내한이 없다가 래틀 취임 이후 2005년 첫 공연을 시작으로 2008년 재 내한, 이후 격년 주기 수준으로 내한하였으나 2017년 공연중 녹음질하던 인간이 뭘 잘못 눌러서 직전 녹음된 곡이 재생되어 계속 흘러나오는 사건이 있었고 이후 대놓고 배제되는걸 봐서는 제대로 미운털이 박힌 듯 하다.[20]2017년 당시 기사 그러나 2023년 6년 만에 다시 내한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4.3.1. 발트뷔네 음악회

Waldbühne, Berlin

굉장히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는데, 정기연주회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소품은 물론, 영화음악도 종종 연주한다. 해마다 발트뷔네 음악회의 마지막 곡으로 파울 린케의 '베를린의 공기'를 연주하는 전통이 있다. 관객들의 휘파람 소리가 압권인데, 관객들과 호흡한다는 점에서 빈 필하모닉라데츠키 행진곡과 유사한 느낌이다.[21] 또한 지휘자들의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곡이다. 그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역대 발트뷔네 프로그램 펼치기 · 접기 ]
|| 연도 || 지휘자 || 주제 || 내용 ||
1984 라인하르트 페터스 베를린
한 여름밤의 꿈
표트르 차이콥스키, 조지 프레드릭 헨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23]
1985 다니엘 바렌보임 . 주세페 베르디, 프란츠 슈베르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986 에리히 라인스도르프 . 모리스 라벨, 조르주 비제, 프란츠 리스트, 펠릭스 멘델스존
1987 라파엘 프뤼베크 데 부르고스 . 표트르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등
1988 로린 마젤 . 사라 브라이트만 협연.
1989 콜린 데이비스 . 엑토르 베를리오즈, 요하네스 브람스, 안토닌 드보르자크
1990 다니엘 바렌보임 . 로베르트 슈만 '4대의 호른과 관현악을 위한 연주회 소품' 등
1991 클라우디오 아바도 .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4번',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불새' 등
1992 조르주 프레트르 프랑스 음악 엑토르 베를리오즈, 모리스 라벨, 클로드 드뷔시, 조르주 비제
1993 오자와 세이지 러시아의 밤 표트르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불새' 등
1994 마리스 얀손스 다뉴브 왕조 음악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박쥐 서곡', 프란츠 폰 주페 '경기병 서곡', 프란츠 리스트 '헝가리 랩소디 2번' 등
1995 사이먼 래틀 미국 음악 레너드 번스타인 '캔디드 서곡', 조지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 '포기와 배스' 등
1996 클라우디오 아바도 이탈리아의 밤 주세페 베르디 '아이다' 중 개선 행진곡, 조아키노 로시니 '기욤 텔 서곡' 등
1997 주빈 메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 표트르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24]
1998 다니엘 바렌보임 라틴 아메리카의 밤 모리스 라벨 '볼레로', 조르주 비제 '카르멘 모음곡 1번', 호아킨 로드리고 '아랑후에즈 협주곡'[25]
1999 제임스 레바인 바그너와
슈트라우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돈 후안', 리하르트 바그너 '발퀴레의 기행' 등
2000 켄트 나가노 리듬과 댄스 조지 거슈윈의 곡들, 모리스 라벨 '라 발스' 등
2001 플라시도 도밍고 스페인의 밤 파블로 데 사라사테 '지고이네르바이젠', 쥘 마스네 '타이스 중 명상곡'[26]
2002 마리스 얀손스 앙코르의 세계 니콜로 파가니니 '베네치아의 사육제'[27], 안토닌 드보르자크 '슬라브 무곡', 김연준[28] '엘레지' 등
2003 오자와 세이지 거슈윈의 밤 조지 거슈윈 '파리의 미국인', '랩소디 인 블루' 외 다수[29]
2004 사이먼 래틀 차이콥스키의 밤 표트르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30], '호두까기 인형' 등
2005 사이먼 래틀 프랑스 음악 카미유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31], 에릭 사티 '짐노페디 1번'[32]
2006 네메 예르미 동방의 밤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세헤라자데', 에드바르 그리그 '페르귄트 모음곡', 칼 닐센 '알라딘' 등
2007 사이먼 래틀 랩소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33], 제오르제 에네스쿠 '루마니아 랩소디' 등
2008 구스타보 두다멜 밤의 리듬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들
2009 사이먼 래틀 러시아적 리듬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34],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등
2010 이온 마린 사랑의 밤 자코모 푸치니 '잔니스키키'[35], 에드워드 엘가 '사랑의 인사' 등
2011 리카르도 샤이 펠리니, Jazz & Co.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재즈 모음곡 2번', 니노 로타 영화음악 '길' 등
2012 안드리스 넬손스 차이콥스키 음악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음악들
2013 사이먼 래틀 베토벤과 멘델스존 루드비히 판 베토벤 '교향곡 9번', 펠릭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36]
2014 구스타보 두다멜 차이콥스키와 브람스 표트르 차이콥스키 '로미오와 줄리엣', 요하네스 브람스 '교향곡 1번' 등
2015 사이먼 래틀 영화음악 스콧 브래들리 '톰과 제리', 존 윌리엄스 '인디아나 존스 레이더스 마치', '스타워즈 메인 타이틀' 등
2016 야니크 네제 세갱 체코의 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나의 조국 중 2번 몰다우' , 안토닌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 등
2017 구스타보 두다멜 바그너와 슈만 로베르트 슈만 '교향곡 3번', 리하르트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등
2018 사이먼 래틀 사이먼 래틀과
막달레나 코제나[37]
에드워드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 1번', 조세프 캉틀루브 '오베르뉴의 노래' 등
2019 투간 소키예프 동화의 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모리스 라벨 '세헤라자데'[38]
2020 구스타보 두다멜 올림픽의 밤 모리스 라벨 '볼레로' 등 (예정)
출처 : https://www.berliner-philharmoniker.de/en/history/beginning/

