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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22:02:38

볼숭 일족의 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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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성립3. 줄거리
3.1. 특징
4. 해석5. 등장인물
5.1. 볼숭 일족5.2. 니플룽(니블룽) 일족5.3. 부들룽 일족5.4. 기타 등장인물
6. 기타

1. 개요

Vǫlsunga saga

북유럽 신화에 속하는 이야기로 볼숭 씨족(Vǫlsunga)[1]의 시조의 탄생부터 볼숭가의 며느리에 해당되는 구드룬의 인생역정까지를 담은 산문이다. 독일어로는 뵐중 사가(Völsunga saga)라 읽는다.

원래 북유럽 신화는 천지창조부터 대파멸이 일어나는 라그나로크까지 주로 아스가르드에 사는 신들이 복닥대는 이야기인데, 이 볼숭 일족의 사가는 미드가르드, 즉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일종의 '외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이 사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남겼으며 현재에도 창작물이나 서브컬쳐에 많이 인용되고 있다.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가 바로 이 볼숭 일족의 사가의 내용을 바탕으로 니벨룽의 노래에 나오는 이야기를 일부 첨가한 작품.[2] 이 외에도 노르웨이의 문호 헨리크 입센의 희곡 헬겔란드의 바이킹(The Vikings at Helgeland)이 볼숭 일족의 사가에 나오는 시구르드브륀힐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870년에는 윌리엄 모리스아이슬란드의 학자 에이리쿠르 마그누손에 의해 최초의 영어 번역본이 출판됐으며, 윌리엄 모리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로 이 사가를 재작성한 서사시 "볼숭 일족의 시구르드의 이야기, 그리고 니블룽 일족의 몰락"(The Story of Sigurd the Volsung and the Fall of the Niblungs)도 발표했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톨킨은 어린 학생이었던 시절에 모리스와 에이리쿠르가 번역한 볼숭 일족의 사가를 읽었고, 이 경험은 베오울프와 더불어 훗날 그의 작품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됐다.[3] 또한 톨킨 역시 볼숭 전설을 자신의 스타일로 변주한 '시구르드와 구드룬의 전설(The Legend of Sigurd and Gudrún)' 이라는 작품을 남겼다.[4]

원래 북유럽 신화는 특유의 잔혹함과 폭력성으로 유명한데, 이 볼숭 일족의 사가에도 그런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나마 일관된 이야기로 정리하면서 원래의 전승에 있는 충격적인 상황들을 많이 다듬었지만 여전히 오늘날 관점으로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내용들이 난무한다.

2. 성립

이 사가가 문서로 정착된 시기는 대략 13세기 후반으로 보고 있다.[5] 하지만 볼숭 일족의 사가의 뼈대를 구성하는 이야기들은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인 10세기나 그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운문 에다(古 에다)나 룬스톤 등에 이미 등장하고 있다. 학자들은 5세기경 훈족에 의해 부르군트 왕국이 (일시적으로) 멸망했던 사건이나 6세기 메로빙거 왕조의 유명한 앙숙이었던 브룬힐다(Brunhilda)와 프레데군다(Fredegunda)의 싸움 등의 역사적 사건에서 볼숭 일족의 사가를 구성하는 중요한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이 전승이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는 북유럽 신화에 편입되었었으며 기독교가 좀더 일찍 보급된 독일 지역에서는 니벨룽의 노래로 이어진다.

운문 에다(옛 에다)를 비롯해 각종 북유럽 신화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원래 볼숭 씨족의 이야기를 비롯한 이들 이야기는 구전을 통해 전해진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다 다르고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작가들이 볼숭가에 속한 인물들에 대한 각종 전승을 모조리 수집해서 첨삭과 각색을 통해 일관된 이야기로 구성한 결과물이 바로 볼숭 일족의 사가이다. 이때 스토리상의 개연성을 높이고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원래의 신화에 없던 이야기들이 다수 창작되어 추가되었는데, 덕분에 사료로서의 가치는 희생되었지만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매우 높아졌다.

