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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00d45> 왼쪽 중하단에 보이는 의주행궁과 용만관의 모습 | <colbgcolor=#c00d45> 오른쪽 상단에 보이는 의주행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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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00d45> 의주부 관아 | <colbgcolor=#c00d45> 의주관아 아문의 모습 |
1. 개요
義州行宮.평안북도 의주군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행궁. 외침에 대비하여 조성된 행궁이다.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한 사례로는 영변행궁, 영유행궁, 평양행궁 등이 있으며, 모두 북방 방어와 관련된 전략적 목적을 가진 행궁이었다.
2. 특수 목적의 행궁
의주행궁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일시적으로 머물렀던 곳으로, 그 이용 목적이 다른 행궁들과 비교할 때 매우 특수한 경우에 해당한다.사실, 의주행궁은 원래 평안도 의주목의 관사였으며, 처음부터 선조가 피난을 계획한 장소가 아니었다. 선조는 한성을 떠난 후 요동으로 망명할 계획이었으며, 의주행궁을 이용할 의도는 없었다. 그러나 요동행 소문으로 민심이 흔들리자, 신하들의 건의에 따라 요동행을 보류하고, 의주에 머물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의주 관사가 임시 행궁으로 활용되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활용된 남한산성 행궁과 강화행궁은 호란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와 보수를 거치며 활용된 반면, 의주행궁은 그러지 않았다가, 약 300년 뒤에 순종이 의주를 방문했을 때, 다시 행궁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경술국치 이후에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의주행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