파일:maxresdefaultrgre.jpg

4.3.2. 제야 음악회

Silvesterkonzert / Gala from Berlin
매년 12월 31일 저녁, 새해를 기념해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열리는 특별 콘서트이다. 상임 지휘자가 지휘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상임 지휘자 교체기에는 악단의 주요 객원 지휘자가 지휘하는데, 1989년 송년 음악회는 오자와 세이지가, 2001년, 2018년 송년 음악회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했다.

5. 음반/영상물

많다. 정말 드럽게 많다. 특히 카라얀 재임기에 만든 음반들은 현대 작품을 제외하면 웬만한 관현악 레퍼토리를 거의 다 커버할 정도로 종류도 많고, 한 곡을 여러 번 녹음한 사례도 많다. 베토벤 교향곡 전집의 경우 카라얀과 녹음한 것이 여섯 종류,[39] 아바도와 녹음한 것이 두 종류,[40] 그리고 앙드레 클뤼탕스가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에 EMI에 취입한 것, 베를린필 자체 레이블에서 나온 사이먼 래틀의 전집까지 열 종류고, 브람스 교향곡 전집도 푸르트벵글러,[41] 카라얀, 아바도, 래틀의 지휘로 만들어진 것을 모두 구할 수 있다.

물론 카라얀 이전에도 이 악단이 녹음한 사례를 꽤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최초 녹음은 알프레트 헤르츠라는 지휘자가 1913년 9월에 만든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 의 관현악 모음곡 편곡이다. 두 달 뒤에는 상임이었던 니키슈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5번이 녹음되었는데, 제대로 된 편성으로 녹음된 첫 교향곡 전곡이라는 기록을 세워 유명하다.[42]

푸르트벵글러도 1926년에 베토벤 교향곡 5번 녹음으로 첫 음반을 취입했고, 1937년부터 2차대전 직전까지는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EMI로 이적해 음반 제작을 했다. 종전 후에도 도이체 그라모폰에 남긴 슈베르트와 하이든, 슈만의 교향곡 녹음이 명반으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녹음을 원체 싫어했던 만큼, 이외의 녹음들은 대부분 방송국에서 제작한 실황들이다.

