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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000000,#dddddd> 마르크앙드레 아믈랭[1] Marc-André Hamelin[2] | |
출생 | 1961년 9월 5일 ([age(1961-09-05)]세) |
캐나다 자치령 퀘벡주 몬트리올 베르됭(Verdun) | |
국적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3] |
직업 | 피아니스트, 작곡가 |
가족 | 아버지(1934-1995)[4], 어머니, 여자형제, 배우자[5] |
학력 | 뱅상 댕디 음악학교 (졸업) 템플 대학교 음악대학 (학사, 석사) |
링크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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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아믈랭의 2005년 8월 13일 퀘벡 Saint-Irénée에서 열린 리사이틀을 촬영한 영상.[6]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엄청난 테크닉으로 슈퍼 비르투오소(Super Virtuoso)라고 불린다.[7]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출생하였고, 5세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다고 한다. 약사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덕에 어렸을 적부터 샤를발랑탱 알캉이나 레오폴드 고도프스키, 카이코스루 소랍지 같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곡가들의 곡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8] 청소년기를 뱅상 댕디 음악학원에서 보내면서, 13세(1975년)에 용돈을 모아 찰스 아이브스의 피아노 소나타 2번 "콩코드"[9] 음반을 구매하는 것을 시작으로 근·현대음악에 더욱 친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18세 때 작곡한 아믈랭의 최초의 작품 "Two Short Studies" (2번: 1979년, 1번: 1980년)에서는 이후 작품들에 비해서 훨씬 더 파격적이고 비범한 시도를 했으며 특히 1번의 경우 콘론 낸캐로우가 작곡한 "자동피아노를 위한 연습곡 25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뱅상 댕디 음악학교를 졸업한 후, 1980년 8월부터 미국 템플 대학교에서 학·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러셀 셔먼(Russell Sherman, 1930–2023)과 하비 위딘(Harvey Wedeen, 1927–2015)을 사사했다.[10] 1985년 카네기 홀 국제 아메리카 음악 콩쿠르(Carnegie Hall International American Music Competition)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11]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동시에 프로 연주 생활도 이 즈음 시작되었다. 1989년에는 버지아나 파커 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에 Officer of the Order of Canada, 2004년에 Chevalier de l’Ordre du Québec이라는 훈장도 수여받았다. 대한민국의 선우예권이 우승한 2017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을 맡았고, 이에 대한 커미션으로 "'무장한 병사'에 의한 토카타(Toccata on L'Homme Armé)"를 작곡했다.
이처럼 피아니스트 쪽으로 유명하긴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인물이었지만, 엉뚱하게도 인터넷 등지에서는 인간이 칠 수 없는 피아노곡으로 한때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그 서커스 갤럽의 작곡가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 연주/평가
그의 테크닉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테크닉에 대한 지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3년 Tonebase에 출연하여 촬영한 영상에 의하면, 그는 보통 우리가 '기교'를 뜻하는 단어에 '테크닉(technique)'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고 '신체역학(身體力學; body mechanics)'을 의미하는 '메카닉스(mechanics; 역학)'를 사용한다. 아믈랭은 인간의 손으로 악상을 나타낼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기계적인 부분, 즉 보통 클래식 음악계에서 '테크닉'하면 생각하는 손가락의 독립, 민첩성, 유연성 등을 '역학'으로 지칭하며, 이러한 신체역학에 대해 최상위권의 수준을 앨범과 리사이틀에서 보여주고 있음을 해럴드 숀버그를 비롯해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12] 그렇다면 클래식 피아노 음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들 중 '메카닉스'라고 부르는 기교를 제외한 나머지 요소, 즉 음악성은 어떠한가? 후술하겠지만 아믈랭은 '메카닉스'는 수단일 뿐 음악 연주의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이러한 '음악성'도 '테크닉'의 하위 영역으로 본다. 즉, 일정 수준 이상의 '메카닉스'를 단련한 뒤 이를 통해 악보 속 여러 아티큘레이션을 구현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렇게 작곡가들이 의도한 음악을 구현해 내는 아믈랭의 예술적 기교 역시 역학적 기교만큼이나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해럴드 숀버그의 '슈퍼 비르투오소'라는 수식어 답게 현대 피아니스트 중 테크닉 면에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미 30대에 리스트, 알캉이나 고도프스키, 부조니 등 고도의 연주 기교가 요구되는 작품들이 그의 레파토리의 주를 이뤘다! 거기다 아믈랭 본인이 작곡한 에튀드를 비롯해 자작곡을 종종 연주하는데, 환갑을 맞이하는 2020년대에 작곡한 "고전풍의 모음곡"도 절대로 쉽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같이 비인간적인 난이도를 자랑한다.
큰 손을 갖고 있는데, 11도를 집는 너비도 너비지만 두께가 엄청나다. 그러면서도 매우 유연하고 빠르다. 이런 손에서 나오는 터치의 묵직함은 실로 엄청난 것으로, 수십분을 상회하는 알캉의 곡을 연주하고도 피날레에 피아노가 터질 듯한 소리를 낸다. 체력도 엄청나다. 간간히 조금 땀을 흘리는 것 이외에 지친 기색을 보이질 않는다.
