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 (원제: 볼히니아) (2016) Wołyń | |
장르 | 드라마, 전쟁 |
감독 | 보이치에흐 스마조프스키 |
각본 | |
원작 | 스타니스와프 스로코프스키 - 《증오(Nienawiść)》 |
제작사 | Film itp. z o.o. |
출연 | 미할리나 와바치 (Michalina Łabacz), 아르카디우시 야쿠비크 (Arkadiusz Jakubik), 바실 바실리크 (Василь Василик) 외 |
음악 | 미코와이 트샤스카 (Mikołaj Trzaska) |
개봉일 | 2016년 10월 07일 |
상영 시간 | 125분 |
상영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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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이치에흐 스마조프스키가 연출한 폴란드의 2016년 전쟁, 역사 영화. 시기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개전 시기인 1939년부터 중후반부인 1943년 여름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장소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볼린(볼히니아) 지방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2. 상세
스타니스와프 스로코프스키[1]의 단편 기록집 《증오(Nienawiść)》를 원작으로 하여 1940년대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었던 시절 폴란드 동부 및 우크라이나 서부에 걸친 갈리치아 및 볼히니아 지방에서 있었던 민족 갈등 및 학살인 볼히니아 학살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소위 드라마틱한 주인공의 구원 서사나, 영웅 서사같은 건 전혀 없다시피 하며, 실제 일어났던 학살을 기구한 운명의 한 폴란드인 여성의 시선에서 굉장히 무덤덤하게 날 것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당시 일어났던 그 잔혹한 학살 장면들을 그대로 담아내어 고어물에 가까운 영화다.[2] 당시의 혼란스러운 역사의 풍파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비밀결사에 들어가기도 하고, 마을에 소련이 들어왔을 때는 공산주의를 한없이 찬양하고 나치가 들어왔을 땐 마을의 유대인들을 싹다 바치는 등 외부 세력들이 바뀔 때마다 꾸준히 부역하거나, 약속한 금화가 없다는 이유로 1년간 숨겨줬던 유대인을 표정 변화 없이 때려죽이거나 하는 등[3] 당시 상황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한 치 앞도 예상을 못할 수준이었는지, 무엇보다 인간이 생존 및 민족주의 앞에서 얼마나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잘 드러낸다.볼히니아 지역의 민요가 초반부 결혼식 장면에 지역 풍습들과 더불어 상당히 많이 삽입되었다. 토속적인 분위기를 내는 한편으로 얼마전까지 서로 노래부르고 축하해주던 이웃이 몇 년 후 다른 민족이라며 서로 찾아내어 도끼로 목을 자르는 상황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비되어 구슬픈 분위기 또한 난다. 결혼식 장면과 학살 장면을 되돌아보면 결혼식에서 한 축제의 모습이 학살 장면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점에서 끔찍한 구도를 묘사한다.
한국 IPTV에서는 '끝까지 살아 남아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살아남기 시리즈 같은 어처구니 없는 제목으로 의역[4]되었다. 하도 어처구니 없는 제목이었는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폴란드 영화 특별전할 때는 수입명을 무시하고 볼린이라고 상영했다.
3. 등장인물
- 조시아 그워바츠카
이 작품의 주인공. 폴란드인 여성으로 볼히니아 시골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같은 마을의 우크라이나인 청년 페트로를 사랑하고 있었으나 집안의 정략 결혼에 의해 폴란드인 지주인 스키바 마치에이와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이후 세계대전과 소련-독일 지배, 민족감정, 학살의 소용돌이 속에서 극도로 험난한 삶을 살게 되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성격은 초반에는 소녀다운 발랄하고 긍정적인 성격이었지만, 마치에이 집에 들어가고 난 뒤 갖은 혼란과 시대상, 잔혹한 일들을 자주 겪으며 극도로 과묵한 성격으로 변해간다. 영화 중반부 정도부턴 정말 중요하거나 필요한 일이 아닐 때 말고는 자발적인 대화도 거의 안하는 지경(...). 강인하게 삶을 견뎌내는 모습을 꾸준히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너무나 가혹한 시대에 치여 갈수록 정신이 붕괴되어가는 모습도 보여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 스키바 마치에이
조시아의 남편. 폴란드인 마을 지주이자 촌장이고, 가족으로는 어머니 한명과 조시아와의 결혼 전엔 사별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처에게서 본 두 자녀를 데리고 있다(딸 하나와 아들 프라넥). 자녀들과의 관계는 상당히 좋은 것으로 묘사된다. 성격은 꽤나 가부장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패잔병으로 돌아다니면서도 민가를 약탈하지 않으며 식량은 꼭 돈을 주고 사먹고, 민가의 옷을 함부로 훔친 부하장병에게 분노하며 주먹을 날리기도 하는 등 최소한의 인간성과 도덕성은 지키는 면도 있다. 조시아의 아버지와 합의하에 조시아의 의사와는 관계없는 정략결혼을 치른다. 폴란드 침공 때에는 독일군과 싸웠다가 패전하고 부대 해산 뒤 겨우 마을로 돌아오고, 소련 치하에서는 폴란드인 반동 부농(쿨라크)로 몰려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도 다녀오는 등 이 인물도 고생깨나 한다. 조시아와의 관계는 초반엔 페트로와의 불륜 건도 있고 본인 성격도 있고 해서 상당히 불편하고 좋지 않았지만 소련 강제수용소에 다녀온 뒤엔 사람이 많이 변해서 서로를 부부로 인정하며 잘 살려 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인과 폴란드인이 서로 견원지간이 되고 학살의 위험이 큰데도 이웃 마을로 물건을 마련하려 갔다가 닭 도둑 건으로 팔을 잃어 앙심을 품은 하브릴루크에게 잔혹하게 목숨을 잃는다.
- 페트로
조시아와 같은 마을 청년으로 조시아의 첫사랑이다. 우크라이나인이며, 조시아와 몰래 사랑을 나누며 결혼을 생각했지만 조시아는 정략결혼을 진행한 마치에이와 결혼한다. 이후 마치에이와 같은 부대에 징집되어 독일군과 싸우기도 하고, 폴란드의 패색이 확실해지자 탈영해서 마을로 돌아온다. 조시아를 잊지 못하고 조시아와 불륜관계를 계속하는데, 결국 스키바가 이를 눈치챌 무렵에 공교롭게도 마치에이네 가족이 소련 굴라크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다. 이에 조시아를 구출하려 소련 주둔군의 보드카 박스를 훔쳐 NKVD 장교에게 바치고 어떻게든 조시아와 마치에이네 아이들은 구해내어 출산이 임박한 조시아를 본인 어머니 집으로 데리고 가 아이를 낳게 한다. 그러나 보드카를 도둑맞은 소련군 장교사 분노하여 그를 찾아오게되고 결국 한겨울밤 집앞에서 총살당해 죽는다.
- 안토니
영화 중후반부 이후의 등장인물로, 폴란드 자유군 소속 레지스탕스이다. 부상을 입고 조시아의 헛간에 숨어서 혼절해 있었는데 마치에이가 죽은 뒤 조시아네 가족의 도움을 받아 회복한 뒤, 슈마 등 마을 내 친독 세력에게는 노동하러 온 일반 외지인인것처럼 꾸미고 새로운 가장처럼 조시아 가족들을 잘 보호해주면서 지낸다. 굉장히 선량한 인물로 묘사된다. 볼린 학살의 징조와 점점 심해지는 반데라주의자들의 위협에 일찌감치 경각심을 느끼고 마을 폴란드인들에게 이를 경고하나, 주민들은 공포감은 느끼면서도 설마 이웃인데 죽이겠냐고 여기고 외지인인 안토니를 불신하다 결국 화를 당하고 만다. 안토니 본인도 상부의 지령으로 타지에 나가있다가 지역 가톨릭 성당을 습격한 반데라주의자들의 공격으로 죽을뻔하다 겨우 살아난다. 이후 잿더미가 된 조시아의 집으로 돌아와 불타고 시신으로 가득찬 폐허만을 보고 깊게 절망한다.