정규 음반 녹음은 아니지만 2차대전 중에 제국 방송국이 방송용으로 테이프에 녹음한 실황이나 방송녹음도 꽤 중요한 자료인데, 훗날 '전시 녹음(Wartime Recordings)' 이라고 해서 LP와 CD로 숱하게 복각되어오고 있다. 전후에 제작된 실황녹음들도 차츰 정규 앨범으로 선보이고 있는데, 2000년대 후반 베를린 필 재단 측에서 독자 기획한 CD 시리즈가 나와 화제가 된 바 있다.

영상물의 경우 푸르트벵글러 시절에 주간뉴스나 기록영화 등의 형태로 남아 있는 흑백 영상물도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카라얀이 만든 것이다.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 전집, 차이콥스키 후기 교향곡(4-6번) 등 굵직한 것에서부터 각종 서곡이나 협주곡, 송년음악회 실황 등 굉장히 많은 수의 영상물들이 비디오 테이프, LD, DVD 등으로 계속 나오고 있다. 아바도와 래틀도 카라얀 만큼은 아니지만 음반과 병행해 종종 영상물을 내놓고 있고, 다른 객원 지휘자들이 만든 것들도 있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베를린 필 자체 레이블이 출범했고, 이전에 이미 출시된 바 있는 마태 수난곡 영상물을 포함하여 요한 수난곡의 영상물, 래틀의 슈만 교향곡 전집, 아르농쿠르와의 슈베르트 교향곡 전집도 제작되었다. 이 외에도 전술핬던 사이먼 래틀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 존 애덤스 에디션[43], 아시아 투어 앨범, 키릴 페트렌코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래틀의 말러 교향곡 6번, 주빈 메타가 지휘한 브루크너 교향곡 8번 앨범 등을 계속해서 베를린 필 레이블을 통해 출시하고 있다. 물론 자체 레이블 출범 이후에도 도이치 그라모폰과 종종 앨범을 내놓고 있다. 래틀과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함께한 레너드 번스타인 교향곡 2번 음반이 대표적이다.

일본 성우이시다 아키라쿠기미야 리에가 녹음한 드라마 CD 《호두까기 인형》에도 참여한 바 있다. 2010년 작품으로 래틀 시절.

5.1. 디지털 콘서트홀

"공연장에서 맞이하는 청중은 기껏해야 2000명 정도지만, 음반과 영상물로는 수십 수백만 명을 맞이할 수 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 발언이 현실이 되었다.[44]
래틀 재임기에 들어서 인터넷의 보급률을 이용해 공연 실황 영상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제공하는 '디지털 콘서트 홀' 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물론 유료다.[45] 하지만 디지털 콘서트 홀의 수준을 보여주기 위해 회원[46]에 한하여 사이먼 래틀베토벤 교향곡 4,7번을 무료로 열어두었다. 또한 회원가입을 하면 일주일 정도의 이용권을 증정하는 경우도 있다. 2019년 키릴 페트렌코 상임지휘자 취임을 기념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베토벤 교향곡 7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47], 스크랴빈의 교향시 '법열의 시', 엘가의 교향곡 2번이 무료 체험 공연 영상으로 추가되었다.

지원 언어 중 한국어가 있으며, iOS, 안드로이드모바일 이 존재한다.




디지털 콘서트홀 링크

6. 비판

물론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고, 이 악단에도 흑역사는 존재한다. 특히 나치 시대에 '제국 관현악단' 으로 활동했던 전력이 흔히 떡밥으로 나오는데, 나치 관제 단체를 위한 콘서트나 점령지 순회 공연이 주요 부역 사례로 언급되곤 한다. 실제로 전후 미국에서 진행한 첫 순회 공연 때도 반나치 시위대들이 공연을 저지하려고 했으며, 카네기홀에서 공연했을 때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홀 안에 풀어놓기도 했다.

이후 콘라트 아데나워 정부의 원점(Nullpunkt) 정책과 냉전 등으로 인해 이러한 비판은 잠시 소강 상태에 있었지만, 1960년대 후반 이후 신좌파의 세력이 커지면서 다시금 화두로 떠올랐다. 이는 상임 지휘자였던 카라얀의 나치 당원 전력과 더불어 베를린 필로서는 별로 회상하고 싶지 않은 치부였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덮어둘 수도 없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결국 2000년대 들어 악단 내부에서도 나치 시대를 비판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왔고, 자신들의 흑역사를 여과 없이 까발리는 다큐멘터리 영화인 '제국 관현악단'의 제작을 지원하는 대인군자의 자세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에 앞서 1990년에는 이스라엘에서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평화와 화해의 합동 공연' 을 개최하는 등, 나치 시대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 되고 있다. 또한 사이먼 래틀의 뒤를 이은 상임 지휘자로 유대계키릴 페트렌코가 부임한다는 점도 의미 있는 결정이라는 의견이 있다.