인템포 연주가 10분을 상회하는 알캉의 마이너에튀드 Op.39 No.10을 8분 30초 만에 완주하는 녹음. 어느 사람들은 1분 앞당기는 게 뭐가 어렵냐고들 하겠지만.. 10분에서 8.5분으로 단축하는 것은 연주를 17.6%가량 빠르게 했다는 것이다.[13] 그런데 이 곡 자체가 원래 속도로 연주해도 매우 어려운 곡이다. 얼마나 어려운지를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샤를발랑탱 알캉/에튀드 항목 참조.
유튜브를 찾아보면 최근 올라오는 연주들은 거의 9분대에서 머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중 아믈랭 만큼의 정확도와 깔끔함을 보여주는 연주는 거의 없다.[14] 반면 아믈랭은 무작정 빠르게 치지 않고, 전체적인 속도는 높인 채 곡의 분위기에 따라 템포를 조절하여 곡의 효과를 높였다. 이들을 고려했을 때 아믈랭의 해석은 이 곡에 대한 혁명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테크닉 위주의 피아니스트들이 다른 피아니스트보다 상대적으로 감정적인 성향과 자기과시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에 비해[15] 아믈랭은 섬세함과 깔끔한 절제를 갖춘 밸런스형 피아니스트다. 그의 테크닉은 굳이 과시하지 않아도 쉽게 눈에 띄는데, 그 어떤 난잡하고 빠른 패시지도 음표 하나 놓치지 않으며 정확하고 묵직하게 터치한다.
그가 연주한 쇼팽의 뱃노래나 발라드 3번에서는 매우 정석적인 연주를 보여준다.
또한 레파토리의 시대가 아주 다양하여 초기 바로크부터 현대 음악까지 없는 게 없다. 그의 말로는 묻혀 있던 다양한 작곡가를 발굴해 내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유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우 예술적인 곡들[16]을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아믈랭이 리사이틀을 여는 것도 자신의 기교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위와 같은 목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교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셈.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와 같은 차이코프스키의 제자 출신 니콜라이 카를로비치 메트네르, 니콜라이 카푸스틴[17]의 경우 아믈랭의 연주, 즉 발굴 작업으로 인지도가 상승했다는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레파토리의 방대함 때문에 한 레파토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피아니스트들에 비해선 음악적 진중성이 떨어진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레데리크 쇼팽의 경우 크리스티안 짐머만같은 콩쿨파 피아니스트들과 비교되어서 까이기도 하고, 프란츠 리스트의 경우는 조르주 치프라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나 니콜라이 루간스키에 비교된다. 실제로 그가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음반 발매 전에는 아믈랭의 초인적 연주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발매 후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이라는 평이 많이 보였다.[18]
하지만 이건 명백한 오해인 것이, 그는 그의 엄청난 메카닉을 오로지 곡을 연주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할 뿐이지, 그 이상으로 쇼맨쉽을 발휘하는 건 녹음은 물론 라이브에서도 자제한다. 쇼팽과 라흐마니노프 정도 되는 레벨의 곡들이 너무 쉽고 무난하게만 들리니, 불꽃 튀기는 연주를 기대했던 사람들이 당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단 그의 성격 자체가 거장 음악가로서는 정말로 드물게 밝고 둥글둥글하고,[19][20]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격정적인 연주 자체가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수많은 어려운 레퍼토리들을 게임 클리어하듯이 즐기면서 연구하고 연주하는, 이 시대의 굇수라고 볼 수 있다.
3. 작품 목록
하위 문서: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작품 목록#!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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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디스코그래피
하위 문서: 마르크앙드레 아믈랭/디스코그래피#!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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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 1980년부터 40년 넘게 미국에 살고 있는 아믈랭이라지만 프랑스계 캐나다인, 일명 퀘벡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2017년 출판된 소곡집 서문에서 "저희 퀘벡인들에게는(To us Québécois)"이라는 말이 적혀 있을 정도.
