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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목청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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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穆淸殿태조 이성계의 잠저 중 한 곳. 다른 한 곳은 경덕궁. 경기도 개성시 운학동(북한 기준 개성시 운학2동)에 있다. 잠저의 특성상 그렇게 크지는 않다.
2. 설화
개성 지역에서 전해지는 전승으로는 고려의 수도 개경이 송악산 여신의 젖을 먹는 어린아이와 같은 곳이라 송악산 여신의 젖을 마르게 하면 고려가 무너진다는 풍수가의 진언이 있었다. 이에 송악산 여신의 자궁에 해당하는 자리에 이성계가 집을 지은 것이 목청전이고 풍수가의 말대로 목청전을 지은 뒤에 고려가 멸망했다고 한다. 송악산 여신을 임신시키면 개경이 끝장난다는 진언에 따라 이성계가 밤에 몰래 송악산에 올라 용두질을 하고 그 정액을 땅에 묻었다는 전승도 있다.(출처: 송경록 《북한 향토사학자가 쓴 개성이야기》)3. 역사
조선 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는 진전(眞殿) 중 한 곳으로 사용되었다. 일제 말에는 양잠실로 쓰였고, 8.15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 부설 생약연구소(현 천연물과학연구소)가 사용하기도 했었다.해방 후 6.25 전쟁 전까지는 개성시가 38선 이남이어서 남한 땅이었지만, 6.25 전쟁 이후 개성시가 북한 땅으로 편입되면서 이곳 역시 북한이 관할하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김춘추, 이성계, 정도전, 이완용, 이승만을 소위 "5대 역적"이라고 이들을 증오하는 역사의식을 국민들에 주입시키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렇게 증오해 마지않는 이성계의 유적을 지금까지 잘 보존시켜온 것이 놀라울 따름.[1]
4. 일제강점기에 촬영한 사진
<colbgcolor=#bf1400> 일제강점기 개성 목청전 정전 전면[2] |
일제강점기 개성 목청전 외경[3] |
[1] 다만 아돌프 히틀러의 사례를 보면 알수 있듯이 나라에서 흑역사라고 치부하는 인물이라도 그 사람의 흔적을 다 기록말살식으로 다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깨끗이 보존해 둬서 반면교사용으로 삼고자 하는 듯.[2]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이 링크에서 사진 다운로드 가능하다.[3]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이 링크에서 사진 다운로드 가능하다.