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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3-14 14:47:28

잃어버린 10년/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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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잃어버린 10년(1998년 ~ 2008년)
1.1. 개요와 배경1.2. 분석
1.2.1. 부동산 관련 논쟁1.2.2. 등록금 관련 논쟁
1.3. 이명박 정부 시기의 평가1.4. 박근혜 정부 시기 이후의 평가
2. 비교 참조 문서
2.1. 관련 문서
3. 그 외의 사례
3.1. LG 트윈스6668587667 (2003년 ~ 2012년) 3.2. 한화 이글스5886899678(2008년~2017년)3.3. 서울시의 잃어버린 10년 (2002년 6월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2011년 11월)3.4. 보수정부 9년을 뜻하는 말(2008년 ~ 2017년)3.5. 조선,대한제국의 잃어버린 10년(1894년 ~ 1904년)
3.5.1. 관련 문서

1. 잃어버린 10년(1998년 ~ 2008년)

1.1. 개요와 배경

대한민국에서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이 1998년~2008년의 민주당계 정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집권 기간을 언급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던 표현. 잃어버린 10년/일본에서 유래된 표현(失われた10年, 우시나와레타 쥬넨)이다. 일본에선 순수하게 경제 불황을 의미하는 말로 쓰지만 한국에서는 정치적 용어에 가까운 점이 차이점이다.

2007년 17대 대선 기간에 자주 쓰였고, 이후 민주당 측에서는 "되찾은 10년이다"라는 반박이 나왔다. 민주당 계열로서는 1997년 외환 위기의 책임과 그 이후 후유증의 원죄는 1997년까지의 한나라당 정부[1]였으니, 억울할 법도 하다.

선거 전략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2006년에 치루어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한나라당은 이 전략을 이용하여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을 상대로 충공깽급 완승을 거두었다. 득표율로도 매번 2배 이상 격차가 났으니...

당시에는 어디까지나 경제가 논쟁의 중심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지난 10년은 경제대란, 집값대란, 실업대란, 교육대란, 안보대란, 헌법 대란의 육란의 시대라고 주장했는데 #, 이 중 절반이 경제 관련 이슈였다. 오죽하면 XX하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요지는 김대중은 신용카드 대란으로, 노무현은 부동산으로 경제를 박살냈다는 것. 하지만 신용카드 대란과 부동산은 경제위기 당시 IMF를 비롯한 국제지원기구에서 돈을 빌리고 지원을 받을 때 조건으로 내세운(당시 유력후보 세 명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모두에게 당선 시 이행하겠다는 서명을 미리받았다!) 신자유주의화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존재한다. 신용카드대란은 그나마 실제로는 2005년 신용불량자 등록제도를 없애는 것으로 막았다지만, 이는 용어를 바꾼 것에 불과한 눈가리고 아웅식의 정책이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어차피 금융기관에 등록이 다 되는데 의미가 없다. 실제 목적은 신용불량자 통계를 내지 않는 것이라는 것. 하지만 부동산은 당시 여당 주역들도 실패했다고 인정하는 등, 변명의 여지가 없다. #

