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사령부와 성격이 다른 부대로 활동 중인 유엔 소속의 연합군 부대에 대한 내용은 유엔 평화유지군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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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사령부 United Nations Comman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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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b92db><colcolor=#fff> 설립일 | 1950년 7월 24일 ([age(1950-07-24)]주년) | ||
사령관[2]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육군 대장 폴 J. 라캐머라 Paul Joseph LaCamera | ||
부사령관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육군 중장 데릭 A. 맥컬리 Derek Allen Macaulay | ||
소재지 | 캠프 험프리스 (본부 / 대한민국) 캠프 보니파스 (대한민국) 요코타 공군기지 (후방 / 일본) 사세보 해군기지 (후방 / 일본) 캠프 자마 (후방 / 일본) 화이트비치 해군기지 (후방 / 일본) 후텐마 해병대 비행장 (후방 / 일본) 가데나 공군기지 (후방 / 일본) | ||
산하기관 | 군사정전위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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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84호로 1950년 6.25 전쟁 당시 북한의 불법 침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할 목적으로 특설되어 한반도에서 대한민국 국군과 함께 조선인민군 및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휘하 부대를 상대로 전투를 벌였으며, 현재에도 대한민국 및 일본에 주둔 중인 다국적 연합군 부대를 가리킨다.현재 유엔사의 주 임무는 1953년에 서명된 6.25 전쟁 정전 협정의 내용을 성실히 집행하고, 유사시 한미연합사와 국제사회 간의 교량 역할을 하며 전력제공국의 전력 지원에 협조하는 것이다.
유엔 내부의 비상설 군사조직 중 하나인 유엔 평화유지군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며, 유엔 창설 이래 현재까지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된 유일한 다국적 연합군이다. 또한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와 함께 세계에서 유이한 다국적 상설 군사연합기구 두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3]
유엔의 현재 입장에 따르면, 유엔사는 유엔의 명칭과 상징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유엔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유엔사의 입장은 유엔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4] 자세한 것은 후술.
2. 언어별 명칭
<colbgcolor=#4b92db> 한국어 | 유엔군사령부 |
영어 | United Nations Command |
중국어 | 联合国军 |
러시아어 | Командование ООН |
스페인어 | Comando de las Naciones Unidas |
프랑스어 | Commandement des Nations unies |
아랍어 | قيادة الأمم المتحدة |
3. 창설 배경
The Security Council,
Having determined that the armed attack upon the Republic of Korea by forces from North Korea constitutes a breach of the peace,
Having recommended that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furnish such assistance to the Republic of Korea as may be necessary to repel the armed attack and to restore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in the area,
1. Welcomes the prompt and vigorous support which Governments and peoples of the United Nations have given to its resolutions 82 (1950) and 83 (1950) of 25 and 27 June 1950 to assist the Republic of Korea in defending itself against armed attack and thus to restore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in the area;
1. Notes that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have transmitted to the United Nations offers of assistance for the Republic of Korea;
1. Recommends that all Members providing military forces and other assistance pursuant to the aforesaid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make such forces and other assistance available to a unified command unde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1. Requests the United States to designate the commander of such forces;
1. Authorizes the unified command at its discretion to use the United Nations flag in the course of operations against North Korean forces concurrently with the flags of the various nations participating;
1. Requests the United States to provide the Security Council with reports as appropriate on the course of action taken under the unified command.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군의 대한민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평화파괴를 조성한다고 단정하였으며, 이 지역에서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국제적 평화와 안전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원조를 대한민국에 제공하도록 유엔 제회원국에게 권고하였으므로
1. 유엔의 각 정부와 각 국민이 1950년 6월 25일과 27일의 결의 제82호, 결의 제83호에 따라 무력공격에 대하여 자위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원조함으로써 이 지역에 국제적 평화와 안전을 회복함에 신속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였음에 대하여 이를 환영하고,
1. 유엔 제회원국이 대한민국에 대한 원조 제공을 유엔에 통고하였음을 주목하고,
1. 전기 안전보장이사회 모든 결의에 의거하여 병력 기타 원조를 제공하는 전 회원국은 여기한 병력 기타 원조를 미국 주도하의 통합군사령부로 하여금 사용케 하도록 권고하고,
1. 이러한 모든 병력의 군사령관을 임명할 것을 미국에게 요청하고,
1. 북한군에 대한 작전중 참전 각국의 국기와 함께 유엔기를 임의로 병용할 권한을 통합군사령부에 부여하고,