- 2023년 4월 1일에 하농 전집을 발매한다는 홍보영상을 올렸다. 링크 하농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는데, 프리뷰로 17, 59, 31번을 마치 녹턴처럼 느리고 끈적하게 쥐어짜는 모습을 볼 수 있다.[21]
- 체르니와 쇼팽-고도프스키의 곡에 대한 BBC 인터뷰에서 11도가 거뜬히 닿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거인손(…) 인증을 했다. 오른손이 아닌 왼손이 좀 더 크다고.[22] 라흐마니노프 관련 인터뷰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손은 굉장히 커서 12도는 거뜬히 닿을 수 있었다. 나(아믈랭)는 11도(도에서 파까지)가 닿는다."라고 자신이 직접 인증했다. 손가락이 길 뿐만 아니라 손가락 사이도 잘 찢어지는지, 피아노 소나타 29번(베토벤)(통칭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2악장 중 트리오에서 셋잇단음표로 묶인 음표들이 전부 손가락 번호 5-2-1로 레가토 연주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5-2 간격이 '옥타브'인 부분을 제외하면(이때는 손목을 회전시키기는 한다) 손목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tonebase 출연 당시 4악장 시연에서 "오른손 2-5로 7도가 닿지 않는다면 엄지를 이 템포로 16분음표 3개 연속으로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엄지에 무리가 온다."는 답변을 하면서 오른손 2-5로 7도를 짚을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아버지 질 아믈랭(Gilles Hamelin) 덕분에 양손의 독립적인 움직임을 위한 각종 연습법을 어렸을 적부터 배워왔다고 한다.# 일본에서의 인터뷰에서 선보였던 루돌프 간츠(Rudolph Ganz)의 대칭 반전(Symmetrical Inversion) 연습법도 그 중 하나다. 이 연습법은 왼손(또는 오른손)이 터득한 패시지를 다른 한손도 가능케하는 것으로서 본인 왈 두뇌 운동(brainwork)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연습법은 tonebase에서도 다시 다루어졌다.#
- 전설 중 전설의 리사이틀로 유명한 아믈랭의 1997년 12월 11일, 14일 도쿄 리사이틀은 그에게 매료된 일본의 어느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1997년 1월 초청을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위 애호가 왈, 거절될 줄 알았는데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렇게 하나같이 괴물 같은 레퍼토리로 가득차 있었던 아믈랭의 첫 일본 리사이틀은 이틀 모두 만석을 기록하여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1998년 4월 8일 NHK 『クラシックアワー』를 통해 방영된 리스트, 스크랴빈 연주 영상과, 당시 콘서트홀에서 촬영된 나머지 영상들이 2000년대 이후 유튜브에 공개되며 일본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아믈랭 애호가들에게 아믈랭의 전설적인 리사이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후기
- 개정판 에튀드 1번 "삼중 연습곡(Triple Étude)"의 작곡 비화가 있다.[23] 생전에 레오폴드 고도프스키가 이미 프레데리크 쇼팽의 가 단조 연습곡 세 곡, 즉 Opp. 10/2, 25/4, 25/11을 대위적으로 융합하여 완성했음을 짐작케하는 에튀드 목록[24]이 존재한다. 다만 정작 그 악보는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 고도프스키가 악보를 모두 챙기지 못한 채 빈에서 미국으로 도피하는 바람에 유실되고 만다.[25][26] 그래서 아무도 고도프스키가 이런 일을 한 것을 몰랐지만 아믈랭의 한 친구와 그가 그 묘기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인지 '내기'를 하는 바람에[27] 작곡하게 된다.
아믈랭의 말한 그의 어떤 친구란 바로 IPAM[28]의 큐레이터인 도널드 매닐디(Donald Manildi)다. 1990년에 쇼팽의 연습곡 Op. 10/5를 단조로 편곡하자(이후 아믈랭의 연습곡 10번으로 배정된다), 도널드가 그 실력을 근거로 아믈랭에게 슬쩍 권유를 한 게 사건의 발단이다. 고도프스키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기 때문에 입장이 비슷한 아믈랭에게 내심 기대를 했던 셈.
이와는 별개로 스코틀랜드의 작곡가 앨리스터 힌턴(Alistair Hinton)[29]이 아믈랭에게 도발을 당했는데, 사실 그는 아믈랭이 트리플 에튀드(1992)를 내기 훨씬 전인 1977년에 Les Trois Chopins(세 쇼팽)이라는 이름으로 컨셉이 같은 작품을 완성한 바 있었다. 하지만 본인도 퀄리티에 만족하지 못했고, 고도프스키가 이미 시도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렸기 때문에 출판까지 가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아믈랭이 힌턴에게 완성된 트리플 에튀드의 악보와 함께 편지를 보냈고, '세 쇼팽'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원고가 있었다면) 당신의 작품을 보고 싶었겠지만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을 것[30]'이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비록 오래 전 작품이지만 아믈랭의 도발에 자극을 받아 힌턴도 같은 해에 '세 쇼팽'을 개정[31]하여 'Étude en forme de Chopin(쇼팽 형식의 에튀드)'으로 이름도 바꿔 출판했는데 정작 퀄리티는 트리플 에튀드가 더 낫다는 평이 자자하다.
- 내림 마 단조인 에튀드 7번은 원래 전혀 다른 곡이 될 예정이었다. 암암리에 그 자필보가 돌고 있는데 부제가 딱히 없고 non Troppo morendo, lugubre (cominciare più lento) - legatissimo[32]라는 악상 지시가 있을 뿐이라는 점, 3페이지 짜리이며 끝세로줄 표시는 있지만 거대한 '?' 마크와 함께 불완전마디로 종결되는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미완성 자작곡[33]
흑역사[34]으로 추정된다. 양손이 n옥타브 차이[35]로 똑같이 움직이는데, 거의 모든 음표에 임시표가 붙어있을 정도로 보기 난해하고, 빠르기도 2분음표 = ca.[36] 60을 지시하고 있지만 정작 악보는 8분음표만으로 표기되어있어 그렇게 느리지는 않다.