7. 여담

현대 음악을 좋아하는 쪽에서는 비록 아바도와 래틀이 그 쪽에 조심스럽게 발을 담가놓은 결과물들이 있다고 하지만, 아직 그리 높이 평가하지는 않는 듯 하다. 비록 시대가 지나면서 여러 면에서 체질 개선이 되고 있다지만, 아직까지 난해하고 고도의 정밀함이 요구되는 현대곡의 소화력은 '앙상블 모데른' 등 현대음악 전문 연주 단체에 비하면 넘사벽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물론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서 어떻게 될지 두고봐야 할 상황이다. 특히 2019년 키릴 페트렌코가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이후, 아르놀트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레너드 번스타인, 파울 힌데미트 등의 20세기 현대음악 연주 횟수를 매우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하지만 일부 작곡과 전공생들이나 현대음악가들을 제외하면 현대음악의 인기가 시궁창이라 현대음악을 자주 다루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청중과 평론가가 훨씬 많다. 아바도 시절 이후 현대음악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에 대해 많은 청중들과 평론가들이 비판한 바 있다. 비싼 돈을 주고 시즌권을 구매한 청중들의 상당수는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현대음악가의 작품을 고통스럽게 듣는 대신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거장 작곡가들의 명곡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평론가들 역시 근래 상임지휘자들이 베토벤 등 전통적인 레퍼토리를 기피하고 대신에 알려지지 않은 현대음악을 집중적으로 연주하여 푸르트벵글러나 카라얀과 같은 전임자들과 비교되는 것을 피하려 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해외 음악 애호가들 역시 베를린 필이 수요가 거의 없는 현대음악 연주에 재능을 낭비하기보다 명곡들을 더욱 다양한 지휘자들과 다양한 해석으로 재연하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
빈 필과 함께 관현악 지휘자라면 한 번쯤은 지휘해보고 싶어하는 악단이고, 실제로 객원 출연이라도 진입 장벽이 대단히 높아 수많은 지휘자들이 피눈물을 뿌리고 있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는데, 2000년에 베를린 중심가인 포츠담 광장에 세워진 소니 센터의 개장 기념 공연에서 소니 회장과 CEO를 역임한 일본의 기업인 오가 노리오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하는 일이 있었다. 다만 오가 노리오는 음악의 문외한은 아니고 일본 최고의 음대인 도쿄예술대학과 독일 최고의 음대인 베를린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음악 전공자다. 그는 베이스 가수로 실제로 무대에서 공연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를린 필이 이 '음악적으로 불확실한 인물' 에게 지휘 무대를 마련했다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다.[49] 빈 필을 아예 돈주고 사서 녹음한 길버트 카플란의 사례와 비슷한데, 이 이벤트도 베를린에 강하게 불어닥친 일본 자본의 영향력을 반영한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베를린과 빈 모두 일본 대기업의 투자와 관광객 수입으로 먹고 산다는 예술 단체도 많고, 특히 베를린 도이치오페라극장과 빈 국립오페라극장은 정규 시즌에도 일본인 관람객들로 북적일 정도. 사실 일본이 무작정 투자만 하는건 아니다. 우리나라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클래식음악 여건과 환경이 갖춰져 있는 나라다. 일찍부터 메이저급 지휘자가 많이 나온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8. 한국인 지휘자 · 작곡가와의 연관

