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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18:54:29

오펜하이머(영화)/줄거리 및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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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줄거리
2.1. 오프닝2.2. 시간대 #12.3. 시간대 #22.4. 시간대 #32.5. 결말
3. 탐구
3.1. 등장 인물들의 극중 행적과 실제 역사 비교3.2. 작중 시대 배경, 장치들과 실제 역사 비교
4. 평론가 심층 분석과 해설영상

1. 개요

영화 오펜하이머의 줄거리와 탐구 및 실제 역사와 비교하는 문서이다.

2. 줄거리


덩케르크에서 그랬듯 이 영화도 하나의 시간대가 아닌 세 개의 시간대에서 진행된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젊은 시절에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이어지는 기본 시간대, 1954년에 원자력 협회에서 벌어졌던 오펜하이머 청문회, 그리고 1959년에 있었던 루이스 스트로스 제독인사청문회가 그것이다. 이걸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다.

또한 오펜하이머의 이야기인 컬러 파트는 'Fission(핵분열)', 스트로스의 관점에서 본 이야기인 흑백 파트는 'Fusion(핵융합)'이라는 제목 하에 서로 번갈아가며 마치 메멘토처럼 영화가 진행된다. 핵분열은 원자폭탄의 원리로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계획을 통해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된 이야기를 반영하고, 핵융합은 수소폭탄의 원리로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의 개발을 적극반대했다가 매카시즘스트로스의 희생양이 되어 몰락하는 과정을 반영하는 제목이다.

2.1. 오프닝

Prometheus stole fire from the gods and gave it to man.
For this he was chained to a rock and tortured for eternity.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쳤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에게 주었다.
이로 인해 그는 바위에 쇠사슬로 묶인 채 영원히 고문을 받아야 했다.
비가 내리며 바닥에 퐁당퐁당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학창 시절의 오펜하이머를 비추고, 이어서 슬로 모션으로 보이는 핵폭발 장면과 함께 위 문구가 뜬 후 1954년 시점의 오펜하이머가 눈을 뜨며 영화가 시작된다.[1]

2.2. 시간대 #1

학창 시절부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까지. 컬러로 묘사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대학원 유학 시절 실험물리학에 서툴러서 고생하던[2] 22살의 청년 오펜하이머가 지도교수 패트릭 블래킷을 독살하려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3] 오펜하이머는 지도교수였던 블래킷과의 불화 및 적성에 맞지 않는 실험물리학 공부 때문에 지독한 향수병우울증에 시달리던 와중, 다행히도 닐스 보어의 권유로 괴팅겐 대학교로 학적을 옮긴 후 이론물리학과 양자역학을 접하게 되고,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미국 칼텍, 그리고 UC 버클리로 돌아온 오펜하이머는 실험물리학자인 어니스트 로런스와 협업하게 되고, 공산당에 눈독을 들이며 공산주의자였던 진 태틀록과 눈이 맞아 성관계를 맺고 연인 관계가 되지만[4] 결국 그녀와는 틀어지고 스페인 내전에서 남편을 잃은 유부녀였던 캐서린과 눈이 맞은 끝에 결혼하게 된다. 캐서린 역시 공산주의자였고, 오펜하이머 역시 미국 공산당에 가입하지는 않으면서도 공산당과 교류하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여기서 마찬가지로 좌익 성향인 버클리 대학의 동료 교수인 하콘 슈발리에와 절친한 친구가 된다.[5]

한편 독일에서 핵분열 현상이 발견되고, 1년 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미 육군 대령 레슬리 그로브스는 오펜하이머를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로 임명하고,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더 이상 공산당과 교류하지 않으며 따라서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답한다. 오펜하이머는 평소 자신이 좋아했던 뉴멕시코주로스앨러모스에 새로 마을에 가까운 연구소를 만들고 에드워드 텔러, 한스 베테, 리처드 파인만, 엔리코 페르미 등등 당대 물리학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을 영입하고 가족들까지 불러오게 해 다 함께 살게 한다. 한편 그로브스는 맨해튼 계획이 철저한 국가기밀 실험인 만큼 독일, 소련 등에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피하고자 서로간의 정보 전달을 최소화하기 위해 과학자들의 구획화를 통해 연구를 진행하도록 지시한다. 개발 기간 동안 오펜하이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만나며[6] 과거 만난 적이 있던 닐스 보어 교수가 나치가 점령하고 있던 덴마크에서 탈출해 미국에 입국하게 된다. 보어는 오펜하이머에게 원자폭탄을 만듦으로써 오펜하이머는 세상은 핵무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끝내 핵무기를 만들어 인류가 자멸할 힘을 준 자인, "미국의 프로메테우스"라 불리게 될 것이며 거기서 자네의 업적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오펜하이머는 진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오펜하이머는 홀연히 숲으로 들어가 쭈그리고 앉을 정도로 멘탈이 박살난 모습을 보이지만, 뒤쫓아온 아내 키티의 독기어린 격려 아닌 격려[7]를 받으며 정신을 다잡는다.


