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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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庾琛생몰연도 미상
동진의 인물. 자는 자미(子美). 예주 영천군(潁川郡) 언릉현(鄢陵縣) 출신. 명목황후 유문군의 아버지. 유곤의 동생. 외척이자 권신이었던 유량(庾亮), 유빙(庾冰), 유익(庾翼)의 아버지.
2. 생애
유침은 영가 초에 건위장군을 지내다가 영가의 난으로 서진이 큰 혼란에 빠지자, 장강을 건너 낭야왕 사마예에게로 귀순해 회계태수에 임명되었다. 이후 사마예가 승상에 올랐을 때, 승상 군자좨주로 옮겨졌고 재직 중 세상을 떠났다. 훗날 명제 사마소의 황후가 된 그의 딸, 명목황후 유문군은 아버지를 좌장군으로 추증하고, 그의 처 관구씨를 향군(鄉君)으로 추봉하였다. 유침의 아들 유량은 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뜻을 받들지 못 했다고 한다.함화 연간(326년 ~ 344), 성제 사마연이 다시 조서를 내려 유침을 표기장군, 의동삼사로 고쳐 추층하고, 관구씨를 안릉향군(安陵縣君)으로 고쳐 봉하였으나, 유량이 사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