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72악마에서 바알이 악마로 묘사된 형태에 대한 내용은 바엘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메소포타미아 신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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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Baal 또는 Ba'al)은 고대 가나안 지역의 주신이었다. 유대교에서 적대시했던 대표적인 우상으로, 기독교에서는 악마의 일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유사 여신으로 바알의 아내로 여겨지는 아세라가 있다. 현대에는 레바논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의 고대 도시 국가 비블로스에서 발원했던 페니키아 민족(가나안 왕국)의 주신이었다.[1]
바알은 셈어로 '왕', '주인', '소유자' 혹은 '희생'이라는 의미의 말인데, 특히 소유자, 주인, 숙련자 같은 매우 전형적인 의미로서 사용된 보통명사였다. 예를 들어, 새는 '날개의 바알', 궁수는 '활의 바알림'하는 식으로 쓰이기도 했다. 결국 본래 바알이라고 하는 단어는 초기에는 특정한 활동에서 능숙한 존재한테 붙는 '보통 명사'였을 뿐, 어떤 특정한 신격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2]
페니키아 민족은 나중에는 지중해를 개척하는 해양 제국을 건설하게 되지만, 그 이전까지는 메소포타미아 문화의 서쪽 끝의 지역으로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수메르 신화에 나오는 아누, 엔릴, 인안나(=이슈타르) 같은 신들 또한 페니키아 민족들은 '바알'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배경에서 바알 신앙의 직접적인 기원은 메소포타미아 일대의 풍요・기상의 신격 아다드(하다드)라고 추정된다. '하다드'는 수메르와 아카드 서쪽지방에 거주하던 아모리인들이 섬기던 최고신 '아다드'의 별칭이면서, 가나안에 자리를 잡은 페니키아 민족이 부르는 바알의 또다른 명칭으로 영리한 자를 뜻한다. 기원전 2500여 년 경에 성경으로 유명한 가나안 지역에는 수메르 신화(혹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은 페니키아 민족들이 정착했다. 그들은 수메르 신화를 모방한 '우가리트 신화'를 믿었는데, 이때 수메르 신화의 주신 엔릴은 하다드 신앙과 결합되어 '바알 하다드'라는 주신이 되었다.
또한, 당시에는 후대의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인 유대교가 보여주는 모습처럼 직접적으로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오만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페니키아 민족들은 자신들의 주신을 '주님' 즉, '바알'이라는 형식으로 불렀다.[3] 이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아다드 신앙은 가나안 지방에서 '바알 엔릴' '바알 하다드' 같은 명칭으로 구전되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유대교에서 야훼를 주님이라고 부르다가 본래의 신을 부르는 이름을 잊어버렸듯이, 페니키아 민족들도 바알 하다드라는 본래의 이름이 사라지고 보통명사였던 '바알'이 신격의 이름으로 남았다. 또한 페니키아 민족이 지중해를 개척하고 다니면서, 바알 제폰[4], 바알 함몬 등 여러 형태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래 문단에서 언급하듯 유대교인들에게 가나안 남부 지역의 원래 주민들이 믿고 있었던 바알 신앙은 가장 큰 경쟁자였으며 교리상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존재였으므로 강력히 바알 신앙을 배척하고 그 의미를 격하시켰다. 최후의 페니키아 제국이었던 카르트 하다쉬트가 로마에 패배하여 사라지고, 예수 이후 형성된 기독교 세계관에 와서는 아예 대표적인 악마(바알세불과 바엘)로 여겨지게 되었다.[5] 유대인들이 이 신앙을 얼마나 철저하게 없애버렸는지, 바알 신앙의 실체는 근대에 서구 고고학자들이 관련 유물을 발굴해 내기 전까지 단편조차 전해지지 않을 정도였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고대 이 지역에서 월등한 지위와 의미를 가진 토착 신으로서 유대인들이 큰 위협으로 느꼈던 대상임을 알 수 있다.[6]
2. 신격
바알의 신격은 다른 초기 농경 사회의 신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폭풍우와 비, 번개, 풍요의 신이자 태양신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신인 벨과 동격으로 사료되며, 이집트 신화의 세트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가나안 지역에서는 최고신 엘의 아들로 알려졌는데, 여신 아셰라 혹은 아스타르테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라고도 한다. 이본에 따라서는 그 아버지가 다곤으로 되어 있거나, 또는 아스타르테가 바알 자신의 아내라는 신화도 있다.승리의 여신 아나트의 오빠이자 남편으로, 허리춤에 단검을 차고, 왼손에는 창을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곤봉을 휘두르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창과 마법의 곤봉을 주무기로 사용하고 단검은 부무기로 사용했으며 창과 곤봉, 또는 두 마법 곤봉들의 이름은 각각 야그루시(제거)와 아야무르(추방)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Baal Cycle에서는 물의 신 얌 나할(Yam Nahar), 사신(死神) 모트(Mot)와는 적대 관계이다. 물의 신과의 싸움은 그가 거친 자연의 물을 다스리는 치수의 신이라는 것을, 모트와의 싸움은 풍요를 관장하는 신임을 상징한다. 그러면서, 바람, 천둥번개, 비와 샘물을 주관하다보니 하늘의 신으로 여겨지곤 했으며, 아이들을 출산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으며,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고 한다.