- 이혼을 한 적이 있다. 1999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37] 일본의 다큐멘터리에서는 조디 케린 애플바움(Jody Karin Applebaum)이 아내라고 소개되었지만, 2005년 이혼하고 2016년에 캐시 풀러(Cathy Fuller)와 재혼했다.
- 이 사람의 10~20대 때 모습[38], 1990년대 후반 모습, 2005년 안경을 낀 모습과 2006년 안경을 벗은 모습, 2015년 안경을 다시 낀 모습을 보면 동일 인물인가 싶을 정도로 외모 변화가 두드러진다. 특히 2006년을 기점으로 외모가 확 달라진다. 탈모 때문으로 보인다.
-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하고있다. 2004년 1월 30일과 2012년 3월 12일 내한하여 자신의 에튀드 12번을 치는 등 한국 관객들 앞에서 자신의 초인적인 연주 솜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 이후로 한국에서의 인지도도 조금씩 상승하는 중. 2020년 9월 12일, 13일 양일간 내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의 장기화와 동시에 재확산으로 인하여 취소되었다. 이렇게 코로나19로 인해 연주 활동이 힘들어지자 코로나 초기 라이브 스트리밍 리사이틀을 열기도 했다.
2024년 9월 8일, 12년 만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내한 독주회를 열었다. 전반부는 로베르트 슈만의 "숲의 정경(Op. 82)"과 모리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M. 55)"를, 후반부에는 프란츠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D. 960)을 연주했다. 게다가 이후 앙코르를 다섯 곡이나 소화하는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본래 2곡으로 제한되었으나 커튼콜 중 청중들의 열의에 찬 박수와 환호에 3곡을 추가했다. 아믈랭은 예정에 없던 세 번째 앙코르를 진행하기 직전 흐뭇해하면서 피아노 의자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앙코르 목록은 다음 주석과 같다.[39] 결론적으로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녹슬지 않은 기교와 더욱 더 성숙해진 음악성을 보여주었다.
- 2017년 들어 미국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트위터에 자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이라는 질문에 사임(Resign)이라고 한 마디로 답하기도 했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시즌이 다가오자 "트럼프에 투표하지 말자!"라는 내용의 트윗을 리트윗하기도 하였다. 아래 공화당 의원에 대한 규탄을 포함하면, 아믈랭은 반(反)공화당 성향임을 알 수 있다.
- 성씨에 아믈랭(Hamelin)이 있어서 그런지, 2015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2위 샤를 리샤르아믈랭(Charles Richard-Hamelin)과 엮이는 편이다. 하지만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이 트위터에 전혀 같은 집안이 아니라고(no relation) 언급했다.[40] 그럼에도 2022년 7월 9일 리사이틀에서 이 두 명이 모차르트의 피아노 두 대를 위한 소나타와 협주곡, 아믈랭의 탱고를 연주하는 등 계속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 이 기사에 의하면 아믈랭은 1형 당뇨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2017년 소곡집에 실린 맨 마지막 곡 '초콜릿에 대한 감상'의 소개글에서 식단제한 때문에 초콜릿을 못 먹었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그것.
정작 아믈랭은 인슐린 주사를 더 맞았는지 조금 먹었다고 한다.2022년 4월 6일 미국 연방 하원의원 맷 게이츠(Matt Gaetz, 공화당)는 인슐린의 가격 인하를 반대하며 "당뇨가 있는 사람들은 살을 빼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아믈랭은 "1형 당뇨병은 살 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법을 만든다."라고 그를 규탄하는 트윗을 올렸다. 1형 당뇨병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췌장 자체가 망가져 있는 상태라 생존하기 위해서는 인슐린을 외부에서 주입해야 하기 때문이다.[41]
- 지금까지 운전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고 면허도 없다고 한다. 트윗
- 윌리엄 볼컴의 "우아한 유령 래그(Graceful Ghost Rag)" 연주가 한국인에게 유독 인기가 많다. 그래서 2024년 9월 8일 리사이틀에서는 세 번째 앙코르로 연주한다고 밝히자 청중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유튜브의 영상 중에서 독보적인 조회수를 보여주어, 토마토클래식 측에서 클래식 음악에서 흔치 않은 1시간 버전 영상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1] 이 독법은 아믈랭이 프랑스계 캐나다인임을 감안하여 프랑스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그러나 1980년 8월부터 계속 미국에 정착했고, 실제로 프랑스어식 독법으로 계속 읽을 경우 미국인들은 못 알아듣겠다고 해서, 쇼트트랙 선수 샤를 아믈랭을 '찰스 해믈린'으로 읽듯이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자신조차 영어식 독법인 '해믈린'이라고 말한다.