2년의 시간이 지나고, 원자폭탄이 완성되기도 전에 독일이 항복하고 만다. 하지만 일본의 저항이 계속되었기에 맨해튼 계획은 일본의 패색이 짙다는 주장에도 계속 진행되었고, 결국 포츠담 선언 직전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을 수행하게 된다. 이 장면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오펜하이머 인생의 정점이 된다.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하자, 오펜하이머와 연구원들을 비롯한 모두가 기뻐한다.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원자탄에 대한 모든 결정은 오펜하이머의 손을 떠나게 되고 그로브스로부터 꼭 다시 연락을 주겠단 약속과는 달리,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사실을 16시간 뒤 라디오 방송을 듣고서야 알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당황스러워 하나 그로브스와의 통화에서는 여기도 다소 분위기가 좋다며 티를 내지 않았고, 연구원들 앞에서 이를 자화자찬하는 연설을 한다.[8]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는 오펜하이머는 해리 S. 트루먼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손에는 피가 묻은 것 같다며 불안해하나, 트루먼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사람들이 당신에게 신경이나 쓸 것 같냐고 반문한 뒤 폭탄 투하를 결정한 장본인인 자신에게나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면서 불편한 심기[9]를 보이고 오펜하이머를 경멸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어[10][11] 원자탄에 대한 실권을 빼앗게 된다.

2.3. 시간대 #2

1954년 오펜하이머 비공개 청문회. 컬러로 연출된다.

이 시점에서 오펜하이머는 핵 확산 방지를 위해서 수소폭탄 개발을 하지 말 것을 주장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맨해튼 계획에서 같이 일했던 에드워드 텔러와 갈라서게 된다. 오펜하이머의 이런 변화는 미국 공산당과 교류했던 그의 과거와 맞물려서 미 정부의 의심을 사게 된다. 이 와중에 원자력 위원회의 루이스 스트로스는 과거에 망신을 당한 일로 오펜하이머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는데, 스트로스는 앞서 말한 정부의 의심을 이용해서 오펜하이머에게 공산주의자이자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워서 원자력, 핵무기 보안 접근권을 아예 박탈시키는 식으로 업계에서 완전히 생매장하려 한다. 키티는 스트로스의 전략을 알고 오펜하이머에게 맞서라고 요구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한편,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공개적으로는 오펜하이머에 대한 마녀사냥에 분개한다.[12][13]
변호사 개리슨: 오피, 이 청문회는 결론이 정해진 캥거루 재판[14]일세. 자넨 이길 수 없어. 왜 이러면서까지 청문회에 계속 참여하는 건가?
오펜하이머: 나만의 이유가 있다네.
아인슈타인: (변호사들이 차를 타고 떠나자 반대편에서 나타나서 오펜하이머에게 책을 전해주며) 저 자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보이는구먼. 자네는 더 이상 자넬 사랑하지 않는 여인을 쫓는 거야. 미국 정부 말이지.
오펜하이머: 아마 이해하지 못하실 거예요, 박사님.
아인슈타인: 그런가? 난 내 조국을 떠나서 다시는 찾지 않았네. 수 년 전 독일의 재앙이 여기서도 되풀이되고 있고, 사람들은 저항 없이 묵인하고 악의 세력에 동조하고 있지. 자네는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했네. 이게 자네가 조국에게 바친 충성의 대가라면 조국이라고 생각하지도 말게.[15][16]
오펜하이머: 젠장, 전 당연히 이 나라를 사랑한단 말입니다.[17][18]
아인슈타인: 그렇다면 저들에게 가서 지옥으로 꺼져 버리라고 저주나 퍼붓게.

이 과정에서 텔러는 오펜하이머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하고 그를 배신한다. 이 외에도 키티, 그로브스를 포함해 그간 함께 했던 사람들도 두 편으로 갈라지게 되는데, 끝까지 오펜하이머의 무고함을 알고 진실대로 진술하는 이들도 몇몇 있지만 대부분은 매카시즘 시대에 겁먹고 오펜하이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스트로스의 전략대로, 청문회의 결과 오펜하이머는 일부 위험 인사와 친선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청문회 최고위원 3인의 최종투표 결과 2대 1에 따라 보안 인가 갱신을 허락받지 못한다.[19][20]

2.4. 시간대 #3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의 장관 임명 공개청문회. 흑백으로 묘사된다.

약 5년 후 스트로스 본인도 상무부 장관 임명 청문회에 임하게 된다. 보좌관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그에게 이 청문회는 단순 통과 의례일 뿐이라며 위로하고, 청문회도 순탄하게 흘러간다. 그러던 중 증인 명단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익명의 과학자가 증인으로 나선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스트로스는 다시 한번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과거 오펜하이머를 개인적인 원한으로 누명 씌운 것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는데, 스트로스의 직속 보좌관도 오펜하이머 사건의 진정한 내막을 처음 접하자 상당한 실망감을 내비친다. 이후 그 과학자는 데이비드 힐이었음이 드러나며,[21] 힐은 과학자들이 스트로스에게 품은 반감을 대표해 당시 오펜하이머를 향한 공격이 스트로스의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것이었음을 고발한다.[22][23][24]