- 스테판 이바노비치 슈마
주인공네 마을의 유력자로, 우크라이나인과 폴란드인의 혼혈이다. 작중 보면 어머니가 폴란드계라고 한다. 그러나 출신과 달리 본인은 강경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데라주의에 경도되는 모습을 일찌감치 보인다.[5] 결혼식장에 찾아온 반데라주의자 보그단과의 대화에서 폴란드인이 우크라이나인을 차별하고 정교회도 탄압한다며 불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이고, 피로연 밤엔 술에 잔뜩 취해서 마을의 폴란드인 신부(요사팟 신부)에게 왜 폴란드인들은 우크라이나 정교회 성당을 폐쇄하냐고 따지다가 마치에이에게 저지당하기도 한다. 작중에서 지속적으로 기회주의자스러운 모습을 보이는데, 소련군 진주와 공산화 이후에는 공산당의 지원을 입어 마치에이를 몰아내고 본인이 촌장이 되어 반폴란드 선동과 집단화를 강요하기도 하고, 독소전쟁 이후 독일군이 진주하자 귀신같이 전향해 나치독일과 반데라주의에 협조해 유대인을 밀고하고 폴란드인을 죽이는데 동참하기도 한다.
- 올레스, 프라넥, 모셰크
마을 어린이들 3인방. 올레스는 마치에이 밑에서 소작농, 머슴일하는 하브릴루크네 아들로 우크라이나인이고, 프라넥은 마치에이네 아들로 폴란드인이다. 모셰크는 마을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이츠하크네 아들로 유대인이다. 전쟁 발발 이전에는 셋이 항상 함께 쏘다니는 절친이었다. 그런데 독일군 진주 이후에 모셰크가 학살 대상이 되어 숨어다니며 쫓기게 되고, 유대인 노부부와 하브릴루크네 집에서 학대당하며 숨어살게 된다. 올레스는 반데라주의자들과 다니며 점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프라넥과도 절교한다. 다만 모셰크는 친구의 옛정으로 도망치도록 살려주긴 하는데, 이듬해 여름에 결국 독일군에게 잡혀 학살당하게 된다. 그렇게 세 친구 사이가 완전히 파멸되게 된다. 프라넥도 최후반부엔 결국 마을을 습격한 반데라주의자들에게 산채로 화형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 하브릴루크
마치에이와 조시아네 집에서 소작농 내지는 머슴일 하는 우크라이나인 농부이다. 가족은 아내와 아들 올레스가 있다. 굉장히 험상궂게 생겼고, 성격도 알고보면 대단히 포악한 인물. 영화 초중반까지만 해도 문제없이 그럭저럭 마치에이네 집에서 일하는듯 했지만 독일군 진주 이후에 유대인 이츠하크네를 마구 괴롭히기도 하고 결국 금품이 없다는 이유로 죽이기까지 하는 등 조연이지만 명백한 악역에 가까운 인물이다. 전 지주였던 마치에이네 닭을 밤을 틈타 자꾸 훔쳐가기도 하는데, 수용소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경비를 철저히 서던 마치에이한테 딱걸려 도끼로 공격당하고, 한 손을 잃는다. 이에 앙심을 품고 자물쇠와 농기구를 얻으러 우크라이나인 거주지역으로 온 마치에이의 목을 잘라 양철통에 담아 조시아가 보는 앞에 두는 만행도 저지른다. 이후 잠깐 지나가는 장면으로 가족이 마을에서 쫓겨나는 장면을 보여준다.[6]
- 그워바츠키 씨
주인공 조시아의 아버지. 폴란드인으로 마치에이와 비슷한 지주 출신이고, 옆마을에 산다. 조시아와의 관계는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으나 정략결혼 이후에 굉장히 서먹서먹해진다. 정황상 페트로와 강제로 이어지지 못하게 만든 아버지에게 극도로 실망했던것 같다. 성격은 일반적으로는 나쁘지 않은것처럼 보이나, 상당히 꼰대같은 기질이 있다. 유대인은 본인 마차에도 태우지 말라는 반유대주의자이기도 하고, 독일에 쫓기는 유대인들을 본인 농장에 숨겨준 조시아를 나무라기도 한다.[7] 영화 후반부에 아내와 같이 학살된 것으로 등장한다.
- 마치에이의 여동생
조시아네 마을 옆동네 마을 사람이다. 마치에이의 자식들에게는 고모가 된다. 후반부에 반데라주의자들이 옆동네 마을을 불지르고 사람들을 학살하자 조시아네 집으로 망신창이가 된 채 피신하지만 이내 뒤이은 학살로 자식과 같이 잔혹하게 살해당하게 된다
- 헬레나&바실류크 부부
영화 초반부 결혼식의 주인공들로 헬레나는 주인공 조시아의 언니이고, 헬레나의 남편이자 조시아의 형부인 바실류크는 우크라이나인이다. 결혼식 이후에는 조시아와 달리 번화한 마을 근교로 올라가서 아이도 낳고 산다. 대사로 유추해 볼 때 감자 농사를 짓고 지내는 듯. 바실류크는 형이 있는데 처음에는 이 형이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영화 후반부에는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8] 완전히 흑화된 반데라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조시아가 학살을 피해 헬레나네 집 다락방으로 피신오자, 형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바실류크를 찾아와 "너의 손으로 아내를 죽이라"고 겁박하지만, 절망하고 분노한 바실류크는 오히려 울면서 형을 내리쳐 살해한다. 이후 우크라이나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에게 두 부부와 아이까지 살해당하는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 보흐단
영화 초반부와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반데라주의자. 결혼식에 찾아온 하객(위에 나온 바실류크 형의 지인이다)으로 첫 등장을 한다. 리비우 출신으로, 대학에 들어가려 했는데 폴란드 공화국에 대한 충성 선서를 요구하는 바람에 입학을 안했다고 한다. 결혼식에 왔으면서 신랑신부를 축하해주거나 행복을 빌어주기는 커녕명절날 술먹고 정치얘기만 하는 사람처럼정치병 환자마냥 낮부터 밤까지 주구장창 만나는 사람들한테마다 끝도없이 반폴란드 발언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이야기만 한다. 심지어 히틀러가 우크라이나를 해방시켜줄 것이니 히틀러를 위해 건배하자는 말도 한다. 이후에는 OUN의 간부급 인물이 된다. 볼린 대학살 직전 폴란드 자유군 장교가 평화협정을 맺자고 사절단으로 파견되는데, 이 장교에게 "당신 시가 마음에 들었다"는 등 꽤 진지하게 대화에 응해줄것처럼 하다 갑자기 통수를 쳐서 거열형 방식으로 대단히 잔혹하게 살해한다.
- 요사팟 신부
조시아네 마을의 가톨릭 성당 주임신부. 초반부 혼인미사 강론에서 드러나듯 폴란드 민족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고 약간 꼰대기질도 있는 듯. 결혼식에서는 개에게 다리를 물려서 집으로 들어온 뒤 보드카 한잔 달라고 하는 등 개그 캐릭터적인 모습도 조금 보인다. 중반부에 상황이 심각해지자, 반데라주의자들에게 온 몸이 피멍 투성이인 매우 잔혹한 모습으로 살해당하고 강물에 떠내려온 시신으로 발견되어 폴란드인 마을 주민들이 큰 충격을 받는다.