한편 사가에 나오는 헬기는 원래 볼숭가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별도의 전승에 속한 인물이었는데 후에 볼숭가 이야기에 편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시구르드와 브륀힐드의 딸로 잠깐 언급되는 아슬라우그는 에다나 볼숭 일족의 사가 이전부터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두번째 아내가 된 용살자 시구르드의 딸" 이라는 설정으로 당시의 노르드인들과 볼숭 혈통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6]

3. 줄거리

레리르는 오랫동안 아내와 사이에 자식이 없자 신들에게 아들을 점지해주길 기도한다. 프리그는 그 기도를 듣고 오딘에게 부탁했고, 오딘은 발키리 중 하나인 흘료드에게 사과 하나를 주어 레리르에게 보냈다. 흘료드는 까마귀로 변신해 사과를 전했고, 레리르의 아내는 이 사과를 먹고 임신해 볼숭을 낳게 된다. 이 볼숭의 탄생은 범상치 않았다. 보통 아기는 10개월이면 태어나지만 어째서인지 볼숭은 몇년이 지나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인 레리르는 볼숭이 태어나는 것만 기다리다가 전투에서 전사했고, 홀로 남은 아내는 애 낳기만 목빠지게 기다리다가 그만 병에 걸렸다. 그녀는 죽어가던 도중 자식만은 꼭 낳아야겠다고 생각해 제왕절개로 볼숭을 낳고 사망한다.(당시 기술력을 보면 제왕절개를 하고 나서 수습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볼숭이 태어나는데만 무려 6년이 걸린 셈.

다행히도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어렵게 태어난 볼숭은 이후 뛰어난 영웅이 돼서 자신의 가문을 일으킨다. 그리고 볼숭의 아내도 비범한데, 바로 볼숭이 태어나는 계기가 된 사과를 전한 발키리이자 거인의 딸인 흘료드(Hljóð). 볼숭과 흘료드는 장남 시그문드와 장녀 시그뉘를 낳고 이후 9명의 아들을 더 낳는다. 볼숭의 아들 시그문드는 오딘이 내려준 검 그람(Gram)을 두고 시게일 일족과의 사투를 벌이게 되는데.....

볼숭과 흘료드가 결혼한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항목 순으로 읽어보면 된다. 시그문드 - 시구르드 - 브륀힐드 - 구드룬. 이 항목들의 내용을 연결하면 볼숭 일족의 사가 전체의 내용이 된다.

3.1. 특징

북유럽의 수많은 전설 속에서도 손꼽히는 영웅 가문인데다가 오딘의 피를 이은 가문인 만큼 고대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왕국의 왕들은 자신들이 볼숭 일족의 후예라 자칭하기도 했다. 필리포스 2세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자신들을 아킬레우스의 후예라 부르던 것과 비슷한 이치. 하지만 어째서인지 볼숭 일족은 영웅 가문으로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가 불행한 최후를 맞는다(...) 내용만 보면 '볼숭가(家)의 수난사'라고 제목을 붙여도 될 정도.

볼숭이 자기 딸 시그뉘를 시게이르에게 결혼시킨 것이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볼숭, 그리고 시그문드를 제외한 모든 아들들이 시게이르에게 죽었으며 그나마 시그뉘는 (어쩔 수 없었지만)[7] 오빠 시그문드와 근친상간을 해서 아들 신표틀리를 낳았으며 시그문드가 복수를 완료할 때 자신도 시게일을 따라 불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그럼 복수에 성공한 시그문드와 신표틀리가 행복했냐면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시그문드는 시그니가 죽은 후 보르그힐드(Borghild)와 결혼했는데 이 보르그힐드는 신표틀리가 자신의 형제를 죽인 일로 앙심을 품고 신표틀리를 독살해 버렸다. 이 일로 시그문드는 보르그힐드를 추방하고[8] 새 아내 효르디스(Hjordis)를 만나서 잘 사나 싶더니만 이번에는 일전에 효르디스에게 딱지를 맞은 링비(Lingvy) 왕이 쳐들어 와서 싸우다가 갑자기 난입한 오딘이 창으로 시그문드의 무기를 쳐서 부러트리는 바람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식 얼굴도 못 보고 죽는다.

