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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21:35:24

경복궁 유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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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colbgcolor=#bf1400> 경복궁 유화문
景福宮 維和門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건축시기 1867년 (창건 추정)
2001년 (복원)
파일:경복궁_유화문_전경.jpg
<colbgcolor=#bf1400> 유화문[1]
1. 개요2. 이름과 현판3. 역사4. 특징5. 여담6.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경복궁 흥례문의 서쪽 행각에 있는 이다. 기별청의 남쪽에 있다.

경복궁 서남쪽에 있는 궐내각사로 가는 정문이었다. 흥례문 일곽은 정전 근정전 영역과 바로 붙어있었기 때문에 조회뿐만 아니라 국문이나 교서 반포 등 여러 중요한 행사들이 이루어진 곳이었다. 그래서 궐내각사에서 근무하던 관리들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는 이 필요했고 유화문이 바로 그 역할을 했다.#

2. 이름과 현판

'유화(維和)' 뜻은 '온화(和)', '조화(和)'이다. 여기서 '유(維)'는 어조사라서 뜻이 없다.

현판 글씨는 서예가 소헌 정도준 선생(紹軒 鄭道準. 1948 ~ )[2]이 쓰고 각자장 철제 오옥진 선생(鐵齋 吳玉鎭, 1935 ~ 2014)이 새겼다.

3. 역사

창건 시기는 모른다. 다만, 1867년(고종 5년)에 경복궁을 중건할 때 영건도감에서 건물들의 이름을 지어 올렸는데, 이 때 유화문의 이름도 있는 것을 보아 저 때 처음 지은 듯하다.#

이후 유화문은 임금이 공식적으로 궁궐 밖을 오갈 때 지나는 으로 기능했다. 정확하게는 수정전에서 숭양문[3]과 유화문을 거쳐 흥례문을 지나 광화문으로 나갔고, 돌아올 때는 그 반대로 들어오는 코스였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시정 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가 경복궁에서 열리면서 흥례문 및 주변 행각과 같이 헐렸다. 그리고 공진회 개최 1년 뒤인 1916년에 일제는 흥례문, 영제교, 유화문, 기별청 자리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었다.

8.15 광복 후인 1990년대대한민국 정부에서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했고, 2001년 10월 26일에 흥례문과 같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4. 특징

5. 여담

6. 매체에서


[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경복궁 흥례문창덕궁 진선문숙장문현판숭례문 복원 상량문을 썼다.[3] 수정전 일곽의 정문이다.[4] 윗 궁판의 경우, 5개는 온전히 뚫었으나 1개는 반으로 나누어 배치했다.[5]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6] 부재 끝 부분만 화려하게 칠하는 단청.[7] 수평 부재의 위, 아래 사이의 공간.[8] 좌, 우 칸 궁판의 경우, 6개는 온전히 뚫었으나 1개는 반으로 나누어 배치했다.[9] 현재의 대전광역시 중구, 동구, 대덕구 일대.[10] 司果. Apple 아니고 조선 시대 5위에 있던 정6품 무관직.[11] 임오군란 에피소드에서는 창덕궁 돈화문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