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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자코모 푸치니 Giacomo Puccini | |
본명 (세례명) | 자코모 안토니오 도메니코 미켈레 세콘도 마리아 푸치니 Giacomo Antonio Domenico Michele Secondo Maria Puccini |
출생 | 1858년 12월 22일 |
토스카나 대공국 루카 (現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루카시) | |
사망 | 1924년 11월 29일 (향년 65세) |
벨기에 브뤼셀 | |
직업 | 작곡가 |
종교 | 가톨릭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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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년기 | 노년기 |
이탈리아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 이후 가장 중요한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이다. 푸치니의 곡은 멜로디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동시에 작곡 기법은 고난이도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푸치니의 오페라는 그냥 가서 봐도 재밌다는 장점이 있다. 마농 레스코가 대성공하고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이 연달아 역사적인 성공을 거두던 시기 푸치니의 인기는 비할 사람이 없었다.
그의 1926년 유작 투란도트는 세계적으로 흥행한 마지막 오페라이다. 아쉽게도 투란도트 이후로는 세계적인 인기를 가진 오페라가 나오지 않고 있다.
2. 생애
토스카나 대공국의 루카에서 4대가 음악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조할아버지 야코포 푸치니(Giacomo Puccini sr. 또는 Jacopo Puccini, 1712 ~ 1781)와 이름이 같다. 아버지는 음악학교의 교사였지만 푸치니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났다.어릴 적에는 음악에 관심이 없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말썽만 피우는 문제 학생이었으며 심지어 그를 가르치던 한 음악 교사는 그가 가업을 이을 가능성은 없다며 그를 가르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그래도 그의 어머니는 푸치니에 대한 기대와 지원을 그치지 않았고 그를 루카의 음악 학교로 보냈다. 그는 그곳에서 그의 인생을 바꾼 카를로 안제로니라는[1] 선생을 만나 엄청난 속도로 음악을 배우고 루카의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보고 오페라 작곡가로 살 것을 결심해 1880년에 이탈리아 왕국 국왕 움베르토 1세의 왕비 사보이아제노바의 마르게리타로부터 후원을 받아 밀라노의 음악학교에 입학해 폰키엘리 밑에서 배웠다.
밀라노 음악원 재학 중 폰키엘리의 권유로 창작 오페라 공모에 첫 번째 작품 "빌리"(Le Villi)를 냈으나 등단에 실패했다. 그러나 1884년에 이탈리아 오페라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리코르디 출판사에서 가치를 알아봐 빌리 악보를 출판하고 공연을 후원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통해 그의 본격적인 오페라 경력이 시작되었다.
1896년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초연된 라보엠(La Boheme)이 대성공을 거두었고, 1900년에는 로마에서 토스카(Tosca)가 초연되어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오페라 나비부인(Madame Butterfly)을 작곡하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해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1904년 나비부인을 밀라노에서 초연하여 성공을 거뒀다. 나비부인 이후 그는 현대음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동시대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의 영향을 받아 대중적 인기와 조금씩 멀어졌다.
1907년에는 뉴욕으로 건너가 미국적 소재로 작곡한 서부의 아가씨를 1910년에 뉴욕에서 초연하였다.
1918년 단막극 세 개가 한 세트를 이루는 "외투", "수녀 안젤리카", "잔니 스키키"를 무대에 올렸다. 이 중 코메디인 잔니 스키키는 지금도 자주 공연된다. 이미 사장된 것이나 다름 없던 오페라 부파를 활용한 오페라로, 마지막 오페라 부파라고 할 수 있다. 셋 다 평가가 높은 오페라이지만 첫곡인 외투는 시작부터 불협화음이 들어 있어 아주 대중적이라고 하긴 어렵다.
예전만큼 대단한 인기 오페라를 내지 못하고 있던 그는 말년에 전통적인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에 착수한다. 당시 유럽에서 인기있던 이국 취향을 반영해 중국을 배경으로 하였는데 이것이 그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이다. 그는 거의 다 작곡하고 마지막 장면만 남겨놓은 채 세상을 떠났으며 미완성된 마지막 장면은 후배 프란코 알파노(1875~1954)가 완성하였다. 직접 만든 게 아니다 보니 투란도트의 마지막 장면은 어쩔 수 없이 조금 푸치니스럽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1926년에 밀라노에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초연되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초연 때 토스카니니는 푸치니가 작곡한 부분까지만 지휘하고 연주를 끝내는 것으로 푸치니에게 경의를 표했다. 두 번째 공연부터는 끝까지 연주했다. 푸치니와 가까웠던 토스카니니는 푸치니 자신은 혹시 투란도트를 완성하지 못할 경우 남은 부분을 맡길 작곡가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푸치니의 유족이 알파노를 선택했다.
