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기 프랑스 기갑차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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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C 1935 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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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뮤아 기갑 박물관 소장 Pz.Kpfw. 35-S 739(f) 기동 영상 |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바스티유 데이) 퍼레이드에서 B1 bis와 함께 기동중인 Pz.Kpfw. 35-S 739(f) |
소뮤아가 개발하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쓰인 프랑스군의 중기병전차. 정식 제식명칭은 AMC[1] 1935 S이지만, 제식명보다는 제작사인 소뮈아 사의 이름을 딴 Somua S35라는 이름이 더 유명하다. 흔히 소뮤아로 알려져 있는데, 프랑스어 표기법상 소뮈아가 정확하다.
2. 제원
AMC 1935 S | |
전체길이 | 5.38m |
전체너비 | 2.12m |
전체높이 | 2.62m |
전비중량 | 19.5t |
탑승인원 | 3명 (전차장, 조종수, 무전수) |
엔진 | SOMUA V-8 가솔린 엔진, 190hp(140kW) |
변속기 | 전진 5단 후진 1단 수동변속기 differential steering 도입(제자리 선회 가능) |
현수장치 | 판 스프링 방식 서스펜션 |
연료탱크 | 310L + 100L 분할식 내장 연료탱크 |
최고속도 | 40.7km/h(도로), 32.2km/h(야지) |
항속거리 | 230km(도로), 130km(야지) |
무장 | 32구경장 47mm SA35 전차포 1문 (118발) |
7.5mm 레이벨 기관총 2정 (2,250발) | |
장갑 | 차체 전면 47mm / 22도 - 45도 |
차체 측면 45mm / 90도 | |
차체 상면 20mm / 0도 | |
차체 바닥 20mm / 82도 - 90도 | |
포탑 전면 56mm / 90도 | |
포탑 측면 46mm / 22도 | |
포탑 후면 46mm / 22도 | |
포탑 상면 28mm / 72도 - 90도 | |
생산시기 | 1937년 - 1940년 6월 |
생산량 | 430대 |
3. 개발사
1933년 8월 2일에 프랑스군 참모본부는 새로운 종류의 6톤 전차 개발계획을 진행하였으며 주요 목표는 르노 FT를 교체하는 것이었다. 해당 계획의 결과물로 르노 R35와 호치키스 H35가 만들어졌고 일단 소형 보병전차 수요는 충족된 것으로 보였다.하지만 기갑부대로 전환된 프랑스의 기병대는 1934년에 전투장갑차(Auto Mitrailleuse de Combat)라는 명칭으로 3명의 전차 승무원이 탑승하는 좀 더 무겁고 강력한 전차를 요구했으며 구체적으로는 47mm 전차포와 7.5mm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최대속도 30km/h를 달성 가능한 7.5톤 전차였다.
해당 계획에 대응하여 르노 AMC-34가 만들어졌으나 장갑을 포함한 여러가지 면에서 불만족스러워서 1934년 6월에는 중량한계가 13톤으로 늘어나고 40mm 장갑을 장착해야 하며 APX-1 포탑이 추가되고 30km/h의 평균속도와 200km의 항속거리가 요구되는 등 AMC 개발 프로그램 자체가 신형 대전차포에도 버틸 수준으로 크게 변경되었다. 르노는 변경된 개발계획에 따라서 기존의 프로토타입을 변경했으나 이렇게 대응하기도 전에 강력한 경쟁자였던 소뮈아(Somua) 사(社)[2]가 르노를 앞질렀다.
이미 1934년 5월 17일에 프랑스 육군의 관계자가 소뮈아를 방문해서 새롭게 변경되는 개발 계획 참여 의사를 타진했고 소뮈아는 1934년 7월 16일에 프랑스군의 제안을 수락한 후 1934년 10월 12일부터 프로토타입인 AC3을 제작하기 시작해서 1935년 4월 14일에 출시함으로서 새로운 전차의 개발 계획의 주도 회사로 소뮈아가 선정되었다. AC3은 아직 포탑을 완성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동일한 중량의 모의 포탑을 달고 1935년 7월 4일부터 8월 2일까지 실험이 실시되었으며 4가지의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진 끝에 AC3보다 발전된 프로토타입인 AC4가 만들어져서 1938년 1월 27일까지 각종 테스트를 받게 된다.
AC4는 아직 단포신 SA 34 47mm 주포를 장착한 APX-1 포탑을 장비했으나 일단 신형 전차가 급한 프랑스군은 1936년 3월 25일에 AC4 설계를 공식 명칭 Automitrailleuse de Combat modèle 1935 S로 지정하면서 소뮤아 S35를 제식채용했으며 50대를 처음으로 주문했다. 그리고 생산과정에서 주포를 장포신 SA 35 47mm 주포로 교체하고 포탑도 APX-1에서 APX-1 CE로 교체하여 기존의 포탑링 규격을 1,022mm에서 1,130mm로 증가시킴으로서 무전수가 전차장에게 포탄을 넘겨줄 수 있는 1.5인승 포탑으로 교체했다.
소뮤아 S35는 처음에는 600대를 생산하여 프랑스의 3개 기병 기갑사단에게 200대씩 배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해당 전차가 982,000 프랑이라는 높은 가격으로 인해 예산조달문제로 인해 50대의 첫 주문 이후에는 1936년에 50대, 1937년에 100대, 1938년에 2차례에 걸쳐서 각각 125대를 주문하여 2차대전이 터지기 전까지 총 450대의 주문이 이루어졌다.
