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 육·해군 항공병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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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좌 전투기 | Ki-45 토류, ◈Ki-83, Ki-102, ◈Ki-93 | |||||
폭격기 습격기 | BR.20 치코냐, Ki-21, Ki-30, Ki-32, Ki-48, Ki-49 돈류, Ki-51, Ki-67 히류, †Ki-91 | |||||
자살 공격기 | Ki-115 츠루기 | |||||
훈련기 | Ki-9, Ki-6, Ki-17, Ki-55, Ki-54, Ki-79, Ki-86 | |||||
정찰기 | Ki-16, Ki-36, Ki-46 | |||||
해군 항공대 | <colbgcolor=#2f4f2f> 함재기 | <colbgcolor=#2f4f2f> A 함상 전투기 | A5M, A6M 제로센, A7M 렛푸,†20시 갑전투기,†N1K3-A 시덴 카이 二 | |||
B 함상 공격기 | B5M, B5N, B6N 텐잔, B7A 류세이 | |||||
C 정찰기 | C3N, C5M, C6N 사이운,▼D4Y1-C | |||||
D 함상 폭격기 | D1A, D3A, †D3Y 묘조, D4Y 스이세이 | |||||
E 수상정찰기 | E2N, E7K, E9W, E10A, E13A, E14Y, E15K 시운, E16A 즈이운 | |||||
F 수상관측기 | F1M, F1A | |||||
G 육상공격기 | G3M, G4M, G5N 신잔, G8N 렌잔, †G10N 후가쿠 | |||||
H 비행정 | H6K, H8K, H11K 소우쿠 | |||||
※ J 국지전투기 | J1N 겟코, J2M 라이덴, †J3K 17시 국지전투기, ◈J4M 센덴, ◈J5N 텐라이, ◈J6K 진푸, ◈J7W 신덴, †ⓩJ7W2/J7W3 신덴 카이, ◈ⓩJ8M 슈스이, ◈ⓩJ9Y 킷카, ▼N1K-J 시덴, ▼N1K2-J 시덴 카이, ▼N1K3-J 시덴 카이 一, ▼N1K4-J 시덴 카이 三, ▼†A7M3-J 렛푸 카이 | |||||
K 훈련기 | K5Y, K9W 코우요, K10W, K11W 시라기쿠, ▼A6M2-K, ▼M6A1-K 난잔 | |||||
L 수송기 | DC-2, L2D, L3Y, L4M, ▼H6K-L, ▼H8K-L 세이쿠, ▼H11K-L 소우쿠, ▼G5N2-L 신잔 카이 | |||||
M 특수공격기 MX 특수활공기 | MXY-7 오카, ◈(제식명 불명)N 토카, M6A 세이란, D4Y4 스이세이 | |||||
N 수상전투기 | N1K 쿄후, ▼A6M2-N | |||||
P 폭격기 | P1Y 긴가 | |||||
Q 초계기 | Q1W 토카이, Q2M 타이요, †Q3W 난카이 | |||||
R 육상정찰기 | ◈R2Y(세이운, 케이운), ◈ⓩR2Y2 케이운 카이, ▼J1N1-R | |||||
S 야간전투기 | ◈S1A 덴코, ▼J1N-S 겟코, ▼P1Y1-S 바야코, ▼P1Y2-S 쿗쿄, ▼D4Y2-S 스이세이 | |||||
<colbgcolor=#000000> 노획 항공기 | LaGG-3-8, I-16, 투폴레프 SB F2A 버팔로, P-40, B-17(D/E), P-51C, F4U 콜세어, F6F 헬캣, 커티스 BT-32, CW-21, DB-7, 마틴 139 호커 허리케인, 브리스톨 블렌헤임 | |||||
독일로부터 수입한 기체 | 하인켈 72, A7He, AxHe, 하인켈 He 119, 융커스 Ju 87 슈투카, 메서슈미트 Bf 109E-7, 포케불프 Fw 190A-5, 메서슈미트 Me 210 A2, 메서슈미트 Me 410, ⓩ메서슈미트 Me163, †ⓩ메서슈미트 Me 262, †포케불프 Ta 152, †융커스 Ju 390, †V2 미사일 | |||||
글라이더, 무동력기, 미사일 | †Ki-147, †Ki-148, †MXY8 아키구사 | |||||
◈ 시제, 프로토타입 / † 페이퍼 플랜, 수입 실패 / ⓩ 제트 혹은 로켓 엔진 장착기 / ▼ 타 목적 기체를 유용함 ※ 국지전투기: 일본군이 운용했던 본토 방어 및 폭격기 요격 전용 전투기. 요격기 문서 참조. ※ 나무위키에 문서가 없거나 이 틀에 기재되지 않은 일본군의 항공병기 전체 목록은 일본 항공병기 설계안 문서 참조. ※ 연합군(특히 미국)이 대전기의 일본 항공기를 지칭할때 사용했던 코드에 대해서는 연합국 코드명 문서 참조. ※ 템플릿:일본 제국의 항공병기를 참조해 주세요. 전반적인 내용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일본군의 운용장비 | 항공병기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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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 라이트닝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격추되는 G4M |
海軍 一式陸上攻撃機 三菱 G4M
Japanese Navy Type 1 Land-based Attack Aircraft Mitsubishi G4M 'Betty'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미쓰비시사에서 일본 제국 해군을 위해 제작한 육상공격기다. 정식명칭은 G4M 1식 육상공격기이다.해군에서 육상공격기를 운영했다는 것이 약간 신기해보일 수 있는데 일본 제국 해군의 육상공격기는 해군 소속의 육상기지에서 운용을 하며 적 선박에 대한 뇌격, 주요 거점에 대한 폭격, 주요 요인 및 물자의 수송 등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현대의 기준으로는 사실 '공격기'가 아닌 '폭격기'로 분류되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다른 국가들이나 일본 제국 육군의 기준으로 보아도 역시 '폭격기'로 분류할 수 있는 기종들이었지만, 뇌격기로부터 발전하였다는 점(덧붙여 일본 제국 해군에서는 뇌격기를 '공격기'라고 호칭하고 있었다)이나 급강하폭격기로서는 쓸 수 없었던 점을 이유로 일본 제국 해군에서는 이러한 기종들을 '폭격기'가 아닌 '공격기'로 분류하여 '육상공격기'라 호칭하고 있었다.
원래 일본 제국 해군은 항공기에 별칭을 붙이는 관례가 없었고 나중에서야 J1N 겟코부터 항공기에 별칭이 붙었다. 그 때문에 연합군에서 붙인 식별기호 베티(Betty)가 더 유명해졌다. 해당 별명의 유래는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SECRET JAPANESE AIRCRAFT OF WORLD WAR II'에 의하면 이 이름은 정보부 직원중 한명의 여자친구 이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에서 태평양 전쟁을 다룰 때, 이 기체를 베티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1식 육상공격기를 줄여서 일식육공(一式陸攻)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 제국 해군의 주력 중(中)폭격기였던 만큼 파생형들도 다양하여 G6M1-L2라는 수송형태도 있었다. 해당 형태는 방어기총좌를 줄이고 20명까지 탈 수 있게 했던 기종이다. 파생형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G4M의 생산량은 2,435기이다.
2. 제원
G4M의 주력 기체인 G4M1의 상세제원은 아래와 같다.- 분류: 7인승 중형 폭격기
- 전장: 19.97m
- 전폭: 24.89m
- 전고: 4.9m(수평자세)
- 익면적: 78.13㎡
- 엔진: 미쓰비시 MK4A-11 카세이 복열 14기통 공랭식 성형엔진 2기 (1,530마력)
- 자체중량: 6,741kg (전비중량 9,500kg/최대이륙중량 12,860kg)
- 최대속도: 428km/h
- 순항속도: 315km/h
- 실속속도: 120km/h
- 항속거리: 5,037km (정찰시)
- 방어무장
- 92식 7.7mm 기총 4정 (기수 포탑 1정, 좌우 측방 1정씩, 상부 포탑 1정)
- 99식 20mm 기총 1문 (후미 포탑)
- 폭장: 어뢰, 폭탄, 카미카제 무장중 1종류만 탑재가능하다.
