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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23:22:08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전개
2.1. MBC의 연예계 노예계약 폭로2.2.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의 MBC 출연 거부2.3. 연제협 소속 기획사들의 MBC 상대 손배소 줄패소
3. 연제협 사태와 폭로의 의의4. 참고 자료5. 관련 문서

1. 개요

2001년 시사매거진 2580을 통해 연예계 노예 계약을 폭로한 문화방송(MBC)의 보도에 보복하기 위해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이하 연제협)가 회원사 소속 연예인들의 MBC TV 프로그램 출연을 막은 사태를 말한다.

2. 전개

2.1. MBC의 연예계 노예계약 폭로

당시 사건에 대한 요약이 담겨 있는 한밤의 TV연예 영상

사건의 발단이 된 MBC 시사매거진 2580 이상호 기자의 '스타와 연예산업'(2001년 6월 17일 방영)편은 다음과 같은 프롤로그 멘트로 시작된다.
하룻밤에도 수많은 스타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명멸해간다. 스타시스템의 속성으로 넘겨버리기에 한국적 상황은 심각하다. 한국에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이미 주요산업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 산업의 주역이랄 수 있는 스타들에 대한 관리는 가히 봉건적이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매니지먼트사는 스타들을 매우 소모적으로 소비하고 있고 스타들의 생명은 짧아져만 간다. 일방적인 매니저와 연예인의 계약관계와 그로 인해 일회용 패스트푸드로 전락하고 있는 연예계의 비애를 들여다본다.
의미심장하기 그지없다. 한국 음악사, 그리고 방송사 50여년만에 지상파 역사상 최초로 집중 조명한 연예계의 문화 부조리를 철저하게 파헤친 방송이었던 것이다. 그 전에는 신문으로만 가끔 다루던 주제였다.[1] 그리고 이후로 이같은 레벨의 방송이 나오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2]

방송의 내용은 일반 대중들에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연예계 노예계약'의 실체가 최초로 공개되었던 것. 특히 이은미는 M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노비문서"라 표현하면서 연예산업의 불평등한 관행을 내부 고발했다. 한스밴드 역시 스케줄의 고단함과 부조리함을 강조했다. 특히 H.O.T.의 장당 20원 계약, JTL의 연예활동 어려움 등은 아이돌 시장의 극악한 열악함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2580은 영향력이 큰 지상파에서 연예계의 어둠을 세상 전면에 끄집어내며 연예인들을 노예 부리듯 갑질과 불평등을 일삼던 연예계를 비판했다.

다음은 주요장면.
토니 안: 1월 29일(2001년)날 그날 SM 대표자분께서 저희에게 오셔서 “H.O.T는 오늘 이후로 해체를 할 것이니 각자의 길을 가도록 합시다"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충격도 많이 받았고 마음이 떠날 수밖에 없었죠.

이상호: (SM 측과의) 계약 조건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이재원: 대부분의 멤버들이 (앨범 한 장당) 20원인 걸로 알고 있고요. 사실이고...
장우혁: 동등한 위치에서 같이 도움도 주고 힘들 땐 위로도 주고 그런 관계 있잖아요. 10년, 20년, 30년 가서 같이 그렇게 소속사도 커가고 가수도 같이 끝까지 같이 가주는 그런 형태가 제일 좋죠.

- 어린 학생들로 이루어진 한스밴드는 전속계약에 따른 강행군으로 몸과 마음이 지쳤음을 토로했습니다.
김한나: 방송 쫓아다니고 행사 쫓아다니고 그러느라고 쉴 시간도 없구요. 계속 피곤한 게 쌓이니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그래서 좀 그런 게 힘들었구요.
김한별: 상품 보듯이 그렇게 하지 않구요, 저희와 함께 상의하고 의견 같은 거 물어보면서 같이 상의하거나 하나가 돼서 같이 모든 걸 다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 이은미 씨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이은미: 아마 노비문서라는 말이 거의 그러한 얘기랑 흡사할 거예요. 가수는 권리가 없어요. 그래서 그 음반의 판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요즘에 많이 나오죠. 그런 음반들... 편집 음반들 많이 나오잖아요. 아무데나 가져다가 그 가수의 이름을 넣어서 그 가수의 곡을 집어넣어도 법적인 제재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2.2.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의 MBC 출연 거부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이하 연제협)가 '노비문서' 란 표현을 문제 삼으며 방송 자체가 왜곡·편파보도라 주장하면서 발끈하고 나섰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이 그 발언은 2580측이 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한참 선배인 이은미가 한 거다. '스타와 연예산업' 방송 다음 주에 벌어진 그 사건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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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7월 10일 일어났던 '진풍경'이었다.[3]

