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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5 21:18:27

조성룡

<colbgcolor=#444444><colcolor=#ffffff> 조성룡
趙成龍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3082302275_0.jpg
출생 1944년 5월 12일 ([age(1944-05-12)]세)
일본 도쿄도
거주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
학력 부산중학교 (졸업)
부산고등학교 (졸업 / 15회)
인하대학교 (건축학 / 학사)
인하대학교 (건축학 / 석사)
1. 소개2. 생애
2.1. 출생 및 학창시절2.2. 건축설계 활동
2.2.1. 주택 설계2.2.2. 재생건축 설계2.2.3. 문화공간 설계
2.3. 건축계 활동2.4. 국내외 건축전 참가2.5. 정기용과의 인연
3. 경력4. 수상5. 주요 작업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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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 건축가다.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명작에 가장 많이 뽑힌 건축가다. 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두 번, 서울시문화상, 김수근건축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에서 프리츠커상 후보로 자주 꼽히는 건축가 중 한 명이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조성룡도시건축 대표이며 2022년 6월까지 성균관대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2. 생애

2.1. 출생 및 학창시절

1944년 5월 12일, 일본 도쿄 출생. 해방 이듬해 기계엔지니어인 부친과 귀국했다. 6.25 전쟁으로 인해 부산광역시로 피난을 가 그곳에서 정착, 부산중학교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영화감독이 꿈이였지만[1] 부친 뜻에 따라 1962년에 인하대학교 금속과로 들어간다. 그러나 적성에 안 맞았는지 2학년 때 건축과로 전과해 졸업했다.

1965년에는 일명 '국전'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졸업 설계작이 특선을 수상했다. 당시 건축 분야 심사위원 중 한 명이 김중업이었으며, 뉴타운 등 도시에 모여 살 것을 예견한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안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공군 장교로 입대했으며, 당시 공군 주력 전투기가 팬텀으로 교체되면서 전면적인 격납고 재건축에 참여하게 되었고 4년 동안 격납고 설계실에서 근무했다.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2. 건축설계 활동

제대 후 우일건축에 입사해, 그 유명한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 김종성을 만난다. 이렇게 미스 반 데어 로에-김종성-조성룡으로 인연이 이어지게 된다.

이후 1975년 우원건축연구소를 설립하며 독립하였다.

2.2.1. 주택 설계

1983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 선수촌 및 기념공원 국제설계경기>에서 1등 당선됐다.[2] 한국에서 아파트 단지 설계로는 최초로 해외 건축가들도 참여하는 국제 설계를 거쳤으며, 월간 공간지에 심사과정을 모두 공개했다. 일조권과 풍경 등을 고려해 캐스케이드(계단식)으로 설계했으며, ㄴ자의 각 동을 하나의 클러스터로 만들어 하나의 작은 마을 단위로 나누고 1층 일부는 터서 필로티로 만들어 각 동끼리 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하주차장이 국내에서 최초로 도입된 아파트이기도 하다. 참조.

위의 아시아선수촌 국제설계경기에서 당선되고 실시 설계 작업을 하던 도중, 1985년 대한주택공사로 부터 초고층 아파트 설계공모에 지명되고 당선되었다. 조성룡의 회고에 따르면, 당초 연구 목적으로 공모한 것으로 추정되나, 나중에 설계자에게 아무런 연락없이 상계4단지에 떨렁 한 동만 지어놨다고.[3][4]

우성건설과 같이 진행한 프로젝트로는 부산 해운대 빌리지와 도곡동 캐릭터빌의 등이 있다.

그 외에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들도 꽤 있다. 가회동 11번지 계획이나, 제주 화북 지구 공동 주택 설계 경기, 정기용과 같이 작업한 이화동 이화마을 재개발 연구 등이 예.

