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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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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사[1]
[ruby(李博士, ruby=イ・パクサ)] | Epaksa
파일:이박사_프로필1.jpg
<colbgcolor=#FFBB00><colcolor=#fff> 본명 이용석
출생 1954년 10월 5일 ([age(1954-10-05)]세)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現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종교 불교[2]
가족관계 3남 중 셋째[3]
아들 이성민(1979년생)[4], 딸 금도희[5], 셋째 딸[6] 막내아들[7]
신체 160cm, 45kg, 250mm
직업 프로듀서
소속사 큔 뮤직[8]
소니 뮤직
유니버설 뮤직[9]
빅대디엔터테인먼트 / 한방기획[10]
데뷔 1989년 '신바람 이박사'[11][12]
별호 신바람

1. 개요2. 생애3. 활동
3.1. 방송 & 음악 활동
4. 평가
4.1. 일본에서4.2. 한국에서
5. 저작물
5.1. 앨범 목록
5.1.1. 한국5.1.2. 일본
5.2. DVD5.3. 도서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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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술을 알면 돈이 멀어지고, 돈을 알면 예술이 멀어져야 돼. 그래야 음악가야."
이박사의 몽키 매직 - 스페이스 몽키 (Feat. 윈디 시티) 도입부 中
"이박사 음악은 위대했습니다."
前 노브레인 기타리스트 차승우 - 노브레인의 호락호락 (차승우)

대한민국가수. 대한민국 뽕짝의 대표주자이자 뮤지션, 일개 관광버스에서 흥을 돋구는 가이드와 고속도로 휴게소 메들리 테이프 가수부터 시작해서 2000년대 초반 한국 인터넷 하위 문화의 아이콘이자 신드롬 급의 인기까지 얻었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일본에서도 슈퍼스타 대우를 받았던 몇 안되는 트로트 가수다. 본명은 이용석이다.

각각 EDM, 테크노를 결합한 노래를 만들어 트로트 내에서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기존의 트로트 가수들과는 상반된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가수다. 세계 일렉트로닉 뮤직계에서 저명한 "덴키 그루브" 등의 일본 일렉트로니카 집단과 협업하고 앨범도 발매한 적이 있다.

한국 민요, 구전가요, 트로트 곡을 커버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오리지널 넘버들이 존재하며 특유의 장르를 초월한 사이키델릭함으로 회자되고 있다. 말 그대로 비공식 장르인 "뽕짝"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셈이다. 정통 트로트 뮤지션이라 자칭하는 쪽에서는 상당히 배척받는 분위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중독성이 강한 신디사이저 키보드 연주와 자신만의 독자적이고 흥겨운 음악 스타일을 구축한 가수이다. 그의 음악을 딱히 무엇이라고 쉽게 지칭할 수는 없지만, "이박사 스타일 음악" 이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알아듣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박사의 노래는 주로 메들리를 전문으로 해서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묻히는 사실이지만 작사, 작곡 실력도 상당히 뛰어나다. 일본 활동 당시부터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를 앨범에 하나씩은 끼워넣기도 했으며 다른 가수에게도 곡을 주기도 하고, 자작곡으로만 채운 앨범을 발매한 적도 있다. 특히, 그의 2015년 앨범 'EXCITING WIND'는 전곡이 자작곡이다.

대표곡으로는 몽키매직, 영맨, 학교매점 출출해[13], 야야야, 스페이스 환타지 등 여러곡이 있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박사/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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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활동

3.1. 방송 & 음악 활동

과거 한국에서는 엽기나 인터넷 열풍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최근 들어서 재평가를 받고 있는 트로트&일렉트로닉 계 아티스트이다. 자세한 사항은 평가 참조.