G4M의 주력 파생형의 제원은 아래와 같다.
명칭 | 11형[1] | 22형 | 34형 |
코드네임 | G4M1 | G4M2 | G4M3 |
전폭 | 24.88m | ||
전장 | 19.97m | 19.63m | 19.50m |
전고 | 4.506m | 6.000m | |
주익면적 | 78.125㎡ | ||
공허중량 | 6,741kg | 8,050kg | 8,391kg |
최대이륙중량 | 12,895kg | 15,451kg | 14,772kg |
엔진 | 카세이 15형 (1,460마력) | 카세이 21형 (1,850마력) | 카세이 25형 (1,850마력) |
최고속도 | 453.7km/h (고도 4,200m) | 437.1km/h (고도 4,600m) | 479.7km/h (고도 5,066m) |
실용상승고도 | 9,660m | 8,950m | 9,026m |
항속거리 | 2,176km (폭격) 5,882km (정찰) | 2,500km (폭격) 6,060km (정찰) | 4,334km (정찰) |
항공폭탄 | 60kg 폭탄 12발, 250kg 폭탄 4발, 500kg 또는 800kg 폭탄 1발 | ||
항공어뢰 | 800kg 항공어뢰 1발 | ||
방어화력 | 7.7mm 기관총좌 4기 (전면, 상부, 측면) 20mm 기관포탑 1기 (후미) | 7.7mm 기관총좌 3기 (전면, 측면) 20mm 기관포탑 2기 (상부, 후미) | 13.2mm 중기관총탑 1기 (전방) 20mm 기관포탑 4기 (측면, 상부, 후미) |
승무원 | 7명 (조종사 2명(주조종사, 부조종사), 항공 기관사, 폭격수, 정찰수 2명 (주정찰수, 부정찰수), 무전수) | ||
생산량 | 1,172 (프로토타입 포함) | 429 (초기형) 713 (후기형) | 91 (기본형) 30 (G6M1) |
3. 개발
96식 육상폭격기(九六式陸上攻撃機)라고 불리는 G3M은 폭격기 무적론에 따라서 만들어진 관계로 폭장량과 항속거리는 좋은 편이지만[2] 반대급부로 방어화력이 좋지 않아서 중일전쟁 당시 국민혁명군이 보유한 구식에다가 몇 대 안되는 전투기에도 격추당하는 등 실전에서 운영하기에는 문제가 많았다.여기에 더해서 96식 육상폭격기는 동체의 형태가 가느다란데다가 후방으로 갈수록 더 얇아지므로 동체 내부에 폭탄창을 설치할 수 없으며 특히 항공어뢰의 경우에는 거대한 어뢰를 외부에 장착하기 때문에 공기저항이 증가하여 속도가 떨어지고 항속거리가 줄어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체 후방에 방어총좌를 설치할 수 없으므로 후방에서 접근하는 전투기에 매우 무력하게 당하는 일이 많았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 신규 육상공격기에 대해서 미쓰비시사는 해군에게 4발 중폭격기 떡밥을 던졌으나, 해군에서는 미쓰비시에서 쌍발 중(中)폭격기는 생산한 적이 있었으나 4발 중(重)폭격기를 생산한 적이 없어 빠르게 96식 육상공격기를 대체할 폭격기가 필요한 해군으로썬 긴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점과 같은 값이면 쌍발 폭격기 2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문제는 미쓰비시사에서 제시된 스펙에 감동을 받은 해군은 오히려 쌍발폭격기에 4발 중폭격기급 스펙을 요구하였고 이 때문에 개발 과정에서 간신히 해군의 요구사항에 맞출 수 있었는데, 이게 훗날 원샷 라이터의 전설을 탄생시켰다.
1식 육상공격기를 개발할 때 처음에 고려되었던 것은 기체의 방어력이었다. 하지만 차후 서양의 주력이 될 20mm급의 기관포에 대한 방탄 성능을 내는 것은 킨세이에서 카세이로 엔진 출력을 높인 상태에서도 불가능했고 이에 개발진들은 차라리 최대속도와 고고도 성능을 높임으로써 피탄을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겨 방탄 능력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게 된다.
기본적으로 고도와 속력을 높여서 격추를 피한다는 개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개념 자체는 일본 뿐 아니라 영국과 미국 또한 가지고 있고 냉전 시기까지도 어느 정도 유효한 대응이었다. 독일 본토 항공전에서 폭격기들의 피해가 커지자 미국이 취한 조치 중 하나가 폭격기들의 작전 고도를 올리는 것이었으며 냉전기에 영국의 폭격기 아브로 벌컨과 미국의 정찰기 U-2와 SR-71도 그런 개념이 적용되었던 만큼 개념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심지어 아브로 벌컨은 아예 방어무장을 장착하지도 않을 정도였다.
진짜 문제는 베티가 비행할 수 있는 고도에 베티보다 더 빠르게 날 수 있는 기종이 배치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성능의 향상이 없는 베티를 운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같은 서방 연합국의 경우에도 당시 독일 공군의 주력 기종들은 3만 피트까지 올라오면 성능이 많이 저하돼서 요격에 어려움이 생기고 대공포도 유효한 피해를 주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고 고도와 속력을 높이려고 했으나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다. 당장 2차대전 초중기의 연합국 폭격기는 승무원 공간에 여압 설비가 없었기 때문에, 히말라야산맥 능선과 비슷한 조건을 버텨야 했다. 그래도 일단 기술력을 동원해서 고도와 속력을 높인 후에 객실 여압 등 고공 비행 편의성이 추가되고, 엔진과 과급기 성능이 크게 향상되어 고공 비행으로 요격을 회피한다는 개념이 성공적으로 정착된 4발 폭격기가 바로 B-29라 할 수 있다.[3] 이러한 발전은 4발 중폭격기 외에 쌍발 폭격기들 중에도 이렇게 성공을 거둔 사례도 나오게 되는데 바로 드 해빌랜드 모스키토라 할 수 있다. 당대 경쟁하던 자국/타국 대부분의 쌍발기들과 달리 후방 방어 무장을 탑재하지 않았고, 멀린 엔진의 고공 성능 덕에 요격기를 뿌리치기 용이했다.
4. 특징
우선 비행고도와 속력을 높이면서 동체 내부에 각종 무장을 탑재하기 위해 동체의 형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공기창(空技廠)의 연구결과를 적용해서 구체적으로는 가장 굵은 곳에서 폭 2m, 높이 2.5m의 타원 단면을 가지고 전후를 느슨하게 줄이는 방식인 둥글고 두꺼운 시가형 동체를 채용했다. 이를 통해 폭탄창 신설과 후방 방어총좌를 설치하고도 공기저항이 증가하지 않았으며 정찰임무시에는 폭탄창에 추가 연료탱크를 설치해서 항속거리를 추가로 늘릴 수 있었다.주익은 평익 형태지만 종횡비 8, 테이퍼비 1:4 수준으로 상당히 테이퍼가 적용된 형태이며 날개뿌리에서 12.5%, 날개단에서 10%라는 수준의 얇은 날개를 채용했다. 그리고 주익을 중익 형식으로 설치하여 몸통과의 필렛을 마련하지 않고 끝낼 수 있었다. 수평꼬리날개, 수직꼬리날개는 모두 면적을 크게 잡고 각 조타면을 날개의 25% 수준으로 당시 기준으로는 작게함으로서 조타력을 억제해서 조종을 용이하게 했다. 수평꼬리날개는 종횡비가 크게 취해지고 있지만, 수직꼬리날개는 종횡비가 작아져 강한 수평 미끄럼 시에도 방향타의 효과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높이를 억제했기 때문에 격납고의 높이를 추가로 증설하지 않아도 되었다.
