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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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淳于智(? ~ 291)
서진의 인물. 자는 숙평(叔平). 청주 제북군(濟北郡) 노현(盧縣) 출신.
2. 생애
《주역(周易)》으로 점을 치는 데 능하였고, 재앙을 막는 방법을 잘 알았다. 어느 날, 고평(高平) 사람 유유(劉柔)가 밤에 자다가 쥐에게 그의 왼손 중지를 물어뜯기자, 순우지가 말했다."그 쥐는 그대를 죽이려 했으나 실패한 것이오. 그러니 그대가 쥐를 죽일 수 있게 하겠소."
그런 후에 순우지는 붉은 글씨로 손목에서 세 치 떨어진 곳에 '전(田)' 자를 쓰고, 1치(寸) 2푼(分) 정도 손을 방에서 내밀어 자게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큰 쥐가 손 앞에서 죽어있었다.초(譙) 사람 하후조(夏侯藻)의 어머니가 병으로 위독해지자, 하후조는 순우지를 찾아가 점을 보러 집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문 앞에 여우가 나타나 울부짖었다. 이를 본 하후조는 겁이 나서 곧바로 유지에게 달려가 상담하였다. 전부 전해들은 순우지가 말했다.
"위험이 곧 닥칠 것이니, 급박한 상황입니다. 속히 집으로 돌아가 여우가 울던 곳에서 가슴을 두드리며 울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가족들이 놀라 나올 것이나, 만약 모두 나오지 않으면 울음을 멈추지 마십시오. 가족들이 반드시 모두 나온 후에야 재앙을 피할 수 있습니다."
하후조가 돌아가 순우지의 말대로 하자, 하후조의 어머니까지 아픈 와중에 밖으로 나왔고, 가족들이 모두 바깥으로 모인 후에 집이 무너졌다.호군 장소(張劭)의 어머니가 병으로 위독해지자, 순우지를 찾아왔다. 순우지는 점을 치고, 서쪽 시장에 가서 원숭이를 사와 어머니의 팔에 묶은 뒤, 옆 사람에게 그 원숭이를 때리게 해서 항상 소리를 내게 하였다. 3일 후에 원숭이를 풀어주자, 시장에서 원숭이가 개에게 물려 죽었고, 장소의 어머니의 병도 모두 나았다.
상당(上黨) 사람 포원(鮑瑗)의 집안은 빈곤과 잦은 질병으로 고통받았다. 이에 어떤 이가 포원에게 순우지를 찾아가 점을 볼 것을 권하니, 포원이 말했다.
"인생은 운명에 달렸는데, 어찌 점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때마침 순우지가 오히려 포원을 찾아와 점을 봐주고는 말했다."집의 위치가 부적절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동북쪽에 큰 뽕나무가 있는데, 지금 시장에 가면 가시로 만든 말채찍을 팔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사서 나무에 걸어두면 3년 후에 큰 재산을 얻게 될 것입니다."
포원은 반신반의하며서 시장에서 말채찍을 사서 나무에 걸어두었고, 3년 후에 우물을 파다가 돈 수십만 전과 구리와 쇠로 된 기구를 많이 얻어 부유해졌다. 응첨은 어려서부터 여러 번 병환에 시달렸는데, 순우지가 그에게 부적을 만들어주었다. 응첨이 부적을 몸에 지니고 주문을 외우니 모두 효과가 있었다. 이처럼 순우지의 점은 매우 신통하였다고 한다.
순우지의 성격은 깊고 침착했는데, 늘 자신은 단명할 것이라 말하면서도
"신해년(291년)에 천하에 큰일이 일어날 때, 도술을 가진 무당이나 의원이 죽을 것이오. 그러나 내가 《주역》의 이치를 지켜 행하고 있으니, 그러한 운명을 피할 수 있을 것이오!"
라 하였다. 이후 태강(280년 ~ 289년) 말기에 사마독(司馬督)으로 임명되어 외척 양준의 총애를 받았으나, 양준이 제거당할 때 그도 결국 살해당하면서 예언이 빗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