1989년 인간시대 (MBC) 에 출연했다. 해당 영상

이후 1990년 MBC의 '내 고향 좋을씨고'에 여러번 출연했다. 기록된 것만 두 번이고 영상도 남아있다. 1990년 8월 16일자 방송분

그 후 TBS의 < 9595쇼 >에서 당시 MC였던 허참, 박세민의 옆에서 5~6개월 간 보조 진행자로 활동했다. 나중에는 허참의 뒤를 이어 MC를 맡을 뻔했으나 윗선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2000년 키움닷컴증권(현 키움증권)의 광고에 출연했다.[14]

2001년 MBC스페셜 "테크노 뽕짝 이박사의 도발"(MBC)에 출연했다. 2001년 1월 19일자 방송분

2001년 시트콤 세 친구에 특별출연 하였다. 다만 스토리에 영향을 끼치는 역할이 아니라 엑스트라로서 나온다.
시트콤 세 친구 제 57화 - 한판승부 세 친구/에피소드 목록

2008년 기분 좋은 날 (MBC)

2010년 8월 4일에는 MBN 뉴스M에 출연하여, 앵커들에게 굴욕을 주기도 했다. 야~ 야야야야! 신나게! 관련 내용




2012년 8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했다.

2012년 8월 23일, 미니앨범 "레알 뽕짝커"를 통해 컴백했다. 아수라발발타, 다른 오빠(feat. 미미시스터즈), 몽키매직 - 스페이스 몽키 (feat. 윈디시티) 세 곡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컴백과 함께 엠넷의 '비틀즈 코드'에 출연했다.
2012년 9월 10일 인터뷰


한국 품바 예술협회에 고문으로 가입되어 있다. 링크 (임원소개를 누르고 두번째 페이지를 보면 이박사의 증명사진을 볼 수 있다!)

2012년, 싸이강남스타일의 열풍에 대해 내 전성기에 유튜브 있었으면 싸이처럼 월드 스타가 되었을 것이라고 인터뷰를 했다. #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15] 다른 가수가 했으면 아무리 인기가 많은 가수라도 자뻑이라고 비판을 들었을 만한 발언이지만 이박사가 한 이 말에 반문을 던지는 사람은 많이 없다.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 싸이보다 더 컸을수도?

2013년 11월 3일 자 도전 1000곡에 출연하였다. 관련 영상

2013년 11월 26일에는 MBC 컬투의 베란다쇼 '싼티의 매력 속으로'편에 출연하였다.

2014년 11월 21일에 홍대 롤링홀 공연 "이박사x이랑"에서 팬클럽 재창단을 선언했다.



2014년 11월 23일 발매된 임창정임박사와 함께 춤을[16] 에 피처링에 참여했다. 여전한 뽕짝끼는 일품. 노래도 좋다.

2016년 테크노 뽕짝 가수 이박사41번째 앨범 낸 '테크노 뽕짝' 가수 이박사 "듣는 사람 신나게 해준 게 장수 비결"


2017년 11월에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소속 DJ 및 프로듀서인 250이 이박사 메들리 오프닝을 샘플링한 Spring이라는 곡을 내놓기도 하였고, 위 영상과 같이 이박사의 인터뷰 영상의 목소리 샘플을 가지고 기가 막힌 비트를 창작해냈다.[17]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각설이 품바 공연단이랑 매번 같이 다닌다는 점...그래서 고문을

인디레이블 비싼트로피의 오너인 박정근의 조광 사진관에서 공연이 열린 적도 있었으며[18] 유튜브 등지에서는 이박사와 유사한 컨셉으로 애니송 등을 커버하는 영상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아들 이성민씨와 함께 이박사의 딸인 금도희 등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주기도 한다. 작사, 작곡은 이박사가 하고 편곡은 이성민씨가 맡는 식. 참고로 이박사의 ‘야야야’ 역시 이성민의 편곡이 들어갔다.

2019년 7월에 근황이 공개되었고, 인천에 있는 한 나이트에 취직했다고 한다.

2019년 8월 7일 채널A 교양 프로그램 행복한 아침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근황을 전했다.

2019년 12월 13일 MBN 특종세상에 출연했는데, 여기서 아들 이성민과 함께 곡작업을 하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집안에 나름 괜찮은 스튜디오 시설을 꾸며두었고 아들이 작곡과 녹음 등을 도와준다.


10월 19일 나몰라 패밀리와 콜라보 음악 '때려너'를 발표했다. 이 곡에선 트랩까지 선보인다!

행사도 꾸준히 받는데, 이박사의 유튜브 채널로 행사문의를 받고 있다. 댓글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1회 행사비가 5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 하는 듯하다.