많은 양의 연료를 탑재해야 하지만 기체의 무게중심 위치를 고려하여, 연료탱크는 모두 주익 뿌리쪽에 있는 2개의 통합탱크로 모아놓았다. 그리고 외판과의 접합부를 수밀처리하여 몸체를 직접 연료탱크로 이용하는 인테그럴식 탱크(Integral Fuel Tank)를 사용한 결과 무게중심 위치에 가까운 얇은 주익 내부에 5,000리터 가까운 연료를 탑재할 수 있어서 장대한 항속거리를 실현했다.
엔진은 대형 직경을 가지는 카세이 엔진을 탑재하고 있으며 엔진 나셀의 직경은 엔진보다 한층 크고 엔진 나셀의 최대 직경은 엔진의 약간 뒤에 있다. 이렇게 크게 만든 이유도 동체 설계와 마찬가지로 공기창(空技廠)의 연구자료에 의한 공기저항 감소책을 적용한 후 기화기의 공기 흡입구나 윤활 냉각기의 공기 흡입구도 완전하게 엔진 카울 내부에 집어넣어서 공기저항을 추가적으로 더 줄이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G4M1 초기형까지는 엔진 나셀 전방에 돌출부가 없고 매끄럽게 성형되었다. 나중에는 엔진 성능의 향상을 위해서 기화기의 공기 흡입구는 밖으로 돌출시키게 된다. 그 외에 랜딩 기어도 엔진 나셀 내부에 완전수납이 가능하게 해서 공기저항을 줄였으며 렌딩 기어나 플랩같은 조작부는 유압식에서 전동식으로 바꾸었으므로 작동유가 누설되는 일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방어의 측면에서는 방어총좌는 지속적으로 늘리고 위력도 강화시켰지만 기체 자체의 방어력은 제대로 늘리지 못했다.
G3M에 설치할 수 없었던 후미쪽 기관포좌와 일부러 생략한 기수쪽 기관총좌를 G4M에서는 모두 도입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조종석 뒤의 동체 상부, 주익 뒤의 동체 측면에는 각각 달걀형의 돌출식 바람막이를 갖춘 기관총좌를 설치했고 후미쪽에는 99식 20mm 기총의 1호형 기관포 1문을 장비한 선회식 기관포좌를 설치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방어화력이 20mm 기관포 1문과 7.7mm 기관총 4정이 되었으므로 기존의 G3M이 보유한 7.7mm 기관총 3정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방어화력이 증가하였다. 이후 태평양 전쟁이 진행되면서 점점 방어화력의 강화가 요구되자 총좌와 포좌의 동력화 및 선회성능 향상 및 화력 자체의 대구경화를 추구해서 최종적으로는 G4M3의 양산형에서 20mm 기관포 4문과 13.2mm 중기관총 1정으로 방어화력이 크게 늘어났으나 이미 패전이 가까운 상태라서 91기 정도밖에 생산되지 못했다.
그러나 기체의 강도 증가와 방탄설비에 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의 일반적인 선진국의 군용 항공기에는 보통 적용되는 탑승원 보호용 방탄판이나 연료탱크 피탄시 누설 및 유폭 방지용 고무코팅층이 전혀 없던 것이다. 이런 식의 연료탱크를 셀형 연료 탱크(Cell Type Fuel Tank)라고 부르며 보통 자동방루식 연료탱크라고도 불리는 방식의 군용 연료 탱크다. 군용기는 피탄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자동방루식 연료탱크는 필수품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걸 무시한 것이다. 심지어 G4M 개발 당시 8mm 두께 이상의 고무를 외부에 붙인 알루미늄제 연료탱크라면 7.7mm 소이탄에 명중하더라도 발화하지 않고 끝나는 것이 실험에서 확인되었는데도 적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이탄 맞으면 불타오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유가 없던 것은 아니라서 G3M에 적용하려고 했더니 의의로 중량증가에 비해 방탄효과가 작았으며 G4M의 경우에는 적용하려고 보니까 동체를 연료탱크로 사용하는 방식의 인테그럴식 탱크에서는 성능을 해치지 않고 자동방루식 탱크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억지로 하더라도 연료탑재량 감소, 구조중량의 증가 등 단점이 너무 큰 것을 이유로 채용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육상공격기 부대의 손해가 급속히 늘어나자 인테그럴식 탱크의 전면과 후면에 스펀지 고무를 붙여넣고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자동 소화 장치를 설치하는 식의 소소한 개량이 적용되었다. 그리고 생산번호 663호기부터는 성능저하를 감수하고 주익 하부 외부면의 인테그럴식 탱크 부위에 30mm의 스펀지 고무를 붙인다는 대책을 추가로 실시하였다. 그리고 MXY-7 오카를 발사할 수 있는 모기(母機)용으로 전환된 G4M2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오카를 발사하기 전까지 폭격기가 버텨야 하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조종석과 1번 연료탱크 및 보조연료탱크는 방탄판을 붙여서 보호하고 2번 연료탱크는 사염화탄소를 사용한 액체를 주입한 영역으로 방어했다.
하지만 애초에 동체와 날개를 사용한 인테그럴식 탱크 자체가 방어에 취약하기 때문에 1942년 11월에는 연합함대가 직접 항속거리를 줄이는 한이 있어도 G4M의 방탄능력을 높이라는 요청이 나올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G4M3에서는 동체를 사용하는 인테그럴식 탱크 구조를 폐기하고 아예 주익 구조 자체를 재설계해서 내부에 별도의 방탄대책이 적용된 연료탱크를 수납하도록 변경되었다. 하지만 프로토타입이 1944년 10월이라는 매우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후 공습이나 지진의 영향으로 앞서 언급한대로 91여대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승무원은 보통 7명에서 8명이 탑승한다. 구성은 조종사 2명(주조종사, 부조종사), 항공 기관사, 폭격수, 정찰수 2명 (주정찰수, 부정찰수), 무전수이며 폭격기의 기장은 주정찰수가 담당하며 필요에 따라 폭격기 편대 지휘관도 탑승한다. 모든 인원이 기관총수나 무전수를 겸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 진행될수록 숙련된 인원이 부족해지자 1943년 5월에 티니안 섬에서 훈련중이던 751공에서는 G4M의 탑승인원을 5명으로 줄이는 운용을 실시했다. 구성은 조종사, 항공 기관사, 정찰수, 무전수, 기관총수다. 워낙 인원이 부족한 상황이고 실전 출격시 전사자나 부상자가 나오면 폭격기를 비행하기 어렵게 되므로 항공 기관사에게 폭격기를 조종하는 연습을 시켜서 유사시를 대비했다고 한다.
무게중심이 기체 중앙에 있어서 이착륙 시에는 조종사를 제외한 나머지 승무원 6명이 기체 후미에 몰려있어야 했다. 문제는 승무원이 비행 중 전사해서 승무원이 모자랄 경우였는데, 이 경우에는 랜딩 기어의 브레이크를 풀로 밟았다가 툭 떼면 그 반동 때문인지 기체가 후미쪽으로 살짝 가라앉아서 그렇게 착륙했다고 한다.
5. 파생형
크게 11형 (G4M1), 22형 (G4M2), 34형 (G4M3)으로 나눌 수 있다.5.1. G4M1
프로토타입으로 12시육상공격기(十二試陸上攻撃機) 2기를 제작했다. 1호기는 1940년 1월에 납품하였고 2호기는 3월에 납품했다. 2호기는 1호기의 시험결과를 반영하여 수직꼬리날개를 확대하고 보조익에 밸런스 탭을 설치하는 등의 차이가 있다.G4M1은 G4M의 전성기에 사용된 형태로 11형이라고 불리며 1940년 12월부터 납품을 시작해서 1944년 1월까지 생산하면서 프로토타입을 합쳐서 1,172기를 납품하였다.