박진영, 신승훈, 김건모, 탁재훈, 유승준, 조성모, 구본승, 김현정, 김태형 등 선배 가수들이 앞쪽에 자리잡았고 그 뒤편에 후배 가수들인 god, 베이비복스가, 그리고 배우인 김정은, 방송인인 이휘재, 강병규[4] 등 가수, 배우, 방송인 불문한 장사진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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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제작자협회 간부들은 기자회견장 앞에 앉아 가수들의 기자회견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당시 가수들이 했던 발언들은 다음과 같다.
김건모: 저희가 수험생인데 밥을 먹고 공부를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부모님께서 너 공부해라 하는 말을 들으면 공부할 마음이 안 납니다. 저는 글쎄 비유가 적절했나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려는 저희 가수들을 더 북돋아주지 못할 망정 노예란 말로 몰아세운 그 점이 저희를 이 자리에 모이게 한 것 같습니다. 시사매거진 2580은 이를 편파, 왜곡 보도한 것이므로 사과하기 전까지는 연예인들도 무기한 MBC TV에 출연을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김태형: 내가 아는 제작자 중 시사매거진 2580에 나오는 제작자 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가수 출신 제작자인 내가 보기에 2580이 보도한 내용은 연예인들과 제작자 및 연예매니저의 관계를 지나치게 종속적인 관계로 표현했다.

신승훈: 가수와 매니저들은 대부분 '동반자' 로 생각하고 일하는데 2580이 보도한 종속적 관계의 '노예' 라는 표현은 부적절합니다.

박진영: 저희도 여기에 앉아서 '대한민국에 그런 계약이 절대 없습니다' 라고 말할 생각은 없고요. 분명히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를 전체로 이야기한 그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연예인과 매니저의 일부 종적인 관계를 전체인 것처럼 보도한 것과 '노예계약' 이라는 단어를 선택해 연예인들에게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은 잘못된 것이죠.
저 발언들은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나온 발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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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김현주 차장은 매니저들의 완력으로 끌려나와야 했다.

또 다른 '진풍경'도 벌어졌다. 초상권 문제가 있으니 MBC 카메라는 나가달라고 한 것이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의 김현주 차장은 "우리는 '노예' 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 며 "취재를 방해하지 말라" 고 말했으나 결국 가벼운 몸싸움 끝에 쫓겨났다. 매니저들은 MBC 뉴스의 문소현 기자에게도 나가줄 것을 요구했으나 문소현 기자는 "나는 '2580' 소속이 아닌 '뉴스' 기자다"라며 항의했다.

그러자 수십 명의 매니저들과 기자들이 함께 뒤엉켜 문 기자를 둘러쌌다. 연제협측에서 "우리는 MBC 기자는 초청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문 기자는 "기자가 기자회견에 초청 받고 오는 일은 없다"고 답변했다.

급기야 연제협측에서는 "(문 기자가 앉은) 의자채 들고 나가라", "MBC 기자가 기자냐?" 등의 말을 퍼부었으며 기자들이 문 기자가 끌려나가는 장면을 향해 플래시를 터뜨리자 "사진 찍지 말라", "가수 기자회견이니 가수만 찍어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이에 기자들은 "기자회견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찍을 수 있다" 고 항의했다. 결국 문 기자는 한 여성매니저에 의해 밖으로 쫓겨났다.

'스타와 연예산업'을 보도했던 이상호 기자는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심정을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그들을 위해 기사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자기들이 노예가 아니라고 외치니 다리에 힘이 빠지더라"고.[5]
출처.

이후 연제협 연예인들의 MBC 출연 거부로 인해 MBC는 예능 프로그램음악 방송 제작에 큰 차질을 빚었다. 생방송 음악캠프의 경우 기자회견 이후 방송된 2001년 7월 7일 방송분에서는 박진영의 무대를 제외한 다른 출연 예정 가수들의 무대는 뮤직비디오로 대체되었으며[6] 이후 두 달 가까이 제작이 중단된 후 2001년 9월 1일 방송분부터는 분위기 쇄신겸 모든 가수들의 공연을 립싱크 전면 금지를 내세워 필수적으로 라이브를 해야하는 방식으로 부활해 진행했다.

