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만 모스크바 주립 기술 대학교에서 제안한 소련의 시제 중전차. 이 설계안은 키릴자로 Советский тяжелый라 쓰며 약자는 CT, 로마자로 적으면 Sovetskii tyazhelyi, ST라고 표기한다. 이름의 의미 자체는 그냥 '소비에트 중전차(Soviet Heavy)'.
기존 소련의 중전차들의 단점을 보안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1945년 1월에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차대는 당시 개발중이던 IS-4 중전차의 프로토타입 차대를 활용했다.
연사력을 높이는 등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 포탑을 재설계하였으며, 승차한 승무원의 안정성과 포탄의 적재 위치를 최적화 시키기 위해서 동축기관총과 소구경 포 및 주요 장비를 밀접하게 배치하였다. 그 외에도 해치의 개수를 3개로 증가시키고, 전기 및 유압드라이브를 추가하였다. 이로서 기존의 소련 중전차들보다 승무원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늘렸다.
현가장치 설계 일부를 바꾸면서 직경이 더 큰 보기륜을 사용하도록 하여 기동 안정성을 늘리고, 기존보다 잠수도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포탑과 배기 설계 일부도 변경하였다.
또한 수직 안정기와 포탑 안정장치의 도입을 계획하여 명중률이 개선되었으며 연사력도 더불어 빨라지게 되었다.
계획대로는 IS-4를 비롯한 기존 소련 중전차들의 문제점[2]들을 개선하고 잠수도하능력을 늘린 대규모 개량형이었지만, 새로운 설계와 기술 도입으로 인해 가격이 오르는 문제와 포탑의 재설계로 차고가 전보다 높아지는 점, 그리고 중량[3]문제에서도 큰 개선은 없는 등 결정적으로 IS-4보다 큰 발전이 없다고 판단되어 생산되지 못하고 설계도면으로만 남게 되었다.
소련 중전차 9티어로 등장한다. 고증상으로는 IS-4가 먼저 나와야 하지만, 연구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10티어에 IS-4가 배치됨) 이중포신 버전인 ST-2 또한 1.7.1 업데이트를 통해 10티어 전차로 추가되었다. 다만 ST-I에서 올릴수는 없고 독자 트리로 분기되어 나온다.
[1] 전차장의 조명탄 발사용 장비.[2] 특히 좁은 포탑과 승무원 거주성 문제 등[3] 중전차의 중량 문제는 소련의 다른 중전차 개발들에도 영향을 줬는데, 초고성능 중전차로 만든 IS-7은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과도한 중량 문제로 생산되지 못했고, 2차 대전 전후 생산된 IS-4도 중량 문제 때문에 IS-3보다 일찍 퇴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