4. 줄거리
1939년 폴란드 동부 끝 지방 볼린(볼히니아)의 작은 시골 마을. 오랜만에 폴란드인 신부 헬레나와 우크라이나인 신랑 바실류크의 결혼식이 펼쳐지는 마을은 한바탕 노래와 축제로 떠들썩하고 결혼식 자리에서 새로운 사랑들이 싹튼다.[9]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유쾌하지 못한 분위기가 흐르는데 폴란드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의 관계는 유제프 피우수트스키가 물러난 이후 폴란드 정권의 타 민족 차별로 볼히니아 대다수를 차지하는 우크라이나인들과 소수 폴란드인의 갈등의 골이 깊은 관계였다. 거기에 더해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유대인들까지[10] 합해 세 민족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는 중이었다. 결혼식의 열기가 달아오르는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서로에 대한 뒷담화가 들려오고, 폴란드인 경찰 하객은 우크라이나를 폄하하는 발언을 하거나, 결혼식장을 찾은 보흐단 등 반데라주의자들은 마을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폴란드인들이 우크라이나 소녀를 거꾸로 매달아 괴롭히고 성희롱했다느니, 우크라이나 성당을 폐쇄하고 훼손했다느니, 폴란드인(마치에이)이 촌장이라 문제다 등의 발언을 하며 선동한다. 지역의 가톨릭 신부마저도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강제로 우크라이나인들의 동방 정교회 교회들을 닫아버리고 우크라이나인들을 차별하는 발언을 공공연히 한다.[11] 피로연이 깊어지고 다들 술에 너무 취하자 어떤 우크라이나인 한명은 분노를 못이겨 혼자 숲에서 담배피우는 폴란드 경찰의 머리를 후려치기도 하고 어떤 마을 남녀는 단둘이서만 숲에 들어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한편 평범한 17살 폴란드 시골 소녀 조시아 그워바츠카(미할리나 와바치 분)는 언니 헬레나(마리아 소보친스카 분)의 결혼식 날 밤 같은 마을의 우크라이나인 소년 페트로(바실 바실리크 분)에게 고백을 받고 결혼을 약속하며 달빛 아래에서 사랑을 나눈다. 허나 마을의 폴란드인 촌장이자 부농 마치에이 스키바(아르카디우시 야쿠비스크 분[12])는 아내와의 사별 후 새로 젊은 신부를 받아들일 생각이었고, 조시아의 아버지는 마치에이의 제안을 받아들여 농장 땅을 얻는 대신 조시아를 그와 결혼하도록 보드카 몇 잔에 마음대로 정해버린다.[13] 결국 강제로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된 조시아는 다음날 떠나는 언니에게 펑펑 울면서 도와달라고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에 대해 알 턱이 없던 헬레나는 조시아가 자신을 위해 우는 줄 알고 마을을 떠날 뿐이었다.
몇 달이 지나고 결국 조시아는 17살에 훨씬 나이 많은 마치에이와 결혼하여 그의 농장에서 그의 전처의 자식들을 양육하게 된다. 어떻게든 수양자식들에게 좋은 새엄마가 되고자 하지만 수양자식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14] 그러던 와중 나치 독일이 폴란드 서부를 침공하여 마을에 대규모 징집령이 내려지게 되고, 페트로와 마치에이 역시
그 뒤로 마치에이는 군복도 버리고 우크라이나인 행세를 하며 고향으로 향하는데,[19] 가는 길에 자신을 마차에 태워준 우크라이나인들이 폴란드인 지주의 집을 털고 정교회 신부의 주도하에 폴란드 국장과 국기 등을 땅에 묻으며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기념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20]을 보게 된다. 처음에 의식이 뭔지 몰랐던 마치에이는 제일 연장자 격인 우크라이나인이 눈치를 채 들킬 뻔하나, 다행히 그는 이성이 있는 사람인지 마치에이를 눈감아준다.[21] 그리고 노인은 마차를 주차하면서 마치에이에게 "자네가 폴란드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마을 사람들이 의식 치르는동안 몰래 빠져나가라며 귀띔해준다.
죽을 뻔한 경험을 하며 겨우 마을에 돌아온 마치에이는 본격적으로 어린 신부 조시아에게 강압적이고 집착을 보이게 된다. 조시아를 짝사랑하며 계속 보는 마을청년에게 경고를 주기도 하고, 페트로가 돌아왔는지 보러 다녀온 조시아에게 방금 어디에 갔었냐고 캐묻기도 한다. 조시아의 시어머니도 조시아를 마뜩치 않아해서,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신세나 다름이 없었으나, 조시아의 앞에 어느날 페트로가 다시 돌아온다. 전쟁이 패전으로 끝나면서 그 역시 돌아오게 된 것. 조시아는 가끔씩 비밀스럽게 페트로와 만나 사랑을 나누고 그 결과 마치에이의 아이인지 페트로의 아이인지 모를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그 와중에 소련 영토가 된 우크라이나 서부에 본격적으로 공산당과 소련군이 들어온다.[22]처음에 마을 주민들은 소련군을 해방자로 여기며 환영했지만[23]시간이 지나 지배력이 확고해지자 소련군과 NKVD는 본색을 드러내며 공산주의 사상 강요와 종교 탄압을 자행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해 부역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공산주의의 적인 부농(쿨라크)신분이었던 마치에이는 공산당에 의해 강제로 촌장 자리를 부역자 스테판 슈마에게 넘겨주고 토지 또한 뺏기게 된다. 이 때 공산당 위원회에서 마치에이를 소환해서 슈마 앞에 세우고 모욕을 주는데, 슈마가 마치에이 보고 "넌 쿨라크야, 조심해 이것아!" 라고 일갈하자 마치에이도 어이가 없었는지 "너가 공산주의자면, 난 쿨라크가 아니지"[24]라고 받아친다. 슈마도 지지않고 "50에이커 이상 토지 소유자는 전부 쿨라크"라며 농장 소출물을 당에 바치라고 윽박지른다.
한편 새 촌장 스테판 슈마는 주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집산화 선전에 여념이 없다. 농장 소출물들을 당에 바치지 않으면 반동으로 간주될 것이라며 연설하자 마을 주민들은 "우린 뿌릴 씨도 없다"며 불만이 가득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자 마을에 파견된 NKVD 장교가 권총을 하늘에 쏘고, 걸려있던 우크라이나 국기를 땅에 내던지며 "우리에겐 이제 한가지 색밖에 없소! 붉은색 뿐이지!" 라며 주민들을 겁박한다. 또 소련은 시골에 학교를 열고 소련인 선생님을 불러 수업을 하게 하는데, 이 선생님은 소련식 반종교주의를 내세우며 학교 건물 내에 걸려있던 십자고상을 떼고, 아이들이 차고 있는 십자가 목걸이나 성패 등을 모두 꺼내 수거해간다. 또 프라넥에게 아버지(마치에이)가 전쟁에 나갔는지 물어보는데, 프라넥이 별 생각없이 그렇다고 하자, 프라넥의 누나는 숙청에 대한 공포감이 있어서 다급히 아버지는 반대쪽 전선에서 독일군과 싸웠다고 부연 설명을 한다.
한편 슈마는 폴란드인을 반동 지주로 몰아, 우크라이나인들의 폴란드인에 대한 증오심을 고취시키는데에도 앞장선다.[25] 그 와중에 마치에이는 조시아와 페트로의 불륜 관계에 대해서 알게되고 음주 상태에서 조시아를 추궁하다가 화를 못참고 결국 주먹을 휘두르게 된다.
그 순간 갑자기 집에 NKVD가 쳐들어와 무기를 숨겼다는 억지 죄목하에 일가족을 시베리아행 열차로 보내버린다.[26][27] 이 소식을 들은 페트로는 NKVD의 보드카를 훔쳐 열차 담당에게 뇌물로 줘가면서 조시아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결국 열차가 떠나기 전 조시아와 마치에이의 아들, 딸 셋은 구출되고, 마치에이와 시어머니는 시베리아로 끌려간다. 허나 조시아의 태기가 모두 끝나 출산이 임박하게 되고, 페트로는 모친의 반대 끝에 조시아를 급하게 자기 집으로 데려온다. 페트로의 모친은 아들의 고집에 질려 산파 경력을 살려 조시아의 출산을 돕는다. 그러나 보드카 주인이었던 NKVD 요원이 술에 쩔은 채로 페트로의 집까지 쫓아왔고, 페트로를 쏴 버린다.[28] 조시아는 무사히 아이를 낳았지만, 페트로의 죽음을 짐작하고 조용히 흐느낀다.