1. 안익태
베를린 필을 처음 지휘한 한국계 지휘자는 안익태이다. 기존에는 1940년을 시작으로 몇 차례 지휘했다고 되어 있었는데, 2000년대 초반 베를린 필 문서보관소의 협력을 얻어 진행된 사료 조사 결과, 1943년 8월 18일에 열린 '여름 특별 음악회' 때 단 한 차례 지휘한 것으로 확인되었다.[50] 다만, 한국인 안익태가 아니라 일본인 에키타이 안(Ekitai Ahn)으로 활동했으며, 동명의 일본 아악(가가쿠)에 큰 영향을 받은 자작 관현악곡 '에텐라쿠'가 포함되는 등의 행적이 나타나, 그가 사후 비판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2. 금난새
안익태 이후에는 1977년 카라얀 국제 지휘자 콩쿠르에서 4위로 입상한 금난새가 그 해 10월 1일 입상자 기념 연주회에서 베를린 필을 지휘했다. 등수가 등수였던 만큼 무대에서 지휘한 곡은 베버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 뿐이었다.[51]

3. 정명훈
금난새 이후 정명훈이 세 번째로 베를린 필을 지휘했는데, 1984년 5월 30일에 처음 지휘대에 오른 이후 2001년 12월 8일까지 총 9회의 연주회를 지휘했다. 그러나 몇몇 단원들과의 마찰 때문에 2001년 이후 오랜 동안 소원한 관계가 유지되었다. 2012년 10월 18~20일 거의 11년 만에 베를린 필을 지휘하게 되어 국내에서 화제가 되었지만, 급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아들의 간병을 위해 출연을 취소하였고 크리스티안 예르비가 대신 지휘를 맡았다. 이후 2014년 5월 8~10일 출연했고, 이 무대에서는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과 진은숙의 첼로 협주곡(알반 게르하르트 협연),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을 지휘했다. 이것이 현재까지 정명훈이 마지막으로 베를린 필을 지휘한 공연으로 남아있다. 진은숙 첼로 협주곡 공연은 베를린 필이 '진은숙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음반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4. 윤이상
논란이 있는 안익태를 제외한다면, 처음으로 연주된 작품으로 윤이상의 '교착적 음향' 을 꼽을 수 있다.[52] 이어 '예악' 과 오라토리오 '오 연꽃 속의 진주여' 가 공연되었고, 1973년과 1984년, 1987년에는 각각 관현악 작품인 '서곡', 교향곡 1번[53]과 교향곡 5번이 세계 초연되었다. 다만 카라얀이 동시대 음악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관계로, 이들 공연은 모두 라인하르트 페터스와 한스 첸더 같은 객원 지휘자가 맡았다. 현재 베를린 필이 연주한 윤이상 녹음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은 1981년의 '무악' 과 1987년 교향곡 5번 세계 초연(이상 한스 첸더 지휘), 1988년 '서주와 추상' (로린 마젤 지휘) 세 가지.

5. 진은숙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의 작품들도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꽤 많이 연주되었다. 총 6회 연주되었는데, 2011년 12월 10일에 사이먼 래틀의 지휘로 앙상블과 소프라노를 위한 '문자 퍼즐, 기계적인 환상곡'이 연주된 것이 최초이다. 두 번째로는 2014년 5월 10일에 정명훈 지휘, 알반 게르하르트 협연으로 진은숙의 첼로 협주곡이 연주되었다. 세 번째로는 2015년 6월 25일 사이먼 래틀 지휘, 소프라노 바버라 해니건 협연으로 '사이렌의 침묵'이, 네 번째로는 2017년 11월 3일 사이먼 래틀 지휘로 '현의 춤'이, 다섯 번째로는 2021년 6월 5일 사카리 오라모[54] 지휘, 김선욱 협연으로 피아노 협주곡이, 그리고 여섯 번째로는 다니엘 하딩 지휘로 '로카나'가 연주되었다. 이 중 '사이렌의 침묵'은 독일 초연이며, '현의 춤'은 베를린 필하모닉 재단이 진은숙에게 직접 작곡을 의뢰한 것이다. 이후 2023년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지금까지 베를린 필이 녹음한 진은숙 작품을 모아 '진은숙 전집' 음반을 발매 했는데, 생존하는 작곡가의 전집 음반을 발매한 것은 존 쿨리지 애덤스 이후 진은숙이 두 번째이다.