곁다리이긴 하지만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대북지원 역시 논쟁 중 하나였다. 2007년 당시 보수 및 군 측에서 이종구 전 국방부 장관의 북핵, 안보관련 비판이 있었고 #, 언론에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대북 지원금만 부각시키면서 비판 여론을 더욱 부추긴 것도 있다. 2010년 대북송금 자료를 공개한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13억 4,500만 달러(1조 5천 5백억), 노무현 정부 14억 1000만 달러(1조 6천 2백억), 이명박 정부는 임기 절반인 2010년 6월까지 7억 6천 5백만 달러(8천 8백억 원)라고 밝혔다.# 이 자료를 놓고 보자면 2008년 8월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경색되었음에도, 경색되기 전보다도 돈을 더 많이 쓴 셈이다. 이와는 반대로 2017년 4월에 통일부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각 정부별 현물과 현금을 합친 대북송금액은 △김영삼 정부 12억2027만달러 △김대중 정부 24억7065만달러 △노무현 정부 43억5632만달러 △이명박 정부 19억7645만달러 △박근혜 정부 3억3727만달러로 나타났다.#[2]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순수 교역금액(일반교역+위탁가공)에 일정비율을 적용한 것으로 보여 모두 다른 기준으로 집계된 수치라 정부 간 비교가 적절치 않다. 2000년대 중반 정도까지는 대북화해정책이 시대적 명분도 있었고 대체적으로는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시행되었다고 보는 게 맞는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대북여론이 서서히 악화되기 시작하긴 했으나 이듬해 남북정상회담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크게 오른 것을 생각하면 이 당시까지만 해도 햇볕정책이나 대북 유화책에 대한 반발은 적었다. 이후 2010년 천안함,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대북 여론이 완전히 뒤집히면서 이 시기 대북 정책에 대한 평가가 크게 악화되었다. 즉 잃어버린 10년 관련 논쟁이 있었던 2007년 당시에는 안보는 둘째가는 이슈였고 경제가 중점이었다는 것.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주장에 대해 청와대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우리는 지난 10년은 환란 극복과 재도약의 10년이라고 본다"며 "10년 전의 IMF 환란은 길게는 50년, 짧게는 20년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의 정책 결과로 빚어진 일"이라며 한나라당에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

1.2. 분석[3]

국제통화기금 통계: 대한민국의 경제지표 추이(1988년 ~ 1997년)
연도 공화당계 정권: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 보수주의 정권: 신한국당
1988 1989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경제성장률 추이[4] 11.7% 6.8% 9.3% 9.7% 5.8% 6.3% 8.8% 8.9% 7.2% 5.8%
경상수지 추이[5] 13.055 4.155 -2.404 -7.605 -2.432 2.026 -4.464 -9.752 -23.831 -10.285
1인당 명목 GDP 추이[6] 4,813 5,860 6,642 7,675 8,140 8,869 10,275 12,403 13,254 12,196
IMF 통계: 대한민국의 경제지표 추이(1998년 ~ 2014년)[7]
연도 민주당계 정권: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보수주의 정권: 한나라당/새누리당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경제성장률 추이 -5.7% 10.7% 8.8% 4.5% 7.4% 2.9% 4.9% 3.9% 5.2% 5.5% 2.8% 0.7% 6.5% 3.7% 2.3% 2.9% 3.3%
경상수지 추이[8] 40.057 21.608 10.444 2.700 4.693 11.877 29.743 12.655 3.569 11.795 3.190 33.593 28.850 18.656 50.835 79.884 84.193
1인당 명목 GDP 추이[9] 8,133 10,432 11,947 11,255 12,788 14,219 15,921 18,657 20,917 23,101 20,474 18,338 22,151 24,156 24,454 25,975 28,738
경상수지 단위: 10억 달러/경제성장률 단위: %/1인당 명목 GDP 단위: 달러
사실 대외 지표는 전혀 나쁘지 않았다. 1인당 GDP1997년 외환 위기 직후의 7,400달러에서 2006년 기준 2만 달러로 약 3배 올랐고. 종합주가지수(코스피 지수)는 1998년 277에서 2007년 2064.85로 약 7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다만. IMF 때 워낙 많이 경제지표가 박살나서 회복하는 동안 각종 경제지표가 상대적으로 크게 상승한 것으로 집계되는 점은 있다. 예를 들어 코스피는 IMF 이전 김영삼 정부 시절 700~1000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2~3배 상승이다. 물가 상승률은 10년 평균 3.1%로 역대 최저였다.

경제성장률에 관해서는 대한민국이 아직 개발도상국일 때라 고속 성장 했던 전두환-노태우 시절보다는 못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IMF 이후 복구하느라 바닥을 찍은 경제를 원상복구하다 보니 정권 초기 경제성장률이 높게 나타난다. 노무현 정부도 2003년 경제성장률이 낮지만 2002년 월드컵 특수로 반짝 성장한 것의 반작용일 뿐 연평균 성장률을 내면 나쁘지 않다. 특히 이때는 STX 문서에서도 나왔듯이 한국의 주력 산업이었던 조선업, 철강업, 해운업 관련해서 슈퍼사이클 대호황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이후 세계금융위기가 상태에서 정권을 이어받은 이명박 정부 초기에 성장률이 낮게 나온다.