아러다가 전쟁이 터지자 주문을 급증시켜서 최종적으로 2,000여대 이상을 생산목표로 잡았고 심지어 당시에는 중립국이었던 미국에다가 S35와 개량형인 S40의 라이선스를 주고 2,000대의 대규모 주문을 한 후 생산량을 미국과 프랑스가 나누어서 받는 방식까지 제안하는 등 필사적으로 소뮤아 S35의 생산량을 늘리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짧은 시간안에 대량의 전차를 생산하기에는 프랑스의 생산력이 너무 부족하며 특히 주조장갑의 대량생산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등의 이유로 인해서 프랑스 침공으로 프랑스 제3공화국이 무너질 때까지 430대만 생산되는 바람에 원래의 20% 정도밖에 안되는 저조한 수량만이 도입되었다.#1
4. 분류
프랑스의 경우 영국 전차 설계사상의 영향을 받아 전차를 크게 보병전차(infantry tank)와 기병전차(cavalry tank)로 구분하고 이 양자 사이의 엄격한 '분업'을 전제로 전술을 운용하였다. 보병전차로써 개발된 르노 B1이나 르노 R35와 달리, S35 전차는 경쾌한 기동성을 지닌 기병전차로써 개발되었다.보병전차는 통상의 전차보다 무겁고 중무장과 중장갑을 지닌 중전차(heavy tank)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병 사단이 방어망이 촘촘히 이루어진 적의 진지를 돌파할 때 이를 엄호하여 적의 수비선을 깨는 용도로 개발된 전차를 의미하며 따라서 속도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보다 강력한 화력과 두꺼운 장갑을 필요로 한다. 소련의 중전차 개념과 같다.
반면 기병전차라는 것은 무게가 보다 가볍고 속도가 빠른 전차로서 독립적인 운용이 가능한 전차들을 말한다(medium tank). 따라서 기병용 전차의 경우, 가장 중요한 점은 속도이고 따라서 무장이나 장갑을 희생시켜 비교적 소구경의 화포를 장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는 이 기병용 전차의 경우 주요 상대가 적의 단순한 보병부대나 장갑차라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즉, 일단 보병과 무거운 보병전차(heavy tank)에 의하여 적의 수비라인이 뚫리게 된 이후에 이들 가볍고 빠른 기병전차들이 적의 후방까지 순식간에 진격하여 적이 대열을 정비하기 전에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적의 통신망을 파괴하는 것 등이 그 주된 임무라는 것이다.
물론 개념은 이렇지만 현실 상황은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러한 보병전차와 기병전차의 구분법의 중요한 문제다. 예를 들어 당장 스페인 내전에서도 원래 패주하는 적의 보병을 상대로 하기로 하였던 기병전차의 경우 실제로는 온전히 은폐하고 매복중인 적의 전차와 마주치는 일도 많았고, 또 보병들의 대전차포와 대전차 소총의 십자포화를 신나게 두드려 맞게 됨으로써 많은 피해를 봤다. 즉, 실제 전장에서 보병전차와 기병전차를 엄격히 구별하여 각각 다른 전술을 적용하기가 곤란해진다는 것이다.[3]
5. 파생형
5.1. 프랑스
5.1.1. 자주포 개수형
5.1.1.1. 소뮤아 SAu40
Somua SAu 40 |
자세한 내용은 소뮤아 SAu40 문서 참고하십시오.
5.1.2. 현대화 개수형
5.1.2.1. 소뮤아 S40
S40 |
1939년에 소뮤아가 제안한 AC5를 기반으로 한 개수형으로 S35의 포탑을 ARL 2C 포탑을 채용하여 대형화하고 생산 원가 등을 낮추기 위하여 차체(포탑) 부분의 접합에 용접을 사용하며 18개의 하청업체가 생산하는 좀 더 성능이 낮은 주조장갑을 채용하는 등의 계획이었다. 성능이 향상되는 부분도 많아서 현가장치를 개량하여 소뮤아 S35에서 제기되었던 전차의 경사지역 등반문제를 해결하고 동력기관을 개선된 230마력 엔진으로 교체하여 최대 속력을 45km/h로 늘리며 중량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차체를 140mm 낮추어서 400kg 정도로 매우 적은 중량만 증가하였으며 포탑을 대형화하여 계획하고 있던 60mm 주포를 채택할 수 있게 하는 조치도 취해졌다.
1939년 9월 21일에 50대를 처음으로 주문받았으며 1940년 7월에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었다. 원래 계획상으로는 소뮤아 S35는 450대로 일단 생산이 끝나고 소뮤아 S40이 새로운 전차 생산의 주요 품종이 될 예정이었다. 이미 1939년 11월부터 차체용 장갑이 주조되기 시작했으며 최초 생산분인 160대중 80대는 소뮤아 S35가 채용한 구식 포탑을 장착하고 출고할 예정이어서 전시 긴급생산 체제도 고려했다. 주포 업그레이드 계획인 60mm 주포 탑재계획도 이미 1940년 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개선된 엔진은 1940년까지 출시되지 못했고 S40 자체도 1대의 프로토타입만 만들어졌을 뿐 1940년에 프랑스 침공이 일어나면서 생산되지는 못했다.
