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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트 바일

서양 음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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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쿠르트 바일
Kurt We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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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쿠르트 율리안 바일
Kurt Julian Weill
출생 1900년 3월 2일
독일 데사우
사망 1950년 4월 3일 (향년 50세)
미국 뉴욕주 뉴욕시
직업 작곡가
배우자 로테 레냐 (1926~33년, 이혼; 1937년 재결합)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2. 생애3. 작품 성향4. 평가
4.1. 유럽 및 미국, 한국에서의 평가4.2. 그 원인
5. 대표작
5.1. 노래극, 극장음악, 오페레타5.2. 팬터마임, 발레5.3. 오페라5.4. 뮤지컬5.5. 영화 음악5.6. 칸타타5.7. 가곡5.8. 관현악곡5.9. 실내악5.10. 피아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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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출신의 미국 작곡가. 독일에서는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현대 음악극을 정립했으며, 미국에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기초를 마련했다. 대표작으로는 음악극 '서푼짜리 오페라'가 있다.

2. 생애

바일은 독일 데사우에서 유대인 가정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유대교 회당의 합창 지휘자이자 신학 교사였던 아버지 알베르트에게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에 입문하였다. 그가 살던 데사우의 궁정극장은 '북독일의 바이로이트'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바그너의 오페라가 자주 무대에 올라왔던 곳이었다. 바일 역시 그에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바그네리안을 자칭하기도 했었다.

바일은 1915년 데사우 궁정극장의 악장 알베르트 빙에게 피아노, 지휘, 작곡, 음악이론을 배웠으며, 이듬해 처음으로 피아노 독주와 반주자로 데뷔했다. 이듬해에는 처음으로 가곡을 쓰기 시작했다. 1918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일은 베를린 음악원에 18세의 나이로 입학해 작곡, 지휘, 대위법을 사사했다. 이 해에는 처음으로 현악 4중주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가 무너지고 가정이 황폐화되면서 바일은 중간에 공부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는 극장에서 성악 연습을 지도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이당시 릴케의 시에 기초해 교향시를 작곡하기도 했다.

1919년 말에는 륀덴샤이트의 극장에 지휘자로 취임, 지휘와 작곡을 병행했다. 1920년, 바일은 중간에 그만둔 공부를 마치기 위해 베를린에서 페루치오 부조니에게 작곡을 사사한다. 1921년에는 그의 첫번째 교향곡을 작곡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예술가 모임 '11월회'에 가입하고, 주로 기악곡과 가곡을 주로 작곡하였다.

1923년 공부를 마친 후, 바일은 1923년까지 생계를 위해 작곡 교습을 하였고, 이당시 그의 곡 중 하나인 '오케스트라를 위한 디베르디멘토'가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초연되기도 했다.

1926년, 바일은 인생 최대의 전환점을 맞는다. 배우이자 가수인 로테 레냐와 연애 3년만에 결혼에 성공하였고, 음악가로서는 그의 오페라 '주연배우(Der Protagonist)'를 비롯하여 '현악 4중주', '목관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등 후기 낭만주의 풍의 곡들이 잇달아 성공을 거두어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생의 파트너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만난 것이 가장 컸다. 소격효과를 내세워 연극계를 완전히 뒤집던 브레히트와 오페라의 개혁을 꿈꾸던 바일의 만남은 성공적인 퓨전 이었다. 그 결과 나온 첫 합작품인 노래극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는 당시 돈과 쾌락에 미쳐 날뛰던 사회를 풍자한 내용으로 스캔들을 일으켰으며, 1930년 오페라로 개작되어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 1928년 발표한 '서푼짜리 오페라'는 그 해에만 4,200회 공연되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지금에 와서도 둘의 최고 명작으로 꼽힌다.



에른스트 부슈가 노래한 '서푼짜리 오페라' 중 '칼잡이 맥'.

특히 이 극에 삽입된 위의 곡 '칼잡이 맥'는 현재도 재즈 보컬 명곡으로 남아 루이 암스트롱, 프랭크 시나트라 등의 명가수들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브레히트와 바일은 돈방석에 올랐고, 이 두 콤비는 이후에도 1929년 '해피엔드', 1933년 '칠거지악' 등 여러 문제작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 결합도 끝이 있었다. 브레히트는 계속해서 사회 비판적인 방향으로 연극을 이끌려 했지만, 바일은 사회 풍자에는 공감하면서도 예술성과 대중성을 위해 정치성에 선을 그었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했고, 그 끝은 그들의 대표작 '서 푼짜리 오페라'의 영화화를 두고 벌어진 서로의 너 고소였다. 결국 브레히트와 바일은 굉장히 험악하게 틀어지고 만다.