초기에는 출력이 떨어지는 카세이 11형을 엔진으로 사용했으나 1942년 8월에 생산한 406호기 이후에는 고고도 성능을 향상시킨 카세이 15형을 새로운 엔진으로 채택한다. 보통 G4M1의 카탈로그상의 스펙은 카세이 15형 엔진을 사용한 기체다. 카세이 15형 엔진을 채택할 당시에 이미 G4M2를 개발중이었고 임시적으로 12형이라고 개발명칭이 붙여진 상황이므로 카세이 15형 엔진 채택 버전은 임시적으로 13형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일본 제국 해군에서는 기존 기체와 구별하지 않고 모두 11형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일부 서적에서는 11형 초기형과 구분하기 위해서 12형이라는 방식으로 따로 표기하기도 한다.
카세이 15형 엔진을 채택한 형식은 엔진 교체외에 공기흡입구의 설계도 변경하여 기존의 11형과 비교해서 약간의 성능이 상승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최대속도는 6,000m에서 18km/h, 8,000m에서 35km/h가 늘어났으며 상승고도의 한도도 640m 향상되었고 8,000m까지 상승에 걸리는 시간도 3분 단축되었다. 그리고 954호기 이후에는 엔진 배기관이 집합 배기관으로부터 추력식 단배기관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빈약한 방어력 때문에 육상공격기의 손해가 계속 늘어남에 따라 자동 소화장치의 탑재 등이 이루어졌으며 663호기 이후는 주익 하부의 인테그럴식 연료탱크 부위에 30mm의 방탄 고무판을 붙여서 생산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로 최대속도는 9km/h 감소, 항속거리는 300km 감소했다.
5.2. G4M2
G4M2는 크게 초기형과 후기형으로 나누어진다. 카세이 21형 엔진이 말썽을 부렸기 때문이다.5.2.1. 초기형
보통 22형으로 불리는 형식으로 엔진을 카세이 21형으로 교체하고 기체도 전면적으로 재설계하였다. 프로토타입은 1943년 2월에 일본 제국 해군에 납품되었고 양산기는 1943년 7월부터 납품이 시작되었다.기존 형태에 비해 변경점이 많다. 엔진을 카세이 11형에서 카세이 21형으로 교체하고 추력식 배기관을 채용했으며 프로펠러를 3엽에서 4엽으로 변경했다. 연료탱크의 용량도 4,900리터에서 6,490리터로 늘렸으며 주익의 형태를 층류익으로 변경하고 면적도 늘려서 날개 뿌리 쪽을 12.5%에서 15%로 늘어나게 했다. 그 외에 수평꼬리날개도 면적을 늘렸으며 각 날개의 끝은 원형으로 다듬었다. 랜딩 기어도 강화했으며 동체 꼬리쪽 바퀴는 노출시켰다.
방어무장을 강화해서 동체 상부의 7.7mm 기관총좌는 20mm 1호 기관포를 탑재한 기관포탑으로 바꾸고 동체 전방의 7.7mm 기관총좌는 전동식 총탑으로 만든 후 예비용 총을 거치할 수 있는 곳을 추가로 설치하였으며 동체 양 측면의 7.7mm 기관총좌는 물방울용 돌출부를 포기하고 개폐가 가능한 창 형태로 변경하였으며 기체 후미의 20mm 1호 기관포탑은 슬릿을 늘려서 사격각도와 범위를 개선했다.
그 외에 2065호기부터 폭탄창에 밖으로 열리는 방식의 도어를 설치했고 2105호기부터 동체 하부에 폭격조준용 평면창을 설치하는 소소한 개선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카세이 21형 엔진의 진동, 흔들림, 검은 연기 발생등의 문제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원래는 1호기에서 4호기만 시험용으로 쓰려고 하던 계획을 6호기까지 늘렸으며 프로토타입에 채용했던 일본전기주식회사제의 VDM식 전동식 조속기는 결함이 계속 발생하고 해결할 희망도 없어서 양산형에서는 기존의 해밀턴식 유압 조속기로 되돌아가는 등 혼란이 지속되는 일도 있었다.
세부 파생형으로 22갑형(二二甲型)과 22을형(二二乙型)이 있다. 22갑형은 22형에 3식06호무선탐신기(三式空六号無線電信機)라고 하는 수색레이더를 장비하고 동체 측면의 7.7mm 기관총을 20mm 1호 기관포로 교체한 것이며 22을형은 22갑형의 동체 상부의 20mm 1호 기관포를 장포신과 강화된 탄약을 사용하는 20mm 2호 기관포로 교체한 것이다.
5.2.2. 후기형
보통 24형으로 불리는 기체로 G4M2a라고 표기한다. 카세이 21형의 진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속비를 변경한 (0.54→0.625) 카세이 25형 엔진으로 교체한 형태다. 엔진을 변경했기 때문에 카울링의 형태가 바뀌었다. 무장은 22형과 비슷하며 동체 측방에 있는 기관총좌가 엔진 카울링의 변화에 맞추어서 좀 더 간편한 방식으로 개량되었다.1944년 5월부터 납품이 시작되었으며 1943년 10월부터 일본의 자원 수급 악화로 인해 꼬리날개나 폭탄창 도어나 좌석같은 곳을 목재로 교체하는 방침이 수립되었으나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양산기에 적용하지 않았다. 성능 하락의 폭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부터 자잘한 개량형이 많이 나오게 된다. 24갑형(二四甲型)과 24을형(二四乙型)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 22갑형과 22을형의 개량점과 동일하며 24병형(二四丙型)은 22을형에서 동체 전방의 7.7mm 기관총을 13.2mm 중기관총으로 교체한 것이 차이점이다.
24정형(二四丁型)은 따로 G4M2e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MXY-7 오카를 전문적으로 탑재하기 위해 폭탄창에 오카를 아래로 달아놓는 방식으로 탑재하고 연료탱크나 조종석의 방탄장비를 강화했으며 일부 기체는 동체 하부 아래쪽에 이륙시 추력을 늘려주는 로켓을 설치가능하게 개조되었다.
이후의 세부 파생형들은 사실상 연구용 프로토타입에 가깝다. 25형은 G4M2b로 불리며 고고도 성능을 향상시킨 카세이 27형 엔진을 채용한 기체다. 실전 투입을 예상하여 중량을 11,000kg로 맞추고 실시한 시험비행에서 첫번째는 고도 3,235m에서 446km/h를 기록하고 두번째는 고도 6,670m에서 466km/h를 기록하였으나 엔진을 생산하는 공장이 공습으로 박살나서 더 이상 엔진을 공급받을 길이 없자 생산계획이 취소된다.
26형은 G4M2c로 불리며 옥탄가 87 수준의 연료의 사용을 생각하여 엔진을 연료 분사 장치 장비를 설치한 카세이 25을형 엔진으로 변경한 기체다. 프로토타입 2기만 만들어졌다.
27형은 G4M2d로 불리며 공기창에서 프로토타입 1기만 제작되었다. 22형을 기초로 해서 엔진을 카세이 25형으로 교체한 후 배기터빈에 터보차저 형식의 과급기를 엔진 나셀 우측에 장비한 기체다. 하지만 일본 제국의 과급기 관련 기술이 낮은 상황인지라 시운전중에 기체에 불이 붙는 사고가 자주 발생했으므 구체적인 성능시험 단계로 가지 못하고 계획이 중지된다.