세월은 또 흘러 어느덧 독일군들이 마을에 들어오게 된다. 스테판 슈마와 다른 우크라이나인 마을 사람들은 언제 열성 공산당원이었냐는 듯이 "반데라 만세"와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나치에 부역하며 본격적으로 반데라주의자들의 세상을 만들려 한다. 나치들은 숨어있는 소련인과 유대인들을 모두 찾아내 데려올 것을 명했고[29] 주민들은 언제 폴란드인/우크라이나인으로 나눠 싸웠냐는듯이 소련인 선생을 끌어내 죽여버리고 하나같이 열심히 유태인들을 팔아먹는다.[30] 독일군들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협조에 열심히 성과(?)를 올리는 한편 폴란드인이 없는 레벤스라움을 바라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모아 무장시키고 특권을 준다. 이런 와중에 유대인들은 독일군들이 자신들을 색출해 살해한다는 걸 알아채고 살기 위해 비유대인 이웃들의 집에 숨어 살기 시작했고 조시아의 집에도 유대인 부부[31]와 수양아들의 친구인 아이가 같이 숨어 지내게 되었다. 조시아는 조시아의 아버지가 유대인들을 살리려다 우리가 먼저 죽는다며 쫓아낼 것을 강요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숨겨주었으나 결국 어느 날 민병대원 한 명[32]이 조시아를 강간하러 들어왔을 때 은인인 조시아의 위기를 모른체 할 수 없어 병을 던진 유대인들 때문에 민병대원이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다.[33] 다행히 유대인들은 잘 도망쳐서 살아남아 산에 숨겼다는 금화를 조건으로 마치에이의 일꾼 하브릴루크의 창고에 숨어살았지만[34] 겨울을 나는 과정에서 혹독한 추위에 아내가 먼저 죽고,[35] 남편은 금화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하브릴루크가 빡친 김에 때려 죽여버린다.[36] 결국 혼자 남은 아이 모셰크만 우크라이나인 친구 올레스[37]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고 결국 시간이 지나 잡히고 말았는지, 이 아이가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학살장이었고, 나치와 부역자들 손에 붙잡혀 옷이 벗겨진 뒤 그대로 살해당한다.[38]
이윽고 유대인들이 사라진 1943년, 본격적으로 폴란드인에 대한 반데라주의자들의 증오 범죄가 시작될 기미가 보인다. 폴란드인들의 집에 반데라주의자들이 페인트로 표적을 쓰는 낙서를 하고 결혼식 장면에서 증오발언을 내뱉던 폴란드인 신부가 시체가 되어 강물에 떠내려오게 된다. 그러던 와중 마치에이가 어찌어찌 시베리아에서 돌아오게 된다.[39] 시베리아에서 빡세게 구르면서 느낀 것이라도 있었는지 마치에이는 이전보다 조시아에게 살갑게 대하며 진심으로 가장으로서 가족끼리 행복하게 잘 살아보고자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술도 더이상 마시지 않았고 조시아에게 강압적으로 윽박지르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없었다. 조시아 역시 마치에이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였다. 마치에이는 닭 도둑을 걱정하는 조시아를 위해 밤에 닭장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도둑의 손을 자르고, 집의 대문에 자물쇠가 없는걸 발견하고 잠금장치를 사놓기 위해 시장에 가지만...이내 손이 잘린 하브릴루크와 넋을 놓은 그의 부인이 조시아의 집 앞에 한 양동이를 가지고 등장하는데, 그 양동이에는 마치에이의 잘린 머리가 들어있었고 조시아는 그 광경을 보고 기절한다. 닭 도둑은 하브릴루크였고 그가 보복을 위해 마치에이를 살해한 것이다.[40][41]
이제야 뭔가 되나 했는데 결국 또다시 슬픈 일상을 보내게 된 조시아. 그러던 어느 날 조시아는 숲 근처에서 엉덩이에 부상을 당한 채 쓰러져있던 안토니라는 남자를 구해주게 된다. 안토니는 런던의 폴란드 망명 정부 계열 현지 조직에 몸담고 있던 청년이었다. 그는 부상을 치료할 동안 조시아의 집에서 지내면서 조시아의 가족들과 모처럼 사람 간의 정을 나누며 마치에이의 빈자리를 채워주게 된다.
안토니는 시장에서 반데라주의자들의 만행을 어렴풋이 듣게되고 조시아는 일전의 그 민병대원이 그녀를 강간하려해 우발적으로 살해하기도 하는 등 불안한 나날들을 보낸다.[42] 그러다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통제가 약화되자 반데라주의자들은 본격적으로 '폴란드 흔적 지우기'를 계획하고 집회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해 죽을 것을 결의한다.[43] 그리고 이웃마을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을 피해 도망쳐온 사람들을[44] 받아주면서 학살이 눈앞까지 다가왔음을 직감한다.[45] 그리고 마치에이의 여동생이 찾아와서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때부터 가족들은 집이 아닌 헛간 위에서 숨어서 잠을 잔다.
게다가 런던에서 사절이 도착하자 안토니는 조시아를 떠나야 했다. 반데라주의자들이 하루하루 세력을 불려가며 폴란드인에 대한 증오 범죄가 증가하고 있었지만 런던의 망명 정부는 너무 멀었기 때문에 폴란드인들의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사절단을 보내 협상을 위해 반데라주의자들(영화 초반에 나온 보흐단)을 만나 이야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직접 간 대표 2명중 국내군 대위는 거열형을 당하고[46] 한명은 머리가 잘린채 말에 끌려간다. 나머지도 안토니를 제외하고 모두 몰살당한다. 그 와중에 홀로 남겨진 조시아의 집에 스테판 슈마가 찾아와서 이제 폴란드인을 죽이고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면서 안심하고 집에 있으라고 하는데...[47]
결국 운명의 1943년 7월 11일,[48] 두 정교회 성당과 한 가톨릭 성당에서 각자 미사가 시작된다. 가톨릭 성당에서는 폴란드 피난민들을 받고 자경단을 꾸리자는 내용의 설교가 계속되고, 탈출한 안토니도 그 미사장소에 찾아와 조시아의 집으로 돌아갈 방도를 찾고 있었다. 한 정교회 성당에서는 모든 민족은 형제이며 악행을 멈추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자는 내용의 종교적이고 평화로운 미사가 이어지지만 이미 극단적인 민족주의 사상에 경도된 우크라이나인들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 다른 정교회 성당에서는 다들 손에 총, 칼, 공구, 농기구 등 온갖 흉기들을 들고 있는 흉악한 분위기이다. 이윽고 신부가 미사를 시작하는데 그 내용이란 즉슨 "성경에도 수확 때까지 둘 다 자라게 한 후에 안 좋은 것만 솎아내어 태우라 하셨다"면서 학살을 종용하는 내용을 퍼뜨리더니 흉기들에 행복한 수확 되라면서 축복을 내린다.[49] 그리고 축복이 끝나자마자 반데라주의자들은[50] 대궐기하여 마을로 몰려나가 본격적으로 폴란드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첫 타겟은 가톨릭 성당으로, 반데라주의자들이 문을 박차고 수류탄을 던진 후 성당 내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성당을 불태운 반데라주의자들은 마을 내의 모든 폴란드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등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산채로 뽑아 죽이고 여자는 강간 후 얼굴 가죽을 벗기거나 눈을 뽑아버리는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상상을 벗어난 온갖 잔혹한 방법이 동원된다. 조시아의 집에도 반데라주의자 폭도들이 들이닥쳐 결국 프라넥이 산채로 불타 죽고, 수양딸도 잃어버리게 된다.[51] 친아들을 안고 다리 밑에 숨어있던 조시아는 죽기 직전의 프라넥과 눈이 마주친 후 구토를 한다.[52] 다른 마을에서 피난을 와 집에 숨겨주고 있던 마치에이의 여동생도 산 채로 눈이 뽑힌채 죽는다. 성당안에 있던 안토니는 습격해온 우크라이나인의 도끼를 뺏어 반격하여 살아남고, 이후 뒤늦게 찾아간 불탄 마을에서 조시아의 집 계단에 걸터앉아 절망하는 것으로 등장종료. 광기에 물든 스테판 추마와 마을 사람들의 추적을 겨우 피한 조시아는[53] 결국 친아들과 기나긴 도피 생활을 하게 된다. 두 민족의 갈등은 극한에 달하여 가는 길엔 시체만 널려있고 물을 뜨려고 내려다 본 우물 속에도 태아의 시체가 가득 쌓여 썩어가고 있었다.[54]