3. 바알 신앙의 역사
우가리트의 문헌에[7] 엘, 아세라와 함께 바알의 이름이 언급될 정도로 그 기원이 오래된 신이다. 아나트와의 관계와 모트와의 싸움과 죽음에 관한 내용도 우가리트 신화에 나온다. 가나안 전역에서 숭배를 받았기 때문에 히브리인들도 바알-하다드라는 명칭으로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가 망할 때까지 시골 농촌에서는 야훼 신앙과 함께 숭배했다고 하며[8] 팔레스타인에서는 멜카르트라 불리기도 했다. 고대 히브리의 바알 사제는 제를 올리며 무언가를 간구히 청할 때 자해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그들은 준비한 황소를 받아 잡아놓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오, 바알이여, 대답하소서."
그러나 대답은커녕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 예언자들은 자기네가 만든 제단을 돌면서 절뚝거리는 춤을 추었다.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말하였다.
"바알은 신이니까, 더 크게 불러보아라. 깊은 사색에 빠져 계신지도 모르지. 외출 중인지 아니면 여행 중인지 혹은 잠이 드셨는지도 모르니 어서 깨워보아라."
그들은 더 크게 소리쳤다. 자기네 의식을 따라 칼과 창으로 몸에 상처를 내어 피까지 흘렸다.
1열왕 18, 26-28(공동번역성서)
"오, 바알이여, 대답하소서."
그러나 대답은커녕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 예언자들은 자기네가 만든 제단을 돌면서 절뚝거리는 춤을 추었다.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말하였다.
"바알은 신이니까, 더 크게 불러보아라. 깊은 사색에 빠져 계신지도 모르지. 외출 중인지 아니면 여행 중인지 혹은 잠이 드셨는지도 모르니 어서 깨워보아라."
그들은 더 크게 소리쳤다. 자기네 의식을 따라 칼과 창으로 몸에 상처를 내어 피까지 흘렸다.
1열왕 18, 26-28(공동번역성서)
팔레스타인에서 이주한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국가인 카르타고에서도 바알-함몬(Ba'al-Hammon)이라는 이름으로 숭배되었다. 후에 그리스 폴리스들과의 교류를 통해 크로노스와 동일시되었다. 바알-함몬은 카르타고의 주신(主神)인 동시에 달의 여신이자 카르타고의 수호 여신인 타니트의 남편인데, 카르타고인들의 이름에서 자주 나오는 '발'(한니발, 하스드루발, 마하르발 등)은 이 '바알'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니발은 어린 시절에 바알의 신전 앞에서 로마에게 복수하겠노라 맹세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제우스, 유피테르, 바빌론의 마르두크와 인도 신화의 미트라와 바루나, 그리고 인드라와도 동일시되었으며 인드라 그 자체, 혹은 인드라의 권속 중 하나인 지원정사란 신의 수호신인 우두천왕이라는 소 머리신[9]이 되어 중국, 한국을 경유하여 일본으로 들어와 일본의 신 스사노오 혹은 아마테라스, 카르타고 신화의 주신 몰레크, 켈트 신화의 죽음의 신 던, 헤라클레스, 성경의 바알세붑(루시퍼)와 창조신 야훼와도 동일시 및 불렸다고 한다.
3.1. 고대 이스라엘
성경에는 바알이 이민족의 신으로 등장하여, 바알을 섬기고 있는 것을 타락의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다. 끊임없이 그 사제들과 야훼의 예언자들이 충돌한다. 주로 남북왕조로 나뉘어진 열왕기, 역대기에 이러한 대립이 중점적으로 나온다.