[2] 사실 Marc-André 는 연음(enchaînement)되기 때문에 실제 발음은 '마르캉드레'에 가깝다.[3] 1980년 템플 대학교 수학을 위해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주한 후 계속해서 미국에 살고 있고, 현재는 보스턴에 거주 중이다.[4] Gilles Hamelin, 하술하겠지만 아믈랭은 아버지를 자신의 음악 인생을 시작하도록 도와준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5] 본래는 Jody Karin Applebaum과 결혼했으나 2005년 이혼하고 이후 WGBH 라디오 진행자 Cathy Fuller와 연애를 이어가다 2016년 6월 26일 재혼했다.[6] 음반사 Hyperion Records에서 아믈랭을 다룬 다큐멘터리 "Marc-Andre Hamelin: It's All about the Music"에 딸린 리사이틀 영상이며, 이 영상에는 중간중간 등장하는 라발 대학교 음악학자 마르크앙드레 로베르주(Marc-André Roberge)의 인터뷰 클립들이 통편집되었다.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이곳의 2–12번을 참고할 것.[7] 해럴드 숀버그가 뉴욕 타임즈에서 쓴 기사에서 나온 표현으로, 그를 표현할 때 항상 뒤따라오는 별칭이 되었다. 일본에서도 1999년 경, 이 별칭을 제목으로 삼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다만 아믈랭 자신은 이 별명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8] 아믈랭은 어릴 때의 이런 영향이 매우 컸던지, 인터뷰할 때 거의 항상 "아버지께서는 굉장한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셨다. (My father was a great amateur pianist.)"라고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면서 시작한다(여담으로, 형용사는 very good 등 긍정적인 단어로 많이 바뀐다). 아믈랭의 아버지는 1995년에 사망했다.[9] John Kirkpatrick의 두 번째 녹음이었다.[10] 아믈랭이 뱅상 댕디 음악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템플 대학교의 하비 위딘 교수가 1달에 한 번씩 찾아왔는데, 아믈랭에게 전액 장학금을 보장해 주었다고 한다.[11] 상금 또한 어마어마했는데 당시 기사를 살펴 보면 본래 상금은 1만 5천 달러였는데 커미션곡 초연과 협주 콘서트 계약 등을 위한 프로모션 3만 5천 달러와 녹음계약을 위한 2만 5천 달러가 더해져 총 7만 5천 달러가 되었다. 2022년 시세로 따지면 20만 달러(우리 돈으로 2억 6천만 원)에 달하는 거금이다![12] 참고로 Tonebase 사이트에서는 이러한 신체역학을 단련하기 위한 '대칭 연습법(Symmetrical inversion)', '4음 순열 연습법(Four-note permutations)', '에밀로베르 블랑셰(Émile-Robert Blanchet)의 한 손으로 2개 성부를 다루는 연습법'에 대한 강의를 올려 두기도 했다.[13] 원곡은 ♩=100인데 반해 아믈랭의 연주는 평균적으로 ♩=112이며, 난이도가 정점을 찍는 Con brio 부분에서는 오히려 더 빨라져 ♩=125까지 도달한 적도 있다.[14] 한때 다른 알캉 스페셜리스트 잭 기븐스의 연주가 아믈랭의 연주와 함께 쌍두마차를 달린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속도만을 따지자면 이 연주도 9분 40초가 최고 기록. 아믈랭의 음반 연주는 실황과 다르게 서정적인 부분에서 템포를 낮춰 연주해 9분 20초 가량 걸렸다. 그런데 2010년대 아믈랭의 연주를 감명 깊게 들었던 Paul Wee 역시 아믈랭의 실황 연주와 비슷한 표현을 구성해 8분 52초 만에 완주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실황 연주에서 항상 9분의 벽을 깬 연주는 거의 대부분이 아믈랭이라고 보면 된다.[15] 물론 치프라나 호로비츠의 모든 연주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호로비츠의 쇼팽 영웅 폴로네즈나 치프라의 순례의 연보를 들어보면 결코 자기과시적이거나 섬세한 면이 떨어지지 않는다. 랑랑도 예술적인 면에서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쇼팽 발라드 연주 영상을 보면 주요 멜로디를 잘 살리고 개성있는 표현을 보여준다. 발라드 1번 피날레 부분에서 쓸데 없이 빠른 건 논외로 하자[16] 아믈랭은 이 두 가지 조건 중 '예술성'이 충족되지 않으면 잘 연주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메데 메로의 에튀드(Op. 63) 24번을 '음악성 없는 난곡'이라며 깠고 지금까지 연주한 흔적도 없다(...).[17] 재즈 작곡가로 알려져 있으나 엄밀히 재즈 작곡가는 아니다. 재즈는 즉흥성이 강조되기 때문에 상세하게 음표와 악상기호가 적힌 악보가 엄연히 존재하는 카푸스틴의 음악은 완벽한 재즈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의 조지 거슈윈처럼 재즈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클래식 작곡가라 할 수 있다.[18] 그러나 이 작곡가들이 앞에 서술한 작곡가보다 비주류인 관계로 "만약 아믈랭 말고 다른 사람이 알캉이나 고도프스키를 쳤다면 아믈랭이 독보적인 존재일 수 있을까?"하는 물음을 던지기도 하는데 리스트 같은 다른 테크니션의 곡을 잘 친다 해서 이들의 곡도 잘 칠 수 있다는 확증은 없다. 그런 가정법은 무의미할 뿐이다. 근데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알캉이나 고도프스키 곡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건 사실이다.