델모라는 가수의 곡 ‘갓’에 피처링했다. 사실 피처링은 아니고 나레이션.

2020년 2월 김종만의 '수원성에서'라는 곡을 만들어주었다. 작곡이 이박사이고 편곡은 아들인 이성민이 맡았다.

2020년 빅대디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고 2020년 8월 싱글 ‘술이 웬수다’를 발매했다.



을 패러디한 몽키매직 뮤직비디오 '깡키매직'을 새로 찍었다. 아마 새로 녹음한 버전으로 추측된다.

곧 새로운 앨범이 발매된다고 한다.# 복귀 앨범에는 최대 히트곡인 몽키매직의 2020년 버전과 민요 옹헤야를 현대감각으로 재편곡한 '신 옹헤야', 그리고 선공개곡 '술이 웬수다' 등등이 수록될 예정이라고 한다.

2020년 핫트랙스와 인터뷰를 했는데 # 2019년에 일본에서 전속계약 제의가 왔으나 너무 힘들고 자신의 시간이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일본은 음식도 안 맞고 힘들다고... 이데일리 인터뷰에서 좀 더 자세히 밝히기를 일본 레코드사 3곳에서 러브콜을 보냈고, 그 중 한 곳에서는 이박사를 만나러 직접 인천까지 찾아와 3년 계약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면서 음악 활동을 하고 싶어서 본인이 거절했다고 한다.



2020년 12월 6일 사이코러스에 출연하여 포스를 뿜으며 황제성양세찬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EP. 387).주객전도


이후 2021년에는 보이스킹에 출연하여 2라운드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1라운드에서 이정현의 "반"을 리메이크해서 불렀는데 청중들과 심사단에게 상당히 좋은 평가를 얻었다. 전성기 때보다 목소리가 조금 거칠어지긴 했으나 노래실력만큼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했다. 이후 안타깝게도 3라운드는 떨어졌으나 청중들의 반응은 70세 가까운 나이임에도 이 정도까지 올라온 것에 굉장하다고 하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2021년 8월 13일 아침마당에 출연했다. 이 때 이야기하기로는 아들 이성민씨가 강원도 고성군에 취직을 했다고 한다.


2021년 10월에는 아이넷TV 가요사랑콘서트에 출연하여 몽키매직, 영맨에 이어 신곡 "술이 땡긴다"를 불렀다. 다만 신곡 앨범은 아직 발매되지 않은 듯 하다.

2023년 6월 일렉트로닉 메탈밴드 '애프니어'의 신곡 'Ph.D'에 MC 노리아키와 같이 참여했다.

4. 평가

일본에서는 김연자와 쌍벽을 이루었던 원조 한류스타로서 인기가 상당했던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젊은 층들에게는 상당한 인기가 있었지만 주위 트로트 가수들에게 뽕짝 가수라는 이유로 천대를 받았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 양국에 테크노 트로트를 개척하고 전파시킨 뮤지션임은 명백하다. 그리고 모 트로트 프로그램의 삽질과 이박사의 인품, 젊은 층이 이박사의 노래를 듣고 그를 많이 찾은 덕에[19] 평가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4.1. 일본에서

일본 부도칸 공연 실황[20]
후지 TV 출연
일본 TV광고 모음

일본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 처음 일본에 진출했던 90년대 당시에는 일본인들이 "한국하면 뽕짝(Pon-chak) 아닌가요?"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또한 후지테레비의 HEY!HEY!HEY!에 2번째로 출연한[21]외국인 가수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22] 니코니코 동화에 올라오는 그의 영상에는 한국인에게 흔히 붙는 비하나 욕이 전혀 달리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영상에 붙는 태그가 '한국을 싫어하는 나도 인정하는 한류 슈퍼스타'. 국내에서는 보기도 힘든 80년대 테이프나 음원들도 죄다 일본인들이 발굴해서 유튜브 등지에 올릴 정도다.
여담으로 일본 활동기의 이박사는 팝송이나 일본 음악을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 하기도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곡이 빌리지 피플YMCA고다이고Monkey Magic.