5.3. G4M3
보통 34형으로 불리는 기체로 G4M3으로 표기한다. 일반적인 G4M과는 방향성이 많이 달라진 기체로 전쟁상황에서 지속적으로 방어력의 증대를 요청받은 결과로 만들어졌다.동체와 날개를 그대로 연료탱크로 사용하는 방식의 인테그럴식 탱크를 폐지하고 별도의 자동방루식 탱크를 장비했으며 동체 후미 기관포탑의 개량 및 각 부위의 개량을 실시한 형태다.
구체적으로는 주익의 형태는 22형의 형식을 유지한채로 인테그럴식 탱크를 없애고 구조를 단일화했으며 방탄용으로 고무피막을 부착한 자동방루식 탱크를 내장하였다. 이로 인해 줄어든 연료 용량은 엔진 나셀 외측같은 부위에 추가로 연료탱크를 내장하는 방식으로 보충했다. 주익의 뿌리 부분에는 필렛이 설치되었다. 동체 후방의 기관포탑은 슬릿이 포함되는 바람막이를 수동으로 회전시키는 복잡한 방식을 버리고 상대적으로 조작이 쉬운 고정식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개량한 결과 기체의 중량이 300kg 증가하고 기체의 무게중심이 이동했기 때문에 수평꼬리날개에 상반각을 부여했다.
3호기를 실전상태라고 가정하고 중량 11,000kg로 설정한 상황에서의 시험비행에서는 첫번째는 고도 2,402m에 463km/h를 기록하고 두번째는 고도 5,066m에 482km/h를 기록하여 상당히 우수했다. 하지만 프로토타입이 1944년 10월이라는 매우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후 공습이나 1944년의 쇼와 도난카이 지진의 영향으로 앞서 언급한대로 91여대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파생형으로 34갑형(三四甲型)과 36형(三六型)이 있다. 34갑형은 G4M3b로 불리며 34형을 수송기나 대잠초계기로 개조한 것이다. 36형은 G4M3c로 불리며 34형을 기초로 해서 배기터빈에 터보차저 형식의 과급기를 탑재한 기체다. 34형 2기를 미쓰비시에서 개조한 후 1945년 7월부터 아오모리에서 시험을 실시했으나 곧 패전으로 중지되었으며 실험결과도 불명확하다. 하지만 27형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의 일본 제국은 항공기용 터보처저 과급기 기술력이 부족한 상황이므로 실험결과가 안좋은 것을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5.4. 기타
12시육상공격기개(十二試陸上攻撃機改)라는 기체가 존재한다. G6M1으로 불리는 기체로 폭격기를 개조해서 방어기총을 많이 탑재하여 호위기로 사용하려는 것으로 2차대전 당시의 연합국이나 추축국을 가리지 않고 한번씩은 연구한 종류의 기체다. 그 이유는 일반적인 전투기는 항속거리 문제로 인해 폭격기가 장거리 폭격을 나가면 호위임무를 전체 비행구간에 걸쳐서 100% 완벽하게 해낼 수 없기 때문에 폭격기가 혼자서 비행하는 구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기본적인 11형인 G4M1의 방어화기에 추가해서 기체 하부에 곤돌라 형태의 20mm 기관포탑을 탑재하고 동체를 연료탱크로 삼는 방식의 인테그럴식 탱크를 폐지하며 폭탄창에 방탄고무코팅을 한 연료탱크를 증설하고 그 외에도 주익이나 내부의 다른 연료탱크에 방탄고무코팅을 하는 방식으로 개조되었다.
하지만 개조에 의한 중량증가등의 이유로 인해 같은 종류의 폭격기 편대와 동행시 고도와 속도를 유지할 수가 없어서 호위는 커녕 편대를 따라잡는 것도 불가능했고 A6M이 항속거리가 길어서 호위기로 써먹을 수 있었기에 계획은 취소되고 잔여 기체는 훈련기나 수송기로 전용된다.
일식대형육상연습기 11형(一式大型陸上練習機一一型)은 해당 기체를 연습기로 전용한 것으로 승무원의 기종전환훈련에 사용되었으며 G6M1-L으로 불렸다. 일식대형육상수송기 11형(一式陸上輸送機一一型)은 해당 기체를 수송기로 전용한 것으로 기체 하부의 곤돌라를 철거하고 방어화기를 7.7mm 기관총 1정으로 크게 축소하는 개조를 거쳤다. 인원과 물자의 수송에 사용되었으며 인원 수송시에는 20명분의 좌석을 기체 내부에 설치가능했다. 보통 G6M1-L2로 불렸다.
나름대로 활용도를 찾았고 수송기 버전은 일본 제국 기준에서는 우수한 수준의 고속 대형 수송기지만 애초에 계획이 중지된 기체를 전용한 것이라 모든 G6M1의 수량은 합해서 30기다.
6. 실전
6.1. 전성기
잘나가던 시절의 G4M 초기형 편대[4] |
개발사의 의도는 아주 잘 맞아떨어져 태평양 전쟁 초기에는 연합군이 태평양 전선에 투입한 대부분의 전투기보다 더 높은 고도를 날 수 있는 기체였다. 그래서 요격이 어려웠으며, 일본 해군의 요구에 따라서 폭장을 하더라도 11형은 2,176km, 정찰시에는 5,882km의 항속거리를 가지며 22형은 폭장시에도 2,500km, 정찰시에는 6,060km의 항속거리를 가지므로 "설마 여기까지 오겠어?"란 곳까지 나타나 공격을 하면서 연합군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다.
전임자 G3M과 함께 말레이 해전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으며, 실제로 미 항모전단도 몇번이나 뜬금없이 나타난 베티들에게 공격당한 적 있었다. 예를 들자면 엔터프라이즈도 1942년 2월에 베티 편대의 공격을 받았으나 다행히 전부 피하는 데 성공하고 되려 베티 1기를 격추하는 데 성공한 기록이 있고,(정보 출저 'Battle 360') 렉싱턴은 베티 편대에게 공격당했으나 역관광하고 미 해군 최초의 에이스를 만든 바 있다. 하지만 모든 함선이 그런 것은 아니라서 랭글리 같은 경우엔 이 베티들에게 격침당하고 말았다.
또한 숙련병들이 모는 베티가 지닌 정확한 뇌격능력으로 인해 연합군 선단의 피해가 막심했으며, 그 때문에 태평양에서 활동하는 연합군 선단에는 "베티를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가 있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베티의 활약에 노이로제가 걸린 연합군이 대규모 선단을 동원한 탈출 작전을 포기하면서 바탄 반도에 고립된 미군과 필리핀군은 결국 일본군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고 바탄 죽음의 행진을 비롯한 각종 학대에 시달리며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육상에서도 연합군의 주요 거점에 폭격을 가하며 육군의 진격을 도운 까닭에 초창기 동남아시아에서 일본군이 선전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6.2. 몰락
P-38 라이트닝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격추되는 G4M |
베티가 높은 작전고도를 비롯한 비교적 우수한 비행성능, 특히 무엇보다 연합군을 당혹하게 만든 엄청난 항속거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제로센을 비롯한 일본군의 여러 항공기들처럼, 기체의 경량화에 몰두한 결과였다.
G4M1을 미군의 B-25나 독일의 He 111 같은, 당시 미국이나 독일 등의 비슷한 포지션의 쌍발 중형폭격기들과 비교해보면, 익폭이나 동체길이 등 기체의 사이즈는 도리어 G4M 쪽이 좀 더 크지만, 반대로 자체중량은 거의 2톤 가까이 더 가볍다. 기체 중량으로 따지면 한 체급 아래인 영국의 보포트 등과 차라리 더 가깝다. 심지어는 보포트 폭격기의 야간전투기 버전인 보파이터보다도 기체중량이 가볍다. 연료는 비슷한 양, 아니 심지어 더 많이 실으면서 기체의 중량은 다른 경쟁기종의 80% 미만이니 당연히 월등히 더 멀리 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무장량이 동급 쌍발기들에 비해 2/3에서 절반 정도로 상당히 적은 편이라 투입 소티에 비해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기 어려웠다.
