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CK 뷰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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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 정식 명칭 | Buick Motor Car Division |
한국어 명칭 | 뷰익[1] 자동차 사업부 |
중국어 명칭 | 别克 |
설립자 | 데이비드 던바 뷰익(David Dunbar Buick) |
설립 년도 | 1899년 12월([age(1899-12-01)]주년) |
본사 소재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미시간 디트로이트 |
업종 | 자동차 제조 |
판매 국가 | 북미, 중국[2], 멕시코 등 |
소유 | 제너럴 모터스 |
공식 홈페이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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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디자인적으로 뛰어난. (Exceptional by design) 최신 슬로건 |
'Exceptional by design' 캠페인 영상 |
제너럴 모터스 산하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다. 같은 그룹 내 플래그십 브랜드인 캐딜락보단 반급 아래에 위치하며, 경우에 따라 매스 프리미엄 브랜드로 취급되기도 한다.[3]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가장 오래된 브랜드이기도 하다.[4]
2. 역사
1880년대부터 나름 성공적인 배관 사업을 운영해온 스코틀랜드 출신의 발명가 데이비드 던바 뷰익(David Dunbar Buick)은 1890년대에 접어들며 내연기관에 흥미를 느꼈고, 1899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Buick Auto-Vim and Power Company'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엔진 제작에 나섰다.엔진 제작 초기까지만 해도 뷰익은 선박용 엔진 공급에 주력할 계획이었으나, 수석 엔지니어인 월터 마르(Walter Marr)의 제안으로 뷰익의 가솔린 엔진을 얹은 첫 자동차가 탄생했고, 1902년엔 '뷰익 제조 기업(Buick Manufacturing Company)'으로 체제를 전환하며 내연기관의 연구 개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세계 최초의 OHC 엔진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판매 성과 없이 연구 개발에만 투자가 이뤄지자 회사는 자금난을 겪기 시작했고, 사명을 '뷰익 자동차 회사(Buick Motor Company)'로 교체한 뒤 37대의 양산차를 제작하고도 어려움이 계속되자 뷰익은 1904년 11월, 윌리엄 듀런트를 지배적 투자자로 영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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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식 뷰익 모델 17 |
듀런트의 영입 이후 회사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영입 직후인 1905년 뷰익의 자동차 생산량은 750대로 급증했으며, 1906년 1,400대, 1907년엔 4,641대를 생산하며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1908년, 뷰익은 8,820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며 포드 모터 컴퍼니와 올즈모빌의 실적을 추월해 단숨에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윌리엄 듀런트는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뷰익의 지주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고, 이것이 오늘날 제너럴 모터스로 이어져 오고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뷰익이 제너럴 모터스의 모체인 셈.
제너럴 모터스 산하의 브랜드로 재편된 이후 뷰익은 캐딜락, 쉐보레 등 다른 브랜드와 함께 세계 시장에서 더욱 공격적인 판매를 이어나갔다. 이 무렵 롤스로이스와 경쟁하던 캐딜락[5]보다 한 급 아래에 위치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포지션을 확정짓고 상류층 고객들을 타겟으로 삼기 시작했는데, 이 전략이 잘 먹혀들어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선통제(푸이)를 위한 황실 차량으로 뷰익 차량이 선정되기도 했다.[6] 유럽에서도 영국의 군주 에드워드 8세가 뷰익 차량을 구입해 타고 다녔으며, 캐나다 왕실에서도 뷰익 차량을 사용했을 정도이다.[7] 일반 대상 판매도 성행해 1926년엔 26만대 생산을 달성했다. 대공황을 겪으며 판매가 잠시 급감하기도 했으나, 3년만에 다시 20만대 수준의 생산량을 회복해 굳건한 경쟁력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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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콘셉트 카인 뷰익 Y-Job |