4.2. 한국에서

"손가락질 받아도 언제나 뽕짝"
스페이스 판타지의 가사

2019년부터 서서히 재평가를 받으며 천편일률적인 뽕짝이라는 악평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이박사'라고 하면 몇몇 사람들은 고속도로 휴게소 판매용 음반이나 내는 가치없는 저급 노래꾼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몇몇 있었다. 이런 인식의 원흉이 다름아닌 태진아인데, 과거에 이박사를 가리켜 "이박사는 정통 트로트 가수가 아니며, 그저 광대에 불과하다" 라며 강도 높게 폄하하고 깎아내리는 이미지를 선동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에 들어서 대부분 사람들은...


트로트 업계에서 이박사의 평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트로트 엑스의 출연 장면이다. 오래 전에 이박사에게 광대라고 비난을 날렸던 태진아는 심사위원으로 나올 법한 인물이 무대에 서서 공연일갈[23] 하니 태진아 본인도 어이없다는 듯이 짜증이 가득한 웃음을 지었고, 저 인간이 왜 여기서 나와? 설운도, 박명수는 싸한 분위기를 아는지 연신 태진아 눈치를 슬슬 본다.[24][25] 그나마 박명수와 설운도는 최소한 무례한 태도는 보이지 않았기에 비판을 덜 받았다.[26]

게다가 아무리 방송이라 한들, 모니터 뒤에 가려져 있다고 해도 신기한 물건을 본 것 마냥 너무 대놓고 삿대질을 한다. 물론 심사위원들의 태도만 탓할 것이 아니라, 이박사가 만든 장르를 물론이요 본인들이 꿰차고있는 밥그릇판 외에는 모두 저질문화로 치부하던 한국 가요판의 저질 풍조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심각한건 여기서 더 나아가 내 소속사 가수 및 내 동기, 내 후배 등의 파벌외에는 방송판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방송마피아 행태가 심각하며 트롯을 위시한 전통 가요판이 축소된 90년대 이후로 밥그릇 지키기가 심해졌다.[27]

이처럼 뚝심있게 자신만의 장르 음악을 한다는 건 무시받기는커녕 존경받아야 할 진정한 음악인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음악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존경받을 만한 모습이지만 단지 음악이 싸구려 같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되고 예우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현실을 볼 수 있다. 특히나 일반인이 아닌 같은 예술인들이 같은 예술작품 혹은 같은 예술인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스타일이 다르다, 취향을 탄다, 분위기가 가볍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깎아내리고 작품으로 취급하지 않는것은 굉장히 무례한 일이며 도리에도 맞지 않는 일일 것이다.

우습게도 그를 뽕짝가수라 폄하하고 비꼬며 무시하던 트로트 장르는 오히려 2000년대 이후 발전을 멈추고 그저 그런 양산형 음악만이 쏟아져나와 시장성을 상당히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트로트계에서 가장 젊은 세대인 20~30대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도 자신들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개발하지 않고 기존 선배들이 해왔던 트로트에 그냥 박자만 빠르게 바꾸거나 기존 히트곡의 변주나 복제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는 더욱 더 반성해야 할 세태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전통 트로트로 넘어가면 2000년대 이후로 등장한 이른바 세미 트로트가 트로트의 창법과 음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사실상 하우스 댄스풍 노래임에도 트로트의 이름만 뒤집어 씌운 채 트로트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2000년대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은 좋게 말하자면 참고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배끼거나 복제했으면서도 이를 잘 계승하지 못했다는 것. 결국 2020년대에 들어서 트로트는 반짝 뜨는 듯 했으나 또다시 매너리즘에 빠지며 사실상 장년층 이상에게만 먹히는 고여버린 장르가 되었다.

이박사는 '한국의 트로트가 일본 엔카의 아류 취급'을 받았던 시절에도, 당당하게 한국의 민요를 기반으로 소리를 했던 가수였고 자신만의 한국식 뽕짝 트로트를 세계에 알린 사람이다. 대표적으로 새타령과 강원도 아리랑, 뱃노래, 옹헤야, 신고산 타령 등 수많은 한국의 민요를 부르기도 했고, 아예 민요 메들리를 앨범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트로트에 관심이 없는 젊은 세대에서도 이박사는 명성이 높은 편이다.

