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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01:09:32

이성한(미르재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인물 및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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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은 혐의를 주도한 핵심인물이고, 기울기내부고발자 및 피해자이며, 위첨자 은 게이트 사건이 드러난 시점에 사망한 사람을 뜻합니다.

[1] 2016년 12월 30일 박진현(여·32·변시2) 변호사가 사임하고 배진혁 변호사(37·사법연수원 43기)가 합류하였다.[2] 제5기 헌법재판소 소장. 2017년 1월 31일 퇴임[3]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 2017년 3월 13일 퇴임[4] 헌법재판소 부장연구관 출신, 연수원 21기.[5] 판사 출신, 연수원 15기.[6] 판사 출신, 연수원 36기.[7] 검사 출신, 연수원 33기.[8] 검사 출신, 연수원 36기.[9] 로스쿨 출신, 변시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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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최순실 게이트의 폭로자3. 과연 내부 고발자인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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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enewstoday.co.kr/629557_181392_79.png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빛을 볼 수 있도록 한 장본인이자 내부고발자.
“최 씨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항상 두께 30cm가량의 대통령 보고자료가 놓여 있었다. 자료는 주로 청와대 수석들이 대통령한테 보고한 것들로 거의 매일 밤 청와대 정호성 제1부속실장이 사무실로 들고 왔다."
“이런 얘기는 통념을 무너뜨리는 건데, 사실 최 씨가 대통령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시키는 구조다.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 최 씨한테 다 물어보고 승인이 나야 가능한 거라고 보면 된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도 사실 다 최 씨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
“(국정을 논하는)모임에 오는 사람은 회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지만 차은택씨는 거의 항상 있었고 고영태씨도 자주 참석했다”
“대화 수준을 보면 어떤 때에는 내가 왜 이런 데에 있는지 싶은 모멸감이 들 정도였다.”, “최 씨는 디렉션(지휘)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사실 디렉션을 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아주 평범한, 전문성이 없는 일반인 수준이었다.”
ㅡ 16년 10월 26일 미르재단 이성한 전 사무총장 한겨레 1~5면 인터뷰
이성한(부동산 개발업자)은 2014년 차은택(대머리 CF감독)에게 소개로 합류하여 최순실, 고영태(호스트바 가방회사 사장)와 함께 박근혜의 비선라인이자 실질적으로 2016년 전반기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한 핵심 멤버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앞에서 복종하고 이를 방치하는 정부인사라는 구조에 환멸을 느껴, 16년 4월 초부터 최순실과 점점 멀어지다가 6월 29일 해임되었다. 해임 직후에는 TV조선, JTBC, 더불어민주당 모 의원과 접촉하여 정보를 흘리다가 이후 한겨레로 바꾸어 9월 7일, 9일, 18일, 25일 4차례 만나 위와 같은 인터뷰를 하였다.

2. 최순실 게이트의 폭로자

사실상 최순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 보도는 2016년 7월 26일 TV조선이 기사다. 미르재단 관련 폭로 기사인데, 바로 이성한이 제보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TV조선이 한번 터트린 후 이후 후속기사도 없이 그대로 묻혔다. 한겨레의 경우 이 기사를 보고 나서야 그동안 자신들의 취재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최순실을 파기 시작했다고 후일담을 토로할 정도로 중요한 기사이다.

이성한은 최순실 등이 하는 짓에 내적갈등을 느끼다가 그들의 비밀회의를 녹음 뜨기도 하고, 회의 중에 반대를 하기도 하는 등 삐딱한 자세로 나갔으며, 이에 이상함을 느낀 차은택에 의해 비밀회의에 올 때마다 몸수색을 당했다. 최순실도 도저히 이성한과 함께 못하겠다고 여겨 그를 내치기로 하고, 뒤이어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사퇴를 종용해 결국 이성한은 미르재단 사무총장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런데 물러난 이성한이 그대로 언론사로 달려가 폭로해버린 것이다. 최순실과의 녹취록을 들고 있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파일:external/cphoto.asiae.co.kr/2016120907091589629_1.jpg
한편 JTBC는 이성한과 연락이 뜸해지자 그동안 비보도로 인터뷰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10월 초에 한겨레보다 먼저 방송하였다. 비밀회의 녹음본이 76~77개가 있다는 인터뷰도 이때 방송되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다른 언론사들은 청와대 눈치보기와 정보 부족으로 인해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다 10월 24일 JTBC가 최순실 태블릿 PC 입수라는 초대박 특종을 터트리고 나서야 모든 언론이 일제히 청와대와 최순실 공격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한발 늦게 한겨레가 더이상 비보도로 인터뷰한 기사를 붙들고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 10월 25일 인터넷판으로 이성한 인터뷰를 요약하여 공개하였고, 26일부터 모든 언론이 이 인터뷰를 인용하였다. 인터뷰 기사 전문은 26일자 한겨레 지면에 나왔다.