이 일로 청문회에서 공개적으로 모멸을 당한 스트로스는 대기실로 돌아와 오펜하이머는 선택적으로 후회를 하는 이기적인 인물이었다며 분노를 터뜨린다. 상원 인준 투표 결과, 결국 그는 불과 3표 차로 패배하여 낙마하였다.[25] 스트로스는 과거 자신이 목격했던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만남을 언급하는데, 그 날 이후 아인슈타인이 자신을 무시했다며 오펜하이머가 과학자 모두를 하나둘씩 자신에게서 이간질시켰다며 분노한다. 보좌관은 그런 스트로스에게 "어쩌면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는 당신 얘기보다는 더 중요한 일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라는 말로 답하고,[26] 모든 것을 잃고 자멸한 스트로스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방 밖에 몰려든 기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간다.[27]

2.5. 결말

영화는 다시 오펜하이머의 시점에서 본, 1947년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의 대화 장면을 비춘다. 그 장면의 내용이 밝혀지는 아인슈타인과의 대화[28]에서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오펜하이머가 느꼈던 참담한 심정과 자괴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편 1963년 12월, 오펜하이머는 린든 B. 존슨 대통령에 의해 엔리코 페르미 상을 받는 장면이 이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대화 장면과 교차편집되며 나온다.[29] 비록 오펜하이머는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잃은 후였지만 그나마 그의 명예는 일정 부분 회복되었고, 행사에 찾아온 에드워드 텔러와도 화해한다.[30]

아인슈타인: (바람에 날아간 모자를 주워주는 오펜하이머에게) 고맙네. (Thank you.)
오펜하이머: 알베르트. (Albert.)
아인슈타인: 오, 화제의 인물이시군. 자네가 예전에 버클리에서 나를 위해 리셉션을 열고 상을 준 일이 있었지. (Ah, the man of the moment. You once had a reception for me in Berkeley. You gave me an award. Umm?)
오펜하이머: 네. (Yes.)
아인슈타인: 그때 자네들 모두는[31] 나 때문에 시작된 이론[32]을 정작 나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 그러니까 그 상은 사실 날 위한 게 아니라 자네들 모두를 위한 것이었어. (You all thought that I had lost the ability to understand what I'd started. So that award really wasn't for me. It was for all of you.)
오펜하이머: ...
아인슈타인: 이제 자네 차례야. 자네가 이룬 성취의 결과를 직면해야 해. 그리고 자네가 충분히 벌을 받고 난 뒤에는, 세상은 자네에게 연어감자 샐러드를 대접하고, 연설을 해주며, 메달도 줄 거야. 등을 두들기면서 모든 게 용서받았다고 하겠지.[33] 하지만 기억하게, 그건 자네를 위한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한 거야.(Now it's your turn to deal with the consequences of your achievement. And one day, when they've punished you enough, they'll serve you salmon and potato salad, make speeches, give you a medal. Pat you on the back, tell you all is forgiven. Just remember, it won't be for you. It will be for them.)
(아인슈타인이 뒤로 돌아서 떠나려 할 때 오펜하이머가 불러 멈춰 세운다.)
오펜하이머: 알베르트. 제가 그 계산식을 가지고 박사님께 갔을 때[34], 우리들이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전세계를 멸망시키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같이 했었죠. (Albert, when I came to you with those calculations, we thought we might start a chain reaction that would destroy the entire world.)
아인슈타인: 나도 기억하네. 그건 왜? (I remember it well. What of it?)
오펜하이머: 시작된 것 같아요.(I believe we did.)[35]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거대한 연쇄반응을 가져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의 말을 듣고 창백해진 아인슈타인은 그 자리를 떠난다.[36] 동시에 그들에게 다가오던 스트로스를 아인슈타인이 지나치며 오펜하이머의 핵분열에 이어 스트로스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을 끌어들이는 핵융합 연쇄반응이 시작된다. AEC 연구소 앞 정원에서 오펜하이머는 수없이 많은 핵무기가 온 세상을 뒤덮는 환영[37]을 보는 것을 상상하고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영화가 끝난다.[38][39]

3. 탐구


영화 속에 등장한 주요 인물들과 실제 행적을 담은 영상.

