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일본의 음악.일본에서는 간혹 '방악(邦楽, ほうがく)'이라고도 한다. 방악이라고 하면 J-POP과 일본 전통 음악 등 일본 국내에서 나온 모든 음악을 말한다. 5ch 음악 카테고리에는 방악판이라는게 있는데 방악판 계열의 판들은 바로 J-POP 전반을 다루는 게시판이다.
2022년 IFPI(국제음반산업협회) 발표 기준 일본 음악 시장 규모는 미국 음악 시장 다음으로 크다.[4][5]
큰 규모의 시장이기 때문에 공연 문화도 발전되어 있어 많은 국내외 가수들이 방일하여 공연하고 있으며, 특히 다른 아시아 음악 시장에서 인기가 떨어지는 편인 록과 일렉트로닉 뮤직에 있어서는 아시아 선두권의 시장 규모와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음악 시장에서도 가장 큰 규모는 역시 총 규모의 약 30%를 차지하는 아이돌 음악 시장이지만[6], 아이돌 시장의 비중이 그 이상으로 큰 한국에 비하면 좀 더 다양한 장르의 수요가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때문에 실험적인 장르들을 시도하는 뮤지션들도 있지만, 한국에서 일본 음악은 마이너하기 때문에 일본 음악이라 해도 보통은 애니 음악이나 J-Rock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도쿄 노래 문화에 대한 간단한 역사를 참고해도 좋다.
의외로 오히려 중국 CCTV나 지방방송에서는 커버를 하거나 해외가수를 초청하는 경우가 흔해서 일본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다[7].
2. 역사적 배경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 중에선 외국 특히 서구권 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국가다. 이로 인해 일본은 1920년대부터 재즈 풍의 음악이 수입되었고,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의 자유분방한 풍조에 힘입어 일본 대도시 곳곳엔 댄스홀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댄스홀을 중심으로 서구식 대중음악이 퍼지기 시작한다.[8]그러다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 태평양 전쟁 발발을 거치면서 이른바 "귀축영미"의 음악은 한동안 금기시된다. 하지만 적대국이 아니었던 아르헨티나, 브라질[9], 멕시코, 쿠바 등의 중남미 음악이나 추축국이었던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의 음악은 계속 유입되었다. 이는 훗날 일본의 라틴음악 붐에 큰 자양분으로 작용한다.
일본이 패전한 1945년 이후부턴 다시 미군정 시기 등을 거치며 문화적으로도 영미권 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는데, 이는 이후 일본음악의 유연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3. 일본 음악 장르
3.1. 가가쿠(雅楽, 아악)
자세한 내용은 가가쿠 문서 참고하십시오.일본의 전통 궁정음악을 일컫는다.
3.2. 민요
자세한 내용은 민요 문서 참고하십시오.3.3. 엔카
자세한 내용은 엔카 문서 참고하십시오.3.4. J-POP
자세한 내용은 J-POP 문서 참고하십시오.3.5. 뉴에이지 음악
일본은 뉴에이지 음악으로도 제법 유명하다. 물론 일부 곡들은 유명 애니메이션 영화의 OST와 겹치기도 하지만 대체로 애니메이션 OST가 아닌 뉴에이지 곡들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편이다. 유명한 음악가들로는 히사이시 조, 구라모토 유키, 어쿠스틱 카페, 사카모토 류이치 등이 있다.3.6. 애니메이션 음악
쉽게 풀이하자면 만화 주제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은 애니메이션 문화가 활발한 만큼 TV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의 (시작 곡) 오프닝과 (끝 곡) 엔딩 곡을 많이 만들어낸다. 일정 편수가 지나면 새로운 노래를 내놓는데[10], 보통 엔딩 곡이 오프닝에 비해 주기가 다소 짧은 편이다. 전체적인 느낌은 대중적인 부분도 조금 있다. 일본 가요 차트에 올라오는 곡들은 말 그대로 만화주제가 수준으로 대체로 조잡하지만 애니 음악 중 일부는 J-POP에 더 가까운 경우도 있다. 그리고 특정 가수의 앨범에 수록된 곡 중 일부를 애니 주제가로 내놓기도 한다. J-POP에서 활동하는 가수들도 참여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간혹 애니에서 나왔던 노래가 각종 음악 프로그램이나, 홍백가합전 등에 나오기도 한다. 성우겸 가수 미즈키 나나의 경우 2009년부터 2015년까지 6연속 홍백가합전 출전의 쾌거를 이루는 업적을 만들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식탓에 모든 일본 음악이 전부 애니메이션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한국에서의 드라마 OST와 비슷한 느낌이라 생각하면 편하다.3.7. J-Rock
자세한 내용은 일본 록 문서 참고하십시오.현대 일본 음악사에서 록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또한 팝과의 많은 교류가 이루어져 팝록이 발달함은 기본, 팝씬에서도 록을 베이스로 하는 등 일렉이나 힙합을 주류로 하는 한국의 팝과는[11] 매우 대조적이다.