다행히도 이박사의 과거 음반이나 일본에서 활약해온 행적들이 다시 재발굴되면서 조금씩 좋은 재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일본에서의 인기와 받아들이는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한국에서의 이박사는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예술가의 이미지는 있으나, 일본에서처럼 영향력이 거대한 거장 혹은 한시대를 풍미한 슈퍼스타로서의 인식은 거의 없다. 거 하필이면 태진아 때문에 이는 일반적인 트로트 노래들보다 몽키매직 하나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던, 동시에 한국에서는 제대로 성과를 대접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박사에 대해 제한적인 정보를 받아들인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의 영향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윈도 98의 보급과 동시에 IMF를 겪은 세대가 이박사는 모르지만 어도비 플래시를 통해 몽키매직을 알아 힘을 얻었고 어른이 돼서야 진가를 알았는데 갑자기 유년기를 위로한 음악을 싸구려로 취급받으면 당시 세대가 태진아의 혹평을 좋아할 리가 없다.

태진아나 이박사나 모두 일본 진출의 시기는 달라도 해외 무대로 진출할 당시에는 인지도가 없었는데, 이박사는 성공리에 안착한 반면 태진아는 실패했으니 태진아의 일본 진출 실패가 더더욱 초라해 보이는 것이다. 태진아가 일본에서 실패한 이후부터 더욱 이박사나 뽕짝을 무시하는 태도의 강도를 높인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데, 태진아가 뽕짝을 무시하는 태도와 별개로 한국에서는 과거보다 뽕짝을 다루는 트로트 가수들이 늘면서 뽕짝에 대한 편견들도 상당수 사라지면서 과거 지나치게 뽕짝을 멸시하는 태도를 취한 것이 나쁘다는 인식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리고, 정작 기본적인 화성학 지식도 아예 없어서 과거의 태진아에게 곡을 써준 한 작곡가에 말에 의하면 도미난트7에서 토닉으로 끝나는 아주 기본적인 종지법도 모른다고 혀를 내둘렀다.

물론, 태진아는 국민학교만 마치고 올라왔기 때문에 음악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 해서 생긴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이박사는 어머니가 국악인이었고 어려서부터 음악에 심취했기 때문에 민요를 기반으로 노래를 배워서 출발선부터가 다르다. 게다가 이박사는 작사와 작곡을 직접 작업하는 싱어송라이터의 역량을 비교해봐도 "고작 태진아 따위가?" 라고 부를만큼 개개인의 능력을 포함한 음악적 성과나 유명세도 태진아보다 월등하게 천지차이로 크다. 실제로, 한국의 트로트 가수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사례는 이박사, 김연자, 이성애, 계은숙, 조용필[28], 나훈아[29] 정도 뿐이다.

200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던 198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생은 이박사라는 가수는 몰라도 그의 노래는 접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오락실에서는 Pump It Up에서는 몽키 매직이 수록되었고, 개그콘서트에서는 정종철이 아리랑에 맞춰 부채춤을 추는 코너 아리아리도 나름 인기 코너였으며, 당시 유행하던 판타지 개그에서는 개그가 나온 후 캐릭터들이 막춤을 추는 장면에서 스페이스 판타지가 나왔다. 유튜브에서 이박사 노래를 찾다보면 그때의 추억을 회고하는 댓글을 많이 볼 수 있다. 판타지 개그의 제작자인 장땡이 직접 댓글창에 등판하기도 했다. # 실제로도 이박사의 재평가가 가장 활발한 세대는 200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2, 30대이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40회차 경연에서 나는 개똥벌레~ 적수가 없네~ 반딧불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했는데, 1라운드에서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를 눈치챈 판정단들은[30] 이박사를 칭송한다. 독설가로 유명한 김구라가 "영화로 만들고 싶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종합하자면, 트로트 가수들은 그를 외면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 트로트 음악 관계자들은 그를 참 가수라고 부른다.


평소 레게를 기반으로, 한국적 요소에 집중하던 김반장(윈디시티)에 의해 윈디시티 공연에 헤드라이너(?)로 나왔으며 목에 탬버린을 걸고 유유자적하게 걸어나오는 이박사,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뮤지션 이박사!!!"라고 토스팅하는 김반장, 열광하는 관객들 등 조그마한 장관을 연출했으며 이박사는 신들린듯한 애드립과 추임새로 화답했다.