프랑스 점령 이후 당시 프랑스 주재 독일 대사였던 오토 아베츠가 비시 프랑스 정부와 합의하여 800대의 소뮤아 S40를 생산하고, 200대를 비시 프랑스에, 600대를 독일과 이탈리아에게 보낼 계획도 세웠지만 프랑스 재무장에 회의적이었던 아돌프 히틀러가 이를 거부하였다.[4]
1940년 11월에는 일본 제국 측에서 이 전차에 관심을 보여서 1942년 2월 9일에는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과 교전하게 된 일본을 지원하기 위해 비시 프랑스가 약 250대를 생산해서 보내주기로 약속이 잡혔다. 그리고 1942년 초에는 나치 독일이 소뮤아 S35와 S40이 구식전차가 되었다고 판단하면서 비시 프랑스군에 소뮤아 S40을 생산해서 공급할 수 있다는 허가가 떨어진다. 그래서 G1 전차용으로 개발하던 FCM 포탑을 탑재하여 포탑을 더 큰 것으로 교체한 두 가지 모델이 검토되었으며 첫번째 모델은 기존의 SA 35를 탑재한 2인용 포탑이고 다른 모델은 구경은 47mm로 동일하지만 포신이 더 길어진 SA 37를 탑재한 3인용 포탑이었다. 비시 프랑스는 45대로 구성되는 3개 부대를 편성하기 위해서 일본이 요청한 수량 이외에도 135대를 추가로 생산하기로 결정했으나 비시 프랑스가 연합군과 내통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나치 독일이 1942년 11월경에 전격적으로 프랑스를 재침공하고 프랑스 군정청을 설립하면서 무산되었다.
하지만 ARL 42 포탑에 SA-32 75mm 32구경장 전차포나 SA-44 75mm 44구경장 전차포를 장착하는 SARL42는 비밀스럽게 개발이 지속되었으며 중량을 제한하기 위해서 측면장갑을 30mm로 감소시켰다.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으로 프랑스가 해방된 후인 1945년에는 남아도는 소뮤아 S35의 차체 위에 17파운더를 장착하는 대전차 자주포 계획이 제안되기도 했다.
5.2. 나치 독일
5.2.1. 현대화 개수형
5.2.1.1. Pz.Kpfw. 35-S 739(f)
Pz.Kpfw. 35-S 739(f) |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S35 전차는 독일에 의하여 압수(약 297대 정도)된 다음 방어용 전차 혹은 훈련용 전차로 전환되어 독일 국방군에 의해 사용된다. 이 때 독일군은 전차장용 전망탑 위에 구멍을 뚫고 그 위에 해치를 만들고 내부 장비들의 일부를 기존에 사용하던 독일제 장비로 교체하는 등의 개조 작업을 한 후 Panzerkampfwagen 35-S 739(f) 라는 이름으로 제식화했다.
독일군의 경우 이 S35 전차 등의 프랑스 전차들로 211전차연대(211 Panzerregiment)를 구성하여 이후 핀란드 등지로 보내어 소련군과의 전투에 사용했다. 물론 이 S35 전차는 동부 전선에서의 치열한 전투 등으로 많이 파괴되었고 따라서 1944년 12월경에는 독일측에 약 12대 정도만 남았다.
일부 S35 전차는 이탈리아 왕국과 불가리아 왕국 등에도 공여되었다.
독일군이 개수한 S35 중 프랑스 내에 남겨진 전차는 프랑스 주둔 독일군이 계속 사용하여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도 참가하였으며, 1944년 8월 파리 해방 직전에 동원되기도 했다. 당시 파리는 연합군의 파리 진주를 눈앞에 두고 파리 시민들이 봉기, S35는 이 과정에서 진압을 위해 전투에 동원되었다.
자유 프랑스군 소속 Pz.Kpfw. 35-S 739(f) |
그리고 일부 차량들은 레지스탕스나 자유 프랑스군 등에게 다시 탈환되어 프랑스군 소속으로 다시 활동하였다.
5.3. 유고슬라비아
5.3.1. 무장 교체형
5.3.1.1. SO-57
SO-57 |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들이 독일군이 파르티잔 소탕용으로 사용하던 S35 전차를 노획하여 OQF 6파운더 대전차포를 단 버전이 존재한다. 제식명은 SO-57 이다.
6. 장점
- 소뮤아 S35의 주포는 APX 47mm 대전차포를 기반으로 한 47mm SA 35 mle 1935로 32구경장으로 1504mm의 포신길이를 가지며 포구초속 671m/s으로 철갑탄을 발사하여 500m 거리에서 30도 경사장갑 40mm를 관통가능하며 포신상하조절도 -18도에서 +20도로 충분했다. 당시 가장 성능이 우수한 전차포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라서 프랑스 침공 당시 시점으로 나치 독일이 보유한 모든 전차의 전면 장갑을 충분히 관통가능했다.#1
- 경사각이 주어진 전면 47mm 장갑은 1936년 시점에서 독일의 1호 전차와 2호 전차, 체코슬로바키아제 LT vz. 35보다 훨씬 두꺼운 중장갑이었으며, 당대 독일의 전차포로는 전면장갑을 사격시에는 영거리 사격을 해도 관통이 매우 어려웠으며 8,8cm FlaK을 동원하거나 집중사격으로 장갑의 피로도를 증가시켜서 깨뜨리는 방식을 사용해야 했다. 따라서 신속하게 S35의 측면이나 후면으로 우회해서 공격하는 난이도가 높은 전술을 써야 했다.