1. 통합군사령부 지휘하에 행하여지는 활동사태에 관하여 적당한 시기마다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미국에게 요청한다.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84호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기습적으로 남침을 감행하자, 전쟁발발 당일인 6월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 제82호를 통과시켜 "북한 정권은 38도선 이북으로 철군"[5]하도록 권고하였다. 이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자 1950년 6월 27일 소련의 불참[6]속에 열린 안보리는 결의안 제83호를 결의하여 재차 인민군의 38도선 이북으로의 철군을 권고하고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의) 공격을 격퇴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기 위해 대한민국에 원조를 할 것"[7]을 권고하였다.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1950년 7월 7일 유엔 안보리가 결의안 제84호를 통과시키면서 "군대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는 모든 회원국은 미국이 지휘하는 통합된 사령부를 통해 활동할 것과 미국은 이 통합된 사령부의 행위에 대한 보고서를 안보리에 제출할 것"[8]을 권고하고 1950년 7월 31일 결의안 제85호를 통과시켜 통합된 사령부 지휘 아래 "유엔 기구와 비정부기구들이 대한민국의 민간인을 원조할 것"[9]을 권고하였다. 마침내 1950년 7월24일, 일본 동경 GHQ 본부에서 더글라스 맥아더 미군 원수 주도 하에 유엔군사령부가 창설, 한국으로 유엔군을 투입하기 위한 준비에 이른다.Having determined that the armed attack upon the Republic of Korea by forces from North Korea constitutes a breach of the peace,
Having recommended that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furnish such assistance to the Republic of Korea as may be necessary to repel the armed attack and to restore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in the area,
1. Welcomes the prompt and vigorous support which Governments and peoples of the United Nations have given to its resolutions 82 (1950) and 83 (1950) of 25 and 27 June 1950 to assist the Republic of Korea in defending itself against armed attack and thus to restore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in the area;
1. Notes that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have transmitted to the United Nations offers of assistance for the Republic of Korea;
1. Recommends that all Members providing military forces and other assistance pursuant to the aforesaid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make such forces and other assistance available to a unified command unde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1. Requests the United States to designate the commander of such forces;
1. Authorizes the unified command at its discretion to use the United Nations flag in the course of operations against North Korean forces concurrently with the flags of the various nations participating;
1. Requests the United States to provide the Security Council with reports as appropriate on the course of action taken under the unified command.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군의 대한민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평화파괴를 조성한다고 단정하였으며, 이 지역에서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국제적 평화와 안전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원조를 대한민국에 제공하도록 유엔 제회원국에게 권고하였으므로
1. 유엔의 각 정부와 각 국민이 1950년 6월 25일과 27일의 결의 제82호, 결의 제83호에 따라 무력공격에 대하여 자위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원조함으로써 이 지역에 국제적 평화와 안전을 회복함에 신속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였음에 대하여 이를 환영하고,
1. 유엔 제회원국이 대한민국에 대한 원조 제공을 유엔에 통고하였음을 주목하고,
1. 전기 안전보장이사회 모든 결의에 의거하여 병력 기타 원조를 제공하는 전 회원국은 여기한 병력 기타 원조를 미국 주도하의 통합군사령부로 하여금 사용케 하도록 권고하고,
1. 이러한 모든 병력의 군사령관을 임명할 것을 미국에게 요청하고,
1. 북한군에 대한 작전중 참전 각국의 국기와 함께 유엔기를 임의로 병용할 권한을 통합군사령부에 부여하고,
1. 통합군사령부 지휘하에 행하여지는 활동사태에 관하여 적당한 시기마다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미국에게 요청한다.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84호
제84호 결의로 인해 미국은 지휘관을 임명하여 대한민국을 지원하는 국가들을 지휘할 수 있게 되었고 공식적으로 유엔기를 사용할 권리를 얻게 되었다. 여기에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에게 위임함으로써 전쟁은 유엔군 대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간의 전쟁이 되었다. 따라서 정전협정은 유엔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여 서명되었다.
3.1. 휴전 후 유엔사에 대한 유엔의 입장
'유엔군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나 사무총장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유엔은 유엔군사령부의 행동은 유엔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1994년 당시 유엔 사무총장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는 북한 외무상에 "안전보장이사회는 통합사령부를 설립한 것이 아니라 설립할 것을 권고했고, 그렇기에 통합사령부의 해산 명령은 유엔이 아닌 미국의 권한하에 있다."라고 밝혔다. 공식적으로 유엔군사령부는 안보리 결의 제84호에 의거한 '자위권의 집단적 권리 하에 운영되는 국가 군대의 동맹'으로 '각국의 깃발과 함께 유엔기의 사용을 동시에 허가'했다는 입장이다. 즉 유엔의 권고로 설립되고 유엔의 이름을 빌린 미군을 주축으로 한 군사연합이다. 유엔군사령부는 명목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유엔의 관할하에 있지 않다.[10]
다만 이것은 '온전하게 종결되지 못하고 애매한 무기한 휴전'상태에 들어간 6.25 전쟁의 현실상, 유엔과 그 가입국들의 입장을 고려해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유엔사의 존재를 두루뭉술한 말로 변명해 넘기려는 외교적 수사로 보아야 한다. 유엔군은 창설 당시 명분적으로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류사 최악의 반란군, 명분 없는 침략자에 대항하여 단 하나의 국가를 위하여 전 세계가 연합하면서 발족된 것이며, 실질적으로도 공산진영의 명분 없는 횡포에 대한 유엔 차원의 대응이었다. 이 유엔 결의 당시 공산진영은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고 회피만 했는데, 이에 반발했다간 공산진영이 전 세계를 상대로 명목적, 실질적 모두에 해당되는 전쟁을 벌이겠다는 소리가 되기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마자 5년만에 제3차 세계 대전이 열릴 판이었다.