이후 브레히트는 바일 대신 한스 아이슬러와 공동작업을 하게 되고, 바일은 이전 작품들을 손보는데 힘썼다. 하지만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서 유대계+좌파+재즈 친화로 나치 공공의 적 3콤보를 찍은 바일은 독일을 떠나야 했다. 파리로 이주한 그해 아내 레냐와도 이혼하였고, '서 푼짜리 오페라'의 미국 진출도 논란속에 실패하며 최악의 시기를 맞았다.

그러나 바일은 그 와중에 1934년 그의 기악곡 중 가장 대작인 '교향곡 제2번'을 발표한다. 그리고 1935년 런던, 1936년 뉴욕으로 그의 노래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이주, 미국에 정착하며 재기를 노린다.

미국에 정착한 이후 바일은 레냐와도 재결합하고 미국에서의 공연도 성공하여 생활이 안정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 미국의 대중 음악과 전통 음악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이후 바일은 브레히트와 합작하던 시절의 반 자본주의 경향을 완전히 씻어내고 뮤지컬, 영화음악 등 대중 음악에 집중한다.

프리츠 랑, 조지 거슈윈의 형 아이라 거슈윈 등 다른 극작가들과 활동하던 바일은 노래극에 이어 미국 뮤지컬을 개혁하고자 하였으며, 그 중 대표작인 영화 '스트리트 신'의 영화음악은 제1회 토니상 음악상의 영예를 그에게 안긴다. 뿐만 아니라 대중성 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어 뮤지컬 '어둠 속의 여인', '비너스의 손길' 등이 연달아 대성공을 거두었고, 프랭크 시나트라, 베니 굿맨 등 당시 최고의 음악가들이 그의 곡을 녹음했을 정도. 이러한 성공으로 그가 1943년 한 해에만 벌어들인 돈이 10만 달러.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130만 달러(2012년 기준), 약 14억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바일은 반나치를 외치며 다시 브레히트와 합작하던 시절의 사회 비판 성향을 드러낸다. 1943년 미국 시민권을 얻은 이후 나치를 비웃는 곡인 '쉬클그루버', '나치군인 마누라의 노래' 등을 발표한다. 그 외에도 미군 징집에 지원하는 등 반 나치활동을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뉴욕에 남아 작품활동을 하던 바일은 1950년 그의 50번째 생일에 심장이상으로 쓰러졌고, 4월 3일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사후 그의 유산은 아내 레냐가 상속받았으며, 이후 그녀는 쿠르트 바일 재단을 설립, 바일의 작품을 알리고 그의 작품과 발자취를 보존하는데 힘썼다.

3. 작품 성향

나는 심각한 음악가벼운 음악 사이의 차이를 결코 알지 못한다. 음악에는 단지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이 있을 뿐이다.

바일은 노래극으로 대표되는 참여음악과 민중가요에도, 상업음악의 극치인 영화음악과 뮤지컬에도 모두 업적을 남겼다. 그가 1920년대에 브레히트와 작업한 노래극들은 이후 민중가수들의 노래극에 형식/내용 양면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멀리 보면 한국의 민중가수들인 김민기, 안치환 등도 작게나마 바일이 남긴 작업물들의 영향하에 있다. 또한, 바일이 미국에 정착한 후에 만든 뮤지컬과 대중가요는 미국 스탠더드 팝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고 그가 남긴 순수음악 작품들이 음악성이 뒤떨어졌던 것도 아니다. 오늘날 그가 남긴 교향곡이나 바이올린 협주곡 등의 관현악곡은 수가 적을지언정 굉장히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전간기 독일 음악의 성과로 여겨진다. 바일은 이러한 자신의 탄탄한 음악적 기초를 바탕으로 대중성까지 접목하였고, 종국에는 대중적으로도 가장 몸값이 높은 작곡가 중 하나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가 던진 화두인 '작품성과 대중성의 조화'는 오늘날까지도 실용음악계에서 영원한 키배거리로 남아있는데, 정작 바일 본인은 둘 사이에서의 적절한 줄타기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독일에서 작곡된 바일의 음악은 재즈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서도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 바탕을 두고 풍자와 냉소를 보여준다. 미국 정착 이후에는 재즈의 수용이 더욱 많이 이루어졌고, 미국 민속음악에 대한 연구 등을 통해 작품의 범위가 계속 넓어졌다.