부모님 집에서 부모님들의 시체 옆에 앉아 벌벌 떨고 있던 조시아는 페트로의 모친과 다시 만나는데, 그동안의 냉대와는 별개로 페트로의 모친은 집을 수색하려는 광기어린 민병대원들에게 여기 남아있는 폴란드인은 다 죽어서 없다며 돌려보내고 자신의 스카프를 머리에 씌워주어 우크라이나인처럼 보이게 꾸며준 뒤 떠나라고 한다.[55] 이후 여기저기를 숨어다니며 피아니스트의 슈필만에 버금가는 처절한 생존을 위한 발버둥을 치게 된다. 헬레나의 집으로 가 숨기로 한 조시아는 반데라주의자들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지나가던 독일군[56]의 행군 대열을 따라 걷는다.[57] 이후 독일군과 떨어져서 다른길로 가다가 반데라주의자들이 지키는 검문소에서 어린 아들의 순간적인 기지로[58] 마침내 언니 헬레나의 집에 도착한 조시아.[59] 조시아는 언니와 형부 바실류크의 도움으로 일전에 자신이 숨겨줬던 유대인들처럼 헛간 천장에 숨어 살게 된다.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이 밤이 되자 학살로 가족을 잃은 폴란드인들이 복수하겠답시고 쳐들어와 헬레나 가족을 공격했다. 그들은 헬레나의 어린 갓난아이를 빼앗아 내동댕이치고 도끼로 끔살한다. 바실류크는 "내 아내는 폴란드인이니 제발 살려줘"라고 처절하게 울부짖었으나 폴란드인들은 신경쓰지 않고 헬레나의 목을 자른다. 우크라이나인과 결혼한 폴란드인이라는 이유로...[60][61] 그리고 머리카락을 잡고 있던 폴란드인은 충격을 받은 것처럼 헬레나의 머리를 들고 있다가 그대로 떨어뜨리고 뒤이어 바실류크를 찔러 죽인다. 이윽고 폴란드인들이 집에 불을 지르자 불타는 집에서 허겁지겁 뛰쳐나온 조시아와 아들은 다시 정처없이 떠돌게 된다.[62] 결국 잔혹한 현실에 질려 조시아는 모든 희망과 의욕을 잃고 시체처럼 며칠을 누워 지낸다. 뒤에 시체들을 장식한 반데라주의자들이 지나가던 말던 더 이상 움직이지도 않고 패닉상태가 되어 그저 누워 모든 것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결국 이대로라면 엄마가 위험하다는 것을 아들은 직감이라도 했는지 지나가던 마차에 구조요청을 한다. 마차 주인은 외지인인지 별 말 없이 조시아와 아들을 태우고 먼 길을 떠난다.[63][64]
여담으로 이런 잔혹한 학살극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을 볼 수 있는 장면들이 나온다. 영화 초반에 숲속에서 반데라 집회 도중 한 폴란드인을 처형하려하자 양심에 가책을 느낀듯이 도끼를 차마 내려치지 못하자 같은 반데라주의자에게 칼에 찔려죽은 우크라이나인부터 마치에이를 그냥 보내주는 우크라이나 노인, 마을에서의 학살을 피해 숨어서 벌벌 떨고 있는 조시아와 아기를 보고도 해치지 않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짓는 우크라이나인이 있다. 그리고 학살 첫날 조시아와 헤어진 수양딸이 밀밭 속에 몸을 숨기고 있을 때 그 근처를 수색하던 험상궃게 생긴 민병대원과 눈이 마주치고 마는데 그 민병대원이 무기를 들고 있었음에도 그녀를 못본 체하며 일부러 그녀가 있는 자리를 확인한 것처럼 밟고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이 민병대원은 밤이 되자 마차를 끌고 와 그녀를 데리고 어딘가로 떠난다.[65] 이는 모두가 미쳐버린듯한 광란 속에서도 유대인을 숨겨준 조시아, 조시아를 도망치게한 페트로의 모친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의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은 자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세히 보면 대부분 영화 장면에서 한 번 이상 나온 사람들이거나 조시아와 같은 마을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학살자와 이웃은 결국 종이 한 장도 안 되는 차이인 것이다.
5. 평가
IMDb |
평점 7.6/10 |
왓챠 |
사용자 평균 별점 3.5/5.0 |
평가는 나름대로 괜찮은 편으로 폴란드 영화상 최우수상 부문에서 수상하였고 그디니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조시아 역의 미할리나 와바치 역시 이 영화로 폴란드 영화상 최고의 데뷔상을 수상했다.
허나 지금도 스테판 반데라를 칭송하는 서부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폴란드가 왜곡을 한다며 영 안 좋게 보는 모양이다.
유태인을 기관총 학살하는 장면이나 학살당한 시체들과 헬레나의 머리를 자르는 장면에서는 자본상 한계인지 약간은 조잡한 티가 나며 다소 신파적인 요소가 있는 게 흠.
6. 볼히니아 대학살 및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단(OUN)
영화에서 다루는 볼히니아 대학살은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볼히니아 동갈리치아 지방에서 계속 자행되었고 그 결과 볼히니아에서 최소 4만에서 최대 6만, 동갈리치아에서 최소 3만에서 최대 4만의 폴란드인 및 유태인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성향의 반데라주의자들에게 학살당했다.본래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측은 같은 반소 성향이라는 이유로 폴란드에 협조적인 모습이었으나[66] 폴란드 제2공화국으로 서우크라이나, 서벨라루스 지역이 편입되면서 동방 정교회를 믿는 루테니아인들과 가톨릭을 믿는 폴란드인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소수민족이 된 이들 입장에서는 상전이 독일과 러시아에서 폴란드로 바뀐 것으로 여겨졌고 그나마 소수민족에 유화적이었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사후 차별은 더욱 심해졌다. 이에 많은 우크라이나인들과 벨라루스인들의 반발이 이어졌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두 민족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와중에 물밑에서는 독소불가침조약이 체결되고 그 결과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나누어 먹게 된다. 폴란드라는 구심점이 없어지자 우크라이나인들은 다시 한번 독립된 우크라이나를 꿈꿨고 소련 침공 준비를 하던 독일군 정보부 아프베어(Abwehr)는 유고슬라비아 침공에서의 우스타샤와 같이 쓸만한 내부 저항세력을 얻기 위해 스테판 반데라와 접촉하게 된다.
든든한 우군이 생긴 반데라는 과격 무장투쟁 노선을 본격적으로 펼치면서 폴란드인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증오를 부추겼다. 독일군 역시 이에 편승하여 눈엣가시인 폴란드인들과 유태인들을 솎아내도록 말 잘 듣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뽑아 우크라이나 SS라 칭하여 무장시켰다. 결국 이 갈등이 폭발하여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우크라이나인들에 의한 자발적인 폴란드인 학살이 볼히니아[67]와 동갈리치아 지역 전체를 덮치게 된다.
루츠크 등지에서 큰 규모의 학살이 벌어졌으며 실제로도 시골 특성상 화기보다도 냉병기가 더 많이 사용되어 더욱 잔혹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폴란드인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하였고 성향이 비슷했던 우스타샤처럼 태아를 꺼내 죽이기도 하였다. 또한 애꿎은 유태인들과 폴란드 지역에 거주하던 소수 아르메니아인들까지 덩달아 학살당하였다. 폴란드 망명 정부는 이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당시 자유군을 운영하기에도 벅찼던 망명 정부 입장으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정작 모든 걸 방관하던 독일은 이탈리아나 헝가리, 스페인처럼 대등하게 취급하던 원년 동맹국도 아닌데다가, 적당히 말 잘 듣고 설설 기던 우스타샤나 크비슬링 정권, 루마니아 왕국과 달리 반데라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무언가 위기감을 느끼고는 반데라와 간부들 몇명을 즉각 체포하여 악명 높은 부헨발트 수용소로 보내버렸고 우크라이나국은 우크라이나 국가판무관부에 합병해버렸다.