다만 이때 AR이 아닌 MR만을 이용한 올라이브 시스템에 부담을 느낀 댄스 가수들이 스스로 MBC 출연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이 일어났기에[7] 2001년 하반기(7월~9월)에 컴백했거나 활동 중이던 댄스 가수들의 MBC 음악방송 출연분이 다른 두 지상파 방송에 비해 보유량이 확연히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러모로 연예계가 곤욕스러웠던 시기다. 당시 음악캠프 9월 이후 출연자 리스트를 보면 라이브 부담 탓인지 타 지상파에 먼저 컴백 후 한참 뒤인 1~2개월 이후에서야 MBC에 올라이브 프로모션을 하기 위해 딱 1회 출연하는 정도의 경우도 꽤나 있었을 정도였다.

또한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도 제작이 불가해져 기존 녹화분이 떨어진 이후 하이라이트 식으로 편집되어 방송되었으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스튜디오 녹화 대신 VCR 녹화에 방청객 리액션을 넣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예능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쉽게 정리하자면, 노예계약의 피해자측인 연제협에서 오히려 노예계약을 인정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즉, 자신들이 당하는 불이익을 인정한다는 얘기. 결국 신종인 당시 예능국장이 직접 사과를 하면서 이 일은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노예 문서가 있다고 주장한 중견 가수는 이은미김경호[8][9] 단 둘 뿐이었다. 그마저도 둘 다 이후로는 방송에 나오는 횟수가 부쩍 줄면서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당시 계약 관련 분쟁으로 소속사와 잡음이 계약해지 소송을 하던 걸그룹 한스밴드는 이 시사매거진 2580 방영분에서 노예 문서가 있다고 힘을 싣는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이후 MBC에 영영 출연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타 방송사 출연도 손에 꼽을 수준으로 감소했다.[10]

2.3. 연제협 소속 기획사들의 MBC 상대 손배소 줄패소

법원은 SM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연제협 소속 기획사 7곳이 이상호 기자 및 문화방송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및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모두 패소 판결을 내렸으며, 공정거래위원회는 연예계 노예문서, 즉 불공정 약관 개선 명령을 내렸다.

MBC의 승소 소식.

소송에 승소한 이상호 기자의 연제협 사태 당시의 회상.

3. 연제협 사태와 폭로의 의의

MBC의 보도는 거대하고 구조적인 연예계 내 '노예 계약'이 실제한다는 것을 처음 사회적으로 부각시킨 사건이다. 따라서 사회적 동력을 받아서 연예계에 만연한 불공정 계약을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전환할 기회였다. 그런데 연예인들이 기획사의 어용이 되어 이 기회를 거스르는 바람에 사건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묻혔다. 이로 인해 연제협 사태 이후에도 연예계 부당 계약 논란은 이후로도 끊이지 않고 있다. 기획사와 소속 연예인 간의 계약과 관련된 논란의 예시는 아래와 같다.

연예계 부당 계약 문제는 연제협 사태 이전 과거부터 내려오는 고질병과 같다. 처음부터 명문화된 계약서도 없고, 사장은 그저 기분만 좋으면 돈 더 주고, 안 되면 말고 식이다. 예를 들어 룰라의 경우 한 음반이 100만 장 넘게 팔렸지만 정상적인 수익 분배 같은 건 기대도 할 수 없었다. 한 방송에서 고영욱이 후배 가수들에게 "너네 백만 장 팔아봤어?"라고 농담식으로 자랑했더니, 옆에 있던 신정환이 "그래서 100만 장 팔아서 얼마 받았는데?"라고 디스하자 고영욱은 데꿀멍했다. 심지어 심신은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오직 밤무대에서만 활동하는 3류 가수로나 전락했던 시절이었다. 그냥 사장이 내키는 대로 보너스 식으로 돈 더 주는 것에 만족해야 했으며, R.ef도 자신들이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과거 인기 정점의 시기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밤무대에서 활동했을 때가 수익적으로 훨씬 나았다고 할 정도였다.