3. 특징
로시니에서 베르디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계보를 잇는 오페라 작곡가이다. 그는 낭만주의 시대의 이탈리아 오페라를 완결하고 현대 이탈리아 오페라로 나아가는 길을 연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스스로 "극장을 위해 작곡할것을 신께 명받았다"라고 할 정도로 위대한 오페라들을 남긴 그는 자칫 성악에 치중하기 쉬웠던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유려한 관현악법의 구사로 이전 작곡가들과는 다른 스타일을 보였다.[2]이런 그는 당대 다른 음악가들의 경향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방식으로 녹여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예를 들어 리하르트 바그너의 "유도동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활용했다던지,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 심지어는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의 영향까지도 일부 받아들였을 정도였다.
그의 오페라에서는 인상적인 여성 주인공들의 묘사가 탁월하다. "라보엠"의 미미, "토스카"의 토스카, "나비부인"의 나비부인(쵸쵸상), "수녀 안젤리카"의 안젤리카, 그리고 마지막 오페라인 "투란도트"의 투란도트 공주까지 그의 오페라는 이런 인상적 여성 주인공들의 매력적인 선율로 청중들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그런 덕에 위대한 여성 오페라 가수들에게 푸치니 오페라의 여주인공들은 꼭 거쳐가야할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나비부인", "서부의 아가씨", "투란도트"처럼 동양이나 미국 서부같은 이국적 소재들을 적극 활용했다는 특징도 있다.
작품 중에서 나비부인과 투란도트는 현대에는 약간 재평가를 받기도 한다. 당대엔 일반적인 현상이라곤 해도 너무 노골적으로 오리엔탈리즘, 인종 차별 요소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4. 사생활
고급 의류를 상당히 센스 있게 입고 다닌 간지남이었으며 최고급 자동차를 몰고 다닌 얼리 어답터였다.[3] 이로 인해 당시로서는 드문 자동차 사고로 상당기간 고생을 했다. 거기에 여자 관계가 복잡한 바람둥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호화롭고 자유롭고 방탕한 삶을 추구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Elvira, 결혼 전 성은 본투리Bonturi)는 원래 푸치니 친구 나르시소 제미냐니(Narciso Gemignani)의 아내였고 둘 사이에는 포스카(Fosca)란 딸과 레나토(Renato)란 아들도 있었는데, 친구가 자기 아내에게 피아노 개인 교습을 해달라고 부탁하여 푸치니가 친구의 집을 드나들다가 불륜관계가 되었다. 엘비라는 끝내 딸을 데리고 남편과 별거하여[4] 푸치니와 아들 안토니오까지 낳았고, 푸치니의 차 사고 이후 하루가 지나 나르시소가 사망하자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5]
그렇게 요란한 스캔들을 일으키며 결혼했건만 그녀가 나르시소와 결혼했던 상황에서도, 그리고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아서 가정불화를 겪었다. "나비부인"을 작곡할 당시에는 여주인공에 대한 영감을 얻겠다면서 일본인 소프라노를 집에 끌어들여서 부인과 다투기도 했다.
- 어린 소녀 도리아 만프레디(Doria Manfredi)를 가정부로 들였다가 남편과 소녀의 관계를 의심한 부인이 강력히 반발하자, 이에 부담을 느낀 소녀가 푸치니의 집을 떠난 후 얼마 안되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6] 소녀는 유서로 자신의 시신을 부검하여 숫처녀인지를 밝혀달라고 청했다. 이에 부검 결과 진짜 숫처녀였음이 밝혀져서 푸치니의 부인이 투옥되었다가 나중에 푸치니가 거금을 들여 처를 석방시켰다. 이를 두고 부인의 괜한 의부증이라는 주장과, 푸치니가 의심받을 만한 짓을 한 것이 맞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다.