그래서 공산진영이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열심히 해대기 시작한 것이 '유엔사 해체 요구'다. 이것은 소련의 은밀한 지원과 방조하에 북한이 대한민국을 개전 명분 없이 선제 침략한 것에 반발하여 비공산권이 모조리 참전하여 격퇴에 성공할 뻔했다가, 중공군의 무단 개입으로서 실패하고 정체 상태에 빠진 것이기에, 유엔사가 대한민국의 통일이라는 중대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로 해체할 경우 참전국들로선 엄청난 모욕[11]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유엔사가 해체될 경우에 주한미군의 당위성도 낮아지므로 공산진영 측에게 더욱 유리해지는 꼴이다. 2021년 유엔 총회에서 북한이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주장했을 정도로 북한 및 공산진영은 꾸준히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
4. 수뇌부
<rowcolor=#fff> 사령관[겸직] Commander | '''부사령관 Deputy Commander ''' | 참모장 Chief of Staff | '''주임원사[13] Command Senior Enlisted Leader ''' |
폴 J. 라캐머라 Paul J. LaCamera | 데릭 A. 멕컬레이 Derek A. Macaulay | 존 W. 와이드너 John W. Weidner | 잭 H. 러브 Jack H. Love |
2023년 11월 기준 |
원래 부사령관과 참모장은 한미연합군사령관과 마찬가지로 한미연합사나 주한미군사에서 1~2개의 직책을 겸임했으나, 2018년 여름부터 유엔군사령부만 맡는 단독 보직으로 바뀌고 있다.
부사령관은 2018년 부임한 캐나다 육군 중장 웨인 에어 장군이 첫 비 미군 출신 부사령관이다. 에어 중장이 본국으로 귀임한 이후[14] 2019년 7월에 다시 호주 해군 중장 메이어 제독[15]이 부사령관으로 임명되며 역시 비미군 부사령관을 맞이했다. 2021년 12월에는 영국 육군 앤드류 해리슨 중장이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23년 12월 14일에는 캐나다 육군의 맥컬레이 중장이 해리슨 장군의 후임으로 부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최근 유엔사 부사령관을 거쳐간 4명의 중장들을 보면 전원 영연방 출신 장성들인데, 이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보냈으며 지금도 전력제공국들 중 미국을 빼면 가장 유엔사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영연방 국가들의 위상을 세워주기 위한 인사로 생각된다.
4.1. 역대 유엔군사령관[16]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FF,#e5e5e5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81818,#e5e5e5 | |||||
초대 더글라스 맥아더 | 제2대 매튜 B. 리지웨이 | 제3대 마크 클라크 | 제4대 존 헐 | 제5대 맥스웰 테일러 | |
제6대 리먼 렘니처 | 제7대 조지 데커 | 제8대 카터 매그루더 | 제9대 가이 S. 멜로이 | 제10대 해밀턴 하우즈 | |
제11대 드와이트 E. 비치 | 제12대 찰스 H. 본스틸 3세 | 제13대 존 H. 마이켈리스 | 제14대 도널드 V. 베넷 | 제15대 리처드 G. 스틸웰 | |
제16대 존 베시 | 제17대 존 위컴 | 제18대 로버트 W. 세네월드 | 제19대 윌리엄 J. 리브시 | 제20대 루이스 C. 메네트리 | |
제21대 로버트 W. 리스카시 | 제22대 게리 E. 럭 | 제23대 존 H. 틸럴리 | 제24대 토머스 A. 슈워츠 | 제25대 리언 러포트 | |
제26대 버웰 B. 벨 3세 | 제27대 월터 L. 샤프 | 제28대 제임스 서먼 | 제29대 커티스 스캐퍼로티 | 제30대 빈센트 브룩스 | |
제31대 로버트 에이브럼스 | 제32대 폴 라캐머라 | 제33대 제이비어 T. 브런슨 | }}}}}} {{{-2 {{{#!wiki style="margin: -0px -1px; margin-top: -20px; display: block; background: #4b92db; padding: 4px" }}}}}}}}} |
역대 유엔군사령관 | |||||
<rowcolor=#fff> 역대 | 사진 | 이름 | 계급 | 재임기간 | 기타 |
초대 | 더글러스 맥아더 | 원수 | 1950.07.07 ~ 1951.04.11 | [GHQ] | |
2대 | 매튜 B. 리지웨이 | 대장 | 1951.04.11 ~ 1952.05.12 | [GHQ] | |
3대 | 마크 W. 클라크 | 대장 | 1952.05.12 ~ 1953.10.07 | ||
4대 | 존 헐 | 대장 | 1953.10.07 ~ 1955.04.01 | ||
5대 | 맥스웰 테일러 | 대장 | 1955.04.01 ~ 1955.06.05 | [19] | |
6대 | 리먼 렘니처 | 대장 | 1955.06.05 ~ 1957.07.01 | ||
7대 | 조지 데커 | 대장 | 1957.07.01 ~ 1959.07.01 | [주] | |
8대 | 카터 매그루더 | 대장 | 1959.07.01 ~ 1961.07.01 | [주][22] | |
9대 | 가이 S. 멜로이 | 대장 | 1961.07.01 ~ 1963.08.01 | [주] | |
10대 | 해밀턴 하우즈 | 대장 | 1963.08.01 ~ 1965.06.15 | [주] | |
11대 | 드와이트 E. 비치 | 대장 | 1965.06.15 ~ 1966.08.31 | [주] | |
12대 | 찰스 H. 본스틸 3세 | 대장 | 1966.08.31 ~ 1969.09.30 | [주][27] | |
13대 | 존 H. 마이켈리스 | 대장 | 1969.09.30 ~ 1972.08.31 | [주][29] | |
14대 | 도널드 V. 베넷 | 대장 | 1972.08.31 ~ 1973.07.31 | [주] | |
15대 | 리처드 G. 스틸웰 | 대장 | 1973.07.31 ~ 1976.10.08 | [주][32] | |
16대 | 존 W. 베시 2세 | 대장 | 1976.10.08 ~ 1979.07.10 | [주][연][35] | |
17대 | 존 A. 위컴 2세 | 대장 | 1979.07.10 ~ 1982.06.04 | [주][연][38] | |