공연 초반에 연주하는 윈디시티 멤버들에게 하나하나 다가가며 "밥먹었니" "진짜 잘한다 잘해~" "너 오랜만에 본다?" 등 대화를 걸고 악수를 청하는 등, 공연이 아니라 잼을 하러 나온듯한 모습을 보였으며 굉장히 멋진 공연이 되었다. 유튜브에서 확인 가능하며 본 문서 중단에도 게재되어 있다. 참고로 이 공연에서 본 문서 최상단에 있는 이박사의 명언이 나왔다.


2021년 출연한 보이스킹에서는 남진에게 극찬[31]을 받는 등 과거보다는 한결 나은 대접을 받았다. 앵콜로 몽키매직을 청해 들을 때 다른 참가자들이 '앉아 들을 수 없다'고 일어나서 듣기도 했다.

이렇기 때문에 본가라 볼 수 있는 "트로트" 뮤지션이라는 집단에서는 배척을 받지만 다른 분야의 뮤지션, 예술가들에게는 존경받는 인물이며 대중들, 특히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20-30대 신세대 층에게 익숙하고 어느정도 인지도를 보유한 묘한 뮤지션이다. 사실, 냉정하게 평가해도 과장이 아니라 이박사의 음악적 성과를 평가한다면 한국 트로트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거장으로 이야기해도 부족하지가 않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이박사는 "태진아에게 전혀 악감정이 없다." 라고 해명하면서 "대중들이 오해를 하고 있다." 라고 증언을 하였다. 오히려 무명시절에 태진아가 돈을 챙겨주며 격려해준 적이 있기에 지금까지도 고마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많은 논란이 있었던 트로트 엑스 당시에도 오히려 촬영 후에 둘이서 간만에 담소도 나누는 등 분위기가 매우 좋았으며, 상술한 광대 발언도 전혀 폄하하는 뉘앙스가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태진아가 뽕짝 가수들을 폄하하는 발언을 한 것 자체는 사실이다. 실제로 대성이 뽕짝풍의 트로트 곡 날 봐 귀순을 발매했을 때 태진아가 한 인터뷰를 보면 증명된다.
그는 아이들 가수들이 부르는 트로트가 정통이 아니라는 시선에 대해 “젊은 층이 부르는 트로트와 성인층이 부르는 트로트가 다를 수 밖에 없다”며 “후배들이 우리의 전통 가요를 부른다는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젊은 층이 부르는 트로트'가 빠르고 경쾌한 뽕짝, '성인층이 부르는 트로트'가 자신을 위시한 원로 가수들이 하던 트로트로 해석한다면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2022년에 250이 이박사가 평생 밀어왔던 뽕짝이라는 장르를 재해석한 음악이 결국 각종 음악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되면서 뽕짝이라는 장르가 현대에서도 충분히 음악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이 증명됐다. 이박사 역시 250의 앨범에 참여하는등 알게 모르게 현대 음악에도 영향을 준다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가볍게 보일지 언정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는 절대로 가벼운 사람이 아닌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 받을 수 있다.