1997년 외환 위기 극복에 더해 대한민국 역사상 최장(연도별로 따지면) 무역흑자 기록을 냈다. 전 세계적 호황이었던 1980년대 중후반~1990년대 초, 즉 대한민국 제5공화국부터 문민정부(김영삼 정부)까지도 삼저호황[10]으로 잠깐 동안 흑자를 낸 것을 제외하고 오히려 적자를 기록했다는 걸 감안한다면 비교 열위라 말하기는 힘들다.
OECD 통계: 대한민국의 양극화 추이(1988년 ~ 1997년)
연도 공화당계 정권: 신민주공화당/3당 합당 보수주의 정권: 신한국당
1988 1989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소득 5분위 배율(Decile 5/Decile 1) 1.84 1.85 1.83 1.84 1.86 1.92 1.91 1.90 1.90 1.93
소득 9분위 배율(Decile 9/Decile 1) 4.12 3.96 3.86 3.84 3.61 3.72 3.59 3.62 3.75 3.72
저임금고용 비중 21.96% 21.58% 21.28% 21.77% 22.35% 23.13% 22.55% 22.26% 22.64% 22.88%
OECD 통계: 대한민국의 양극화 추이(1998년 ~ 2012년)
연도 민주당계 정권 보수주의 정권: 한나라당, 새누리당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소득 5분위 배율(Decile 5/Decile 1) 1.96 1.95 2.02 2.01 2.02 2.03 2.02 2.05 2.05 2.09 2.08 2.09 2.09 2.08 2.06
소득 9분위 배율(Decile 9/Decile 1) 3.83 3.83 4.04 4.09 4.19 4.32 4.40 4.48 4.56 4.74 4.78 4.69 4.72 4.85 4.71
저임금고용 비중 23.14% 23.41% 24.58% 24.24% 24.48% 24.27% 24.20% 25.37% 24.46% 25.57% 25.37% 25.68% 25.88% 25.150% 25.20%
소득 5분위 배율(Decile 5/Decile 1), 소득 9분위 배율(Decile 9/Decile 1)은 수치가 높을수록 불평등하며 양극화가 심하고 낮을 수록 평등한 국가이다.
민주개혁세력이 지난 10년간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뤄냈을지 모르겠으나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서는 무능했다고 생각한다
- 김근태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의 발언 #
이 시기 진짜 문제점은 IMF, 그리고 그에 따른 시장지향적 구조조정 등에 따른 내수 부진[11]양극화로 인한 상대적인 빈곤이었다. 즉 뉴스에서 증시가 상승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몇 달러를 돌파했다고 해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하는 모순의 시작이다. 국가경제 전체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정작 중산층과 서민에게 돌아오는 게 적었다는 것. 고도성장기에서 안정성장기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IMF사태를 벗어나면서 경제구조가 바뀌는데 국가 정책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대기업과 고소득 샐러리맨들의 생산성과 삶의 질은 크게 뛰었지만, 중소기업자영업자의 생산성과 삷의 질은 거기에 따라가지 못했다. 도리어 정리해고비정규직으로 질 나쁜 일자리만 대거 양산되었다. 2007년 당시 비정규직 수는 870만 명에 55.8%의 비율을 찍었다. 이는 정권이 바뀌면서 차츰 개선되어 2014년 기준 823만 명 44.7%로 줄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들이 상대적 상실감을 느꼈고, 그러다보니 4%대의 높은 경제 성장률도[12] 8% 이상의 경제성장을 경험한 세대한테는 불만족스럽게 비친 것이었다. 한국은 이미 1995년, 즉 IMF 사태가 터지기 몇 년 전부터 고소득국가로 분류 되었다(출처 : 세계은행). IMF 사태가 터지고 제외되었다가 2001년 다시 고소득국가로 다시 분류되었다. IMF에서는 1997년부터 한국을 경제적인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사회적, 정치적, 교육적인 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13] 한국인들의 인식과 다르게 경제적으로는 한국은 꽤 일찍이 개발도상국 딱지를 떼었다.