3.8. J-Jazz
20세기 초부터 미국의 재즈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일본의 전통 음악 가락과 혼합한 독특한 형식의 재즈 음악이 발달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폐막식 때 차기 개최지인 도쿄 올림픽을 소개하는 순서에 일본식 재즈 음악에 따른 무용을 하기도 했다.3.9. 뉴뮤직
ニューミュージック (=New Music)새로운 음악이란 뜻으로,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걸쳐 일본의 대중음악의 일부에 사용된 명칭이다. 이런 종류의 음악들은 외국의 팝송 같은 리듬에 일본만의 특유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합쳐져 작사·작곡·노래까지 모두 하는 것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다. 2010년대 이후부턴 시티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장르기도 하다. 좀 더 정확하게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유행한 뉴뮤직 장르를 주로 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야마시타 타츠로, 튤립, 마츠토야 유미 등이 있다.
3.10. 유로비트
3.11. 일렉트로니카
일본은 초기 일렉트로니카, 특히 초기 테크노/디스코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전자음악 그룹인 YMO를 배출해낸 바 있다. 호소노 하루오미와 타카하시 유키히로, 그리고 후에 거물이 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세 콤비로 이루어진 YMO는 서방의 크라프트베르크를 위시한 기존의 일렉트로니카에 결코 뒤쳐지지 않았다.[12] 특히 이들의 2집 앨범인 Solid State Survivor는 아직까지도 초기 일렉트로니카 명반으로 많은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이들의 선풍적인 인기는 후에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주는데, 후술할 일본 게임 음악의 발전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YMO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으로는 덴키 그루브가 있다.[13]
YMO와 덴키 그루브 이후 일본의 유명한 일렉트로니카로는 CAPSULE이 있다. 캡슐의 프로듀서인 나카타 야스타카는 Perfume의 프로듀싱도 하는지라 퍼퓸도 일렉트로니카 스타일로 자주나온다.
나카타 야스타카 외에도 Ken Arai[14] 등 일본의 일렉트로닉 음악가는 굉장히 많다. 다만 이쪽은 J-POP 장르보단 작품 OST 계열이지만.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일렉트로니카로 Machìna가 있으며, 일본 도쿄를 거점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외신에 한국 출신의 일본 뮤지션으로 소개되곤 한다.
3.12. 오키나와 음악
오키나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음악이다. 원래 일본과 별개의 나라였다 보니 일본 본토와 구별되는 독특한 지역색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일찍이 미군 기지가 자리잡으면서 미국 영미권 팝이나 록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다. 가사가 류큐어로 된게 많다는 것이 장벽이지만, 현재 일본에서 오키나와 팝은 자신만의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키나 쇼키치&챰프루즈(喜納昌吉&チャンプルーズ)가 부른 하이사이 오지상 등이 잘 알려져 있다.