3.1. 등장 인물들의 극중 행적과 실제 역사 비교

3.2. 작중 시대 배경, 장치들과 실제 역사 비교

4. 평론가 심층 분석과 해설영상



[1]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오펜하이머의 핵무기 개발 성공과 그 후의 그의 인생을 곱씹어 보면 의미심장한 말이다.[2] 물리학계에서는 이론물리학자들이 물리학 실험에 상대적으로 서투르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미지가 있다.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의 경우 아예 그가 실험실에 들어가기만 해도 장비가 고장나거나 망가진다는 파울리 효과라는 용어까지 있었을 정도. 물론 이는 극단적인 사례이자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는 일화에 불과하며, 대다수의 훌륭한 이론물리학자들은 실험에도 능하다. 다만 실험물리학자에게 요구되는 학자로서의 미덕이 이론물리학자와 다소 다르기에, 영화에서 묘사되는 수준의 서투름은 특히 대학원 과정 이론 전공자라면 (다소 과장이 있기는 해도) 아예 납득이 가지 않는 수준까지는 아니다.[3] 실험실에서 망신을 당하자 홧김에 교탁에 있던 사과에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을 주사했지만 교수가 독사과를 먹기 직전 벌레가 먹은 사과라면서 사과를 잡아 쓰레기통에 넣어 독살은 발생하지 않게 된다. 다만 영화에서는 지도교수 대신 닐스 보어가 사과를 집어들면서 오펜하이머가 평생 정신적 스승으로 모시게 될 인물을 우연히 죽일 뻔한 것으로 각색되었다.[4] 이때 의무방어전에 가까운 관계를 하던 중에 진 태틀록이 오펜하이머에게 바가바드 기타의 유명한 구절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였다.'를 읽어달라고 요구하는데, 사실 이 장면은 복선이다. 오펜하이머가 인류에게 핵폭탄을 부여함으로써 죽음이자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면, 태틀록은 스스로 죽음으로써 오펜하이머의 인생에 파괴적인 고통을 부여하게 된다.[5] 이후 슈발리에가 자택 부엌에서 오펜하이머에게 소련 측에 연구 정보를 넘기는 중개인 이야기를 해준 일이 청문회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이가 영화에서도 묘사된 슈발리에 사건이다.[6] 오펜하이머는 핵분열로 인한 연쇄반응의 폭발이 그대로 대기의 산소까지 연소하면서 전세계를 멸망시킬 가능성이 제기되자 공식을 들고가 직접 계산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자네나 나나 수학에는 젬병이지 않느냐며 거절한다. 그리고 만약 그 가능성이 실제로 입증된다면 당장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나치에게도 결과를 공유하라고 조언한다.[7] 처음에는 혼자 떨고 있는 오펜하이머를 일으키고 진심으로 걱정하였으나, 그 이유가 불륜 상대인 진임을 알게 되면서 순식간에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변해 그를 붙잡고 죄지은 주제에 불쌍하게 굴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며 일갈한다.[8] 이 때 밝아보여야 할 분위기와 별개로 핵폭탄이 폭발한 것처럼 주위가 매우 밝아지고, 여성 연구원 한 명의 피부가 벗겨지고, 원자폭탄의 여파가 밀려오는 듯한 묘사, 불탄 시체를 밟은 오펜하이머 자신, 슬퍼하는 사람들, 구토하는 연구원 등 공포스러운 비유적 연출을 볼 수 있다.[9] 이미 오펜하이머가 로스 앨러모스를 인디언들에게 돌려주라고 말했을 때부터 트루먼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라는 식으로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10] "각하, 제 손에는 피가 묻어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오펜하이머의 말에 트루먼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에 관해선 여러 설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손수건을 꺼내 손에 묻은 피나 닦으라는 듯 내미는 식으로 묘사되었다. 그 이후 화가 난 트루먼이 하는 말들은 실제 기록과 동일하다.[11] 원래 트루먼은 부통령으로 재임하다가 원폭 몇 달 전에 루스벨트의 사망으로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된 상황인데다가 그 전까진 기밀이라서 알지도 못했던 맨해튼 계획을 보고받고 신속히 전쟁을 끝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병력 손실을 막겠다는 목적으로 원폭 투하를 명령했으며, 미국인들의 목숨을 구했다며 오펜하이머를 치켜 세워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펜하이머의 발언이 자신의 결단을 무고한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적 학살로 비난한 것처럼 여겨져 불쾌해했던 것이다. 물론, 애국심이 강한 오펜하이머가 자국 군인들을 작정하고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트루먼 본인뿐만 아니라 트루먼의 명령에 따라 일본의 극악무도한 전쟁범죄와 테러로부터 자국인 미국과 전 세계를 구하기 위해 기어이 총대를 매고 투하 작전을 이행한 에놀라 게이의 파일럿 폴 티비츠를 비롯한 군인들까지 한낱 악랄하고 잔혹한 학살자이자 전범 집단으로 비난하는 뉘앙스로도 볼 수 있었다.[12] 아래 두 사람의 대화는 영화적 창작이지만 역사에 대입하면 1954년 오펜하이머의 청문회 당시에 나누는 대화로, 영화 내에서 시간 대상으로 오펜하이머-아인슈타인의 3번째이자 마지막 만남이다.[13] 작중 오펜하이머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만나는 장면은 3번(스트로스 시점 및 오펜하이머 시점에서 두 번 비추는 1947년 두 사람의 대화, 그리고 아래에 서술된 장면.) 나오는데, 놀란의 장기인 임팩트 있는 인서트와 전환, 그리고 함축적인 대사가 총 동원된 명장면으로 꼽힌다.[14] Kangaroo court, 권위도 없고 법률 규정을 지키지도 않는 엉터리 재판의 은어. 