즉, 태평양 전쟁 초기의 화려한 전과의 주역이던 초기형 G4M1들은 연료가 탑재된 동체 내부와 긴 주익에 방탄장갑도, 자동방루 연료탱크 등의 방어설비도 미비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가벼운 피탄에도 불이 붙어 격추당하기 일쑤인 기체가 된 것이다. 이는 전쟁 극초반, 일본군이 거의 완전한 제해권, 제공권 우세를 누리던 시점이 끝나고 미드웨이에서 과달카날로 이어지는 피말리는 공방전에 접어들자마자 극명해진다.
미군이 과달카날에 상륙한 다음 날인 1942년 8월 8일, 일본군은 어뢰를 탑재한 G4M1 폭격기 23대를 동원 룽가곶의 미군 함선들에 공습을 가했다. 그러나 F4F 와일드캣 전투기들의 요격과 대공포화로 23기 중 18기가 격추당하고, 120여명의 항공 승무원을 잃었다. 이후 1942년 10월까지, 2개월여 동안의 일본군은 과달카날 인근의 전투에서만 100대 이상의 G4M1와 승무원을 잃는다.
게다가 원래 '더 높은 고도로, 더 멀리서' 날아와 공격해서 전투기의 요격이나 대공포화에 노출될 기회를 줄이는 것으로 생존성을 높인다는 컨셉으로 방어력을 '다이어트' 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베티는 중고도 및 고고도에서의 통상폭탄을 사용한 폭격 뿐 아니라 뇌격기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말레이 해전때도 26기의 G4M이 G3M '넬리'와 함께 작전에 참여,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에 3발의 어뢰를, 리펄스에 4발 이상의 어뢰를 명중시켜 치명타를 가했다.
그러나 과달카날과 솔로몬 제도 인근의 전장은, 적 전투기 세력의 위협도 거의 없고, 상대의 대공방어도 허점이 많았던 말레이 해전 등의 상황과는 전혀 달랐다. 상대의 항공엄호 밖은 커녕 정반대로, 바다에선 쌍방의 항공모함들이 사투를 벌이고 헨더슨 비행장에 자리잡은 캑터스 항공대가 날아다니는 쌍방의 항공전력이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한복판이었다. 또한 과달카날의 미 지상군은 물론이고 특히 미 해군 함정들의 대공방어 수준은 초기 영국 해군이나 일본 해군 함정의 대공방어와는 차원이 다르게 충실했다.
과달카날 등에서 베티는 단독이 아니라, 주로는 역시 기나긴 항속거리를 자랑하던 제로센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공격임무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항모기동부대나 라바울 '타이난 항공대'의 전투기들이 연합군 항공전력을 일소해 준 것도 아닌 이상, 베티들은 언제나 반가이 맞이해주는 F4F 와일드캣, P-40 전투기들을(나중에는 P-38 라이트닝 전투기도 배치된다) 뿌리치고, 맹렬한 대공포화를 뚫고 들어가 헨더슨 비행장에 폭탄을 떨어뜨리거나, 심지어 "대공원형진"을 비집고 들어가 함선에 뇌격을 가해야 하는 고난이도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기체의 취약한 방어력과 일본군의 자살공격에 가까운 지나치게 공격적인 전술이 겹치며 G4M은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된 룽가곶 공습처럼 출격했던 기체의 대다수가 살아돌아가지 못하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 경우도 적잖았다. 당시 라바울에 주둔하며 과달카날 전역에 투입되던 일본해군 제25항공전단에 원래 처음 배치된 폭격대는 제4항공대였으나, G4M을 주력으로 운용하던 이들은 전투 개시 한달여만인 1942년 9월, 지나친 손실을 버틸 수 없어 철수하고 만다.
그런데 사실 제4항공대는 이미 그 이전, 1942년 2월 20일 부건빌 인근에서 항모 렉싱턴과 새러토가가 포함된 미 해군 제11기동부대를 공격하다, 투입된 17기의 G4M 중 15기를 잃는 큰 피해를 입은 바 있었다. 이 전투는 호위전투기 없이 공격하다 미군 전투기들에 일방적으로 당한 전투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바로 이 전투에서 미 해군 최초의 에이스로 기록된 에드워드 오헤어 소령이 하루에 G4M 5대를 격추시키며 에이스로 등극한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후 제로센의 호위를 받으며 이뤄진 과달카날 전역에서의 전투에서도 역시 큰 손실을 입는다.
이게 얼마나 큰 손실인가 하면 유럽전선의 미 육군 항공대가 B-17을 동원한 주간폭격을 중단하게 만들었던 일련의 대규모 손실의 대표적 사례의 하나였던 "검은 목요일" 즉, 1943년 10월 14일의 슈바인푸르트 공습 당시 격추당한 폭격기의 숫자는 전체 공습 참여 기체의 1/3 정도였다는 것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나아가 애초 거의 '자살임무'를 각오하고 수행되었다고 할 수 있던 플로이에슈티 공습에서 격추당한 B-24 폭격기의 숫자는 공습에 동원된 기체의 30% 정도, 기타 손상으로 귀환하지 못한 기체를 포함 작전 중 손실을 모두 합하면 약 절반 정도의 기체를 잃었다. 앞의 독일 상공에서 격추당한 B-17들은 호위 전투기 없이 폭격기 단독으로 수행된 주간폭격 과정에서 잃은 기체들이었다. 이를 비교해보면 비록 전투에 동원된 기체의 숫자가 훨씬 적어서 덜 크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손실 비율을 따져본다면 일본군의 베티들이 과달카날 전투를 치르며 입은 피해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사태를 예상한 설계자는 그래도 승무원들을 배려해서 후방 사수석에 방어무장으로 20mm 기관포를 설치해 주었으며 이는 일본기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방어기총으로 20mm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동일한 시기에 미국의 경우에는 12.7mm 중기관총을 사용했고 영국은 아예 7.7mm 기관총이 방어무장이었다.
그러나 구경과는 달리 애초에 빠르게 지나가는 전투기들에게 포신이 짧고 탄속이 느린 99식 1호 기관포가 먹히기는 어려웠다. 물론 방어기총으로 전투기를 명중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아서 미국의 12.7mm 기관총은 탄속, 탄도가 매우 우수했고 제어하기 편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18.52km/h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는 공중전에서는 맞추기가 매우 어려웠다. 방어기총을 쏘는 입장에서는 12.7mm던 20mm던 빠르고 날렵하게 움직이는 항공기를 잡는건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탄속과 탄도가 좋아도 성과가 안좋은 상황에서 탄속과 탄도까지 느리게 되면 말 그대로 허공에 탄환을 뿌리고 끝나는 꼴이 되기 때문에 20mm를 채용한 의미가 상당수 사라지게 된다. 그나마 20mm는 20mm라고 맞추기만 하면 위력만큼은 확실했기에 미군 조종사들은 항상 일본 폭격기의 후방 총좌를 주의하며 접근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방어기총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기체가 어느 정도 방어력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미국은 몇 번 상대해본 결과 탄환이 스치기만해도 불이 붙는다면서 "원샷 라이터" 또는 "날아다니는 지포 라이터", 모양이 시가랑 비슷해서 "날아다니는 시가"란 별명을 붙였다. 일본해군에서는 담배를 닮았다고 해서 ''하마키(葉巻, 시가)''라 불렀다.
