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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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謝敷생몰연도 불명
동진의 은사. 자는 경서(慶緒). 양주(揚州) 회계군(會稽郡) 출신.
2. 생애
사부는 성정이 차분하고 욕심이 적어 태평산(太平山)에 입산하여 10여 년을 살았다. 그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기에, 장기간 동안 채식만 하면서 불교 경전을 연구하였다. 진군장군 치음은 사부를 주부로 삼으려 했고, 조정에서는 박사로 초빙하였으나, 사부는 이에 전부 응하지 않았다.사부는 3년간 무량수불 동상을 조각하고, 그것을 영보사(靈寶寺)에 기증하였다. 영보사를 후원하던 치초는 예를 갖추어 무량수불 동상을 절 안에 모신 뒤에 향을 피웠는데, 그 연기가 높이 솟아올라 구름 위로 넘어갔다. 사람들은 이 기묘한 광경을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어떤 점쟁이가 달이 처사성(處士星)을 범할 때 처사(處士)[1] 세상을 떠날 것이다라는 예언을 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모두 오(吳) 지역의 은사인 대규가 죽을 것이라며 걱정하였다. 하지만 얼마 뒤에 사부가 사망하니, 회계의 사람들은
"오 지역의 이름 높은 선비는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다네."
오의 사람들을 비웃었다. 이는 즉, 대규가 아닌 사부야말로 인간계로 내려온 진정한 처사성이라 해석한 것이다.[1] 은사(隱士)와 같은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