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도시에 대한 내용은 페스 문서 참고하십시오.
경제 용어나나 게임 이름에 대한 내용은 페스(동음이의어) 문서 참고하십시오.튀르키예어: Fes
영어: Fez
아랍어: طربوش ṭarbūsh
1. 개요
빨간색에 긴 술이 달려있는 옛 오스만 제국 시기의 남성용 공식 모자. 원래 오스만 제국에서는 터번을 착용했지만, 착용 방법이 매우 번거롭고 특히 높으신 분들은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수십미터에 달하는 천, 심지어 비단을 머리에 둘러 낭비를 조장했기 때문에 1826년에 오스만 제국의 30번째 술탄인 마흐무트 2세가 서구적 근대화 개혁에 맞춰 관복을 프랑스식 제복으로 대체하고 여기에 모든 신분을 막론하고 착용하도록 한 모자이다. 따라서 19세기 중동을 다룬 역사물에서 자주 등장한다.원래 페스는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또는 마그레브 일대의 아랍인들이 착용하던 전통 모자[1]로, 근대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점이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동서 문명의 교차로이자 튀르키예 특유의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점에선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하다. 모자 자체가 의외로 서구식 정장과 그럭저럭 어울리는 편이라 근대화 이후에도 생각보다 거부감 없이 자리잡을 수 있기도 했다.
다만 모든 신분을 막론하고 착용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높으신 분들은 그분들의 특유의 권위 의식을 포기하지 못하고 페스의 높이와 술의 두께로 자신들을 차별화했으며, 때문에 고위 관료들이 착용하던 페스는 매우 높다. 전통적으로 페스는 양털을 붉은색으로 물들여서 만들었으며 꼭대기에 다는 술은 갓을 만들 때 쓰는 것과 동일한 재질인 말총(말의 꼬리털)으로 만든다.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로 유명한 이원복 교수의 가로세로 세계사에선 "터키(튀르키예) 모자"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모로코나 알제리에서 오래 전부터 써왔던 모자인 만큼 이런 번역은 옳지 않다.
중앙아시아 일대에서도 "돕파(doppa)"라는 모자가 있는데 위구르족,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도 이 모자가 쓰인다.
2. 착용 모습
복식개혁(1826년) 이전에 그린 마흐무트 2세의 초상화
복식개혁 이후 서구식 관료 제복과 페스를 착용한 마흐무트 2세의 초상화
제국 말기 오스만 제국 해군 장교들[2]의 모습. 해군 역시 만국공통(?)의 영국 해군에서 유래된 서구식 해군 복제를 받아들였지만, 모자만은 챙 달린 정모 대신 빨간색 페스로 대체했고, 1916년에는 칼팍이라 불리는, 페스와 유사하나 모루수 모표를 부착하는 네이비 블루 색 모자가 추가로 도입되었다.
오스만 제국 육군 원수 오스만 누리 파샤.
장교들은 그나마 나은 편으로, 수병들은 세일러복과 페스라는 패션 테러급 조합을 해야 했다(...). 사진은 튀르키예 영화의 전성기시대인 1976년에 찍은 오스만 제국 해군 수병들을 주제로 한 케말 수날 주연의 영화 <젖형제들[3] - Süt kardeşler>에서 나온 모습.
오스만 제국 후기 튀르키예 오리엔탈리스트 화풍의 거장 '오스만 함디 베이'의 흑백사진
오스만 제국 시기 한 가족사진[4]
다만 하층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전통 복식이 애용되었으며, 혹은 전통 복식 위에 페스를 쓰는 정도로 절충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조합(guild) 체제로 운영하는 직공인, 장인, 요리사 같은 조직은 자신들만의 고유의상을 고수했다. 특히 페스를 쓰고 그 위에 다시 천을 둘러 터번처럼 쓰는 모습도 많았다.
오스만 제국 시기 한 카흐베하네(kahvehane, 커피집) 풍경[5]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 카를 1세의 사열을 받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보병대의 보슈냐크인 병사들. 우측이다. 왼쪽의 황제와 장교들이 쓰고 있는 건 페즈가 아니라 케피와 오스트리아식 야전모다.
3. 금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고 튀르키예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튀르키예 공화국을 수립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페스를 옛 오스만 제국의 잔재이자 청산해야 할 전통으로 주장했으며, 결국 1925년에 "모자법"을 통과시켜 페스의 착용을 금지시킨다.때문에 오늘날에는 튀르키예에서 페스를 공식적으로 착용하지 않으며, 이슬람주의자가 아닌 이상 일상적으로 착용하지도 않는. 튀르키예의 옥션이라 할 수 있는 기티기디요르(GittiGidiyor)에서는 오래된 페스를 경매에 내놓기도 하는데, 여기서 튀르키예인들의 취급은 그저 골동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4. 오늘날의 위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스는 튀르키예의 전통 문화로 살아남아 관광지에서 기념품으로 팔고 있는데, 보통 비싸봐야 10리라를 넘지 않으며 매우 저렴하면서도 가장 튀르키예적인 기념품으로 여겨져 짭짤하게 팔리는 편이다. 케밥 장수나 돈두르마 장수들이 분위기 내려고 착용하기도 한다.외국에서도 무언가 튀르키예적인 요소를 드러내고자 할 때 페스를 등장[6]시킨다. 특히 19세기 이후 서구에서는 페스를 쓰고 파자마를 입어 튀르키예인처럼 보이는 것이 상류 계급에서 일종의 유행으로 퍼지기도 했었다.[7]
그러나 페스는 모로코와 알제리에서도 튀르키예와 상관없이 오래 전부터 착용해 왔던 모자이며 오늘날까지도 쉽게 볼 수 있다. 이쪽 사람들은 페스를 두고 튀르키예 모자라고 하면 싫어한다.