18대 | 로버트 W. 세네월드 | 대장 | 1982.06.04 ~ 1984.06.01 | [주][연] | |
19대 | 윌리엄 J. 리브시 | 대장 | 1984.06.01 ~ 1987.06.25 | [주][연] | |
20대 | 루이스 C. 메네트리 | 대장 | 1987.06.25 ~ 1990.06.26 | [주][연] | |
21대 | 로버트 W. 리스카시 | 대장 | 1990.06.26 ~ 1993.06.15 | [주][연] | |
22대 | 개리 E. 럭 | 대장 | 1993.06.15 ~ 1996.07.09 | [주][연][49] | |
23대 | 존 H. 틸럴리 | 대장 | 1996.07.09 ~ 1999.12.09 | [주][연][52] | |
24대 | 토머스 A. 슈워츠 | 대장 | 1999.12.09 ~ 2002.05.01 | [주][연] | |
25대 | 리언 J. 러포트 | 대장 | 2002.05.01 ~ 2006.02.03 | [주][연][57] | |
26대 | 버웰 B. 벨 3세 | 대장 | 2006.02.03 ~ 2008.06.03 | [주][연] | |
27대 | 월터 L. 샤프 | 대장 | 2008.06.03 ~ 2011.07.14 | [주][연][62] | |
28대 | 제임스 D. 서먼 | 대장 | 2011.07.14 ~ 2013.10.02 | [주][연] | |
29대 | 커티스 M. 스캐퍼로티 | 대장 | 2013.10.02 ~ 2016.04.30 | [주][연][67] | |
30대 | 빈센트 K. 브룩스 | 대장 | 2016.04.30 ~ 2018.11.08 | [주][연][70] | |
31대 | 로버트 B. 에이브럼스 | 대장 | 2018.11.08 ~ 2021.07.02 | [주][연] | |
32대 | 폴 J. 라캐머라 | 대장 | 2021.07.02 ~ 현재 | [주][연] |
5. 전력제공국
5.1. 현재 회원국
유엔군사령부의 전력제공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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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 콜롬비아 | 캐나다 | 튀르키예 | 태국 | |
프랑스 | 필리핀 | 호주 | }}}}}}}}} |
유엔군사령부 전력제공국 (2019년 기준) |
이들 국가는 유사시에 유엔기를 들고 한반도에 전력을 투입하며 유엔사는 이 회원국들을 유사시 병력과 장비를 지원하는 전력제공국[77]으로 부르고 있다. 유사시에 5개의 항모전단과 3천여대의 항공기, 지상군 70만 병력이 유엔기를 들고 한반도에 투입된다고 한다. #
참고로 대한민국은 1953년 정전협정 당시 이승만이 휴전을 반대하였기 때문에 유엔군사령부 회원국에 포함되지 않았으며[78] 70년 뒤인 2023년에 비로소 회원국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
2023년부터 나머지 5개국[79]의 참여도 검토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검토단계에 불과하며 일본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거부 중이다.
2024년 7월 11일 NATO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양자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독일의 유엔사 가입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 이후 8월 2일 독일이 가입하였다.#
2024년 9월 10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제2차 한·유엔사회원국 국방장관회의'에 불참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작년 2023년에 열린 장관급 회의에서도 주한남아공대사관의 정치참사관을 보낼 정도로 유엔사에 매우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80]
5.2. 6.25 전쟁 당시
6.25 전쟁 당시 한국을 제외하고 총 22개국(병력지원국 16개국, 의무지원국 6개국)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1953년 7월 27일 정전 당시의 병력 규모가 93만 2,964명에 이르렀었다.유엔군이라는 군대의 특수한 위치상 통계에 따라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전략적 군사력과 지원병력을 합치면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특히 1950년대 냉전 시기 소련군, 중국군과 함께 지정학적 3대 세력을 형성하기도 했었다.
5.2.1. 전투병력 지원국
다음 인원은 유엔군 전투부대 파병 국가의 연인원 수치이다. 출처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통계로 본 6.25 전쟁'.[81]- 미국: 1,789,000명
- 캐나다 자치령: 26,791명
- 튀르키예: 21,212명
- 1971년에 전투병은 모두 철수. 연락장교단만 남겼다.
- 호주: 17,164명
- 휴전 협정 이후 점진적으로 축소되어 1957년 시점에서는 80명만 남은 상황이었으나 1957년 4월 11일, 호주 국방부는 완전한 철수를 발표하고 마지막 남은 호주군을 철수시켰다.
- 필리핀: 7,420명
- 네덜란드: 5,322명
- 콜롬비아: 5,100명
- 그리스 왕국: 4,992명
- 뉴질랜드: 3,794명
- 에티오피아 제국: 3,518명
- 1974년 멩기스투의 쿠데타로 제정이 붕괴되면서 1975년 멩기스투 정권은 한국과의 우호관계 폐지를 선언하였고 5월 30일, 에티오피아 장교단 철수를 지시하였다. 에티오피아 장교단은 6월 14일에 철수했다. 이후 멩기스투 정권이 무너져서 명예는 어느정도 회복.
- 벨기에: 3,498명
- 프랑스: 3,421명
- 남아프리카 연방: 826명
- 룩셈부르크: 100명
5.2.2. 의무병력 지원국
다음 인원은 의료지원단 파견 국가의 연인원 수치이다. 출처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통계로 본 6.25 전쟁'- 스웨덴: 1,124명
- 인도: 627명
- 인도 육군 제60공수야전의무대: 인도군 공수사단 소속 대원들을 의료부대로 파견했기 때문에 공수작전을 지원하기도 했다. 일부는 대구에 주둔하였고 일부는 영연방군과 함께 전방 병력을 직접 지원하였다.