일명 인민재판과 같은 말이다. 영화 자막에서는 마녀사냥으로 번역되었다.[15]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독일에서의 모든 직위, 재산, 명성을 빼앗기고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다행히 미국에서 새로운 기반은 잡았지만 기본적으로 아인슈타인은 국가, 정부, 군대 같은 집단이나 조직에 그닥 좋은 감정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 때의 상황은 매카시즘의 광풍 탓에 소위 빨갱이 사냥이 극에 달하고 있던 1950년도 중반이다. 실제 아인슈타인은 이때 곤경에 처한 오펜하이머에게 "그냥 사직서 던져버리고 버클리나 칼텍으로 돌아가서 교수직을 맡으며 기회 잘 잡아서 재기하는 것이 훨씬 낫다"라는 조언들을 해주었다고 한다. 오펜하이머에게 이런 굴욕과 모욕까지 참아가면서 국가 원자력 위원회 자리와 원자력 보안 등급은 얻는 건 크게 의미없다는 의미로, 조선 시대 같으면 사직하고 낙향하여 고향에서 후계자들을 양성하고 다시 기회를 보란 소리나 똑같다.[16] 당시 아인슈타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오펜하이머가 이런 엄청난 고초를 겪으면서 결국 스스로 무너질 거라고 걱정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은 나치들에게 당할 만큼 당해서 코끼리 가죽만큼이나 피부가 두꺼워서 저들이 공격한다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단련이 되어있지만 오펜하이머는 그렇지 못한 여린 감수성을 지녔다고 보고 걱정한 것이다.[17] 그도 그럴 것이 아인슈타인 등은 유럽에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경우지만, 오펜하이머는 태어날 때부터 미국인이었다.[18] 실제 역사에서는 오펜하이머와 친분이 있던 외교관 조지 케넌(주소련 대사를 역임했으며, 2차 대전 직후 대소련 봉쇄 정책을 주창하며 냉전기 미국 대외정책 노선 수립에 큰 영향을 준 거물급 외교관)이 "외국 대학에서는 자네를 환영할 테니 고초를 피해 외국 교수로 부임하는 게 어떠냐" 고 제안했고, 이에 대해 오펜하이머가 이 대사를 눈물과 함께 읊으며 완곡하게 거절한다.[19] 이 장면은 1959년 시점 스트로스의 청문회에서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에게 패하는 장면과 교차되며 묘사된다.[20] 영화에는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에 대해서 앙심을 품게 된 이유가 두 가지 나오는데, 이 중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관련한 오해는 영화적 창작이다. 다른 하나의 이유가 된 동위원소 논쟁은 역사적으로도 잘 알려진 일화인데, 이 논쟁에서 오펜하이머가 스트로스와 대립했던 것은 사실이며, 나중에 소련의 핵실험이 시작되자 놀랍게도 과학자도 아닌 스트로스의 주장대로의 결과가 나왔다. 과학적으로 엄밀하지 않았던 의견이 나중에 실용적인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는, 일종의 아이러니. 여튼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스트로스 입장에서는 오펜하이머를 의심하고 미워할 수도 있다. 문제는 복수의 방법이 누명 씌우기라는 가장 치졸한 방식이었다는 점.[21] 스트로스와 자문위원은 핵무기에 대한 입장이 달랐던 힐이 앞서 호출된 텔러와 마찬가지로 오펜하이머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22] 영화 상에서 힐은 오펜하이머랑 2번 만나는데, 처음 만났을 때 오펜하이머는 이런 것까지 받아적지 말라고 펜과 클립보드를 치우게 하고, 두 번째로 만났을 때도 힐과 그의 스승인 레오 실라르드가 제안한 핵무기 반대 서명안을 거절하며 또 힐이 건낸 서명안을 강하게 쳐내 서명안과 펜이 떨어져 줍게 만들기까지 한다. 이런 사건들 때문에 영화상에서는 마치 힐이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를 고발할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가 가장 강하게 오펜하이머를 옹호하는 것이 소소한 반전요소. 정말 소수의 사람만이 오펜하이머를 감싸주고 대부분의 친구들마저 마지못해 중립적인 발언을 하는 등 오펜하이머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지만, 정작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버니바 부시는 논리적이고 단호한 어조로 오펜하이머의 비공개 청문회에서 그를 변호했고 힐의 증언은 스트로스를 패배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23] 물론 힐에게는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를 공격했다는 직접적인 물증은 없었다. 하지만 스트로스가 그토록 강조했던 것처럼 법정과 달리 청문회에선 입증 책임이 없다. 스트로스를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몰아내려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즉 스트로스 자신이 오펜하이머를 몰락시킬 때 썼던 방법과 똑같은 방식으로 본인 역시 몰락하게 된 것이다.[24] 참고로 원작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미리 읽어보고 영화를 보았던 사람들조차 영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힐의 존재가 낯설었을 텐데, 사실 해당 책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힐 부분은 놀란 감독이 따로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 각본에 포함시킨 것으로, 그만큼 놀란 감독이 얼마나 방대한 수준으로 사전조사를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놀란 감독은 데이비드 힐 박사가 스트로스의 진실을 까발리는 당시 증언 기록을 보고 나서 비로소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와 함께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25] 보좌관은 반대표 3개 중 하나가 (당시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이자 스트로스 임명 반대를 주도했던) 존 F. 