즉 거시지표상으로는 양호했으나, 이 당시 경제호황은 실제 대기업, 고소득 샐러리맨이 아닌 이상 국민들이 체감하기 힘들었고, 당시 국민들은 한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한 걸 인식하지 못했으며, 군부정권 시절 높은 수치의 경제성장률과 IMF 이전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었다. 또 선진국은 모든 면에서 유토피아라는 소위 선진국 컴플렉스가 강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져 한나라당으로의 정권 교체가 일어난다.

다만 참여정부의 거시적인 성장을 통해 얻은 역대 최대 외환 보유고를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상황에서 한국이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한 측면도 있다.

1.2.1. 부동산 관련 논쟁

부동산 관련해서는 친노 진영에선 참여정부가 그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 매체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던 부동산 규제정책 덕에 일본과 같은 부동산 버블이 생기지 않아 타격을 덜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거품 붕괴 당시인 1990년 도쿄의 PIR이 8.5였던 것에 비해 2007년 서울의 PIR은 12.6을 찍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부동산 버블이 일본보다 더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타격을 덜 받은 이유는 그 부채를 국민이 직접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지 버블의 규모가 작아서가 아니다라고 반론한다.
파일:tECHq5h.jpg파일:07WpCwK.jpg[14]
이 때문에 참여정부 시절의 부채 상승량과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부채 증가량을 이야기하면서 도대체 잃어버린 10년에 참여정부가 들어가는 것이 무엇을 잃었던 것이냐고 항변하는 입장도 있다. 특히 일반 가계의 부채 증가 수준이 위험을 넘어서서 이젠 터지면 회복할 방법마저 없을지 모른다고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가계 부채에 관해선 참여정부 시절의 가계 부채 증가량과 증가율이 가장 높아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2003년 472조 6천억이었던 가계 부채가 2008년 724조 7천억으로, 252조 1천억 원(53%)이나 늘었다. 이명박 정권 때도 가계 부채가 늘긴 했지만 724조 7천억에서 2013년 961조 6천억으로 236조 9천억(32%)이 늘어서 참여정부 때보다 증가량과 증가율이 다소 줄었다.

당시 야당과 언론 측이 9억 이상 부동산을 소유한 갑부에게만 부과되는 종부세를 가지고 서민세금폭탄이라며 왜곡한 것은 분명 도를 넘은 왜곡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정책실패를 종부세라는 형식으로만 변명하기는 힘들었으며 게다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효과도 없었다.

1.2.2. 등록금 관련 논쟁

파일:external/img.newdaily.co.kr/art_1306194055.jpg

이때 대학 등록금이 가장 빠르게 상승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가장 등록금이 빠르게 올랐던 건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이다.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게 그 당시 사립대학교 등록금 자율화가 이루어졌으며, 국공립이 그 이후에 오른 건 국공립대학교 등록금 자율화가 그 이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15] 또 대학설립 요건이 낮아지면서 대학들이 엄청 많이 생긴 것도 한몫 한다. 다만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은 대학 진학율 자체가 낮아# (평균 30~40%대 수준이고 김영삼 정부 중후반 부터 급격히 대학 수가 많아지면서 늘어난다.) 대학 진학이 아닌 고졸 취업도 하나의 선택이었던 반면,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대학 진학율이 70~80% 수준이라 대다수가 대학에 가는 상황에서 등록금이 올랐기에 불만이 더 컸다. 또, 등록금의 절대적인 금액 자체가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 낮았으며, 경제성장률도 IMF 이전에는 훨씬 높았다. 또 노무현 정부때는 정부가 나서서 등록금 인상을 부채질했다는 점도 문제였다. 당시 국공립대 등록금이 57.1%가 인상되는 동안 사립대는 35.4%밖에 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국공립대 등록금을 사립대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 친노 진영에선 한나라당이 사학법 개정 관련해서 제동을 걸어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항변하나, 사학법과 등록금인상은 관계가 없다. 실제로 참여정부가 개정했던 사학법하에서 가장 높은 등록금인상률을 보였다. 이후 등록금 문제는 이명박정부 시절 국공립대 4.2% 사립대 4.3%대의 등록금인상으로 잦아들어 해결된다.

