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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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魯褒생몰년도 미상
서진 시기의 은사. 자는 원도(元道). 형주 남양군(南陽郡) 출신.
2. 생애
노포는 공부를 좋아하고, 들은 것이 많아 박학하였다. 혜제 사마충 재위기에 천하의 기강이 크게 무너지자, 노포는 가난하여 소박하게 생활하였음에도 비겁하고 탐욕스러운 당시 세태에 혐오감을 느껴 성과 이름을 숨기고 은거를 선택하였다. 그는 은거하면서 〈전신론〉(錢神論)[1]을 저술하여 돈을 과하게 떠받드는 서진의 귀족들을 비판하였다. "돈은 귀가 없지만 가히 귀신을 부릴 수 있다.(錢無耳,可使鬼)"라는 말도 여기서 소개한 고대 중국의 속담이다.노포의 글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나, 마지막까지 숨어서 생활한 탓에 언제 어디서 생을 마감하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1] 서진 말기 비꼬며 남긴 부분은 이렇다. 돈이 매사에 위주가 되니 마치 형제처럼 친하다. 자字는 동전의 가운데에 사각형 구멍이 뚫린 까닭에 공방孔方이라고 했다. 덕이 없는데도 존귀하고, 세력이 없어도 따르는 자가 많다. 금으로 만든 문을 밀치고 궁 안으로 들어가니 위험한 것도 안전하게 하고, 죽은 것도 살려낸다. 귀한 것도 천하게 만들고, 살아 있는 것도 죽게 만들 수 있다. 어떤 분쟁도 돈으로 되지 않는 게 없고, 막힌 것도 돈이면 뚫리지 않는 게 없고, 원한도 돈이면 해결되지 않는 게 없다. 지금 듣건대 돈이 아니면 되는 게 없다고 한다. 요즘 사람에게는 오직 돈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