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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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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루이 그르브동, "라신의 바자제를 연기하는 라셸"[1]

1. 개요2. 역사3. 특징4. 주요 현상들5. 현대6. 대표적인 튀르키예 문화 애호가 및 작품들7. 튀르크리를 자극하는 대상들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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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urquerie

서양에서 유행했던, 혹은 유행하고 있는 튀르키예와 튀르키예 문화, 더 넓게는 중동 문화[2] 애호 현상. 미술사적으로는 16세기에서 18세기에 가장 크게 유행했으며 과거보다는 약해졌어도 튀르키예 문화 애호 현상과 거기에 심취한 계층 자체는 계속 남아 있다. 시누아즈리, 자포네스크, 이집트 애호, 인도마니아 등과 함께 서양의 유구한 오리엔탈리즘 팬덤인 동시에 오늘날 와패니즈의 튀르키예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튀르키예 뿐 아니라 튀르크계 민족 전체에 관심이 많은 경우는 투르코필리아(turkophilia)가 있다.

2. 역사

오스만 제국동로마 제국불가리아, 세르비아, 헝가리 등을 멸망시킨 뒤 유럽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성해 지자 오스만의 문화와 예술이 유럽으로 흘러 들어와, 유럽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 튀르크리의 첫 시작이다. 또한 16세기, 합스부르크 왕조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고 그들을 연구하기 위해 전문 학자들을 파견한 뒤 프랑스를 중심으로 튀르키예 문화에 심취한 매니아들이 생겨났다.[3] 실제로 튀르크리라는 단어도 프랑스어다.

3. 특징

튀르크리가 시누아즈리자포네스크와는 미묘하게 달랐던 점이 있다. 중국, 일본의 경우 근대 이전까지 서양과 직접적으로 아웅다웅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양인들이 부풀려진 환상 그 자체로 매료했고 열광했다. 하지만 서양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고 수세기간 군사적 충돌을 거듭해온데다 기독교와 대치하는 이슬람을 믿는 튀르크(오스만 제국)는 최종 보스로 인식되었다. 이 때문에 서양의 튀르키예 문화 애호 현상의 이면에는 다른 오리엔탈리즘과 달리 이교도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감이 이국 문화에 대한 환상과 동시에 자리매김했다.

대표적으로 튀르키예를 통해 수입된 커피가 있는데 이교도의 음료라고 초창기에는 유럽인들에게는 "이슬람의 와인", "이교도의 음료", "악마의 유혹" 등으로 불리며 백안시되기도 했지만 그 오묘한 맛에 많은 유럽인들이 커피에 매료됐고 교황이 커피를 축복함으로서 유럽인들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후 19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식 카페 스타일이 유럽에서 유행했다.

제2차 빈 공방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점차 쇠퇴하자 그 이전까지는 동방의 강대한 이교도 제국의 문화를 경탄 어린, 혹은 질시하는 태도로 바라보던 유럽인들의 시선이 점차 이국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인 환상으로 바뀌어 갔고 튀르크리에도 그 이전의 적대적인 시선이 희석되고 환상 섞인 시선이 가미되기 시작한다. 공포의 대상에서 무서울 것 없는 존재가 되자 문화 소비자들인 유럽인들이 안심하고 느긋하게 튀르키예 문화를 소비하게 된 것이다.

4. 주요 현상들

파일:Maria_Theresa_in_Turkish dress.jpg 파일:Badischer_Hofmaler_001.jpg
튀르키예풍 드레스를 입은 마리아 테레지아 튀르키예풍 복식을 갖춘 바덴바덴의 루트비히 빌헬름

17, 18세기에는 유럽 귀족들을 중심으로 튀르키예식 의복을 입는 코스프레현상이 유행했다. 특히 프랑스에서 이 유행이 정점을 찍었는데 퐁파두르 부인을 비롯한 여러 귀족들이 튀르키예풍 의상을 입고 그린 초상화들이 이 때 그려진 것들. 그 이전에는 귀족 남성들을 중심으로 터번 착용이 유행했다. 또한 이 무렵에 그려진 정물화를 보면 오스만산 융단이 바닥이든 책상 위에든 펼쳐져 있는 경우가 많으며,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앙리 2세, 잉글랜드 왕 헨리 8세 등은 융단을 밟고 선 모습의 초상을 남기기도 했다.