1.3. 이명박 정부 시기의 평가

MB 정부의 집권 이후부턴 이 표현을 그다지 쓰지 않는 듯. 아마도 10여 년 전의 영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인 듯하다. IMF 외환 위기의 책임이 당시 집권당인 한나라당 계열보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2008년) 계열에 더 있다고 할 수는 없을 테니 사실상 한나라당의 자충수라 봐도 될 듯.

MB 정부는 미국발 경제위기 탓에 고통 받았으나 참여 정부의 대표적 실책으로 꼽히는 부동산 과열을 줄이는데 성공하였다. 양극화 또한 자료 수치상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개선되었다.[16] 2003년 0.292였던 지니계수는 2008년 0.314로 최고점를 찍고 2013년 0.302로 완화되는 추세다.[17]부동산 또한 2008년을 정점으로 참여정부 때 쌓인 거품이 덕지덕지 껴 있지만 안정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대규모 토목정책의 슬로건이자 주요 목표로 제시하였던 경기부양이나 소비심리 상승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제는 이 용어를 만들어낸 당사자들에게 있어서도 아킬레스건이 된 셈이다.

다만 MB 정부에서는 참여 정부의 부동상 정책의 실책을 잡는다고 한 것은 좋았는데 이후 MB 정부에선 부동산이 과열에서 진정되는 적정 단계를 넘어서[18] 아예 침체 수준 까지 간 것이 문제였다.[19][20] MB 정부에서도 이번에는 침체되는 부동산 경기를 다시 살리기 위해 다양한 거래 활성화 대책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담보인정비율(LTV)만 남겨 놓고 규제 철폐 수준으로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적극 모색했지만 결국 꺼져가는 부동산 시장의 온기를 끝끝내 되살리지 못하고 차기 정부(박근혜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로 넘겨주고 말았다.[21]

1.4. 박근혜 정부 시기 이후의 평가

사상 최악으로 평가받고 끝난 박근혜 정권 시점 이후에는, 과거 보수 측에서 주장했던 잃어버린 10년이란 단어의 당위성에 대해 다들 조롱하고 비웃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심지어 해당 비판에 대해 당시에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던 진보측조차도 9년이 지난 후로는 오히려 해당 단어가 언급되는 순간 "그래서 이명박근혜는?"이라는 조롱을 퍼부을 정도.

보수 연임 정권의 평가를 긍정적으로 해봐도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대책없이 좌/우를 막론하고 휩쓸렸다는 평가가 고작일 정도다. 게다가 잃어버린 10년을 언급하며 자신들은 다르며 경제를 확실하게 책임지겠다고 자신만만했던 보수/여당 측의 호언장담과 달리 2017년 대한민국의 상황이란 평가표를 볼 때 과연 잘 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 전방위에서 쏟아지고 있는 중이다.

결국 이러한 보수 정권의 연임에도 경제는 오히려 더더욱 사정이 나빠졌고 결국 박근혜 정부 집권기 동안 대한민국 경제를 상당부분 책임졌던 조선업의 몰락이라는 악재가 발생했다. "식당에 밥 숟가락만 놓으면 매출이 올라갔다. "가게만 열면 옷들이 날개 달린 듯 팔렸다.", "전국의 소매치기꽃뱀들이 거제로 몰렸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크게 호황이었던 거제시가 '고용위기지역' 지정 요청까지 하게 되었으며, 2017년 2월 2일 한진해운은 결국 파산 절차에 들어갔으며 2월 17일 법원에서 파산이 확정되면서 1977년 설립 이후 40년의 역사를 마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근혜 정부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하여 탄핵되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4년으로 끝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가뜩이나 이명박 정권조차도 경기부양이 제대로 되지 않고 과거 정권부터 불거진 경기불황, 가중되는 실업, 양극화에 대해 해결을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와중에 후임 정권 문재인 정부 이후 박근혜 정권은 사상 최악의 정권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판을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받게 되면서 대실패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러 평가들을 통해 결국 보수/여당 측도 과거 자신들이 9년 전에 하였던 것과 똑같이 경제 불황과 그에 비롯된 무능하다는 비판에 시달리는 중이다. 게다가 잃어버린 10년을 언급하며 자신들은 잘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것조차도 부메랑이 되어서, 혹독한 비판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핵으로 대표되는 북풍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권 교체로 이어지고 말았다.