- 기동성 역시 매우 좋아서 190마력의 엔진으로 최고 속력은 40.7km/h, 항속거리는 230km이나 되는 등 공격, 방어, 주행의 3박자가 조화를 이루면서 각각의 성능도 매우 좋았다. 기존의 프랑스제 전차와는 달리 중장갑과 중무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속기동이 가능해서 변화하는 전선 상황에 빠른 대처가 가능해졌다.
- 방어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주요 부분을 주조장갑으로 제작했다. 부착 위치는 전차의 밑부분(이 위에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이 위치), 앞부분(승무원들이 탑승하는 공간으로 포탑 등을 커버), 뒷부분(엔진을 커버하는 부분)의 중요한 세 군데 지점이며, 그 당시 전차로는 드물게 주강으로 된 장갑에 경사각을 채용하여 방어력을 더욱 증강시켰다. 게다가 주강장갑을 분할하여 제작한 후 볼트로 결합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을 주었다.
- 그 당시의 신기술인 differential steering 시스템을 채용하여 각 무한궤도들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한쪽은 빨리, 다른 쪽은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여 차체가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이 가능했다. 이러한 기능을 추가한 변속장치는 전진 5단, 후진 1단으로 실사용에 문제는 없었다. 르노 B1 전차의 주포가 차체에 완전히 고정되어 제자리 선회로 조준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와 마찬가지였던 것. 조향장치 역시 핸들식으로 되어 있었다.
- 엔진과 전투실을 방화격벽으로 분리시켰고 자동소화장치를 장비하였다. 작동 방식은 전차 내부의 엔진, 연료탱크, 운전석 뒤 등 중요한 부분의 온도가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탱크 안의 스프링클러가 자동 작동하는 방식으로, 소화액으로는 메틸화 브로민(CH3Br)이라는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빠른 소화 및 소화 후에도 기기가 정상작동되도록 한다.[5]
- 현가장치의 재질은 강철제인데, 우선 전차 앞쪽에 커다란 롤러형 유동륜(idler pulley)이 앞쪽에 위치하고 전차 뒷편에는 커다란 톱니바퀴 형태의 기동륜(sprocket)이 장착되며, 이들 아이들러와 스프로켓 사이에는 작은 형태의 9개의 바퀴가 장착되었는데, 그 중 8개는 (2개씩 짝을 이루는) 로드 휠(eight road wheels paired on four bogies)이었고 나머지 1개는 텐션 휠(tension wheel)로 구성된다. 약간 복잡한 방식이지만 B1과는 달리 고속주행이 가능하며, 그 당시의 프랑스 전차들이 그렇듯이 이 바퀴를 보호하기 위하여 철판으로 사이드 커버를 씌워서 적의 사격으로 인한 파손에 대비하였다.
- 무한궤도는 초기형의 경우 144개의 트랙(track link)로 구성되었고 각각의 트랙의 경우 길이가 75mm이지만, 후기형의 경우는 103개의 트랙에 각 트랙 길이 105mm의 것으로 바뀐다. 초기형이건 후기형이건 고속주행에 문제는 없었다. 접지압도 0,75 kg/c㎡ 로 매우 양호했다.
기본적으로 공수주의 3박자를 모두 맞추었기 때문에 그 당시 실전에 배치된 그 어느 전차(기병용 전차로서)보다도 우수하면 우수하지 절대로 밀리지 않는다. 일단 경쟁자로 소련의 BT-7과 독일의 3호 전차가 있는데, 전자는 장갑이 종잇장같이 얇은데다가 주포 및 조준장치가 부실하다는 문제점이 있고, 후자의 경우도 장갑이 얇은데다가[6] 상당수의 형식이 37mm 전차포를 장착해서 화력에서도 열세를 보였다.
7. 단점
-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고속주행이 가능하지만 현가장치가 너무 약하고 수리하기가 아주 어려워 분해에만 하루가 걸릴 정도로 유지 보수가 힘들었다. 이 부분은 전쟁 직전인 1939년에 와서 개선이 이루어졌으나 충분하지는 않았고 무한궤도의 경우에는 일단 파손되면 현장에서 전차 승무원이 수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전투시에는 전차를 일단 포기해야 하는 사태를 가져왔다.
- 엔진과 변속기 점검을 위해서는 장갑을 분해해야 하는데 구조가 복잡한 관계로 인해 13시간이라는 장시간을 소모해야 가능했다.
- 연료 탱크가 100리터와 310리터의 2개로 나뉘어 있었다. 문제는 구조가 복잡하고 제대로 된 교육도 잘 이루어지지 않아 100리터 연료탱크에만 기름을 채우고는 연료를 가득 채웠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나왔던 것. 덕분에 항속거리가 수십 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B1과 유사하게 전차 후방에 직접 연결하는 견인식 연료 트레일러가 달린 전용 연료 보급차량도 계획되어 있었으나 정작 해당 차량은 전차전에 투입되지 않는 화염방사전차에서도 후방의 연료 트레일러를 공격당하면 유폭의 위험성이 극도로 높아지는 등의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제대로 배치가 되지 않아 실전에서는 더욱 장거리 이동에 문제가 많았다.