사실 사람들이 음반에서도 아믈랭의 초월적인 기교를 기대하게 만들어서 앞서 언급된 리스트 소나타 음반에 대해 실망감을 느끼게 된 이유는 아믈랭의 음반 녹음 경향 자체가 갈수록 '과격함'에서 '안정적'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믈랭이 1994년 헨젤트 및 알캉 협주곡 음반을 하이페리온(Hyperion Records)에서 발매한 이후 레오 온스테인(Leo Ornstein) 음반(2001년 8월 녹음, 2002년 8월 발매)까지, 즉 녹음 기사가 대부분 Tony Faulkner였던 시절에는 말 그대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교를 보여줘야 하는 곡들이 많아 '과격한' 연주를 선보였다. 그러나 프란츠 리스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 및 슈베르트 행진곡 편곡 음반(2002년 2월 녹음, 동년 8월 발매) 이후, 즉 녹음 기사가 대부분 Simon Eadon이었던 시절에는 발매되는 곡들 자체가 이전 시기에 비해 매우 과격한 기교가 필요하지 않는 곡들이 점점 대다수를 차지하면서 음반 연주 역시 '안정적'인 태도로 임하게 되었고 그것이 고착화가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0년 발매된 아믈랭 연습곡 음반과 2024년 발매된 2010년대 이후 작품 음반은 이 시기에 속하면서도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스터치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정적'으로 연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러한 '안정적'인 녹음이라고 해서 표현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실황 연주는 애초에 미스터치가 나서는 안 되는 대회가 아니기 때문에, 아믈랭 역시 환갑이 지난 2020년대에도 간혹 미스터치가 나더라도 파인베르크 소나타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29번(Op. 106) "함머클라비어" 등의 여전히 괴물 같은 곡을 골라 괴물 같은 속도나 손놀림, 그리고 곡에 적합한 표현력을 보여준다.[19] 인터뷰하는 영상에서 웃는 모습이 등장할 때가 많고, 유머를 좋아해서 아믈랭 에튀드 6번, 9번은 물론 파가니니 변주곡 등의 경우, 그의 유머에 대한 이해 없이는 완벽한 연주를 하기 어렵다. 그의 유머가 극대화된 곡은 Circus Galop과 같은 자동피아노를 위한 곡들이기도 하다.[20] 거장 피아니스트들 중에서 예민하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까다로움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피아니스트만 해도 호로비츠, 리히터, 미켈란젤리, 쇼팽, 고도프스키, 글렌 굴드, 등등.[21] 물론 만우절 장난이다.[22] 아믈랭 왈, "The left hand is ever so slightly larger."[23] 유튜브에 돌고 있는 본인의 연주 영상 초반에서도 이에 대해 설명한다.[24] 아믈랭 및 여러 음악학자들에 의하면 이것을 포함해 11개가 더 있다고 한다. 이는 아믈랭의 쇼팽-고도프스키 연습곡집 음반에 포함된 소책자 중 제러미 니콜라스(Jeremy Nicholas)의 소개문 마지막 문단, 혹은 Muse Press의 '미완성된 쇼팽-고도프스키 연습곡' 악보 서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25] 이 때문에 현재 파편화된 상태로 조금씩 발견되고 있으며, 아믈랭은 그 중 '새로운 연습곡' 제1번에 대한 양손 편곡을 2012년 완성하여 2017년 소곡집에 포함시켜 출판했고, 문제의 삼중 연습곡 역시 미완성된 상태로 2020년 일본의 Muse Press에서 출판되었다.[26] 아믈랭 본인은 당시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실된 것으로 설명했으나 1차 대전기 이미 유실된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27] 참조 "but a friend of mine……DARED me……to reproduce THAT stunt!" 참고로 "~dared me"까지 일본에서의 인터뷰에서도 똑같이 말한다. 제안 자체가 그만큼 당시에 그렇게 썩 내키지 않았다는 소리다.[28] International Piano Archives at Maryland; 매릴랜드 국제 피아노 기록물 보관소.[29] 2005년 힌턴의 권유 덕분에 12년이나 중단되었던 에튀드 작업을 4번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이어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4년 뒤 에튀드의 모든 12개 곡이 23년만에 완성되었다.[30] I would have been interested in seeing yours, but I guess it was not to be.[31] 원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기억에 의존해서 다시 작업했다고.[32] 너무 작아지지 않게, 슬프게(lento보다 더 느리게 시작) - 아주 매끄럽게[33] 12번 에튀드의 작곡 시기에서 멀지 않은 1987년 2월 21-22일로 기재되어있는 점으로 보아 습작일지도?