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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5:18:08

에세데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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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
 에세데 사고
철도사고 요약도
파일:Eschede derailment.jpg
발생일 1998년 6월 3일
오전 10:59 (CET)
유형 탈선
사고원인 차륜 테이퍼 피로파괴
발생 위치 독일 니더작센 주, 에셰데
탑승인원 승객 287명
승무원 6명
인명피해 사망 101명[1]
중상 88명
경상 106명
운영기관 도이체반
사고열차 열차번호 ICE #884
출발역 뮌헨 중앙역
종착역 함부르크 중앙역
1. 개요2. 사고의 원인3. 사고 과정4. 사고 조사5. 사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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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어: Der ICE-Unfall von Eschede
영어: Eschede train disaster

1998년 6월 3일, 독일 니더작센 주 에셰데에서 발생한 고속철도 탈선사고. 사망 승객 99명+인부 2명, 중상 88명으로 공식적으로는 고속철도 사망자 중 1위다.[2] '공식적'이라는 전제가 붙은 이유는 중국철로고속에서 발생한 원저우 고속열차 추락 사고의 사망자 수가 축소 발표되었다는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2. 사고의 원인

대한민국경부고속철도 수주전에도 참가한 바 있는 ICE 1은 쾌적한 승차감을 추구하며 일본프랑스가 지배하고 있던 고속철도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추구하던 것과는 달리, 식당칸이 심하게 흔들려 찻잔과 와인잔이 쏟아질 정도였고 소음도 심해 승객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에 차량 제작사인 지멘스와 운영사인 도이체반은 신차를 운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판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고민에 빠진다. 원래는 진동과 소음 감소에 좋은 공기스프링을 사용해야 했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기존에 사용하던 강철 스프링을 사용한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해서 공기스프링을 사용하기 위해[3] 차량을 재설계하자니 돈도 많이 들었고[4] 공업강국이라는 독일의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될 판이었다.[5]

그래서 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차선책으로 고무가 삽입된 바퀴로 교체하기로 했다. 즉, 일체성형제작 방식을 포기하고, 금속 외피(테이퍼)를 씌우는 방식을 도입하여 바퀴의 크기를 줄인 후 바퀴와 외피 사이에 고무 흡진재를 부착하여 진동과 소음 문제를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고무 흡진재 바퀴에는 아래와 같은 문제가 있었다.

파일:external/www.ndt.net/wheel.gif
이렇게 고무 흡진재가 부착된 바퀴 자체가 가진 문제점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언젠가는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고, 결국 최다 인명 피해를 일으킨 고속철도 사고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3. 사고 과정

1998년 6월 3일, 뮌헨함부르크행 51편성 ICE 884호 열차는 뮌헨을 출발해 아우크스부르크 - 뉘른베르크 - 뷔르츠부르크 - 풀다 - 카셀 - 괴팅겐 - 하노버를 거쳐 함부르크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노버까지 순조롭게 도착한 열차는 종착역인 함부르크로 가기 위해 계속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함부르크까지 130 km 남겨둔 상태에서 재앙은 시작됐다. 첫번째 객차의 세 번째 바퀴의 외피가 금속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끊어지며 바퀴를 둘러싸고 있던 외피가 직선으로 펴지면서 객실 바닥을 뚫고 객석 팔걸이 한가운데까지 밀려 나오는 사태가 발생했고, 외피가 떨어진 좌석에 앉아있던 승객은 깜짝 놀라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뒤 이를 승무원에게 알리기 위해 객석 끝에서 객석 끝까지 먼 여행(?)을 시작했다. 승객은 인터뷰에서 그 시간이 하루종일 걸리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고 한다.[7]

승객은 간신히 승무원을 만나 무언가가 바닥을 뚫었다고 설명하며 기차를 멈추라고 얘기했지만 승무원은 자기가 직접 상황을 봐야겠다며 승객의 부탁을 거절했고, 승객이 자리를 뜬 지 몇십 초 뒤에 사고가 발생했다.[8]

파일:external/www.sozogaku.com/MA1000637_01.jpg

문제의 ICE는 그 곳으로부터 함부르크에 도착할 때까지 통과해야 하는 두 개의 분기기 중 첫 번째 분기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이 분기기엔 여기저기로 교차해 가는 선로가 어지럽게 산재해 있었고 이 곳을 통과할 때 끊어진 강철외피가 분기기의 철로와 부딪쳐 교차로의 철로를 들어올렸고 들어올려진 철로가 1번 객차의 천장까지 뚫어버리며 기차를 공중으로 띄워버렸다. 이 충격으로 동력차의 바퀴가 탈선해 선로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상태까지 도달해버렸다. 이때 ICE는 200 km/h의 속도를 내고 있었다.