S35의 APX-1 포탑 구조도 |
- APX-1 1인용 포탑을 채택하여 전차장 1인이 좁은 포탑 안에 들어가서 방향지시, 전투 준비명령, 포탄 장전 및 탄피 배출 등 전차장, 포수, 탄약수의 역할을 혼자서 다 해야 한다. 즉 1인 3역인 셈인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방향지시를 할 때는 사격을 못하고, 주포를 조준할 때는 주변 관찰을 못하며, 장전할 때는 전투 지시를 못 하는 등의 애로사항이 발생하므로 항상 독일의 전차보다 매우 굼뜨고 반응속도가 느리게 된다. 개량형에서는 그나마 포탑을 조금 크게 만들고 포탑링을 확장해서 차체 오른쪽의 무전수가 전차장에게 포탄을 건네주는 등 약간의 보조를 할 수 있는 APX-1 CE 1.5인용 포탑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2인용 포탑 채용의 의견이 올라갔으나 장갑이 약화된다는 지적이 올라와서 결국 1인용 포탑 문제는 S35에서는 해결하지 못한다.
물론 이건 S35의 문제만은 아니고 1인승 포탑을 채택한 모든 초기형 전차들의 문제지만 보병전차도 아니고 전차간의 전차전에서 프랑스군의 주력을 담당해야 할 전차가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가지게 되면 제대로 싸울 수 없다.
그래서 르노 B1이 차체에도 75mm 포가 달려 있어서 포탑의 전차포는 비상용이나 긴급대응용으로 미리 47mm 전차포탄 1발을 장전해놓고 그 이후에는 전차장이 전차장 역할만 하면서 전투를 진행하므로 독일군에게 매우 인상깊은 수준의 타격을 안겨주었지만 소뮤아 S35는 반응속도가 너무 느려서 허우대는 멀쩡한데 의외로 허당인 이미지가 남고 말았다.
- 주강으로 된 장갑판을 연결하는 방식은 몇 개 안되는 볼트. 그래서 설령 포탄이 장갑을 관통하지 않더라도 몇 번 집중적으로 포격당하다 보면 볼트가 부서진다. 일단 그렇게 되면 장갑이 알아서 분리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역시 프랑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용접 기술이 부족했던 초기형 전차들이 겪던 문제다.
- 모든 전차에 무전기를 지급하기로 했지만 보급이 늦어서 무전기는 소대장 전차에만 지급했기 때문에 4대 중 한대 꼴이였다. 그래서 모든 전차가 안테나를 가지고 있지만 실상 쓸 수 있는 차량은 일부에 불과했다. 덤으로 무전기 자체의 성능도 안좋았으며 전차 승무원간의 내부 통신망이 전혀 없었다.
이렇게 겉으로만 멀쩡하고, 속으로 감추어진 단점이 많이 나타난 이유는 프랑스 군부에서 개발 제원을 제시하고 전차 개발을 민간 업체에 맡기는 과정에서 군부의 감독과정이 철저하지 못한 데 있었다. 우선 군부의 요구사항(개발 제원)이 상세하지 못하고 모호한 부분들이 많았으며, 이에 따라 각 개발업체에서는 세부적인 부분들의 상당수가 공백으로 남겨져 있는 상황이어서 그들의 입맛에 맞게 제조 단가를 줄이려는 온갖 방법을 쓰게 되는데 이에 대한 통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원가 절감의 대표적인 사례인 해치 없는 단차장 전망탑과 후방 포탑 해치 |
이 때문에 포탑에 전차장용 전망탑(큐폴라)은 있는데, 해치가 없어서 전차장이 외부를 제대로 관측하기 위해서는 1차대전기의 르노 FT 마냥 포탑 뒤를 통째로 개방하고 상반신을 모두 드러내는 등의 생각하기 힘든 일들이 종종 벌어지게 되었다. 전망탑에 제대로 된 해치가 있다면 전차장이 머리만 잠깐 살짝 내밀고 외부 관측을 한 후에 다시 머리를 숙이면서 해치를 닫으면 끝나는 간단하고 빠르며 안전한 일이 위의 사진처럼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며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는 행동이 된 것이다.[7]
8. 총평
당시 기준으로 공격, 방어, 주행의 3대 요소를 모두 충족한 전차다. 그래서 스펙상으로는 1930년대 최고의 전차라고 불리기도 했다.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간기 기준이다. 2차 대전의 프랑스 침공 기간까지는 공격, 방어, 주행의 삼박자가 잘 맞았지만, 그 삼박자에만 집중을 했기에 다른 부분들의 열세가 심했으며 사소해보이지만 심각한 단점이 많아서 종합적인 전투력에서는 엄청나게 열세였다.
8.1. 운용 당시의 문제점
이런 사태가 발생한 이유중 일단 전차 자체의 문제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이유를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원래 프랑스군이 요구한 수량은 약 2,000대에 육박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450대만 공급되어 프랑스군이 원하는 소위 '집중적인 운용'을 할 수 없었다.