하렘과 하맘(튀르키예식 목욕탕)에 대한 환상이 퍼져나간 것도 이 무렵. 술탄 한명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라는 하렘의 특징이 서양 남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튀르크리가 유행할 당시 그려진 수많은 오달리스크 그림들을 보면 그림에 나오는 여성들은 홀딱 벗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렘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실제 하렘은 매우 엄격하게 관리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튀르크리에 심취한 서양인들은 하렘을 퇴폐적인 쾌락의 소굴로 인식했고 그 결과 현대까지도 하렘과 하맘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남아 있다.[4]

예니체리의 행진곡을 비롯한 튀르키예 음악들은 터키 행진곡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에서 재탄생했고 서양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 튀르키예 여행이 붐을 이루면서 16세기 후반부터 터키 여행기들이 출간,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5. 현대

20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의 멸망과 튀르키예 노동자들의 서유럽 이주, 이슬라모포비아의 영향으로 과거와 같은 열광적인 호응은 찾기 힘들지만 튀르키예 문화 애호가들은 꽤 많이 남아 있고 튀르크리 역시 현대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에도 유럽에서는 부유층 집을 내부를 묘사할 때 튀르키예식 가구들과 튀르키예 양탄자들을 집안에 들여놓은 모습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도 선호한다. 유럽인들이 그렇게 사 들여온 가구와 양탄자들로 자기 집 안을 장식하는 것이 현대까지 남아 있는 튀르크리 잔재의 좋은 예시.

6. 대표적인 튀르키예 문화 애호가 및 작품들

7. 튀르크리를 자극하는 대상들[7]

8. 관련 문서



[1] 나폴레옹 3세의 정부였던 프랑스 여배우 마드무아젤 라셸(Rachel Félix). 「바자제(Bajazet)」는 프랑스 극작가 장 바티스트 라신비극으로 17세기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데 라셸은 작 중 오스만 제국 술탄의 애첩 록산느를 연기했다.[2] 이에 따라 튀르키예 외의 또다른 튀르크권, 페르시아아랍을 포함하기도 하는데, 페르시아(이란)를 좋아하는 것은 페르소필리아(persophilia)라고 따로 부르는 말이 있다. 또 유대인을 좋아하거나 친이스라엘의 경우는 이스라엘로필리아(Israelophilia), 아랍 세계/아라비아의 경우는 아라보필리아(arabophilia), 베르베르의 경우는 베르베로필리아(berberophilia)라고 부른다. 이슬라모필리아(islamophilia)라는 것도 있는데, 이쪽은 국가나 민족이 아니라 종교 쪽이므로 튀르크리나 페르소필리아 등등과 겹치는 부분도 있고 겹치지 않는 부분도 있다.[3] 과학이나 수학, 천문학 등에서는 이슬람이 유럽보다 앞서 있었다는 내용은 중,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도 가르치는데, 학자들을 파견한 것을 계기로 이러한 지식들이 프랑스에 전파된다. 즉 '이교도기는 하지만 우리보다 나은 점이 많네...?'라는 깨달음(?)이 그들에 대한 호기심 내지 환상으로 바뀌어간 것.[4] 하렘을 다녀온 유럽 귀족 여성들이 하렘의 실상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럽 남성들이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해 그 여성들의 증언을 믿지 못했다.[5] 여기에서 동양은 한국인들이 흔히 생각하기 쉬운 동아시아가 아니라 오스만 제국이 위치한 중동 및 서아시아를 가리킨다.[6] 백작의 원수 페르낭 몽데고의 죄 중 하나가 '그리스 독립운동을 하던 알리 파샤를 배신한 것'이다.[7] 튀르키예 문화에 심취한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것들[8] 하렘의 시중을 드는 여성인 오달륵(Odalık)에서 유래된 단어로, 한국 역사로 치면 궁녀 비슷한 존재였다. 하지만 이것이 유럽에서는 황제의 후궁들로 와전되었고, 앵그르 등 서양 화가들이 오달리스크라는 제목으로 여성의 나체화를 많이 그렸다.[9] 오스만 제국이 강성했을 때는 그 행진곡 소리가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제국이 정체, 쇠락한 후로는 유럽인들에게 웅장하고 듣기좋은 행진곡이 됐다.[10] Kaftan.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방에서 널리 입어 온 전통 의복으로, 오스만 제국에서는 황제의 예복이었다.[11] 튀르키예에서 유럽으로 건너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