3.13. 게임 음악
게임 강국답게 게임 음악의 수준도 높다. 패미컴 시절부터 게임에 본격적으로 '음악'이란 게 생겼다는 점에서, 패미컴이 만들어진 일본은 어찌보면 '게임 음악 종주국'이라 할 수도 있다.리듬 게임 음악에 대해선 해당 문서 참조.
3.14. 노이즈
'재패노이즈'(Japanoise)라는 이름 혹은 '하쉬노이즈'(Harsh Noise)[15]로 묶여서 불리곤 하는 장르이다.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장르의 특성상 굉장히 마이너하지만 해당 장르에서만큼은 상당한 명성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보어덤스, 메르츠보우(Merzbow)가 있으며, KK Null, Masonna, Fushitsusha, Gerogerigegege, Xinlisupreme, Kazumoto Endo 등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유명한 노이즈 뮤지션들이 존재한다.4. 유명 대중음악 인물/단체
<연대 기준>
- 1960년대 이전
- 1960년대
- 1970년대
- 아마치 마리
- 신(新)고산케
- 꽃의 중3 트리오
- 핫피 엔도[19]
- 마츠토야 유미[20]
- 나카지마 미유키
- 고다이고
- 미야코 하루미[21]
- 사잔 올 스타즈[22]
-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 슈가 베이브[23]
- 타케우치 마리야
- 쿠와타 마리코
- 안리
- 핑크 레이디
- 캔디즈
- 타니무라 신지[24]
- The Alfee
- 마츠야마 치하루[25]
- 야자와 에이키치
- 야마사키 하코
- 스즈키 마사유키[26]
- 이노우에 요스이
- 사와다 켄지
- RC 석세션
- 카네노부 사치코
- 1980년대
- 나가부치 츠요시
- 코메코메클럽
- TM NETWORK
- 마츠다 세이코
- 나카모리 아키나
- 코이즈미 쿄코
- 오기노메 요코
- 오자키 유타카
- 토쿠나가 히데아키
- OFF COURSE
- 요시 이쿠조[27]
- SHOW-YA
- PRINCESS PRINCESS
- 모리타카 치사토
- 차게 앤 아스카
- 아밍
- 안전지대
- BOØWY
- 야쿠시마루 히로코
- 블루 하츠
- wink
- TUBE
- 유니콘
- 오쿠다 타미오
- LOUDNESS
- Casiopea
- T-SQUARE(The Square)
- 체커스
- 플리퍼즈 기타
- 소년대
- 히카루GENJI
- 오냥코클럽
- 1990년대[28]
- DREAMS COME TRUE
- JUDY AND MARY
- access
- 코무로 테츠야 사단
- 아무로 나미에[29]
- 미스터 칠드런
- 스핏츠
- 하마사키 아유미
- 스피드
- SMAP[30]
- BEING 계열
- X JAPAN[32]
- GLAY
- 우타다 히카루
- 드래곤 애쉬
- MISIA
- 시이나 링고
- Every Little Thing
- L'Arc~en~Ciel
- LUNA SEA
- My Little Lover
- 마키하라 노리유키
- 포켓 비스킷[33]
- 블랙 비스킷[34]
- 2000년대 ~
- 아라시
- ORANGE RANGE
- 케미스트리
- ZONE
- 쿠라키 마이[35]
- GARNET CROW[36]
- 코다 쿠미
- EXILE
- m-flo
- 모닝구 무스메
- Perfume
- AKB48
- 이키모노가카리
- 포르노그라피티
- 엘르가든
- 범프 오브 치킨
- RADWIMPS
- aiko
- 도쿄지헨
- ASIAN KUNG-FU GENERATION
- AAA
- 이토 치아키
- YUI
- SCANDAL
- 아이우치 리나
- GReeeeN
- 니시노 카나
- w-inds.