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독일 역시 적으로 분류하고는 후원 없는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한편 그 성향이 더 난폭해져 학살도 심화하게 된다. 폴란드와 독일 뿐만 아니라 모두 잘살게 한다면서 이웃들을 억압하고 굶주리게 만들었으며 반동적 민족이라고 시베리아에 보내버린 소련 역시 마구잡이로 공격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장성인 니콜라이 바투틴이 독일군도 아니고 이들의 손에 암살당하기도 했다.
결국 주변 모두에게 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눈엣가시였으며 레벤스라움을 이루려는 나치 독일에게도, 반나치 투쟁을 벌이던 폴란드에게도 방해거리나 다름없었다. 나중에는 쿠르스크 전투 이후 승기를 제대로 잡은 소련군에게 이들 민족주의자들은 차츰 소탕당하였고, 전후 폴란드와 소련이 영토를 모두 수복하자 이들은 폴란드인들과 소련군에게 똑같이 잔혹하게 보복당하게 된다. 1945년부터 1947년까지 보복 학살에 의해 죽은 우크라이나인은 약 3만명으로 추측되며 소련에 복귀한 이후에도 암암리에 무시당하다가 이오시프 스탈린 사후 니키타 흐루쇼프 시대에 겨우 복권된다.[68]
스테판 반데라는 독일 패망 이후에도 쭉 서독에 거주하여 계속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소련 정부는 나치에 빌붙어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장성을 암살할 정도로 대전 내내 반소련 스탠스를 보였던 반데라주의자들을 절대 잊지 않았고, 결국 반데라는 1955년 뮌헨에서 KGB 요원 보그단 스타신스키(Богда́н Никола́евич Сташи́нский)에게 추적당해 살해당한다. 야속하게도 스타신스키는 리비우[69] 출신 우크라이나인이었다.[70] 이후 스타신스키는 KGB에서 계속 근무하다 1961년 서독으로 망명하였고, 이후 새 신분을 얻어 198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이주하여 현재도 거기서 살고 있다. 현재까지도 적지 않은 반데라주의 단체에서 부역하였던 우크라이나인들이 시몬 비젠탈 센터의 추적중인 나치 및 부역자 목록에 등재되어 쫓기고 있다.
독립운동의 의지야 그렇다 쳐도 그 방법의 과격성 및 실제로 학살이 자행된 관계로 반데라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강한 서부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에서는 위인 취급이지만 동부 우크라이나, 폴란드, 러시아, 이스라엘, 독일, 그리고 집시 같은 소수민족 사이에선 전범 취급이다. 실제로 2011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성향의 대통령인 빅토르 유셴코가 스테판 반데라에 최고 훈위의 우크라이나 영웅 훈장을 추서했다가 주위 모두의 어그로를 끌어버린 적이 있었다. 반데라에게 당한 전력이 있던 바로 옆나라 폴란드와 종전 후 건너간 동유럽 유대인 비율이 높은 이스라엘이 항의하였으며, 동병상련으로 역시나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체코와 프랑스가 이들을 동조하는 한편 독일과 그 외 벨기에, 네덜란드, 슬로바키아 등 나치에 당한 게 많은 서방 국가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났다. 결국 이후 친러 성향인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이를 취소했다.
현재도 반데라의 뜻을 이어간다고 주장하는 단체가 바로 돈바스 전쟁의 큰 축인 스보보다와 프라비 섹토르이다. 이들은 아직도 나치식 경례를 하는 등 나치를 추종하는 모양새를 보여서 서방의 본격적인 개입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 학살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폴란드는 2024년 도날드 투스크 총리가 직접 "우크라이나가 볼린(볼히니아) 학살 등의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유럽연합에 가입할 수 없다"이라고 발언했다.#
7. 여담
같은 시대, 같은 나라의 다른 지역에서 펼쳐진 일을 보고 싶다면 피아니스트와 쉰들러 리스트, 바르샤바 1944를 같이 보는 것도 좋다.[1] 1936년생. 실제 이 작품의 사건들이 일어난 동네에서 태어나 살다가, 운좋게 학살을 면해 평생 이것에 대한 이야기만 썼던 폴란드 작가.[2] 반데라주의자들이 폴란드군 패잔병들을 습격하여 뜨거운 물에 팔뚝을 넣은 후 피부 가죽을 벗겨버리고, 양동이 안에 잘려 썩어있는 눈, 코에 파리가 들끓는 장면, 여기저기 사지가 잘려있는 시체들은 기본이요, 협상하자고 찾아온 폴란드 망명 정부 사절의 팔 다리를 말 두 마리에 묶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내달려 찢어죽이는 장면에, 우스타샤마냥 산 채로 내장을 꺼내버리는 장면이 생생하게 나온다. 심지어 광기어린 웃음 속에 아이들까지 화형시키는 장면도 버젓이 나온다.[3] 원래 유대인의 아내도 함께 있었지만, 열악한 환경 때문에 병사했다. 사망하기 전 남편은 아내가 아프니 제발 고기 기름 좀 사달라며 애원하지만 얻어맞기만 한다.[4] 이 영화를 수입한 수입사는 주로 유럽이나 아시아 쪽 3류 영화를 수입해 VOD로 파는 2인(...) 기업인데 수입한 영화 중에 온전한 제목이 없다. 사장이 이름을 짓는 건지 직원이 이름을 짓는 건지 알 수는 없다.[5] 실제로도 동갈리치아의 폴란드계로 태어나서 반데라주의자로 활동한 드미트로 클라치키브스키 라는 인물이 존재한다.[6] 마을사람이 음식을 주면서 잘 가라고 한다.[7] 다만 아버지가 반유대적인 성향을 가진 것과는 별개로 이건 독일군에게 유대인을 숨겨준 것이 발각되면 즉결처분인 것도 있어서 그렇다.[8] 극단주의가 만연하는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작중에서 바실류크에게 형수가 폴란드인이라는 걸 알면 다 죽는다고 하거나 혼혈인 아이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 등. 다만 폴란드인 지인을 죽이는 것을 거부한 우크라이나인을 직접 칼로 찌르거나 형수를 피신시키지 않고 죽이라고 하는 등 본인도 극단주의에 어느정도 물든 것은 확실하다.[9] 한국인에겐 다소 생소한 동유럽의 결혼식 풍습들을 볼 수 있다. '함사세요' 비슷하게 신랑의 친구들이 신부집에서 신부 친구들과 함께 밀당을 한다거나, 말타기 경주를 한다던가, 신부가 문지방에 머리를 대고 신랑이 신부의 땋은 머리카락 끝부분을 도끼로 내리찍어 그 머리카락을 신부집에 남겨두고 떠나는 의식 등.[10] 영화 곳곳에서 차별 받는 유태인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결혼식장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데 술취한 남성 한명이 유태인 아이 모셰크를 끌어내서 걷어차거나, 이후 소련군이 들어와서 학교가 들어오자 마차를 타고 가는데 유태인은 못 타게 하는 등 차별받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11] 폴란드의 우크라이나계 성당을 단지 못 쓴다는 이유로 닫아버린다는 불만이 쏟아지는데, 이에 분노한 슈마가 피로연 잔치 밤에 술김에 따지자 마치에이가 대놓고 그를 막아서며 무언의 협박을 한다.[12] 이 배우는 폴란드 현지에서 가수도 겸하고 있으시다.[13] 그런데 묘사를 자세히 보면 조시아 부모님도 그렇게 정략결혼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이 보인다. 아버지도 처음에는 나이차이 때문에 사람들이 뭐라 하겠냐며 떨떠름해 했고 결혼논의 이후에도 딸의 삶이 불쌍했는지 아니면 술김인지 뜬금없이 의자를 피로연 잔치상에 와장창 내던지며 분노하기도 한다. 