5. 저작물

5.1. 앨범 목록

5.1.1.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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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제작은 태광음반에서 하였으나, 영상은 한소리레코드에서 재발매를 한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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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과 2집이 트로트 메들리로 구성되어 있다면, 3집은 한국의 민요를 메들리로 엮어냈다는것이 차이점이다. 이박사의 음악적 근본이 민요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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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은 18곡의 트로트 메들리이며 노래 도중에(...) 이박사가 설명하듯이 한번은 그냥 노래를 부르면서 녹음하고 한번은 이박사 특유의 스캣과 추임새를 녹음하여 겹친 구성이다. 자평하기를 대한민국 최초일 것이라고 한다. 현재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판권을 가진 것으로 추측된다.
* 1991년 그것도 모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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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사 앨범 최초로 이박사 본인의 자작곡이 들어간 앨범이며[33] 메들리가 아니다!! 전체적인 곡의 분위기는 흔히 말하는 정통 트로트가 대부분이지만, 여러가지 실험을 한 흔적도 보이는데, 주로 세미 트로트와 블루스 트로트 역시 혼재되어 있다.
* 1993년 서울깜빡이
* 1996년 앗싸 유랑 서커스
* 1996년 노래하는 이박사
* 1996년 이박사 김박사 테크노 쌍쌍박사
* 2000년 신바람 인터넷 이박사 1, 2
* 2000년 신바람 인터넷 콘서트 이박사 3, 4
* 2000년 멋대로 맘대로 [34]
* 2000년 E-PAK-SA 스페이스 환타지 (정규 1집)
* 2001년 PAK-Sa Revolution & Emotion (정규 2집)
* 2003년 E-PAK-SA 003 (정규 3집)
* 2003년 스페이스 환타지
* 2003년 Epaksa 캐롤 2003
* 2004년 메들리 황제 이박사
* 2005년 사랑은 일방통행
* 2006년 이박사 하이웨이 랩 댄싱 [35]
* 2009년 야야야
* 2011년 야야야3
* 2012년 레알 뽕짝커
* 2014년 신바람 이박사 앗싸 대박났다
* 2015년 EXCITING WIND [36]
* 2016년 테크노 뽕짝 가수 이박사
* 2020년 술이 웬수다
* 2021년 진주 파프리카
* 2024년 이박사 Dr.lee

계속 메들리 앨범을 내긴 하지만 정규 앨범은 소니뮤직에서 발매한 스페이스 환타지와 PAK-Sa Revolution & Emotion, 003 세 장뿐이다. 참고로 메들리 앨범 중에선 예전에 냈던 앨범을 재탕하거나 편곡만 바꿔서 내는 경우도 많다.

수년의 공백기 후 빅대디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후 새로운 노래를 주기적으로 발매하고 있다.

5.1.2. 일본


그 외에도 이박사의 메들리 앨범 몇 장이 일본에 정식 수입되어 판매되기도 했다.