지속적인 혁신 또한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1938년엔 세계 최초의 콘셉트 카라 할 수 있는 Y-Job을 선보이며 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리트랙터블 라이트, 파워 윈도우, 플러시 도어 핸들 등 다양한 요소를 도입하며 자동차 디자인의 경지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또한 세계 최초로 방향지시등을 도입해 교통 안전의 새 지평을 열었고, 캐딜락으로부터 V8 엔진과 싱크로메시 변속기를 공유받는 등 고급 기술 보급에 기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여파가 한바탕 휘몰아치고 난 뒤인 1950년대부터는 기존의 고급차 이미지와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인기가 한층 성장해 1955년 한 해에만 73만대 이상의 차량을 판매하는 데에 성공했다. 1959년엔 엘렉트라, 인빅타, 르세이버 등 3종의 신모델을 선보이며 라인업을 대대적으로 개편했고, 데이토나 500 경기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는 등 모터스포츠 분야에서도 성장을 이뤘다. 이후 1960년대를 거치면서는 리비에라 등의 고급 쿠페를 통해 안방인 북미 시장에서 고급차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했으며, 1970년대엔 메르세데스-벤츠, 올즈모빌, 캐딜락과 함께 자동차 에어백을 발 빠르게 도입하는 등 여전히 선구자적인 면모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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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드릭 라마의 뷰익 GNX |
1980년대엔 일본 업체의 성장과 미국 정부의 환경 규제에 대응해 다운사이징을 단행하되, 그랜드 내셔널(Grand National)[8]이나 T-타입처럼 전통적인 미국제 고급 고성능 차량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선택지도 함께 제공함으로서 고객층을 확대해 창립 이후 처음으로 100만대 판매를 달성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바디 타입과 파워트레인도 다양해졌다. 컨버터블, 쿠페, 세단, 왜건 등 다양한 변형 모델이 뷰익의 볼륨 모델에서 제공되었으며, 미국 브랜드에서 흔치 않은 디젤 선택지까지 제공해 선택의 자유를 넓혔다. 또한 세계 최초로 터치 디스플레이를 차량에 도입해[9] 오늘날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기초 개념을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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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함에 초점을 맞춘 뷰익 르세이버(8세대) |
다만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제너럴 모터스 내부에서 독립적인 브랜드 활동이 축소되고, 본사 경영진들의 방만한 경영과 오판이 이어짐에 따라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풀사이즈 플래그십 세단인 엘렉트라가 전륜구동(FF) 방식의 구동계를 탑재하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브랜드 포지션 역시 이 무렵 캐딜락의 브랜드 가치 하락 및 올즈모빌의 방향성 전환과 맞물려 이전과 미묘하게 달라졌으며, 캐딜락과 쉐보레 사이에 낀 애매한 형국이 되었다.[10] 이러한 문제가 누적된 1990년대부터는 안락한 승차감과 부드러운 디자인만을 내세운 고리타분한 세단들이 라인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브랜드의 평균 고객 연령대가 높아지며 현지에서 '노인들이나 좋아하는 차'[11]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 지속적인 포지션 간섭을 일으키던 올즈모빌 브랜드가 폐지되며 신차 노선이 정리된 덕에 고급 브랜드로서 다시금 뚜렷한 방향성을 지니게 되었고, 캐딜락을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성능 중심 1군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시키고 뷰익을 렉서스, 아큐라 등 2군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시킨다는 본사 방침에 따라 본격적인 브랜드 재건 작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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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펠 인시그니아 기반의 뷰익 리갈 GS(5세대) |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라크로스의 출시를 필두로 세단 라인업이 개편되고 SUV 라인업이 추가되며 뷰익은 2005년 한 해에 북미 시장에서만 234%의 판매 성장을 달성했으며,[12] 중국 시장에서도 비슷한 시기 다양한 현지 전략 모델을 선보여 판매 성장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실적을 바탕으로 뷰익은 2008년 GM 파산 사태를 무난하게 넘겼고, 한동안 독일 오펠과의 연계를 확대하며 종합주행성능을 크게 끌어올리는 동시에 라인업을 확장, 유럽 성향의 차량을 선보이며 쉐보레 및 캐딜락과 차별화를 꾀했다. 2014년 기준으론 5세대 리갈처럼 오펠의 차량을 거의 그대로 뱃지 엔지니어링한 모델과, 2세대 라크로스처럼 오펠 주도로 개발된 플랫폼을 사용한 전용 모델, 1세대 엔클레이브처럼 오펠의 요소가 일체 개입되지 않은 별도 모델이 뷰익 브랜드 아래에서 함께 판매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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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익의 최신 SUV 라인업[13] |
다만 이러한 브랜드 정책은 뷰익이 프리미엄 성향임을 고려할 때 다소 이질적인 부분이 있었고,[14] 2017년 오펠이 스텔란티스로 매각되며 또 한 번 변화를 맞게 된다. 오펠과의 연계가 끊어짐과 동시에 각 모델간의 유기성을 늘려 뷰익 고유의 정체성을 다시 강화했으며, 성능 지향적인 캐딜락과 달리 컴포트에 집중함으로서 본질적인 차원에서 노선을 달리 했다.