그리고 시그문드의 유복자로 태어난 시구르드는 불행의 절정이다. 시구르드브륀힐드 문서 참조.

시구르드는 구드룬과 결혼해서 시그문드와 스완힐드를 낳는데, 이 둘도 불행하게 죽는다. 시구르드의 아들 시그문드(할아버지와 이름이 같다)도 아비 못지 않은 불행한 삶을 살았다. 왜냐하면 고작 3살 나이에 아빠의 연인이자 원수인 브륀힐드의 요구로 삼촌들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스완힐드는 유복자로 태어났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아버지 뻘인 왕에게 후처로 시집가게 된 것도 모자라 왕의 전처가 낳은 아들과 몰래 사귀다가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이처럼 볼숭가 사람들은 죄다 불행하게 죽었는데, 그나마 시그문드의 셋째 부인이자 시구르드의 엄마인 효르디스만 풍파를 면했다.[9]

볼숭 일족의 사가에는 시구르드와 구드룬의 통해 볼숭 일가와 인연을 맺은 니플룽(Niflungr)가문의 이야기도 자세히 나오는데, 이 가문도 꽤나 험한 고난을 겪게 된다. 그나마 니플룽가의 최연장자인 규키 왕과 그림힐드는 불행한 죽음을 겪지 않지만 자식들이 문제.[10] 사실 그림힐드야말로 니플룽 가문의 불행의 가장 큰 원인제공자인데, 자신의 마법과 속임수로 당대 최고의 사위(시구르드)와 최고의 며느리(브륀힐드)를 동시에 집안에 들이는 겹경사를 맞았지만 자신의 속임수가 들통나면서 결국 사위와 며느리 모두 잃게 된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시구르드가 죽은 후 아내였던 구드룬이 오빠들에게 원한을 품자 그림힐드는 분노를 진정시키는 마법약을 먹인 후 아틀리(Atli)왕과 결혼시키는데, 이 아틀리왕이 시구르드의 보물을 차지하려고 규키 왕의 아들들을 몰살해 버린다. 이후 아틀리도 구드룬에게 죽으며 그의 자식들은 아틀리보다도 먼저 구드룬에게 살해당했다. 결국 그림힐드로 인해 니플룽 가문은 망해버렸다.[11]

구드룬의 삶은 볼숭 일족과 니플룽 일족을 통틀어 가장 기구하다. 그나마 본인은 죽지는 않지만 사는 내내 풍파와 불행이 연속적으로 닥치는데, 세 번 결혼하는 과정에서 마지막 남편을 제외한 두 남편과 모든 자식들이 하나같이 처참하게 죽는다. 심지어 자신이 혈육을 죽이는 경우도 있는데,[12] 이럴거면 차라리 일찍 죽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

북유럽의 바이킹들은 싸우다가 죽는 것을 가장 명예롭게 생각했는데, 이 기준으로 볼숭 가에서 가장 명예롭게 남은 자를 꼽아보면 볼숭과 시그문드 정도다.

4. 해석

사실 전술한 볼숭 일족의 사가의 비극적 성격은 다른 신화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요소로, 이와 같은 비극성은 신화 특유의 철저한 숙명론에 기반하고 있다. 볼숭 일족의 사가에서 볼숭 일족과 시게일 일족이 사투를 벌이게 만든 것도 오딘이었고[13] 마지막에 구드룬이 요낙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을 모두 죽게 만든 것도 오딘이었다. 이런 신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주어진 운명, 즉 신의 뜻은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특히 신화에서 영웅들의 몰락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인간의 관점에 아무리 위대하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영웅일지라도 인간인 이상 본인의 힘으로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시그니와 브륀힐드를 비롯해서 미래를 보고 경고하는 캐릭터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작중에서 이 예언들을 바탕으로 재난을 피해가긴커녕 시구르드처럼 운명에 맞서려다 실패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서 파멸하는 일들이 클리셰 수준으로 등장한다.