결국 이번 사건에서 두각을 나타낸 3개 언론사인 한겨레TV조선, JTBC 모두 지속적으로 이성한과 만나 비보도 전제로 이야기를 나눴고, 그 결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만큼 이성한이 이번 사태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있는 핵심 키맨이다. 그런데 위 3개 언론사의 특종 초기에만 이름이 언급되고 이후에는 이름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 고의적으로 이성한을 숨겨주고 있다는 관측이 있다.

사건의 핵심 인물임에도 검찰에서 한번 소환조사한 후 구속이나 기소 등 어떠한 조치도 없다. 고영태와 더불어 수사에 매우 협조적이라고 한다. 이번 사건의 핵심 단서인 최순실이 버렸다는 태블릿 PC가 JTBC의 주장대로 경비원에게 입수한 것이 아니라 이성한이 제공한 것이라고 하는 설도 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의 수사 매뉴얼을 고영태가 만들어 줬다고도 한다. 특히 TV조선의 특종보도인 최순실의 의상실 동영상은 고영태가 몰래 찍어서 제공했다는 것이 정설. 사건에서 최대의 폭탄을 쥐고 터트린 이성한은 현재는 철저히 묻혀 있다.

아직은 언론사들의 추측이기는 하지만, JTBC 등 언론사들과 검찰이 보호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JTBC 등 3개 언론사는 이성한과 고영태의 근황에 대해 철저히 함구중). 그동안 황우석 사태 등에서 내부고발자가 어떤 험한 꼴을 겪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다행인 처사라고 할 수 있다.[1]

고영태 문서도 참고할 것.

3. 과연 내부 고발자인가?

최순실 게이트를 밝혀낸 것은 TV조선, 한겨레, JTBC라는 3개사의 특종 덕분이다. 그런데 이들의 취재의 소스는 고영태와 이성한에서 나왔다. 3개 언론사가 모두 고영태와 이성한을 인터뷰해서 얻은 정보로 특종을 터트렸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그런데 이들이 과연 내부고발자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안민석 의원이나 주진우 기자 같은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이들을 아낌없이 치켜 세우며 국민 영웅으로 만들고 있지만, 정작 이들과 인터뷰를 해서 특종을 터트린 언론들의 평가는 영 아니올시다.

TV 조선의 이진동 사회부장은 2016년 7월에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 첫 인터뷰를 하였다. 그런데 그는 이때부터 자기가 76~77개의 최순실 녹음파일이 있다고 낚시질을 시도하였다. 이진동 사회부장의 평은 "사실 이성한은 한때 내밀한 정보를 전하는 취재원이었지만, 특정 시점엔 돌아섰다. 이성한은 미르재단의 정상화와 자신의 사무총장 복귀가 목표였다. 이성한은 '기자의 취재'를 무기 삼아 안종범에게 재단 정상화와 재단 사무총장 복귀를 압박했다. 언론이 접촉하고 있으니 입을 막으려면 미르재단 사무총장으로 복귀시키라는 '은근한 협박'이었던 것이다. '태생부터 불법이라 재단 정상화는 가능하지 않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 줘도 그는 막무가내였다."라고 하였다. 미르재단 사무총장 당시 이성한의 연봉은 1억 7천만 원에 법인카드 별도라는 웬만한 '공사' 사장급 대우였다. 이성한이 원하는 건 내부 고발이 아니라 자신의 사무총장 복귀, 즉 돈과 권력이었다. 자신의 파멸을 각오하고 내부고발한 최순실 게이트에서 의인들과는 급을 달리한다.

또 이진동 사회부장은 "나중에 이성한의 입이 국정농단 사건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된 건 일정 부분 맞다. 하지만 그땐 이미 전세가 기울어 재단 정상화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성한의 역할은 딱 이 정도였다.