많은 국가의 전투기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미군의 전투기들 역시 탄환의 궤도를 확인하면서(예광탄) 파괴력도 높이려는(소이탄) 의도로 소이탄과 예광탄을 철갑탄과 섞어서 쏘는 경우가 적지 않았었는데, 이것이 일본군의 폭격기들을 상대할 때 예상 이상으로 좋은 전과를 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를 알게 된 미군은 전훈을 반영하여 이후 대부분의 장탄을 소이탄으로 도배해 버리는 끔찍한(?) 짓을 하기도 했다. 특히나 G4M은 쌍발폭격기여서 피탄면적도 넓고 날개도 상대적으로 컸기에 피탄 확률이 더 높아서 많은 피해를 봤다고 한다
물론 방어력이 좋다는 연합군의 중폭격기들도 많이 격추되기는 했지만 적어도 '원 샷 라이터' 또는 '플라잉 지포'라는 별명이 붙은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 연합군의 중폭격기를 격추하기 위해서 독일은 20mm 기관포도 모자라서 30mm MK 108은 물론이고 MK 103도 탑재하려고 시도했으며 공대공 로켓까지 사용해야 했으며 8,8cm FlaK과 128mm이 열심히 굴러야 했다.
게다가 다른 일본의 비행기처럼 베티도 숙련된 조종사가 필요했으며, 신참 조종사가 조종하는 경우 대형폭격기의 특성을 넘지 못해 뇌격같은 어려운 임무를 할 때 뇌격을 하기도 전에 연합군의 대공포에 쳐맞고 추락하는 일이 많았다.
결국 베티의 허술한 방어력이 큰 사고를 부르고 만다. 일본 제국 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부건빌 섬의 일본군 전선 시찰을 위해 이 기체를 탔다가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하고 출동한 P-38 라이트닝 편대의 기관포탄에 맞고 밀림에 격추되어 사망했다. 자세한 사항은 야마모토 이소로쿠 문서 참고.
6.3. 너무 늦은 개량
결국 견디다 못해, 1943년 3월, 663번째 생산기부터는 주익 외판 안쪽에 30mm 두께의 고무시트를 붙여 연료탱크 아랫면의 방호력을 강화한다. 또한 동체 내부 연료탱크 주변에도 적층된 고무시트와 스폰지를 대는 조치를 취한다.#1 #2 그러나 이 시기의 대책은 완전한 자동 방루식 연료탱크를 설치한 것은 아닌, 연료탱크를 부분적으로 보강한 임시조치에 가까웠고, 제대로된 자동 방루식 연료탱크가 적용되는 것은 1944년, 말기형인 "G4M3"형에 가서야 이뤄진다.또한 동 663호 생산기부터 후방 총좌 사수석에 방탄장갑을 설치하기 시작한다. 다만 5mm로, 후방 총좌와 같은 피탄위험이 높은 부위의 방어장갑으로는 다소 얇은 편이다. 그러나 임시방편에 가까운 이 정도 개수만으로 속도는 9km, 항속거리는 315km가 감소했다.
이후 1943년 후반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G4M2에서는 기체 상부에 20mm 기관포탑을 증설하는 등, 방어무장을 강화하고, 비행고도를 8,950m까지 높인다. 그리고 1944년부터 생산된 G4M3에 이르러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드디어 온전한 자동방루식 연료탱크를 장비하고 방어 장갑도 증설한다. 이 시점이면 사실상 설계 컨셉 자체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6.4. 말로
MXY-7 오카를 투하하는 G4M |
그러나 과달카날 전투 이후 G4M이 어찌어찌 허술한 방어력 등 취약점을 개선하려 안간힘을 쓰던 시점엔, 이미 미국은 신형 전투기들을 대거 양산, 태평양 전역에 본격적으로 투입하기 시작하였다. 전쟁 초반 몇 대 없던 육군항공대의 P-38 라이트닝들도 이미 과달카날 전투 후반부엔 헨더슨 비행장에 배치되기 시작하며, 이어서 F4U 콜세어, F6F 헬캣이 해병대와 항모기동부대의 와일드캣을 교체한다. 태평양 전쟁 말에 이르러서는 유럽 전선에서 Bf 109의 카운터로 활약한 육군항공대의 P-51 머스탱마저 태평양 전역에 투입되기에 이른다.
여전히 제로센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던 일본 해군항공대 전투기 세력은 삽시간에 몰락했고, 베티보다 더 높이 날 수 있으며, 훨씬 고속 성능을 가진 기체들의 등장으로 인해 결국 제로센과 함께 야라레메카로 전락했다.
애초에 베티는 방어력이 우수한 게 아니라 높은 상승 고도와 기동성에 긴 항속거리를 더해 적기가 쫓을 수 없어 활약할 수 있던 기체이지만, 그 장점 세 가지 중 두 가지가 의미없어진 것이다. 거기에 만만찮은 항속거리까지 지닌 P-38 라이트닝에 의해 이루어진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거 작전은 전쟁 후반기 G4M의 신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G4M3이 등장한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프로토타입이 1944년 10월이라는 매우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후 공습이나 1944년의 쇼와 도난카이 지진의 영향으로 앞서 언급한대로 91여대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그러니 실전에 거의 투입되지도 못하고 수량도 극히 적어서 대다수의 육상공격기대는 기존 기체인 방어력이 없다시피한 G4M1이나 G4M2에 탑승해야 하니 말 그대로 답이 없었다.
결국 태평양 전쟁 후반부에는 카미카제 공격에 투입되거나, 유인 자살폭탄으로 유명한 MXY-7 오카를 견인해주기 위해 투입되기도 하였으며, 개조를 하여 B-29를 요격하기 위한 요격작전에도 투입이 되었다. 그래봤자 전쟁 전에 개발된 기체를 큰 개조없이 주욱 쓰고 있었으니 될 리가… 제로기보다 피탄면적이 훨씬 넓고 방어력은 더 떨어지며 훨씬 느린 G4M으로 반자이 어택을 하려는 것은 당시 미군의 방공망을 고려했을 때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 미군의 방공망은 일단 전투기 세력부터 차원이 다른데, 근접 화력을 담당하는 대공포 쪽은 특히... 후반기에는 대공포탄에 VT 신관까지 집어넣어서 탄막수준으로 갈겨댔으니... 별의 별 기체들을 총동원해야 했던 일본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짓이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엄청난 손실을 입고도 목적까지 달성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우니 기체가 아까울 지경이었다.
전후, 일본에서는 퇴역했지만 인도네시아는 일본이 버리고 간 기체를 입수하여 1949년까지 운용하였다. 그런데 네덜란드와 독립 문제로 다투면서 다 깨먹었다고 한다.
6.5. 평가
제로센과 같은 운명을 지닌 군용기다. 철저히 공격성능 위주로 설계되어 다른 여러 것을 희생할 수 밖에 없었으니, 그렇기에 우수한 공격성능과 그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약점을 보이면서 전쟁 초부터 전쟁 말기까지 쭉 하늘을 날아다닌 군용기인 것이다.단점만 있는 물건은 아니다. 연합국과 추축국을 통틀어 탑클래스에 들어가는 폭장시에도 2,500km, 정찰시에는 6,060km의 항속거리는[5] 그 자체만으로도 전략적인 가치가 상당한 것이었다. 여기에 능숙한 승무원이 있으면 상황에 따라서는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그래서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가끔씩이나마 단독이나 소수로 갑자기 습격하는 베티를 막기 위해 미군이 신경을 쓰긴 했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쌍발 폭격기로 4발 중폭격기 + 뇌격기 + 다용도기를 모두 대신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과 함께 그들이 상대한 것은 물량과 질에서 압도적인 미국이었던 것이다.
7. 여담
- G4M은 후계기가 아예 없다. G5N, G8N 등이 있기는 하지만 G4M과 4발 중폭격기인 저 둘은 체급도 역할도 다르다. 그리고 제작한 회사도 다르다. 보조할 육상전투기도 있고 개량도 나름대로 착실히 진행된 A6M과 후계기가 개발되기는 한 D3A, B5N보다 상황이 더욱 나쁘다.