우리에게 좀더 친숙한 그리스 신화에서도 아가멤논아트레우스 가문이나 오이디푸스 가문 등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볼숭 일족의 사가와 마찬가지로 친족 살해나 근친상간 등의 온갖 패륜으로 가득차 있으며 대부분의 영웅들이 비참하게 파멸하는데, 내용은 전혀 다를지라도 북유럽 신화와 그리스 신화는 숙명론이라는 관점에서 일맥상통하고 있다.

한편으로 볼숭 일족의 사가에서는 명검 그람이나 안드바리의 반지(안드바라나우트)가 일종의 맥거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궁극의 보물들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싸움이 벌어지고 서로 죽고 죽이고 하지만 정작 이 보물을 차지한 사람들도 행복해지기는 커녕 다들 비참하게 파멸하고 죽는다. 인간의 지나친 욕망이 스스로를 나락으로 이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다만 신화에서 이와 같은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과도하게 욕심 부리지 말라'는 상투적인 교훈을 제시하기 보다는 '어차피 인간은 저런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고 서로 싸우고 죽고 죽이는 존재'라는 또 다른 운명론을 설파하려는 것으로 보면 된다.[14]

5. 등장인물

5.1. 볼숭 일족

5.2. 니플룽(니블룽)[27] 일족

5.3. 부들룽 일족[42]

5.4. 기타 등장인물

6. 기타

한국에선 볼숭 일족의 사가의 내용 전체를 다룬 작품이 굉장히 적은 편으로 대부분이 시구르드의 이야기부터 구드룬의 복수까지만을 다루는 편이다. 볼숭 일족의 사가만을 다루기 보다는 북유럽 신화 전체를 다루며 마지막에 끼워넣는 식으로 다루는 편이 많기 때문이다.