바알 숭배 신앙에 대한 영향력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사이에 끼여있는 유대인들에게도 매우 강력한 영향력이 있었다. 이는 모세가 최초로 야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순간부터, 유대 왕국이 바빌로니아 제국 등에 의해서 완전히 몰락할 때까지, 바알 숭배의 영향을 받았다. 사실, 유대교의 유일신앙의 사상은 그들 내부에서도 오랫동안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으며, 우리가 잘 아는 구약성경에서도 이 바알 숭배와 야훼 숭배의 갈등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왕국에서는 야훼 신앙과 바알 신앙의 혼합을 경계시하였다. 이는 크게 두 가지 문제로 첫째는 바알(몰록)신앙이 암몬족과 다른 셈족들의 신앙에서 기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정복자인 히브리인 입장에서는 이들 종교와 동화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고유 문화와 국가 정체성까지 흔드는 행위였다. 둘째는 성적으로 엄격하던 히브리인들의 교리와 난교 등의 성행위를 종교의식 삼아 시행하는 다른 셈족들의 문화는 도저히 섞일 수 없었으며, 제사장들이 용납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었다. 따라서 야훼와 바알을 혼동한다는 것은 상당히 중대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히브리인들이 이에 동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신공양 같은 악질적인 행위 또한 성경에서 수차례 언급한다. 성경에 야훼에게 바치는 인신공양 행위가 성경에 그대로 나오기도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애초에 이 행위 자체가 특이한 사례라 기록된 것이며, 이후 이 행위에 대해 애곡하는 사례가 생겼다는 바로 뒤에 나오는 서술을 빼버린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정체성 사수를 위해 바알은 사탄 혹은 악마와 동의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시편에서 바알을 악마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나올 정도다.[11]
그래서 바알 신앙과 적대하는 유대인들은 바알에게 멸칭을 붙여 바알세붑이라 불렀다. 자세한 내용은 바알세붑 참조.
3.1.1. 출애굽기에서의 바알 숭배
백성은 모세가 오래도록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아론에게 몰려와 청하였다. "어서 우리를 앞장설 신을 만들어주시오.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온 그 어른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론이 그들에게 "너희 아내와 아들 딸의 귀에 걸린 금고리를 나에게 가져오라." 하고 대답하자 백성이 모두 저희 귀에 걸린 금고리를 떼어 아론에게 가져왔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 수송아지 신상을 부어 만들자 모두들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 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내온 우리의 신이다." 아론은 이것을 보고 그 신상 앞에 제단을 만들고 "내일 야훼 앞에서 축제를 올리자." 하고 선포하였다. 이튿날 그들은 일찍 일어나 번제를 드리고 친교제물을 바쳤다. 그리고 나서 백성은 앉아서 먹고 마시다가 일어나서 정신없이 뛰놀았다.
출애굽기 32장 1~6절
출애굽기 32장 1~6절
탈출기에서는 야훼의 기적으로 통해서 이집트로부터 해방된 유대민족들이 소 신상을 만들어 그것을 숭배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위에서 보았듯의 바알의 상징은 소, 특히 황소[12]. (숫소)로 묘사되기도 한다. 바알의 여신인 아낫이 암송아지로 상징되고, 만신전의 주신인 엘신이 황소로 상징된다. 다시 말해,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준 존재 야훼를 바알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상황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유대인들은 수백 년 동안 이집트의 영향력 안에서 생활하였고, 그 결과 당시 이집트에서도 인기가 있었던 바알 숭배를 습득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자신들을 구원한 신을 향해서 제사행위를 하려고 하였을 때, 유대인들은 소 신상을 만들어서 자신들을 구원해 준 신에게 보답하려고 했을 것이다.[13]
3.1.2. 기타 구약성서에서의 바알 숭배
