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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 장편 연출 작품
,(1980년 이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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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벤고 공수군단 ABENKO Green Beret (1982) | |
감독 | 임권택 |
각본 | 김강윤 |
원작 | 유양우 |
제작사 | ㈜우진필림 |
기획 | 한상호 , 유영무 |
촬영 | 손현채 |
조명 | 이민부 |
편집 | 김희수 |
음악 | 황문평 |
출연 | 남궁원, 신일룡, 정윤희, 윤양하, 남포동, 이대근, 빅 모로 |
개봉극장 | 대한(서울) |
개봉일자 | 1982.05.01 |
관람 인원 | 51,359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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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2년에 제작한 한국의 반공 영화.2. 줄거리
홀어머니인 배수나와 미국에서 살던 남자 이영하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한국전쟁 당시 죽은 아버지인 일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한국에 와 아버지의 상관인 공수특전 사령관 성 장군(배역은 이대근)을 만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한국전쟁을 열강들의 다툼 정도로 생각하는 철없는 젊은이를 훈계하고자 하는 애틋한 이야기.한국 전쟁 당시 상륙작전을 위한 후방침투를 위해 특수전 사령부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숱한 부대를 보냈는데 하나같이 사망. 이 사령부의 이름은 아벤고[1] 원산 근방에 투입되는 또 다른 작전을 위해 여러 인원들이 선발되고 선발요원 중 한 사람이 일규(배역은 신일룡),[2]. 일규는 피난온 처자인 배수나(배역은 정윤희)가 후방에서 곤욕을 당하던걸 구해준 인연으로 결혼하고 하룻밤의 인연을 맺는다.
명령에 따라 이들은 원산 근처의 최대 규모의 적 탄약창을 폭파할 임무를 띠고 침투하는데 당연히 대원 중 사망자가 나오는 와중에도 임무를 완수하지만 사령부에선 그들에게 철수를 명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 와중에 고향집에 가보겠다는 신일룡의 삽질 탓에 사망자가 늘어나는 등 갖은 고생 끝에 안전지대로 대피하지만 그 와중에서 작전참모인 전무송을 납치하라는 또 다른 명령이 내려온다.[3] 결국 대원들은 다시 목숨을 걸고 납치작전에 돌입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대원들은 전멸하지만[4] 또 다시 그들을 구출하는 명령은 내려오지 않는다. 한편 후방에서는 고 중령이 이 작전의 진짜 목적을[5] 알게 되고 후속 부대 지휘자로 성 중위(현재 시점의 성 장군)를 파견하라는 명령을 받는데...
이들을 기다리기 위해 혼자 주변을 지키던 신일룡은 어이없게 소년병의 총에 맞아서 잡히고(...) 돌아가면 거의 죽을 게 뻔한 임무에 뛰어든 성 중위[6]을 본 고 중령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된다. 그때 점령지 서울에서 간신히 탈출한 고 중령의 부인이 아군 전선 쪽에 체포되는데, 그녀를 확인하는 임무가 성 중위에게 주어지면서 고 중령은 실질적으로 침투작전에서 배제당하지만, 다른 대원 대신 참관인으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와중에 미군 고문관을 총으로 위협해서 자기가 뛰어내린다.
시간이 흘러 인천상륙작전과 북진이 시작되고 성 중위와 배수나는 북진 후 국군에게 탈환된 원산에 가서 고 중령과 신일룡의 소식을 듣지만 이미 그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신일룡은 생포된 후 갖은 고문을 받다가 동맥을 끊어서 자살하고[7] 고 중령 역시 생포 후에 유엔군의 상륙지점을 원산으로 정했다는 걸 암시하도록 자백한 후에 총살당했던 것.
이후 현재로 돌아와서 배수나가 묻히고 싶던 뚝섬 인근[8]이 이미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는 걸 알게 된 이영하는 성 장군의 충고대로 그때 사망한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가슴 속에 묻기로 결정한다.
3. 특징
영화 포스터만 보면 화끈한 액션 영화같지만, 실제 영화 내용은 그야말로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로, 반공영화로 흔하게 만들어지던 한국전쟁 배경 특공대 영화들의 클리셰를 몽땅 가져와선 비틀어 놓았다.특공대원들이 작전침투 직전 유흥가에서 하루를 보내고 거기서 후방의 썩은 남자들을 두들겨 팬 후 선량한 여자를 구해내고는 여자가 주인공과 맺어진다거나 하는 부분까지는 이런 류의 영화들이 가진 클리셰를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영웅이 아니라 철저하게 소모품으로 버려지는 특공대의 존재나, 이런 영화에서 너무나 잘 써먹는 비장감 가득하게 총알 맞아가면서도 슬로우 모션 속 총격전을 벌이는 대원들이 나오다가 이들이 인민군이 가볍게 던진 수류탄 한발에 끔살당한다거나, 대원들 중 마지막까지 남은 주인공 일규가 인민군 소년병이 가볍게 쏜 총알 한방에 나가떨어져 사망하고 적지의 민간인들도 하나같이 도움이 안 된다거나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가 배반하는 장면들은 이 영화가 단순히 흔한 반공영화로 만들어진 게 아님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영화의 마지막엔 결국 그런 희생이 있었기에 발전된 대한민국이 있다라는 전형적인 교훈으로 마무리되지만, 느와르 스타일의 영화가 연상되는 허무함은 전형적인 반공류 특공대 영화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의 장점이다.
