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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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劉敏元생몰연도 불명
서진 및 전조의 인물. 자는 도광(道光). 청주 북해군(北海郡) 출신.
2. 생애
일찍이 성력(星歷)과 음양술을 좋아하여 《주역》, 《태현》(太玄) 등을 공부하였으나, 역사서를 읽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유민원은 늘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이들에게 이르길,"독서란 마땅히 그 뜻에 근원을 두어야지, 무엇 때문에 겉치레 공들여야 한단 말인가! 《주역》은 뜻의 근원이며, 《태현》은 이치의 문이니, 이것을 명확히 아는 자가 바로 나의 스승이 될 것이다."
라 하였다.영가의 난이 일어나자 유민원은 서쪽으로 피난가기 시작했는데, 그때 동향인 관평(管平)은 70세의 노구를 이끌고 유민원을 따라 도망가다가 형양(滎陽)에 이르렀을 때 길에서 도적떼를 만나 사로잡히고 말았다. 유민원은 이를 알고 도적들을 찾아가 말했다.
"저 분은 연로하여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유민원이 몸을 바쳐 대신할 터이니, 저 분을 놓아주십시오."
도적이 물었다."저 자는 그대와 무슨 사이인가?"
유민원이 답했다."가난하고 아들이 없어 제게 의지하던 같은 마을 사람입니다. 만약 일을 시킨다면 노쇠하여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잡아먹고자 해도 이 유민원만 못할 것이니, 부디 제가 대신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유민원의 말을 듣고 도적이 눈을 부라리며 유민원을 향해 꾸짖었다."내가 저 자를 놓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너를 얻지 못할 것 같느냐!"
그러자 유민원도 칼을 뽑고 적대하며 말했다."내가 어찌 나쁜 일이 생기길 바라겠느냐! 죽더라도 너를 죽인 후에 죽겠다. 저 분은 가난하고 노쇠하여 신께서도 그를 불쌍히 여기실지니, 내 비록 친분으로는 혈육이 아니고, 의리로는 스승이나 친구가 아님에도 몸을 던져 대신하기를 구걸한 것이다. 대장부라면 모두 인자한 은혜가 있어 나의 말에 동의할진대, 너는 어찌 부끄럼 없이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가!"
그 후 그 도적을 베기 위해 달려들자,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나서서 유민원을 말리고 그의 의로움을 칭찬하며 두 사람을 모두 풀어주었다.이후 유민원은 장안에서 전조 정권을 세운 유요의 휘하로 들어가 중서시랑, 태위장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