- 노르웨이: 623명
- 노르웨이 육군 이동외과병원 (Norwegian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 NORMASH): 전선 각지에 이동외과를 운영하며 부상자 9만명을 치료했다. 그 과정에서 3명의 전사자를 냈다.
- 이탈리아: 189명
- 서독: 200명
- 서독 적십자 병원: 휴전 2개월 전에 유엔 본부에 의료 지원을 하기로 밝히고 한반도로 이동 도중 휴전을 맞이함. 1959년까지 27만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했다. 유엔사 자료 한국에서는 휴전후 지원이란 이유로 지원국에 넣지 않았으나 2018년 국방부에서 의료지원국에 포함시켰다.
6. 6.25 전쟁 휴전 이후
1953년 7월 정전 협정 체결 이후 미국, 영국 등 일부 국가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철수했다. 원래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와 한반도 통일 문제를 논의할 회담을 3개월 이내에 개최한다"는 정전협정 60조에 의거하여 열리기로 한 제네바 회담이 유엔사와 북한 양측의 언플만 지속되었고,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면서 유엔군사령부 체제는 계속 유지되었다. 그럼에도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이 철수한 명분은 일단 정전이 되었기 때문에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킬 필요가 없다는 당위성 때문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에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킬 능력이 부족한 게 컸다.[84] 이후에는 전력 제공국이 돌아가면서 연락 장교들을 한국에 파견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이후 북한을 위시한 공산권에서는 어떻게든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1974년 제29차 총회만 봐도 한국 문제를 둘러싼 표 대결은 계속되어 자본주의 진영이 상정한 한반도 평화통일 촉진을 위한 남북 대화 재개 촉구 내용의 결의안이 채택되었고, 공산 진영이 상정을 시도하였던 한반도 내 외국군 철수와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요구하는 결의안은 정치위원회에서 부결되었다.
그러나 1975년 8월 페루에서 개최된 비동맹 외상회의에서 베트남 민주 공화국과 북한이 비동맹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비동맹 진영 내에서 공산권의 영향력이 최고조에 달하게 된 것이다. 이를 배경으로 1975년 제30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 지지 세력간 일대 외교 대결이 전개되었다. 9월 22일 제30차 유엔 총회에서 자본주의 진영은 남북대화의 계속 촉구, 휴전협정 대안 및 항구적 평화 보장 마련을 위한 협상 개시 내용의 결의안을 제출하였고, 공산 진영도 유엔군사령부의 조건 없는 즉각 해체, 한반도 내 외국군 철수, 평화협정체제로 전환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상정하였다.
상기 양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진 결과 자유 진영의 결의안(제3390 A호)과 공산 진영의 결의안(제3390 B호)이 동시에 통과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 여기에 미국 정부의 행동을 보면 '타방 직접 관계 당사자들이 정전협정 유지를 위하여 상호 수락할 수 있는 대안에 동의한다면, 미국 정부는 1976년 1월 1일자로 유엔군사령부를 종료할 용의가 있음'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안전보장이사회 의장 앞으로 발송한 적이 있다. 이 결의안을 토대로 공산진영은 유엔사의 해체를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지금도 북한이 남북간의 대화 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을 때 사용하는 단골 메뉴다. 물론 이 외에도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게 서해의 NLL 문제. 물론 자기들 생각대로 회담이 풀려나가면 유엔사나 NLL 문제는 입도 뻥긋 안 한다.
한편 앞서 언급했듯 다른 유엔군 구성국 군인도 차례차례 철수해[85] 사실상 대한민국과 미국만 남게 된다. 이와 같은 정세의 변화로 인해 껍데기만 남은 유엔군사령부를 대신해 박정희 대통령 시절 1978년에 한미연합군사령부를 설치하고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군사령관을 겸임하면서 작전권을 행사하는 지휘체계를 수립하였다.
유엔군사령부는 38선 이북 휴전선 이남의 대한민국 영토, 즉 수복지구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있다. 유엔 결의안에 따라 38선 이북의 영토에 대해서는 유엔군사령부가 관할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은 수복지구에 관한 행정권만을 가지고 있을 뿐 주권이 없다. 행정권마저도 1954년 11월 17일까지는 유엔사가 가지고 있다가 대한민국에게 사실상 이양한 것 뿐이다.
유엔군사령부는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에 한국군과 주한미군에 대한 지휘권을 넘긴 이후 정전협정과 관련한 업무만 맡고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군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다. 유엔사는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정전위원회의 가동, 중립국감독위원회 운영,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관할 경비부대 파견 및 운영, 비무장지대 내 경계초소 운영, 북한과의 장성급 회담 등을 맡고있다.[86]
유엔후방사령부는 주일미군 요코타 공군기지에 설치되었다. 후방사령관은 호주 공군 대령이 맡는다. 유엔이 관리하는 부산 남구 대연동의 재한유엔기념공원에 2,300명의 유엔군 전사자가 모셔져 있다. 반면에 북한을 지원했던 중국 인민지원군 전사자들은 파주 적군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2000년 6.15정상회담 이후에 경의선 공사 과정에서 비무장지대 관리(혹은 관할)[87] 권한을 둘러싸고 유엔사와 북한이 논쟁을 벌어지기도 했다.