6. 김은선
2024년 4월 21일에는 지휘자 김은선의 지휘 데뷔가 예정되어 있다. 쇤베르크의 오페라 '기대'와 라흐마니노프교향곡 3번을 지휘할 예정이다.#

9. 주요 수상

그래미 어워드

10. 기타

11. 전현직 단원 중 유명 인물

악장
현악
목관
금관

12. 관련 문서



[1] 독일어 공식 명칭이 Berliner Philharmoniker라서 영어 명칭이 Berlin Philharmonic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영어권에서도 이런 표기가 점차 많이 쓰이고 있지만 베를린 필의 공식 영어 명칭은 창단 이래 2022년 현재까지 언제나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다. 다만 베를린 필은 2010년대 이후 영어식 명칭을 안쓰고 Berliner Philharmoniker를 고유명사화해서 각종 영어 문서에도 악단 이름 만큼은 거의 원어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2] 출처[3] 런던 태생의 일본인 바이올리니스트. 1996년 프리츠 크라이슬러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이며, 2009년 토루 야스나가의 후임 악장으로 입단했다.[4]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2014년 가이 브라운슈타인의 후임 악장으로 입단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단하기 이전에는 2011년부터 3년간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역임했다.[5] 1986년생 라트비아 출신으로 2022년에 입단했으며, 전설적인 악장 다니엘 슈타브라바의 후임이자, 베를린 필하모닉 역사상 첫 여성 악장이다.[6] 자체 레이블[7] 도이치 그라모폰, EMI 등에서도 음반을 낸다.[8] 이런 주장은 1980년대부터 있어왔다.[9] 심지어 베를린 필하모니커의 디지털 콘서트 홀 모바일 앱 이름 또한 화면 상에서는 Berlin Phil로 나온다.[10] 이 설계는 이후 건립된 콘서트 공연장들이 많이 모방하고 있다. 일본 도쿄의 산토리홀은 아예 카라얀이 샤룬식 설계를 쓰라고 강하게 권하기까지 했고,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도 비슷한 방식으로 지었다고 볼 수 있다.[11] 스위스 출신[12] 푸르트벵글러 재임 시절에도 바이올리니스트 게르하르트 타슈너가 19세의 나이로 악장에 선임된 바 있었는데, 아주아주아주아주 예외적인 경우였다.[13] 현재는 좀 덜하지만 80~90년대까지만 해도 객원지휘자가 와서 어줍잖게 악단 휘어잡으려고 했다가는 리허설 현장이 불바다로 변하기 일쑤였으며, 한국의 정명훈 지휘자가 베를린필 모 단원과 리허설 도중 크게 싸우고 그 이후로 베를린필과의 관계가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일도 있다[14] 현재는 좀 덜하고 하는데, 요즘 베를린 필 단원들의 찌르는 자존심과 고압적인 자세는 예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다만 지휘자들의 리허설 방식 자체가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스타일과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단원들과 직설적인 마찰을 빚는 경우는 덜할 뿐이다.[15] 아바도 취임과 함께 도입한 민주적인 방식이 오히려 깐깐한 지휘자들에게는 장애물이 된 셈. 심지어 상임 지휘자의 재선임이나 신규 영입 투표에서도 단원들의 의견이 엇갈려 논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악단의 민주적인 운영 방식과 지휘자의 지도력이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 과정이라는 성격도 있어서, 다른 관현악단들의 운영에도 참고할 수 있을 듯.[16] 빈 필의 신년음악회에 대응하려는 성격이 강하다[17]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18] 사이먼 래틀 지휘[19] 이반 피셔, 다니엘 바렌보임, 사이먼 래틀 지휘[20] 사실 한국사람들의 연주회 감상 매너는 가히 욕먹어도 싸다. 녹음질을 하다 걸리질 않나 물병을 아무데나 올려놨다가 떨구질 않나 잡담을 하질 않나 핸드폰 절대 안끄는 용자들도 많다. 그야말로 수준 이하다보니 저바닥에서도 입소문이 났을 것이고 외면당해도 싸다.[21] 1994년 발트뷔네에서는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했는데, 라데츠키 행진곡과 베를린의 공기를 연이어 연주했다.