케네디의 것이었다고 언급한다. 또한 영화에서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해당 반대표에는 린든 B. 존슨도 포함되어 있었다.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두 사람이 스트로스 장관 임명 반대표를 던진 셈이다.[26] 그 말은 역으로 받아들이면 "그 두 지성인이자 세기의 천재들에게 당신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로 해석할 수도 있으니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상당히 모욕적인 말이다. 이 사람도 처음엔 스트로스에게 청문회는 통과의례일 뿐이니 긴장하지 말라고 위로도 해주었고 마지막까지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지만, 오펜하이머를 향한 스트로스의 치졸한 복수심과 교활한 처세술을 접하면서 점점 따져묻기도 하면서 그에게 실망해가는 모습을 보였다.[27]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좌관에게 오펜하이머에 대한 열등감과 그에게 자신이 가한 짓에 대한 합리화를 연발해대며 미친듯이 울분을 쏟아내고, 이후에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가 방문을 열고 기자들을 맞이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하여 만면에 미소를 띄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연기력이 압권이다. 진정한 현실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28] 이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의 만남 역시 놀란 감독의 영화적 허구이다. 이 배경은 당시 역사적 사실로 보자면 2차 대전 이후 40년대 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으로 오펜하이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를 프린스턴으로 초대할 때이다. 즉 프린스턴에서 아인슈타인과의 만남은 시간상으로 영화 내에서 2번째에 해당한다.[29] 당시 오펜하이머의 페르미 상 수상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명의로 발표되었지만, 수상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케네디가 댈러스에서 암살당하면서 후임자인 존슨이 상을 전달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원작에 따르면 케네디 암살 소식을 들은 오펜하이머는 루스벨트가 죽었을 때만큼이나 큰 충격을 받고 좌절했다고 한다.[30] 텔러는 오펜하이머보다 바로 앞선 1962년에 페르미상을 받았는데, 오펜하이머를 다음 수상자로 추천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이 화해하게 된 셈. 하지만 오펜하이머와 함께 청문회에서 고초를 겪은 부인 키티는 여전히 텔러를 용서하지 못하고 대놓고 팔짱을 끼며 그와의 악수를 거부하고 입을 오물거린다. 오펜하이머의 보안인가 청문회에서 텔러가 자기 차례를 끝내고 오펜하이머에게 악수를 청했단 걸 들은 키티는 사람들이 모인 식사자리에서 오펜하이머에게 “그런 놈과 악수를 해? 나라면 침을 뱉었을거야.”라고 대꾸하는데 과거에 한 말 그대로 침을 뱉으려는 시늉을 한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모욕을 당한 셈이지만 텔러 본인조차 워낙 지어놓은 죄가 크다보니 화를 내거나 변명하긴커녕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이 장면에서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한껏 경멸감을 드러내는 에밀리 블런트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다. 실제로도 키티는 페르미 시상식 당시 텔러에게 시종일관 냉랭한 태도로 대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당황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31] 양자역학의 선구자들.[32] 상대성 이론, 특히 광전효과 이론이 양자역학을 태동시킨 것을 의미한다.[33] 비록 오펜하이머가 페르미 상을 받은 시점(1963년)에서 아인슈타인은 이미 사망(1955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예측이 들어맞은 셈이 되었다.[34] 맨해튼 계획이 가동되려 할 때 둘은 같은 장소인 프린스턴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었다. 이것이 영화 내 두 사람의 첫 번째 만남.[35] 즉 단일 원자폭탄의 '핵분열의 연쇄 반응이 끝나지 않고 지구 대기가 폭발할 수도 있을까'라는 과학적 근거론의 대화에서, 원자폭탄이 일단 만들어지자 그걸 계기로 보다 많은 나라들이 원자폭탄의 개발, 보유에 연쇄적으로 뛰어드는 '핵무기 경쟁(nuclear arms race)'과 '핵확산(nuclear proliferation)'의 시대가 도래하여, 말 그대로 핵전쟁이 일어나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현실로 만들게 되었다고 오펜하이머는 말한다. 자연반응에 의한 연쇄반응은 다행히 없었지만 인간 자체가 그 연쇄반응이 되어 버린 것. 그리고 그의 말대로 냉전 때는 경쟁이 극에 달했고, 기존의 미소냉전은 종식되었지만 뒤이어 시작된 현재의 신냉전에도 그 위험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36] 스트로스는 결말에서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37] 소련의 핵폭탄 실험으로 인한 긴급회의에서 참석했을때, 훗날 오펜하이머를 고발하는 보든이 밤중 V2로켓을 본 이야기를 해준다. 