포스터만 보고 선입견을 가지거나 하는 영화팬들도 있지만, 70년대부터 이미 반공영화라면서도 뭔가 비틀린 영화를 만들어 냈던 임권택의 역량이 80년대에 와서 아벤고 공수군단에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촬영을 당대의 특급 촬영감독이던 손현채(1946~1993)[9]가 맡았고, 제작비도 당시로선 꽤 거액을 들였다. 감독의 역량도 있고 해서 액션 연출도 그렇고 여러 모로 완성도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흔한 특공대 영화를 따라가는 척하다가 실은 그게 아니란 점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1982년 한국이라는 상황이 이미 반공을 내세우는 특공대 영화가 먹힐 곳이 아니었던건지, 흥행면에선 완전히 실패했다.[10]
영화 내에서 '전선을 간다'가 거의 주제가처럼 쓰이며,[11] 노래가 가진 비장미가 영화와 꽤나 잘 어울린다. 군중 사이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는 장면과 전선을 간다와의 조합은 지금봐도 명장면이다. 사실 군대도 가기 전에 이 영화로 '전선을 간다'를 알게 된 사람들도 있다.
공수작전팀이 투입될 때 시간적 배경이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시행되기 전인데 C-47수송기가 아닌 그 때 개발은 되었으나 미군에 채택되기 전인 C-123수송기로 투입된다.
4. 기타
시기적으로 보면 임권택을 본격적으로 비평의 주목을 받게 만든 만다라 직후 찍은 영화이며, <블루하트(1987)>와 함께 반공 영화들 중 몇 안되는 동시녹음 도입 영화다.빅 모로의 출연과 임권택 감독의 연출력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굉장히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은 자신의 반공물 전쟁 영화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인 편이라고 한다.[12] 일본에서는 낙동강은 흐르는가와 증언과 더불어 임권택 전쟁영화 3부작으로 자체적으로 DVD가 만들어졌다(...). 가끔 웹에 도는 이 영화의 싸움 장면과 누드 장면은 모두 일본 DVD가 원 소스다.
일본 영화계 제일의 거장으로 손곱히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인터뷰에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즐겨보고 있다는 언급을 하기도 하였으며, 그 자리에서 "임권택 3대 걸작"으로 만다라, 씨받이, 그리고 바로 이 영화를 지목하기도 하였다. 두 사람이 한일 영화계에서 각기 첫손으로 꼽히는 영화계의 거장으로 손꼽힌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사실이다.
1985년 국군의 날 특선으로 오후 2시에 MBC에서 방영했으며 이후에도 재방영을 여럿 했다. 반공영화란 이유로 학교 등지에서 상영한 일도 여럿 있는데 그때 영화에서 나오는 누드때문에[13] 영화 보던 학생들이 환호했다는 회상이 종종 보인다.
엔하계 위키들 중 리그베다 위키에선 정윤희 주연 영화중에서는 가장 일찍 올라와 있었다.
배우 김형일이 군 복무 시절, 부대에서 동료들과 함께 차출되어 보조출연자로 출연하게 되었는데 인민군 단역을 맡았다고 한다. 그의 영화 데뷔작인 셈.
[1] 빅 모로가 분한 알렉산더의 아와 여군 참모 벤자민의 벤, 그리고 남궁원의 고 중령의 고를 따서 지었다.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특수전 사령부중 아벤리가 있었다[2] 이 사람이 앞에 나온 이영하의 아버지[3] 영화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상황 판단을 하는 캐릭터가 바로 이 참모이다. 그는 정확한 이유로 유엔군이 원산이 아닌 인천으로 상륙하는 걸 예측한다.[4] 정확하게는 중상을 당한 통신대원 하나만 살아남는다.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어서 작전참모 편으로 실어서 후방으로 보내버린다.[5] 그러니까 원산 근방에서 특공대가 소란을 일으키면 북한에서는 원산이 주력 상륙 지점으로 착각한다는 것[6] 성 중위가 이 임무에 뛰어든 이유가 작전 지역이 고향 마을 근처라서 지리를 알기 때문이었다.[7] 이 이야기를 말해준 의사 양반은 사실 국군의 스파이로서 신일룡 일행이 작전 후 탈출할 때 도와준 경력이 있다.[8] 여기 묻히고자 하는 이유가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가깝게 지낸 고 중령의 부인이 묻힌 곳이기 때문이었다.[9] 1993년 영화 <남자 위에 여자> 제작 도중 헬기 추락으로 사망.이 양반도 헬기 때문에[10] 같은 해 문선명이 제작한 오! 인천도 이러한 이유로 실패했다. 이 시절 한국은 경제성장을 이루고 사회 전반적으로 데탕트 분위기가 있었다. 한국이 다시 냉전의 광기에 휩싸인 건 그 이듬해인 1983년부터.[11] 다만 특공대 전멸 부분은 '전우여 잘자라'가 사용된다, 유튜브에서는 현인이 부른 버전으로 덧씌운 장면이 실려 있다[12] 인터뷰에서도 그자 프로로서의 마인드로 찍었다고 누누히 밝히며 그다지 큰 애정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하기야 당시에는 감독이 반공영화를 찍고 싶어서 찍는게 아니라, 정권에서 시켜서 억지로 찍는 것에 가까운 시대인 데다, 현대사학자 서중석 박사의 2005년 저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에 따르면 임권택의 가족 내력으로 보아 6.25 전쟁 때 몰락한 좌익 집안이라 영화 창작에 제약을 받을까봐 '나도 반공영화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겠다'며 자기방어적 철학을 내세우며 순응하는 쪽을 택했다고 한다.(다른 칼럼)[13] 등짝이나 뒷면 누드는 다 나오지만 정면 부분은 오스틴 파워처럼 배경이 가려주는 센스를 보여준다. 그러나 딱 한 장면 지나가듯이 정윤희의 슴가가 그대로 노출된다. 하악하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