성지 예루살렘을 보유하고 종교적인 우위에 서려는 남유다 왕국에 대항해 북이스라엘의 1대 왕인 여로보암 1세가 황금 송아지상을 북이스라엘 최남단과 최북단에 세우면서 북이스라엘은 다신교 신앙이 강화된 사회가 된다. 여기에 북이스라엘의 4번째 왕조, 오므리 왕조의 2대왕인 아합왕이 시돈의 공주 이세벨을 아내로 맞으면서 처가의 종교인 가나안 토속 신앙을 대대적으로 장려.[14] 바알뿐만 아니라 아쉬타로트, 아세라 등의 가나안 토속 신들이 숭배된다.현대 역사가들은 북이스라엘 왕실들이 지속적으로 비(非)야훼신앙 및 바알로 위시되는 가나안 다신교를 추종했던 것을 남유다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교로부터 백성의 눈을 돌려 유다의 종교적 우위를 약화시키려했던 종교정책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 12족속 중 국민 다수가 유다 족속이고 소수가 베냐민 지파였던 남유다 왕국에 비해 나머지 10개 족속[15]의 연합왕국 형태였던 북이스라엘 왕국은 각 족속 간의 알력다툼으로 정치가 불안정했다. 실제로 유다가 다윗 왕가로 계속 이어진 데 반해서 이스라엘은 왕조가 여러 번 바뀌었다. 게다가 북이스라엘의 각 지방에 산재한 종교적 보수파와 기존 신앙을 유지하고자 하는 민중이 엘리야, 엘리사로 대표되는 "예언자"들의 "예언"을 등에 업고, 외래종교를 강요하는 왕실 및 귀족, 그리고 이민족 세력과 충돌을 일으켜 남유다에 비해 북이스라엘은 사회 전반이 종교적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 앗시리아 제국(아시리아), 바빌론 제국(신바빌로니아), 특히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에 의해 가나안의 북이스라엘 왕국과 주변 국가들(모압, 암몬, 에돔, 블레셋 등)이 폭삭 망하고, 유다 왕국의 유대교 신앙이 정립되면서 바알 신앙은 힘을 잃어, 이후로 성서에서 바알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게 된다. 여기에 바빌론 포로로 끌려 갔다가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해방된 유대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서 종교 개혁운동을 일으켜 유대인들 사이의 바알 신앙을 완전히 뿌리 뽑아 버렸다.
바빌론 유수 전, '주인'이란 의미로 바알을 지명이나 인명에 이용한 예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사울 왕의 아들 중 하나인 에스바알(Eshbaal). 그러나 이런 경우는 후에 성경 집필자들이 바알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모두 치욕이란 뜻의 보셋(bosheth)로 바꾸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는 에스바알의 이름이 이스보셋(Ish-bosheth)이라고 나와 있다. 그외에도 므립바알(Meri-baal, 므비보셋)이나 여룹바알[16](Jerubbaal, 여룹베셋) 등이 있다. 고대 근동에서는 인명에 신의 이름을 넣는 경우가 흔하였다.
3.2. 중세 유럽(바엘)
바알 신앙은 그 후로도 명맥이 그럭저럭 유지되다가,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문화의 침입으로 흔들리고, 유다 마카베오 왕조의 바알신앙 탄압으로 약화되고, 로마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또 흔들리더니, 로마가 기독교화되면서 소멸했다. 그리고 중동이 이슬람화되면서 티끌만 한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적대적이다가 소멸된 신들이 으레 그렇듯, 중세 유럽에서는 솔로몬의 72악마 가운데 으뜸인 바엘이라는 악마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자세한 사항은 바엘 항목 참조.사실 바엘이란 이름이 왕을 의미하기에, 악마[17] 중에서 악마 바알제붑, 악마 벨페골 등 발, 바알, 벨이 들어가는 악마가 많다.[18]
3.3. 근대 이후
바알 신앙이 이슬람화로 소멸된 이후 근대 제국주의로 중동이 열강들에게 분할되고 점령당한 뒤 학자들의 고고학 조사로 바알 신앙의 흔적과 유물이 발견되어 현재로 이르고 있다.4. 대중 매체에서
자세한 내용은 바알/창작물 문서 참고하십시오.[1] 성경의 영향으로 '가나안'이라고 하면 현대 이스라엘이 있는 지역, 그리고 그곳에 살았다는 페니키아 민족의 분파인 필리세트(블레셋, 팔레스타인)들에 한정되는 매우 축소되어있는 개념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고고학적으로는 페니키아 민족의 중심지는 현대 레바논 지역이었다. 한마디로, 성경에서 많이 나오는 '가나안 지역'은 페니키아 민족이 세운 카나안 국가 중에서 남부 지역만을 다루고 있고, 팔레스타인 분파들의 영토는 알짜배기 지역이긴 했지만 이후 페니키아 민족이 지배하는 지중해 전체를 보자면 극히 일부 지역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그치는 정도에 불과했다.[2] 즉, 바알이라는 단어는 초기에는 종종 신격으로 사용되더라도, 한국 신화의 동화책에 나오는 '백두산 산신령', '소백산 산신령'과 같은 구체적인 특정성이 없는 전반적인 남성 신격 혹은 장인들을 높여주는 개념과 같았다.