[1] 즉 "볼숭가 사가"의 정확한 번역은 "볼숭 씨족의 사가"다.[2] 대부분의 내용을 볼숭 일족의 사가에서 차용했고 니벨룽의 노래에서 차용된 내용은 주로 제 4부(신들의 황혼)에 집중되어 있다. 니벨룽의 반지의 2부(발퀴레)는 지크문트, 즉 시그문드가 시게일의 음모에서 홀로 살아남아 헤매는 부분부터 시작된다.[3] 톨킨은 영문학자일 뿐만 아니라 북유럽 신화 매니아로 이 방면 연구에도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애초에 그가 남긴 작품 거의 모두가 북유럽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도 이 사가에 나오는 안드바라나우트(Andvaranaut), 즉 안드바리의 반지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안두릴 역시 그람이 모티브다.[4] 참고로 시구르드와 구드룬의 전설은 소설이 아니라 서사시인데, 톨킨은 이 작품의 서문에 이 전설과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사실상 논문)를 작성해 놓았다. 영어가 된다면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5] 참고로 현존하는 볼숭 일족의 사가의 최고본(最古本)은 1400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필사본이다.[6] 라그나르-아슬라우그의 다섯째 아들인 '뱀눈 시구르드'는 하그다크누트라는 아들을 낳았으며, 이 하그다크누트의 아들이 바로 역사상 덴마크의 초대 국왕인 고름 가믈리이다. 비슷하게 뱀눈 시구르드의 손녀인 라근힐드의 아들이 노르웨이의 초대 국왕인 하랄 1세라고 한다. 심지어 중세 아이슬란드인들은 둘째 '굳센 비요른'의 증손자가 아이슬란드로 건너왔고, 그 후손 중 하나가 토르핀 카를세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7] 시게이르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을 빼돌려 시그문드에게 맡겼는데 볼숭의 혈통이 반쪽짜리인 탓인지, 아니면 시게이르의 피가 디버프를 먹인 탓인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고, 이를 쓸모없다고 여긴 시그니는 시그문드를 시켜서 자식들을 죽여버린다.[8] 보르그힐드는 추방당한 뒤 곧 죽었다. 다만 자신이 낳은 헬기(Helgi)는 성장해서 영웅이 된다.[9] 정확하게는 시그문드가 죽은 후 덴마크 왕과 재혼을 했는데 그 이후 별 이야기가 없다. 말 그대로 무소식이 희소식.[10] 사실 규키 왕은 배경으로만 나올 뿐 사가 내에서 역할이 전무하다.[11] 고 에다에서 시구르드와 브륀힐드의 사후를 다룬 브륀힐드의 저승 가는 길에서 만난 거인 여자가 브륀힐드에게 너의 행적으로 인해 니플룽 일족은 망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세계관상 예언은 반드시 맞으므로 니플룽 일족은 정말로 망한 것이 확실하다. 운문 에다에서도 구드룬의 세 아들이 죽자 "규키 가문의 대가 끊겼다."고 확인사살한다.[12] 두 번째 남편인 아틀리를 살해하는 파트에서 자신의 자식들을 죽인다.[13] 오딘이 시게일과 시그니의 결혼식에 와서 명검 그람을 나무에 꽂아 놓고 뽑은 사람이 임자라고 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14] 실제로 시구르드 같은 경우는 자신이 파프니르를 처치하고 얻은 보물들 보다는 브륀힐드를 더욱 소중하게 여겼다. 반면 그림힐드, 군나르 같은 이들은 (다른 이유도 물론 있지만) 시구르드가 차지했던 보물을 노리고 구드룬을 이용해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들도 역시 보물을 노린 아틀리에게 죽고, 그런 아틀리도 구드룬에게 죽는다.[15] 스노리가 에우헤메로스주의(Euhemerism)와 기독교적 시각을 담아서 아스 신족트로이를 떠나 북유럽으로 온 인간 왕족으로 해석한 산문 에다의 서문에서는, 시기를 오딘과 프리기다 사이에서 태어난 세번째 아들로 소개했다. 덧붙여서 맏형은 베그데그(브리튼을 침공한 유트족 군주 헹기스트의 조상), 둘째 형은 벨데그다.[16] 남성이며 여신 스카디와는 별개의 존재로 보이나, 이쪽도 눈과 사냥에 관련된 여신인지라 이 에피소드가 스카디의 신화 중에서 잊혀진 에피소드가 변조된 것이 아닌가 하는 학자들의 분석도 있다.[17] 게르만계 전통에서는 씨족이나 가문의 이름은 명사 뒤에 접미사 -ung이나 -ing를 붙여서 만들기에 가문명이 아닌 사람 볼숭의 이름은 원래 볼시(Vǫlsi)로 추정된다고 한다. 독일어는 뵐중(Wölsung).