이때 보든은 오펜하이머에게 로켓에 핵무기를 탑재한다면 이라는 가설을 이야기하고, 오펜하이머가 V2로켓을 보는 장면이 엔딩에서 등장한다. 엔딩은 이 시점보다 앞선 플래시포워드에 해당하는데, 오펜하이머는 소련의 핵실험 전부터 이러한 상황을 내다본 것.[38] 아인슈타인에게 연쇄반응 이야기를 할 때, 연못에 떨어져 물방울이 파동을 일으키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영화 도입부, 오펜하이머가 유학시절 바닥에 고여 파동을 일으키는 빗방울을 보고 느낀 장면과 연결된다.[39] 엔딩 이후 스트로스 시점이 나온다. 영화의 주요 서사를 담당하는 스트로스의 오펜하이머를 향한 복수심이 발현된 원인은 처음 만나 몇 번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스트로스가 미천한 구두판매원이었다?”라고 말한 오펜하이머의 자만심이 스트로스의 자존심을 해쳤고, 직후 아인슈타인도 자신을 무시했다는 넘겨짚기가 스트로스에게 자격지심을 일으켜 오펜하이머를 증오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스트로스는 자신이 상무장관 상원 청문회에서 떨어지기 전 오펜하이머가 과학자들과 이간질시킨다며 처음부터 아인슈타인에게 자신에 대한 험담을 했다고 믿고, 오펜하이머를 파멸로 몰아간다. 그러나 보좌관의 말대로 정작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은 다른 이야기를 했으며 스트로스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학적 발견과 연구가 상상하지도 못할 어두운 미래를 현실로 만들었다는 것에 서로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며 헤어진 것뿐이다. 실존인물의 명예를 위해 첨언하자면 해당 오해 자체는 순전히 영화 내의 창작이긴 하나, 실제 역사에서도 스트로스의 오펜하이머를 향한 괴롭힘은 있었고 오펜하이머도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본작의 원작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서도 동위원소 수출 건에 관한 회의자리에서 오펜하이머가 맥주 운운하며 그 자리에 있던 스트로스를 농담조로 놀렸고 결국 스트로스는 '사람 얼굴에서 흔히 보기 힘든 증오의 표정'을 지은 채 격분하여 떠났다는 회의 참석자들의 증언이 나온다.[40] 미국의 학문은 동부의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주요 전통적인 대학들이 이끌었고, 여기서 육성된 엘리트들이 미국을 이끌어나갔다. 이를 파고 들며 유럽의 인재를 끌어오며 성장한게 록펠러나 포드 재단 등 대기업들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시카고 대학교를 비롯한 미 중부 지역. 이에 비하면 미 서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었다가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지원을 대폭적으로 받으며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40년대엔 괄목할 성장을 이루게 된다.[41] 어렸을 적 학교에 입학할 때 아버지가 입학 신청서에 이름을 그렇게 적어놔서, 그때부터 친구들에게 이 이름으로 소개했다.[42] 심지어 라비 박사는 1944년 그가 연구한 자기 공명에 대한 이론으로 노벨물리학상까지 받았다. 오늘날 MRI가 탄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라비 박사의 자기 공명 이론이 엄청난 공헌을 했다.[43] 기밀해제 이후에도 이 대목에는 검게 잉크칠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보 보호 소송 결과 해당 란에는 표현과 같이 '일련의 슈퍼 폭탄'이라고 발언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는 핵융합 수소폭탄을 의미한다.[44] 심지어 그는 초기 오펜하이머의 버클리 시절 친한 친구였다.[45] 영화에서도 이 언급은 나오는데, 로런스가 라비의 눈빛을 보고 급하게 발걸음을 돌린 이후 청문회 위원들이 '급성대장염에 걸려서 출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라고 언급한다. 즉 영화에선 라비와 오펜하이머를 보고 양심에 찔린 로런스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돌리고 병을 핑계삼은 것. 더불어 영화에선 오펜하이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때 로런스가 나타나 라비의 눈빛을 보고 자리를 뜨기 때문에 오펜하이머는 그가 왔다갔다는 걸 몰랐다. 오펜하이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로런스는 이미 사라졌고, 라비가 이를 얼버무리며 로런스가 왔었다는 걸 숨겼기 때문.[46] 비슷한 사례로 같은 시기 할리우드에서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이 동료 영화인들을 공산주의자 혐의로 고발했던 바 있다. 이때 일로 카잔은 감독으로서 <에덴의 동쪽>, <워터프론트> 등 다수의 명작들을 남긴 업적이 있음에도 두고두고 영화계의 지탄을 받았다. 오죽하면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는데도 장내 분위기가 대체로 싸늘했을 정도였다.[47] 맨해튼 계획 내에서 이론 개발 부서.[48] 영화 내에서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의 이 만남이 시간상으로 첫 번째 만남이다.[49] 오스트리아 출신 수학, 철학 그리고 컴퓨터과학을 다른 학자였다.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조국 오스트리아에서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탈출했으며 그 과정에서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 학자들의 도음을 많이 받았다. 이를 계기로 아인슈타인과는 개인적 친분을 나눈 몇 안되는 학자였다.