2016년, 민정경찰과 함께 한강 하구에서 중국어선의 불법조업 차단 작전을 하는 유엔사 |
유엔군사령부는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을 차단하기 위해 한강 하구에서 민정경찰과 함께 작전을 펼치기도 한다.
2019년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에 관해 허가를 내렸다는 주장도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당시 유엔사는 일반적인 북한 주민의 북송을 승인한 것이지 탈북의사가 있는 선원을 강제로 북송하기 위한 처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 아마도 이러한 형식#의 자발적 의사에 의한 통상적 북송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6.1. 유엔사가 선임한 중립국
자세한 내용은 중립국감독위원회 문서 참고하십시오.중립국감독위원회 깃발[88] |
유엔군과 북한군은 정전 협정에 따라, 자신들이 신임하는 "중립국"을 각자 둘씩 선임하였다. 유엔군은 스웨덴과 스위스를 선임했고, 공산군은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과 폴란드 인민 공화국을 선임했다. 이들로 하여금 판문점에 장교단을 파견해 정전협정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감독을 하는 역할(중립국감독위원회, 약칭 중감위)을 맡기기로 하였다. 그래서 판문점 남측 지역에는 스웨덴군과 스위스군[89], 판문점 북측 지역에는 체코군과 폴란드군의 기지가 설치되어 있다. 판문점 한가운데에는 파란색 회의실 건물을 만들었고 중감위는 이곳에서 업무를 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1990년대를 전후해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가 민주화되었고, 이에 북한은 체코군[90]과 폴란드군을 본국으로 추방해버렸다. 그래서 현재 판문점 북측 중감위원단 기지는 비어 있다. 추방 직후 체코는 중감위 업무에서 손을 뗐다. 폴란드군 장교단은 폴란드 본국에서 중감위 업무를 보며, 회의가 있을 때마다 대한민국 정부의 협조 아래 남한 땅을 통해 판문점 회의실에 들어간다.
6.2. 독립화 및 다국적화 추구
2018년에 캐나다 육군 중장 웨인 에어 장군이 유엔군 부사령관으로 부임하였다. 유엔사의 1950년 창설 이후 부사령관이 미군이 아닌 첫 사례였다. 웨인 에어 장군의 후임[91]으로 2019년, 비 미군 출신인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중장 스튜어트 캠벨 메이어 제독이 유엔군 부사령관으로 부임하였다. 2021년 12월, 메이어 제독은 부사령관직을 이임하고 한국을 떠났으며, 후임자로 영국 육군의 앤드류 해리슨 중장이 유엔군 부사령관으로 부임했다. 해리슨 중장의 후임자로 데릭 A. 맥컬리 캐나다 육군 중장이 임명되었다.# 동일인이었던 유엔사의 참모장과 주한미군사령부의 참모장도 2018년 8월부터 서로 다른 인물로 임명하고 있다. 참모장교들도 영국, 뉴질랜드 등 여러 유엔사 전력제공국들의 장교들로 충원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래로 한미연합사 창설 이후의 소극적 역할에서 벗어나 다국적 군사기구로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현존 17개 회원국 외에도 독일에게 옵저버가 아닌 전력제공국으로 참여하라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92]
유엔사는 2020년대 들어 대외 홍보활동도 부쩍 강화하는 기류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호주군 파견대의 정전협정 관리 임무, 유엔사 의장대 소속 필리핀군 장병들의 활동, 유엔사 요원들의 지뢰제거작전 지원, 일본에 있는 도쿄 유엔사 후방기지의 뉴질랜드 공군기 전개 지원, 유엔사 후방 해군기지에 기항한 유엔사 소속 호주 호위함의 지원 등 다양한 임무 수행 사실을 적극 소개하고 있다. #1, #2, #3
한국에게도 99개의 평시 직위[93] 중 20개 이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와 동시에 유엔사의 확대는 연합사의 지원을 보강하기 위함을 밝혔다. #1, #2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페이스북 페이지와 기존의 주한미군과 한미연합사와 같이 쓰던 페이지와 별개로 독자적인 홈페이지가 만들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전작권 환수를 임기 내 마치겠다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이에 유엔사의 권한과 역량을 늘리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 2018년~2019년에 있었던 남북협력에 대한 물자 반송 및 인원 출입에 대해서 마찰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미국이 동일인이었던 유엔사 참모장과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을 2018년 이후 서로 다른 인물로 임명하고 있듯이, 동일인물이던 유엔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을 전작권 전환 이후 서로 다른 인물로 임명할 가능성이 있다.[94]
2019년 8월, 대한민국 국방부는 덴마크를 유엔사 참모부에서 제외하겠다고 통보했다. 덴마크 외교부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 이 조치는 윤석열 정부에서 철회했다.
6.3. 대한민국의 유엔군사령부 직접 가입 추진
대한민국은 2023년 정전 70주년을 맞이하여 전쟁 당사국 자격으로 유엔군사령부에 직접 가입하기로 합의하고, 대민작전을 담당할 장성급 장교를 유엔군사령부에 파견하기로 했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유엔사의 가입 제안을 거절한 바 있으나, 윤석열 정부는 이를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이 유엔사에 가입을 한다면, 정전협정 관리체계에 한국이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어 한국의 발언권이 커질 수 있다. 또한 향후 종전선언이나, 기타 정전협정 체계에 대한 변화를 추진할 때 한국은 정전협정 당사국 자격으로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유엔사 한국 미가입 문제로 주권침해라던가, 유엔사의 일방적인 정전관리 문제를 빌미로 유엔사 해체를 주장해오던 일부 종북 세력과 북한의 논리를 약화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7. 논란 및 사건사고
7.1. 필리핀군의 살인 사건
자세한 내용은 유엔군사령부 소속 필리핀군 사병 한국인 살해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1989년 유엔군사령부 의장대 소속 필리핀 육군 병장 두 명이 이태원동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 죄책은 상해치사이다.