곧 몇초 후 ICE는 근처의 에세데 마을과 가까운 두 번째 분기기에 도달했는데 여기서 탈선 된 동력차의 바퀴가 분기기 포인트[9]를 강타하여 다른 방향으로 돌려버렸고, 뒤따라오던 객차들이 모조리 튕겨나가[10] 마침 옆에 있던 다리에 부딪쳐 차곡차곡 쌓이면서 생지옥이 연출되었다. 앞서 가던 동력차는 뒤따라오던 열차가 끊어진 것 외엔 아무런 피해가 없어 사고 지역에서 약 3km를 더 가고 멈췄으나, 탈선한 ICE 차량은 다리와 충돌해 다리가 붕괴됐고, 사고 현장 바로 옆에서 작업을 하던 인부 두 명이 휩쓸려 즉사, 400명의 승객 중 99명이 사망하고, 88명이 중상을 입은, 공식적으로는 세계 고속철 역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되었다.

에세데 마을에 사는 어떤 할머니는 갑자기 밖에서 굉음이 들려 현관문을 열어보니 박살난 객차 잔해들이 바로 자기 집 마당에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만약 사고가 약간만 더 앞 쪽에서 일어났다면 그 집 역시 사고에 휩쓸렸을 지도 모른다.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식당 칸이었다. 식당칸이 다리에 가장 많은 부분이 깔리면서 50cm 두께로 줄어버렸다. 사고 신고를 받고 온 소방관과 경찰관, 인근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 구조에 나섰고 근처 마을회관은 임시 시체 안치소로 운영해야 했다.

4. 사고 조사

처음 사고를 접했을 때 독일 언론들은 에세데 마을 근처의 교량에서 추락한 자동차가 열차를 덮쳐 사고가 났다고 보도했고 그게 맞을 것이라고 우겼다. 하지만 조사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었으며, 도이체반이 그 동안 손전등 한 번 비춰보고 마는 무성의한 정비를 했음이 드러났다.

고속철도의 차륜은 고속주행으로 인한 금속 피로나 균열 문제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한국의 KTX는 기존선과 고속선을 함께 주행해 두 레일 두께 차이로 인한 마모문제에 굉장히 신경을 쓰기 때문에 주행 후 전 객차의 차륜의 마모상태를 하나하나 측정 공구로 측정하여 항상 기록하며, 차륜이 마모한도가 다 되었다면 객차를 들어올려 차륜을 탈거하고 새 차륜을 장착해서 쓴다. 그리고 정비라는건 원래 이렇게 해야 한다.[11] 문제는 도이체반에서는 이런 정비는 커녕, 이후에도 대충대충 정비해서 난 사건 사고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5. 사고 이후

결국 도이체반은 피해자 및 사망자 유족들에게 총합 3000만 달러에 이르는 배상금을 물어야 했으며, 전 차량의 바퀴를 다시 일체성형식으로 바꾸었다. 그 외에도 도이체반의 임원 두 명과 엔지니어 한 명이 니더작센 주 검찰에 의해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대륙법계 사법 체계에서는 이러한 참사에서 원인제공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상당히 취약하기에[12], 재판장의 제안으로 주 검찰과 피고는 사법거래를 벌여 인당 10,000유로의 벌금을 무는 조건으로 기소를 취하했다.

사고 당시 구조에 참여했던 인근 마을에선 사고 구조작업에 참여했던 사람 중 트라우마를 호소한 사람이 많았고, 이에 인근 마을에 트라우마 담당 의사가 파견되어 트라우마를 겪던 주민들을 몇 년간 상담해주고 치료해줬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ollbruchstelle_ICE1.jpg

구조작업팀은 ICE 차량이 필요 이상으로 너무 튼튼하게 제작되어서 구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그 후 ICE는 차체에 알루미늄을 사용하며 비상망치로 쉽게 깰 수 있는 유리[13]를 사용해 제작되고 있다.