[18] 다른 이름은 리오트(Ljod)[19] 이후에 시그문드가 복수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후날란드의 왕좌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있었던 것을 보면 흘료드가 그 시점에서 부재중인 것은 확실하다. 시그뉘가 결혼하기 전에 죽었거나, 위의 추측대로 볼숭과 함께 전사했거나, 볼숭이 죽은 뒤에 후날란드를 지키다가 외적에게 죽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대장장이 뷜란트의 아내처럼 아이들을 낳은 뒤에 전장이 그리워 다시 발키리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20] 독일어는 지크문트[21] 독일어는 보르길트[22] 독일어는 히외르디스(Hjördis)[23] 독일어는 진표틀리(Sinfiötli)[24] 베오울프에서는 Wæls(=볼숭) 일족의 피텔라(Fitela)라는 이름으로 언급된다. 이를 두고 원래는 이름이 단순히 표틀리였으나 시그문드와 두운을 맞추기 위해 앞에 Sin을 추가한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 외에 스칸디나비아의 옛 민요에 등장하는 Svend Felding 이 신표틀리의 변형된 형태로 추정되기도 한다.[25] 독일어는 지크프리트.[26] 고대 노르드어 발음으로는 오슬로우그 혹은 어슬로우그에 가깝다고 한다. 독일어는 아슬라우그(Aslaug)[27] 고대 노르드어에서 f는 단어나 음절의 맨 앞에 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전부 영어발음 v로 발음하기 때문에 니블룽으로 읽는다고 한다. 때문에 파프니르도 파브니르에 가까우며, 알프(Álf)도 알브(더 정확히는 얼브)로 읽는다는듯. 반면 위의 신표틀리 같은 경우는 그대로 f로 읽는데 이는 Sin과 Fjotli라는 개별적인 단어가 합쳐진 이름이기 때문인 듯 하다.[28] 사서에는 정확하게 그가 다스리는 왕국의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동일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5세기 부르군트 국왕이었고, 사가의 규키왕 역시 라인강 하류의 왕국을 다스리고 있었다는 서술이 있기에 같은 나라로 추정한다.[29] 이미지가 좋지 않기 때문인지 마법사보다 마녀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30] 앞서 시구르드를 매우 탐냈던 것과 비교해보면 모순되는 행동인데, 이에 대해 별다른 설명은 없지만 군나르처럼 시구르드를 죽이고 재산과 영지를 빼먹을 생각이었거나, 아니면 호그니처럼 반대했지만 어쩔 수 없이 돕게 된 것으로 보인다.[31] 이후 호그니가 아틀리를 비난하며 "네가 내 친족 여인을 잡아가서 굶겨 죽인 뒤에 그녀의 재산까지 빼았지 않았더냐!" 라고 하는데, 이 친족 여인이 그림힐드라는 말도 있다. 허나 다른 친족도 아니고 부모를 죽인 원수를 상대로 그가 보낸 사절단을 환대하고, 불길한 징조를 보고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아내들에게 "왜 근거도 없이 매부를 의심함? 가면 잘 대접 받을텐데... 뭐 죽으면 그게 운명이겠지." 정도의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다.[32] 독일어는 구드룬(Gudrun)[33] 스반힐드라고 읽기도 하지만 고대 노르드어에서 자음 뒤에 오는 v는 w로 발음하기 때문에 스완힐드에 가깝다고 한다.(Jackson Crawford의 "The Saga of the Volsungs with The Saga of Ragnar Lothbrok") 독일어는 슈반힐트(Swanhild/Schwanhild)[34] 이를 알게 된 브륀힐드는 그렇게 결혼하느니 차라리 직접 군사를 이끌고 왕국을 지키겠다 했으나, 결혼하지 않으면 그녀가 가진 모든 재산을 뺏고 딸을 향한 총애를 거두겠다는 부들리의 요구에 따라 자신이 사는 궁전 주변에 불을 지르고 이를 넘어오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맹세를 한다.[35] 서약이 가지는 중요성은 물론이고, 이후 아틀리에게 어그로가 끌려서 구드룬을 시집보냈다가 일족이 멸망한걸 보면 호그니의 의견이 옳았다. 게다가 이 모든게 브륀힐드를 잃지 않으려고 저지른 무리수인데 정작 브륀힐드는 시구르드가 죽으면 어차피 자결할 생각이었던지라 니플룽 입장에서는 결국 손해만 봤다.[36] 이를 보면 하겐과는 시구르드=지크프리트를 죽이냐 마냐에 대해선 정반대지만, 자기 나름대로 신의가 있으며 주군/나라를 위해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점은 닮았다.