2022년엔 신규 로고를 발표하며 마침내 리브랜딩이 완료되었고, 2024년엔 신규 슬로건의 발표와 함께 북미 시장에 판매되는 전차종의 디자인을 뷰익 고유의 새로운 테마에 맞게 업데이트했다.
현재는 북미와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브랜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1. 대한민국 시장
같은 제너럴 모터스 산하의 쉐보레, GMC, 캐딜락과 달리 2025년 현재 대한민국 시장에서 정식 판매를 진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워낙 오래된 브랜드인만큼 한국 시장과의 접점이 은근히 많다.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GM 일본 지사의 물량이 수입된 것을 시작으로 뷰익 차량의 국내 판매가 개시되었는데, 이 당시 뷰익 차량은 국내에서 1만원 정도에 팔리며 고급 승용차로 통했다. 프랑스 공사도 조선에서 자국 차량 대신 뷰익 차량을 관용차로 타고 다녔고, 중앙학교를 운영하고 동아일보 사장을 지내는 등 명망이 높았던 인촌 김성수 역시 자가용으로 뷰익 차량을 선택했다.
해방 이후에도 고급차 이미지는 여전했다. 덕분에 여러 정재계 인사들의 자가용으로 꾸준히 선택받았고, 격동의 시대를 함께했다. 백범 김구가 평소 뷰익 슈퍼 차량을 애용해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연석회의에 뷰익 차량을 타고 나타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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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붕의 자택을 습격한 시위대가 탈취한 뷰익 엘렉트라 |
정부 수립 이후엔 대한민국 정부 고위 관료들의 의전차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기붕의 관용차로 엘렉트라가 사용된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에선 택시로도 뷰익 차량이 많이 쓰였고, 1950년대엔 올즈모빌, 포드와 함께 국내 개체 수가 가장 많은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였다.
다만 1960년대 후반부터는 주로 주한 미군 차량이나 외교관 차량으로 돌아다녔다. 이후 한동안 인기가 줄어 그레이 임포트나 이삿짐으로 들여온 차량을 제외하면 보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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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익 파크 애비뉴 국내 지면 광고 |
그러다가 1990년, 대우자동차에서 뷰익의 대형 세단인 파크 애비뉴를 국내 시장에 정식으로 수입 판매하기 시작했다. 1993년 3월부터는 영국의 국제 유통회사인 인치케이프에서 국내 수입을 담당했고, 메르세데스-벤츠, 캐딜락 등 타 수입차 대비 저렴한 가격과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내세워 가성비 수입차로 꽤나 많은 인기를 얻었다.
2005년엔 GM대우가 중국 시장에서 로이엄으로 판매된 홀덴 스테이츠맨을 국내 시장에 수입해 판매했고, 2008년엔 3세대 파크 애비뉴와 동일한 모델인 3세대 스테이츠맨이 베리타스로 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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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뷰익 라크로스를 현지화한 알페온 |
2010년부터 2016년까진 2세대 라크로스를 바탕으로 한 현지 전략 모델 알페온의 국내 생산, 판매가 이뤄진 바 있다.
또한 국내 시장 판매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앙코르 같은 소형 SUV가 제너럴 모터스의 한국 공장에서 생산되어 수출된 바 있으며, 현재도 앙코르 GX, 엔비스타 등의 뷰익 차량이 한국 공장에서 생산되어 북미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3. 트림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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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ferred | ST | Avenir |
2025년 기준 북미 시장에서 뷰익 차량의 트림 구분 체계는 다음과 같다. 위의 예시는 엔비전.
- Preferred(프리퍼드) - 기본 사양. 기초적인 편의장비와 정제된 디자인이 적용된다.
- Sport Touring(약칭 ST, 스포츠 투어링) - 중상급 사양. 프리퍼드 사양 대비 편의장비가 보강되며, 스포티한 디자인이 적용된다.