1990년대TGVICE가 끝까지 경합을 벌이던 대한민국의 고속열차(KTX) 사업에서 ICE가 선정되지 않은 배경에 이 사고가 영향을 준 걸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KTX 선정이 먼저 이뤄졌으므로 이는 선후관계가 잘못된 것이다. 다만 KTX가 바퀴를 일체형으로 제작한 것은 이 사고의 영향이 있었다.[14] 한편 타이완 고속철도 사업에는 영향을 끼쳐서, 유로트레인신칸센에 패배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사고로 혼수상태[15]를 겪은 우도 바우흐(Udo Bauch)는 사고 후유증으로 직장을 관둬야 했다. 이후 자신을 구조해줬던 안드레아스 경찰에게 사고 발생 3년 뒤에 태어난 우도의 딸의 대부가 되어달라 부탁했고 경찰은 받아들였다. 이후 사비를 들여 예배당 겸 사고 추념관을 세운다. 독일 철도측에서도 사고 추념비를 사고 현장 근처에 세웠다.

이후 ICE의 또 다른 탈선 사고가 2008년 4월 26일에 발생했다. 이 사고는 희한하게도 때문에 발생했다. 터널을 통과하려던 ICE 135호가 터널 입구에서 서성대던 양떼와 부딪쳤고 바퀴에 양의 사체가 끼어 탈선해 버렸다. 이 사고에서는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기술 강국 소리를 듣던 독일에서 일어난 참사라 그런지 관련 다큐멘터리가 많이 나왔다. 재난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는 반드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사상 최악의 참사와 디스커버리 채널의 재앙의 청사진,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What went wrong: Countdown to disaster에 나왔다.

[1] 사고지점에서 작업 중이던 도이체반 소속 보선원 2명 포함.[2] 고속철도 중 1위다 해서 철도 사고 중 1위인 것이 아니다. 철도 사고 중 1위는 2004년 스리랑카 쓰나미 열차 탈선 사고. 비공식적으로는 1996년 북한에서 일어난 개고청년역 열차 전복 사고가 1위이다.[3] 1997년에 ICE용 공기 스프링이 개발되었고, ICE 2부터 채택되었다.[4] 기존의 강철스프링에 비해 공기스프링은 압력을 유지하기 위한 펌프를 비롯한 부가 장치를 설치해야 해서 공간도 더 많이 차지하며, 이를 위해 대차와 객실 사이의 구조를 완전히 바꿔야 해서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5] 유럽, 아니 세계에서 기계공업 강국으로 손꼽히는 독일에서 새로 제작한 열차의 진동 문제를 잡지 못했다는 것은 심히 쪽팔리는 일이었다.[6] 차륜과 테이퍼 사이의 고무 흡진재가 눌리면서 진동을 잡아주는 구조이기 때문에 금속 피로가 안 생길 수가 없다.[7] ICE 1은 편성이 이례적으로 길다. 410미터로 KTX-1보다 22미터, N700계보다 6미터 가량 길고 서울 지하철 2호선의 2배다.[8] 승무원과 승객, 승객의 가족들은 다행히 가벼운 부상만 입었다.[9] 분기기에서의 가동부위를 말한다.[10] 일직터널 사고의 경우도 열차가 지나가는 도중에 분기기의 방향이 전환된 사고이므로 유사한 부분이 있다. 다만 차이점은 일직터널 사고는 선로의 문제였지 차량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역에 정차하기 위해 속도를 줄여 서행운전중이었고 KTX에 적용된 관절대차 시스템이 차체가 넘어질 뻔한 걸 약간 기울어지는 정도로 끝내면서 에세데 참사처럼 큰 사고가 나는 일은 없었다.[11] KTX는 본래 차륜의 직경이 920mm고 마모한도 직경이 무려 850mm다. 7cm나 버틸 수 있는 셈. 고작 7cm밖에 안되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기차 바퀴는 금속이라 이러한 차이로 인한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12] 한국에서도 성수대교 붕괴사고 당시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사고 책임자들이 고의로 열차사고를 일으켜 사람들을 살해한 게 아니니 과실치사로 의율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들의 과실이 합쳐져서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인과관계상 단독으로는 처벌하지 못하고 과실범의 공범으로 처벌해야 한다. 그러면 이들이 사전에 서로 짜고서 실수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개념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해서 처벌하는 것이 되는데, 성수대교 붕괴 사고에서는 실제로 책임자를 그런 논리로 처벌했다.[13] 상단의 표시된 부위를 가격하면 쉽게 깨지도록 제작된 유리. KTX-산천에 있는 비상창유리와 같은 방식이다.[14] 이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KTX 관련 영상에도 이야기가 언급된다.[15] 사고 당시 부상이 심해서 진통제를 투여받았는데 너무 많이 받아서 이송 도중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