결국 이에 대하여 반대 명칭으로 '잃어버린 9년'이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으며 이는 3.4 문단 및 이명박근혜 문서에서 설명하고 있다.

자유한국당나경원 의원이 나중에는 문재인 정부는 '잃어버린 2년 반'이라며 다시 '잃어버린 XX년' 용어를 썼다.기사

2. 비교 참조 문서

2.1. 관련 문서

3. 그 외의 사례

3.1. LG 트윈스6668587667 (2003년 ~ 2012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6668587667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한국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를 달성하면서 구단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잃어버린 10년이 되었으나 2013년에 청산했다.

3.2. 한화 이글스5886899678(2008년~2017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5886899678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08년 올림픽 브레이크가 시초가 되었다.

3.3. 서울시의 잃어버린 10년 (2002년 6월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2011년 11월)

한나라당이 만들어 낸 구호를 오히려 반대 진영에서 역이용한 예. 결국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서울특별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정말로 한나라당의 서울 시정은 10년(9년 5개월) 만에 끝나고 말았다.[22]

3.4. 보수정부 9년을 뜻하는 말(2008년 ~ 2017년)

과거 한나라당 측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합쳐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며 진보 측 정권의 연임은 대한민국에게 있어서 잃어버린 10년의 세월이었다고 발언했었다. 이후 보수 측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연임을 하면서도 경제 성장이 신통치 않다는 의견과 주장이 반대측에게서 또 다시 제기되면서 생겨난 용어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면서 잃어버린 9년이 정확한 명칭이 되었다.

잃어버린 10년이 과거 보수 정당에 의해 적극적으로 활용된 반면 잃어버린 9년이란 단어는 야권 정당들에 의해 별로 활용되고 있지는 않아서 그런지 크게 유명한 단어는 아니다. 잃어버린 9년이라는 표현도 사실 과거 보수 측의 잃어버린 10년이란 단어로 크게 데인 야권측에서 이후 자신들을 비판하며 정당성을 역설해 연이어 집권했음에도 마찬가지로 경제가 신통치 않은 보수를 비꼬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주로 이용되는 북풍이란 단어와 이에 반발하여 사용되는 마이너 단어인 역북풍이라는 단어가 있다.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잃어버린 11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정확히는 2007 남북정상회담 이후 11년 동안 남북 정상간 교류가 없었다는 것을 나타낸 말이지만 이 11년 사이에 보수정권 9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일맥상통한 의미로 해석된다.

상세한 사항은 같은 맥락을 가지고 훨씬 더 많이 쓰이는 단어인 이명박근혜를 참조할 것. 실제로 잃어버린 9년과 이명박근혜 둘 다 우익정권 연임 시기인 9년 동안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3.5. 조선,대한제국의 잃어버린 10년(1894년 ~ 1904년)

한국근대사 연구에서 간혹 쓰이는 용어. 주로 구미 연구자들이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이 시대 조선(대한제국)의 자주독립 기회 상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구체적으로는 대한 제국이 태국나, 에티오피아처럼 청일전쟁에서 러일전쟁에 이르는 동안 조선이 독립국으로서 생존할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끝내 최악의 결과인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를 당한 것을 가리킨다. 만화가 박시백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도 20권 망국편에서 이 표현을 제목으로 차용한 시기도 이 시기다.

그외에 열강 중 어느 나라도 조선에 대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던,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났던 1884년부터 1894년까지도 굉장히 아까운 시간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선 이쪽이 더 적절한게, 이쪽은 현재 한국사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 갑신정변 다음 장이 바로 동학농민운동갑오개혁. 그만큼 그다지 한 일이 없었다. 다만 거문도 사건 이후 유길준, 부들러 등에 의해 조선 중립화론이 대두된 것이 바로 이 때이다.