어머니도 식사 김에 결혼 얘기하러 온 마치에이의 접시를 빼앗아 가져가버리는 등 무언의 불만을 표한다.[14] 정확히는 나이가 좀 있는 딸은 고분고분 말을 듣는 편인데, 어린 아들 프라넥이 새엄마를 무시하며 대놓고 반항한다.[15] 국가가 침공당한 위기상황에는 민방위 갈 나이라도 총 쥐어주고 전방으로 보낸다. 2차례의 세계대전기에는 이런 경우가 흔했으며 우리나라 또한 한국전쟁 때 한 집안의 남정네들이 죄다 징병당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16] 이 때 페트로는 후퇴를 안하고 끝까지 소총으로 독일군에게 맞서려 하다 동료 병사에게 끌려가듯이 이탈하고, 마치에이는 기관총 부사수였는데 포격을 맞아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허둥지둥 퇴각한다.[17] 지휘관은 해산명령 직후 권총으로 자살한다. 근데 이 때 장면을 유심히 보면 전사한 병사를 데리고 오는 장병 중 한명이 나중에 나오는 안토니이다. 안토니도 같은 부대에서 싸웠던 것.[18] 뜨거운 물에 팔을 담그고 팔뚝의 가죽을 그대로 벗겨버린다.[19] 이 때 위에서 동료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노파의 집에서 돈을 주고 우유를 먹는데 동료 하나가 거기서 옷을 훔치자 마치에이가 분노해서 얼굴을 한대 후려갈겼던 일이 있었다. 정작 그 동료는 죽고 그 옷을 마치에이가 입고가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드러난다.[20] 이 때 사람들이 단체로 우크라이나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를 부른다.[21] 마차를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1924년에 마치에이 아버지가 철도 관련 일을 했다고 말하자 직업 차별을 받는 우크라이나계가 그런데 취직을 할 수 있냐고 젊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는데, 노인이 그때랑 지금은 다르다고 이야기를 해줘서 다들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간다.[22] 여기서 소련군 장병 한명이 대놓고 마치에이네 닭을 가져가면서 조시아에게 "뭘보냐 쌍년아"라고 욕한다.[23] 주점을 운영하는 유대인 이츠하크네는 소련군에게 보드카를 주며 환영했고, 슈마도 NKVD 장교에게 보드카를 따라주며 어눌한 러시아어로 환영사를 말한다.[24] 슈마가 진성 공산당원이 아니라 폴란드인을 몰아내고 자신이 촌장 자리를 차지하려고 부역하는 것뿐임을 꼬집는 것.[25] 그러다가 한 처자가 당신 엄마도 폴란드인이었잖냐고 일침을 놓자 잠시 얼어버린다. 다만 주변에서 그 사람에 대한 비난을 퍼부어서 묻혀버렸고 그 처자는 다른 선동꾼한테 끌려나간다. 슈마도 이를 개의치 않고 나중에는 폴란드인 학살에 앞장섰다.[26] 이는 우크라이나 부역자들이 공산주의적 명분 아래 아직 부를 갖고 있던 폴란드 지주들부터 마을에서 제거하려는 음모였다.[27] 이 때 열차로 끌려간 마치에이에게 같이 끌려온 마을주민이 "얘네들이 1920년대에 피우수트수키에게 당한 걸 복수하려나봐.."라고 중얼거린다.[28] 페트로 역시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는지 조시아가 있는 집을 한번 쳐다본다.[29] 조시아에게도 SS 장교 한명이 유대인을 숨겨주면 사형이라고 친절하게(?) 웃으며 말해준다.[30] 이 여자는 교수형으로 처형당한다.[31] 감자밭에서 수확을 하다가 쟁기를 놔두고 와서 돌아가는데 감자를 구워먹던 모닥불로 접근하는 것을 목격한다. 아이들에 대해 물어보자 고개를 떨구는 것으로 보아 이미 학살당한 것으로 보인다.[32] 이 자가 민병대원이 된 것도 조시아의 아들 친구의 가족들이 총살당하는데 그 중 한 소녀가 도망치는걸 알려준 게 이유이다.[33] 예전부터 조시아에게 흑심을 품었던 이 민병대원이 그 후에 조시아가 유대인들을 숨겨줬다는 사실을 빌미로 성폭행하는 장면이 암시된다.[34] 조시아의 집에서 탈출해 언덕을 오르며 도망치고 있었는데, 그만 하브릴루크에게 들켜버린다. 유대인 남편 이츠하크가 하브릴루크에게 들킨 이상 셋 다 죽는다는 사실을 암시라도 했는지 품안의 시계까지 꺼내주며 금화가 있다는 말을 거의 울면서 애원 가까운 식으로 하는 장면은 착잡한 기분이 들게한다.[35] 남편 이츠하크가 집주인에게 제발 아내 먹일 고기 기름 좀 사달라며 애원하지만 하브릴루크에게 얻어맞기만 한다.[36] 숲속에서 자신이 죽을 것을 예상한 듯 체념한 표정이다.[37] 영화 초반에 같이 뛰어놀던 아이로 나치 독일 점령 이후에는 반 강제로 세뇌를 당한 뒤 반데라주의자들의 소년병 노릇을 하고 있었다.[38] 골때리게도 학살 현장에서 아인자츠그루펜 장교가 우크라이나 민병대원들에게 사람 죽이는 법 강의를 하고 있다.[39] 동상에 걸려서 잘라버렸는지 오른손이 없다.[40] 조시아와 마치에이의 관계엔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서로 부부로서는 사랑한 듯하다.[41] 마치에이는 떠나기 직전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이곳 사람들은 나를 잘 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시장으로 떠났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잘 알던 히브릴루크에 의해 살해당한다. 영화 초반 마치에이는 전쟁에서 패배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일면식도 없어 자신이 폴란드인인 것을 모르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일.[42] 초반에 나온 헬레나와 바실류크 부부도 잠시 등장한다. 헬레나가 바실류크에게 "감자를 더 많이 수확했어야지!"라며 바가지를 긁기도 한다.[43] 같이 놀던 동네친구를 폴란드인이라는 이유로 도끼로 목을 잘라 살해하라고 지시하고 모닥불을 배경으로 누가 봐도 급진적인 독립운동 구호들을 외친다. 이러한 일은 비단 볼히니아뿐만 아니라 유고슬라비아 등 당시 혼란스러웠던 동유럽의 다민족 지역에서 상당히 많이 일어났다. 이와 같은 양상은 2차 대전 이후에도 유고슬라비아 내전 및 돈바스 전쟁 등으로 동부 유럽에서 지속되는 중이다.[44] 안토니가 사건 전 시장에 갔다 이 마을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주민 왈 우린 서로 믿고 사이가 좋으니까 아무런 일도 없을 거라고 하는데...[45] 이때 폴란드인들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가족사진과 여러가지 물품을 숨기는데 이전에 마치에이가 숨긴 사과나무 아래에 묻는다.[46] 대위의 이름은 영화에선 직접 나오진 않지만, 실존 인물인 지그문트 루멜이다. 루멜은 군인 겸 시인이었고, 보흐단도 대위에게 시인 양반이라 부른다.[47] 사절단이 처형된 시점은 1943년 7월 10일이다.[48] 이때부터 40분 가량 학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49] 인종청소에 종교인들이 적극 개입한 사례는 그리 드문 사실이 아니다. 당장 동시대 밑 동네 크로아티아 독립국에서는 가톨릭 신부라는 작자들이 추축국과 우스타샤에 붙어먹으며 세르비아인들과 유대인들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고 부추기고 다녔다.[50] 바실류크의 형도 보인다.[51] 딸은 다행히 살아남아 다음날까지 밀밭에 숨어있었고, 밀밭을 수색하던 민병대원들 중 하나에게 발각되지만 어째서인지 이 민병대원은 그냥 넘어가준다. 그날 새벽, 낮에 그 민병대원이 다시 찾아와 딸을 수레에 싣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으로 등장종료.[52] 아이들은 죽이지 않는다는 영화의 법칙을 제대로 박살내고 정말 사실 그대로만을 전달한다. 도망치는 아이를 건초더미로 둘둘 싸매어 불을 붙인 후 낄낄대면서 뜨거워서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를 축구하듯이 발로 찬다. 