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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24233><colcolor=#fff> 조르주 비제[1] Georges Bizet | |
출생명 | 알렉상드르 세자르 레오폴드 비제[2] Alexandre César Léopold Bizet |
출생 | 1838년 10월 25일 |
프랑스 왕국 파리 | |
사망 | 1875년 6월 3일 (향년 36세) |
프랑스 제3공화국 파리 | |
직업 | 작곡가 |
사조 | 후기 낭만주의 |
종교 | 무종교 (무신론) |
서명 |
[clearfix]
1. 개요
▲ 비제의 대표작 《카르멘》 中 〈하바네라〉(Habanera).
카르멘 등의 걸작을 남기고 요절한 프랑스의 작곡가. 향년 36세.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오페라 확립에 기여하였다.
2. 생애
비제는 1838년 파리 근교의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악 강사인 아버지에게서 음악 교습을 받은 비제는 일찍 재능을 보여 10살 때 파리음악원에 입학했다. 파리음악원에서 작곡, 피아노, 오르간을 배운 그는 주로 샤를 구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1856년 18세의 비제는 로마대상 작곡 콩쿠르에 칸타타 '다윗'을 출품해 입상, 이듬해에는 마침내 대상을 차지한다.[3] 부상으로 로마에 3년 동안 장학생으로 유학을 갔다온 후, 비제는 오페라에 주력한다.
1863년 '진주조개잡이'로 오페라 작곡가로서 첫 이름을 알린 후, 계속해서 작곡에 몰두하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1869년 로마 유학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로마의 회상' 모음곡을 발표하였고[4], 같은해 스승의 딸과 결혼한다. 비제는 교향곡 같은 장르보다 오페라 작곡가로서 성공하기 갈망하였지만[5] 하필이면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인 바그너와 베르디의 시대에 살았던 탓인지, 상당수의 작곡물들이 두 작곡가의 아류라고 평가절하 되는 상황이 빈번했다고 한다. 때문에 떨어지는 자존감 때문에 폭음을 하는 등 건강을 좀먹는 행동을 일삼곤 했다.
1872년 알퐁스 도데의 소설을 각색한 '아를의 여인'의 극음악을 작곡해 성공하고 그중 몇곡을 모아 모음곡으로 발표한다.[6] 하지만 그의 일생일대의 걸작은 1875년에야 나온다. 바로 카르멘. 비제는 이 오페라에 엄청난 기대를 걸었으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될 때의 반응은 별로였다. 자세한 것은 카르멘 문서 참조.
결국 건강이 안 좋은 상황에서 초연 실패로 결정적인 타격을 맞은 그는 카르멘이 빈에서 대성공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한 채 초연으로부터 3개월 뒤인 1875년 6월 3일에 지병인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뒀다. 불과 향년 36세였다. 더욱이 이날은 비제의 결혼 8주년 기념일이었다.
3. 작품 성향
비제는 남유럽, 특히 남프랑스 또는 프로방스 특유의 극적이고 화려한 색채의 음악에서 강점을 드러내었다. 또한 오페라, 극음악을 주로 쓴 작곡가답게 등장인물 표현, 감정 표현, 극적 효과를 나타내는 데 강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를 바탕으로 그를 '지중해의 바그너'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정리한 '디오니소스적'인 음악, 즉 원초적이고 감성적인 예술의 음악이라고 지칭하였다.카르멘, 아를의 여인에서는 극과의 절묘한 조화, 새로운 기법 등으로 이후 피에트로 마스카니, 지아코모 푸치니등의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끼쳐 사실주의 오페라의 시초가 되었다.
4. 그 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당대에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재능이 더 높게 평가됐었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반주자 정도로만 활동했는데도 그의 실력은 당대의 명 오르간 연주자로 명성을 날린 절친 카미유 생상과 동급으로 평가됐었다. 여기에 그가 청년기 때 프란츠 리스트와 만났던 일화는 이를 더욱 부각시킨다.당시 리스트는 한 소규모 연주회에서 매우 어려운 피아노곡[7]을 초연하고 이 곡을 완주할 수 있는 테크니션은 자신과 한스 폰 뷜로 이외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때 마침 비제와 같이 있었던 작곡 선생이 비제한테 실력을 보여주길 종용하자 비제는 곧장 피아노 앞으로 가서 방금 전에 리스트가 쳤던 곡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완벽하게 연주해냈다고 한다. 놀란 리스트가 비제한테 악보를 건네 주자 비제는 악보를 펼쳐 놓고 매우 빠르게 속독하며 동시에 리스트가 연주했던 템포 그대로 아까 전의 퀄리티를 유지하며 완주했다고 한다. 이를 옆에서 목도하던 리스트는 머쓱한 태도로 '젊은 친구, 내가 잘못 알았구만. 세 사람이었네. 공평하게 말하자면 셋 중에서 가장 젊은 자네가 우리보다 더 두드러지게 뛰어나다고 말해야겠군.' 이라 말했다고 한다.