[34] 에튀드를 다룬 논문에 의하면 아믈랭은 정말로 흑역사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35] 처음과 마지막에는 진짜 쇼팽 프렐류드 Op. 28, No. 14처럼 1옥타브 차이로 움직이지만, 중간에는 2옥타브 이상으로 벌어진다.[36] circa(대략)의 준말[37] 많은 곳에서는 첫 일본 리사이틀이 열린 1997년 12월로 쓰고 있지만, 인터뷰에서 1998년에 발매된 메트네르 소나타 전집이 나오거나, 배경음악으로 1998년에 발매된 "The Composer-Pianists"에 삽입된 아믈랭 에튀드 10번이 흘러나온 것을 보면 맞지 않는다. 영상 중 일부는 이곳과 이곳에 언급된 리사이틀을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연도 없이 월부터 표기하고 있으므로 제작 연도는 1999년이 유력하다.[38] 이 곳에서 아믈랭의 20대 모습을 볼 수 있다.[39] 1. 클로드 드뷔시 - 영상 1권(L. 110) 중 "물의 그림자"
2. 클로드 드뷔시 - 전주곡 2권(L. 123) 중 6번 "괴짜 '라빈 장군'"
3. 윌리엄 볼컴 - 우아한 유령(Graceful Ghost Rag)
4.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 풍자(Op. 17) 1번
5.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 Con Intimissimo Sentimento - 오르골[40] 본문에서 후술할 내한 리사이틀 이후 진행된 샤를 리샤를아믈랭과의 인터뷰에서, 샤를은 부모 두 명의 성을 모두 이어 받았기 때문에 그의 성이 리샤르아믈랭이라고 하였다. 정확히는 모친의 성이 리샤르(Richard), 부친의 성이 아믈랭(Hamelin). 스페인어권 혹은 국내 일부 페미니스트의 작명 원리와 같다.
2024년 6월 1일 샤를 리샤르아믈랭이 내한했을 때 국내 공연 기획사와의 인터뷰 영상에서 밝히길, 마르크앙드레 아믈랭(Marc-André Hamelin)은 이름이 마르크와 앙드레 두 개이고 성이 아믈랭 하나인 반면, 샤를 리샤르아믈랭(Charles Richard-Hamelin)은 이름이 샤를 하나이고 성이 리샤르와 아믈랭 두 개인 것으로 이름 속 하이픈(-)에 주목해보면 차이점이 보인다고 말하였다. 인터뷰 영상, 10분 30초경부터. 사실 국립국어원에 의하면 외국인의 이름에 하이픈이 있으면 하이픈을 표시하지 않고 붙여쓰는 것이 표준이다.[41] 여담이지만 당뇨가 오기 전에는 연주회 전날 스파게티 등으로 탄수화물을 마구 채워 먹어야 되겠다 생각하곤 했다고 한다.
사실 사람들이 음반에서도 아믈랭의 초월적인 기교를 기대하게 만들어서 앞서 언급된 리스트 소나타 음반에 대해 실망감을 느끼게 된 이유는 아믈랭의 음반 녹음 경향 자체가 갈수록 '과격함'에서 '안정적'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믈랭이 1994년 헨젤트 및 알캉 협주곡 음반을 하이페리온(Hyperion Records)에서 발매한 이후 레오 온스테인(Leo Ornstein) 음반(2001년 8월 녹음, 2002년 8월 발매)까지, 즉 녹음 기사가 대부분 Tony Faulkner였던 시절에는 말 그대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교를 보여줘야 하는 곡들이 많아 '과격한' 연주를 선보였다. 그러나 프란츠 리스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 및 슈베르트 행진곡 편곡 음반(2002년 2월 녹음, 동년 8월 발매) 이후, 즉 녹음 기사가 대부분 Simon Eadon이었던 시절에는 발매되는 곡들 자체가 이전 시기에 비해 매우 과격한 기교가 필요하지 않는 곡들이 점점 대다수를 차지하면서 음반 연주 역시 '안정적'인 태도로 임하게 되었고 그것이 고착화가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0년 발매된 아믈랭 연습곡 음반과 2024년 발매된 2010년대 이후 작품 음반은 이 시기에 속하면서도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스터치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정적'으로 연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러한 '안정적'인 녹음이라고 해서 표현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실황 연주는 애초에 미스터치가 나서는 안 되는 대회가 아니기 때문에, 아믈랭 역시 환갑이 지난 2020년대에도 간혹 미스터치가 나더라도 파인베르크 소나타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29번(Op. 106) "함머클라비어" 등의 여전히 괴물 같은 곡을 골라 괴물 같은 속도나 손놀림, 그리고 곡에 적합한 표현력을 보여준다.[19] 인터뷰하는 영상에서 웃는 모습이 등장할 때가 많고, 유머를 좋아해서 아믈랭 에튀드 6번, 9번은 물론 파가니니 변주곡 등의 경우, 그의 유머에 대한 이해 없이는 완벽한 연주를 하기 어렵다. 그의 유머가 극대화된 곡은 Circus Galop과 같은 자동피아노를 위한 곡들이기도 하다.