2018년에는 <잠실5단지 주거복합시설 국제 지명 설계 경기>에서 당선되었다. 다만, 당선작에 대한 조합측의 부정적 의견이 있었으며 당선 이후 3년동안 조합측과 계약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조성룡측은 이에 당선자 지위를 확인해 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고, 조합측은 이에 협의 불발로 받아 들여 설계 경기 2위 업체와 계약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조성룡측의 손을 들어줬고, 2위 설계안의 업체와 한 계약은 효력이 정지되었다. 이런저런 문제로 잠실5단지 재개발 사업추진은 계속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 설계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

2.2.2. 재생건축 설계

1999년에는 정영선 조경가[5]와 같이 작업하여 '선유도공원 설계 경기'에서 당선됐다. 2000년까지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으로 사용되던 정수시설을 재활용하여 생태 및 수생 공원으로 재생한 것이다.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명작에서 3위에 올랐으며, 선유도공원 설계로 정영선은 세계조경가협회(IFLA) 동부지역회의 조경작품상, 미국 조경가협회(ASLA) 프로페셔널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조성룡은 한국건축가협회상, 서울시건축상, 김수근문화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거의 방치되다 싶었던 서울어린이대공원 교양관의 리모델링 설계를 맡아 서울어린이대공원 꿈마루로 재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교양관이 당초 근대건축가 나상진의 서울 컨트리 클럽의 클럽 하우스 설계작이었다는 점이 재조명되었으며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명작에서 14위에 올랐다.

2015년에는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및 국제 지명 설계 경기'에 지명되었지만, 최종 2등을 했다. 1등작인 현 서울로 7017은 네덜란드의 MVRDV에서 설계했다.

2016년부터는 소록도에 관심을 가지며 성균관대학교 성균건축도시설계원(SKAi)과 '국립소록도병원 100주년 기념 시설물' 설계와 '서생리 마을 옛터 보존 사업'을 진행하였다. 참조.

2.2.3. 문화공간 설계

1999년, 한예종 교수 김종규와 같이 작업하여 '의재미술관 설계 경기'에서 당선됐다. 풍경 속의 미술관이라는 기본 컨셉으로 무등산 등산로의 지형적 요건을 그대로 살려 친환경화적 공법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으며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명작에서 17위에 올랐다.

2002년, 올림픽공원 내에 위치한 '소마미술관 설계 경기'에서 당선됐다.

2005년에는 용인시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인 '지앤아트스페이스'를 설계했다. 공간 대부분을 지하로 묻었으며, 재미난 골목같은 공간이란 컨샙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맞은편 백남준아트센터에 비해 눈에 띄지않고 몸을 낮춘 공간이란 점이 특징이다. 2009년에 또 다시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하게 한 작업이다. 참조.

이후 수도박물관, 겸재미술관, 다산기념관, 대구 간송미술관 등의 설계 경기에 도전했지만, 모두 떨어지고 유일하게 당선된 작업이 2008년 이응노 생가 기념관(이응노의 집)이다. 외부는 흙다짐벽으로 네 개의 분절된 단층 건물로 보이지만 실내 공간은 모두 연결되어있으며, 고암 이응노의 삶을 투영하여 내부는 콘크리트 마감과 날카로운 선들로 엄숙한 분위기를 준다. 참조.

2007년에는 서울시로 부터 <동대문디자인파크 국제 지명 설계 경기>에 지명되었으나[6] 최종 2등을 하였다. 1등작은 알다시피 자하 하디드.

2.3. 건축계 활동

당시 건축계는 학연으로 뭉쳐 있어 담론이 형성되지 않고 건전한 비판을 통한 자정기능을 상실해 있었다는 비판에, 30~40대 건축가들 곽재환, 김병윤, 도창환, 동정근, 백문기, 방철린, 승효상, 우경국, 이성관, 이일훈, 이종상, 승효상, 민현식, 김인철 등이 1990년 4월 3일에 모여 학연을 떠난 건전한 담론의 장인 '4·3 건축그룹'을 결성했으나, 2년 후에 해체되었다.[7] 1993년에는 '4·3 건축그룹'에서 인연을 맺은 김인철, 민현식, 승효상과 김석철, 조건영, 정기용, 김영섭 등을 더해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건미준)'을 결성하였다.