- Avenir(에비니어) - 최고급 사양. 각종 크롬 파츠와 대구경 휠, 고급 소재가 적용되며, 모든 편의장비가 탑재되는 풀패키지이다.
4. 특징
- 제너럴 모터스 산하의 쉐보레, GMC, 캐딜락은 물론이고 미국차 브랜드 전체를 통틀어서 차량의 내구성이 가장 좋은 편에 속하는 브랜드다. 실제로 최근 10년 동안 JD 파워 내구품질조사(VDS) 순위에서 5위권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는 유일한 브랜드가 바로 뷰익이다.[15]
- 뷰익 모델들은 개발 과정에서 고유의 'QuietTunning' 프로세스가 반영되어 대부분 NVH가 좋은 편이고, 사측에서도 지난 수십년 동안 뛰어난 정숙성을 강점으로 내세워 오고 있다. 모델마다 차이는 있지만 실제 테스트 결과는 대게 동급의 렉서스 차량과 유사한 수준. 다만 중국 시장에 판매된 일부 염가형 뷰익 차량들의 경우 이러한 인식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 본고장인 미국보다 중국 시장에서 훨씬 더 잘 나가는 브랜드이다. 상단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선통제가 뷰익 차량을 탄 것을 시작으로 일찍이 중국에서의 사업을 전개해 현지에서 높은 인지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인데, 2021년 기준 뷰익의 글로벌 판매량인 106만대 중 82만 8,000여대에 달하는 물량이 중국에서 판매되었을 정도로 중국 시장 의존도가 크다.
- 공식적으론 프리미엄을 지향하지만, 현재는 사실상 매스 프리미엄(준 프리미엄) 브랜드 취급을 받고 있다. 오펠 차량을 고급화해서 판매했다는 점에서 유럽 혼다 차량을 고급화해 팔던 혼다의 고급 디비전인 아큐라와 행보가 많이 비슷한 편이고, 북미에서의 지위나 브랜드에 대한 인식 자체도 아큐라와 동급 수준이다. 고급차 대접을 받긴 하나 주류 프리미엄 브랜드 수준까진 아닌 것. 지금은 폐지되긴 했지만 한 때는 포드의 매스 프리미엄 브랜드인 머큐리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16]
5.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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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2022년 | 2022년~현재 |
6. 슬로건
Exceptional by design 최신 슬로건 |
THE NEW CLASS OF WORLD CLASS 2010년대 초반 |
dream Up 2000년대 중반 |
The Great American Road Belongs to Buick 1980년대 후반~1990년대 |
A little science. A little magic. 1970년대 후반 |
The solid feeling. 1970년대 초반 |
7. 생산차종
- 크로스오버/SUV
8. 단종차종[참고]
- 세단/해치백/왜건/쿠페
9. 콘셉트 카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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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소형 | - | 세일 | |
준중형 | 베라노 · 벨라이트 6 | 스페셜(1961~1963) · 아폴로 · 스카이호크 · 엑셀 · 엑셀 XT · 엑셀 GT · 벨라이트 5 | |
중형 | 리갈 | 스탠다드 식스 · 스카이락 · 소머셋 · 스페셜(1964~1969) · 센추리 · 스포트 왜건 | |
준대형 | 라크로스 | - | |
대형 | - | 모델 B · 4 · 식스 · 마스터 식스 · 슈퍼 · 리미티드 · 로드마스터 · 스페셜(1936~1958) · 스카이락(1953~1972) · 엘렉트라 · 르세이버 · 인빅타 · 와일드캣 · 센추리온 · 리비에라 · 에스테이트 · 파크 애비뉴 · 로이엄 · 루체른 | |
컨버터블 | - | 카스카다 · 레아타 | |
소형 SUV | 앙코르 GX · 엔비스타 | 벨라이트 7 · 앙코르 | |
준중형 SUV | 엔비전 | - | |
중형 SUV | 엘렉트라 E4 · 엘렉트라 E5 | 레이니어 · 랑데뷰 · 리갈 투어X | |
준대형 SUV | 엔클레이브 | - | |
MPV | GL8 | 테라자 · GL6 | |
대전차 자주포 | - | M18 헬캣 |
