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13:20:28

공안국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개요2. 생애

1. 개요

孔安國
(? ~ 408)

동진의 인물. 공안국의 안국(安國)은 휘가 아니라 자(字)이다. 영주 회계군(會稽郡) 산음현(山陰縣) 출신. 여불정후 공유의 3남으로, 공자의 26대손.

2. 생애

공안국의 다른 친척 형제들은 출사해 각자 관직을 얻었는데, 공안국과 그의 형 공왕은 명성과 재능이 부족하여 둘 다 30세가 넘도록 관직에 진출하지 못 했다. 효무제 시기에 공왕이 우연히 조정의 부름을 받아 시중에 임명되고, 동생인 공안국 또한 관직에 올라 시중, 태상을 역임했다.

태원 21년(396년) 9월, 효무제가 붕어하자, 원래 몸이 수척하던 공안국이 상복을 입고 하루종일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니, 사람들은 그가 참된 효를 행한다고 감탄했다. 이후 관직이 점점 높아져, 회계내사, 영군장군, 동해왕사(東海王師)을 차례로 지냈다.

융안 5년(401년) 6월, 호독(滬瀆)을 함락시키고 오국내사 원숭을 살해한 반란군의 수괴 손은이 바다에 배를 띄워서 도성 건강(建康)을 노렸다. 손은의 함선이 단도(丹徒)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조정에 전해지자, 대신들은 벌벌 떨며 두려워 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공안국을 다시 영군장군으로 삼아 안팎으로 철저히 경계하게 하고, 백관들은 관청에 숙직하도록 명했다.

의희 2년(406년) 10월, 상서좌복야로 옮겨지고 산기상시가 더해졌다.

의희 4년(408년) 4월, 공안국이 사망하고, 그 자리는 이부상서 맹창이 대신하였다. 사후 조정에서 그를 좌광록대부로 추증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