서지원은 생전은 물론이고 사후에 추모 콘서트 등으로 번 수익들마저 기획사에서 다 먹어버리는 바람에 말이 많았다. 심지어 레전드로 칭송받는 조용필도 자신이 창작한 곡의 저작권조차 소속사 사장이 가지고 수익 분배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전에는 돈 문제로 사장한테 대놓고 불만을 토했다가 "니가 누구 덕분에 이렇게 잘됐는지도 모르고..."같은 식으로 사장이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고 협박하는 등의 경우도 많았다.

김종국터보로 활동했을 때 당시 소속사 스타뮤직은 조폭 계열이었는데, 이 소속사는 터보를 정말 미친 듯이 굴렸다. 폭력단과 매우 가깝게 지내는 그 악명 높은 김광수에게 연습생 시절부터 김정남, 마이키와 함께 매우 높은 수위의 온갖 폭력과 만행, 횡포 등을 당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하루에 국내선 비행기 5번 탑승으로 설명 끝. 엄청 바쁠 시기에는 비행기뿐만 아니라 헬기도 타고 다녔다고 하며, 김정남의 말에 의하면 데뷔 앨범 정규 1집 280km/h Speed 시절부터 평소 스케줄이 하루에 10개, 많으면 17개까지 된 적도 있었다고 하며 정규 4집 Perfect Love 활동 당시 연말에도 하루 스케줄이 무려 16개나 됐었다. 잠잘 시간은 커녕 밥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의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김정남과 김종국은 컴백한 후 한 달 동안 병원 응급실 신세를 세 번씩이나 지기도 했으며, 김정남이 '슈퍼선데이' 녹화 도중 갑자기 쓰러지거나 김종국이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13]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에서도 지나간 옛일이라 장난스럽게 하루에 비행기를 서너 번씩 타 본 적도 있다고 했지만, 사실 하루에 비행기를 서너 번씩 타는 것 자체가 상당한 고역에 그날 비행기만 타고 다른 건 안 탔으리란 보장은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매우 살인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돈을 낸 사택의 음식을 남기거나, 서로 조금이라도 언성을 높이며 다투거나, 심지어는 다리를 떠는 등의 별의별 지극히 사소한 것까지 트집을 잡아 지하실에 끌고 가 속옷만 입힌 채로 구두주걱과 가죽벨트, 의자, 재떨이, 각종 둔기, 맨손으로 두들겨 맞는다든가, 빠따를 때리며 기합을 주고 라이터에 대고 살충제를 쏘는 등 거의 고문에 가까운 수위의 체벌을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당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김광수의 이름만 들어도 자다가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는 말도 있다. 현재는 기록이 남지 않아 출처를 찾기 어렵지만, 빠따를 한 번 때리기 시작하면 얼마나 심하게 때렸는지 다리와 둔부가 터지고 물집과 고름이 잡혀 다음 날이면 자력으로 일어설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고 하며, 딱히 아무 잘못을 안 해도 그냥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두 사람의 얼굴과 눈을 후려치고 발로 걷어찬 적도 있다고 한다. 김정남이 탈퇴하고 새 멤버로 들어왔던 마이키는 터보 활동 당시 스케줄이 너무 혹독해서 체력 하나는 타고났다던 종국이 형이 실신할 정도였는데 본인은 오죽했겠냐고 한 적도 있으며, 어떨 때는 마이키가 사소한 것으로 욕을 먹고 구타당하자 김종국이 구타당하는 마이키를 몸으로 감싸고 반항했는데 김종국을 지하실에 끌고 가서 야구방망이로 무자비하게 때렸다고 한다. 그래서 미안함과 죄책감에 엄청 울었다고.

그 당시 체벌의 수위는 높았고, 김광수는 비단 김종국 외에도 티아라, 조성모, SG워너비, 씨야 등 네임드 연예인 여러 사람들을 엄청 못살게 굴어서 연예계에서는 악의 축 취급을 받는다. 그야말로 KPOP계 최악의 빌런. 당시 김종국이 일대일로 김광수가 두려워서라기보다도 김광수가 폭력 세계에 소위 말하는 빽이 아주 강했기 때문에 그런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터보한테 "니들은 개야! 패면 팰수록 고분고분 말을 잘 듣거든! 퇴사하거나 신고하면 깡패 시켜서 니들 가족까지 싸잡아서 몰살시켜 버릴 거니까 꿈도 꾸지 마!"라는 천인공노할 협박을 밥 먹듯이 하여 겁을 주었다고 하니... 김광수와 함께 소속사 공동대표였던 권승식은 허구한 날 방송 출연 및 음반 판매로 거둔 수십억 원 이상의 수익금을 갈취 및 폭력을 행했고, 이에 반발하는 김종국과 김정남에게 가요계에서 매장시키겠다고 협박하며 폭력까지 행사했다고 한다. 결국 이에 따라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며 검거됐다.