- 사실 후계기가 될 뻔한 기체가 있다. 바로 2식대정(二式大艇)으로 불리는 H8K다. 해당 비행정은 4발의 엔진을 가지고 있으며 기체 구조강도도 높고 튼튼한 편이다. 제작사인 카와니시가 해당 비행정의 육상비행장용 파생형을 설계하고 일본 해군에 제안한 바 있으나 관심을 받지 못해서 계획을 접은 사실이 있을 정도였다.
G5N이나 G8N과는 달리 이미 설계가 완성되었고 개조도 쉬운데다가 사업진행시 문제점도 없어서 계획이 묻힌게 안타까울 정도다. 만약 후계기라 부를 만한 G4M과 가장 유사한 쌍발 폭격기라면 육군의 Ki-67 히류가 있고 해군은 요코스카 해군공창의 P1Y 긴가가 있는데 그중에서는 Ki-67을 좀 더 진정한 후계기로 보는 경우가 많다. 제작사도 미쓰비시로 같으며 Ki-67 설계시 G4M에서 얻은 노하우가 많이 사용되었다.
- G4M을 타고 종전까지 살아남은 베테랑 파일럿 '타카하시 쥰'의 인터뷰 링크
8. 미디어에서의 등장
- 워 썬더에서 G4M1이 일본 해군 중형폭격기로 등장한다. 2랭크에 BR은 3.0이다. 쌍발 폭격기답지 않게 뛰어난 운동 성능이 돋보이지만 기본적으로 폭장량이 부족한데다(미니베이스 하나도 한 번에는 못 부순다) 방어력이 약해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긴 항속거리는 이 게임에서는 의미가 없다. 방어무장이 애매하며 A6M 계열기들[6]과는 달리 한번 불이 붙으면 절대 꺼지지 않는 매우 심각한 단점이 있다. 또한 어느 정도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급선회를 할시 허약한 몸체 탓에 항력을 이기지못하고 날개가 부러진다. 맷집만 놓고 보면 전 단계의 Ki-21과 H8K보다도 떨어진다.
오카도 나왔어야 하는데
-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 에서는 오카를 장착한 프리미엄 폭격기 버전과 추축군 중형폭격기 20레벨 기체로 등장한다. 프리미엄 버전 항공기는 정규트리 기체에 비해 도색이 훨씬 더 화려하고 기체 디자인도 후기형 G4M을 모델링 하였다. 하지만 둘다 비행성능은 별로 안좋기에 초보자들이 정규트리 기체만 조금 탑승할뿐 공방에서 거의 안보인다.
-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서 일본 폭격기로 등장한다. 특이한 점으로는 오카를 적재한 사양도 나온다는 것.
1식 육공 | 22형甲 | 34형 | 노나카대 |
- 함대 컬렉션에서 1식 육공, 22형甲, 34형과 노나카대가 구현되어 있다. 함대 컬렉션/육상기 항목 참조.
- 툼 레이더(2018)에서 잔해가 등장한다. 트리니티로부터 탈출하다가 강에 빠져 폭포 아래로 떨어질 뻔한 라라 크로프트가 잔해의 날개를 잡는다. 이후 부서지는 날개에서 가까스로 동체로 들어가나 이내 동체도 무너진다. 무너지는 동안 라라는 손에 묶인 밧줄을 잘라 포박을 푼 후 잔해에 있던 낙하산을 가까스럽게 잡아, 큰 부상은 입었지만 무사히 내려온다. 이외에 후소급 전함도 잔해로 등장한다.
- 모바일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Gunship Sequel WW2에 일본 육군항공대 전투기로 등장한다.
- 월드 오브 워플레인에서 일본의 7티어 프리미엄 폭격기로 등장한다.
9. 모형화
G4M은 A6M만은 못하지만 일본 제국 항공기 중 모형화가 잘 이루어진 편이다. 다양한 제조사에서 다양한 스케일로 모형이 출시되어 있다. 중형 폭격기치고 크기가 크고 일제의 상승세를 상징하는 항공기 중 하나라 인기가 많은 편이다.- 1/23
- 유레카 하비
42.5인치 크기의 대형 제품으로, 1956년 출시된 제품이다.
- 1/48
- 타미야 모형
1996년 출시된 제품으로, G4M 모형 중 가장 평가가 좋은 축에 든다. 계기판 에칭과 레진 휠, 메탈 랜딩기어 등 전용 디테일 업 파츠들도 가장 다양하다. 이후 2011년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마지막 비행을 묘사한 버전이 출시되었다. 야마모토와 정비병을 포함해 17기의 피규어가 동봉되어 있다. 기본형과 야마모토 버전 모두 반조립 버전으로도 출시되었다.
- 1/72
- 린드버그
1967년 제품이다. - 하세가와
1969년 금형과 1996년 금형이 있다. 전통의 에어로 명가답게 바리에이션이 아주 다양하다.
- 1/144
- 1/150
- 산쿄
1962년 제품이다.
- 1/350
- 피트로드
2008년 완성품으로 발매하였다. G4M 2대와 A6M 1대가 포함된 합본과 G4M 1대, G3M 1대가 포함된 합본이 있다. - 1/700
- 타미야 모형
말레이 해전 한정판으로 워터라인 시리즈 라인업의 프린스 오브 웨일스, 리펄스, E급 구축함 2척과 V급 구축함 1척, G3M을 동봉하여 발매했다. 전시용 스탠드도 들어 있다.
- 논 스케일
- 오타키
1963년 제품이다.
[1] 카세이 15형 엔진 사용기[2] 라고 하지만 항속거리(일본군 항공기들이 무리할 정도로 집착한 점이다. 여기에 집착하다 문제가 된 항공기가 G4M말고도 그 유명한 A6M이다)를 제외한 폭장량은 1톤대인데 이건 일본군 기준에서나 좋은거지 G3M이나 G4M이나 실제 폭장량은 다른 나라들 기준으로는 경폭격기 급이다. 같은 추축국인 독일의 가느다란 생김새에다가 더해서 하도 허약해 날으는 연필이라 불리던 쌍발 경폭격기(처음에 독일군은 중폭격기로 분류헀지만) Do 17이 딱 1톤대의 폭장량이다.[3] 여압이 되는 덕분에 외부 공기 유입이 되지 않아 찬바람이 쌩쌩 들어오는 추운 기내에서 방한복 입고 버티던 B-17이나 B-25와는 달리 방어기총도 원격으로 조종하고 방한복을 덧대입을 필요 없이 간단하게 일본으로 폭탄 배달하고 다녔다. 이걸 보고 일본은 '미국은 돈도 없어 방한복도 제대로 지급 못 한다!'(...)라고 프로파간다를 했다. 다들 알듯이 정작 보급도 제대로 못한 건 일본이지만.[4] 아래에 겹쳐 보이는 비행기가 오카처럼 보이지만 다른 베티다.[5] 영국의 아브로 랭커스터의 항속거리가 4,000km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며 B-17은 3,300km 수준이다. 독일의 He 177은 항속거리가 5,600km에 폭장량과 속도도 우수하지만 신뢰성 문제가 있고 이탈리아의 P.108은 항속거리는 3,500km 정도밖에 안 되는데다 폭탄창 설계에 문제가 있고 생산량이 부족하다. 이보다 항속거리가 길면서도 성능상 문제가 없는 기체는 B-24나 B-29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둘리틀 특공대가 일본 본토를 때릴 당시 선정된 폭격기도 항공모함에서 발함이 가능하면서 폭장량도 좀 된다는 이유로 중형 폭격기인 B-25를 선정했다.[6] 자동방루가 없어서 연료에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전부 빠져나가 불이 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