도리아는 우연히 푸치니의 의붓딸 포스카가 당시 기획자 살바토레 레오나르디(Salvatore Leonardi)와 결혼한 유부녀[7]인 상황에서 대본작가 구엘포 치비니니(Guelfo Civinini)와 바람피는 현장을 목격했다. 도리아가 자신의 부정을 누설할까봐 두려워진 포스카는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도리아의 행동거지가 수상하다고 비난했다. 엘비라는 여기에 낚였고, 도리아를 의심한 나머지 심한 모욕을 가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푸치니는 그 소녀와 바람을 핀 것은 아니지만 그 소녀의 사촌 줄리아 만프레디(Giulia Manfredi)와는 실제로 바람을 피고 있었던 것. 사촌의 후손인 만프레디 집안의 구성원들은 자신들도 푸치니의 혈연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사촌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의 이름과 본처와의 자식들의 이름이 모두 일치한다. 심지어 푸치니는 그녀를 위해 그녀를 찍은 사진, 영상 클립들을 선물했다. [8] 만프레디가가 사는 동네에서는 이 사실이 소문으로 허다하게 퍼져 있었다고 한다. 만프레디가의 일원들은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자고 주장하나 푸치니가는 이에 응하지 않는다. 실제로 혈연이 있음이 입증되면 각종 재산 분할과 관련한 법적 분쟁에 시달릴 것이 뻔하기 때문. 이 일련의 사건은 ‘도리아 사건’이라고 불리며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구설수에 오른 일이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2008년에 푸치니의 여인(Puccini e la fanciulla)이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 거위 고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그가 암으로 사망한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9] 하지만 푸치니의 사망 원인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다름아닌 담배. 실제로 푸치니는 지독한 골초로 유명했고,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는 오랫동안 교류를 해왔는데 이와 연관된 일화가 있다. 하루는 두 사람이 매우 지독하게 다툰 뒤 한동안 연락조차 끊고 지내게 되었다. 이후 크리스마스가 되었는데 푸치니가 지인들에게 빵을 선물로 보내다가 실수로 토스카니니에게도 빵을 보내게 되었다. 이 때문에 푸치니가 따로 '크리스마스 빵 잘못 알고 보냈음'이란 내용의 전보를 보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토스카니니의 답장은 '크리스마스 빵 잘못 알고 먹었음'이었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은 여전히 티격태격하면서도 그럭저럭 좋은 친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 리하르트 바그너와 주세페 베르디와는 달리 정치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푸치니의 전기작가 메리 제인 필립스 마츠는 "1차 세계대전과 그 즉각적인 여파를 거치면서 푸치니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제로에 가까웠다"고 썼다.#
5. 작품 목록
5.1. 오페라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아무도 잠들지 말라)’ |
자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 |
5.2. 관현악
- 전주곡 E단조 (1876)
- 아다지에토 F장조(1881~3)
- 교향적 전주곡 A장조 Op.2 (1882)
- 교향적 카프리치오 Op.3(1883)
5.3. 실내악
- 현악 4중주 D장조(1881~3)
- 현악 4중주를 위한 3개의 미뉴에트(1881)
- 현악 4중주 C♯단조 '국화(Crisantemi)' (1890)
5.4. 피아노
- 작은 왈츠(1894)
- 피아노 소품(1916)
5.5. 합창
- 칸타타 아리따운 이탈리아의 아이들(1877)
- 미사 글로리아(1880)
- 레퀴엠(1905)
5.6. 가곡
- 태양과 사랑(1888)
- 바다와 땅(1902)
- 영혼의 노래(1904)
- 황금같은 꿈(1912)
- 로마의 찬가Inno a Roma (1919)
[1] 카를로 안제로니는 인내심과 제자에 대한 열정이 엄청난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2] 한편으로는 베르디 시대 때부터 시작된 가사와 극적 표현의 강조를 그대로 이어서 심화시켰는데, 이는 가수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다.[3] 사실 푸치니가 살던 시절에는 최고급이고 뭐고 간에 자동차 자체가 매우 비쌌지만.[4] 아들 레나토는 아버지 나르시소와 같이 지냈으며, 아버지가 죽은 이후 주로 하인과 친척들 손에 컸다. 새아버지가 된 푸치니도 그를 신경써주기는 했다고 한다.[5] 참고로 친구 나르시소 또한 바람둥이에다가 이 사실에 매우 당당한 사람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부부 간에 불화가 심했으며 나르시소는 결국 자기 불륜 상대의 남편에게 살해당했다.[6] 푸치니의 미완성 유작인 오페라 투란도트에 남주인공의 하녀 류가 자살하는 내용이 도리아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평도 있다.[7] 그녀가 남편 살바토레와의 사이에서 낳은 1남 2녀(프랑카, 엘비라, 안토니오) 중 하나인 엘비라(Elvira Leonardi Bouyeure)는 비키(Biki)란 예명으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이다. 예명은 할아버지 푸치니가 장난꾸러기 소녀란 뜻의 이탈리아어 단어 birichina에서 따와서 그녀를 부르던 별명 Bicchi에서 유래했으며, 푸치니는 그녀를 제일 아꼈다. 포스카는 남편과 사별한 이후 사업가 마리오 크레스피(Mario Crespi)와 재혼했다.[8] 당시 사진은 매우 비싸고 시간을 잡아먹는 고급 매체였다.[9] 언젠가 거위 고기를 먹다가 잔뼈가 식도를 긁으면서 낸 상처가 악성 종양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것. 조류의 뼈는 속이 비어 있어 부러지면 굉장히 날카로우니…. 당시 의학 수준이 수준이다 보니 정말 그게 발병 원인이었는지 확정할 수는 없지만, 이탈리아인인 만큼 식도에 난 상처가 계속 매운 맛 등으로 많은 자극을 받았을 것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영 못 믿을 말도 아니다.[10] 단막극 셋을 하나로 묶은 연작으로,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순서대로 지옥, 연옥, 천국편을 묘사했다. 하지만 실제로 세 작품의 괴리감이 심해 같이 연주되는 일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