- 프랑스군의 지나치게 구태의연한 소극적인 전략, 즉 마지노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식의 안이한 수세적인 전략으로 전차 운용에 있어서도 일단 시간적으로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안이한 전술과 이를 역이용한 독일 국방군의 허를 찌르는 전격전에 말려들어 프랑스 전차부대가 우왕좌왕하다가 독일군의 공격에 맥없이 무너졌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프랑스군이 독일 국방군의 공격 예상 지점으로 판단한 곳에서의 독일군의 공격은 종종 속임수(feint: 위장 공격)로 판명되었고 반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독일군의 전차 부대가 프랑스 전차 부대를 포위하는 상황이 벌어지므로 이 포위된 전차 부대를 구원하기 위하여 다른 곳에 포진한 전차 부대들이 급히 이동하게 되는데 독일군은 이렇게 프랑스군이 우왕좌왕하는 틈을 노려서 대대적인 역습에 나서게 된 것 등이다.
- 일부 운용상의 미스가 있었는데, 하나의 예를 든다면, 무전기가 턱없이 부족하여 S35 전차의 80%는 무전기 없이 전투에 임하는 꼴이 되었다. 상세히 설명하자면 프랑스 전차 부대의 경우 5대의 전차로 구성되는 소대급에서 보면, 선두 지휘차량에게만 본대와 연락할 무전기(ER-29)가 주어져 직접 본대에 보고하고 그 지시사항을 휘하 전차들에 다시 사실상 내부 교신용 무전기(ER-28)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 자체가 각 전차마다 본대와 연락할 수 있는 무전기를 각각 지급한 독일에 비하여 아주 열악한 시스템일 뿐만 아니라, 그나마 이 사실상 내부 교신용 무전기들이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여 선두 지휘차량을 제외한 후미의 전차들의 경우 무전기가 전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8]
9. 실전
9.1. 제2차 세계 대전
9.1.1. 서부전선
9.1.1.1. 프랑스 침공
프랑스 침공 당시의 프랑스 육군 소속 소뮤아 S35 |
개발 당시의 문제점들과 운용 과정에서 발생한 복합적인 문제점 때문에 대다수의 소뮤아 S35 전차들은 격파당하거나 항복 이후 독일 국방군 수중에 압류되었다.
하지만 숙련병들이 운용할 때는 제법 활약했는데 장블루, 아뉘 전투가 그것이다. 겨우 10대의 S35가 약 120대의 독일 전차 부대와 전투를 벌여서 어떠한 지원도 없이 숫적 열세를 극복하고 26대를 격파했는데 그 상대가 대부분 4호 전차였다. 초기형 4호 전차가 대전차전보다는 보병 지원을 염두에 둔 전차이기는 해도 독일 국방군 입장에선 전차다운 전차인 4호 전차를 다수 상실한 독일군의 속이 꽤나 쓰렸을 것이다. 독일군은 이어진 전투에서도 50대의 전차를 추가로 잃었다. 이것은 숙련된 프랑스 전차 승무원들이 운용할 때는 훌륭한 무기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9.1.1.2. 노르망디 상륙 작전
9.1.2. 북아프리카 전역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게 항복한 후에는 일부의 S35 전차들이 북아프리카에 있는 프랑스 식민지로 배치되는데, 이 전차들은 이탈리아 왕국군과 독일 국방군의 북아프리카 작전 때 함께 동원되었다. 물론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이 궤멸된 이후에는 샤를 드골 장군 휘하의 자유 프랑스군의 장비로 편입되지만, 그 시점에서는 이미 구식장비화하여 제대로 운용되지 못했다.9.1.3. 독소전쟁
1943년 러시아에서의 제3SS기갑사단 "토텐코프" 소속 Pzkpfw 35-S 739(f) 200호차 |
10. 운용국
10.1. 유럽
10.1.1. 프랑스
소뮤아 기갑 박물관 소장 Pz.Kpfw. 35-S 739(f) |
원조 사용국. 유일하게 기동 가능한 S35 역시 소뮤아 기갑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데, 순정 사양이 아닌 독일 국방군에 노획된 이후 개조를 받은 차량을 자유 프랑스군이 재노획한 차량이다.
10.1.2. 나치 독일
독일 국방군 소속 Pz.Kpfw. 35-S 739(f) |
프랑스 침공에서 297대를 노획해서 전망탑을 개조해서 해치를 설치하고 내부 시설의 일부를 독일제로 교체한 후 운용을 시작했다. 각종 전투에서 소모가 심했으나 1944년 12월 30일에도 12대를 여전히 운용하였다.
10.1.3.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왕국군 소속 S35 |
1941년에 나치 독일군이 32대를 공여했다.
10.2. 헝가리 왕국
1942년에 나치 독일군이 2대를 공여했다.10.2.1. 불가리아 왕국
1943년에 나치 독일군이 6대를 공여했다.10.2.2.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 전역에서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이 2대를 노획했다.10.2.3. 소련
애국공원 소장 Pz.Kpfw. 35-S 739(f) |
독소전쟁 당시 일부 Pz.Kpfw. 35-S 739(f)를 독일 국방군으로부터 노획하여 운용하였다.
