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00:01:51

오지브웨

오지브와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2em"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원주민유럽계
미국 백인
아프리카계
미국 흑인
라틴 아메리카계
히스패닉
아시아계
· 영국계 · 독일계 · 아일랜드계 · 이탈리아계 · 폴란드계 · 프랑스계 · 캐나다계 · 스웨덴계 · 노르웨이계 · 덴마크계 · 네덜란드계 · 벨기에계 · 룩셈부르크계 · 중국계 · 인도계 · 유대계 · 헝가리계 · 아르메니아계 · 일본계 · 한국계 · 이란계 · 아랍계 · 체코계 · 러시아계 · 우크라이나계 · 핀란드계 · 멕시코계 · 쿠바계 · 필리핀계 · 스페인계 · 포르투갈계 · 아이슬란드계 · 호주계 · 그리스계 · 튀르키예계 · 리투아니아계 · 라트비아계 · 에스토니아계 · 벨라루스계 · 뉴질랜드계 · 크로아티아계 · 오스트리아계 · 폴리네시아계 · 대만계 · 베트남계 · 스위스계 · 푸에르토리코계 · 슬로베니아계 · 세르비아계 · 루마니아계 · 불가리아계 · 슬로바키아계 · 보스니아계 · 알바니아계 · 아르헨티나계 · 브라질계 · 베네수엘라계 · 우루과이계 · 몽골계 · 칼미크계 · 아제르바이잔계 · 아프간계 · 파키스탄계 · 이스라엘계 · 중앙아시아계 · 인도네시아계 · 방글라데시계
(문서가 있는 민족만 서술)
}}}}}}}}}


1. 개요2. 역사3. 사회 및 문화4. 윈디고칸5. 여담

1. 개요

Ojibwe / Ojibwa / Ojibway / Chippewa / Saulteaux

오지브웨어: Ojibwe(ᐅᒋᑉᐧᐁ), Chippewa(ᒋᑉᐯᐧᐊ)

캐나다 남동부 및 미국 북동부의 아메리카 원주민 민족으로, 오대호 인근에 거주하는 아니시아베 원주민 그룹에 속한다.

원래 알곤킨어족에 속하는 오지브웨어를 구사했으나, 지금은 대부분 영어프랑스어를 구사한다.

2. 역사

오지브웨족은 캐나다 퀘벡주 세인트로렌스강 근처에서 기원하였다. 그들은 수천 년 동안 대륙을 가로질러 이주하면서 광범위하게 무역을 했으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북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그리고 남쪽으로의 경로를 카누를 타고 이동하였다. 이들은 오대호의 북부, 서부, 남부 지역에 정착했으며, 태평양 북서부, 세인트루이스, 슈피리어 호 남부 등에 정착했다.

오지브웨와 처음 접촉한 유럽인들은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들이었다. 1640년 유럽에 처음 알려진 오지브웨는 프랑스 상인들과 무역교류를 하며 총과 유럽식 물건들을 받아들였으며, 원수 관계였던 라코타족과 폭스족을 각각 미시시피 북부와 위스콘신에서 몰아냈다. 라코타족이 오지브웨족에 쫒겨 정착한 곳이 지금의 몬태나,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지역이다.

18세기 말까지 오지브웨는 레드 리버 지역 대부분을 포함하여 현재의 미시간, 위스콘신 북부, 미네소타 대부분의 영토를 지배했으며, 캐나다 쪽의 휴런 호와 슈피리어 호의 북쪽 해안 전체를 차지하고 서쪽으로는 노스다코타의 터틀 산맥까지 확장했다. 후자 지역의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은 그들을 Ojibwe 또는 Saulteaux라고 불렀다.