- 사에구사 유카 IN db
- Do As Infinity
- 나카시마 미카
- 마에야마다 켄이치
- 상대성이론(밴드)
- 히라이 켄
- 코부쿠로
- 2010년대
- 노기자카46
- 케야키자카46
- 히나타자카46
- Alexandros
- Aimer
- 캬리 파뮤파뮤
- SEKAI NO OWARI
- 모모이로 클로버 Z
- BABYMETAL
- ONE OK ROCK
- MAN WITH A MISSION
- back number
- SPYAIR
- UNISON SQUARE GARDEN
- E-girls
- 덴파구미.inc
- 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
- 사유리(가수)
- LiSA
- 산다이메 J SOUL BROTHERS from EXILE TRIBE
- DAOKO
- 호시노 겐
- 요네즈 켄시
- Ray(가수)
- amazarashi
- 아이묭
- Official髭男dism
- King Gnu
- YOASOBI
- 후지이 카제
- King & Prince
- 계속 한밤중이면 좋을 텐데.
- 2020년대 ~
5. 가요 프로그램
- NHK 홍백가합전[37]
- 뮤직 스테이션
- 밤의 히트 스튜디오 1968 ~ 1990
- 스타 탄생! 1971~1983
- 더 베스트 텐 1978 ~ 1989
- FNS 가요제 1년에 한번씩 개최
- 우타방 1996년 ~ 2010
- 헤이헤이헤이 뮤직챔프
- 뮤직 드래곤
- POP JAM
- Venue101
6. 관련 영상
일본 헤이안 시대의 가가쿠(雅楽, 아악)의 한 곡인 에텐라쿠(越天楽, 越殿楽). 가가쿠 가운데에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원래는 무용을 곁들였으나 현재는 실전되었다.
<아츠모리>(敦盛), 전국시대 무장 오다 노부나가가 즐겨 부른 것으로 유명하다.
후쿠오카 지역의 민요 <쿠로다 타령>(黒田節)
메이지 시대 말기에 불린 엔카 <옷페케페 타령>(オッペケペー節). 자유민권운동가 가와카미 오토지로(川上音二郎)가 작사했다.
다이쇼 시대 유행했던 부활 창가 <카츄샤의 노래>(カチューシャの唄). 여배우 마쓰이 스마코(松井須磨子)가 다이쇼 시대 당시에 부른 음원이다.
1961년 발표된 사카모토 큐의 <위를 보고 걷자>(上を向いて歩こう). 해외에는 SUKIYAKI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아시아권에서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다.[38][39]
60년대와 70년대를 풍미한 간사이 포크의 대표주자 다카다 와타루(高田渡)의 <생활의 분수>(生活の柄). 영상은 1988년 촬영된 것이다.
1971년 발매된 포크 밴드 붉은 새(赤い鳥)의 곡 <날개를 주세요>(翼をください). 아직까지도 인기 있는 국민가요급 노래이다.
7. 한국에서 유행했던 일본 음악
아래 목록에 있는 노래들은 일본에서도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지만 한국에 들어오면서 일본보다 더 유명해진 일본 노래들이다. 한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일본 노래들 중 雪の華처럼[40] 일본 내에서도 히트해서 한국에서 유달리 크게 히트쳤다고 보기 어려운 곡들은 제외했다.연인이여(恋人よ) - 1980년 이츠와 마유미가 부른 노래. 일본에서도 많이 인기를 끌었지만 이 노래는 발표된 뒤 몇 년 후 한국의 가라오케나 주점 등에서 널리 들려지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홍콩의 가수인 알란 탐, 한국의 가수인 린애가 '이별후애'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해서 부르기도 하였다.
사치코(サチコ) - 1981년 닉 뉴사가 부른 노래. 노래는 해당년도에 일본에서 레코드 신인상을 수상했다. 일본에서는 1981년을 빼면 거의 기억되지 않는 노래지만 한국에서는 제법 오랜 기간 인기를 끌었다.