[22] 세 곡 모두 그 날 음악회에서 연주된 작품이었고, 이탈리아오페라 곡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탈리아 출신인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해맑은 표정을 볼 수 있다.[23] 제 1회 발트뷔네 음악회이다.[24] 협연자는 다니엘 바렌보임[25] 협연자는 존 윌리엄스(기타).[26] 협연자는 사라 장(바이올린)[27] 협연자는 바딤 레핀(바이올린)[28] 한양대학교의 설립자이다.[29] 항상 하는 '베를린의 공기'를 제외하고 모두 거슈윈의 곡들로만 구성했다.[30] 협연자는 랑랑[31] 협연자는 카티아/마리엘 라베크(피아노)[32] 관현악 편곡[33] 협연자는 스티븐 허프(피아노)[34] 협연자는 예핌 브론프만(피아노)[35] 협연자는 르네 플레밍(소프라노)[36] 협연자는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바이올린)[37] 성악가이자 사이먼 래틀의 배우자이다[38] 협연자는 마리안느 크레바사(메조 소프라노)[39] 음반(63년, 76년, 77년 실황, 82년), 영상(70년대, 80년대)[40] 아바도의 경우, 처음 나온 스튜디오 녹음의 전집은 지휘자 자신이 폐기한다고 선언했고 로마에서 진행한 전곡 연주회의 실황으로 만든 전집만 정식으로 유통되고 있다.[41] 다만 전집 목적으로 만든 녹음은 아니고, 모두 실황 녹음이고 발매 회사들도 제각각이다.[42] 물론 정말 '제대로 된' 편성은 아니었다. 빈약하기 짝이 없던 당시 녹음 기술의 한계 때문에 현악 주자는 10명도 채 안되었고, 몇몇 부분은 편곡을 통해 음향 균형을 맞춰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43] 존 애덤스 본인과 앨런 길버트, 구스타보 두다멜, 사이먼 래틀, 키릴 페트렌코 등의 지휘자가 참여하였다.[44] 음악가로서 그 누구보다도 현대 미디어 영상 기술및 기법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니 당연한 지론이다. 소니의 회장이던 오가 노리오와의 친분 역시 최고의 가전업체의 수장이자 음악 전공이었던 노리오의 뒷배경이 아니었다면 가지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45] 다만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연주하는 다른 오케스트라의 공연의 경우는 무료로 열어두는 경우도 있다.[46] 간단한 회원가입 절차가 있다.[47] 2017년 3월 공연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지휘였다.[48] 단, 베를린 필의 공연은 한국시간으로 대부분 새벽에 열린다. 꼭 보고싶은 것만 보자[49] 다만 베를린 필 홈페이지의 공연 기록에는 오가가 지휘했다는 공연을 찾아볼 수 없어서, 호사가들은 오가가 재력과 기업빨을 동원해 악단을 '사서' 지휘한 거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리고 이 공연 실황으로 비매품 한정판 CD가 제작되기도 했다.[50] 그 밖에 안익태가 베를린에서 지휘한 것은 주로 베를린 국립 가극장 오케스트라(Staatskapelle Berlin)였던 것으로 나타났다.[51] 공연 일부분이 녹음으로 남아있다.[52] 1963년 공연으로, 이탈리아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고프레도 페트라시 지휘[53] 교향곡 1번은 베를린 필이 창단 100주년 기념으로 윤이상에게 직접 작곡을 의뢰하여 탄생한 것이다.[54] 핀란드 지휘자이다. 일본인이 아니다.[55] 슈타브라바는 미셸 슈발베의 후임으로 악장직을 수행하였다. 전임자인 슈발베도 카라얀 시대 전체를 통괄하는 전설적인 악장이지만, 슈타브라바 본인도 카라얀-아바도-래틀-페트렌코 등 4세대를 모두 거친 입지전적인 악장이다.[56] 토루 야스나가의 후임 악장으로 선발되었다. 다니엘 슈타브라바가 정년퇴임을 한 후에는 수석악장으로 재직 중이다.[57] 클라리넷 명가로 유명한 오텐자머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에른스트 오텐자머(1955-2017)는 198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빈 필하모닉 클라리넷 수석 주자를 맡았고, 형 다니엘 오텐자머(1986-)는 2012년부터 현재까지 빈 필하모닉 클라리넷 수석 주자를 맡고 있다. 에른스트와 다니엘은 대를 이어 같은 악단의 같은 악기 주자를 맡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