오지브웨족은 아니시나베 오다와(Anishinaabe Odawa) 및 포타와토미(Potawatomi)족과 장기적인 동맹을 맺은 세 불 의회(Council of Three Fires)의 구성원이였다. 그들은 주로 현재 뉴욕의 오대호 남동쪽에 기반을 둔 이로쿼이 연맹과 서쪽의 수우족에 맞서 싸웠다. 오지브웨족은 1662년 이로쿼이족이 슈피리어 호수 근처의 자신들의 영토로 진격하는 것을 막아냈고, 휴런족, 이로쿼이족의 침공으로 인해 이주한 오다와족 등 다른 부족들과 동맹을 맺고 이로쿼이 연맹에 대한 대규모 반격을 시작하여 미시간주와 온타리오주 남부에서 몰아냈고, 이로쿼이 연맹은 결국 뉴욕 북부에 있는 원래 고향으로 도망갔다. 동시에 이로쿼이 연맹은 프랑스군의 공격을 받았다. 오지브웨는 동쪽으로 확장하여 휴런 호와 조지아 만의 동쪽 해안을 따라 있는 땅을 차지했다.

1745년 오지브웨족은 슈피리어 호 지역의 수우(다코타)족을 몰아내고 남쪽과 서쪽으로 밀어내기 위해 영국군으로부터 총을 도입했다. 1680년대에 오지브웨족은 휴런 동맹과 무역 파트너를 분산시킨 이로쿼이족을 물리쳤다. 이 승리로 인해 그들은 온타리오 남부를 경쟁 없이 통치할 수 있는 황금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오지브웨족과 유럽 정착민 사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평화 및 우호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는 오지브웨족과 정착민 간의 협력적 자원 공유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과 캐나다는 토지 양도를 제공하는 이후의 조약을 영토적 이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했지만, 오지브웨족은 토지 용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문화적 차이로 인해 토지 양도라는 것을 유럽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마찬가지지만, 이들에게 토지(땅)는 공유하는 것이지 특정 집단이 소유하고 매매하는 수단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7년 전쟁(프렌치 인디언 전쟁) 때는 오랜 협력 관계인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영국과 식민지 정착민들에 맞서 싸웠다. 1763년 전쟁에서 패한 후 프랑스는 캐나다와 미시시피 강 동쪽 땅에 대한 식민지 소유권을 영국에 양도했지만, 폰티액 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 통치에 적응한 오지브웨는 1812년 전쟁에서 영국군과 동맹을 맺고 미국에 대항했다. 영국의 승리가 미국 정착민들의 영토 침범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고, 영국 편을 들었던 원주민들은 미국에게 미운 털이 박혔다. 미국 정부는 오지브웨 족 전체를 미시시피 강 서쪽의 미네소타로 강제 이주시키려고 했지만 오지브웨 족은 저항했고 폭력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샌디 레이크 비극(Sandy Lake Tragedy)에서 연방 정부가 가을 연금을 지급하지 않아 수백 명의 오지브웨 주민들이 사망했다. 버팔로 추장(오지브웨식 이름은 'Ke-che-waish-ke')의 노력과 오지브웨 추방에 반대하는 미국 내 여론의 고조로 인해 미시시피 강 동쪽의 밴드들은 양도된 영토의 보호구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1807년에 오지브웨는 다른 세 부족인 오다와(Odawa), 포타와토미(Potawatomi), 와이언도트(Wyandot) 부족과 합류하여 디트로이트 조약에 서명했다. 부족들과 미시간 준주를 대표하는 윌리엄 헐(William Hull) 사이의 합의로 미국은 오늘날의 미시간 남동부 의 일부와 마우미 강 근처 오하이오주의 일부를 갖게 되었고, 부족들은 영토 내 작은 규모의 땅을 보유할 수 있었다.

3. 사회 및 문화

오지브웨족은 밴드(band)라는 집단으로 조직되어 있다. 대평원 밴드를 제외한 오지브웨인들은 옥수수호박, (야생벼)을 경작하고, 낚시와 사냥을 하는 정착 생활을 하며 살았다. 정착 생활을 하는 오지브웨족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위그왐이라는 집에서 살았으며, 지금은 현대식 집에 살다가 특별한 장소나 전통 행사에서만 위그왐을 만드는 식이다.

북미 원주민 중에는 초기적인 문자 체계도 갖추고 있었으며, 자작나무 두루마리와 바위에 종교적 의식, 관념이나 천문학, 수학, 역사 등 지식과 관련된 그림과 그림문자를 남겼다.