X JAPAN의 주요 히트곡들 다수 - 단적인 예로 ENDLESS RAIN과 TEARS. 두 곡은 아직까지도 국내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러지는 일본 노래들로 손꼽히며 리메이크도 한국 가수들에 의해 여러 번 되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SAY ANYTHING, RUSTY NAIL, CRUCIFY MY LOVE등 X JAPAN의 여러 곡들도 국내 노래방 JPOP 장르에선 그래도 가장 많이 불러지는 순위권 노래에 꼭 들어가곤 했지만 2016년 이후로는 주류에서 밀려난 상태. Xjapan은 일본에서도 대단히 알아주던 비쥬얼락계에서 최상위 밴드였다. 제발 일본에서 유명하지 않았다는 헛소리는 하지 말자
RUN - 해당 문서 참조. 나가부치 츠요시의 대표곡이다. 한국에서는 이 노래가 발매된 1993년부터 여러 단란주점 등지에서 들려오면서[41]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단, 나가부치 쯔요시의 커리어 전체적으로 따지면 해당 곡이 나가부치 쯔요시의 최대 히트곡은 아니며 앨범 판매량 등으로 따졌을 때는 이전에 발매된 'とんぼ'(잠자리)나 'しゃぼん玉'(비눗방울)에게 밀린다.
한동안 주춤하다 2018년 간만에 드라마 언내추럴의 사운드트랙 Lemon이 SNS 등지를 타며 한일 양국에서 히트했다. 다만 한국보다 일본에서 그 해 최고 유행곡으로 더 히트한 노래긴 하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2020년에는 사쿠란보, 2023년에는 NIGHT DANCER랑 アイドル가 제법 히트했다. 특히 나이트 댄서는 SNS 쇼츠 영상 등으로 활용되면서 인지도를 높여 멜론 등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에서도 최고 10위권까지 진입하며 괄목할만한 성적을 보였다.
8. 관련 문서
[1] 상단의 사진은 <無限未来>의 프로모션 이미지.[2] 지와루 DAYS 음방 공연[3] 현재는 3인조 활동중[4] 미국, 일본, 영국, 독일, 중국, 프랑스, 한국, 캐나다, 브라질, 호주 순.[5] 다만 이는 기준을 음악 시장의 ‘매출 액수'로 보았을 때 2위이며 '음반 판매량'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인구가 많은 인도 시장과 차이가 크며, 피지컬 음반이 아닌 디지털 음반까지 포함하면 EP를 5000만장 이상 판매하는 중국 시장에 판매량 규모에서 더더욱 크게 미치지 못하여 아시아 3위, 세계 4위의 시장이 된다. 일본역대음반 판매순위, 인도 역대음반 판매순위, 중국 역대 음반판매량[6] 이중에서도 2020년대 초반 기준 세부적으로 나누면 4648 계열, K팝 계열, LDH, 스타더스트(모모클로), 쟈니스 계열이 큰 그룹을 이룬다. 다만 쟈니스는 2023년 창업주의 성스캔들 파문이 불거져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7] 중국 방송에서는 일본어 노래뿐만 아니라 영어, 한국어, 베트남어 노래 등 온갖 언어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8] 여담으로 이 시기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에서도 재즈풍의 음악이 유행했다. 당시 스타였던 무용가 최승희가 재즈 음반을 취입할 정도였다.#[9] 일본에서 이민 온 사람들의 후손이 많은 편이다.[10] 1기 오프닝, 2기 엔딩 등.[11] 참고로 한국식 팝 발라드는 유재하, 이영훈 때부터 클래식이 기본이긴 하다.[12] YMO의 데뷔앨범이 크라프트베르크의 최고 명반 The Man-Machine과 같은 년도에 출시되었다는 사실은 일본이 당시 전자음악에 얼마나 선구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13] 이들은 한국의 이박사와 콜라보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14] 열쇠가 잠긴 방, 기생수 생의 격률등 OST 담당[15] Wall이 뒤에 붙기도 한다.[16] 일본을 대표하는 남자 아이돌 사무소였지만, 2023년 창업주의 성스캔들 파문이 불거져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17] 히트곡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18] 딱 70년대 후반에만 인기를 끌면서 활동하고 그 이후 은퇴했다.