터보는 정규 1집 280km/h Speed와 정규 2집 New Sensation, 정규 3집 Born Again, 정규 4집 Perfect Love 총 4개의 앨범이 한 앨범에서 무려 3곡을 1위에 랭크시키는 트리플 크라운 및 정규 2집 New Sensation과 정규 3집 Born Again, 정규 4집 Perfect Love, 정규 5집 E-Mail My Heart 총 4개의 앨범이 4연속 쿼드러플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는 등 최전성기였다. 정규 1집, 2집 총 2년 기간에만 번 수익이 당시 수십억원 이상이면 엄청난 금액량이었고 이것도 겨우 2년에 불과한 기간에 걸쳐 나온 수익금이었다. 2014년 무한도전 토토가에서 김정남이 밝히길, 2년 기간에만 벌은 수익금으로 무려 10년 넘는 기간 동안 놀고 먹고 지낼 정도였다고 한다. 소속사가 대부분 수익금을 모두 갈취하고, 정산이 안 된 금액량인데도 10년 넘는 기간 동안 놀고 지낼 정도였다면 당시 터보의 인기와 스케줄이 얼마나 엄청나고 혹독했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위의 글만 봐도 당시 터보는 엄청난 인기와 커리어를 구가하는 최전성기였지만, 그들의 속사정은 이런 더러운 꼴이었던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이수만식의 앨범당 얼마 등 명문화된 수익 분배는 1990년대 중후반치곤 나름 발전된 체계였던 셈이다. 단지 주는 돈이 과도하게 적었을 뿐이다. 예전 김구라의 시사대담에서 나온 말을 보면 이재원이 SM을 나오고 한숨을 쉬며 한 말이 "사장님이 장당 100원만 줘도 안 나갔을 거다."였다고 한다. 당시 CD 한 장에 12,000원 정도였다. 장당 100원으로 멤버당 20원씩 받았다고 한다. 이는 연예인과 기획사간의 계약이 보다 긍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선례가 될 불씨가 너무나 허무하게 사그라들었음을 의미하고, 연예계의 보다 수평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 데 있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10년이 넘은 2011년 현재에조차 박효신, 박희수[14], 윤하 등의 소속사 관련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반면 한국 연예계 사업이 성장하고 빅 스타들이 탄생하면서 드라마 한 회씩 5천만 원을 받는 배용준처럼, 연예인이 노예화되는 상황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비록 연예계가 양극화가 심한 곳이지만, 이제는 매니지먼트 사업도 어느 정도 합법적인 궤도에 올랐고 다양한 기획사들이 존재하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계약 연장 혹은 다른 소속사로 이적을 한다거나 1인 기획사를 차리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 작금의 현실이니 더 이상 노예계약 등의 불공정한 처사는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인 것. '성공한 유명 연예인들이 노예계약이니 노비문서니 하는 건 공감하기 어렵다.'는 경우도 많은데, 예를 들어 저 위에 노비문서를 언급한 이은미는 30억 원대 호화 빌라에 산다. 다만 이은미 외의 중견 가수들은 오히려 연제협을 발벗고 도와줬으니 문제. 연제협을 도와줬던 가수들 중에는 김건모, 신승훈, 박진영 같은 네임드 가수들이 많았다. 자신들이야 잘 먹고 잘 사니 관련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오히려 진짜 어려운 쪽은 유명 소속사에 소속되지 않은 무명 연예인들이라는 것.

하지만 자신의 권리 찾기와 돈 많이 버는 건 별개의 문제인데, 삼성 같은 대기업 소속 회사원은 돈을 많이 벌고, 중소기업 회사원들은 힘드니까 삼성 사원들은 노조고 탄압이고 그딴 걸로 징징거리지 말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 '노예'라는 표현 때문에 돈을 못 번 사실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1990년대에 엄청난 인기를 얻어 강남 같은 부촌에 살고 외제차를 몰고 다니던 가수들 중에도 불공정 계약에 묶여있는 경우는 아주 많았다.[15] 음반 판매량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고 제대로 정산을 해주지 않는 대신, 난데없이 비싼 차를 사 주거나 비싼 월세나 전세를 얻게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인기를 실감케 하는 치사한 방식을 썼던 것이다.

