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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10 10:59:34

자체 심의

1. 개요
1.1. 우회
2. 예외3. 비판 시도4. 관련 문서

1. 개요

/Self-censorship

창작자가 창작할 때 스스로 수위를 정한 것.

세상에는 검열 말고도 창작을 제한하는 요소가 많다. 하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와 여론을 우려해서 적당히 타협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작가도 결국 보통 인간이어서 인간적으로 하거나 또는 흥행을 우려해서나 특정 단체의 압박이나 걱정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자체 심의는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으로, 인쇄업자가 읽고 불경하다면서 불태웠다.

에페보필리아처럼 여고생남고생성관계하고픈 욕망. 서양에서는 이런 걸 아동 포르노라며 금기시하기 때문에, 예술작품이나 2차원적으로 드러내도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물론 데이비드 해밀턴이나 유년의 사랑 같은 예술성 때문인지 예외이다.

그 외에도 후술하겠지만 특정한 인종, 국가, 지역 등에 대한 비하요소나 차별요소와 같이 정치적 올바름을 어기는 행위 역시 서양에서는 금기시되기 때문에, 이런 행위를 예술작품이나 2차원적으로 드러내도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걸 하는 사람을 응징하거나 죽게 만들거나, 악당으로 묘사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히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많이 나온다.

1.1. 우회

나오긴 하되 파멸한다. 또는 악당으로 묘사한다. 그러니까 알기쉽게 설명하자면 인종차별 시대에는 KKK가 영웅으로 묘사되었다. 현대 인종평등 시대에는 KKK가 악당이다 라고 할 수 있다.

2. 예외

3. 비판 시도

검열이란 정부 기관이나 영진위, 기윤실, 유림 따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검열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이미 존재하며, 자기 검열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검열이다. 글 쓰는 사람이 조건반사처럼 글을 쓰면서, 심지어 혼자 생각에 잠겨 있을 때조차 스스로의 글과 생각을 제한해야 한다면, 거기엔 실질적인 검열이 없더라도 언론 자유가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가령 불평은 있지만 검열 때문에 불평을 말할 수 없는 오웰의 『1984』보다 불평 자체를 느끼지도 못하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더 끔찍한 세계다.
1960년 9월 20일 김수영의 일기
자체 심의는 창작자가 다양한 사유로 인해서 스스로의 표현의 자유를 자발적으로 어느 정도 포기하는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추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자체 심의 역시 검열의 일환이라고 보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자체 심의라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인 김수영은 자기 검열이 가장 무서운 검열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적 올바름 관련 이슈가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영미권 등의 서양권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함으로서 발생되는 창작자 스스로에 의한 자체 심의가 지나치게 과도해진 끝에 오히려 정부에 의한 공식적인 차원의 검열 이상으로 지나친 검열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논란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정치적 올바름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국가일본[1]의 경우에는 '작가 3원칙'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자체 심의를 창작자들이 대놓고 무시해서 국제적인 논란을 초래하는 경우가 잦다. 이에 대해선 작가 3원칙 문서 및 극우 미디어물/일본 문서 등을 참고할 것.

또한 자체 심의에 대한 비판이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 또는 정치적 올바름을 과도하게 내세우며 창작자들이나 대중에게 자체 심의나 검열을 강요하는 SJW(PC충)에 대한 비판을 담기 위해서 일부러 의도적으로 자체 심의를 대놓고 무시하는 창작자들 역시 현대에는 생각보다 적지 않기도 하다. 이렇게 자체 심의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가지는 창작자들은 주로 현대 일본의 예술계에 많이 분포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치적 올바름 관련 이슈(특히 정치적 올바름을 과도하게 내세우는 SJW(PC충)가 일으키는 여러 사건사고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대 서양권의 예술계에서도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자체 심의라는 개념을 비판하는 창작자들은 사실상 세계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특히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체 심의를 대놓고 무시하는 행보를 보이게 된 창작자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지경.

또한 창작자만이 아니라 소비자에 의해서 자체 심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경우도 있다. 자체 심의라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나, 자체 심의와 연동되곤 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 창작자들이나 대중에게 자체 심의나 검열을 강요하는 SJW(PC충)에 대한 비판을 실시하는 소비자들은 세계 어디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정치적 올바름 관련 이슈로 골머리를 앓는 서양이나 정치적 올바름 자체를 무시하는 일본 등지는 물론이고, 당장 대한민국에서도 상기한 이유로 인해서 자체 심의라는 개념을 비판하는 소비자들은 흔하다.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추구하기 위해서 자체 심의를 대놓고 무시하는 행보를 보이는 창작자들이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세력으로서 존재할 수 있고 이들이 상업적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도 이렇게 자체 심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응원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기도 하다. 모름지기 공급은 수요에 따르는 법이니까.

사실 자기 검열이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다.

4. 관련 문서



[1]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정치적 올바름이란 개념 자체가 없는 국가에 가깝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극우혐한분자들에게 점령당한 일본어 위키백과니코니코 대백과의 사례를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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