11. 미디어
11.1. 게임
11.1.1. 월드 오브 탱크
Pz.Kpfw. S35 739 (f) |
독일에서 노획해 개조한 버전이 3티어 프리미엄 중형전차로 등장한다. 포탑에서 혼자 용 쓰는 전차장의 편의는 플레이어가 알 바 아니므로(...)[9] 괜찮은 성능을 보여준다. 월드오브탱크의 유입이 활발하던 시절 저티어의 자라나는 새싹들을 짓밟는 제초전차로 유명했으나 저티어 유저수가 매우 줄어들어 게임사에서 봇을 돌려주지 않으면 방 자체가 잡히지 않을 정도인 현 상황에서는 잊혀졌다.
Somua S35 |
S35 CA |
11.1.2. 강철의 왈츠
파생형인 S40이 3성 4도면 중형전차로 2017년 7월 27일 업데이트로 등장했으며 S35가 동년 9월 21일 업데이트때 3성3도면 중형전차로 등장했다.CA버전은 2023년 6월 26일부터 2023년 7월 23일까지 이벤트로 얻을 수 있는 특전부대의 장갑차로 등장한다.
11.1.3. 도미네이션즈
자세한 내용은 중장갑 기병(프랑스) 문서 참고하십시오.글로벌 시대의 두 번째 프랑스 고유 유닛인 S-35 전차로 등장한다.
11.1.4. 워 썬더
S35 |
11.1.5. 스틸 디비전 시리즈
독일군, 유고슬라비아, 헝가리군에서 노획전차로 등장한다. 1944년이 배경이라 보병이나 장갑차 정도만 제압 가능한 하급 유닛이다.11.2. 만화
11.2.1. 걸즈 앤 판처
걸즈 앤 판처의 S35 |
안도 레나가 이끄는 BC자유 학원 편입파 학생들의 전차로 최종장 1라운드에 등장한다. 또한 마지노 학교 지휘차로도 등장.
12. 모형
12.1. 프라모델
타미아에서 1/35스케일로 나왔다. 무한궤도는 연결식 가동 궤도라고 한다.
13. 둘러보기
노획차량 및 개조품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Pz.Kpfw. 35(t) | 아틸러리 슐레퍼 35(t) | Pz.Kpfw. 38(t) | 판처예거 스코다 SIDt32(t) |
Pz.Kpfw. 32 (j) | 르노 FT |
M35 미틀레레 판처바겐 | Sd.Kfz. 254 | ADMK Mul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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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z.Sp.Wg. DAF 201(h) | Pz.Sp.Wg.L202(h) | Pz.kpfw. FT 731(h) |
38M 톨디I(u), 42M 톨디II(u), 40/43M 즈리니 II (u), 40M 님로드 (u), 40M 투란I (u), 40M 투란II(u), 39M 차바 (u) |
프로토타입 | T-25, 경 트랙터, 대형 트랙터, Pz.Kpfw. Nb.Fz, 호이슈레케 10, D.W.1/2, 5/4호 전차, VK 시리즈, 기갑 자주포, VK 30.01 / 02, VK 36.01, VK 45.01(P), VK 45.02(P), VK 65.01, 판터 2, 8호 전차 마우스, E-100, 게쉬츠바겐 티거, 로이머 S, Kätzchen 병력수송장갑차, 8,8cm 바펜트레거 | |
페이퍼 플랜 | 3/4호 전차, VK 16.02 레오파르트, 7호 전차 뢰베, 9 / 10호 전차, E 시리즈, 1인용 경전차 시안 "마우스", 슈투름판처 Bär, 슈투름판터, P.1000 라테, P.1500 몬스터, 마레샬 구축전차 | |
차량 | 독일 국방군/차량, 퀴벨바겐, 슈빔바겐, 슈타이어 1500A, Büssing-NAG T500, Büssing-NAG G31, Büssing-NAG L4500, 오펠 블리츠, 포드 B3000S, V3000S, V3000A, 보르크바르트 B3000, 메르세데스-벤츠 G5, 메르세데스-벤츠 L1500, 메르세데스-벤츠 L3000, 메르세데스-벤츠 LG3000, 메르세데스-벤츠 L4500, 메르세데스-벤츠 L6500, 크루프 프로체, 타트라 T111 | |
모터사이클 | DB / DBK, KS 750, 케텐크라프트라트, R-75 | |
그 외 | 동부용 궤도형 트랙터, 동부용 차륜형 트랙터, 수륙양용 트랙터, 골리아트 지뢰, 보르크바르트 4호, 스프링거 무인자폭차량, VsKfz 617, 쿠겔판처 | |
기타 | 독일 기갑 병기의 역사와 루머 | |
※ 당시 독일은 고질적인 무기부족, 점령국가의 치안을 이유로 기존의 노획 전차 및 차량(Beutepanzer)에 새로운 제식명을 붙여 사용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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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불가리아군 기갑장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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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차 | <colbgcolor=#fefefe,#393b42>Sdkfz221, Хорх M.222 и M.223, Sd.Kfz. 232, Sd.Kfz. 250, Sd.Kfz. 251G/S, AB 41S, Sd.Kfz. 260/261S | |||||
전차 | <colcolor=#2e8b57,#74d09d> 탱켓 | "Ансалдо-Фиат"/"Ансалдо" | ||||
경전차 | Рено, 호치키스 H35, Викерс, , T-11 Шкода, Прага, 1호 전차 | |||||
중(中)형전차 | 소뮤아 S35, Майбах T-IV GG, Майбах T-IV HS/G, 5호 전차 판터S, T-34-85S, ВенгерS, T-34-85S | |||||
구축전차 | 헤처S, 4호 구축전차S, 4호 구축전차 70구경장S | |||||