이런 사정은 심지어 왠지 할 말은 당당하게 하고 살았을 것만 같은 015B, N.EX.T, 룰라, DJ DOC 등과 같은 메이저급 유명 가수들도 마찬가지였고, 위에 언급된 유명 인기 가수들 중에도 포함되는 사람들이 있다.[16] 대영 AV와 관련한 일화들은 윤종신이 라디오 등에서 우회적으로만 언급하고 넘어간 적이 많다. 직접적으로 까기 위해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고 결국엔 "그래도 당시 사장님들이 사람 좋은 편이었지?" 식의 훈훈한 말로 끝내기는 했지만, 표면적으로 미화하고 넘어간 것일 뿐 당사자이기도 했던 윤종신 본인이 스스로 그 일화들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재미삼아서 했을 리가 없다.

사실 이런 2000년대 이전의 가수들의 경우 '계약에 묶여있다'고 표현하기도 애매한 게, 계약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았던 터라... 그나마 노예계약서는 법적 증명이라도 가능한데 계약서조차도 없는 경우엔 그야말로 코가 꿰여서 계속 갈 수밖에 없는 거다. 어떻게 보면 이 사태 이후 대형 기획사들이 법적으로 '개선명령'을 받은 상황 자체가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조금이라도 투명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계약서를 써야 했기 때문에' 발생한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예전 같으면 때리거나 협박을 하는 걸로 넘어갔을 부분들을 계약서로 대체하면서 불합리한 계약조건들을 명시하게 됐고, 그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됐던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MBC의 예능국장과 보도국장이 의기투합하여 연제협에 저항했더라면 도리어 MBC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았겠느냐?"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사실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미디어가 필요한데, 메이저 방송국 하나와 담을 쌓으면 손해보는 쪽은 어디까지나 연예인이다. 물론 MBC도 손해를 볼 것은 똑같지만, 방송국으로서 컨텐츠를 만들어낸다 하면 어떻게든지 만들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후에도 나는 가수다, 무한도전 가요제, 놀면 뭐하니? 같은 여러 MBC 예능들에서 음악 관련 소재를 제작할 때마다 가요계 관계자들이 MBC를 향한 비난을 쏟아내곤 하는데, 이 배후가 연제협이 아니냐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일종의 자정 노력인지, 뜬금없이 연제협은 2017년에 횡포를 규탄하겠다고 나섰다. 뉴스핌 기사. 기획사들이 지금도 잘 나가고, 그 당시에도 연제협의 편에 섰던 박진영이 자체 기획사를 차려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좀 느닷없는 일이다. 결국 이 사건으로, 그동안 박진영 본인이 보여줬던 진보적인 행보는 한낱 가식에 불과했다는 게 밝혀졌고 일부 대중들로부터 연예계의 적폐 취급을 받게 되었다. 2020년대 현재 니지 프로젝트 이후 "일본에서 요즘 박진영이 유명해졌고 칭찬도 받는다더라" 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연제협 감싸고 표절이나 하는 놈이 왜?" 라면서 개소리 하지 말라고 코웃음을 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2020년까지도 AOA 지민 권민아 괴롭힘 논란을 계기로 연예계의 악폐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아직도 소속사에서 책임져야 할 문제를 소속 가수나 연예계에 전가나 하는 막장 소속사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사건을 주동한 연제협은 22년 후인 2023년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에서 노골적으로 이수만 편에 서서 SM 주류 세력과 카카오를 향해 원색적인 표현을 써 가며 비난을 일삼다가, 사태가 카카오의 승리로 종결되면서 상당히 곤혹스러워졌다. 결국 SM을 비롯한 카카오 레이블 전체가 매년 개근해오던 드림콘서트 출연을 보이콧하면서 2023년 드림콘서트는 라인업이 예년에 비해 매우 부실해져 티켓 판매조차 부진하게 되었다. 사실상 자신들이 주동한 사태에 대한 업보를 20여년 만에 호되게 치르게 된 셈.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되었던 MBC-HYBE 간 불화 사안을 제 2의 본 사태로 보는 여론도 존재하고 있다. 다른 점은 본 사태는 1년도 채 안 되어서 마무리되었으나, MBC와 HYBE 간 불화는 MBC 사장이 세 번 바뀌는 4년이 되어서야 해결된 것을 보면 본 사태보다 더 심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사건 발생 주체가 MBC였다는 점이 다르다.