7.2. 독일과 미국의 독일 장교 파견 시도
미국이 독일군 연락장교를 파견하려고 2019년 5월 31일 일방적으로 통보하자 대한민국 국방부가 거절하였다. 이후 2019년 7월 보도되었다. #7.3. 문재인 정부의 덴마크 축출 시도 의혹
자세한 내용은 한국-덴마크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문재인 정부가 2019년 8월에 유엔군사령부에 속해 있었던 덴마크를 유엔사에서 일방적으로 축출하려고 시도했다는 주장이 문재인 대통령 퇴임 1년여가 지나서야 보도되어 논란이 일었다. 당시 덴마크의 항의와 유엔사의 우려 표명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유엔사에서 활동해야 하는 덴마크군 장교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등 덴마크의 유엔사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지속하였으며, 거기에 더해 유엔군사령부에 대한민국도 참여해달라는 유엔사의 제안을 '한국은 전쟁당사자이지 전력제공국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거부하고, 독일이 참여 의사를 밝히자 주한독일대사관 무관을 초치해 항의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1, #2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 덴마크는 다시 유엔사에 복귀하게 되었다. 또한 윤석열 정부 국방부는 6.25전쟁 당시 기여 형태와 무관하게 회원국이 유엔군사령부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고 선포했다. #
8. 기타
- 창설 당시에는 연합군 최고사령부(GHQ)가 있는 일본 도쿄에 있었으나, 1957년에 한국으로 옮겼다. 옛 유엔군사령부 건물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한복판[95]에 있었다가 사라졌고, 현재는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사령부가 있다. 이태원동 토지의 소유권은 과거 국방부가 갖고 있다가 서울특별시청으로 넘어갔다가 현재는 민간으로 넘어간 상태다. 2017년 일레븐건설이 LH에 1조552억원에 유엔사 부지를 사들였고, 이후 '더파크사이드 서울'이라는 명칭을 붙여 오피스텔 776가구와 아파트 420가구 그리고 상업, 숙박 시설을 혼합한 복합 개발계획을 진행 중이다.#
9. 관련 항목
[1]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85호에 따라 유엔군사령부는 상징 깃발로서 유엔기를 사용한다. 그러나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의 사례처럼 하위 기관에서는 별도의 상징 깃발을 갖고 있기도 한다. 해당 문서 참조.[2] 주한미군사령관과 한미연합군사령관 겸직[3] 따라서 유엔사는 "아시아판 나토"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유엔사 회원국은 북한의 남침등 유사시 군사력을 제공하고 전쟁에 자동 참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토의 역할과 비슷한 점이 많다. 최근에는 북한으로부터의 전쟁 억제라는 유엔사의 한정된 기능을 점차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 반서방 진영을 견제하기 위한 기능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4] 다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한반도 내에서의 군사작전권을 사령부에 위임/부여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가능하다. 유엔이 규정하는 합법적인 군사작전은 곧 유엔사의 임무라는 데에 있어서 가지는 의미가 적지 않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유엔군사령부의 설립을 주도하였고, 유엔군사령부가 설립됨과 동시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 군사작전권(국제법적 적법성)과 대한민국 방어 및 지원임무를 유엔군사령부에게 부여했다. 또한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대한민국을 원조 할 것을 권고하며 회원국들의 참여를 독려했다.[5] the authorities in North Korea to withdraw forthwith their armed forces to the 38th parallel. 당시 유엔은 북한을 적법한 국가로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DPRK같은 정식 명칭이 아니라 그저 'North Korea'(북한)를 사용하였다. 위 결의안 84호를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은 Republic of Korea라는 정식 국호로 호칭하는 것과 대조적이다.[6] 소련은 당시 중국 본토를 점령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화민국을 상임이사국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며 보이콧 중이었다. 이에 더하여 소련은(스탈린은) 언제나 미국과의 정면 대치를 두려워하였고, 미국이 UN군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참전하면 중국과의 상호안전보장조약 때문에 미국과의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것을 우려하였다.[7] the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furnish such assistance to the Republic of Korea as may be necessary to repel the armed attack and to restore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in the area[8] all Members providing military forces and other assistance pursuant to the aforesaid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make such forces and other assistance available to a unified command unde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9] the Secretary-General, the Economic and Social Council in accordance with Article 65 of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other appropriate United Nations principal and subsidiary organs, the specialized agencies in accordance with the terms of their respective agreements with the United Nations, and appropriate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to provide such assistance as the Unified Command may request for the relief and support of the civilian population of Korea, and as appropriate in connexion with the responsibilities being carried out by the Unified Command on behalf of the Security Council[10] 만약 유엔이 지금까지 관할했다면, 유엔 가입국 중 하나인 북한도 유엔군사령부를 지지하는 꼴이 된다.