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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07:54:24

신윤복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white><tablebgcolor=#fff,#1f2023> 파일:문화부 심볼.svg이달의 문화인물
(1998-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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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 당시 기관명은 문화부(1990~1993) → 문화체육부(1993~1998) → 문화관광부(1998~2005)였다.
이달의 문화인물(1990-1997) }}}}}}}}}
<colbgcolor=#003764><colcolor=#fff> 신윤복
申潤福
성명 신윤복(申潤福)
아명 신가권(申可權)
본관 고령 신씨 (高靈 申氏)[1]
출생 1758년(영조 24)
사망 1814년(순조 14) 추정 (향년 56세)
국적 파일:조선 어기.svg 조선
자 / 호 덕여(德如) 또는 입부(笠父) / 혜원(蕙園)
직업 화가
부모 부친 - 신한평(申漢枰, 1726[2] ~ 1809?)
모친 - 전주 이씨
형제자매 형 - 신인권, 신의권, 신응권, 신양권
남동생 - 신윤도
여동생 - 김인욱의 처, 청주 한씨 한승묵의 처
1. 개요2. 생애3. 작품 목록4. 논란
4.1. 모호한 성별
5. 대중매체에서6. 가족

[clearfix]

1. 개요

KBS 역사스페셜 – 신윤복은 왜 여자를 그렸나
조선 영조, 정조 시기의 화가.

2. 생애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불리며 한편으로 단원 김홍도, 오원 장승업과 함께 '삼원(三園)'으로 불리기도 했다. 신숙주의 동생 신말주(申末舟)의 11대손이기도 하다. 신윤복의 집안은 대대로 화공을 세습했는데 종증조부 신세담, 종조부 신일흥(申日興), 아버지 신한평(申漢枰)[3]도 도화서 화원이였다. 신윤복의 형제로는 신인권(申仁權), 신의권(申義權), 신응권(申應權), 신양권(申亮權) 등 4명의 형과 남동생 신윤도(申潤濤), 성명 불명의 여동생이 2명 있었다. 어렸을 적 이름은 '가권'이였는데 훗날 '윤복'으로 개명한다.

김홍도가 풍속화만 두고 보았을 때 서민의 생활을 주로 그렸다면 신윤복은 양반가의 생활을 주로 그렸으며 특히 여성의 생활상이나 남녀가 어울려 노는 모습을 화폭에 담아 김홍도와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김홍도는 풍경을 거의 그리지 않았지만 신윤복은 자주 그렸다. 김홍도는 왕을 상징하는 색인 빨간색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신윤복은 빨간색을 사용해 풍자했다. 기생[4]과 양반들이 주요 모델이였기에 신윤복의 풍속화 모음집인 <혜원전신첩>은 양반 문화와 복식 연구에 있어서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일부 사극 제작 과정 영상을 보면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며 가체의 형태 등을 참고하는 모습도 보인다. 몇몇 작품에서는 동일 인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기생(흰 저고리+검붉은 깃+파란 치마)과 젊은 남성(초립+선홍색 도포)인데 신윤복의 이웃일 가능성도 있다.

3. 작품 목록

국보 제135호 <혜원전신첩>으로 남아있다.

4. 논란

4.1. 모호한 성별

5. 대중매체에서

6. 가족



[1] 귀래정공파 19세 권(權) 항렬.[2] 1735년 설도 있다.[3] 신한평이 <연려실기술>의 저자 이긍익의 아버지 이광사의 초상을 그린 것이 지금도 남아있다.[4] 춘화도도 많이 남겼다. 이 점에서도 운우도첩을 그린 김홍도와 라이벌이다.[5] 또다른 설은 춘화를 그리다가 발각되어 내쫓겼다는 설이다. 사실 화원 인물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은데 김홍도만 해도 당시에 상당한 그림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임금의 초상을 그리는 어용화사로도 채용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