맨 처음 리스트가 한스 폰 뷜로를 언급했을 때, 그의 삶에서 피아니스트로서 최상위권의 수제자인 타우지히가 함께 언급되지 않은 걸로 봐서는 아마 리스트가 좀 더 젊었을 때, 최소한 전성기의 황혼은 누리고 있었을 40세 중년 시기 즈음의 해프닝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당시의 리스트가 이 정도로 인정할 정도면 실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카르멘이 초연된 직후, 프랑스 정부에서 최고의 국가적 명예로 인정받는 레종 도뇌르 훈장 수여를 발표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웃지못할 사연이 있는데, 그의 작품들 중 하나인 <아를의 여인>이 당대의 명작가 알퐁스 도데가 쓴 동명의 희곡인 줄로 착각했다는 것. 게다가 그가 얼마 안되어 사망하는 바람에 실제 수상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남겨진 작품 수가 적다. 요절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제 자신이 생전에 마음에 안 든 작품들은 다 불태웠기 때문이다.
5. 주요 작품
5.1. 오페라[8]
-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 오페라 코미크 '의사의 집'
- 오페라 '닥터 미라클'
- 오페라 부파 '돈 프로코피오'
- 오페레타 '여사'
- 오페라 '이반 4세'
- 오페라 '퍼스의 큰 하녀'
- 오페라 '카르멘'
- 오페레타 '전쟁하러 가는 말보로'
- 오페라 '툴레 왕의 컵'
- 오페라 코미크 '클라리스 할로위'
- 오페라 '돈 로드리그'
- 오페라 코미크 '그리셀리디스'
5.2. 관현악곡
5.3. 합창곡, 가곡
6. 피아노곡
연주회용 큰 왈츠 E플랫 장조 |
- 녹턴 F장조
- 연주회를 위한 반음계적 변주곡
- 카프리스 C샤프 단조
- 카프리스 C장조
- 무언의 로망스 C장조
- 화려한 테마 C장조
- 왈츠 C장조
- 3개의 음악적 스케치
- 연주회용 큰 왈츠 E플랫 장조
- 마린
- 녹턴 D장조
- 라인의 노래
- 4개의 전주곡
- 무언의 샹송적인 멜로디의 로망스
- 베니스
-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아이들의 놀이’
7. 관련 문서
[1] 국제음성기호 표기는 [ʒɔʁʒ bizɛ\]로 어말 자음이 묵음화된다.[2] 출생신고 당시 이름, 그러나 가족들과 친지들 모두가 유년기부터 조르주 비제라고 불렀다.[3] 엑토르 베를리오즈, 모리스 라벨의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거 엄청 대단한 거다. 그것도 10대에.[4] 이후 교향곡 '로마'로 개작한다.[5] 때문에 그의 고투를 보다 못한 생상스가 차라리 순수 음악으로 전향하는 편이 어떻냐고 하자, 그러한 재능이 충분하면서도 자신은 그런 곡을 쓰게 돼먹지가 않았다면서 완강히 거절했다고 한다.[6] 모음곡 중 '미뉴에트'는 특히 유명한데, 들으면 안다. 화장실 등에서 BGM으로 자주 나오는 곡.[7] 무슨 곡인지는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다.[8] 오페라 부파, 오페라 코미크, 오페레타 포함.[9] 원곡은 27곡이나, 비제 자신이 전곡 중에 4곡을 골라 제1모음곡을, 비제 사후에 친구였던 에르네스트 귀로가 다시 4곡을 골라 제2모음곡을 만들었다.[10] 번호를 붙인 교향곡이 이거 하나뿐인데도 굳이 번호를 써놓는 이유는 비제가 더 많은 교향곡을 썼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위에서도 말했듯 아마 나머지는 비제가 불태웠을 가능성이 높다.[11] 이 작품은 비제 사후에 발견되어 바인가르트가 1935년 2월 26일에 초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