한겨레가 이성한을 만난 것은 2016년 9월 7일이었다. 한겨레의 특별취재팀장이었던 김의겸 기자가 전날인 9월 6일 TV조선의 이진동 기자에게 요청하여 전화번호를 얻어낸 것이다.[2] 취재를 담당한 건 류이근 기자였는데, 그는 이성한과 만난 후 "그는 자신의 목적을 명예회복과 미르재단의 정상화라고 말했다."라고 기록하였다. 즉 이때도 이성한의 목적은 내부자의 공익 제보가 아니라 범죄 집단인 미르재단을 정상화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다시 사무총장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이 한겨레와 접촉했다는 것을 안종범 측에 흘려 이를 미끼로 사무총장 복귀를 시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에 한겨레와 만날 때 녹음도, 필기도 못하게 하고 보도도 못하게 하며 아무 정보도 주지 않았다. 즉 이성한에게 있어서는 한겨레와 만났다는 자체가 중요하며, 절대 미르재단의 실체가 언론에 보도가 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후 추가 취재를 할 때도 온종일 류이근 기자와 만나도 중요한 정보를 주지 않고 변죽만 올렸다. 그놈의 76개에서 77개의 최순실 녹음 파일이 있다는 낚시도 계속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성한은 JTBC와도 양다리를 타고 있었고 그쪽에도 '오프 더 레코드'를 요청하였는데, JTBC는 이를 깨고 이성한이 제공한 정보를 보도하며 대박 특종을 터트렸다. 이성한의 양다리 플레이를 뒤늦게 알게 된 한겨레 측도 태블릿PC 사건이 터진 다음날인 10월 25일에 이성한의 인터뷰를 기사화하였다. 그 내용이 바로 문서 상단에 있는 글인 (단독) “최순실이 박대통령에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구조”이다.

한겨레 측은 '오프 더 레코드'라는 것은 국가가 어떤 일을 시행할 때 안보상 중요한 목적으로 지연해서 언론보도해 달라고 할 때 쓰는 것이지, 개인이 내부고발하는데 뭔놈의 '오프 더 레코드'냐고 매우 어이없어하였다. 그래도 취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성한에게 오냐오냐 하며 기분 맞춰 줬는데 JTBC는 그런 말도 안되는 오프 더 레코드는 깨버리고 과감히 보도하면서 먼저 특종을 차지하였고, 한겨레는 본의 아닌 뒷북을 쳐버렸다. 그 바람에 미르재단의 실체가 밝혀졌고, 이성한의 미르재단 사무총장 복귀는 꿈이 되어버렸다.

JTBC가 이성한을 만난 것은 10월 4일이다. JTBC는 TV조선 보다는 1년 늦게, 한겨레보다는 1개월 늦은 10월 3일에야 특별취재팀을 꾸렸고 고영태/이성한을 만난 것 역시 TV조선/한겨레보다 1년/1개월이 늦었다. 그러나 JTBC는 네임밸류는 압도적이였다. JTBC가 움직이니 사방에서 내부고발자들이 제보하겠다고 달려 들었다. 거의 모세 앞에서 홍해가 열리는 수준이었다. 조선일보가 가도 문열어주지 않던 K스포츠재단 사무실도, JTBC기자라고 하니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라며 문을 열어 주었고, 그 안에서 태블릿PC라는 대박 특종이 터졌다. 고영태와 이성한도 뛰어와서 JTBC에게 다 털어 놓았다. 지난 몇년, 몇달 동안 TV조선/한겨레에게 털어 놓았던 것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려 주었다. 한겨레의 김의겸 특별취재팀장은 20년 기자생활 동안 이정도 적극적으로 취재를 도와주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고 한다.


[1] 사족으로 이번 사건에서 박근혜-김기춘이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고 하여, 황우석 사태의 바로 그 내부고발자가 정말 오랜만에 CBS를 통해 언론 인터뷰를 하였다. 한마디로 국내에서는 불법시술이라고 한다.[2] 당시만 해도 서로 모르고 있었지만, 알고보니 이진동과 김의겸은 다 호남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친박세력에서는 '호남 출신 기자들이 청와대를 공격한다는 프레임'을 짜놓아 공격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