[1] 1970년대에 국내 시장에 '시보레 1700' 차종이 출시되었을 때 소개된 이름은 '빅크'였다.[2] 홍콩 및 마카오 제외[3] 다만 이는 시장에서의 자의적인 분류이며, 제너럴 모터스 측에선 공식적으로 뷰익을 프리미엄 브랜드 취급한다.[4] 현존 브랜드 기준.[5] 지금이야 캐딜락이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과 경쟁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취급을 받지만, 19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캐딜락은 롤스로이스, 벤틀리와 함께 세계 3대 명차 취급을 받는 럭셔리 브랜드였다.[6] 차량 자체는 1910년대부터 공급했고, 1929년엔 상하이 현지에 차량 판매를 위한 사무소를 개시하기도 했을 정도로 뷰익은 중국 시장에 굉장히 빨리 진출한 편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덕분에 뷰익은 미국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국 시장에서 상당한 명성을 지니고 있다. 중화민국의 국부인 쑨원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 총리인 저우언라이 역시 이 점을 고려한 것인지 생전 뷰익 차량을 타고 다녔다.[7] 이는 고급차 이미지와 더붙어 당시 뷰익 차량이 '우수한 내구성'이란 강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1906년 시카고에서 뉴욕까지의 1000마일 릴레이 경주를 완주한 유일한 차량이 바로 뷰익 차량이었고, 1914년 남미 횡단에 성공한 최초의 차량 역시 뷰익 차량이었기 때문. 당시 도로 여건을 고려하면 이 정도 가혹 주행을 버티는 고급차는 많지 않았다.[8] 리갈의 고성능 사양으로, 궁극적 개량형인 Grand National eXperimental(GNX)의 경우 한 때 가장 빠른 미국차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뷰익의 명차 중 하나로 회자되는 차량이다.[9] 7세대 리비에라에 탑재된 CRT 방식 디스플레이는 터치를 지원했다. 단색 모니터긴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작동영상[10] 기본적으론 올즈모빌과의 포지션 중첩에 따른 영향이 크다. 당시 제너럴 모터스의 브랜드 체계는 기본형인 쉐보레를 시작으로 중급인 올즈모빌과 폰티악, 중상급인 뷰익, 최상급인 캐딜락으로 분류되어 있었으나, 올즈모빌은 1980년대부터 브랜드 폐기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정도로 그룹 내 스포츠 성향의 폰티악과 프리미엄 성향의 뷰익 사이에서 심각한 간섭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중에 가선 수입차 대항마를 자처하며 브랜드 지위 상승을 꿈꿨는데, 이는 올즈모빌의 상급 브랜드인 뷰익과의 포지션 중첩이 더욱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11] 국내 시장에선 렉서스나 구형 르노삼성 차량들이 나긋나긋한 주행질감을 갖춰 소위 '할배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데###, 당시 북미 시장에서 뷰익의 할배차 이미지가 이러한 이미지와 거의 일치했다고 보면 된다.[12] 2004년 한 해 동안 뷰익은 북미 시장에서 고작 84,402대의 차량을 판매했는데, 2005년엔 282,888대의 차량을 판매하며 정상화에 성공했다.[13] 왼쪽부터 순서대로 엔비전, 앙코르 GX, 엔비스타, 엔클레이브[14] 그도 그럴 것이 오펠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니니...[15] 내구성으로 유명한 토요타도 2023년 7위, 2018년 9위로 밀려난 적이 있고, 렉서스도 2022년에 6위를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14년 이후 5위 아래로 단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 뷰익의 VDS 수치는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닌다. 다만 신차품질지수(IQS)는 다소 오락가락하는 편.[16] 다만 머큐리는 한창일 때 시장에서 올즈모빌과 맞붙었기에 경우에 따라 취급이 달라지기도 한다. 뷰익은 올즈모빌보다 상급 브랜드였기 때문. 실제로 동세대 머큐리 차량과 뷰익 차량을 비교해도 뷰익 차량들이 더 고급스러우며, 신차 가격도 뷰익 차량들이 동급 머큐리 차량보다 비쌌다.[C] 중국 전용 차종[C] [C] [C] [C] [C] [C] [참고] 워낙 오래된 브랜드다보니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되지 않은 차량들이 상당히 많다. 아래에 서술된 차량들은 뷰익의 단종차종 중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