돌격포 | Майбах T-III, StuH 42, stormovo orvdie Maybach T-IVS, | |||||
자주포 | 세모벤테 L40 47/32S, 훔멜 자주포S, 베스페S | |||||
자주대공포 | 40M 님로드S | |||||
차량 | 퀴벨바겐, R-75, 오펠 블리츠 | |||||
노획차량 | SU-76M, T-34-76, M.28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윗첨자S: 소련군으로부터 구입한/공여받은 차량 윗첨자G: 나치 독일으로부터 구입한/공여받은 차량 ※둘러보기 : 불가리아군의 운용장비 | 대전기 기갑차량 | }}} }}}}}} |
제2차 세계 대전기의 헝가리군 기갑장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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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 경전차 | <colbgcolor=#fefefe,#191919>35M 안살도, 37M 안살도, TKS, C2P, 르노 UE, 1호 전차, 38M 톨디, 42M 톨디 II, 42M 톨디 IIA, 43M 톨디 III, T-38, 호치키스 H35, 호치키스 H39, V-3, V-4 | |||
중형전차 | 40M 투란, 3호 전차, 4호 전차, 5호 전차 판터, 소뮤아 S35 | ||||
중전차 | 44M 타스, 6호 전차 티거 | ||||
노획전차 | T-27, T-34-76, T-34-85, T-28, T-70, T-26S, BT-7, BA-6, T-20 콤소몰레츠, M3 스튜어트, M3 리 | ||||
장갑차 | 39/40M 처버, AB41 | ||||
자주포 | AHD, 마르더 II, 톨디 판셀바다즈 | ||||
돌격포 | 43M 즈리니 II, 44M 즈리니 I, 3호 돌격포 | ||||
구축전차 | 헤처 | ||||
차량 | 38M 보톤드, 오펠 블리츠, Kfz 70, 37M | ||||
자주대공포 | 40M 님로드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헝가리군의 운용장비 | 대전기 기갑차량 | }}} }}}}}} |
제2차 세계 대전기 유고슬라비아 기갑차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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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차 | <colbgcolor=#fefefe,#393b42>AEC Mk.II | ||||
전차 | 탱켓 | Брза борна кола T-32 | |||
경전차 | 르노 FT, M.28, 르노 R35, M3A1 스튜어트, M3A3 스튜어트 | ||||
중(中)형전차 | T-34-85 | ||||
대전차자주포 | SO-75 M-3A3 | ||||
자주대공포 | M3A3 스튜어트 20mm 플라크피어링38 대공포 장착형 | ||||
자주포 | M8 "캐딜락" | ||||
노획 및 개조차량 | L3/35, L6/40, 소뮤아 S35, SO-57, 3호 전차, 38(t) 경구축전차 헤쳐, Pz.Kpfw. T-34 747(r) "판터", 4호 전차, 3호 돌격포 G형, Sd.Kfz. 251, 40M 투란, PaK38 탑재 Sd.Kfz. 250, AB 41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유고슬라비아군의 운용장비 | 대전기 기갑차량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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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AutoMitrailleuse de Combat[2] Société d'outillage mécanique et d'usinage d'artillerie; 유명한 무기류 제작 회사인 슈네이더(Schneider) 사의 자회사이다.[3] 다만 이 기술에는 작은 오류가 있는데 문서에서 언급한 '스페인 내전의 기병 전차'는 영국이나 프랑스제 순항/기병 전차가 아니라 대부분 소련제 '경전차'였다. 심지어 운용법도 소련에서 파견한 고문관들이 가르쳐 준 대로 했지만 결과는 영 좋지 않았다.[4] Stéphane Ferrard (2010). "Les SOMUA de l'Ombre (I) — Le S 40 à tourelle FCM, char de la défense de l'Empire", Histoire de Guerre, Blindés & Matériel N° 89, p. 44-49[5] 월드 오브 탱크 기술자문 니콜라스 모런의 동영상에 따르면 수동 작동이다. 출처: https://youtu.be/VfaVeZ_xjIc?t=437[6] 개선형에서는 장갑 두께가 비슷해졌지만, 3호 전차의 장갑은 수직장갑이라 같은 두께라 해도 S35의 경사장갑보다 방어력이 떨어졌다.[7] 전망탑에 각각의 방향을 바라보는 잠망경까지 다수 설치해서 전차장이 살짝 고개를 돌려도 사방을 편리하게 관측가능한 나치 독일군의 경우에도 오토 카리우스가 자서전인 진흙속의 호랑이에서 내부 잠망경이나 슬릿에만 의존하지 말고 전차장이 해치 위로 살짝 고개를 올려서 외부 감시를 해야 할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할 정도로 당시에 활동한 전차들은 전차장이 외부 관측을 할 필요가 매우 높았다.[8] 지금 보면 정말 이상하겠지만 당시 프랑스군은 총사령부에서조차 무전기를 쓰지 않았다.[9] 다만 전차장에 역할이 몰려 있으므로 승무원 스킬을 찍을 때 심각한 애로사항이 꽃피게 된다. 물론 전투 자체가 힘들었던 현실에 비하면 이 정도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