[37] 본작에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지만, 에다에서는 규키의 친아들이 아니다. 신 에다에서는 규키의 양자이자 군나르와 호그니의 이부형제로 나오며, 고 에다의 힌들라의 시(Hyndluljóð)에도 "구토름은 군나르, 호그니, 구드룬의 형제지만 규키의 후예는 아니다." 라고 설명된다. 즉 그림힐드가 규키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서 본 자식이라는 뜻. 마찬가지로 지크프리트(시구르드)의 살해자인 하겐이 티드렉의 사가에서 군터와 크림힐트의 이부형제(아버지는 요정)로 나오는 점을 가지고 둘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도 한다.[38] 토막난 하반신은 방 밖으로, 상반신은 방 안으로 굴러떨어졌다고 한다.[39] H를 때고 그냥 니플룽(Niflung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40] 이들 중 에르프는 본작과 신 에다에서는 구드룬의 친아들인 반면, 고 에다에서는 요낙이 첩실에게서 본 자식으로 나온다.[41] 에르프에게 넌 형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냐고 물었고, 이에 에르프가 "손이 손을 돕고 발이 발을 돕듯이 도울 수 있다."고 대답했으나 이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함디르와 소를리는 에르프가 쓸모없다고 여기고 그를 죽이고 만다.[42] Buðlungar. 산문 에다에 따르면 늙은 할프단(Halfdan the old)의 열 여덟 명의 아들 중 한 명인 부들리의 자손들이다. 평평한 섬의 서(Flateyjarbók)에선 일족의 어원이 된 부들리가 색슨족의 땅에 정착한 해왕(Sækonungr)이었으며, 슬하에 브륀힐드의 아버지 부들리를 포함한 네 명의 아들을 뒀다고 한다. 또한 위의 니플룽 일족 역시 늙은 할프단의 아들 중 한명인 네빌(Næfil)의 자손들이기에 먼 친척관계이기도 하다.[43] 독일어는 브륀힐트(Brünhild)[44] 힐드라는 이름은 그자체로 전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45] 남편의 유산이 과부에게 가야지, 처남들에게 갈 이유는 없다는 주장 자체는 옳다. 구드룬의 권리를 핑계로 자기가 꿀꺽할 속셈인게 문제라서 그렇지.[46] 학자들은 시게이르의 이런 과해보이는 증오심이 바른스토크에 꽂힌 검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식력과 가문의 번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즉 하필 결혼식날에 "자식복이 없을 듯 하다.", "너희 가문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같은 불길한 신탁이 시게이르에게 내려진 반면, 주인공도 아닌 시그문드가 새신랑에게 가야하는 축복을 받아버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분석대로라면 충분히 꼭지가 돌 일이지만, 결국 시그뉘에게 원한을 사는 바람에 아들들이 전부 살해당하고, 가문이 말 그대로 재가 돼버리고 말았으니 어떻게 보면 자기 실현적 예언이기도 하다.[47] 소란스러운/시끄러운 골짜기라는 뜻이다. 표기에 따라 흘륌탈(Hlymtal), 흘륌달(Hlymdal), 흘륀달레(Hlyndale)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48] 저주가 풀리고 하산한 브륀힐드가 친아버지 부들리의 곁이 아닌 헤이미르의 영토에 머물고, 자신의 딸도 헤이미르에게 부탁하는 등 친아버지보단 오히려 헤이미르와 더 친밀해보인다. 이런 이미지가 이어졌는지 후대에 써진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사가에서는 브륀힐드가 죽자 헤이미르는 친자식을 잃은 것 마냥 슬퍼하고, 아슬라우그에겐 그야말로 참된 양육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49] 7세기경의 덴마크 국왕이자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조부인 란드베르와는 동명이인이다.[50] 다만 요르문레크도 사지가 잘린데다 부상이 심각했으니 결국 오래 살진 못했을 것이다.[51] 시구르드가 보리수 나뭇잎의 등짝을 제외한 전신에 파프니르의 피에 담궈 불사신의 육체가 변한 부분[52] 브륀힐드가 벌을 받은 계기가 시그문드를 죽이려는 오딘의 명을 어기려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부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