파쇼다 사건 문서에 나오는 19세기 말, 수단 총독이던 영국인 고든 경도 이걸 쓰고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죽었다. 그래서인지 영국에 있는 그의 동상도 페스를 쓰고 말을 탄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어린 왕자에 나온 소행성 B612를 발견한 튀르키예인 천문학자도 소설에선 1909년 페스를 착용하고 나와 국제 천문학 회의에 이 소행성 발견을 알렸지만 무시당하고 11년 뒤에 페스 착용을 금지하고 양복을 입게 한 독재자의 명령으로 멋진 양복차림을 하고 다시 나와 이 소행성 발견을 설명하자 비로소 인정을 받았다고 나오기도 한다.
보슈냐크인으로 구성된 SS의 외인부대인 한트사르 산악사단은 페스를 정모로 착용했다. 사진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아민 알후세이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 필리핀 방사모로 지역, 태국 남부 파타니 같은 지역에서도 남자 무슬림들이 '송콕'이라는 페즈와 아주 유사한 모자를 쓴다. 현대적인 모양은 페즈로부터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고 '송콕'이란 머리 장식 자체는 중세시절부터 있었다고 한다.관련 위키백과
단 타 동남아 국가들이 무슬림 남성의 정체성을 내세우는거와 달리 인도네시아는 국가주의적 정체성이 더 강하다. 인구 다수 비율인 이슬람, 자바인 말고도 타종교, 타민족도 송콕을 쓰는 사람이 많으며 일부 여성들도 여성용 송콕을 쓰고 다닌다.
5. 대중매체
영국 SF 드라마 닥터후의 11대 닥터가 엄청 좋아하는 물건으로 나오기도 한다. 에피소드에서 페즈를 쓰고 있는 장면은 많지 않지만, 11대 닥터의 트레이드 중 하나. 작중 본인의 입으로 페즈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언급하기도 하고, 50주년 에피소드에서는 세 닥터를 한곳으로 모이게 하는 주요 물품이 되기도...
- 신기동전기 건담 W Endless Waltz - 마리메이아 군
- 아이작의 번제 - 유다
- FEZ - 고메즈(Gomez)
- 닥터후 - 11대 닥터, 10대 닥터[8]
- 그렁클 스탠 - 그래비티 폴즈
- 미이라 - 테런스 베이
- 모로코 - 폴란드볼[9]
- 튀르키예 - 폴란드볼
- 인도네시아 - 폴란드볼[10]
- 고릴라즈 - 러셀 홉스
- 램지 - 진격의 거인
[1] 모로코의 도시 이름 페스에서 비롯되었다. 모로코에서는 이 모자를 '타르부쉬'라고 부른다.[2] 왼쪽의 수장 위에 왕관 표지를 달고 철십자 훈장을 패용한 독일 제국 해군 장교는 루돌프 피를레(Rudolph Firle, 1881~1969) 중위로, 빌헬름 2세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해군의 몰트케급 순양전함 괴벤, 경순양함 브레슬라우 함을 양도할 때 함께 오스만 제국 해군에 편입된 승조원들 중 한 명이다. 이들은 오스만 해군에 편입되었다는 표시로 정모 대신 페스를 착용했다.[3] 같은 유모 젖을 먹고 큰 사이를 의미한다. 참고로 이슬람권에서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건 굉장히 가까운 사이로 여겨지는데 심지어 사촌 간 결혼은 전혀 문제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큰 젖남매라면 피 한방울 안 섞여도 결혼할 수 없고 근친상간처럼 간주할 정도이다.[4] 사족이지만 사진속 여자의 머릿수건 모양을 볼 때 절대로 무슬림 가족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폰토스 지방특유의 머릿수건을 하고 있는데, 그곳 출신의 세속화된 무슬림 혹은 룸(그리스계 튀르키예인)일 가능성이 높다.[5] 오스만 시절만 해도 튀르키예 커피가 주요 음료수였지만, 공화국 시대 이후 찻집이 그 풍경을 대신하고 있다.[6]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도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페스를 쓰고 콧수염을 기른 남성을 등장시켰다.[7] 오스만 제국/튀르키예의 문화가 유럽에도 유행한 것은 그 역사가 깊어서, 이미 16세기 때부터 융단이나 음악, 의복 등이 유행했다.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와 앙리 2세 부자(父子)의 경우 오스만산 융단 위에 올라선 채로 초상화를 남기기도 했으며,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이 작곡한 터키 행진곡도 괜히 '터키' 가 아니다. 굳이 오스만 제국풍이 아니라 해도, 19세기에 영국 상류층에서 자기 집안에 있을 때 터번과 물담배 등 인도 문화의 산물들로 주변을 둘러싸 놓고 즐기는 풍경이 흔했다.[8] 아주 잠깐 11대 닥터의 페즈를 착용했다.(...)[9] 원래 마그레브의 전통모자이기도 하고, 모로코에는 도시 페즈가 있는지라 페즈를 자주 씌운다.[10] 정확히 말하면 페즈가 아니라 송콕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