5.2. DVD

5.3. 도서

6. 여담



[1] 노래 면에서 다재다능해서 생긴 별명이 활동명이 됐는데, 데뷔 후부터 한동안은 풀네임으로 '신바람 이박사'라는 예명을 사용했다.[2] 집 벽에 달마 그림이 걸려 있다.[3] 김흥국의 백팔가요에서 말하길 큰형은 돌아가셨고 작은형과 자신만 생존해 있다고 한다.[4] 전처 소생.[5] 재혼하며 얻은 양녀. 금도희는 가수 예명이고 본명은 밝혀지지 않았다.[6] 이박사가 팟캐스트에서 밝힌 바로는 직장생활을 한다고 한다.[7] 후처 소생. 2023년 기준으로 25살으로 다른 형제자매들과 나이차이가 있는 편이다.[8] 일본 활동 당시[9] '레알 뽕짝커' 발매 당시 유니버설에서 유통을 맡았다.[10] 2020년 빅대디엔터와 계약을 하며 한방기획에서 매니지먼트를 맡았다. #[11] 1990년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가수가 되며 정식 데뷔.[12] 네이버 인물검색시 데뷔관련하여 2000년 1집 앨범 'Space Fantasy'로 나온다.[13] 외국 번안곡인 몽키매직과 영맨과는 다르게 본인의 오리지널 곡이다.[14] 여담으로 이 광고를 패러디한 광고도 존재하는데 당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포가튼 사가, 악튜러스 등으로 유명했던 손노리이다.[15] 사실 펌프 잇 업 때문에 의외로 중남미권에서는 좀 알려진 편이다.[16] 사실 이 노래는 동년 3월에 발매된 임창정의 정규 12집 앨범인 '흔한 노래, 흔한 멜로디...' 에 이미 먼저 수록되어 있던 곡이고, 이박사도 이 때 피쳐링에 참여했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몇 개월 후 임창정이 낸 싱글앨범 '친한 사람' 에 다시 수록되어 주목받기 시작했다.[17] 이와 같은 활동을 바탕으로 5년 후, 250은 이라는 대단한 걸작을 내었다.[18] 당시 밤섬해적단권용만이 드럼을 치기도 했다(…).[19] 특히 90년대생들이 많이 접했다. 판타지개그, 개그콘서트 등에서 많이 듣고 찾다가 그 마성에 빠진 케이스.[20] 공연장으로서의 일본 무도관 (부도칸)은 슈퍼스타들이라면 으레 한 번쯤은 공연을 하는 곳인데, 반대로 말하자면 부도칸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 수 있을 정도라면 일본에서 출세하는 데 성공한 주류 예술인으로 인정받는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이곳에서 공연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도전했다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가요계를 떠나는 음악가들도 부지기수다. 이박사는 부도칸에서 공연한 한국인으로서는 1984년 조용필 이후 두 번째이다.[21] 66회차에 출연했다.#[22] 첫 번째로 출연했던 외국인 가수는 다이애나 로스다.[23] 무대 중간에 "디스코를 잘 추며 잘 노네" 부분에서 삿대질을 하면서 급발진 버럭을 외치는데 이게 또 기묘함을 자아내는 장면으로 회자된다. 그리고 무대에 앞서 삿대질을 하는데 방향상 태진아를 직접 가리키면서 신경전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24] 두 사람 모두 이박사를 보며 웃고, 홍진영과 박현빈 등이 얘기하는 것을 듣다가도 태진아를 볼 때마다 눈치를 보고 있다. 특히나 박명수는 태진아의 바로 옆이었으니 더더욱 태진아의 기분을 볼 수밖에 없었다.[25] 이로인해 태진아는 이박사 관련 영상에서 늘 언급되며 비판을 받는다.[26] 박명수는 직접 이박사를 존경한다고 이야기를 한 인물이다. 거기다 박명수가 노래를 처음 시작할 때도 내는 음반들마다 "어디 관광 나이트 개가수들이나 부르는 허접하고 싸구려틱한 노래"라는 평가를 받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박사를 존경함과 동시에 자신과 비슷한 대우를 받았던 그에게 호의적일 확률이 높다. 하필이면, 바로 그 옆자리가 하필 이박사와 악연 투성이 태진아라서 눈치를 보았을 뿐이다.[27] 이박사와 비슷한 예로 KBS 해피투게더 시즌3에서 배우 겸 가수인 이지훈이 개그맨 김원효를 하대한 사건도 있다. 대충 사건설명을 하자면 자신에 대한 소개 멘트가 마음에 안 들었던 이지훈이 김원효에게 쥐포를 던지고 이에 김원효가 이지훈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다시 쥐포를 돌려준 사건이다. 또한 배우들도 자신들의 행사에(가령 영화제 시상식) 아이돌 가수들이 공연을 하면 팔짱끼고 무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연예계에서는 이렇게 급수를 따지는 일들이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다. 관련기사[28] 다만 트로트 장르만 고집하진 않았다.[29] 지금은 나훈아가 일본에서 활동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하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 활동했음에도 많은 인기를 얻었던 케이스다.[30] 윤상 曰 "이 분은 닥터(박사)세요."[31] 남진은 1970년대 당시, 나훈아와 더불어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할 만큼 대중 가요 분야에서 레전드 오브 레전드의 지위에 있는 거장이다. 그런 거장으로부터 ‘천재’라는 극찬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단순히 B급 문화를 통해서 반짝하고 뜨고 지는 화제성 스타덤이 아닌, 확실한 자기 색채를 인정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32] 태광음반에서 제작한 음반[33] 세월아 가지마라, 서울 깜빡이가 그의 자작곡. 춤추는 통일은 작사를 맡았다.[34] 이박사의 정수가 담긴 대표작으로 간주된다. 소울메이트인 키보디스트 김수일의 굉장한 즉흥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명반[35] 몽키매직과 영맨이 실려있다. 2CD로 구성된 메들리 앨범인데 다른 메들리 앨범과는 다르게 트로트 말고도 아름다운 강산, 고래사냥,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독도는 우리땅 같은 곡도 불렀다.[36] 음원사이트에는 '이박사 (신바람 이박사)'라 표기되어 있지만, 앨범 자켓에는 영어로 EXCITING WIND라고 쓰여 있다. 이 단어의 뜻은 다름아닌 신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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