1995년부터 10여년간 이어진 민간 교육단체인 서울건축학교의 교장이였다. 당시의 막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건축가들과 국내건축가들이 튜터와 크리틱으로 참여하였다. '4·3 건축그룹'과 '건미준' 등 에서 같이 활동 했던 승효상, 민현식, 김인철, 정기용, 김영섭 등과 김원, 이종호, 미국에서 활동하던 서혜림 등이 대표적인 참여 건축가.

서울건축학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세지마 카즈요렘 콜하스 등이 당시 조성룡도시건축이있던 '양재 287.3' 지하에서 초청강연을 하였다.

2.4. 국내외 건축전 참가

1989년 일본 도쿄 Gallery MA에서 열린 <마당의 사상, 신세대의 한국 건축 3인전>, 1991년 서울에서 열린 <4.3 그룹 건축전>, 유럽 순회 단체전 <S(e)oulscape : Towards a New Urbanity in Korea>,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광주어반폴리>, 2015년에는 <서울건축문화제 올해의 건축가 조성룡전>, 2017년에는 <건축의 소멸: 보안여관에서 소록도를 생각하다> 등 국내외 여러 건축전에 참가하였다.

특히, 2002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한국관 전시에 초대되었고, 2006년에는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았다.

2.5. 정기용과의 인연

원래 '조성룡도시건축'의 사무실은 양재동의 '양재 287.3'에 있었으나, 2005년에 정기용의 '기용건축'과 사무실을 동숭동으로 합치고 '도시건축집단ubac(group urbanistic architecture)'을 설립했다.[8]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국제설계공모 2등작이 동숭동에 있을 시절 정기용과 같이 작업한 프로젝트.

또한, 정기용과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에서 같이 강의를 했고, 성균관대학교에서도 성균건축도시설계원(SKAi)을 설립해 같이 강의를 했다.[9]

위 내용들과 같이, 정기용과는 1993년에 처음 인연을 맺고, 사무실을 합친 2005년 이후엔 막역한 관계가 되었다. 정기용의 마지막 여생 1년을 담은 영화인 '말하는 건축가'에도 등장하며, 정기용의 사후 정기용을 기리는 여러 강연을 한 바 있다.

3. 경력

4. 수상

5. 주요 작업

6. 참고

디자인프레스 Oh! 크리에이터 [#215 건축가 조성룡] (글 : 김만나)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학 웹진 <웹진 민연> 인터뷰 [대화] 공공의 영역은 공과 사 ‘사이’에 있다 - 인문건축가 조성룡과의 대화 (인터뷰 및 정리: 함돈균)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학 웹진 <웹진 민연> 사람과 글 人ㆍ文 인문 건축가 조성룡, '서울'의 시간을 '말하다' (인터뷰 및 정리: 심세중(수류산방 대표))
본 연재 글을 보완하고 덧붙여 『건축과 풍화 : 우리가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수류산방, 2018) 을 출간했다.
[1] 미대에 가고 싶었으나 반대가 심했다는 인터뷰도 있다.[2] 본인은 당시 유명 건축가들이 미술관, 박물관 등 설계공모에 집중한 영향으로 본인이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3] 몇 년이 지나고 상계동을 지나가다 본 지인에게 들었다고 한다.[4] 가운데 구멍뚫린 아파트로 유명한 상계4단지의 412동이다. 가운데 구멍뚫린 부분은 당초 주민 커뮤니티 또는 어린이 놀이터로 설계되었으나, 민원으로 폐쇄 되었다고.[5] 아시아선수촌에서도 같이 작업한 바 있다.[6] 외국 건축가 4명, 한국 건축가 4명을 지명하였다. 지명된 한국 건축가는 조성룡, 유걸, 승효상, 최문규.[7] 승효상의 인연으로 '4·3 건축그룹'에 강연을 오기도한 김진애와 당시 인연을 맺은 듯하다.[8] 당시 정기용과 많은 일을 같이 하던 와중, 정기용이 대장암 판정을 받은 것이 이유라고 한다.[9] 같은 시기에 교수직을 한 것을 넘어, 한 수업에서 같이 강의를 진행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