또한 멀리 떨어진 해안 지역의 원주민 공동체와 활발한 무역 활동을 했으며, 무기에 사용되는 특정한 암석이나 구리의 사용과 거래의 고고학적 증거도 남아있다.

여름 동안 사람들은 아니시나베-아키(아니시나베 컨트리)의 다양한 보호구역에서 영적 모임을 위한 지인고타목과 사교 모임(파우와우)을 위한 니미이디마아에 참석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줄 수확, 열매 채집, 사냥, 전통 약 제조, 메이플 시럽 및 메이플 슈가 만들기 등의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다.

오지브웨족은 죽은 자를 고분에 묻었다. 많은 사람들이 각 고분 위에 지베가미그(jiibegamig) 또는 "영혼의 집"을 세운다. 역사적으로 고분에는 보통 고인의 두뎀(doodem, 씨족 표시)이 새겨진 나무 표식이 있다. 이러한 매장지의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오지브웨 고분은 종종 도굴꾼들에 의해 도굴당했다. 미국에서는 많은 오지브웨 공동체가 1990년 아메리카 원주민 고분 보호 및 송환법의 시행을 통해 고분을 보호하고 있다.

미국의 몇몇 오지브웨 밴드는 슈피리어 호- 미시간 호 지역의 사냥 조약 및 낚시 권리를 관리하는 오대호 인디언 어류 및 야생동물 위원회에 협력하고 있다.

오지브웨 등 아니시아베 원주민들은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것은 물론 졸여서 단풍당(메이플 슈가)도 만들었다.

4. 윈디고칸

오지브웨족은 윈디고칸(Windigokan)이라는 특수부대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한 마을에 한 집단씩 존재했으며 12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마을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의식주를 따로 해결했으며, 뭐든지 반대로 말하고 행동했다고 한다.

오지브웨의 역사 문단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들은 수우 족과 철천지원수 관계였고 서로 전쟁을 벌였는데, 한 수우족 생존자의 말에 의하면 윈디고칸 전사들은 평상시엔 다른 오지브웨 주민들과 함께 살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이들을 이끄는 추장은 '우린 수우족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4명의 머릿가죽을 벗기지 않을 것이며, 나머지는 도망가게 내버려 둘 것이다. 우리는 낮에 쳐들어갈 것이다.'라고 말하며 다음날 밤에 수우족의 영토에 잠입했다.

윈디고칸들은 넝마같은 망토를 두르고 기이한 모양의 가면을 쓰고는 수우족의 마을로 비틀거리는 춤을 추며 걸어갔다. 이들의 기이한 모습에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쳐다보던 수우족들은 이내 경계를 풀고 공격하려는 의사 없이 춤을 계속 구경하고, 윈디고칸들은 화해의 표시로 담배를 권할 때까지 계속 이상한 춤을 추었다. 이렇게 구경꾼들이 많이 모이고 수우족의 본진에 들어갔다 생각되는 순간, 윈디고칸 추장의 쏘지 마!라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윈디고칸들은 망토를 벗고 숨겨놨던 총을 꺼내어 재빨리 수우족 전사 4명을 쏴죽이고 머릿가죽을 벗겨냈다. 한가롭게 춤을 구경하던 수우족 마을은 당연히 아수라장이 되었고, 혼란을 틈타 윈디고칸 전사들은 다시 춤을 추며 빠져나왔다고 한다. 수우족 전사들이 뒤늦게 반격하려 할 때 윈디고칸 추장은 "나의 늙은이들이여, 이제 너희들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집에 뛰어가서는 안된다!"(나의 젊은이들이여, 이제 너희들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집에 뛰어가라!)라고 명령하고, 이들은 빠른 속도로 줄행랑을 쳐서 마을로 돌아가 승리의 축제를 벌였다.

5. 여담

2019년 위스콘신주 애쉬랜드 시의원으로 당선된 와사야 화이트버드가 이 부족 출신이다. 그는 미국 공산당 단일 당적자로서는 2002년 이후 최초로 공직을 지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