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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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辛氏생몰연도 불명
서진의 인물. 옹주(雍州) 농서군(隴西郡) 적도현(狄道縣) 출신. 서진의 대신 양위(梁緯)의 처.
2. 생애
건원 2년(315년) 7월, 호한의 대사마 유요가 북지(北地)를 함락시키고 경양(涇陽)까지 진격하여 위수(渭水) 이북의 여러 성들을 점거하였다. 이때 신씨는 남편인 산기상시 양위와 함께 유요에게 사로잡혔는데, 양위는 충절을 지켜 자결하였다. 유요는 신씨의 자태를 마음에 들어하며 그녀를 첩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신씨는 그 자리에서 크게 울면서 유요에게 말했다."저는 남자는 의로움으로 죽고, 여자는 두 번 혼인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제 남편은 이미 죽었으니, 혼자 살아남을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두 번의 수치를 겪은 여자는 명공(明公)께도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저를 즉시 죽게 해주십시오. 나머지 일은 제 장인, 장모님께 맡기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계속해서 울기를 그치지 않았다. 유요가 말했다."정절 있는 부인이로다, 그대로 두어라."
이후 신씨는 목을 메어 자결하였고, 유요는 예를 갖추어 그녀의 장례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