[50] 오펜하이머가 텔러의 지구 멸망 가설식을 현실성이 없고 아인슈타인이 오류를 지적해주기를 바랬지만 오히려 아인슈타인은 이 가설로 인해 지구가 멸망할 대재앙이 생긴다면 적에게도 알려주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것이 당연한 과학자의 해야 할 일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오펜하이머에겐 이때까지의 자산의 연구과 업적을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는 표정이었다.[51] 이때 가설식을 돌려받는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의 표정은 대비되는데 오펜하이머는 해당 가설식이 입증된다면 지금 진행하는 맨해튼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되고 인생 목적을 잃게 되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인류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핵폭탄이 아닌 다른 그 무엇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처음부터 나치가 원자폭탄을 개발한다는 이유로 미국도 원자폭탄을 개발하자고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보낸 아인슈타인이지만 그 원자폭탄이 나치를 이기는 무기이기는커녕 지구상 모든 인류를 말살해 버릴지도 모르는 가능성에 주저하지 않고 원자폭탄을 포기하는 냉정한 태도가 교차되어 묘한 대비를 보여주었던 것이다.[52] 출처: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53] 당시 로스앨러모스에서 오펜하이머에 이은 2인자인 부소장직을 역임했다. 영화에서는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의 시카고 원자로(일명 "시카고 파일1")방문 금지 명령을 어기고 오펜하이머와 함께 방문하고 이 때문에 문책을 받자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사직해버리지만 실재로는 부임 초기부터 에드워드 콘던은 과거 좌익 행적에 대한 의심으로 보안 인가 허가가 나오지 않던 상태여서 정상적인 개발 업무가 불가능했다.[54] 딘 애치슨 국무부장관이 참석했다는 주장도 있다.[55] 당시 백악관 방문 기록.[56] 맨해튼 계획 초기 단계에서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 수립시 연구소 부지는 대부분 전시 체제에서 국가가 토지소유권을 전부 강제 수용하여 세워졌다. 대부분의 광활한 뉴멕시코 로스 앨러모스 지역은 그 당시에는 인디언 원주민들, 그리고 개척민들의 농장, 목장, 가축 사육장 등만이 있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트리니티 핵실험 날짜와 장소가 정해지고선 일주일도 안 돼 미 육군은 해당 트리니티 실험 예정지 반경 주변의 모든 목장, 농장 등으로 우르르 달려가 군사 작전 중이니 위험하다면서 아예 쫓아내다시피 해당 지역에서 이주시켜 버렸다. 그리고 나중에 토지를 국가 수용해 버리는데 이때에 생활 터전을 한순간에 잃고 길거리로 나앉는 당시 지역 주민들의 규모도 상당한 편이었다.[57] 파인만은 무용수와 함께 세계 대회에 나가서 봉고 드럼을 연주해 2위를 차지할 정도의 실력자였다.[58] 참고. 본래는 B-29라는 설이 있었는데 B-29는 유럽 전선에는 투입된 적이 없기에 사실이라면 오류가 되었을 것이다.[59] 물론 V2는 미사일이 아니라 탄도 로켓에 가깝지만, 영화 막바지에 보여주는 로켓들의 모습과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로켓운의 모습은 ICBM으로 대표되는 냉전과 군비경쟁에 대한 경계에 가깝다.[60] 저각~고각 발사 각도 조절 시.[61]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의 경우에는 산소를 추진체로 쓰는 경우도 있다.[62] 페르미는 맨해튼 계획에서 원자로 개발을 주도하여 플루토늄 생산에 기여했고,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63] 매카시즘에 의해 자행된 오펜하이머에게 가해졌던 정치적 박해로부터 오펜하이머는 죄가 없다는 정치적 사면 및 복권.[64] 다만 오펜하이머가 영화 개봉 반년 전에 사면되어 복권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메시지가 의도치 않게 빛이 바랬다. 대신 다르게 보면 놀란 감독 정도의 영향력있는 사람이 오펜하이머를 다루는 영화를 공개하고 나서야 눈치를 보며 갑자기 복권시켰다고 해석할 수도 있으니, 그 복권의 진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겠다.[65] 출처 :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5부 38장》.[66] 오펜하이머 주변 인물들은 오펜하이머와 키티의 양육방식에 회의적인 평가가 많았다고 한다. 오펜하이머에게 자행된 매카시즘에 분노하고 오펜하이머 편에 섰던 전임 AEC 의장 릴리엔탈은 "오펜하이머가 자녀들의 인생을 망쳐버린 거나 다름없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소심하고 예민한 청소년기 성격을 보인 첫째 피터 오펜하이머는 유독 어머니인 키티의 간섭을 받으며 컸지만 이러한 모자 갈등을 오펜하이머는 전혀 수습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방관하였다고 한다. 또한 1958년 미국을 떠나 프랑스의 교환 교수직으로 1년간 미국을 떠나게 된 오펜하이머는 딸 토니는 데려갔지만 아들 피터 오펜하이머는 기숙학교에 놔둔 채 교환교수직으로 파리로 떠났으며, 오펜하이머의 지인들은 모두 그 결정을 만류하였으나 오펜하이머는 듣지 않았다고 한다.[67] 화장한 재를 바다에 뿌린 게 아닌 시신을 화장하여 넣은 항아리 채로 바닷속에 가라앉혔다고 한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무덤을 이렇게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전 부인인 키티에게 부탁했다고 한다.[68] 미 FAS는 지금도 핵무기와 관련 정책 연구에서 상당한 전문성, 권위를 인정받는다. 지난 2015년 한국 핵무장론의 기술적 가능성을 제기해 주목을 받은 찰스 퍼거슨도 FAS 회장이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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