[19] 일본 록 밴드 붐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전설적인 락 밴드이다. 일본 잡지들의 100대 명반 류의 설문 조사에서도 핫피 엔도의 風街ろまん 앨범이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밴드도 밴드지만 멤버 개개인의 음악적 성취도 뛰어난 편이다.[20] 1970년대 데뷔한 원로지만 2020년대까지도 음반은 물론 콘서트 동원력까지 상위권을 찍고 있는 일본의 레전드 여자 솔로 아티스트다.[21] 1975년에 기타노 야도카라를 부른 가수로 1975년에 이 노래를 발표하였지만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래도 그 해 홍백가합전에 나가서 이 노래의 인기가 생기기 시작하여, 76년에 홍백가합전 맨 마지막 무대인 오오토리(大トリ)를 맡았다.[22] 상기한 마츠토야 유미와 마찬가지로 2020년대까지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국민 밴드다.[23] 뉴뮤직 시티팝의 시초격으로 평가받는 그룹이다. 다만 밴드 자체는 상업적으로 실패했고, 해체 이후 이때 멤버 개개인들이 활약하면서 밴드 위상도 재평가된 것.[24] 솔로 활동은 1980년대부터 했지만 그 이전에 1970년대에 아리스라는 밴드를 만들어 여러 곡들을 작곡하여 활동했다. 1981년 아리스 해체 후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25] 1955년생으로 70년대 말에 여러 대표곡들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많이 알려져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한국계다.[26] 밴드 '샤네루즈'로 1978년 데뷔. 1987년 '론리채플린'으로 듀엣을 같이한 스즈키 키요미의 동생이다.[27] 데뷔는 한참 전에 했지만 그의 대표곡들은 전부 1980년대에 만들어졌다.[28] J-pop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일본 내부적으로 보면 거품경제가 한창이던 1980년대도 발전하던 시기긴 했지만, 상당한 실력파 가수들이 나오면서 대외적인 위상은 90년대가 가장 절정이긴 했다. 다만 이때도 여러 일본 가수들이 세계 진출을 선언하며 빌보드 문을 두드렸지만 결국 메인스트림 진입에는 실패했다.[29] 90년대 이후 코무로 사단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다.[30] 2016년 쟈니스 정식 탈퇴.[31] 데뷔는 1988년이지만 주 활동시기는 1990년대부터.[32] 일본 대비 한국에서 인기가 많았던 밴드다.[33] 1996년 '웃짱난짱의 우리나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그룹. 멤버 치아키, 캬잉의 우도 스즈키와 웃짱난짱의 우치무라 테루요시. YELLOW YELLOW HAPPY 대표곡이며 항목에 결성 계기가 소개 되어있다.[34] 위와 동일한 프로그램에서 포켓 비스킷의 결성 1년 뒤에 포켓비스킷의 라이벌로 나온 그룹. 멤버 비비안 수, 아마노 히로유키와 웃짱난짱의 키요타카 난바라.[35] 데뷔는 1999년 12월이지만 주 활동시기는 2000년대[36] 인디즈에는 1999년 데뷔, 실제 데뷔는 2000년[37] 다만 명성에 비해 무대의 질은 다른 가요 프로그램보다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38] 60년대는 비틀즈가 활동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이쪽은 장르도 언어도 다르지만..[39] 이후 2020년 발표된 방탄소년단의 <DYNAMITE>가 아시아권에서 2번 째로 빌보드 1위를 기록했다.[40] 일본에서도 대단히 알아주는 명곡이었다.일부 국뽕들이 원곡보다 박효신의 리메이크 버전이 좋다고 과하게 주장을 해서 유튜브에서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41] 물론 일본 대중문화 수입이 금지된 당시 특성상 양성화된 인기라고 보긴 어렵다.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겐 인기가 있었을테고, 못 듣는 환경의 사람들은 당시에도 전혀 못 들어본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