[11] 6.25 전쟁 참전용사들이 자신이 지키기 위해 싸웠던 바다 건너 먼 나라가 잿더미에서 경제 강국으로 일어섰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랑스러워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젊은 시절의 자신과 동료들이 절대 헛고생한 게 아니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분들에게 한국 통일 없는 유엔사 해체는 자신이 희생한 것이 모조리 수포로 돌아갔다는 뜻이기 때문에 엄청난 모욕이다.[겸직] [13] 주한미군주임원사, 한미연합군주임원사 겸직[14] 에어 장군은 전임자의 중도사직으로 인해 캐나다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어 유엔사 부사령관의 2년 임기를 못 채우고 캐나다로 돌아가야 했다. 현재는 대장으로 진급해 제복군인 최선임인 국방참모총장직을 수행 중.[15] 소장으로 임명되어 임기 중 진급[16] 출처[GHQ] 극동사령부 총사령관 겸임.[GHQ] [19] 역대 최단기간 재임.[주] 주한미군사령관 겸임.[주] [22] 5.16 군사정변 당시 쿠데타를 진압하려 하였으나 윤보선의 거부로 진압하지 못했다.[주] [주] [주] [주] [27] 일본 항복 당시 육군부 중령으로, 딘 러스크(1960년대 미 국무장관 역임)와 함께 38선을 그은 장본인.[주] [29] 6.25 전쟁 당시 미군 제25사단 27연대 지휘관으로 참전했으며 다부동 전투에서 국군 1사단과 함께 방어작전을 펼쳤다.[주] [주] [32]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당시 사령관.[주] [연] 한미연합군사령관 겸임.[35] 병 출신 장성, 그것도 현지임관자로서 4성장군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재임기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검토했던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낸 바 있다. 주한미군 이후 육군참모차장을 거쳐 합동참모의장까지 지냈다.[주] [연] [38]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 1980년에 한국의 민주화를 지지하였으나 신군부를 제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한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레밍과 같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그에게 우르르 몰려든다'라는 말을 남긴 그 사람이다.[주] [연] [주] [연] [주] [연] [주] [연] [주] [연] [49] 영변 핵시설 공습론이 거론된 1차 북핵위기 당시의 사령관이었다.[주] [연] [52] 두 차례의 동해안 잠수정 침투, 제1연평해전을 겪었다.[주] [연] [주] [연] [57] 부임 직후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을 겪었고, 평택기지 이전 등을 맡았다. 때문에 역대 사령관들 가운데서도 가장 힘든 시간을 겪었던 인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재임기간이 4년으로 가장 길었던 것은 아이러니.[주] [연] [주] [연] [62] 2010년의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을 겪었다.[주] [연] [주] [연] [67] 2015년 8월의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과 서부전선 포격 사건 등을 겪었다. THAAD 배치도 그의 건의로 시작되었다. 이후 NATO군 사령관으로 영전했다.[주] [연] [70] 최초의 흑인 유엔군 사령관이다. 복무하는 동안 수많은 북핵위기를 겪었다.[주] [연] [주] [연] [75] 에티오피아와 룩셈부르크 제외[76] 스웨덴, 인도 제외[77] 미국은 일본도 전력제공국으로 추가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으나 한국에서 거부한 바 있다.[78] 다만, 전쟁 중 대한민국 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유엔사사령관에 이양하였고 1979년 다시 한미연합군사령관에게 재이양하였는데 유엔사사령관과 한미연합군사령관은 동일 인물이 겸직하는 체계이므로 대한민국이 유엔군의 공식적인 회원국이 아닐 뿐 유엔군과 상당한 전략적 연관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79] 에티오피아, 룩셈부르크, 스웨덴, 인도, 독일[80] 2023년 장관급 회의 당시 다른 회원국들은 모두 대사급 이상의 대표가 참석했었다. # 이는 대사관 소속 정치참사관을 보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대비된다.[81] 여담으로 전세계 모든 대륙(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마다 최소 한 국가씩은 전투부대를 한국에 파병하였다.[82] 전쟁 당시에는 아래에 나와있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와 주한영연방군으로 묶였었다. 다만, 병력수 집계는 따로 되었다.[83] 이중 전사 129명, 실종 5명, 부상 1,139명[84] 프랑스는 병력 부족으로 무장친위대 출신 독일군들을 받아서 외인부대로 참전시킨 것도 모자라 6.25 전쟁 파병 병력을 베트남에 보냈다가 사실상 전멸시키고 만다.[85] 태국군이 1976년 7월 26일에 마지막으로 철수했다.[86] 출처: 주한 유엔군사령부 (시사상식사전, 박문각)[87] 보통 사람이 보기엔 그게 그거지만, 법적으론 의미가 미묘하게 다르다고 한다.[88] 시계 방향을 기준으로 빨간색은 북중 연합군, 노란색은 UN, 파란색은 대한민국, 하얀색은 민간인을 상징하는 색이다.[89]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영애가 중립국 감시단 스위스군 장교 역할로 나온다.[90]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면서 중립국감독위원회 임무는 체코가 승계했다.[91] 웨인 에어 중장은 임기를 다 채우지 않은 상황에서 캐나다 육군 사령관에 내정되어 캐나다 본국으로 전보되었다. 현재는 대장으로 진급해 국방참모총장을 지내고 있다.[92] 독일 측에서 이를 거절하였다고 하나, 대한민국에 사전 통보가 없었다고 한다.[93] 중령급 이상으로 보인다.[94] 참고로 주한미군이 연합사를 구성하므로 전작권 환수 이후에도 연합사 부사령관(미군)이 주한미군 사령관을 겸임한다는 점은 불변의 원칙이다.[95] 청화아파트와 몬드리안 이태원 호텔(옛 캐피탈호텔)과 인접한 지역에 빈 땅이 크게 있는데, 그곳이 옛 유엔사 자리다. 맞은편에는 용산기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