영화 도입부의 결혼식에서 마을 청년들이 짚단을 태워서 서로에게 패스하는 축하 의식이 있었는데, 그 모습과 대조되어 상당히 소름끼치고 잔인한 장면.[53] 도중에 들킬 뻔 했으나, 헬레나의 결혼식에 참여한 남자이고 집회에서 폴란드인 친구의 목을 치려는 장면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시선을 회피한다. 스테판 슈마에게 들키면서 화면이 잘리고 아침에 시체 투성이인 벽에 기대인체 눈을 뜨는데 어떻게 스테판 슈마와 마을 사람들을 피했는지는 상상에 맞기는 것으로 보인다.[54] 이때 오직 삐~~~거리는 소리만 나오는데 정신적으로 무너져 가는 조시아의 절규하는 모습을 오싹하게 표현했다.[55] 이때 조시아의 아기를 애틋하게 어루만지는데 이 아기가 페트로 모친의 친손주일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 하지만 알 수는 없다. 이 영화에서는 누구의 아기인지는 맥거핀으로 맡긴다. 사실 영화를 유심히 보면, 페트로와 본격적으로 재회하기 이전에 마치에이와 아기를 갖는 문제를 이야기하며 먼저 부부관계를 맺는 장면도 있어서 정말로 마치에이의 아이일 수도 있고, 영화 초반부에서 마치에이와 정략결혼을 하기 전, 페트로와의 관계를 가지는 모습이 나왔기에 페트로의 아이일 수도 있다.[56] 국방군으로 보인다.[57] 일부러 행군대열 중간에 끼어가는데 독일군들도 조시아가 측은했는지 내쫒지 않고 지휘관도 학살 현장을 보더니 왜그러는지 대충 짐작했다는 표정으로 묵인해준다. 나중에는 지도를 보여주며 길까지 알려준다. 지나가는 길에 종종 마주치는 반데라주의자들도 조시아를 보며 죽여버리겠다며 목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어보이는 행동을 하지만 차마 건들지는 못하는데, 감히 독일군에 대들었다가 잘못 찍히면 그들의 운명이 어찌 될지는 그들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58] 폴란드인인 것을 숨기기 위해 우크라이나어로 대답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그녀를 시험해볼 속셈으로 기도문을 읊어보라는(가톨릭과 슬라브권 정교회의 기도문은 언어부터가 다르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가톨릭 교회는 자국어가 아닌 라틴어로 미사를 집행하였으며 슬라브권 정교회는 현재도 교회 슬라브어로 미사를 본다) 말에 더듬더듬 읽는 탓에 들킬 뻔 하였지만 그 순간 아들이 배고프다고 우크라이나어로 칭얼대는 덕분에 순식간에 의심이 풀리고 그들의 본거지에서 먹을것도 얻고 신발도 얻는다(그 신발은 결혼식 초반에 언니의 결혼식에서 어머니에게 선물한 신발과 같다. 민병대원이 조시아의 부모님을 죽인 것). 다만 아이가 있는데 옆에서 민병대원들이 자기가 학살을 벌인 경험담을 자랑스럽다는듯이 막 늘어놔서 문제지...[59] 이때 둘의 표정을 보면 경악한 헬레나와 고향에서부터 갖은 고생을 해서 눈물조차 말라버린 조시아의 표정 및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숨만 헐떡이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배가 된다. 헬레나 역시 조시아의 모습에서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짐작하는 표정이다.[60] 이때 폴란드인들은 그녀를 문지방에 목을 대게 하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도끼를 휘두르기 좋게 자세를 잡게 한 뒤 죽인다. 영화 초반 헬레나의 머리를 문지방에다 대고 그의 신랑 형이 도끼로 머리카락을 자른 뒤 신랑의 집으로 떠나던 결혼식 장면과 완벽하게 대조된다.[61] 바실류크와 헬레나 가족은 그 당시 흔했던 폴란드-우크라이나 가정이 어떤 참혹한 고통을 당했는지 보여준다. 바실류크는 반데라주의에는 관심도 없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폴란드인들에게 죽음을 맞은 바로 그날 아침 형이 "아내를 니 손으로 죽여라, 아니면 내가 한다. 최소한 애들을 살릴 순 있다."며 집에 쳐들어왔을 때 친형을 자기 손으로 때려 죽였을 정도로 가족을 사랑했다. 그 형도 극단적인 민족주의 사상에 물들기 전까지는 첫 결혼식 장면에서 같이 말을 탈 정도이고 결혼식 행사에서 제수씨의 머리를 잘라주고 술집에서 반데라주의자가 일장 연설을 하자 동생이 소란을 일으키기 싫다고 하자 걱정말라고 했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사람이었다. 아내를 살리기 위해 형을 죽이고는 멘탈이 완전히 붕괴된듯한 바실류크의 얼굴, 아침엔 반데라주의자들에게, 밤에는 폴란드인들에게 표적이 되어 결국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이 가족의 모습은 그 당시의 비극을 여과없이 보여준다.[62] 창문으로 뛰어내렸는데 이때 한 폴란드인에게 발각되었고, 그 폴란드인은 조시아를 보자마자 그녀를 살해하려 했으나 조시아를 보고 보내준다 이 남자 역시 조시아와 같은 마을에 살던 폴란드인인데 얼굴을 보자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중간에 고향마을이 불타고 아침에 바닥에 앉아 펑펑 울던 남자이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깨달은 듯 하다.[63] 공교롭게도 마차 주인의 얼굴이 페트로를 닮았다.[64] 하지만 이 부분이 굉장히 미묘하고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조시아가 다리를 건너는 장면이 두 장면으로 나뉘어지는데, 한 장면은 페트로를 닮은 마차주인에게 실려서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실제로 마차주인에게 발견되어 안전하게 실려갔을 수도 있지만 그 동안의 충격과 피로로 자신이 그리워하던 첫사랑 페트로와 함께 간다는 환각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장면은 피폐한 표정으로 도피생활 내내 데리고 다니던 아들도 신경쓰지 않고 다리를 걸어가는데, 그 동안의 충격이 누적되어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폐인이 되어버린다. 다리를 지키고 있던 독일군 역시 착잡한 표정으로 막지 않고 보내준다. 육체는 살아남았지만, 정신은 살아남았다고 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65] 강제로 끌고 가는게 아니라 손을 잡아주어 괜찮은지 확인을 하고 공주님 안기로 데려간다.[66] 다만 그 이전 작중 지역에 세워졌었던 서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의 경우 폴란드의 영토 침범 문제로 사이가 매우 안 좋았는데, 우크라이나인들이 분노한 것은 단순히 폴란드인들의 억압과 차등 대우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나라 건국을 막았다는 반감도 섞여있었다. 영화에서 스테판 추마가 서우크라이나를 폴란드가 억압했다고 떠드는 게 이런 이유인 셈.[67] 영화의 배경인 이 지역의 학살은 UPA(UIA) 북부 지역의 지도자였던 드미트로 클랴치키브스키(Dmytro Klyachkivsky)가 주도했다.[68] 이는 흐루쇼프가 러시아인이긴 했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오래 살았기에 우크라이나에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흐루쇼프의 노력에 힘입어 우크라이나의 영토 경계선도 조정이 되는데 이는 훗날 우크라이나에 또다른 비극의 씨앗이 된다.[69]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정서가 가장 강한 도시이다.[70] 부모가 반데라주의자였다. 이후 정보원이 되는 것을 조건으로 둘 다 사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