[3] 유대인들의 신을 성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유대교에서도 야훼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은 매우 꺼림직한 일로 여겨졌고, 1년에 한 번 대사제가 성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혼자 들어가서 야훼라고 한 번만 부르는 것이 허용되었을 정도로 신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은 문화적 금기였다. 보통 유대인들은 야훼를 주님이라는 뜻의 '아도나이'라고 불렀다.[4] 고대 카르타고의 천둥, 비구름, 해일을 관장하는 신.[5] 페니키아 민족의 몰락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들의 한계였던 도시 국가 체제에서 기인한다. 자유주의, 상업주의 측면에선 굉장히 발전한 세력이었지만 기독교, 이슬람을 받아들인 영토 국가 개념과의 경쟁에선 다소 약점이 많았다.[6] 대다수의 종교가 그렇기는 하지만 강경한 일신교 신앙인 아브라함계 종교가 유독 토착 신앙 배제가 심한 수준이긴 하다. 역사적으로 아브라함계 종교에 대체되어 완전히 사라진 종교는 굉장히 많고, 사실 기독교도 로마에 뿌리를 내렸다는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비교적 유화적으로 흡수된 로마 신화를 제외하면 다른 이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성향을 나타내 왔다. 때문에 인신공양 이야기도 조작된 이야기라는 설이 나올 정도였지만, 이건 지금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고 여겨지기는 한다. 다만 이것도 자료는 성서로 작성된 내용 밖에 없고 고고학적인 증거는 아직 애매한 편이다.[7] 우가릿은 기원전 12세기에 패망하고 땅에 묻혔다가 약 3천 년이 지나 1928년에 발견되었기에 토판의 진정성이 크다고 평가받는다.[8] 고고학적으로 야훼 신앙의 일신교가 완전히 자리잡힌 건 유다와 이스라엘이 멸망한 바빌론 유수 이후였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가나안의 페니키아인과 차이가 거의 없었고 신앙도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몇몇 왕들이 일신주의를 펼치기도 했지만 시골에서는 여전히 가나안의 전통 신앙이 강세였고 이는 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거기에 아시리아나 바빌로니아로부터 다른 신앙을 받아들이기도 했다.[9] 이 우두천왕은, 기원정사의 수호신으로 알려진 불교의 천인 중 하나로, 인도 신화의 뇌신 인드라가 가진 별명 중 '고마야 그라바 데바라자'가 불교로 흡수되어 천부의 일원이 되었다고 한다. 4세기쯤에 중국에 들어와 염제 신농과 습합되기도 했다고 한다.[10] 위 내용은 아합 왕의 아들 아하시야(개역개정판 기준. 공동번역성서에서는 아하지야)에 관한 이야기. 아버지 따라서 아들도 말썽이다[11] 시편 106편 37절(가톨릭 기준으로는 105편 36절)[12] 황소는 만신전의 주신 엘의 상징으로 엘의 자리를 이어 주신이 된 바알이 그 상징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13] 이집트 일부에서 황소는 최고신 라의 상징으로 생각되었으며, 서아시아에서 최고신들의 상징 동물은 거의가 황소였다.(그리스의 제우스, 가나안의 바알, 수메르의 엔릴, 히타이트의 테숩 등) 또한 고대 신앙은 이민족의 신을 자신들의 신과 동일시하는 풍조가 매우 강했으며, 이에따라 자신들의 신과 이민족의 신을 언어에 따라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인 같은 신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당시 풍습에서 모습을 모르는 최고신에 대한 상징으로 조형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이 이러한 것을 만들었을 때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야훼와 교제 중이었기에 자신들 마음대로 신을 조형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14] 사실 바알신앙이 이스라엘에 도입된 건 왕정시대보다 훨씬 이전이다.[15] 베냐민 지파는 지파 자체가 소수이기에 다수인 유다 지파를 따라 유다 왕국으로 불리게 된다. 그 밖에도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던 레위 지파의 핵심 제사장 족속과 유다 지역 내에 자신들의 영토를 가지고 있던 시므온 지파는 남유다 왕국에 그대로 포함되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남북 분열왕국은 유다와 베냐민, 일부 레위 및 시므온 찌꺼기 vs 나머지 모든 지파 형태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16] 이건 사사기 때의 인물 기드온의 별명이기도 하다. 기드온 사후 수백 년이 흐른 후 다윗이 기드온을 인용하며 '여룹베셋'이라고 호칭한다.[17] 원래는 중동 지역의 신이었다.[18] 심지어 고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의 발도 왕이라는 뜻이다. 한니발이라는 이름은 '한노바알'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는 '신의 은총'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