[20] 거장 피아니스트들 중에서 예민하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까다로움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피아니스트만 해도 호로비츠, 리히터, 미켈란젤리, 쇼팽, 고도프스키, 글렌 굴드, 등등.[21] 물론 만우절 장난이다.[22] 아믈랭 왈, "The left hand is ever so slightly larger."[23] 유튜브에 돌고 있는 본인의 연주 영상 초반에서도 이에 대해 설명한다.[24] 아믈랭 및 여러 음악학자들에 의하면 이것을 포함해 11개가 더 있다고 한다. 이는 아믈랭의 쇼팽-고도프스키 연습곡집 음반에 포함된 소책자 중 제러미 니콜라스(Jeremy Nicholas)의 소개문 마지막 문단, 혹은 Muse Press의 '미완성된 쇼팽-고도프스키 연습곡' 악보 서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25] 이 때문에 현재 파편화된 상태로 조금씩 발견되고 있으며, 아믈랭은 그 중 '새로운 연습곡' 제1번에 대한 양손 편곡을 2012년 완성하여 2017년 소곡집에 포함시켜 출판했고, 문제의 삼중 연습곡 역시 미완성된 상태로 2020년 일본의 Muse Press에서 출판되었다.[26] 아믈랭 본인은 당시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실된 것으로 설명했으나 1차 대전기 이미 유실된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27] 참조 "but a friend of mine……DARED me……to reproduce THAT stunt!" 참고로 "~dared me"까지 일본에서의 인터뷰에서도 똑같이 말한다. 제안 자체가 그만큼 당시에 그렇게 썩 내키지 않았다는 소리다.[28] International Piano Archives at Maryland; 매릴랜드 국제 피아노 기록물 보관소.[29] 2005년 힌턴의 권유 덕분에 12년이나 중단되었던 에튀드 작업을 4번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이어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4년 뒤 에튀드의 모든 12개 곡이 23년만에 완성되었다.[30] I would have been interested in seeing yours, but I guess it was not to be.[31] 원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기억에 의존해서 다시 작업했다고.[32] 너무 작아지지 않게, 슬프게(lento보다 더 느리게 시작) - 아주 매끄럽게[33] 12번 에튀드의 작곡 시기에서 멀지 않은 1987년 2월 21-22일로 기재되어있는 점으로 보아 습작일지도?[34] 에튀드를 다룬 논문에 의하면 아믈랭은 정말로 흑역사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35] 처음과 마지막에는 진짜 쇼팽 프렐류드 Op. 28, No. 14처럼 1옥타브 차이로 움직이지만, 중간에는 2옥타브 이상으로 벌어진다.[36] circa(대략)의 준말[37] 많은 곳에서는 첫 일본 리사이틀이 열린 1997년 12월로 쓰고 있지만, 인터뷰에서 1998년에 발매된 메트네르 소나타 전집이 나오거나, 배경음악으로 1998년에 발매된 "The Composer-Pianists"에 삽입된 아믈랭 에튀드 10번이 흘러나온 것을 보면 맞지 않는다. 영상 중 일부는 이곳과 이곳에 언급된 리사이틀을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연도 없이 월부터 표기하고 있으므로 제작 연도는 1999년이 유력하다.[38] 이 곳에서 아믈랭의 20대 모습을 볼 수 있다.[39] 1. 클로드 드뷔시 - 영상 1권(L. 110) 중 "물의 그림자"
2. 클로드 드뷔시 - 전주곡 2권(L. 123) 중 6번 "괴짜 '라빈 장군'"
3. 윌리엄 볼컴 - 우아한 유령(Graceful Ghost Rag)
4.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 풍자(Op. 17) 1번
5.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 Con Intimissimo Sentimento - 오르골[40] 본문에서 후술할 내한 리사이틀 이후 진행된 샤를 리샤를아믈랭과의 인터뷰에서, 샤를은 부모 두 명의 성을 모두 이어 받았기 때문에 그의 성이 리샤르아믈랭이라고 하였다. 정확히는 모친의 성이 리샤르(Richard), 부친의 성이 아믈랭(Hamelin). 스페인어권 혹은 국내 일부 페미니스트의 작명 원리와 같다.
2024년 6월 1일 샤를 리샤르아믈랭이 내한했을 때 국내 공연 기획사와의 인터뷰 영상에서 밝히길, 마르크앙드레 아믈랭(Marc-André Hamelin)은 이름이 마르크와 앙드레 두 개이고 성이 아믈랭 하나인 반면, 샤를 리샤르아믈랭(Charles Richard-Hamelin)은 이름이 샤를 하나이고 성이 리샤르와 아믈랭 두 개인 것으로 이름 속 하이픈(-)에 주목해보면 차이점이 보인다고 말하였다. 인터뷰 영상, 10분 30초경부터. 사실 국립국어원에 의하면 외국인의 이름에 하이픈이 있으면 하이픈을 표시하지 않고 붙여쓰는 것이 표준이다.[41] 여담이지만 당뇨가 오기 전에는 연주회 전날 스파게티 등으로 탄수화물을 마구 채워 먹어야 되겠다 생각하곤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