바일은 대중성 면에서도 탁월했다. 그의 음악은 이미 당대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지금의 대중음악에서도 그의 노래극과 뮤지컬은 주요 레퍼토리로 간주되고 있다. 즉, 바일의 음악은 노래극, 뮤지컬, 영화음악, 재즈, 팝송에 내재되어 우리 주변에서 계속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 그로부터 영향 받은 대중음악 뮤지션만 해도 루 리드, 데이빗 보위, 마리안느 페이스풀, 톰 웨이츠, 닉 케이브, 브라이언 페리, 반 다이크 파크스, 스콧 워커, 디바인 코메디, 루퍼스 웨인라이트, 마그네틱 필즈가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오늘날에 와서 따져봐도 클래식 음악을 토대로 삼고 출발했으면서 대중음악까지 잠식한 사례는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클래식 작곡가, 그 중에서도 현대 작곡가들은 대중의 입맛에 맞는 선율을 작곡하는 데 약점이 있다 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두 분야 모두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내보인 바일의 사례는 여러모로 특이한 것이다.

4. 평가

4.1. 유럽 및 미국, 한국에서의 평가

유럽에서는 미국에서 작곡한 뮤지컬들을 저평가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반대로 미국에서는 독일에서 만들어진 노래극들을 낮게 보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그냥 듣보잡이다.

4.2. 그 원인

바일이 주력한 장르는 좌파 성향의 노래극과 정통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한국의 경우 레드 컴플렉스가 워낙 극심하다 보니 노동당이 여당이 되는 대격변이 일어나지 않고서야 바일의 노래극이 연주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바일의 뮤지컬 역시 브로드웨이 뮤지컬보다 유럽권 뮤지컬이 강세인 한국에서 초연이라도 될련지 의문이다.

5. 대표작

5.1. 노래극, 극장음악, 오페레타

노래극 ‘마하고니’ (1927)
극장음악 서푼짜리 오페라 (1928)
오페레타 ‘말 거래’ (1935)
오페레타 ‘피렌치의 횃불’ (1945)

5.2. 팬터마임, 발레

어린이 팬터마임을 위한 ‘마법의 밤’ Op.7 (1922)
성악 발레 ‘7대 죄악’[1] (1933)
파리의 심판 (1938)

5.3. 오페라

주인공 Op.15 (1926)
왕궁 Op.17 (1927)
차르가 자신의 사진을 찍게 하다 Op.21 (1928)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 (1930)
예스맨 (1930)
서약 (1932)
약속 (1937)
거리 장면 (1947)
계곡으로 떨어지다 (1948)

5.4. 뮤지컬

해피 앤드 (1929)
실버 시 (1933)
마리스 가네트 (1934)
조니 존슨 (1936)
니커보커 홀리데이 (1938)
철도 퍼레이드 (1939)
어둠의 숙녀 (1941)
비너스의 터치 (1943)
사랑 삶 (1948)
별에 빠지다 (1949)

5.5. 영화 음악

당신과 나(You and Me)
어디로 가는거지?(Where Do We Go From Here?)

5.6. 칸타타

술라미드 (1920)
새로운 오르페우스 (1927)
베를린 시민 레퀴엠 (1928)
린드버그의 비행 (1929)
마그나 카르타의 발라드 (1940)

5.7. 가곡

조용한 도시 (1919)
여성의 춤 (1923)
시간의 책 (1923)
클롭스 노래 (1925)
베를린의 가벼운 노래 (1928)
석유 노래 (1928)
갈색 섬의 노래 (1928)
이별의 편지 (1933)
판토마스의 슬픔 (1933)
리지너트 (1933)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1934)
나는 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934)
유칼리 (1934)
센 강의 슬픈 (1934)
눈 오는 밤의 숲에서 멈춤 (1939)
프로파간다 노래 (1942~4)
그리고 군인의 아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1942~7)
얼마나 더? (1944)

5.8. 관현악곡

관현악 모음곡 (1919)
교향시 ‘사랑과 죽음의 길’ (1919)
교향곡 1번 (1921)
관현악을 위한 디베르티멘토 Op.5 (미완성, 1922)
신포니아 사카라, 환상곡, 파사칼리아와 송가(頌歌) Op.6 (1922)
모음곡 ‘혼합’ (1923)
바이올린과 목관을 위한 협주곡 (1924)
모음곡 ‘바스티유 음악’ (1927)
실내 관현악을 위한 파나메네 모음곡 (1934)
교향곡 2번 (1934)

5.9. 실내악

현악 4중주 B단조 (1918)
첼로 소나타 (1919~21)
현악 4중주 Op.8 (1923)

5.10. 피아노곡

피아노를 위한 ‘간주곡’ (1917)


[1] 흔히 칠거지악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으나, 가톨릭에서 말하는 7대 죄악과 칠거지악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자세한 사항은 칠거지악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