오늘날에는 잘 쓰이지 않는데, 워낙 이 시기에 대한 학문적 논쟁이 치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3.5.1. 관련 문서



[1] 한나라당의 전신이 신한국당이었다.[2] 이와는 별개로 인터넷 상에 떠도는 김영삼 정부, 이명박 정부 송금액이 과대 평가된 자료는 김영삼 정부는 국제기구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결정한 경수로건설 총사업비의 한국부담금 전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집행액은 다르다. 또 이명박 정부는 순수 교역금액 전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3] OECD 통계: 대한민국의 양극화 추이 근거 자료[4]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 추이 1988~1997[5] 대한민국의 경상수지 추이 1988~1997[6] 1인당 명목 gdp 추이 1988~1997[7] 1998 ~ 2014 경제성장률 추이[8] 대한민국의 경상수지 추이 1998~2014[9] 1인당 명목 gdp 추이 1998~2014[10] 1986년부터 1989년까지의 저유가/저금리/저환율의 호황을 말한다.[11] 내수의 전체적인 크기 자체는 이전보다 늘었지만.. 경제성장의 기여도가 순수출이 늘어난 반면, 소비나 투자는 그에 비해 부진했다.[12] 당시 한국과 비슷한 규모의 국가 또 그 규모일 때의 선진국들은 평균 2.3%에 불과했다.[13] UN에서 발표하는 인간 개발 지수(HDI)를 보면 이미 2005년 선진국 기준으로 볼수 있는 42위 안에 들어 한국은 이미 선진국으로 분류되었다. 다만 HDI는 오늘날에도 말이 많아서 그냥 참고만 하자.[14] http://www.koreatimes.co.kr/www/news/biz/2014/03/488_152631.html[15] 정리하자면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사립대학교 등록금 자율화 → 노태우-문민정부 때 사립대학교 등록금 폭등 → 그 이후 사학법 개정이 논의 → 2002년 김대중 말 재정적 부담 때문에 국공립대학교도 등록금 자율화 →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한 경제 침체로 등록금 안정 → 참여정부가 사학법 개정안을 준비 → 경제가 회복하면서 자율화되었던 국공립대학교 등록금 폭등 → 여야가 합의한 사학법 통과 →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경제 침체로 등록금 안정.[16] 하지만 MB 정부에서 실질적으로 양극화가 개선되었는가에 대해 논란이 분분한데 한 경제연구원에서 분배 구조가 악화, 내수 기여도 부진, 국민 총소득, 낮은 지가율 등을 지적하는 등 양극화가 해결되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분석이 나오는 등 논란이 많다.(참고로 해당 경제연구원은 MB 정부의 분배 구조 악화, 청년 실업 해결의 부진함을 지적했지만 동시에 세계경제위기에서 MB정부가 잘 극복했다고 평가하였다.)[17] 다만 상당수의 경제연구원등에선 통계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통계 수치 외에 소득분배 구조, 중장년층과 청년층 세대 간의 취업의 격차 심화 등의 요소들을 지적하며 대한민국의 양극화가 실질적으로 개선되었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이였다.[18] 실제로 일부 지지자들은 MB 정부에서는 과거 정부의 부동산 과열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좀 지나쳤던 것 아닌가 하고 아쉬움을 토로한다.[19] 그 밖에도 정부의 시장 개입이 문제가 됐는데 부동산 정책 관련으로 MB 정부에서 추진했던 서민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보금자리주택이 바로 그것. 땅값이 거의 들지 않는 그린벨트를 일부 해제해 값싼 주택을 공급하면서 민간 아파트가 메리트를 상당히 상실하였고 그 여파로 부동산 가격은 더욱 침체되었다. 침체되는 낌새가 슬슬 보이던 부동산 시장이었는데 해당 정책은 이를 부채질을 하였다. 결국 부동산 시장(특히 도심과 거리가 먼 지역의 부동산들)은 직격탄을 맞았다.[20] 그러던 와중 여러 사정으로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여의치 않자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공급량을 늘리겠다고 밝혔었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이 이미 침체되어 버려서 강남과 같은 입지가 보장된 부동산이 아닌 이상 민간자본으로서는 당연히 들어가기를 꺼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강남의 위례 보금자리주택지구를 제외하곤 일부 신도시에선 건설사를 위시한 민간자본의 입찰등의 참여는 크게 저조하였다.[21] 결국 박근혜 정부에선 2014년 일부 지역의 공공주택지구 등에 대해 전면 해제 조치를 취해 이를 수습하고자 하였다.[22] 시의회 권력은 이미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에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