4. 참고 자료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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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례로 1999년 11월 3일한겨레 기사에서 다음커뮤니케이션 김영준 대표가 "가수들이 노비나 다름없이 기획사에게 끌려다니고 있고 폐단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라고 말했을 정도.[2] 빈말이 아니다. 이 사태 이후로 동방신기, 카라 사태 등이 일어났을 때도 시사 프로그램은 제대로 된 정보 수집을 하지 않고 인터뷰나 찌라시에만 의존하는 수준의 프로그램이나 내보내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이 방송이 연예인을 위한 방송이었다면 이제는 그냥 사태 지적, 까기에 중점을 두어서 초점이 다르게 맞춰진 경우가 많다.[3] 여담으로, 이 날의 사진은 천재교육에서 나온 제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정치 교과 98쪽에 실려있다.[4] 야구선수 시절의 선수협 활동을 생각하면 꽤 충격적이다. 근데 아주 놀랄 것도 아닌게 이미 선수협 활동으로 야구계를 할 수 없이 떠난 상황에서 당시 갓 연예계에 진출해서 활동 좀 해보려는 상황에서 선수협 때처럼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을 했다가는 어떻게 될지 당연하기 때문.[5] "스타급 가수 백여명이 63빌딩에(서) 저를 성토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을 때는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했답니다. 조국을 떠날까도 생각해봤습니다". 이상호 기자는 이후로도 연예뉴스 앵커와 특종 보도들로 활약하다가 프리랜서 기자로 전직하여 독자 활동중이다. 그러나 구당 김남수의 침뜸 기술과 장진영을 다룬 탐사보도의 경우 같은 경우엔 상당한 논란이 있다.[6] 사실 박진영의 무대도 6월 23일 방영분을 재탕한 것에 불과했다.[7] 특히 신인 걸그룹 걸프렌드의 립싱크 파문은 MBC 음악캠프의 올라이브 시스템 덕분에 터진 파문이기도 하다.[8] 연제협의 기자회견 이후에 김경호는 '실제로 몇몇 가수들은 그런 불평등한 계약을 맺고 활동한다. 이런 사실은 기자회견에 참여한 가수들도 다 알고있을 것이다. 이런 출연 거부가 후배 가수들을 위한 진정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실들을 시청자들에게 알려 앞으로는 그런 피해를 보는 가수들이 없기를 바란다' 며 연제협의 태도를 비판했고 MBC 편에 가깝다는 소신발언을 했다.[9] 실제로 김경호는 활동 초기 비정상적인 스케줄을 소화를 했고, 전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전속계약 해지 후에 전 소속사에서 김경호가 3년 전에 앨범에 담지 않은 연습곡들을 긁어모아 신곡이라며 무단으로 앨범을 내는 등 갑질에 희생된 적이 있다.[10] 외압을 받아 못 나왔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11] 충격적인 사건이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지만 연제협 사건이 터진 20년 전에는 굉장히 흔한 일이었을 것이다.[12] 와중에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는 츄 소송 때처럼 연매협 상벌위에 현재 전속 계약 효력 정지가 된 4명(희진, 김립, 진솔, 최리)에 대한 연예활동 금지 내용을 담은 진정서도 제출할 예정이라 밝혔다.[13] 그 당시 신문 메인에 터보가 쓰러졌다는 기사가 여러 번 나왔었다.[14] 나는 가수다 2의 새가수 초대전에 나왔던 가수로, 1998년에 데뷔하였으나 앨범 1장을 내고 소속사와 마찰이 생겨 결국 가수 활동을 중단하게 된 가수이다. 결국 동물원이나 재래시장 같은 곳이나 돌아다니며 행사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15] 단적인 예로 음반 한 장 판매에 50원을 받는다고 치면 100만 장을 판 결과 5,000만 원을 받았다. 1990년대 기준으로 5,000만 원은 거금이었다. 그렇다고 아티스트가 음반 수익의 0.5%를 받는 게 공정한 계약은 절대로 아니다.[16] '진중권의 문화 다방' 제29회 신해철 특별 헌정방송 - 강헌 1부에서 내용을 언급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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